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백수에서 개미들의 신이 되다: Chapter 21 - Chapter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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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게다가 입사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채용 연계형 인턴 트레이더 어시스턴트가 무슨 큰 사고를 치겠어...’장지안이 조심스럽게 들고 있던 품의서를 황태원의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황태원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서류를 집어 들어 무심히 넘기다, 눈이 번쩍 커졌다.품의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눈빛이 움찔하며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잠깐만요... 이게 도대체 뭡니까?”목소리가 치솟은 황태원의 얼굴에는 믿기지 않는 충격이 그대로 드러났다.“트레이딩본부 채용 연계형 인턴 정규직 전환이요? 게다가 선임 트레이더로 파격 승진을 제안한다고요?”문서에 적힌 내용은 그의 예상과 전혀 맞지 않았다.장지안은 황태원의 반응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회장님. 최근 트레이더본부에 퇴사자가 많아 공석을 메우기 위해 회사 내부에서 성과가 뛰어난 채용 연계형 인턴 몇 명을 우선 정규직 전환을 거쳐 트레이더 어시스턴트에서 선임급 트레이더로 승격시키기로 했습니다. 소현성 씨도 그 명단에 포함돼 있습니다.”“정말 놀고들 있네요!”황태원은 손에 쥔 종이를 구겨버릴 뻔했다. 눈에 화가 불길처럼 치솟으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이 미친 자식들이 다 같이 정신줄을 놓은 건가? 입사한 지 며칠도 안 된 애송이를 선임 트레이더로 승진시켜? 캔들 차트도 제대로 못 읽는 놈에게 회사 자금으로 트레이딩할 권한을 주겠다고? 지금 장난하나?”황태원은 책상을 내리치며 화를 쏟아냈다. 그는 당장이라도 트레이딩본부 본부장 이창민과 1팀 팀장 주희재를 불러 호되게 갈구고 싶었다.그러나 책상을 내리치고 난 후, 황태원은 그대로 멈춰버렸다.“아, 아니지.”잠깐 사이에 눈에서 분노가 사라졌고 대신 복잡한 감정이 어렸다. 머릿속은 쉴 새 없이 굴러가기 시작했다.‘밑에 있는 놈들이 모를 리가 없지. 소현성이 내가 직접 꽂아 넣은 낙하산이라는 걸. 특히 현성이를 맡고 있는 주희재 팀장은 요즘 속 좀 끓였을 거다. 매일 정체불명에 속을 알 수 없는 존재를 떠안고 있는 기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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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황태원은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며 미간을 주무르고 두 손을 깍지 껴 배 위에 올려놓았다.“에휴, 별수 없죠...”체념 섞인 목소리에는 트레이딩본부의 결정을 받아들인 듯한 담담함이 묻어 있었다.“결국 다 제 탓이니 어쩌겠습니까. 애초에 분명히 못 박아두질 않고 애매하게 사람을 하나 꽂아 넣으니, 밑에서는 괜히 눈치만 보다가 이런 일이 터진 거겠죠. 생각해 보면 본부장이든 팀장이든, 이 이상 묘수를 두기도 어려웠을 겁니다.”비서에게 그렇게 푸념하면서도, 속으로는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스쳤다.‘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기회라고 치자. 현성이 그 녀석을 증시 한복판에 던져버리는 거야. 모의투자 같은 장난이 아니라, 회사 자금으로 굴러가는 리얼 무대. 파란만장하고 피 튀기는 이 판에서 투자라는 게 얼마나 뜨겁고 얼마나 아픈 건지 똑똑히 느끼도록.’그의 입가에 씁쓸한 비웃음이 번졌다.‘현실에 따귀 몇 대 제대로 맞아보는 것도 나쁠 게 없지. 어차피 저 자식은 투자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생짜 문외한이잖아. 그걸 뻔히 알면서도 주희재 팀장이 선임 트레이더로 올려줬다면... 지금 당장 회사를 위해 돈을 벌어오길 바라서 내린 결정은 아닐 거야. 개소리도 그런 개소리가 없지. 그냥 보여주기식으로! 