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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4화

Author: 금소
“네.”

임형섭은 모르는 척 짧게 대답했지만 시선은 계속 엘리베이터 쪽을 향하고 있었다.

백누리가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하윤이한테도 인사하고 가실래요? 제가 전화할게요. 조금만 늦게 비행기를 타시면...”

하지만 임형섭은 고개를 저으며 백누리가 전화를 걸려는 걸 막았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말했다.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막상 얼굴을 볼 용기는 없네요. 보면... 못 떠날 것 같아서요.”

백누리는 코를 훌쩍이고는 일부러 장난스럽게 물었다.

“다른 사람을 좋아해 볼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보셨어요?”

임형섭은 대답을 피했고 그저 웃으며 가방을 메고 돌아섰다.

탑승구로 들어가기 전, 임형섭은 백누리가 있는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백누리도 애써 웃음을 지으며 곧바로 손을 흔들어 답했다.

야위고 훤칠한 뒷모습이 터미널 너머로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백누리의 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백누리는 울면서 민하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안 왔어? 왜 배웅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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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795화

    백누리가 공항에서 엉망으로 울어 화장까지 번진 사진은 무려 일주일 동안 연예 뉴스 메인을 장식했다.소속사 홍보팀 직원들이 어떻게든 기사를 내리려고 애썼지만 끝내 실패했다.나은지는 새로 계약한 남자 배우를 데리고 지벤의 레드카펫 행사에 다녀온 참이었다.돌아오자마자 연예 뉴스 실시간 검색어에 떡하니 걸려 있는 기사를 보고 얼굴이 일그러질 만큼 화가 났다.백누리를 처음부터 지금 자리까지 끌어올린 사람이 바로 나은지였다.가장 힘들었던 시절, 백누리는 웹드라마에서 이름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단역밖에 맡지 못했다.한 달 내내 촬영장에서 고생하고 받은 돈이 고작 70만 원이었다.그마저도 작품이 공개되고 나니 무능한 제작자가 편집을 엉망으로 해 백누리의 장면은 몇 컷밖에 남지 않았다.데뷔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두 사람은 서로 의지하며 버텨 왔다.그동안 겪은 일들은 남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았다.나은지가 백누리를 아끼는 만큼 지금의 분노도 컸다.방바닥에는 구겨진 휴지가 잔뜩 널려 있었다.나은지는 그 한가운데 서서 백누리의 코앞을 가리키며 쏘아붙였다.“너 미쳤어? 인생의 첫 여우주연상을 받는 날에 시상식에서 도망쳐서 공항까지 가더니 화장이 다 번지도록 울고 그 꼴을 행인들한테 찍혀 인터넷에 올라가게 해?”“내가 네 경쟁 배우들이었으면 자다가도 웃다가 깨겠어. 넌 지금 네 커리어를 스스로 박살 내고 있는 거야!”“장 감독님한테도 제대로 찍혔고 업계 사람들한테는 웃음거리까지 됐어!”나은지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일하기 싫으면 그냥 말해. 스무 살 넘은 어린 애들이 네 자리 하나 차지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줄 서 있어.”“경쟁 배우들은 네가 한 번만 삐끗하길 기다렸다가 네 명품 광고 다 뺏어 가려고 난리라고!”백누리는 두 무릎을 끌어안은 채 얼굴을 파묻고 있었고 퉁퉁 부은 눈가에는 물기가 번들거렸다.지금의 백누리는 깨져 버린 도자기 인형처럼 위태로워 보였다.말도 없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평소 같았으면 벌써 실실 웃으며 나은지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794화

    “네.”임형섭은 모르는 척 짧게 대답했지만 시선은 계속 엘리베이터 쪽을 향하고 있었다.백누리가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하윤이한테도 인사하고 가실래요? 제가 전화할게요. 조금만 늦게 비행기를 타시면...”하지만 임형섭은 고개를 저으며 백누리가 전화를 걸려는 걸 막았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말했다.“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막상 얼굴을 볼 용기는 없네요. 보면... 못 떠날 것 같아서요.”백누리는 코를 훌쩍이고는 일부러 장난스럽게 물었다.“다른 사람을 좋아해 볼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보셨어요?”임형섭은 대답을 피했고 그저 웃으며 가방을 메고 돌아섰다.탑승구로 들어가기 전, 임형섭은 백누리가 있는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백누리도 애써 웃음을 지으며 곧바로 손을 흔들어 답했다.야위고 훤칠한 뒷모습이 터미널 너머로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백누리의 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백누리는 울면서 민하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왜 안 왔어? 왜 배웅하러 안 왔어...”백누리는 울먹이며 따지듯 말했다.“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잖아. 다시는 못 볼 수도 있는데...”민하윤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울음과 원망 섞인 목소리를 듣기만 했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백누리는 결국 전화를 끊더니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엉엉 울었다.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휴대전화를 들어 백누리를 찍기 시작했다.하지만 이번에는 더 이상 카메라를 가려 주는 사람이 없었다....하도진은 인삼 생강차를 끓여 민하윤 앞에 가져다 놓으며 물었다.“무슨 생각 하는 거야?”민하윤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그리고 먼저 다가가 하도진을 뒤에서 꼭 끌어안았다.넓고 단단한 등에 얼굴을 묻자 속눈썹 끝에 맺혀 있던 눈물이 셔츠를 서서히 적셨다.하도진은 놀라 급히 뒤를 돌아보려 했다.하지만 민하윤은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하도진의 어깨를 꽉 붙잡고 돌아보지 못하게 했다.“무슨 일인데?”민하윤의 몸이 희미하게 떨렸다.민하윤은 계속 고개만 저으며 입술을 깨문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793화

