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남편의 결혼을 지지해요: Chapter 101 - Chapter 110

152 Chapters

제101화

연지훈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서현주는 마치 전생으로 시간 여행이라도 떠난 듯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내렸다. 머리는 백지장이 되어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연지훈은 두 눈이 서서히 충혈되고 목소리가 한없이 가라앉았다.“말해, 서현주.”유이영은 흐느끼며 자신의 어깨를 움켜쥐더니 겁먹은 어린아이처럼 연지훈의 품에 파고들었다.“지훈 씨...”옆에서 연채린이 분노가 치솟아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성태우를 가리키며 소리쳤다.“야, 서현주! 네가 얘 불러와서 이영 언니 괴롭히려고 한 거지? 진짜 너무 하네. 어떻게 감히 이런 비열한 수법으로 이영 언니 괴롭히려고 들어?”서현주는 그제야 유이영 어깨에 뜯긴 옷감을 발견했다.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성태우를 바라보았다.조금 전까지 멀쩡했던 성태우는 이제 얼굴에 멍 자국이 가득했고 입가에 피를 흘리며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했다.서현주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사태 파악이 됐다.그녀는 심호흡하며 겨우 침착함을 유지했다.“나 아니야...”그때 성태우가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서현주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이내 그녀의 발목을 거칠게 붙잡고 말했다.“현주야, 살려줘. 제발 나 좀 도와주라. 네가 날 지켜준다고 약속했잖아. 요구대로 하면 무조건 책임져주겠다고 했잖아!”우웅...서현주는 머리가 망치에 세게 얻어맞은 듯 둔탁한 통증이 일었다.그 순간, 그녀는 클럽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날 밤 성태우는 왜 하필 그 월세방 길목에 있었을까?연씨 가문에서는 왜 또 굳이 고등학생을 종업원으로 고용했을까?또한 성태우는 왜 일부러 그녀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을까?이때 연채린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서현주, 너 아직도 그날 밤 클럽에서 있은 일이 이영 언니가 꾸민 거라고 생각해? 댓글 알바 구해서 SNS에 이영 언니 악플만 주야장천 단 것도 다 네가 시킨 거지? 하다 하다 이런 수법으로 언니 괴롭히려고 들어?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야?”왜 SNS에 달린 유이영의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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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병원 복도에 차가운 백색 조명이 바닥 타일에 드리워지고 공기 속엔 알코올 냄새와 얼음장 같은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서현주는 단단하고 차가운 바닥 타일에 무릎이 부딪혔을 때, 머릿속엔 단 하나의 생각이 스쳤다.‘이 타일이 원래 이렇게 딱딱했나?’그녀 앞에 연지훈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이어서 그의 차갑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겠다면 이영이 깨어날 때까지 여기서 무릎 꿇고 있어.”그 목소리는 마치 뺨을 후려치는 날카로운 매질처럼 서현주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었다.서현주는 바닥에서 일어나려 발버둥 쳤지만 연씨 저택에서 따라온 가정부들에게 즉시 제압당해 다시 무릎을 꿇어야 했다.복도를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칼날처럼 그녀를 찔렀다. 온몸이 난도질당하듯 고통이 차올랐다.그녀는 억척스럽게 머리를 들고 연지훈의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조사는 해 봤어요?”“뭘 더 조사해?”차정인과 연홍택이 느지막이 도착했다. 차정인은 도착하자마자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성태우가 이미 모든 경위를 자백했어. 사건은 명백해졌으니 더 이상 발뺌할 생각 말 거라.”그녀는 아들 곁으로 다가가 팔을 감싸 안으며 싸늘하면서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게다가 넌 이미 목적 달성했잖아. 