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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한다고 말해줘: Chapter 81 - Chapter 90

100 Chapters

제81화

민하윤은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침대 끝 쪽에 있는 소파에 무기력하게 누워 있었다.민하윤은 오랫동안 머리 위 샹들리에를 바라보다가 눈이 시려 손을 들어 눈을 비볐다. 조명이 가려지며 그녀의 위로 그림자가 졌다.벌떡 일어나 앉은 민하윤은 두 손으로 몸을 지탱한 채로 눈을 크게 뜨고 눈앞의 하도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두려움과 경계심이 가득했다.하도진은 민하윤의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한 손으로는 민하윤의 머리 옆을 짚었다. 그는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서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민하윤은 손으로 옷깃 쪽을 가리면서 경계하는 눈빛으로 하도진을 바라보았다. 민하윤은 옷매무새가 흐트러졌고 머리가 헝클어졌다. 조금 전 차에서 내렸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하도진은 한 손으로 발버둥치던 민하윤의 발목을 잡더니 낮은 목소리로 민하윤을 달랬다.“가만히 있어.”민하윤은 피할 곳이 없었다. 하도진은 두 다리를 벌리고 그녀의 허리춤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하도진이 입을 맞추려고 하면 민하윤은 고개를 돌리며 피했다.하도진은 화가 난 얼굴로 민하윤을 노려보았으나 달리 방법이 없어 힘주어 민하윤의 턱을 쥐었다. 그는 몸을 숙이면서 민하윤의 손목을 잡은 뒤 억지로 민하윤의 손을 펴서 깍지를 꼈다.방안은 굉장히 따뜻했다. 하도진의 이마에 어느샌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고 그가 입고 있던 셔츠도 초라하게 몸에 들러붙었다. 하도진은 움직임을 멈추고 민하윤에게서 몸을 뗀 뒤 셔츠를 벗어 옆에 던져두었다.민하윤이 숨을 고르기도 전에 하도진이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민하윤은 말로 자신의 불만을 표현할 수가 없었기에 끊임없이 버둥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도진은 전혀 영향받지 않았다. 그는 민하윤을 안고 맨발로 러그 위를 걸으며 욕실 쪽으로 걸어갔다.하도진은 민하윤을 욕조에 내려놓았고 따뜻한 물이 그녀의 젖은 옷을 적셨다.[뭐 하려는 거예요?]민하윤은 수화를 하며 고집스럽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하도진을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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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뭘 보는 거예요!]민하윤은 수치심에 화를 냈다. 그녀는 하도진이 수화를 알지 못한다는 것조차 잊은 채 본능적으로 손으로 가슴팍을 가리켰다. 그 모습이 오히려 더 매혹적이었다.하도진의 입꼬리가 티 나지 않게 올라갔다. 그는 팔짱을 끼면서 아주 무례하게 말했다.“이제 와서 부끄러워하기에는 너무 늦은 거 아니야? 볼 거 다 봤고 만져보기까지 했는데.”‘정말 뻔뻔해!’민하윤은 이를 꽉 깨물면서 사나운 표정을 했다. 그녀는 속으로 하도진을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20분 줄게. 준비하고 내려와.”하도진은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마침 7시 15분이었다.민하윤은 꼼짝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몸을 가린 채로 하도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대치했다.결국 민하윤이 먼저 물러났다. 그녀는 평범한 직장인이라 일반인들의 고충 따위 알지 못하는 하도진과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그녀는 출근해야 했다.곧 연말이라 은행 업무가 배가 되어 다들 불만이 극에 달했다. 게다가 또 승진 심사 기간이라 작은 실수 하나도 허용되지 않았다.20분 뒤, 민하윤은 단정한 차림으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하도진은 긴 다리를 꼰 채로 신문을 읽고 있었고 옆에는 반쯤 마신 커피가 놓여 있었다.