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버림받은 아내, 재혼에 눈물 쏟는 전남편: Chapter 311 - Chapter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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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1화

요한이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두 사람은 먼저 들어가. 난 은화 씨랑 영화 보러 가기로 해서 픽업 가야 해.”조금 전 사무실에서 은화가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던 모습이 떠오른 지설은 작게 웃었다.“네, 알았어요.”집에 돌아온 뒤, 지설은 도진과 함께 저녁을 만들었다.도진은 며칠 전부터 요한에게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솜씨가 눈에 띄게 늘어 있었다.지설은 도진이 요리하는 걸 꽤 즐거워하는 눈치라는 걸 알아차리고 옆에서 재료를 다듬고 그릇을 챙기며 거들었다.도진이 물었다.“진윤항이 요즘도 계속 지설 씨를 괴롭혀요?”지설은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예전엔 그랬던 적 있어요. 그래도 제가 해결할 수 있어요. 이제는 그렇게 쉽게 당하지 않거든요.”도진은 조금 전 지설이 보여 준 그 깔끔한 업어치기를 떠올리고는 입꼬리를 아주 조금 올렸다.저녁을 먹고 난 뒤, 도진은 설거지까지 마쳤다. 그리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간 길에 지사에 있는 지은후에게 전화를 걸었다.[도진 도련님.]지은후의 목소리에는 빈틈없는 공손함이 묻어 있었다.“JT그룹 리조트 프로젝트, 진윤항을 지정해서 사업자로 들어가게 할 수 있어요?”지은후는 놀란 듯 되물었다.[왜 그러십니까?]“특별한 이유는 없고요. 못 해요?”도진은 그저 윤항이 한가하게 지설을 따라다니며 귀찮게 굴지 못하게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지은후가 서둘러 말했다.[물론 가능합니다. 그 프로젝트는 저희 쪽에서 바꿔 넣을 수 있는 자원도 더 많아서 JT그룹도 분명 받아들일 겁니다.]“네. 알겠습니다.”지은후가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도진이 직접 나설 필요는 없었다.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온 도진은 은화가 벌써 돌아온 걸 발견했다. 은화는 지설 앞에서 한껏 억울한 얼굴로 불만을 쏟아내는 중이었다.“그런 말을 하다니,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지설은 도진을 향해 소리 없이 입 모양만 움직였다.“둘이 싸웠어요. 먼저 들어가실래요?”도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삼키고 자기 집으로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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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2화

은화는 어이가 없어 웃다가 끝내 눈물을 흘렸다.은화는 예전에 연애하던 때를 떠올렸다.늘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더 낮은 자리에 두곤 했다.다투고 냉전이 시작될 때마다 먼저 버티지 못하고 남자친구를 달랜 쪽은 언제나 은화였다.단 한 번도, 먼저 은화를 달래 준 남자는 없었다.누군가가 달래 주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사실 뭘 먹느냐가 그렇게 중요했던 건 아니었다.은화는 그저 자신이 소중하게 여겨지길 바랐을 뿐이었다.은화는 요한에게 다가가 그대로 끌어안았다.그러더니 두 사람은 지설이 보는 앞에서 갑자기 키스하기 시작했다.지설은 조금 난처해졌다.‘아침밥까지 사 들고 왔는데, 이걸 먹기는 하는 걸까?’그때 문밖에 있던 도진이 지설을 향해 손짓했다. 바로 밖에 나가서 먹겠냐고 묻는 눈치였다.지설은 당연하다는 듯 밖에서 먹는 쪽을 택했다.두 사람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 지설이 감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이제야 알았어요. 다른 사람들 연애는 이렇게까지 요란할 수도 있네요?”도진이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그런 스타일 좋아해요?”