    임형섭은 은행을 그만두고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마넬로 이민을 가기로 했다.비행기는 밤 11시였다.백누리가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시상식 백스테이지에서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던 중이었다.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벌써 밤 9시였다.백누리는 드레스를 갈아입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하이힐을 신고 밖으로 뛰쳐나갔다.깜짝 놀란 매니저는 들고 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까지 내려놓고 앞을 막아섰다.“언니, 오늘 언니 인생 첫 여우주연상을 받는 날이에요. 메이저 언론사만 거의 백 군데가 생중계하고 있고 장 감독님이랑 다른 배우들도 다 언니 마지막 등장 기다리고 있어요. 지금 가면 안 돼요!”“가야 해.”백누리는 다급하게 매니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부탁이야. 좀 도와줘.”“실장님이 알면 저 진짜 죽도록 혼나요.”백누리는 마지막 동아줄이라도 잡은 사람처럼 매니저의 손을 꽉 붙잡았고 목소리가 한없이 작아졌다.“이번이... 내 평생 마지막으로 그 사람을 보는 날일 수도 있어.”매니저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순하고 마음 여린 사람이었다.백누리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자 한동안 망설이다 결국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운전기사에게 연락했다.두 사람은 급하게 신발을 갈아 신었다.백누리는 화려한 맞춤 드레스를 그대로 입은 채, 헤어와 메이크업도 반쯤밖에 끝내지 못한 모습으로 플랫슈즈를 신고 밴에 올라탔다.차 주변에는 파파라치와 사생팬들이 몰려들었다.카메라 렌즈가 짙은 틴팅 유리창에 바짝 붙었고 쉴 새 없이 터지는 플래시에 백누리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다.백누리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계속 매니저에게 문자를 보냈다.매니저는 주최 측 보안 요원들을 데리고 지하 주차장까지 내려왔다.사람들이 차 주변을 에워싸면서 길을 만들어 주자 기사는 아주 천천히 차를 움직여 그곳을 빠져나갔다.공항에 도착한 백누리는 출국장 안을 미친 듯이 뛰었다.외울 필요도 없이 머릿속에 박혀 있는 번호로 몇 번이고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돌아오는 건 감정 하나 없는 통화 연결음뿐이었다.그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792화

    “누가 내 욕하는 거야?”민하윤은 코를 훌쩍이며 혼잣말을 중얼거린 채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그러다가 마주 오던 임형섭과 딱 마주쳤다.임형섭은 몰라볼 정도로 많이 야위어 있었다.아버지가 로젤스에서 세상을 떠난 뒤 임형섭은 오랫동안 휴가를 냈다.지난 3월, 고액 자산가 고객의 수억 원대 신탁 자금을 처리하기 위해 잠시 은행에 돌아왔을 때 두 사람은 급하게 한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그 뒤로는 벌써 일곱, 여덟 달 가까이 보지 못했다.임형섭은 예전보다 너무 많이 말라 있었다.전에는 몸에 잘 맞던 캐시미어 코트가 헐렁하게 남아돌았고 눈 밑은 깊게 꺼져 있었으며 턱에는 푸르스름한 수염 자국까지 남아 있었다.임형섭은 원래 누구보다 외모와 차림새를 신경 쓰던 사람이었다.민하윤은 그제야 가족을 잃은 일이 임형섭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깨달았다.“선배, 괜찮으세요?”“응. 다 괜찮아.”임형섭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하지만 사실 지난 시간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부모님은 평생 서로를 아끼며 살아온 사이였다.반평생을 함께 의지하며 지낸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일은 어머니에게도 너무 큰 충격이었다.1월 초, 집에서 일하던 필리핀 가사 도우미에게 전화가 왔다.임형섭의 어머니가 사라졌다는 연락이었다.그러자 임형섭은 모든 일을 내려놓고 급히 마넬로 향했다.어머니는 집 근처 한인 마트에 갔다가 길을 잃었다고 했다.게다가 임형섭의 어머니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이곳저곳을 헤매다 결국 공동묘지까지 가 버렸다.임형섭이 찾아갔을 때, 평생 단정하고 품위 있게 살아온 어머니는 어느새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채 차가운 묘비 앞에 엎드려 있었다.그리고 묘비에 박힌 남편의 흑백 사진을 끊임없이 손으로 쓸어내리고 있었다.그건 임형섭의 아버지가 열아홉 살에 유학을 떠났을 때 찍은 사진이었다.임형섭은 마넬에 남아 어머니를 돌봤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아침에 혈압약을 먹은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어머니가 같은 약을 두 번이나 더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791화