민하윤은 늘 그렇듯 정장을 입고 있었다. 흰색 셔츠에 네이비색 정장, 겉에는 검은색 캐시미어 코트, 그리고 하이힐까지.하도진은 민하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 그녀가 내려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긴 다리를 뻗으며 밖으로 걸어갔다. 민하윤은 비록 내키지는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 얌전히 밖으로 나갔다.그녀는 하도진의 뒤를 따르면서 속으로 그의 흉을 보다가 실수로 하도진의 넓고 단단한 등에 부딪쳤다. 민하윤은 아파서 코를 움켜쥐었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사모님, 차 키와 관련 서류입니다.”눈치가 빠른 서명인은 재빨리 민하윤에게 서류와 함께 흰색 차 키를 건넸다.민하윤은 그제야 별장 앞 길가에 흰색 벤츠가 서 있는 걸 발견했다.민하윤은 그것들을 건네받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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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운전석에 앉은 민하윤은 호화로운 차 내부를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았다.그 차는 8000만 원 정도였다. 돈 많은 사람들에게는 푼돈이겠지만 민하윤은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민희수가 성인이 되었을 때 민씨 가문 사람들은 민희수를 위해 억대 스포츠카를 사주었다. 진한 붉은색에 멋진 외관, 붉은색 가죽으로 된 내부...민하윤은 부러운 얼굴로 옆에 서서 민희수가 시승하던 모습을 지켜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 차를 만져보았다가 민희수에게 밀쳐졌다.“누가 허락도 없이 내 차를 만지래? 언니 이거 배상할 수 있어? 꼬락서니를 보니 세상 물정도 모를 것 같은데.”민희수는 거만한 표정으로 허리에 손을 올리며 민희진을 나무랐다.그 뒤로 민하윤은 민희수가 SNS에서 차 사진을 계속 올리며 자랑하는 걸 몇 번이나 보았었다. 별장 아래 차고에 있는 차들 중 반 이상이 민희수의 것이었다.억대 스포츠카, 차체가 굉장히 큰 최고급 SUV, 화려하게 개조된 레이싱 카, 한정판 맞춤 세단... 다양한 브랜드, 다양한 종류의 차가 있었다.민희수는 자주 친구들과 함께 비싼 차를 외출했다. 그들은 SNS에 늘 예쁜 사진을 찍어서 올렸다. 비싼 시계, 명품 백, 맞춤 제작된 옷이나 액세서리, 돈과 시간을 들여 관리한 얼굴...재벌가 딸들은 돈이 많아서 뭐든 할 수 있었다. 민하윤은 민희수처럼 타고난 귀티가 흐르지 않았다.가끔 민하윤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2만 원에 3장씩 하는 면 티셔츠에 청바지, 온몸에 입은 걸 다 더해도 4만 원이 넘지 않았다.심지어 민희수의 양말 하나보다 쌌다.민하윤은 허영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민씨 가문 사람들에게 단 한 번도 사랑을 받지 못한 것뿐이다.민희수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사랑받을 수 있고 선물을 받을 수 있었지만 민하윤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었다.하도진은 조용히 민하윤을 바라보았다. 민하윤의 고요한 얼굴 위로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느껴졌다. 차분히 시선을 내려뜨린 민하윤이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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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하도진에게 밤새 시달린 민하윤은 온몸이 욱신거리고 아팠다. 심지어 고도로 집중한 상태에서 차가 가장 많이 막히는 출퇴근 시간에 운전해야 했기에 정신적으로도 매우 지쳤다.민하윤은 손에 든 차 키를 흔들어 보았다. 해냈다는 생각에 사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차를 타고 안전히 목적지까지 도착했으니 말이다.하도진은 민하윤을 배려했다. 민하윤은 늘 앱으로 택시를 예약해서 출퇴근했었는데 그것은 그렇게 안전하지 않았다.