지설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저는 그럴 필요 없어요. 저는 담백한 쪽이 좋아요.”지설은 싸우는 걸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다.도진은 웃으며 지설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지설 씨가 좋아하는 거, 저도 다 좋아해요. 우리는 안 싸워요.”지설은 얼굴이 붉어져 얼른 머리카락을 매만졌다.생각해 보면 두 사람은 입맛도 비슷했다.서로 맞춰 가는 과정이 거의 필요하지 않을 만큼 닮았다.그래서 결국 사람은 성격이나 생활 습관이 비슷한 사람과 함께할 때 훨씬 편안한 건지도 몰랐다....윤항은 지설을 찾아가려다가 이민철에게 붙들려 갑자기 회의에 끌려 들어가게 됐다.윤항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일은 원래 이 비서님이 다 처리하던 거 아니었어? 갑자기 왜 나까지 불러?”윤항은 지설을 만나러 가야 했다.이민철은 무표정한 얼굴로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회장님 말씀입니다. 도련님이 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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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3화

이민철은 예상 밖의 대응에 오히려 당황했다.중요한 사람으로 대우받는 듯한 기분까지 들어서, 잠깐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이민철은 곧바로 짧게 답을 보낸 뒤, 슬그머니 빠져나가려는 윤항을 붙잡았다.“가시죠. 회의하러 가야 합니다.”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윤항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이민철을 봤다.“지은후가 잡혀갔다며. 그런데 무슨 회의를 또 해?”이민철이 단호하게 말했다.“XS그룹에는 인재가 많습니다. 지은후 지사장님이 직접 회의에 못 들어오셔도 본사 쪽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도련님, 이건 XS그룹 윗선과 네트워크를 만들 기회입니다. 꼭 가셔야 합니다.”윤항은 길게 앓는 소리를 냈지만, 이민철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유빈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XS그룹 K시 지사의 지은후에게서 온 전화였다.유빈은 평소에도 지은후와의 관계를 꽤 신경 써서 관리해 왔기 때문에 말투부터 정중했다.“무슨 일이십니까?”도진의 손을 거쳐 간신히 풀려난 지은후는 자기 일부터 정리한 뒤 곧바로 자신을 모함한 쪽까지 전부 파악해 낸 상태였다.지은후는 대놓고 경멸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주 대표님, 상도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저를 부하 직원을 희롱한 사람으로 몰아가다니요. 그런 비열한 수를 쓰실 줄은 몰랐습니다.]지은후에게 여자 문제가 있다는 소문쯤은 유빈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다만 유빈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 일이 대체 왜 자기와 엮이는 건지 알 수 없었다.“지 사장님, 뭔가 오해하신 것 아닙니까?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저는 지 사장님을 늘 높이 평가해 왔습니다. 그런 분을 제가 왜 함정에 빠뜨리겠습니까?”지은후가 코웃음을 쳤다.[다 확인했습니다. 제 여자 직원을 돈으로 움직인 쪽이 주유연 씨더군요. 주유연 씨가 주 대표님 지시 없이 그런 일을 벌였겠습니까?][주 대표님, 이렇게 나오실 거면 저도 가만있지 않겠습니다. 다들 K시에 자리 잡고 산 세월이 얼마인데, 서로 쥐고 있는 약점 하나 없겠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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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4화

