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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한다고 말해줘: Chapter 761 - Chapter 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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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1화

2층 전망룸에 있던 주주들도 자연스럽게 무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그때 잔잔하고 낮은 멜로디가 흐르기 시작했다.예대 출신답게 신인 멤버들의 목소리는 하나같이 맑고 부드러웠다.“우리 사랑은 네가 스쳐 지나간 풍경 같고 계속 이어져도 네 발걸음은 날 위해 멈추지 않아. 내가 주는 사랑은 늘 조용하기만 하고...”하도진은 차가운 대리석 난간에 팔을 짚은 채 고개를 숙여 스포트라이트 아래의 여자들을 내려다봤다.하지만 하도진의 눈빛은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하 대표님, 이번에 회사에서 새로 뽑은 신인들입니다. 나이대도 비슷하고 얼마 전에 오디션 프로그램에 내보내 얼굴을 알린 뒤 걸그룹으로 데뷔시켰습니다.”세리 엔터의 장휘재가 얼른 일어나 하도진에게 소개했고 표정에는 비위를 맞추려는 기색이 역력했다.“그래요?”하도진이 무심하게 말했다.“목소리는 괜찮은데 선곡이 별로네요.”그 말에 장휘재는 순간 멈칫했다.그 말에 다른 뜻이 있다는 걸 바로 알아채지 못했다.“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 대중가요를 좋아하니까요. 아니면 다른 곡으로 바꾸라고 할까요? 하 대표님께서 하나 골라 주시죠.”하도진은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무대 아래 조명 속에서 춤추고 있는 젊은 여자들을 내려다보자 괜히 더 심란해졌다.오늘은 유난히 자꾸 정신이 딴 데로 샜고 마음도 계속 불안했다.마치 어디선가 큰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하지만 세리 엔터의 장휘재는 그런 하도진의 상태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그저 회사 신인들에게 어떻게든 하도진의 앞에서 얼굴도장을 찍게 해 주고 싶을 뿐이었다.연예계는 워낙 복잡한 곳이었다.뒤를 봐줄 든든한 사람이 있다면 없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회사 입장에서도 배경과 후원자가 탄탄한 스타가 몇 명 더 생기는 건 나쁠 게 없었다.오늘 연말 행사도 그런 이유에서 공을 들여 마련한 자리였다.아래층의 예쁜 연예인들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노래하고 춤췄지만 하도진은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았다.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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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2화

신인의 여자 아이돌의 이름은 소유정이었다.예대를 졸업한 소유정은 다섯 명으로 구성된 걸그룹 안에서 실력만 놓고 보면 딱히 경쟁력이 없었다. 노래도 춤도 평범했다.그런데 예쁜 얼굴과 볼륨감 있는 몸매 하나만으로 돈을 아끼지 않는 남성 팬들을 대거 끌어모았고 단숨에 팀 내 인기 1위가 됐다.“난 인내심이 그렇게 많지 않아.”하도진은 휴대전화 화면을 끄며 친구 추가 요청 창까지 닫아 버렸다.그러자 소유정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거액의 돈을 주고 산 거예요...”하도진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내 개인정보가 인터넷에서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걸로 보여?”하도진 같은 가문에서 가장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 중 하나가 사생활과 개인정보였다.태어날 때부터 가족 구성원의 개인정보가 외부로 새지 않도록 유난스러울 정도로 관리해 왔다.소유정은 결국 사실대로 털어놨다.“대표님 비서 중 한 명을 돈으로 매수했어요. 매달 대표님이 이용하시는 운동 시설 예약을 담당하는 사람이라 크게 눈에 띄는 직원은 아니었어요.”