낮에는 괜찮지만 가끔 늦은 시간에 낯선 남자가 운전하는 차를 타게 되면 깜짝 놀랄 때가 많았고, 그럴 때마다 두려움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면서 호흡이 가빠졌다.민하윤은 차 키를 가방 안에 숨겨둔 뒤 귀신에 홀린 듯 고개를 돌려 차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민하윤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번호판을 보니 1128이었다.그리고 민하윤의 생일은 11월 28일이었다.우연일까? 아니면 일부러 그런 것일까?민하윤은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하도진을 향한 그녀의 감정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 없고, 싫어하고 싶어도 싫어할 수 없었다.‘민하윤, 정신 차려. 나랑 도진 씨는 완전히 다른 세계 사람이야. 이 관계도 언젠가는 끝나게 돼 있어. 그러니까 빠져들지 마.’민하윤은 자신에게 경고했다.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코너를 돌 때 민하윤은 인사팀의 셀리나와 마주쳤다. 그녀는 못 본 척하려고 했으나 셀리나가 먼저 살갑게 말을 건넸다.“대리님, 정말 오랜만이네요? 어젯밤 잘 쉬지 못하신 건가요? 다크써클이 심하세요. 혹시 승진 때문에 야근하신 건가요? 정말 대단하세요. 언제 어디서나 자기 계발을 포기하지 않으시니 말이에요.”셀리나는 듣는 사람 기분 나쁘게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민하윤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셀리나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척했다.그러나 셀리나는 포기하지 않고 민하윤의 앞길을 가로막은 채로 계속 빈정댔다.“사람은 늘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어 하는 법이죠. 더 발전하려고 노력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셀리나는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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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서명인은 난감한 표정으로 안경을 치켜올리며 말했다.“대표님, 고은율 씨께서 대표님을 뵙고 싶다고 합니다. 그리고...”서명인이 우물쭈물하면서 말했다. 하도진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쌓여 있던 서류를 처리하다가 짜증을 내며 서명인을 재촉했다.“얘기해.”“고은율 씨께서 일 때문에 바쁘셔서 촬영 현장에 놀러 오실 시간이 없으시다면 직접 회사 사무실로 찾아오겠다고 하셨습니다.”서명인은 이를 악물고 고은율이 했던 말을 그대로 전했다.하도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움직임을 멈췄다. 하도진의 매서운 눈빛이 전전긍긍하는 서명인에게 닿았다.“세리 엔터는 새로 계약한 아티스트들에게 일거리도 안 주나 봐. 여기저기 돌아다닐 정도로 한가한 걸 보니 연기 말고 다른 일정은 없는 거야?”서명인은 곧바로 하도진의 의도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으나 속으로는 투덜댔다. 고은율과 하도진은 서로의 연락처가 있었다. 고은율이 하도진에게 문자를 굉장히 많이 보냈고 전화도 많이 걸었으나 하도진은 그녀의 연락을 완전히 무시했다.결국 고은율은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하여 하도진의 비서인 서명인까지 찾아왔다. 서명인은 하도진의 비서지, 대신 말을 전달해 주는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결국 서명인은 양쪽 눈치를 보면서 말을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서명인이 나가려고 하지 않자 하도진은 손을 들며 미간을 찌푸리면서 피곤한 얼굴로 물었다.“또 무슨 일 있어?”“오늘부터 회사 송년회 파티장을 발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올해는 상황이 조금 특별하잖아요. 사모님께서 다니시는 태유 은행이 저희 회사와 협력하게 되어서 태유 은행에도 파티장을 보냈습니다. 태유 은행에서 사람을 보내 저희 파티에 참석할 거예요.”서명인은 여전히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평소와 다르게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 망설였다.