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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한다고 말해줘: Chapter 51 - Chapter 60

100 Chapters

제51화

하도진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는 품 안의 고은율을 옆에 앉힌 뒤 소매를 걷으면서 긴 다리를 뻗으며 나이를 헛먹은 늙은 남자들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하도진은 옆에 놓여 있던 의자를 들어 테이블을 내리쳤다. 굉음과 함께 유리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고 룸 안에 있던 여직원은 상황이 심상치 않자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조금 전까지 거만하던 남자들은 그 순간 술이 확 깨서는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뒤로 몸을 숨겼고 겁 많은 매니저는 이미 다리에 힘이 풀려 하도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저 사람들이 은율이를 탐냈어요. 심지어 은율이와 잠자리까지 가질 생각이었어요. 저랑은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에요. 이건 회사 지시였거든요.”하도진의 주변에는 이런 쓰레기가 없었다. 게다가 하도진은 원래도 제멋대로였기에 그들을 때려서 병원에 보내는 것쯤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하도진은 남자의 멱살을 쥐어 바닥에서 끌어올린 뒤 오른손을 들어 남자의 얼굴을 힘껏 주먹으로 때렸다.남자는 안경이 깨지고 코와 입에서 피를 흘렸다. 겁을 먹은 남자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똑같은 말만 반복했다.“내가 누군지 알아? 너 내가 감옥에 보낼 거야.”하도진은 역겹다는 얼굴로 그를 바닥에 내팽개친 뒤 눈이 벌게져서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누가 얘 손을 이렇게 만든 거야?”옆에 있던 남자는 혼비백산하며 도망치려고 했다. 그는 사람들 몰래 룸에서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하도진이 그의 뒷덜미를 잡았다.“당신이었어?”하도진은 차갑게 웃으며 조금 전 건방을 떨며 자신에게 말을 건넸던 남자를 바라봤다.“얘 손이 얼마나 귀한 손인 줄 알아?”하도진은 쭈그려 앉아서 쓰레기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남자를 빤히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구둣발로 그의 손등을 사정없이 짓밟았다.그렇게 반복적으로 짓이기자 손등을 밟힌 남자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하도진은 말없이 차갑게 웃다가 다리를 들어 남자의 턱을 찼다.“겨우 돈 몇 푼 가지고 지랄이네. 쓰레기 같은 것들이.”하도진이 숨을 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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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놔.”하도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침대 가장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고 고은율은 그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아주 야릇한 자세를 한 채로 시선을 주고받았다.고은율은 술을 얼마나 많이 마신 건지 얼굴은 창백하면서 볼은 빨갰다. 그녀는 몽롱한 눈빛으로 눈을 깜빡이며 하도진을 바라보았다.“도진아, 고마워.”“고은율, 이번에는 내가 도와줬지만 다음에는 어쩔 거야? 내가 늦게 왔으면 그 짐승 새끼들이 무슨 짓을 할 것 같아? 왜 자기를 아낄 줄 몰라?”하도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은율을 바라보면서 일부러 듣기 싫은 말만 골라 했다.“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날 도와주러 올 거야?”고은율은 기대 어린 눈빛으로 하도진을 바라보면서 하도진의 목을 감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하도진은 고은율을 침대 위에 내려놓은 뒤 그녀의 손가락을 떼고서는 단호히 말했다.“아니.”“왜?”고은율은 흠칫하더니 이내 울먹거리면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나 결혼했어. 그리고 우리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하도진은 차가운 얼굴로 고은율에게서 멀어졌다.“그 여자를 사랑해?”고은율은 상처받은 얼굴로 눈물을 흘리면서 두 주먹으로 침대를 내리치면서 하도진을 추궁했다.“어떻게 말도 못 하는 여자랑 결혼할 수 있어? 왜 하필 그 여자야?”하도진이 호통을 쳤다.“그만해. 내 아내를 모욕하지 마.”“예전에 네 가족들은 우리 엄마가 네 가정부라는 사실 때문에 날 싫어했고 나는 자살하겠다고 협박해서 엄마가 일을 그만두게 했어. 나는 그동안 열심히 노력했고 내 실력으로 국비 유학까지 다녀왔어. 너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고 말이야. 내가 그동안 노력한 이유는 너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였어. 그런데 어떻게 평범한 여자랑 결혼할 수 있는 거야? 심지어 말도 못 하는 장애인이라니. 