나한테 보이는 제스처일 뿐이야.’황태원의 머릿속에는 벌써 주희재의 아부하는 얼굴이 떠올랐다.“보십시오, 회장님. 저는 회장님께서 직접 발탁하신 분을 절대 소홀히 대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바로 선임 트레이더로 올려드렸잖습니까. 만족하시겠습니까?”자수성가로 성공한 황태원은 그런 술수쯤은 훤히 꿰뚫고 있었다.“주희재 팀장도 제가 어떻게 나올지 다 계산하고 있었을 겁니다.”그는 담담하게 장지안을 향해 말했다.“진짜 자금을 소현성 씨 손에 맡길 리는 없겠지요. 선임 트레이더 직함만 걸어두고 소액의 자금만 운용 가능하게 한도를 제한할 겁니다. 그저 겉으로 보기에만 그럴듯해 보이는 선임 트레이더로 올려놓으려는 겁니다. 보여주기용일 뿐이겠지요.”그리고 나직이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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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트레이딩본부 사무실 안에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겉보기엔 평온했지만 주희재의 신경은 바늘 끝처럼 곤두서 있었다.그는 모니터 속 출렁이는 숫자와 차트에 몰두하는 척했지만, 자꾸만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꼭대기 층 회장 집무실 쪽으로 스쳤다.숨 막히는 고요, 돌아갈 길 없는 정적이 흘렀다.‘상식적으로라면 어제 바로, 늦어도 오늘 오전쯤에는 회장님의 벼락같은 호통이 떨어져야 했어. 관련 담당자를 전부 불려가서 쏟아지는 질책을 받는 게 순리 아닌가...’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입사한 지 며칠 안 된, 실전 매매 경험도 없는 인턴을 선임 트레이더로 앉혔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니. 업계에서 조롱거리로 남을 일이야. 회장님이 보고를 못 받았을 리는 없는데...’그런데 정작 어제도 오늘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큰 돌을 던졌는데도 파문 하나 일지 않는 듯, 이상할 만큼 고요했다.오늘은 토요일이었다.하지만, 이 바닥에서 주말이니 휴식이니 하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하루에도 수십 건의 안건을 처리하는 회장조차 토요일마다 사무실에 나와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아랫사람들이 감히 마음 놓고 쉴 수 있겠는가.시장 분석, 보고 정리, 데이터 수집, 하나라도 사람 손이 닿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 일투성이였다.주말 특근은 그저 일상이었고 숨 쉬듯 당연한 기본 동작이었다.‘그런데 위에서 아직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니...’주희재는 깊게 숨을 들이켰지만 심장이 ‘쿵쿵’ 요동쳤다.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려는 기대와 추측을 애써 누르려 했지만, 그의 눈빛은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역시 회장님은 알고 계셨던 거야. 회장님은 이미 소현성 씨의 정체를 다 파악하고 있었던 거지. 그 녀석이 결코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걸... 분명 알고 계셨을 거야. 내가 대담하게 추측했던 대로 소현성은 그냥 인맥으로 우리 부서에 꽂아둔 허수아비가 아니었어. 아직 출신이 뚜렷하지 않고 정체가 미묘하게 감춰진 비밀 병기 같은 사람일 거야. 그러니 소현성 씨를 직접 밀어 넣고 말도 안 되는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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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그래, 조금만 더 지켜보자. 혹시라도... 회장님 쪽에서 이제야 보고를 받아 조치를 취하지 못했을 뿐이라면? 아니면 지금 일부러 숨을 죽이고 있다가 어느 순간 벼락같이 화를 내며 전화를 걸어와 전부 뒤엎어 버린다면? 괜히 성급하게 떠벌렸다가 그대로 내 발등을 찍는 꼴이 될 수도 있잖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하지만 지금 이 고요한 분위기를 보면 오히려 묵인에 가까워 보였다.