소유정은 하도진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4,000만 원을 주고 대표님의 카톡 아이디를 받았어요. 그런데 대표님이 친구 추가를 계속 안 받아 주셔서... 몇 번 더 신청한 거예요.”하도진은 차갑게 웃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이제야 모든 게 맞아떨어졌다.예전에 집에서 민하윤에게 들켰던 친구 추가 요청도 소유정이 처음 보낸 것이었다.그 뒤로도 소유정은 몇 번이나 계속 친구 추가를 시도했다.하도진은 그 사실을 민하윤에게 굳이 말하지 않았다.괜히 신경 쓰게 했다가 질투라도 하면 그 불똥이 자신에게 튈 게 뻔했기 때문이다.“꺼져.”하도진이 싸늘하게 내뱉었다.소유정은 기가 완전히 꺾인 사람처럼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그러고는 애처로운 얼굴로 하도진의 바짓단을 붙잡으며 말했다.“하 대표님, 저는 정말 진심이에요. 대표님을 이용하거나 계산해서 뭘 얻으려는 게 아니에요.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게요. 그냥 대표님 곁에만 있게 해 주세요.”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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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3화

민하윤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여린 나비처럼 로젤스의 크리스마스 밤에 쏟아지는 눈 속으로 힘없이 쓰러졌다.함박눈은 끝없이 쏟아졌고 병원 안내 방송에서는 계속 폭설 경보가 흘러나왔다.민하윤은 희미하게 눈을 떴다.흰 가운을 입은 금발의 외국인 의료진이 한꺼번에 몰려들었고 알아듣기 힘들 만큼 빠른 여운어가 사방에서 들려왔다.“환자분, 제 말 들리세요?”“성함은 어떻게 되세요?”하지만 민하윤에게는 더 이상 대답할 힘이 없었고 무거운 눈꺼풀이 다시 천천히 감겼다.의식은 또다시 흐려졌고 팔다리는 얼음장처럼 차갑고 굳어 있었다.귓가에는 의료기기에서 울리는 규칙적인 전자음만 끊임없이 맴돌았다....소식을 들은 구이현은 무조건 병원에 가겠다고 고집했다.송지훈은 한참을 달래고서야 겨우 구이현을 붙잡을 수 있었다.“오늘 폭설 경보까지 내려졌어. 크리스마스라 밖에도 사람 많고 길도 엉망이야. 넌 집에 있어. 내가 병원에 갈게.”송지훈은 단호하게 말했다.“내일 눈이 좀 그치고 크리스마스 인파도 빠지면 그때 가봐. 응?”구이현이 여전히 불안한 표정을 짓자 송지훈이 다시 달랬다.“넌 임신했잖아. 지금 병원에 가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나까지 네 걱정하면서 신경 쓰게 하지 마. 도진이도 지금 곁에 없으니까 우리라도 하윤 씨를 챙겨야 해.”송지훈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였다.응급 병동 밖에서 익숙한 사람을 발견하자 송지훈은 순간 걸음을 멈췄다.하지만 지금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송지훈은 곧장 다가가 먼저 말을 걸었다.“지금 상태 어때요? 의식은 돌아왔어요? 갑자기 왜 길에서 쓰러진 겁니까?”그러자 상대가 대답했다.“지금 수액 맞고 있어요. 조금 전에 잠깐 깨어났고요.”“의사 말로는 실신성 쇼크에 가깝다고 합니다. 생리 중이라 출혈도 있었고 지난 2주 동안 거의 쉬지 않고 계속 일하면서 빈혈까지 심해졌대요. 과로가 겹치면서 쓰러진 거라고 합니다.”그 말을 듣고서야 송지훈은 조금 안도했고 곧바로 하도진에게 민하윤의 상태를 간단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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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4화

두 사람은 결국 평생 서로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사이였다.하도진은 민하윤의 곁에서 직접 하나하나 챙기며 정성껏 간호했다.두 사람 모두 얼마 전의 다툼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마치 처음부터 그런 일은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하도진은 왜 몸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 했느냐고 민하윤을 나무라지 않았다.한겨울 낯선 타국의 거리에서 혼자 쓰러졌던 일도 굳이 다시 꺼내지 않았다.민하윤 역시 하도진이 왜 회사의 신인 여자 연예인을 프라이빗 라운지로 데려갔는지 묻지 않았다.