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백수에서 개미들의 신이 되다: Chapter 11 - Chapter 20

100 Chapters

제11화

소현성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몸만들기에만 관심 있는 줄 알았던 주희재가, 오히려 시장 흐름을 읽는 눈이 남달랐다는 걸 새삼 실감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바로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하나가 그의 숨을 턱 막히게 했다.‘잠깐... 어제 내가 모의 계좌에서 풀매수한 종목도 배터리 테마주였잖아?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이혜림 씨, 소현성 씨! 거기서 뭐 하는 겁니까? 다들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 거 안 보여요? 자료 빨리 정리해서 올려요!”불쑥 날아든 거친 호령이 그의 생각을 단칼에 끊어냈다. 수석 트레이더의 짧고 날 선 재촉이었다.“아, 네! 알겠습니다. 현성 씨, 얼른 가요.”이혜림이 정신이 번쩍 든 듯 소현성의 팔을 잡아끌었다.‘그래, 어차피 모의투자일 뿐이야. 가상 숫자에 불과한데 괜히 의미 둘 필요 없어.’소현성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생각을 떨쳐냈다.지금 가장 중요한 건 단 하나였다.‘튀는 행동은 금물! 괜히 눈에 띄어 샌드백이 되지 말 것! 그리고 맡은 잡무는 단 하나도 틀리지 않게 처리할 것!’이 광풍 같은 장세 속에서 불필요한 화살이 자신에게 꽂히는 일만큼은 반드시 피해야 했다.같은 시간, 트레이딩본부 1팀 팀장실.공기는 납덩이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압도적인 카리스마와 냉철한 판단력으로 존경받던 주희재조차, 이 순간만큼은 굳게 입술을 다문 채 이마에 깊은 주름을 새기고 있었다.그의 눈은 눈앞에서 광기처럼 요동치는 시세 화면에 매섭게 꽂혀 있었다.주희재의 팀원들 역시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한 채 일제히 긴장한 상태로 굳어 있었다.모니터 속에서 인니시아 정부의 예고 없는 ‘정책 기습’이 촉발한 전면적인 혼란이 실시간으로 펼쳐지고 있었다.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먼 나라에서 금속 생산량을 줄이겠다는 뉴스 한 줄, 국제 정세나 금융시장에 무지한이라면 고개를 갸웃하며 ‘뭐가 대단하다고 이 난리냐’ 할 만한 일이었다.그러나 시장에 몸 담근 사람이라면 1분 1초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겉보기에는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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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아... 오른다! 미친 듯이 치고 올라간다!”“젠장, 미쳤나? 이거 전 고점 뚫겠는데?”거래 시스템에서 ‘띵’ 하는 장 시작 알림음이 울린 순간 마치 눌려 있던 화약고에 불이 붙은 듯, 사무실 전체가 폭발했다.순간 억눌려 있던 비명과 절규, 거친 욕설이 사방에서 끓어오르듯 터져 나와 사무실을 뒤흔들었다.“미친... 도대체 어디까지 치솟는 거야? 멈춰! 제발 좀 멈추라고!”다른 팀의 베테랑 트레이더들은 이성을 놓아버린 채 울부짖었다. 하나같이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목에는 핏줄이 튀어나왔다.그들은 거의 광기에 가까운 눈빛으로 모니터를 집어삼킬 듯 노려봤다.이런 순간에는 평소 각 팀에서 카리스마를 담당하던 팀장급 인물들조차, 흥분한 트레이더들의 신경을 건드리는 언행은 삼가야 했다.계좌 속 숫자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가고 눈앞에서 돈이 순식간에 증발해 버리는 상황에서는 그 어떤 이성이나 품위도 무력했다.설령 개인 자산이 아닌 회사 계좌를 운용한다 해도 매 거래의 손익은 곧장 개인 실적과 연동됐고, 이는 연말 성과급이라는 생명줄과 직결돼 있었다.거래를 삶의 전부처럼 여기는 프로들에게 지금은 둔탁한 칼날로 손절을 강제당하는 능지처참에 가까운 고통이었다.“팀장님, 배터리 관련주가 지금 거의 전 종목이 빨갛습니다. 