오늘 밤 지훈이랑 이영이가 약혼 소식을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네가 다 망쳐버렸으니 바로 약혼식 올리면 되겠어. 발표 같은 건 필요 없게 생겼구나.”“현주야, 이제 만족해?”서현주는 헛웃음을 터뜨렸다.“조사도 없이 저에게 죄명을 뒤집어씌우는 게 연씨 가문의 방식인가요?”차정인이 가식적인 미소를 날렸다.“그렇다면? 네가 반항할 힘이라도 있다는 거니?”“지훈이가 제때 이영이를 구한 것에 감사해야 마땅하지. 이영이 배 속의 아이도 무사하길 빌어야 할 거다. 만에 하나 아이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너도 곱게 못 돌아가.”서현주는 연지훈을 바라보았다.그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고 칠흑 같은 눈동자에는 복잡한 감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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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무릎을 꿇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서현주의 두 다리는 이미 감각이 무뎌졌다.그녀는 벽에 몸을 기댄 채 겨우 일어섰는데 발걸음은 비틀거렸고 몇 번이고 다시 바닥으로 쓰러질 뻔했다.연지훈과 두 명의 가정부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눈길로 그녀가 힘겹게 일어서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간신히 몸을 일으켰더니 등 뒤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벽을 짚은 손에 힘을 주어 몸을 곧게 세우고 맑고 투명한 눈동자로 연지훈을 올려다보았다.“그럼 나 이제 가도 되죠?”연지훈은 그녀를 몇 초간 응시하더니 대답 대신 옆으로 몸을 비키며 문을 열었다.별안간 문틈으로 가늘고 하얀 손이 뻗어 나와 연지훈의 손에 겹쳐졌다.문이 천천히 열리자 유이영이 차정인의 부축을 받으면서 걸어 나왔다. 그녀는 다시 차정인의 손을 잡고 연지훈의 품으로 옮겨졌다.“천천히 가. 상처 건드리지 않게 조심해야지.”유이영은 입을 가리고 웃었다.“괜찮아요. 그냥 찰과상일 뿐이에요.”차정인의 얼굴에는 유이영을 향한 애틋함이 가득했다.“너도 참, 병원에 입원해서 경과를 지켜봐야 하는데 굳이 집으로 가야겠니?”유이영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다가 살며시 웃었다.“괜찮아요. 어머님이 저를 너무 걱정하셔서 그래요. 저 진짜 아무렇지도 않아요.”연지훈은 유이영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의 동작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마치 세상의 전부인 듯 오직 그녀만을 바라보며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다루었다.유이영은 연약한 모습으로 그의 품에 기대 희미하게 웃더니 서현주를 힐긋 쳐다봤다.“지훈 씨가 여기서 무릎 꿇게 한 것도 다 현주 씨를 위해서예요.”“전에는 현주 씨가 어리다는 생각에 더 이상 따지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정말 너무했어요. 제대로 된 가르침이 필요할 것 같군요.”“그래도 현주 씨가 아직 고등학생인 걸 봐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어요. 저도 다 현주 씨를 위해서 이러는 거예요.”문득 차정인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변했다.“저런 애한테는 길게 말할 것도 없어.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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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서현주는 두꺼운 옷을 껴입은 채 병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아 왼쪽 팔은 의자 팔걸이에 올려놓았는데 가늘고 하얀 손등에는 링거 바늘이 꽂혀 있었다.엄진경은 그녀 앞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물을 떠다 주고 과일을 깎아주며 극진하게 챙겼다.이에 서현주가 쉰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엄마, 이제 좀 쉬어요.”엄진경은 링거를 맞지 않는 서현주의 오른손을 품에 안고 계속 비비며 눈가에 안쓰러운 기색이 역력했다.링거를 한 팩 다 맞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엄진경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서현주는 간호사에게 링거를 교체해 달라고 부탁한 후, 링거대를 밀며 화장실을 찾아 나섰다.이 병원의 현재 구역은 독감 치료 전문 구역이다. 