유빈의 그 말은 유연을 정확하게 찔렀다.주씨 집안의 권세와 부는 유연이 제멋대로 굴 수 있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다.유연도 알고 있었다. 주씨 집안이 없었다면 영민은 애초에 유연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거라는 걸.유연은 슬며시 불안해졌다.[그럼 어떡해? 오빠, 난 그냥 그 지은후 평판만 좀 망가뜨리려고 했던 거야. XS그룹에 큰 손해를 입힌 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걔네가 왜 우리 주씨 집안을 건드려?]유빈은 거칠게 쏘아붙였다.“너 같은 멍청이는 답이 없어! 앞으로 또 한 번이라도 멍청한 짓 하면, 너랑 부영민 일은 나도 손 뗄 거야.”그 말을 끝으로 유빈은 그대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유연은 불안하면서도 화가 치밀었다.부모님이 아무리 유연을 아껴도 결국 세월 앞에서는 늙어 갈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오빠는 달랐다. 유빈은 주씨 집안의 후계자였다.오빠의 애정은 유연이 앞으로도 좋은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기반이었다.유빈이 더 이상 유연을 챙기지 않는다면, 유연에게 남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유연은 다급한 마음으로 다시 유빈에게 전화를 걸었다.사과도 하고, 평소처럼 애교를 부리면 이번 일도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유빈은 이미 유연의 번호를 차단한 뒤였다.유연에게는 변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유연은 울컥했다.오빠가 어떻게 자기한테 이렇게까지 매정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유연은 이번엔 영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적어도 영민만은 와서 자기 곁에 있어 주길 바랐다.하지만 영민은 계속 바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그 말에 유연은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바빠? 대체 뭐가 그렇게 바쁜데? 지설이 일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시간 내서 갔겠지? 영민 오빠, 내가 지금까지 오빠한테 얼마나 많이 해 줬는데. 애까지 가졌는데, 양심이 있으면 좀 와서 나 좀 봐 줘야 하는 거 아니야?”영민은 사무실의 통유리창 앞에 서서 바깥 야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그 말을 듣는 내내 어이가 없었다.유연이 임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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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5화

지설은 설을 앞두고 예연숙을 데리러 병원으로 갔다.병실 가까이 다다르자 안에서 예연숙의 웃음소리가 먼저 들려왔다.거기에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지설은 조금 놀란 얼굴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병실 안에는 예연숙과 한 중년 남자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남자는 단정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예연숙은 오늘 유난히 신경 쓴 차림이었다.얼굴에는 공들여 한 화장이 올라가 있었고, 몸에는 밍크코트가 걸쳐져 있었다.목에는 에메랄드 목걸이까지 걸려 있었다.그 목걸이는 예전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사 준 것이었다.예연숙이 가장 아끼는 장신구이기도 했다. 평소에는 귀하게 간직해 두었다가 연회 같은 자리가 아니면 좀처럼 꺼내지 않는 물건이었다.지설이 가장 힘들던 때에도 예연숙의 보석을 팔아야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그만큼 예연숙에게 소중한 것들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오늘은 그 목걸이까지 하고 있었다.지설은 어머니가 왜 이렇게까지 정성껏 꾸몄는지 궁금해졌다.지설이 들어오자 예연숙이 반가운 얼굴로 손짓했다.“왔네. 이리 와 봐. 천석 아저씨 인사드려.”지설은 남자 쪽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천석 아저씨, 안녕하세요.”마천석은 지설을 바라보며 온화하게 웃었다.“연숙 씨 딸이구나? 참 예쁘네. 연숙 씨, 이렇게 속 깊고 살뜰한 딸이 있다니 정말 부럽습니다. 나도 원래 딸 하나 있었으면 싶었거든요.”