강력한 상승세입니다..”트레이드본부 1팀 직원 한 명이 키보드를 미친 듯 두드리며 보고했다.주희재의 차분한 중저음 보이스는 주변의 광란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지금은 감정에 휩쓸린 초반 반응일뿐입니다. 곧 종목별로 갈라질 겁니다. 진짜로 장기적 이익을 가져갈 수 있는 건 니켈 원자재를 대량으로 확보한 기업뿐입니다. 우리 쪽 손실 추산은 나왔나요?”“다행히... 어제 잡아둔 숏 포지션들은 장 시작 직후 빠르게 커트했습니다. 손실은 예상 범위 안입니다.”보고하던 팀원도 그제야 조금 숨을 고르는 듯했다.그러나 곧 표정이 굳어졌다.“문제는... 다른 팀들입니다. 저 포지션 규모로 봐서는... 공매도 패닉이 터진 것 같습니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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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이 순간, 배터리주 하락을 믿고 대규모 숏 포지션을 구축했던 기관들은 인니시아 발 블랙 스완을 정면으로 맞아버렸다.주가가 거꾸로 폭등하자 그들은 부랴부랴 손절을 시도했지만, 이미 늦었다.시장에는 매수세만 폭발적으로 몰려들었고, 정작 그 물량을 받아낼 매도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결국 그들의 숏 커버 매수 자체가 다시금 주가를 떠받치는 연료가 되었고,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그나마 이 재앙의 무한 확산을 조금이라도 막아주는 장치가 있었다.바로 단일 종목 일일 변동 폭 제한 제도.그러나 이 얄팍한 ‘보호 장치’로는 결코 안심할 수 없었다.모두가 이성을 잃고 매수 버튼만 연타하는 이런 극단적 장세에서는, 특정 종목이 며칠이고 상한가에 갇혀 매도 물량이 단 한 주도 나오지 않는 일이 흔했다.공매도 포지션을 쥔 이들에게 그것은 곧 사형선고였다.손실은 날마다 불어나는데 청산할 방법조차 없으니, 그저 눈 뜬 채로 계좌가 녹아내리는 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바로 지금, 숏 포지션에 베팅했던 기관들에게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덴미안 +10%]장 시작 불과 몇 분 만에 덴미안은 로켓에 불이 붙은 듯 곧장 상한가에 직행, 거대한 매수 잔량에 봉쇄돼 버렸다.호가창 위로는 천문학적인 매수 물량이 끝도 없이 쌓여 올라가며, 두꺼운 벽처럼 시장을 가로막고 있었다.그 벽은 매도자에게는 절망의 장벽, 매수자에게는 광기의 신호탄이었다.“...”평소라면 장이 열려 있는 동안 주희재는 한 치 흔들림 없이 빠르게 변하는 숫자와 캔들 차트의 흐름에 깊이 몰두했다.바깥에서 들려오는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았고, 사소한 잡념이 비집고 들어올 틈조차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집중력이 흔들렸고, 설명하기 힘든 불안이 가슴을 짓눌렀다.결국 몇 가지 필수적인 헤지 거래만 빠르게 처리한 뒤, 나머지 대부분의 지시는 일찍 끊어버렸다.어차피 지금의 시장은 미친 듯이 특정 배터리 섹터와 원자재 섹터로만 돈이 몰리며, 다른 업종은 거래량이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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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혹시 주희재의 뜨거운 시선을 느낀 걸까.사무실 구석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소현성이 잠시 고개를 들어 팀장실 쪽을 흘끗 바라봤다.그러나 주희재와 눈을 마주친 순간 놀란 토끼처럼 움찔하더니 곧바로 허겁지겁 돌아서며 다시 눈앞의 업무에 몰두했다.“그냥 직접 가서 물어볼까?”주희재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번뜩 스쳤다.그러나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물어본다고 있는 그대로 대답해 주겠어? 괜히 삽질하는 것밖에 더 돼? 저 녀석...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해.’소현성은 회장과 자신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했다.