하도진! 나한테 복수하려고 그런 거지? 정말 그 여자 사랑해?”하도진은 침묵했다. 그는 자신에게 똑같은 질문을 수도 없이 했었다. 민하윤은 아름답고 매혹적이었고, 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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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소피아는 비명을 지르며 빠르게 김옥자의 뒤로 숨었다.“고은율 귀국했어?”김옥자는 미소를 거두며 하도진을 바라보았다.“걔는 너무 교활하고 못됐어. 앞으로는 연락하지 마.”하도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티 나지 않게 옆에 있던 민하윤을 힐끗 바라보았다. 민하윤은 여전히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다.저녁을 먹은 뒤 그들은 르네 별장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 내내 민하윤은 일부러 하도진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계속 창밖을 바라보았다.“에스티 산하의 엔터에서 파티를 할 예정인데 갈래?”하도진이 넥타이를 잡아당겨 소파 위로 던지면서 민하윤의 의사를 물었다.민하윤은 고개를 저으며 손짓으로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내 아내의 신분으로 참석하는 건?”하도진은 보기 드물게 온화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몇 번이나 민하윤을 초대했다.[곧 연말이라 일이 많아요. 시간 내기 힘들 것 같아요.]민하윤은 수화를 하다가 멈추고 주머니 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메모장에 글을 적어서 보여줬다.[나는 사교 같은 거 잘 못해요. 그리고 그런 자리 좋아하지도 않아요.]하도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민하윤의 앞을 막아서면서 또박또박 말했다.[하지만 난 여자 파트너가 필요해.]민하윤은 시선을 내려뜨렸다.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민하윤은 긴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하도진에게 휴대전화 화면을 보여주었다.[도진 씨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잖아요. 굳이 저일 필요가 없잖아요.]민하윤은 입술을 살짝 깨물면서 고집을 부렸다.하도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민하윤을 바라보다가 그녀의 손목을 힘주어 쥐었다.“왜 그래? 왜 또 화가 난 거야?”민하윤은 고개를 돌리며 수화를 했다.[화 안 났어요.]하도진의 미간이 더욱 찡그려졌다. 그는 그것을 알아보았다.“나는 이렇게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잠드는 걸 싫어해. 내가 뭘 잘못했어? 대체 뭐에 화가 난 거야?”하도진은 민하윤의 손목을 힘주어 잡아당겨 그녀를 품에 안더니 민하윤을 내려보며 말했다.“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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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하도진은 민하윤을 침대 위로 쓰러뜨린 뒤 그녀의 몸 위로 올라탔다. 그의 뜨거운 숨결에 민하윤은 바짝 긴장했다.“넌 항상 이래. 얼음처럼 차갑지. 모든 걸 마음속에 감추고만 있고 얘기하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하도진은 저도 모르게 입을 맞추었다. 모든 입맞춤이 조심스러우면서도 다정했다. 분위기는 점점 더 무르익었고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 야릇함이 느껴졌다. 두 사람은 숨을 헐떡이며 미친 듯이 뛰는 서로의 심장 박동을 느꼈다.그러다 갑자기 민하윤의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 하도진은 한 손으로 몸을 지탱하며 민하윤의 휴대전화를 힐금 보더니 비아냥댔다.“진짜 부지런하네.”흥미를 잃은 하도진은 짜증 난 얼굴로 자신의 아래서 눈물을 흘리는 민하윤을 바라보았다.진주알 같은 눈물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고요한 밤, 민하윤은 울먹이지도, 흐느끼지도 않고 그저 소리 없이 어깨만 작게 들썩일 뿐이었다.하도진은 일어나서 문을 열고 나갔다. 민하윤은 구석에서 몸을 웅크린 채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 한참 뒤, 벨 소리가 드디어 멈췄다.방 안은 다시 적막해졌다. 눈가가 쓰라렸던 민하윤은 애처로운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다가 이따금 눈을 깜빡였다. 속눈썹에 매달린 눈물방울이 맑고 투명했다.민하윤은 객실로 돌아갈 힘이 없었다. 어차피 하도진은 오늘 밤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민하윤은 하도진의 침대에 누워 하도진의 향이 가득 느껴지는 이불을 덮은 채로 잠이 들었다.다음 날 아침, 임형섭이 다시 전화를 걸었고 민하윤은 벨 소리에 꿈에서 깼다.민하윤은 잠결에 통화 버튼을 누르고 휴대전화를 귓가에 가져다 댔다. 임형섭은 뭔가 망설여지는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하윤아, 너 괜찮아? 왜 답장 안 했어? 걱정되게.”하씨 가문의 제사 때문에 민하윤은 이틀 휴가를 냈다. 