주희재의 가슴속 확신은 점점 더 단단해졌다.‘회장님은 이미 이 결과를 다 예상하고 계셨던 거야. 아니, 어쩌면... 이 모든 게 처음부터 회장님이 그리고 있던 시나리오였을지도 몰라.’그는 무언가 중요한 실마리를 잡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희미한 윤곽만 보일 뿐, 가까이 다가가려 하면 안개 속에 가려져 사라져 버렸다.눈앞에 답이 있는데도 초점이 맞지 않아 흐릿하게만 보이는 그런 기분이었다....소현성은 납덩이를 단 것처럼 무거운 두 다리를 질질 끌며 네오투자캐피탈의 호화로운 빌딩을 나섰다.토요일 저녁 무렵, 뉘엿뉘엿 기울어가는 석양빛이 그의 얼굴에 비쳤다. 햇살은 따뜻했지만 뼛속까지 스며든 피로를 밀어내진 못했다.거리에는 퇴근길 특유의 매캐한 배기가스 냄새와 먼지 냄새가 섞여 있었다.소현성은 속으로 툭 내뱉었다.‘주말에도 출근이라니... 진짜 사람 잡네.’물론 토요일은 평일에 비하면 나은 편이었다. 아침 9시에 시작해 조금 일찍 퇴근할 수 있으니까.하지만 어쩌겠는가, 금융업계에 몸 담고 있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평일에는 실전 매매에 매달리고 주말에는 차분히 앉아 일주일간의 데이터를 정리하고 분석하고 복기해야 했다.트레이딩본부라면 졸업장을 받기 위해 반드시 채워야 하는 학점처럼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에이, 어차피 해야 하는 거 투덜거려서 뭐 해.’소현성은 금세 고개를 흔들며 스스로를 달랬다. 입가에는 쓴웃음이 걸렸다.‘어쨌든 주말 특근 수당은 나오잖아. 감사한 일이라도 생각하자.’말은 그렇게 했어도 몸은 이미 시든 녹초가 되어갔다.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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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말을 이어가던 소현지의 목소리가 불현듯 멎었다. 그제야 소현성의 차림새가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시선은 어느새 소현성이 입은 한눈에도 새로 싼 티가 나는 정장에 고정됐다.잠시 공기가 얼어붙은 듯, 정적이 흘렀다.“오빠... 정장은 왜 입은 거야?”소현성은 본능적으로 어깨를 펴고 가슴을 곧추세웠다. 그리고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시큰둥하게 대꾸했다.“왜긴. 방금 회사에서 퇴근하고 온 거지. 엄마가 얘기 안 했어?”“뭐라고?”소현지는 소파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너무 급하게 움직이다 보니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오빠! 일자리 구한 거야? 정말로 백수 탈출한 거야?”그녀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높아졌다.‘이 가시나가 말하는 본새 하고는!’소현성은 일부러 담담한 척 고개만 끄덕였다.“그래. 오빠 이제 더는 백수 아니야. 그러니까 말 예쁘게 해. 알겠지?”“언제 구한 건데? 이런 큰일을 왜 나한테 말도 안 했어? 대박이다, 오빠! 드디어 직장인이 된 거네.”소현지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기쁨이 가득했다.그러나 곧 표정이 살짝 굳더니 뭔가를 떠올린 듯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소현성을 바라봤다.“잠깐만... 오빠 지금 퇴근했다고? 오늘 토요일인데? 설마 주말에도 불러내는 회사야? 와... 급하다고 이상한 회사 들어간 거 아니야? 직원들 갈아 넣는 악덕 회사 아니냐고!”“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소현성이 표정을 굳히고 단호히 받아쳤다.“네가 생각하는 거랑 달라. 꽤 괜찮은 회사야. 복지도 좋고 대우도 빵빵하고.”“그래? 정말로?”소현지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못 미더운 표정을 지었다.“얼마나 좋은데? 명함 있지? 한 장 줘봐.”“허, 이 녀석이 오빠를 너무 얕보네?”소현성이 여유 있게 웃으며 정장 안주머니에서 명함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명함 한 장을 조심스레 뽑아 건넸다.“눈 크게 뜨고 봐. 놀라서 턱 빠지지나 말고.”“웃기고 자빠졌네. 얼마나 대단한 회사라고 대기업이라도 돼?”