로젤스를 떠나기 전날 밤이었다.하도진은 두꺼운 코트와 니트를 벗고 흰색 반팔 티셔츠만 입은 채 민하윤의 침대에 올라왔다.그러더니 뒤에서 민하윤을 끌어안았다.민하윤의 몸이 순간 굳었다.하지만 민하윤은 가만히 누운 채 꼼짝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어둠 속에서 한동안 말없이 있었고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가느다란 초승달이 나뭇가지 끝에 걸려 병실 창문 안으로 은은한 빛을 흘렸다.한참 뒤 하도진이 낮게 말했다.“난 당신한테 미안한 짓을 한 적이 없어.”잠시 뜸을 들인 뒤 하도진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그래도 당신한테 화내면 안 됐고 그렇게 삐져 있을 일도 아니었어. 이유도 말하지 않고 연락 끊은 것도 잘못했어.”민하윤은 순간 목이 메었고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애써 참았다.“알아요.”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하지만 두 사람의 마음은 예전보다 조금 더 가까워졌고 서로를 이해하고 믿는 법을 조금씩 배워 갔다....설날이 다가오자 하씨 가문의 본가는 한층 더 북적거렸다.하도진의 고모할머니도 온 가족을 데리고 그루이에서 돌아와 명절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집 안은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화기애애했다.거실은 주주와 연이의 장난감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두 아이는 아침에 눈만 뜨면 새로운 장난감을 하나씩 받았다.삼촌이며 집안 어른들이 앞다퉈 사 온 선물이었다.연차를 낸 민하윤은 백누리, 구이현과 함께 쇼핑을 다녀왔다.집에 돌아올 때는 양손에 쇼핑백을 한가득 들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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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5화

새해 첫날 아침, 두 꼬마는 일찌감치 눈을 떴다.주주와 연이는 엄마 아빠 양옆에 누워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불 속에서 작은 엉덩이를 들썩이며 꼼지락거렸다.소피아에게 붙잡혀 밤늦게 게임을 해 준 탓에 민하윤은 어젯밤 늦게 잠들었다.민하윤은 몸을 뒤척여 돌아누웠을 뿐, 도무지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하도진은 민하윤을 품에 끌어안고 조금 더 잘 생각이었다.하지만 두 아들이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한 녀석은 손을 뻗어 하도진의 눈을 찌르려 하고 다른 녀석은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아기들의 작은 발들은 거의 흉기나 다름없었다.번갈아 하도진의 가슴을 세게 걷어차자 결국 낮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하도진은 두 아들을 노려보았다.“애들 분유 먹을 시간이에요.”민하윤은 자신을 감싼 하도진의 팔을 밀어내고 반대편으로 돌아누우며 잠에 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하도진은 이불 속에서 한참을 버텼지만 결국 포기하고 일어났고 두 아이의 분유를 타기 시작했다.설 연휴라 산후 도우미와 나지혜도 모두 고향에 내려간 상태였다.본가에는 가사 도우미 한 명만 남아 있었는데 온 가족의 식사며 집안일까지 챙겨야 했다.결국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거의 초보 엄마 아빠인 두 사람의 몫이 됐다.배불리 분유를 먹은 주주와 연이는 금세 기운이 넘쳤다.침대 머리맡에서 발치까지 기어갔다가 다시 발치에서 머리맡으로 돌아오기를 끝도 없이 반복했다.지칠 줄 모르는 두 아이를 보며 하도진은 침대 밖에 서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미꾸라지라도 잡는 것처럼 한참 씨름판을 벌인 끝에야 하도진은 겨우 두 아이를 붙잡았다.그리고 민하윤이 준비해 둔 설빔을 하나씩 입혔다.새빨간 조끼에는 금실로 모란과 용 문양이 수놓아져 있었다.워낙 피부가 하얀 아이들이라 옷을 입혀 놓으니 영락없이 복을 몰고 온 설날 아기들이었다.“이제 할머니한테 가자꾸나.”하도진은 아들의 작은 엉덩이를 가볍게 톡 치고는 귀찮게 구는 두 꼬마를 아래층으로 데려갔다.연이는 손가락을 입에 문 채 헤헤 웃었다.거실에 내려오자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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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6화

