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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Chapters

제171화

고은율은 차갑게 웃으면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울먹이던 여자의 눈에 살기가 맴돌았다.“도진아, 내가 너를 배신했다고 하지 마. 네가 나한테 결혼하자고 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야. 나보다 네 이익이 더 먼저였고 나한테 상처를 주었잖아.”하도진은 고개를 들고 눈앞의 청순한 여자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두 눈은 더 이상 반짝이지 않았고 독기가 서려 있었다.“늦었으니 일찍 쉬어. 내일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면 알겠지.”그는 외투를 집어 들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적당히 하고 자.”고은율은 하도진의 마음을 되돌리지 못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녀는 온몸을 덜덜 떨면서 굳게 닫힌 문을 쳐다보았다.“도진아, 나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어. 네가 그 벙어리를 이토록 사랑할 줄 몰랐거든.”다음 날 아침, 따스한 햇살이 병실에 내려앉았다. 잠에서 깬 민하윤은 창밖을 내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명원의 겨울은 늘 추웠는데 오늘따라 날씨가 유난히 좋았다.나지혜는 분주히 움직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을 만들어서 식탁에 올려놓았다.“사모님, 외투를 걸치세요.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으니 조금만 기다려줘요.”민하윤은 넋을 잃은 채 높게 늘어선 건물과 길을 가득 채운 차량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 쪽으로 걸어가면서 미소를 지었다.[맛있어 보여요. 아주머니, 잘 먹을게요.]“사모님, 많이 드세요. 고양이는 며칠 사이에 살이 올라서 더 귀여워졌어요. 퇴원한 후에 고양이를 별장에 데리고 갈게요.”그 말에 민하윤은 환하게 웃더니 수어로 고마움을 전했다.[정말 감사해요.]“사모님, 대표님께서 좋은 병실을 마련해주었네요. 병실이 아니라 집인 줄 알았어요.”나지혜는 따뜻한 죽을 그릇에 담아서 가지고 왔다. 향긋한 냄새가 방 안에 퍼졌고 저도 모르게 군침이 돌았다.민하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죽을 먹었다. 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나지혜는 미소를 지은 채 밥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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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화

나지혜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조금 전에 아침을 먹었는데 괜찮을까요? 혈액 검사를 하는 줄 알았다면 먹지 않았을 거예요.”“일반적인 혈액 검사를 할 때는 밥을 먹어도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세요.”간호사는 체온계로 민하윤의 체온을 재더니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아직 미열이 있네요. 무리하지 마시고 누워서 푹 쉬세요.”“미리 가서 등기하거나 예약해야 하나요?”나지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러자 간호사는 능숙하게 링거를 꽂으면서 말했다.“주치의 선생님께서 예약하셨으니 시간에 맞춰 내려가면 돼요.”나지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간호사가 나간 뒤, 그녀는 민하윤에게 이불을 덮어주었고 메모장에 뭐라고 적었다.[4층에서 채혈하고 2층에서 폐 CT를 찍어야 한다]“제가 대표님께 연락해서 말씀드릴까요?”그러자 민하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그럴 필요 없어요. 며칠 동안 바쁠 테니 이런 일로 연락하지 마세요. 별일 아닌 걸로 유난 떠는 것 같잖아요.]“하지만 사모님은 대표님의 아내예요. 대표님은 남편으로서 사모님의 상태를 알아야 하고 보살펴야죠. 아내가 무슨 검사를 받고 몸 상태가 어떤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나지혜는 뭐라고 더 말하려 했지만 도로 삼켰다. 외부인이 부부 사이에 끼어들어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었다.링거를 다 맞은 후, 간호사는 빈 링거 통을 가지고 나갔다.나지혜는 카디건을 민하윤에게 건네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녀는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사모님, 대표님께 그래도 말씀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퇴원한 후에 연락해도 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민하윤은 더 이상 이 화제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4층에 도착한 뒤, 두 사람은 천천히 걸어 나왔다.원래 피부가 하얀 민하윤은 앓아누운 탓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오늘따라 채혈하는 사람이 많아서 한참 동안 기다려야만 했다.나지혜는 가방에서 마스크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요즘 감기가 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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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3화