툭 하고 명함을 받아 든 소현지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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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세상에... 말도 안 돼...”소현지는 한참이나 중얼거렸다.눈이 동그래진 채로 아직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표정이었다. 놀람과 기쁨이 뒤섞여 표정이 분주하게 바뀌었다.“우리 오빠가? 게임만 하던 집돌이 백수가? 진짜로 네오투자캐피탈에 들어갔다고? 업계 최정상 사모펀드 직원이 됐다고? 이게 말이 돼?”그 순간, 소현성의 가슴이 뜨겁게 차올랐다. 소현지의 반짝이는 눈빛과 들뜬 목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와 주말 내내 쌓여 있던 피로를 한 번에 쓸어갔다.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차오르듯 감싸 왔고 굳어 있던 어깨가 스르르 내려앉았다.‘그래, 이럴 때면 버틴 보람이 있지. 지금까지 고생한 게 다 보상받는 기분이야.’바로 그때였다.“안 되겠다.”소현지가 무슨 큰 결정이라도 한 듯 허벅지를 '탁' 치며 눈을 번쩍였다.“이건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 무조건 축하해야 해.”“응? 잠깐만.”소현성의 ‘경계 센서’가 자동으로 켜졌다. 늘 그랬듯, 소현지의 표정은 오빠의 지갑을 털기 전의 전조였다.“오빠가 한턱내야지. 오늘은 회식이야. 가족 회식!”소현지는 허리에 두 손을 딱 얹고 ‘오늘은 절대 그냥 못 넘긴다’는 눈빛으로 쏘아보았다.“에이... 아직 첫 월급도 못 받았어...”소현성의 웃음이 굳어 갔고 말끝이 작아졌다.“그래서 뭐? 이런 날까지 아끼겠다고? 안 돼. 오빠가 돈을 안 쓰면 내 자존심이 그냥 못 넘어갈 것 같아.”소현지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못을 박았다. 말투는 단호하고 태도는 명확했다.“휴...”소현성은 낮게 신음했다. 머릿속에서는 그동안 아껴 둔 용돈과 게임에 쓰려고 따로 모아 둔 비상금이 떠올랐다. 그리고 가슴이 조금 쓰렸다.‘아... 게임 아이템 사려고 모아 둔 건데... 그래도 어쩌겠어. 돈은 다시 벌면 되지만, 가족의 웃음은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안 되는 거잖아.’잠깐의 망설이던 소현성의 표정에 결심이 번졌다. 소현성은 허리를 펴고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오빠가 쏜다. 취직했으니 제대로 축하하자. 우리 가족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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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보통 증권업계에서 누가 진짜 큰돈을 버는지 묻는다면 대부분은 윗자리에 앉은 이사회 임원이나 고위 경영진을 먼저 떠올리겠죠. 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에요.”쨍하고 맑은 목소리가 무거운 아침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비타민 같은 활력이 담긴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혜림이었다. 그녀는 소현성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마치 업계의 비밀을 알려주듯 차분히 설명을 이어갔다.“고정급여만 따지면 임원들이 많이 받는 게 맞아요. 그런데 성과급, 그러니까 실적에 따라붙는 보너스 얘기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진짜 큰돈은 트레이더들이 벌어들이거든요. 저희 회사만 놓고 봐도 오히려 임원들보다 훨씬 많을 때도 있어요.”블라인드 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책상 위에 얼룩진 그림자를 드리웠다.이혜림의 눈빛에는 흥분이 담겨 있었다.“그래서 회사마다 트레이더들한테 등급을 매겨요.”“등급이요?”“네. 마치 학교 다닐 때 성적표로 줄 세우듯, 성과에 따라 일렬로 나누는 거죠. 금융업계에서도 특히 사모펀드는 전반이 다 그럴 거예요.”‘아... 그래서였구나.’소현성은 속으로 무릎을 쳤다.트레이더들이 늘 예민하게 곤두서 있고 서로를 견제하며 피 터지게 싸우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됐다.