    그 순간, 민하윤의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가 굳었다.민하윤은 본능적으로 두 손으로 앞을 가리며 경계하는 표정으로 물었다.“뭐 하려고요?”“오늘 금요일이잖아.”둘만 아는 암호 같은 말에 민하윤은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하지만 민하윤이 뭐라고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입술이 막혔고 곧 서로 얽힌 숨소리가 가까이서 이어졌다.하도진은 민하윤을 벽 쪽으로 몰아붙인 채 한 손을 옷자락 아래로 밀어 넣었다.민하윤은 화도 나고 어이도 없었지만 결국 포기한 듯 더는 저항하지 않았다.그런데 순간 하도진의 손이 멈췄다.하도진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다시 한번 확인하더니 손끝에 닿은 얇은 흰색의 생리대를 알아차리고 미간을 확 찌푸렸다.자신의 짐작이 맞다는 걸 확인하자 금세 미안한 기색까지 비쳤다.“왜 말 안 했어?”민하윤은 하도진의 어깨에 기대 가볍게 숨을 고르며 일부러 모르는 척 물었다.“뭘요?”“그날인데 왜 말 안 했냐고...”하도진은 못마땅하다는 듯 민하윤의 하얀 목덜미를 살짝 깨물었다.힘은 거의 들어가지 않아 고양이가 장난치는 것처럼 간질거릴 정도였다.그러자 민하윤은 일부러 하도진을 놀렸다.“무슨 날이요?”“모르는 척하는 거야?”하도진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사람 마음속에 불 질러 놓고 나 몰라라 하려고?”하도진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자기 셔츠를 집어 민하윤에게 조심스럽게 덮어 준 뒤, 생리 중이라는 걸 신경 써 그대로 안아 올렸다.하도진은 민하윤을 안고 침실로 들어갔다.하지만 이미 달아오른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두 사람은 일찍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어둠 속에서 하도진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간간이 낮은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하도진은 민하윤의 손목을 잡고 조심스럽게 이끌었다.그러다 민하윤이 손이 아프다고 투덜대고 나서야 겨우 그만두었다....즐거운 주말은 언제나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다.월요일 아침, 엘리베이터 안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민하윤은 원래 다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생각이었지만 뒤

  •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790화

    그 순간, 민하윤의 얼굴이 확 빨개졌다.어른들도 있고 아이들도 바로 옆에 있는데 괜히 부끄럽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했다.하도진은 혀끝으로 입술을 살짝 핥더니 낮게 웃었다.“진짜 달콤하네.”민하윤은 더 부끄러워져서 딸기 하나를 하도진의 입에 그대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달면 많이 먹어요.”하도진은 웃으며 다시 민하윤을 품에 끌어안았다.프로젝트 제안서를 다 읽었을 때쯤 딸기 한 접시도 깨끗이 비어 있었다.민하윤은 고개를 돌렸다가 두 아이를 보고 멈칫했다.주주와 연이는 얼굴이며 입가에 과즙을 잔뜩 묻힌 채 먹고 있었고 테이블 한쪽에는 망고스틴 껍질이 작은 산처럼 쌓여 있었다.민하윤은 할 말을 삼켰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어머님, 애들은 아직 소화기관이 약해서 찬 과일을 너무 많이 먹이면 안 돼요.”채선화는 입으로는 알겠다고 대답하면서도 손으로는 계속 망고스틴 껍질을 까고 있었고 전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때 하준혁까지 옆에서 거들었다.“괜찮아. 얼마 먹지도 않았어.”민하윤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순간 더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민하윤은 하씨 가문에서 충분히 사랑받고 있었다.특히 두 아이를 낳은 뒤로 집안 어른들은 민하윤을 더욱 살뜰하게 챙겼고 물질적인 면에서는 부족함을 느끼게 한 적도 없었다.하지만 아이들의 교육 문제만큼은 달랐다.그 부분에서 민하윤은 자신에게 별다른 결정권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손주 사랑이 워낙 지극한 어른들은 좋은 것이나 맛있는 것이 있으면 뭐든 두 아이부터 챙겼다.조금이라도 덜 해 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장난감이며 간식이며 끊임없이 사 줬다.아이들이 조기교육 수업에 가기 싫다고 울며 떼를 쓰면 어른들이 한마음으로 민하윤을 속이고 수업을 빼먹게 한 적도 있었다.교육센터 선생님이 왜 주주와 연이가 수업에 오지 않았느냐고 전화하지 않았다면 민하윤도 끝까지 몰랐을 일이었다.집에는 장난감과 옷이 더는 둘 곳이 없을 정도로 쌓여 있었다.민하윤은 친척과 친구들에게 제발 그만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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