예연숙은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나는 오히려 천석 씨가 아들 둘 있는 게 더 부러운데?”마천석이 말했다.“아들은 딸만큼 살갑지 않잖아. 이번 설에도 우리 집 두 아들은 각자 아내랑 둘이 여행가 버렸어. 나만 혼자 남았죠. 그런데 연숙 씨 딸은 이렇게 직접 와주고, 같이 있어 주잖아. 아들이 어디 이렇게까지 하나?”지설은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를 가만히 지켜봤다.그러다 문득 어떤 예감이 들었다.‘설마 엄마... 새 사람 만난 거야?’지설이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예연숙이 마천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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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6화

예연숙은 마음속으로 이미 계산을 끝낸 상태였다. 자리를 제대로 잡게 되면, 마천석 쪽 인맥과 자원을 통해 지설에게도 번듯한 집안의 사윗감을 알아봐 줄 생각이었다.지설은 그런 어머니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병원에 입원해 있는 와중에도 매력을 발산하는 걸 잊지 않는다니, 그 에너지만큼은 정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지설이 말했다.“그래도 엄마는 아직 입원 중이잖아. 그분은 정말 괜찮대? 엄마 상태가 들쭉날쭉할 때도 있어서 난 걱정돼...”예연숙은 자신만만하게 대꾸했다.“난 이제 거의 다 나았어. 그리고 천석 아저씨가 옆에 있으니까 기분도 좋고, 그러면 더 아플 일 없지.”“아휴, 결국 딸 믿는 것보다 내가 나를 믿는 게 낫다니까. 너는 아직 네 엄마만큼은 못 해. 남자 보는 눈은 아직 나 따라오려면 멀었다. 그러니까 이제 엄마 덕 보면서 편하게 살 생각이나 해.”지설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웃음이 났다.그래도 지설은 다시 차분하게 말했다.“엄마, 사람은 겉만 보고 다 알 수 있는 거 아니야. 천석 아저씨도 좀 더 오래 지켜봐야지.”“모든 사람이 우리 아빠처럼 한 사람만 보고 사는 건 아니잖아. 엄마도 너무 쉽게 믿지는 말고, 조심은 해야지...”예연숙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저었다.“됐어. 네 엄마가 살아온 세월이 얼만데, 내가 그런 것도 모르겠어? 내가 속을 것 같아? 그리고 이번 명절은 나 천석 아저씨랑 여행 갈 거야. 너는 너 알아서 놀아. 내 연애 방해하지 말고.”지설은 잠시 말을 잃었다가 물었다.“어디로 가는데?”예연숙은 웃으며 말했다.“아직 몰라. 천석 아저씨가 시간 되는 대로 같이 의논해 보자고 했어.”예연숙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안 지설은 결국 혼자 병실을 나섰다.그녀는 2층을 지나가던 때, 검사실 쪽에서 누군가 휠체어에 실려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유연이었다.유연은 핏기가 싹 가신 얼굴이었다.왼팔과 왼쪽 다리에는 깁스가 단단히 감겨 있었다.지설을 발견한 유연은 이를 꽉 깨물었다.지설은 유연이 이렇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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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7화

지설은 유연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남자는 꼭 있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야. 남자 하나 때문에 자신을 이렇게까지 망가뜨린 거, 정말 답이 없어.”“여자는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게, 남자 옆에서 남자 성공시키고 결국 그 남자의 아내로 남는 것보다 훨씬 낫고, 훨씬 가치 있어.”유연이 그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아닌지, 지설은 더 확인하지 않았다.지설은 그대로 돌아서서 걸어갔다.그 결혼 생활 속에서 지설은 한때 영민이야말로 사랑에 눈이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유연 하나 때문에 스스로 두 다리를 못 쓰게 만들 정도였으니까.그런데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정작 진짜 사랑에 눈이 먼 쪽은 유연이었다.이미 떠나간 사랑 하나 때문에 자기 몸을 이렇게까지 망가뜨렸다.영민과 유연은 늘 이미 잃어버린 사람만 좇고 있었다.