‘그 이유는 바로 이 내부 경쟁 때문이었구나...’“등급이 낮은 트레이더는 운용할 수 있는 자금 자체가 적게 배당돼요. 원금이 적으니 아무리 수익률이 높아도 성과급 규모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죠.”이혜림은 손끝으로 허공에 그래프를 그리는 듯한 동작을 곁들이며 설명을 이어갔다.“반대로 피라미드 꼭대기에 오른 최상위 트레이더들은 매일 수천억 원을 굴려요. 거기서 단 몇 퍼센트만 수익을 내도 성과급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거죠.”네오투자캐피탈도 다르지 않았다.트레이더라면 누구든 가장 낮은 단계에서부터 시작했고 기본 운용 자금은 최대 2억 원이었다.이혜림은 목소리를 한 톤 낮추며 말을 이었다.“특히 성과가 탁월한 최상위 트레이더들은 회사랑 따로 스페셜 계약을 맺어요. 업계 얘기를 들어보면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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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세상 참 미쳐 돌아가네.’소현성은 마음을 다잡으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그럼... 우리 팀은 어느 정도 등급인가요?”“우리 1팀이요?”이혜림이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음... 그냥 보통 아닐까요? 제가 들은 얘기로는 사무실이 배치된 층수가 곧 팀의 등급과 비슷하게 간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회사 건물에서도 파생상품 트레이딩본부가 제일 위층에 있잖아요? 구체적인 건 알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파생상품 쪽 트레이더들이 제일 돈을 많이 번다는 평이 있어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니까요.”“그 부서 트레이더들은 정서 말 그렇게 많이 법니까?”소현성이 눈을 크게 떴다.“그럼요. 쉽게 말씀드리면 거기 근무하는 분들은 한 달 치 보수가 우리 1년 연봉보다 많다고 하더라고요. 어마어마하죠? 그다음으로 최근 몇 년 새 급성장한 게 바로 퀀트팀이에요. 인공지능이랑 알고리즘으로 초단타 매매를 한다는데... 솔직히 그쪽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주식 시장은 알고 보면 복잡하고 끝도 없이 배워야 하는 세계였다.소현성은 속으로 감탄했다.‘하지만 바로 그런 숨 막히는 보상 구조가 있기에 수많은 엘리트들이 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 기꺼이 뛰어드는 것이겠지. 이곳에서 매일매일 피를 말리는 게임이 진행된다는 것을 알면서도...’이 바닥엔 무수한 희생양이 널려 있었고, 그 위에 단 1%만이 올라서 거대한 부를 누렸다. 하지만 본질은 그가 게임 속에서 경험했던 판과 다르지 않았다.그렇게 생각이 이어지던 순간,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회의실 바깥에서 들려왔다.“다들 모였나요? 오늘 회의는 조금 일찍 시작하시죠.”1팀 팀장 주희재였다.“네!”사람들이 일제히 대답하며 자리를 정돈했다.주희재가 손짓으로 모두를 회의실 안으로 이끌었다.소현성도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들어가다가, 문득 시선 끝에 익숙한 얼굴 둘을 발견했다.그들은 예전에 자신처럼 심부름과 잡일을 하던 트레이딩 어시스턴트들이었다.“소개하겠습니다.”주희재 팀장이 회의실 전면에 서서 말했다.“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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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팀장님, 뭐라고 하셨습니까? 두 사람을 바로 승격시키신다고요? 이혜림 씨야 그나마 근속 기간이 좀 있긴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 승격이라니 너무 빠릅니다. 그런데 소현성 씨는요? 입사한 지 얼마나 됐다고요? 이런 전례는 회사 전체를 통틀어 봐도 없었을 겁니다.”양건우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미세하게 떨렸고 그의 시선은 날 선 칼날처럼 소현성과 이혜림을 번갈아 베어갔다.