젊은 사람들은 하나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골목 입구에는 차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고 하도진도 트렁크를 열어 아이들 분유와 유모차를 차례로 실었다.그때 옆집 대문에서 베이지색 코트를 입은 송지훈이 걸어 나왔다.좋은 일이 있는 사람답게 송지훈의 얼굴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가득했다. 손에는 붉은 나무 상자 두 개를 들고 있었고 환하게 웃는 모습은 겨울 햇살처럼 따뜻해 보였다.“도진아, 마침 잘 만났네. 나 지금 할아버지 댁에도 들르려고 했거든.”송지훈은 온몸에서 기분 좋은 기운이 흘러넘쳤고 평소보다 목소리까지 한결 밝고 컸다.하도진이 짐을 정리하며 물었다.“왜? 얼마 전에 세배하러 왔잖아. 또 무슨 일로 온 거야?”사실 뻔히 알고 있으면서 묻는 말이었다.하도진은 이미 송지훈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구씨 가문에 여러 번 찾아가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받으려 애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그리고 얼마 전, 구씨 가문도 마침내 마음을 돌려 딸을 송지훈에게 시집보내는 데 동의했다.구이현의 배는 하루가 다르게 불러지고 있었다.양가에서 상의한 끝에 우선 간단하게 약혼식을 치르고 아이를 낳은 뒤 정식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약혼식은 정월대보름이 지나고 사흘 뒤로 잡혔다.송지훈이 오늘 찾아온 것도 집마다 청첩장과 답례 떡을 돌리기 위해서였다.“알면서 왜 놀려?”송지훈이 웃으며 하도진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가자. 나랑 같이 안에 들어가 줘.”김옥자는 유난히 기운이 좋아 보였다.이런 경사가 생겼다는 말에 덩달아 신이 나서 송지훈을 붙잡고 이것저것 쉴 새 없이 물었다.“이현이 출산 예정일은 잡혔니? 자연분만할 거야? 수술할 거야? 네가 병원에서 일하잖아. 아들인지 딸인지 미리 안 알아봤어?”“결혼식은 언제 할 거고?”질문이 줄줄이 이어졌지만 송지훈은 내내 웃으며 하나하나 대답했다.“예정일은 나왔어요. 아마 올해 초여름쯤일 것 같습니다.”“자연분만이 될지 제왕절개를 할지는 이현이랑 아이 상태를 봐야 하고요. 집에서는 그래도 좋은 날을 골라 수술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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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7화

4월.하씨 본가는 아침부터 떠들썩했다.따스한 봄볕이 마당 가득 내려앉았고 집 안팎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오늘은 하씨 집안의 두 손자, 주주와 연이의 첫돌이었다.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하진석은 나이가 들며 몸이 예전 같지 않아 마당 한쪽의 작은 텃밭도 오래전부터 손을 놓은 상태였다.밭은 거의 다 황폐해졌지만 1년 반 전에 심어 둔 석류나무 두 그루만큼은 여전히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가사 도우미와 집사는 보름 가까이 걸려 마당의 잡초를 모두 뽑고 꽃씨를 뿌려 두었다.마침 봄꽃이 피는 계절이라 정원도 한층 화사했다.어른들은 아이의 첫돌을 중요하게 여겼다.하도진은 백일 때 친구들과 작게 돌잡이 비슷한 행사까지 했으니 굳이 또 할 필요 없다고 했지만, 채선화와 하준혁은 정식으로 한 번 더 해야 한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특히 김옥자가 이번 돌잔치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초대한 손님은 많지 않았고 가까이 지내는 몇몇 집안에만 초대장을 보냈지만 상차림만큼은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음식은 전부 국성 호텔에서 따로 주문했다.메인 셰프는 선대가 궁중 요리사였던 집안 출신이었다.