역시 두 사람은 닮은 구석이 있었다.어쩌면 처음부터 잘 맞는 한 쌍이었는지도 몰랐다....도진이 전화를 걸어 지설에게 물었다.예연숙과 잘 만났냐고.지설은 예연숙이 이번 설을 같이 보내지 않겠다고 했다고 말했다.그 말을 들은 도진의 기분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아무래도 올해는 지설과 둘이서 설을 보낼 수 있게 됐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도진은 지설을 데리러 왔다.같이 장을 보고, 저녁엔 명절 음식을 해 먹자고 했다.지설은 당연히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이 아파트 입구 쪽 시장에 도착했을 때였다.커플룩을 맞춰 입은 요한과 은화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은화는 잔뜩 못마땅한 표정이었다.“그러니까 내가 뭐랬어. 좀 멀쩡하게 입고 나오라고 했잖아. 슬리퍼는 좀 아니지. 운동화라도 신지 그랬어.”요한은 느긋하게 대꾸했다.“아니, 그냥 집 앞에서 장만 보는 건데. 은화 씨야말로 화장까지 하고 나왔네. 와, 꼭 그렇게 공들여야 해?”둘은 그렇게 투닥거리다가 도진과 지설을 보자 바로 손을 흔들었다.지설은 도진과 함께 두 사람 쪽으로 걸어갔다.요한이 말했다.“해산물이랑 채소만 좀 사면 돼. 고기는 집에 엄청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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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8화

은화는 입을 삐죽였다.“맞아. 너희 둘은 진짜 결이 너무 잘 맞아. 거의 한 사람 같잖아. 나랑 요한 씨는 맨날 싸우는데.”지설이 웃으며 말했다.“커플마다 지내는 방식은 다 다르잖아요.”지설과 도진은 둘 다 조용하고 차분한 편이었다.겉으로 보기엔 요란한 불꽃이 튀는 사이는 아니었다.그래도 담백하고 따뜻했다.지설은 그런 분위기가 편안했다.반면 요한과 은화는 늘 시끌벅적했다.사소한 일로 티격태격하면서도 감정의 결은 훨씬 선명했다.그래서 함께할 때 느끼는 온도도 자연히 달랐다.그때 부엌 안쪽에서 요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빨리 와서 좀 날라!”은화는 얼른 슬리퍼를 끌고 부엌으로 들어갔다.도진은 접시에 담긴 음식을 하나 들고 나오며 지설에게 말했다.“지설 씨, 냉장고에서 음료 좀 꺼내 주실래요?”지설은 고개를 끄덕였다.“네.”냉장고 문을 열자 안은 빈틈이 없을 만큼 꽉 차 있었다.누가 채워 넣었는지는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분명 요한이었다.지설이 음료를 꺼내 오자 도진은 자연스럽게 그걸 받아 들었다.그리고 뚜껑을 열어 컵에 따라 놓았다.지설은 TV를 켰다.아직 설 특집 방송은 시작 전이었다.지설이 도진에게 물었다.“도진 씨는 원래 명절 특집 같은 거 봐요?”도진이 답했다.“딱히 챙겨 보는 편은 아니었어요.”그때 요한이 해산물 요리 한 접시를 들고나오며 투덜거렸다.“명절 특집 웃긴다는 포인트가 난 하나도 이해가 안 돼. 원래 그런 건 저 북쪽 사람들만 웃긴 건가?”은화는 요한 뒤를 따라 나오다가 발끝으로 요한 발을 툭 찼다.웃으며 말했다.“너한텐 Y시 말고 다 북쪽이지. 그럴 거면 그냥 Y시 방송만 봐.”요한은 으스대듯 말했다.“난 설엔 원래 Y시 방송이랑 TVB만 봐. 너희는 그 맛을 몰라.”음식이 하나둘 다 올라오고, 네 사람은 자리에 앉아 컵을 들었다.“새해 복 많이 받아요!”“올해도 대박 나자!”그때 요한이 싱글싱글 웃으며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은화에게 내밀었다.은화는 얼른 받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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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9화

병실 안에는 적막만 가득했다.유연은 홀로 침대에 기대 앉아 있었다.유빈이 여자친구를 데리고 집에 들어간 탓이었다.주씨 집안 사람들은 집안 배경도 좋고 정·재계 인맥까지 갖춘 그 여자를 극진히 맞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그러니 자연히 유연에게 쏟아지던 관심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유연은 늘 자신이 부모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믿어 왔다.그런데 이제야 알게 됐다.오빠의 앞길과 자기 곁을 지키는 일, 그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부모는 망설임 없이 전자를 택할 사람들이라는 걸.