과격한 반발이었지만, 소현성 역시 이해는 됐다. 사실 그는 지금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여전히 얼떨떨했다다른 베테랑 트레이더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두 충격과 의문으로 뒤숭숭했다.“이렇게 결정한 데는 당연히 이유가 있습니다.”주희재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며칠간 진행된 모의투자 성과에서 소현성 씨의 수익률이 팀 내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그게 첫 번째 이유입니다.”“팀장님, 그건 어디까지나 모의투자일 뿐입니다.”양건우는 즉각 반박하며 목소리를 높였다.“시뮬레이션하고 실전은 완전히 다릅니다. 모의투자에서 잠깐 좋은 성과 냈다고 곧장 정식 대우를 받는다? 이건 너무 성급합니다.”“이미 결정된 사안입니다. 다들 알다시피, 이 바닥의 룰은 단순합니다. 최종적으로 보는 건 오직 수익률 하나뿐이에요.”주희재 팀장의 어조가 한층 무거워졌고 눈빛도 날카로워졌다.“게다가 해체된 팀이 맡던 포트폴리오 자금이 전부 우리 팀으로 넘어왔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아시죠? 우리 팀 전체 운용 자금 풀이 훨씬 커졌다는 겁니다.”“그렇다면 더더욱...”양건우가 다시 말하려 했다.“거기까지만 하시죠.”주희재 팀장이 단호하게 끊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감히 도전할 수 없는 권위가 실려 있었다.“이미 말했죠. 이건 확정된 안건입니다.”회의실 공기가 단번에 얼어붙었다. 더는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잠시 정적이 흐른 뒤, 주희재 팀장은 시선을 돌려 소현성과 이혜림을 바라봤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졌다.“소현성 씨, 이혜림 씨. 저쪽에 새로 배치된 두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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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가운데 두 대가 메인 모니터입니다. 전용 트레이딩 프로그램을 띄워 두는 화면이죠. 실시간 차트랑 호가창이 이쪽에 배치돼 있으니 여기서 직접 매매를 진행하시면 됩니다.”기술팀 직원이 정면의 대형 모니터 두 개를 가리켰다.“왼쪽 두 대는 서브 모니터예요. 뉴스 피드랑 사모펀드 리서치 리포트가 기본 세팅돼 있고 오른쪽 두 대는 전체 시장 흐름이나 업종별 변동률을 보는 용도입니다.”“장비가... 정말 많네요.”소현성은 빙 둘러싼 화면들을 바라보다가 눈이 아찔해졌다. 촘촘히 얽힌 그래프 곡선과 숫자들이 푸른빛을 반사하며 얼굴 위로 번져왔다.“그럴 수밖에 없죠. 트레이딩은 시간 싸움입니다. 1초, 아니 0.1초가 곧 돈과 직결돼 손실 또는 수익을 안겨줄 테니까요.”기술팀 직원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말에는 묘한 압박이 스며 있었다.“키보드도 특수 제작된 겁니다. 매수, 매도 같은 주요 명령은 모두 단축키로 입력할 수 있게 돼 있어요. 마우스로 클릭하다간 순식간에 기회를 놓칩니다.”그는 키보드 상단의 F1부터 F12까지 기능키를 하나하나 짚어 보였다.“예를 들어 F1은 매수, F2는 매도. 전부 맵핑돼 있습니다. 처음에는 헷갈리실 테니 안내표를 옆에 붙여두시면 됩니다.”책상 한쪽에는 별도의 숫자 키패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주문 수량을 빠르게 입력하도록 마련된 장치였다.“거래량이 폭증하면 주문 지연이 생길 수 있어서 전용 광케이블도 따로 연결했습니다. 모니터 응답 속도도 3ms 이내로 튜닝해 뒀습니다. 단 1ms만 늦어져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소현성의 등에 서늘한 식은땀이 땀이 맺혔다.‘이제부터 이런 첨단장비로 진짜 돈을 굴려야 하는 거야? 모의투자랑은 차원이 다르잖아.’거센 파도처럼 차갑게 밀려드는 스트레스가 온몸을 짓눌렀다.“마지막으로 오입력을 막기 위한 알람 시스템도 세팅돼 있습니다. 주문량이 정상 범위를 벗어나거나 시세와 지나치게 동떨어진 가격이 입력될 시 경고음이 울릴 겁니다.”“아, 네. 알겠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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