심지어 지난번 ‘신의 한 수’라 불릴 만한 관리종목 중윤골드 매수 건에 대해서도 질문이 나오자 그저 운이 좋았다고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명백히 투자 비결을 나눌 생각이 없는 거야. 그저 모의투자라 해도...’“하지만...”주희재는 고개를 들어, 잡무를 척척 해내는 소현성을 바라보았다.출력한 문서를 묶고 보고서를 나누고 심지어 커피까지 챙겨 나르면서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었다.그 성실한 태도는 도리어 눈에 띄게 다가왔다.‘게다가 잡무까지 마다하지 않고 성실한 태도를 보이는데...’속을 할 수 없는 소현성의 행동은 주희재의 마음속 의혹과 호기심을 자꾸만 자극했다.마치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가 던져진 듯 파문은 점점 크게 번져 갔다.‘소현성 씨의 정체는 대체 뭘까? 설마 회장님이 어딘가에서 비밀리에 발굴해 직접 심어둔 인재? 언젠가 크게 터뜨리려는 숨겨둔 카드? 하지만 그 초라하기 짝이 없는 이력서랑은 도무지 맞아떨어지지 않잖아.’“이대로는 안 되겠어.”주희재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리고 그 순간 마음속에서 결심이 섰다.‘스스로 털어놓길 거부한다면 나도 억지로 캐묻지는 않겠어. 내 팀에서 무능하게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꼴은 봐줄 수 없어.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인재를 계속 서류 출력이나 커피 심부름 따위에 묶어둘 수도 없지. 그건 자원 낭비를 넘어 회사에 폐 끼치는 짓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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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첫째, 절대 웃지 않는다. 둘째, 어깨는 축 처뜨리는 게 기본자세다. 절대 가슴 펴고 고개 들지 않는다. 셋째, 고개 숙이고 쥐 죽은 듯 지내면서 절대 눈 마주치지 않는다. 맞죠?”“어머, 현성 씨, 멘토가 누구예요? 어떻게 이런 꿀팁을 전수해 줬대요?”이혜림이 장난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기억력도 좋네요. 제가 그동안 챙겨준 보람이 있네요.”“제가 지금까지 버틴 건 다 누나 덕분이에요! 고마워요, 누나!”“쉿!”이혜림이 급히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긴장한 목소리로 속삭였다.“작게 말해요. 오늘 같은 날은 절대 웃으면 안 돼요.”그 모습에 소현성은 얼른 웃음을 거뒀다.오늘 회사 분위기는 정말 보통날과 달랐다. 모두가 혈안이 된 황소처럼 날이 서 있었고 피곤함에 찌든 얼굴과 눈 흰자에는 핏발까지 서려 있었다.사무실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마치 압력이 내려앉은 듯 숨 막혔다. 여기저기서 낮게 뱉는 욕설과 짜증 섞인 신음이 이어졌다.“누나, 팀장님 나가기 전에 저를 째려보신 것 같았거든요? 저 오늘 실수한 거 없겠죠?”소현성이 코끝을 문질러가며 눈치를 봤다.“그건 아마도...”이혜림은 그 모습을 보고 괜히 고개를 갸웃하며 뜸 들였다.“아마도 현성 씨가 잘 웃는 얼굴상이라 그런 거 아닐까요?”“헉... 그럼 더 조심해야겠네요.”소현성은 얼른 표정을 굳히고 무력한 것처럼 보이려 애썼다.‘에휴... 나 같은 인턴은 발언권도 없고 회사라는 먹이사슬 맨 밑바닥에서 언제든 잡혀가 먹히는 제물 신세지. 오늘처럼 폭풍이 휘몰아치는 장세에 살아남으려면 고개 숙이고 몸 사리는 수밖에 없어... 제발 피비린내 장면 안 보고 무사히 퇴근하고 싶다... 열심히 기도할 거야.’“하아... 언제쯤 선임 트레이더로 승진해서 이런 꼴 안 당할 수 있으려나.”이혜림이 푸념하듯 중얼거리다, 문득 눈을 반짝였다.“아 맞다. 내 모의투자 계좌!”그녀는 황급히 계좌를 열어 확인했다. 그리고 모니터 속 실적을 보자마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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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시선이 소현성의 모니터에 꽂히는 순간, 이혜림은 그대로 얼어붙었다.