때마침 유행성 독감이 기승을 부리는 시기라 열이 나는 환자들이 많아 북새통이었다. 화장실 앞도 예외는 아니었다.서현주는 길게 늘어선 줄을 보자마자 얌전하게 링거대를 밀고 다른 곳으로 화장실을 찾아 나섰다.하지만 이 층 전체가 화장실 앞에 긴 줄로 막혀 있었다.어쩔 수 없이 서현주는 다른 층으로 올라갔다.연달아 두 층을 둘러보고 나서야 겨우 비어있는 화장실을 발견했다.하지만 화장실 앞에 막 도착했을 때, 신발 끈이 갑자기 풀렸다. 헝클어진 신발 끈이 바닥에 널브러졌는데 또 하필 실수로 밟아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젯밤 몇 시간 동안 무릎을 꿇어 두 다리가 여전히 힘이 풀린 상태였다.그녀는 간신히 벽을 짚으며 자세를 바로잡았다.고열에 시달리는 그녀는 머리가 어지러워 한참 조용히 서 있으며 현기증과 메스꺼움을 억눌렀다.서현주는 눈을 뜨고 풀어진 신발 끈을 바라보더니 미간이 천천히 찌푸려졌다.링거를 맞는 중이라 한 손밖에 사용할 수 없어 도저히 신발 끈을 묶을 수가 없었다.그녀는 할 수 없이 헝클어진 신발 끈을 신발 안으로 욱여넣었다. 일단은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현주 씨?”이때 갑자기 유이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서현주는 고열로 헛것을 들은 줄 알았다.유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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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화

하필 이런 타이밍에 유이영은 마치 배려라도 하는 듯 입을 열었다.“현주 씨, 병원에는 혼자 왔어요? 일행은 아무도 없나요?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얘기해요. 지금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마침 저도 산전 검사가 끝나서 현주 씨를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요.”그녀는 시원찮게 말끝을 얼버무렸다.서현주는 이 여자가 자신을 도울 생각이 없다는 걸 너무 잘 안다.말만 그렇게 할 뿐 발걸음은 전혀 움직이지도 않았으니까.유이영은 단지 연지훈 앞에서 서현주를 배려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려 했고, 아무도 곁에 없는 서현주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서현주는 아무 말 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링거대에 올려두었던 왼손을 내리고 손등에 꽂힌 링거 바늘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양손으로 신발 끈을 단단히 묶었다.아마도 이번 생과 지난 생을 통틀어 이번이 가장 단단하게 묶은 신발 끈일 터였다.그녀는 연지훈과 유이영에게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아직 아프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서 벌떡 일어섰더니 현기증이 몰려왔다.서현주의 눈앞은 온통 하얀 빛으로 가득 찼다. 그녀는 간신히 벽을 짚고 몸의 균형을 잡았다.아직 눈을 제대로 뜨기도 전, 부드러운 여자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저기요, 실례지만 도움 필요하세요? 안색이 너무 안 좋아 보여서요.”말을 하던 그녀가 대뜸 언성이 높아졌다.“링거 바늘이 빠져서 손에 피 나요. 바로 의사 선생님 불러드릴게요.”서현주가 눈을 뜨자 손등에 꽂혔던 링거 바늘이 어느새 빠져나왔다. 손등의 피부는 링거 바늘에 의해 선명한 붉은 상처를 남겼고, 그 가느다란 상처에서 핏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새어 나오고 있었다.창백하고 혈색 없는 손등 위로 붉은 피가 드리워지니 선명한 대비를 이뤘다.서현주는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볼 뿐 감정의 동요가 크지 않았다. 그녀는 나지막이 말했다.“고마워요. 간호사 좀 불러주시겠어요?”여자는 서현주를 보다가 가까운 곳에 있는 연지훈과 유이영을 힐끗 보았다.연지훈의 얼굴을 본 순간, 그녀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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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귓가에 문득 발소리가 들려왔다. 서현주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니 깊고 어두운 눈동자의 연지훈이 얇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서현주는 대뜸 얼굴이 굳어졌다.