집 안에 내놓은 떡과 사탕까지 기사가 북해의 유명한 전통 과자점에 직접 가서 줄을 서서 사 왔다.채선화는 아예 금은방 장인까지 찾아가 순금으로 돌잡이 소품 한 세트를 맞췄다.손가락 길이만 한 금 주판과 미니 황금 죽간 책, 금 붓, 금 피리, 금수저와 금그릇이 놓여 있었다.법조계를 상징하는 작은 금 저울과 번쩍이는 군공훈장, 그리고 에스티 그룹 후계자에게 이어지는 회사 인장까지 준비돼 있었다.마당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붉은색 원형 융단이 깔렸고 그 둘레로 황금 돌잡이 소품들이 빙 둘러 놓였다.하도진과 민하윤은 두 아이를 융단 위에 내려놓았고 촬영을 맡은 진호영은 카메라를 두 꼬마에게 바짝 맞췄다.“주주야, 연이야. 마음에 드는 거 하나 골라 봐.”그러자 연이는 융단 위에 앉아 동그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그러더니 왼손으로 금 주판을 집고 오른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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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8화

“연이는 진짜 수다쟁이라니까...”민하윤은 아들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연이의 통통한 볼을 살짝 꼬집었다.구이현은 입맛이 별로 없어 일찌감치 수저를 내려놓고 민하윤의 품에 안긴 연이와 놀아 주고 있었다.“엄마아...”그때 누군가 재미있는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다.“어린애들은 이런 걸 기가 막히게 맞힌다던데... 주주랑 연이한테 물어보자. 이현의 뱃속에 남자아기가 들었는지 여자아기가 들었는지!”채선화도 주주를 안고 가까이 다가와 구이현의 불룩한 배를 손끝으로 살짝 가리켰다.“주주야, 여기 뱃속에 남동생이 있을까, 여동생이 있을까?”식탁에 있던 사람들이 순간 조용해졌다.모두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이쪽으로 쏠렸다.구이현까지 괜히 긴장됐다.이런 말이 정말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이가 뭐라고 대답할지 은근히 기대됐다.민하윤은 젊어서인지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들어 봤고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그래요? 정말 그런 말이 있어요?”옆에 있던 김옥자도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있지! 한번 물어봐.”하지만 주주는 원래도 말수가 적었다.고개를 홱 돌리더니 채선화의 목을 꼭 끌어안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어른들의 기대는 자연스럽게 활발한 연이에게로 옮겨 갔다.“연이야, 이모 뱃속에 남동생이 있어? 여동생이 있어?”“남동생이야? 여동생이야?”술잔을 든 송지훈의 손이 미세하게 떨릴 정도였다.의사인 자신이 이런 민간 속설을 믿을 리 없었지만 그래도 막상 결과를 기다리니 신경이 쓰였다.그때 연이가 입을 열었다.“남동생! 남동생...”구이현은 포기하지 않고 작은 손을 잡아 자신의 배 위에 올려놓았다.“남동생이야? 여동생이야?”혹시라도 연이가 말을 바꿔 주길 은근히 기대했다.구이현도 송지훈도 내심 딸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들은 사랑스럽고 애교 많은 딸 하나를 품에 안고 싶었다.연이는 침까지 흘리며 입을 활짝 벌리고 웃었다.오른쪽 볼에 작은 보조개가 쏙 들어가 더없이 귀여웠다.“남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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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9화