유연의 마음은 복잡하게 흔들렸다.그때 문득 지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왜 주씨 집안의 권세를 자기 일에 쓰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 다 쏟아붓느냐고.그 말을 떠올리자 유연은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다.여태 시간을 전부 놀고 즐기는 데만 써 버렸다는 걸.‘내가 혼자서도 뭔가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엄마 아빠도, 영민 오빠도 지금처럼 나를 대하지는 않았을까?’그러다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그런데... 이게 정말 다 내 탓이기만 할까?’부모는 어릴 때부터 유연과 유빈을 전혀 다르게 키웠다.아들에게는 훨씬 엄격했다. 유빈에게 어릴 때부터 기업 경영에 필요한 훈련을 시켰고, 앞으로는 오로지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꾸준히 심어 줬다.그렇다면 유연은 어땠을까?좋게 말하면 사랑받으며 자랐다고 할 수 있었다.하고 싶은 대로 두고, 자유롭게 길러졌다.하지만 그런 자유에도 대가는 있었다.유연은 어려서부터 그저 놀고, 집안 돈을 쓰는 데 익숙해졌다.그나마 피아노를 잘 쳐서 가족들이 밖에서 자랑할 수 있다는 정도가 전부였다.게다가 부모는 늘 말했다.유연은 귀한 집 딸이니 결혼 전에는 집안에 기대고, 결혼하고 나면 남편에게 기대면 된다고.하지만 오빠나 남편이 나중에 자기 편이 되어 주지 않는다면?유연은 더는 그 생각을 깊이 밀고 들어가지 못했다.‘지금부터라도 바꿔야 하는 걸까?’그때 병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이 시간에 누가 찾아올지 짐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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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0화

유연은 울다가 웃다가 하며 반지를 손가락에 끼웠다.유연은 영민을 꼭 끌어안고 물었다.“영민 오빠, 우리 언제 결혼해?”영민이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연휴 지나면 바로 준비하자. 결혼식.”‘우리가 주유빈보다 먼저 결혼해야 해.’유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밀려드는 행복감이 너무 커서 그녀는 조금 전 스스로 했던 결심마저 까맣게 잊어버렸다.‘영민 오빠는 절대 나 안 떠날 거야.’어쩌면 그렇게 아등바등 애쓰지 않아도 될지도 몰랐다.유연은 남은 인생을 남자에게 기대어 사는 게 문제 될 게 없을 거라고 스스로 위로했다.유연에게 영민 오빠는 누구보다 좋은 사람이었다. 분명 자신을 실망하게 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영민은 그날 밤 유연의 곁에 머물렀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병원을 나섰다.비서는 보험사 쪽 보상 비율과 관련된 약관을 정리해 메시지로 보내왔다.영민은 짧게 답장을 보냈다.“확인했어.”그러고는 화물차 운전사를 멀리 빼돌려 놓으라고 지시했다.그때 장경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영민아, 올해는 왜 집에 안 들어오니? 라희도 안 오고, 너도 안 오고, 집이 너무 썰렁해. 엄마 혼자 있으려니까 너무 적적하네.]어머니의 투덜거림을 듣고 있자, 영민은 지설과 아직 이혼하지 않았던 때가 떠올랐다.해마다 설이 오면 지설은 직접 부엌에 들어갔다. 오후 4시부터 여섯 시까지 꼬박 두 시간 동안 움직이며 한 상 가득 음식을 차려 냈다.그때의 영민은 그런 지설을 전혀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식탁에 앉아 이 음식은 간이 안 맞는다, 저 음식은 별로다 하며 불평하는 날이 더 많았다.지설은 그 시절의 영민을 꽤 많이 받아 줬다. 대부분은 그저 웃고 넘겼다.식사가 끝나고 나서도 지설은 쉬지 못했다.상 위를 치우고, 과일을 깎아 내오고, 차까지 준비했다.장경은은 가사도우미에게 일부러 쉬라고 하면서 지설을 더 많이 부려 먹었다.그때의 영민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자기가 지설을 어려운 상황에서 구해 줬으니, 지설이 그 정도 하는 건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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