화면에 선명하게 뜬 종목명과 그 옆의 ‘+10%’ 상한가가 시선 강탈이었다.“으악!”방금 자기 계좌가 마이너스로 빠졌을 때보다 훨씬 더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눈은 동그래져서 마치 괴물이라도 본 듯했다.“잠, 잠깐만... 상한가? 현성 씨가 산... 덴미안이 상한가까지 갔다고요?”“아... 그래서 아까 보지 말라니까요...”소현성이 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이혜림은 마치 외계인을 보듯, 위아래로 그를 훑어봤다. 목소리에는 믿기 힘든 충격이 실려 있었다.“현성 씨... 솔직히 말해요. 혹시... 업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그런 전설급 투자 천재 아니에요?”“아닙니다! 절대 아니에요! 저는 그냥...”“아아아, 망했다 망했어... 창피해 죽겠네.”말을 잇지도 못한 소현성을 두고 이혜림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절망적인 신음을 흘렸다.“그런 줄도 모르고 지금까지 현성 씨 앞에서 초보 티를 팍팍 내면서 얄팍한 지식으로 가르치려 했다는 거잖아요? 고수 앞에서 잘난 척한 꼴이 됐네요... 아, 정말 쪽팔려요...”“아니에요, 혜림 누나! 진짜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소현성이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누나가 알려주신 거 다 도움 됐어요. 제가 많이 배웠다니까요. 진짜 고마워요.”“으윽... 괜찮아요, 그냥 제가 바보처럼 혼자 괜히 오지랖 부린 거잖아요...”이혜림은 그의 말을 듣지도 않고 혼자 부끄러움에 몸서리쳤다.“그때 속으로 분명 ‘와, 이 누나 오지랖도 심하고 허세 작렬이네’라고 생각했겠네요? 맞죠? 맞잖아요!”“진짜 아니라니까요, 누나!”“안 되겠어요.”순간, 이혜림이 손을 내려놓고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눈빛은 이상할 만큼 단호했다.“오늘부터는 제가 현성 씨한테 배울 거예요. 앞으로 제 멘토로 모시겠습니다.”“아, 누나... 제발 그만하세요. 저 진짜 그렇게 대단한 사람 아니에요...”소현성은 손사래 치며 필사적으로 항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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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이창민은 숏 스퀴즈로 인한 전반적인 장세 상황을 떠올리며 울컥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거칠게 주무르며 쏟아냈다.“제가 평소에 입 아프게 떠들어봤자 제대로 듣는 사람 하나도 없었던 거 아닙니까? 리스크 관리를 최우선으로 하라고 몇 번을 강조했습니까? 그런데 전부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죠. 당장 눈앞의 푼돈밖에 못 보는 건지... 그까짓 콩고물에 환장한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리스크 관리에 신경 쓴다고는 했지만... 아무도 예상 못 한 폭탄선언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주희재가 담담히 대답했다.“업계 전반적으로 좋은 기회라고 착각했으니까요.”“저도 알아요. 그래서 팀장들 탓만 하려는 건 아닙니다.”이창민은 손을 휘휘 저으며 말을 끊었다.“따지고 보면 다 그 빌어먹을 인니시아 놈들 때문입니다. 이런 예기치 못한 악재도 없으니 말입니다. 뒤통수치듯 시장을 흔들어 놓는 게 말이 됩니까.”길게 한숨을 뱉은 그는 잠시 진정을 되찾더니 다시 주희재를 날카롭게 바라봤다.“저를 찾아온 이유가... 아까 뭐라고 했었죠? 1팀 계약직 인턴 정규 채용 관련이라 했습니까? 벌써 전환을 앞둔 인턴이 있던가요? 제 기억에는...”“본부장님 기억이 정확하십니다. 제가 말씀드린 인턴은 최근에 막 입사한 소현성 씨입니다.”주희재가 단호하게 답했다.“소현성 씨요? 입사한 지 얼마 안 됐다고요?”순간, 이창민은 뭔가를 기억해 낸 듯 미간을 찌푸리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잠깐만요... 주 팀장, 혹시 지금 말하는 소현성 씨, 위에서 우리 본부로 내려보낸 그 낙하산 말하는 겁니까?”“맞습니다, 본부장님.”