“할 말 있으면 그냥 해.”하도진이 짜증 난 목소리로 혀를 찼고 서류에 사인하는 속도도 점점 더 빨라졌다. 그의 인내심이 점점 닳고 있었다.“기획팀에서 조금 전 태유 은행 파티 참여 명단을 받으셨는데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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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하도진은 해외여행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눈을 빛냈다. 그는 갑자기 어떠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서명인은 말문이 트인 듯 들뜬 얼굴로 말했다.“저희 회사는 인본주의를 중요시하는 회사라 일반적인 상황에서 커플들은 유급 여행을 선택해요. 갑자기 파트너가 된 커플들 중에서 서로 마음이 맞는 커플이 있으면 함께 여행을 가죠. 물론 현금을 선택해서 반반 나눌 수도 있어요.”“그런 것들을 아주 잘 알고 있네. 관심이 많은가 봐?”하도진은 기분이 매우 좋아서 서명인에게 농담했고 서명인은 멋쩍은 얼굴로 작게 중얼댔다.“함께 여행 갈 생각이 없다고 해도, 대충 파트너를 찾아서 선물을 받고 현금을 나눠 가진다면 그것도 굉장히 좋은 일이잖아요.”서명인은 자신의 직무를 잊지 않았다. 그는 다시금 하도진의 의사를 물었다.“무도회 때 파트너로 삼고 싶으신 분이 있나요? 비록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지만 혹시 마음에 드는 분이 있으시다면 더 좋으니까요.”“난 이미 결혼한 몸인데 다른 여자와 껴안고 춤을 추는 건 적절치 않은 일이 아닐까?”하도진이 되물었다.하도진은 사실 마음에 둔 파트너가 있었으나 일부러 빙빙 돌려 말하면서 서명인에게 암시했다.물론 서명인은 하도진의 의도를 알지 못했다. 그는 진지하게 고민한 뒤 적당한 후보를 얘기했다.“그렇다면 채 선생님은 어떻습니까? 불필요한 루머가 생길 일도 없고 우리 에스티가 전통문화를 중요시한다는 이미지도 강조할 수 있으니까요.”하도진은 진지한 얼굴로 한참을 고민했다. 서명인이 말한 채 선생님은 전통 자수 문화의 전통을 유지하는 분이자 에스티의 수석 디자이너인 채경윤이었다.하도진은 채경윤을 만난 적이 있었다. 채경윤은 하도진의 할머니와 비슷한 나이대로 백발이 성성하고 지팡이를 짚지 않으면 걷기조차 힘들었다.하도진은 이를 악물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나이 지긋한 채 선생님께서 지팡이를 짚으며 나와 춤을 추기를 바라는 거야? 그게 과연 우리 회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설마 나와 채 선생님이 올해 가장 잘 어울리는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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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테이블 위에 놓았던 휴대전화가 진동하자 낮잠을 자고 있던 민하윤이 잠에서 깼다. 메일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메일을 클릭해 보자 글이 짧게 적혀 있었다. 내용을 확인한 뒤 민하윤은 잠기운 가득한 눈을 번쩍 떴다. 그녀에게 왜 에스티 파티 초대장이 보내진 것일까?민하윤은 메일을 보낸 사람을 확인해 봤다. 태유 은행이었다.민하윤은 미간을 찌푸리며 임형섭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문자로 물어봐야 할지 말지 고민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세 번 노크한 뒤 소리가 멈췄다. 이내 이남주가 아주 큰 택배 하나가 사무실 책상 위에 놓였다.“대리님, 퀵 왔어요.”[고마워요.]민하윤은 미소 띤 얼굴로 오른손을 펴서 왼손등 위에 대고 두 번 두드렸다. 그것은 고맙다는 의미였다. 민하윤은 그 수화를 자주 했기에 이남주는 그걸 알아볼 수 있었다.“별말씀을요.”이남주는 눈을 깜빡이다가 눈치 빠르게 사무실에서 나가 민하윤이 혼자 있게 해주었다.민하윤은 택배를 뜯어 보았다. 포장이 아주 화려했는데 열어 보니 안에 드레스가 들어 있었다. 순백의 오프숄더 실크 롱드레스는 A라인으로 되어 있었고 허리선이 예쁘게 잘 잡혀 있었다. 그리고 넥라인에는 흰 꽃 자수가 포인트로 되어 있었는데 아주 사랑스러웠다.민하윤은 그 드레스를 자신의 몸에 대어 보았다. 사이즈가 딱 맞았다. 이때 임형섭의 문자가 마침 도착했다.[드레스 마음에 들어?]임형섭이 그녀의 사이즈를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민하윤은 조금 의아했으나 곧 이해했다. 