그때, 여자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연지훈을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리며 재빨리 서현주를 부축해서 떠났다. 결국 연지훈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네 휴대폰 아직 우리 집에 있어.”서현주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우리 집?’그녀는 어젯밤 자신의 휴대폰을 연씨 저택에 두고 나왔다. 연지훈이 지금 그녀 앞에서 연씨 저택을 ‘우리 집’이라고 칭하는 건 그녀를 향한 야유에 가까웠다.연씨 가문 사람들은 그녀를 쫓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녀가 연씨 저택을 집으로 여기기를 바라고 있었다.이보다 더 잔인하고 독단적일 수 있을까?연씨 저택은 결코 그녀의 집이 아니었고, 그녀 또한 위험천만한 연씨 저택을 집이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서현주가 담담하게 대답했다.“나중에 다시 가져올게요. 폐 끼쳐서 죄송해요.”매우 정중하고 거리감 있는 말투였다.많은 사람에게는 통할 수 있는 말투겠지만, 연지훈은 과거 천방지축 날뛰던 서현주가 자신에게 이런 말투를 쓸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두 사람은 마치 스쳐 지나가는 낯선 이와도 같았다.연씨 가문에서 5년 가까이 친밀하게 보낸 사이가 아니라...그의 눈동자가 한없이 짙어졌다.“오늘 안에 가져가. 안 그러면 휴대폰 버릴 거야.”그는 서현주의 휴대폰에 자신과의 사진이 잔뜩 저장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여 그녀가 절대 휴대폰을 버리지 못하리라 생각했다.연지훈의 말을 들은 서현주는 놀랍지도 않았다.그는 늘 이런 사람이니까, 서현주를 사람 취급한 적이 없으니까.그녀는 아주 차분하게 연지훈의 말투와 표현 방식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녀 곁에 있던 여자가 매우 불만족스러워했다.여자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투덜거렸다.“그쪽 전 남친 대체 왜 저래요? 휴대폰 잠시 맡겨두는 게 무슨 큰일이라고 버린다면서 협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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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대체 왜 이렇게 끈질기게 구는 걸까?서현주도 이참에 혐의를 벗고 결백을 증명하고 싶었다.한편 경찰서라는 단어를 들은 엄진경은 즉시 소리를 질렀다.“경찰서라니? 우린 그런 거 몰라. 이딴 거로 날 속일 생각 마!”서현주가 아직 어젯밤에 벌어진 일을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으니 엄진경도 당연히 이중의 이해관계를 알지 못했다.그녀는 엄진경의 손목을 잡으며 안심시켰다.“엄마, 내가 처리하고 금방 돌아올게요. 걱정 마세요, 별일 아니니까.”엄진경은 미간을 더 세게 찌푸렸다.“대체 무슨 일인데 현주야? 경찰서에서 왜 널 데려가? 무슨 일 있어?”서현주는 엄진경의 손등을 다독이며 말했다.“진짜 아무 일 아니에요. 난 떳떳하니까 돌아와서 자세히 말씀드릴게요.”말을 마친 그녀는 연지훈을 돌아보았다. 더할 나위 없이 단호하고 차분한 눈길로 이 남자를 바라보았다.“가죠 이만.”연지훈을 따라 차에 올랐더니 아니나 다를까 경찰서로 향했다.그녀는 경찰에 협조하며 많은 질문에 답했다.한 경찰이 그녀와 성태우가 친하지 않다는 말을 듣고 눈썹을 치켰다.“하지만 성태우 씨는 서현주 씨와 매우 친하다고 하던데요.”서현주는 침착하게 대답했다.“증거 있나요? 난 성태우랑 몇 마디 대화밖에 나누지 않았어요. 같은 반 친구들이 다 증명해 줄 수 있어요.”경찰은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갔다.“그러니까 서현주 씨는 성태우 씨에게 유이영 씨를 해치거나 추행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는 건가요?”서현주는 단호하게 대답했다.“네, 맞아요.”경찰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술서에 무언가를 계속 적어 내려갔다.“성태우 씨는 서현주 씨가 유이영 씨를 질투해서 성추행하도록 시켰다고 진술했어요.”서현주는 전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침착하게 되물었다.“증거는요?”경찰도 인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증거는 없지만 성태우 씨가 서현주 씨를 좋아해서 아무런 보수도 바라지 않고 그저 서현주 씨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거든요.”서현주가 같은 말을 반복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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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화