주희재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확답을 듣는 순간, 이창민의 얼굴에 묘한 빛이 스쳤다. 그는 눈앞의 주희재를 위아래로 훑으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비꼬았다.“주 팀장, 의외네요. 주 팀장 같은 올곧은 사람 입에서 이런 ‘청탁’이 나올 줄은 몰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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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주 팀장이 저렇게까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다니...’이창민의 목소리가 어느새 무겁게 가라앉았다.“주 팀장,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렇게 판단한 겁니까?”“저희 팀으로 온 뒤, 제가 직접 소현성 씨에게 두 차례 모의투자 과제를 맡겨 능력을 검증해 봤습니다.”주희재는 준비해 온 서류철을 꺼내 소현성의 모의투자 실적을 정리한 평가 보고서를 내밀었다.“두 번의 모의투자 실적입니다.”이창민은 못 미더운 표정으로 보고서를 받아 들었다. 그러나 불과 10초 만에 눈동자가 급격히 수축하며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다.“이 보고서를 믿어도 되는 겁니까? 관리종목이었던 ‘중윤골드’에 이어, 이번 사태 직전의 ‘덴미안’까지... 정말 그 인턴이 연달아 상한가를 찍은 종목들을 매수했다는 겁니까? 그것도 풀매수로요?”“네, 그렇습니다.”주희재가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소현성 씨는 지금까지도 운이 좋았다고만 잡아떼고 있지만... 본부장님, 예전에 직접 제게 하신 말씀 기억하십니까?”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창민의 눈을 마주 보며 또박또박 이어갔다.“한 번은 우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우연이 반복된다면 그건 운이 아니라, 반드시 그럴 만한 근거가 있다고 말씀해 주셨죠. 그러니 모두가 기피하던 상폐 직전 종목이 상한가를 찍을 거로 예측하고 풀매수까지 했다는 건 단순한 운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꼭 이럴 때면 옛날얘기까지 끄집어내서는...’이창민은 머리가 지끈거려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그는 보고서를 탁 내려치며 묵직하게 물었다.“주 팀장, 이건 장난으로 끝낼 문제가 아닙니다.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주 팀장의 판단이 틀려서 회삿돈을 말아먹으면 어쩔 건데요?”“본부장님, 어차피 그 인턴은 회장님께서 직접 지시하고 들여보낸 사람 아닙니까?”주희재가 보기 드물게 입꼬리를 싱긋 올렸다.“사고가 터지더라도 회장님께서 직접 나서서 수습하지 않으시겠습니까?”“주 팀장, 저를 설득할 준비를 단단히 했군요.”이창민은 순간 말문이 막혔고 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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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들었어요? 이번 장세 끝나고 우리 쪽 몇 명은 멘탈 나가서 아예 사표 던지고 나갔다더라고요.”사무실 어딘가에서 흘러나온 낮은 목소리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긴장된 공기와 뒤섞여 사무실 전체를 짓눌렀다.“허, 그런 일은 늘 있었죠. 실력 안 되면 버티질 못하는 데가 증권시장이죠.”다른 이가 무심하게 받아쳤다. 마치 수십 번은 본 광경이라는 듯 담담했다.“우리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주가를 예측한다지만, 그걸 오차 없이 맞히겠다는 건 애초에 오만이죠. 그건 신의 영역이니까요. 이 정도의 변동에도 불안해지고 거래할 때 손발이 풀린다면 차라리 미리 손을 떼는 게 낫습니다.”투자란 결국 심리전이었고 거대한 증시는 인간의 탐욕과 공포가 매일 끓어오르는 용광로 같았다. 어떤 날은 불길이 치솟아 이성을 집어삼켰고 어떤 날은 얼음물 들이붓듯 모든 용기가 얼어붙었다.