태유 은행에서는 매년 직원들의 키와 체중, 구체적인 사이즈를 조사하여 똑같은 정장을 맞춘다.그러니 임형섭이 그녀의 사이즈를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민하윤은 입꼬리를 올리며 공손하게 고맙다는 문자를 보냈다.답장을 확인한 임형섭은 민하윤이 두 손 모아 허리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하는 이모티콘을 보낸 걸 보고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잠깐 고민하다가 답장을 보냈다.[이번에는 은행장님께서 직접 우리 두 명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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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나지혜는 자연스럽게 민하윤의 손에서 박스를 건네받았다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꽤 무겁네요. 안에 뭐가 들어있는 거예요?”민하윤은 혹시라도 나지혜가 놀랄까 봐 서둘러 박스를 들더니 안에 보물이라도 들어있는 것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박스를 열었다.고양이는 기운이 전혀 없는지 박스 안에 꼼짝하지 않고 엎드려 있었다. 아주 작게 오르내리는 몸과, 가끔 들려오는 미약한 울음소리만이 고양이가 아직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사모님, 이 고양이는 어디서 주우신 거예요? 방금 태어난 새끼 고양이 같은데 어서 분유를 먹여야겠어요. 너무 기운이 없어 보이네요.”민하윤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예상대로 나지혜는 타고난 사육사였다. 그녀는 사람을 살찌우는데도 능했으니 기운 없는 고양이도 잘 보살필 것이다.민하윤은 드레스를 소파 위에 놓은 뒤 조심스럽게 고양이를 러그 위에 내려놓았다.별장은 난방이 잘 됐다. 고양이는 밖에서 춥고 배고팠을 것이다. 12월의 명원은 혹독할 정도로 추웠기에 조금만 늦었어도 고양이는 죽었을 것이다.나지혜는 어디선가 일회용 주사기를 찾아서 가져왔다. 그녀는 따끈따끈한 물에 분유를 탄 뒤 능숙하게 고양이를 안고 마치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듯 바늘 없는 주사기로 고양이에게 분유를 먹였다.고양이는 핑크색의 작은 입을 오물거리면서 혀로 주사기에서 나오는 분유를 열심히 핥아먹었다. 주사기 안에 있던 분유가 조금씩 줄어들었다.두 사람은 고양이를 둘러싸고 한참을 바삐 움직였다. 잠시 뒤 고양이는 겨우 기운을 조금 차리고 힘 있게 야옹야옹 울었다.소리가 조금 전처럼 무기력하지 않았다. 나지혜는 경험이 많아 보였다. 그녀는 고양이의 배를 살짝 눌러본 뒤 말했다.“더 먹이면 안 되겠어요. 방금 태어난 고양이는 배고픈지, 배부른지 구분을 못 하거든요. 일단 저는 박스를 하나 가져올게요. 고양이가 아무 데나 똥오줌을 누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사모님, 이 고양이를 입양하실 건가요? 대표님은 알고 계시나요? 제가 괜한 소리를 하는 걸 수도 있지만 이 고양이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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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민하윤은 수건으로 새끼 고양이를 조심스럽게 감싸안았다. 방금 태어난 새끼 고양이는 무슨 끔찍한 일이라도 당한 것처럼 굉장히 겁이 많았다.고양이는 물이 살짝 튄 것뿐인데도 본능적으로 허우적대면서 물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고양이가 두 다리를 힘껏 움직이는 탓에 수면 위에 파문이 일렁였다.민하윤은 수건으로 감싼 고양이를 세면대 위에 올려놓은 뒤 헤어드라이어를 켜서 온도를 확인하고 고양이의 몸을 말려주었다.민하윤이 조심스럽게 움직이려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수건에 몸이 돌돌 말린 고양이는 흠칫하면서 몸을 떨었다. 헤어드라이어의 소리에 놀란 것인지 고양이는 작은 목소리로 울어댔다. 그 소리가 너무도 작아서 듣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렸다.민하윤은 고양이의 젖은 털을 꼼꼼히 말려준 뒤 다시 서랍 안에서 깨끗한 수건을 꺼냈고, 그 수건으로 고양이를 감싸안고 욕실에서 나왔다.