그동안 그녀는 업무와 관련된 문자에 답장을 보내지 못했고 심지어 임형섭의 일상적인 안부에도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임형섭이 걱정한 이유가 있었다.민하윤은 마음이 따뜻해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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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그것은 한 술집 룸 안의 CCTV 영상이었다. 비록 화질이 좋지 않고 사람들 얼굴에 전부 모자이크가 사용되었지만 민하윤은 하도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민하윤은 영상을 재생했다. 시끄러운 잡음과 함께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전부 변조된 상태였다.민하윤은 그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보았다. 손톱이 손바닥을 깊게 파고 들어가고 나서야 그녀는 뒤늦게 통증을 느꼈다.사회면에 실린 기사라 아래 댓글 창에서 여러 가지 의견이 충돌했다. 비판하는 이도 있고, 칭찬하는 이도 있었으며, 어그로를 끄는 이도 있었다. 그중 하도진을 매우 칭찬하는 댓글이 민하윤의 시야에 들어왔다.[비록 이 영상에서는 얼굴에 모자이크 처리가 돼 있고 음성 변조도 돼 있지만 저는 이 영상의 두 사람을 알아요. 저랑 같은 고등학교에 다닌 1년 선배거든요. 두 분은 모두가 부러워하던 커플이었고 오랫동안 사귀었어요. 몇 년 전 제가 마지막으로 들은 두 분 소식에 따르면 여자는 피아노 때문에 유학하러 가려고 했고 가문의 후계자인 남자는 국내에서의 모든 걸 포기하고 여자를 따라 해외로 떠났어요. 그런데 지금도 계속 만날 줄은 몰랐네요. 사실 두 분은 집안 차이가 심해요. 여자 쪽은 현대판 신데렐라라고 할 수 있죠. 다들 너무 반감을 품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반전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솔직히 얘기해서 남자 쪽은 돈도 많고 지위도 높아서 자신의 손으로 저 사람들을 직접 처리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그런데도 저런 걸 보면 진심으로 여자를 사랑하는 거겠죠.]그 댓글의 내용 중 대부분이 진실이었다. 민하윤이 아는 바에 의하면 고은율의 엄마는 하씨 가문의 가정부였고 두 사람이 고등학교 친구인 것도 맞았으며 졸업한 뒤 오랫동안 사귄 것도 맞았다.민하윤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이렇게 쉽게 행복이 찾아올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이렇게 훌륭한 남자가 그녀를 좋아하는 황당한 일이 일어날 리가 없었다. 하도진이 아무리 침대 위에서 달콤한 말을 늘어놓는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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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민하윤은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여러 차례 휴대전화 잠금을 해제하며 대화창을 열었다. 그들의 대화는 아주 오래전에 멈춰 있었다.민하윤은 문자로 하도진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을 용기가 없어 대화창을 끄고 인터넷으로 에스티와 관련된 최신 기사를 검색했다.포털사이트의 인기 기사 중 하나가 민하윤의 이목을 끌었다.[피아니스트 고은율, 소속사의 파렴치한 행위를 폭로하며 에스티 대표 폭행 사건 해명.]민하윤은 서둘러 검색어를 클릭했고 이내 고은율이 SNS에 올린 게시물을 보게 되었다. 고은율은 당시 상황을 정리해서 올렸다.고은율은 말을 조리 있게 잘했다. 그녀는 겨우 몇백 자로 여론을 바꾸었고 자신이 일하면서 당한 불공정한 대우와 성추행을 폭로했다. 그리고 하도진은 자신을 구하려다가 그들과 싸우게 된 것이라고 두둔했다.고은율은 똑똑한 사람이라 마지막에 이런 글을 적었다.[현재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CCTV 영상은 악의적으로 편집된 것입니다. 그전에 저는 30분간 상대방의 강요에 억지로 술을 마셔야 했고 협박과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저는 저를 도와주고 구해준 분이 악의적으로 편집된 영상 때문에 여론의 몰매를 맞는 것은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그분에게는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그리고 또 불안한 마음도 있습니다. 저는 최대한 빨리 조사가 끝나 정의가 구현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고은율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제 막 중소 기획사와 계약을 체결했고 제대로 된 연주회도 한 번 열지 못했으며 SNS 팔로워 수도 아주 적었다.그러나 그 게시글과 에스티 대표 폭행 사건이 맞물리면서 순식간에 팔로워가 십만 명이 넘었고 그 게시글의 조회수와 좋아요 수도 계속하여 상승했다.일부 공식 계정과 언론에서는 고은율의 게시물을 공유했고 여론은 계속 바뀌었다.같은 시각, 에스티 홍보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겨우 몇 분 만에 여론이 완전히 뒤바뀌었다.이때 임형섭에게서 문자가 왔다.[좋은 소식이 있어. 에스티 주가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어.]