겉보기에는 껍데기뿐인 부실기업이 전 고점을 뚫고 치솟는가 하면 재무구조 탄탄한 우량주가 바닥에 처박힌 채 꿈쩍도 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현실은 늘 증명해 왔다. 주가를 움직이는 힘은 기업 펀더멘털만이 아니라, 시장의 분위기와 투자자들의 심리, 탐욕과 공포라는 사실을.인간의 이성은 거센 파도 앞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졌다. 그래서 이런 예측 불가한 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 스스로 중심을 잃지 않는 게 중요했다.특히 매 순간의 판단이 곧 생사를 가르는 사모펀드 트레이딩 바닥에서는 더욱 그랬다. 심지가 단 한 번만 흔들려도 끝날 수 있었고 한순간에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이 세계는 결코 개인의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회장 집무실.네오투자캐피탈의 수장 황태원은 보고를 마친 담당자를 무표정하게 바라봤다. 목소리에는 기쁨도 분노도 전혀 비치지 않았다.“배터리 섹터 리포트는 정리됐습니까?”“예, 회장님.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제때 손실을 최소화했습니다.”부하 직원이 서둘러 답하며 말끝을 다잡았다.“초반에는 시장이 과민하게 출렁였지만, 곧 조정 국면으로 들어가면서 프리미엄이 빠르게 해소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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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형광등 불빛이 눈을 찌르듯 매서워 시야가 아릿하게 번졌다.네오투자캐피탈.황태원이 직접 일궈낸 이 거대한 배는 전례 없는 속도로 파도를 가르며 업계 최상위 사모펀드 타이틀을 향해 질주해 가고 있었다.겉으로는 찬란해 보이는 성공이었고 거침없는 성장세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황태원의 가슴을 옥죄는 불안은 그만큼 더 커져만 갔다.마치 얼어붙은 겨울 호수를 걷는 기분이었다. 발밑에서 ‘쩍’하고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한 발만 잘못 내디뎌도 그간 쌓아온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작은 실수 하나가 지금껏 쌓아 올린 부와 명성을 송두리째 차가운 심연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증권시장은 악마의 룰렛이라 불러도 부족할 만큼 잔혹한 곳이었다.수년간 피땀 흘려 쌓아 올린 탑이 단 한 번의 실수, 단 한 번의 잘못된 판단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산산조각 나는 곳이었으니까.“젠장... 이젠 정말 지긋지긋하다...”그의 입술에서 낮고 거친 욕설이 새어 나왔다.관자놀이를 짓누르자, 머릿속은 벌집이라도 들쑤신 듯 윙윙 울려댔다.‘잠깐이라도 게임에 접속해야겠어. 그래야 잠시나마 이 불안을 가라앉힐 수 있으니까.’오직 그 가상 세계에서만은 마음껏 싸울 수 있었다.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현실의 압박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그에게 게임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었다. 무너져 내리는 정신을 붙드는 유일한 탈출구이자, 반드시 필요한 산소호흡기였다.한참 동안 말없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던 그의 머릿속에 불현듯 소현성이 떠올랐다.“현성이 그 녀석은 지금쯤 잘 적응하고 있으려나...”소현성을 떠올리자 황태원의 미간이 저도 모르게 깊게 찌푸려졌다.막상 네오투자캐피탈에 들여보내고 나니, 그의 존재는 언제나 마음을 무겁게 했고 신경이 쓰이게 했다.‘겉으로는 특별 대우 같은 건 없을 거라고 말했지만, 솔직히 나조차도 그 말을 온전히 믿긴 어렵지. 애초에 내가 직접 지시해 억지로 밀어 넣은 낙하산인데, 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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