백누리는 새 작품 촬영을 마치고 명원으로 돌아와 휴가를 보내게 됐다.공교롭게도 구이현의 출산 예정일을 한 달 앞둔 때였다.오랜만에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 만큼 아예 천위 리조트로 놀러 가기로 약속했다.민하윤은 주주와 연이를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 댁에 맡긴 뒤 집으로 돌아와 짐을 챙겼다.하도진은 서재에서 물컵을 들고나오다가 침실 문가에 느긋하게 기대섰다.천창을 통과한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와 오뚝한 콧날에 내려앉았다.하도진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짐을 싸는 민하윤을 바라보다가 별장이 지나치게 조용하다는 걸 깨닫고 물었다.“애들은?”“할아버님, 할머님 댁에 맡겼어요. 이현이가 이제 곧 출산 마넬로 미국 가서 출산 준비할 거래요. 떠나기 전에 우리 셋이 한 번 더 만나려고요.”“응.”하도진은 짧게 대답했다.그러더니 갑자기 물컵을 침실 입구의 콘솔 위에 내려놓고 드레스룸으로 들어왔다.뒤에서 민하윤의 허리를 끌어안자 민하윤의 귀가 순식간에 새빨개졌다.얼굴까지 뜨거워진 민하윤은 본능적으로 놀라 몸을 비틀어 하도진의 품에서 빠져나왔다.“뭘 그렇게 놀라?”하도진은 일부러 아내를 놀리듯 빨갛게 달아오른 귓바퀴를 손끝으로 문질렀다.그러자 마음 한구석이 간질거렸다.“오늘 금요일인데 친구들 만나러 가면서 나 혼자 집에 버려두겠다고?”민하윤은 조금 찔리는지 변명하는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주말에 쉬니까 맞춰서 놀러 가는 거죠. 도진 씨도 친구들이랑 나가서 밥 먹고 술 마시면 되잖아요.”“주말을 마음껏 즐기라고 아이들까지 본가에 맡겨 놨는데요. 집에서 주주랑 연이 봐 달라는 것도 아니고요.”그러자 하도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금요일이랑 토요일에는 우리 따로 일정 있는 거 잊었어?”하도진은 민하윤을 단숨에 품에 끌어당기고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낮게 깔린 하도진의 목소리는 은근히 유혹적이었다.하도진의 손이 장난스럽게 허리선을 더듬자 민하윤은 금세 긴장했다.곧 브래지어 어깨끈 하나가 탁 풀렸다.민하윤은 얼굴이 확 붉어져 황급히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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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0화

백누리는 영상 초인종 화면으로 찾아온 사람을 확인하자마자 표정이 확 변했다.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있던 구이현을 향해 눈짓까지 해 보였다.“왜 그래? 하윤 언니가 왔는데 문 안 열어 줘?”“무슨 껌딱지도 아니고 여기는 또 왜 따라온 거야?”백누리는 바닥에 펼쳐 둔 캐리어를 황급히 뒤져 긴 셔츠 하나를 꺼내더니 끈 원피스 위에 얼른 걸치고 단추를 목 끝까지 꼼꼼하게 채웠다.그러고는 여배우다운 표정 관리를 발휘해 순식간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문이 열리자마자 백누리의 밝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하 대표님? 웬일로 여기까지 오셨어요? 귀한 분이 오시는 줄 알았으면 미리 나가서 맞이했을 텐데요.”하도진은 눈꺼풀만 살짝 들어 올렸을 뿐,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하얀 캐리어를 현관 안으로 밀어 넣고 몸을 비켜 길을 내주며 말했다.“가 봐. 일요일 오후에 데리러 올게.”민하윤은 어색하게 웃으며 하도진의 손바닥에 잡혀 있던 손을 슬그머니 빼냈다.“언제 돌아갈지는 아직 몰라요. 일요일에는 일단 아이들부터 데려오세요. 월요일에 조기교육 수업도 있고 오후에는 언어 수업도 있으니까 빠뜨리면 안 돼요.”하도진은 담담하게 대답했다.“가능하면 일찍 와. 애들이 엄마 보고 싶어 할 테니까.”그 말만 남기고 하도진은 민하윤이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봤다.백누리는 억지로 웃는 얼굴을 유지한 채 문을 천천히 닫았다.그리고 문이 닫히는 순간 표정이 싹 바뀌더니 신발을 홱 벗어 던지고 셔츠 단추부터 풀기 시작했다.“무슨 애들이 엄마를 보고 싶어 한다는 거야? 우리 조카들의 핑계 대는 거지... 자기가 아내 보고 싶은 거잖아.”백누리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서른 넘은 남자가 완전 사랑에 미쳤네.”백누리는 그동안 쌓인 게 정말 많았다.서북부 사막에서 시대극 야외 촬영을 하느라 지냈는데 신호까지 좋지 않아 친구들과 영상통화는커녕 문자도 제때 확인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겨우 새 작품 촬영을 끝내고 명원으로 돌아왔더니 이번에는 구이현이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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