택시는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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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전상훈은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민하윤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었다. 민하윤은 혹시라도 들키게 될까 봐 불안해했다.“민하윤 씨.”전상훈의 목소리에 민하윤은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고개를 번쩍 들며 그를 바라보았다.“이거 떨어뜨리셨어요.”전상훈은 조금 전 바닥에 떨어진 서류를 주우면서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민하윤을 바라보았다.민하윤은 감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뒤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점을 발견할까 봐 황급히 자신의 물건들을 챙겼다. “하윤아, 잠시 뒤에 회식에 갈 때 내 차 타.”임형섭은 민하윤이 들고 있던 가방과 서류를 대신 들면서 다정하게 말했다.옆에 있던 사람들은 일부러 호들갑을 떨었고 한 젊은 여직원이 용기를 내어 물었다.“두 분 혹시 제가 상상하는 그런 사이이신 건가요?”민하윤은 손을 저으며 부인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이 오해할까 봐 수화로 설명했다.[저희는 그냥 친한 선후배 사이예요.]임형섭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수화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뿐이었다. 민하윤이 다급히 자신과의 관계를 부정하자 임형섭은 저도 모르게 기분이 나빠졌다.그들은 은행 근처에 있는 일식집에서 회식하기로 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그들은 가게 뒤편에 있는 룸으로 향했고 다들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었다.민하윤은 가장 뒤에서 따라가며 정신이 딴 데 팔린 채로 휴대전화만 쳐다봤다. 인터넷 여론을 확인해 보니 다들 하도진의 편을 들었다.어젯밤 하도진은 화를 내며 떠난 뒤로 그녀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아마 지금은 고은율의 곁에서 그녀를 위로해 주고 있을 것이다.민하윤은 생각에 잠겨 있느라 발 아래 자갈을 발견하지 못하고 중심을 잃고 앞으로 쓰러지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큰 손이 그녀를 잡아주었다.“조심해.”임형섭은 조금 당황했다. 기민한 감각을 지닌 그는 민하윤이 오늘 기분이 좋지 않고, 계속 우울해하면서 집중하지 못한다는 걸 빠르게 눈치챘다.[감사합니다.]뒤에 있던 진호영이 그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는 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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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두 분 사이에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는데 카톡이 있을 리가 없죠. 아까 프로필 사진이 좀 눈에 익어서 제가 착각했나 봐요. 서 비서님이 예전에 저랑 업무 때문에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봤던 하 대표님 프로필 사진이 그거였거든요.”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동의했고 이내 누군가 화제를 돌렸다. 민하윤은 아무로 눈치채지 못했을 때 빠르게 답장을 보냈다.[야근 중이에요.]하도진은 그 문자를 본 순간 화가 나서 헛웃음이 터졌다. 그는 휴대전화를 옆에 던져놓은 뒤 일어나서 룸 쪽으로 걸어갔다.“어디 가는 거야? 표정이 왜 저렇게 심각해? 고은율한테 무슨 일 생긴 거야?”구준오가 술을 새로 따면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하도진의 자리에 놓여있는 책을 바라보았다.“수화? 갑자기 왜 이런 거에 관심이 생겼대? 심지어 과외 선생님까지 모셔서 수업 듣는다면서?”진호영이 히죽 웃으면서 책을 펼치며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전부 형수님 때문이지. 수화 배워서 형수님하고 대화하려고.”구준오는 혀를 차면서 하도진이 떠난 방향을 턱짓으로 가리켰다.“지금은 어디 가는 거야? 뭐 하러 가는 거야?”“형수님이 답장을 안 했나 보지. 아까 형수님이 다른 남자랑 같이 있더라고. 게다가 둘이 딱 붙어 있는데 엄청 친해 보였어.”진호영은 눈을 찡긋거리면서 말했다.구준오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하도진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쟤 내가 알던 하도진 맞아? 요즘 여론 때문에 나는 도진이가 여전히 고은율을 잊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주문을 마친 뒤 누군가 진실 게임을 하자고 했고 민하윤은 딱히 관심이 없어서 핑계를 대며 빠져나왔다.민하윤은 휴대전화를 손에 든 채로 하도진의 답장을 기다렸다. 생각에 잠긴 탓에 그녀는 실수로 코너를 돌다가 누군가와 마주쳤다.갑자기 힘 있는 큰 손이 민하윤을 잡아당겼고 민하윤은 남자의 단단한 가슴팍에 안기게 되었다.익숙하면서도 시원한 우드 향이 느껴졌다. 바로 하도진이었다.