민하윤은 그들과 눈이 마주칠까 봐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하도진과 고은율의 뒷모습이 사라진 뒤에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축 늘어진 풍선처럼 의자에 기대 생각에 잠겼다.이때 나지혜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녀는 다급히 달려오면서 잔뜩 긴장한 채 말했다.“사모님, 괜찮으세요? 계속 불렀는데 대답이 없으셔서 깜짝 놀랐어요.”나지혜는 민하윤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자 민하윤은 식은땀을 흘리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애써 미소를 짓더니 손을 내저었다.“사모님이 채혈할 순서가 되었으니 얼른 가요.”나지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민하윤을 부축하고 채혈실로 향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끼어든 것을 보고 화가 솟구쳐 올랐다.그녀는 눈앞의 남녀를 노려보면서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저기요! 번호표를 뽑았으면 순서대로 채혈해야 할 거 아니에요. 그쪽만 아픈 줄 알아요? 이럴 거면 왜 번호표를 뽑겠어요?”민하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나지혜는 삿대질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불안한 예감이 든 민하윤은 고개를 들자마자 뒤돌아선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익숙한 분위기, 그윽한 두 눈에 담긴 의문, 분노와 알 수 없는 감정...하도진은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미간을 찌푸린 채 노려보았다.채혈하는 사람이 많아서 번호표를 뽑고도 한참 동안 기다렸다. 나지혜가 민하윤을 부축하고 오는 사이에 젊은 남녀가 채혈실 입구 쪽에 서 있었다.그녀는 화가 나서 마스크를 낀 남자가 누구인지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양심이 있으면 새치기하지 마세요! 젊은 사람들이 뻔뻔스럽기 그지없네요.”나지혜는 씩씩거리면서 채혈하고 있는 여자를 노려보았다.“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환자를 보고도 새치기하고 싶었어요? 부끄러운 줄 알면 비켜야지, 떡하니 앉아 있는 꼴을 보니 우습네요.”팔에 하얀색 패딩을 걸치고 있는 하도진은 앉아 있는 여자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리고 민하윤을 뚫어져라 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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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화

깜짝 놀란 나지혜는 넋을 잃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눈앞의 남자가 하도진인 줄 알았으면 절대 소란을 피우지 않았을 것이다.“열이 나면 주치의를 만나러 가. 입원해서 푹 쉬면 될 텐데 굳이 이런 식으로 내 관심을 받으려는 이유가 뭐야? 그만 연기하고 돌아가.”민하윤은 온몸이 덜덜 떨렸다.의사의 말에 의하면 인간의 감각기관은 서로 통한다고 했다. 그녀는 말할 수 없기에 다른 감각 기관이 더 발달했다.하도진이 뱉은 말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다. 민하윤은 통증이 귀에서 온몸으로 퍼지는 것을 느꼈다.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남편의 관심을 받으려고 이상한 행동을 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하도진은 고은율을 보호하고 민하윤을 질타했다. 그의 눈에는 이 모든 게 관심을 끄는 것처럼 보였을까?민하윤은 억울하고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살에 깊게 박히면서 통증이 밀려왔지만 내색하지 않고 씁쓸하게 웃었다.주위 사람들이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는 소리, 수군거리는 소리, 하도진의 차가운 말과 나지혜의 거친 숨소리가 그녀를 옥죄어왔다.시끄러운 소리가 귀 안으로 흘러들면서 마음을 어지럽혔다.“대표님, 관심을 받으려고 그런 게 아니라 주치의 선생님이 검사를...”하도진은 나지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뒤돌아섰다. 그는 하얀색 패딩을 입고 얼굴을 가린 고은율을 부축하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첫 번째, 저는 전문의 진찰을 예약했고 우선 진찰 비용을 냈어요. 두 번째, 여러 채혈실 중 이 채혈실에 마침 환자가 없었어요. 또한 이 채혈실은 병원의 특수한 환자와 우선 진찰 비용을 낸 환자들이 우선으로 채혈하는 곳이에요. 아무도 없는 채혈실에 들어간 게 새치기라고요? 마땅한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하도진이 주위를 둘러보자 사진을 찍던 사람들은 압도감에 눌려 천천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하도진은 고은율의 손을 잡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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