민하윤은 종이 박스를 하나 가져와 안에 두터운 담요를 깐 뒤 조심스럽게 고양이를 박스 안에 넣었다.들릴 듯 말 듯한 작은 울음소리에 민하윤은 가슴이 간질거려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 하나를 뻗어 고양이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사모님... 식사하세요.”나지혜의 목소리가 아래층에서 들려왔다. 민하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뒤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2층에서 내려가자 식탁 앞에 각종 요리가 놓인 게 보였다. 민하윤은 식탁 앞에 아무도 없자 그제야 안심했다. 민하윤은 하도진이 집에 돌아온 줄 알았다.나지혜는 민하윤의 마음을 읽은 듯이 마지막으로 국을 식탁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대표님께서 방금 전화해 주셨어요. 저녁에는 집에서 식사하시지 않는다네요.”민하윤은 처음엔 살짝 놀랐으나 이내 안도했다. 그녀는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었는데 하도진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니 모든 걱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기분이 좋아졌다고 해도 많이 먹지 못하는 사람이 갑자기 많이 먹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빠르게 식사를 마친 민하윤은 침실로 돌아가 주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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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양측의 협력은 겉보기에 양측 모두에게 이익인 것 같지만 사실상 에스티가 일방적으로 은행에 실적을 안겨주는 셈이었다. 마침 이 엄청난 콩고물이 민하윤의 앞에 떨어졌다. 민하윤은 키보드를 더는 두드리지 못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무서운 생각을 했다.하도진은 일부러 수많은 은행 중 태유 은행을 선택한 것일까?정확히 얘기하자면 하도진은 그녀를 선택한 것이다. 민하윤이 태유 은행 신용대출팀 소속이었기에 태유 은행이 계약을 따낼 수 있던 것이다.그런 생각이 한번 떠오르자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민하윤은 온몸이 굳어지고 두 손이 저릿해졌다. 하도진은 대체 무엇을 원했던 걸까?하도진은 민하윤을 혐오하기도 모자랄 텐데 그녀를 위해 태유 은행과 계약할 리가 없었다. 하도진은 사업가였고 그가 태유 은행을 선택한 것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일 것이다.민하윤은 자신을 설득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녀가 깊이 생각하기도 전에 아래층에서 경적이 울리며 차의 밝은 불빛이 커튼 너머 흰 벽에 비쳤다.민하윤은 본능적으로 불을 끄고 조심스럽게 커튼을 살짝 들어 몰래 검은색의 코트를 입고 차에서 내리는 하도진을 훔쳐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하도진이 갑자기 고개를 들며 민하윤의 침실 쪽을 힐끔 보았다.민하윤은 황급히 커튼을 내린 뒤 잠옷을 입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민하윤은 숨을 크게 쉴 수조차 없었다. 그녀는 바짝 긴장한 채로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별장 곳곳에 깔린 카펫 때문에 발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잠시 뒤, 철컥 소리와 함께 누군가 민하윤의 방문을 열었고 그 탓에 복도의 빛이 어두운 방 안으로 들어왔다. 하도진은 온몸에서 술 냄새를 풍겼고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연기하지 마. 안 자는 거 다 아니까. 아까 아래층에서 봤을 때 여기 불이 켜져 있었거든.”민하윤은 이불을 뒤집어쓴 채 하도진을 등지고 있었으나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거친 숨소리를 모두 들었다.갑자기 침대 한구석이 푹 꺼졌다. 하도진은 민하윤의 곁에 누웠고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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