민하윤은 고개를 드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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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하도진은 나른한 자태로 의자에 몸을 기대면서 눈을 감았다.“뭘 무서워 해? 법적으로 내 아내는 너지 고은율이 아니야. 게다가 우리 할머니는 너를 인정해 주셨어. 다른 사람들은 절대 그 자리를 빼앗지 못해.”민하윤은 그의 말에 어느 정도의 악의가 담겨있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결국 민하윤은 입술을 살짝 깨물면서 근심 어린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별장은 불이 켜져 있어 환했고 현관에는 슬리퍼 두 쌍이 놓여 있었으며 집 안에서는 음식 향기가 풍겼다. 문을 열자 모든 것이 평화롭게만 느껴졌다.“앞으로 아주머니가 삼시 세끼 다 챙겨주실 거고 청소도 해주실 거야. 앞으로는 익숙해져야 해.”하도진은 말을 마친 뒤 민하윤을 홀로 1층에 내버려두고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사모님, 저녁 준비됐으니 손 씻고 와서 드세요.”민하윤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일식집에서는 화려한 메뉴판을 봐도 입맛이 전혀 없었다. 전부 스시나 회 같은 해산물이었기 때문이다.식탁 위에는 민하윤이 좋아하는 것로 가득했다. 새로 온 가정부 나지혜는 미리 공부라도 하고 온 건지 민하윤의 입맛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사모님, 대표님도 저녁 식사를 하시라고 전할까요?”민하윤은 고개를 기울이며 잠깐 고민하다가 단호히 고개를 저은 뒤 수화를 사용했다.[괜찮아요. 배 안 고프대요.]하도진은 매일 할 일이 없으면 그녀에게 시비를 걸었기에 민하윤은 그와 함께 식사하고 싶지 않았다. 괜히 입맛만 떨어질 것이다.하도진은 책상 앞에 긴 다리를 꼬고 앉아서 노트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CCTV에 민하윤이 수화를 하는 모습이 비쳤다.하도진은 민하윤의 수화를 하나하나 번역했다.“괜찮아요... 배... 안... 고프대요?”하도진은 화가 나서 헛웃음이 터졌다. 그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책상을 탁 치며 일어났다. 할머니는 민하윤이 착하다고 했지만 하도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민하윤은 깜짝 놀란 건지 눈이 동그래진 채 아래층으로 내려와서 식탁 앞에 앉는 하도진을 바라보았다. 나지혜는 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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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그 메뉴들은 전부 민하윤의 입맛에 맞춘 것이었다.“전 배부르네요.”하도진은 자리에서 일어난 뒤 무표정한 얼굴로 위층으로 올라갔다.민하윤은 여전히 차가운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는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하며 아주머니를 향해 수화를 했다.[저도 다 먹었어요. 치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나지혜는 민하윤의 뜻을 이해하고 음식들을 전부 주방으로 치운 뒤 남은 것들을 처리했다.나지혜는 입주형 가사도우미였지만 매일 밤 열 시 이후로는 최대한 방에만 있어야 한다는 불문율을 지켜야 했다.하도진과 민하윤은 신혼부부였고 저녁에는 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은 나지혜가 정식으로 채용된 뒤 하도진 곁의 서명인 비서가 특별히 그녀에게 전달한 사항이었다.민하윤은 침실로 돌아간 뒤 습관적으로 갈아입을 옷을 챙겨서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기를 트는 순간 물소리 때문에 방 안의 발소리가 묻혔다.민하윤은 아직 머리를 채 말리지 못했는데 방 안에서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민하윤은 미간을 찌푸리며 간단히 타월로 젖은 머리를 닦은 뒤 밖으로 나갔다. 하도진이 네이비색 가운을 입고 통유리 앞에 서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하도진이 제누오어를 해서 민하윤은 통화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두 사람은 지금까지 계속 따로 잤다. 그러나 하도진은 신체 건강한 남성이었고 필요한 바가 있을 때면 객실로 찾아왔다.등 뒤에 사람이 있는 것을 눈치챈 건지 하도진은 황급히 전화를 끊고 몸을 돌려 민하윤을 바라보았다.방 안 조명은 살짝 어두웠고 민하윤은 스탠드 하나만 켜놓고 있었다. 창밖의 네온사인 때문에 밖이 반짝반짝했다. 명원의 밤은 고즈넉하면서도 아름다웠다. 높은 빌딩, 반짝거리는 호수, 쉴 새 없이 오가는 차량...하도진은 빛을 빌려 눈앞의 민하윤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면서 민하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낮으면서도 매혹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이리 와.”민하윤은 잠시 망설이다가 하도진을 향해 걸어갔다. 슬리퍼와 바닥이 마찰하면서 생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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