성태우의 얼굴이 잠시 일그러졌다. 이내 그는 낮게 포효했다.“서현주, 그냥 자수해! 더 이상 발버둥 치지 말란 말이야!”서현주는 의자에서 일어나 뒤돌아섰다.밖으로 나온 그녀는 경찰에게 말했다.“성태우의 가족이나 친구 계좌, 또는 성태우 명의로 된 자산을 조사해 보세요. 어쩌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성태우가 이런 짓을 하게끔 만든 장본인은 분명 적지 않은 금액을 쥐여줬을 것이다. 충분히 그의 마음을 움직일 만 한 액수였겠지.경찰이 말했다.“이미 조사해 봤는데 전혀 수상한 자금 출처가 발견되지 않았어요.”서현주는 잠시 멈칫했다.증거가 없으니 경찰은 그녀를 구금할 자격이 없었다. 하여 그녀는 곧바로 풀려났다.연지훈은 그녀를 롤스로이스에 태우며 말했다.“연씨 저택에 잠깐 들르자.”서현주는 차 안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지만, 연지훈이 모든 문을 잠그고 곧바로 도로에 진입했다.서현주는 이제 연씨 저택이 위험천만한 곳으로 느껴져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거긴 왜 가는데요?”연지훈은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차를 몰아 연씨 저택에 도착했다.서현주는 그를 따라 차에서 내렸다.현재 연씨 저택은 이전과 많이 달랐다.거실과 여러 구석에는 유이영의 것으로 보이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인형들이 놓여 있었다.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가정부가 나직이 무언가 말했다.“조심해야 해. 이건 이영 씨를 위해 끓이는 탕이야.”예전에는 거실 일부만 카펫이 깔려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구역에 부드러운 카펫이 깔렸고 심지어 테이블 모서리와 같이 날카로운 모서리에는 부딪혔을 때 다치지 않도록 폭신한 스펀지가 덧씌워져 있었다.저택 곳곳에는 유이영을 정성스럽게 보살핀 흔적이 가득했다.서현주는 거실에 서서 5년을 살았던 이 집에 이질감을 느꼈다.그녀는 거실 카펫 위에 서서 차가운 시선으로 연지훈의 등을 바라보았다.“내 휴대폰 어디 있어요?”연지훈은 소파 위를 가리켰다. 서현주는 가까이 다가가 소파 틈새에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전원을 켰는데 화면에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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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서현주는 서로 맞장구치는 아주머니와 유이영을 번갈아 보았다. 둘은 서현주의 명예와 체면을 아예 바닥에 짓밟아버리고 있었다.그녀는 입꼬리를 씩 올리고 야유를 날렸다.“이 닭탕이 그리도 귀한 거라면 전 사양할게요. 이영 씨 혼자 다 드세요.”“제 병은 곧 나을 테니 신경 쓸 거 없지만 이영 씨는 무엇보다 태교에 전념해야겠죠.”유이영이 웃으며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그럼요. 반드시 건강한 아이를 낳을 거예요.”서현주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유이영의 얼굴에 순간 서운함이 스쳤다.“현주 씨, 정말 안 마실 거예요?”그때 뒤쪽에서 연지훈의 낮고 짙은 목소리가 툭 튀어나왔다.“서현주.”그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지만 이내 한 무리 가정부가 문 앞을 가로막아 섰다.동시에 연지훈의 목소리에는 뼈아픈 경고가 담겨 있었다.“말했지! 이영이 곤란하게 하지 말라고.”서현주는 기세등등하게 문을 막아선 가정부들을 노려보더니 몸을 홱 돌리고 탁자 위의 닭탕을 단숨에 들이켰다.마지막 한 방울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그릇을 거꾸로 들었더니 국물이 단 한 방울도 흘러나오지 않았다.서현주는 평온한 눈빛으로 연지훈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물었다.“이제 됐어요?”그녀는 그릇을 다시 탁자 위에 툭 내려놓았다.“이제 이영 씨는 억울하거나 서운한 거 없을 테니 나 이만 가봐도 되죠?”유이영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싸악 사라졌다.서현주는 두 남녀를 번갈아 보다가 입가에 희미한 조소를 띠었다.몸을 돌려 저택을 나서자 이번에는 연씨 저택의 집사들도 길을 가로막지 않았다.이곳에서 그녀의 월세방까지는 거리가 꽤 있어서 택시를 타야 한다. 하지만 휴대폰 배터리가 다 달아 콜택시를 부를 수 없으니 길가에 나가서 택시를 잡아야만 했다.하필 이곳은 별장 구역이라 최소한 몇백 미터를 걸어 외곽으로 나가야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반쯤 걸어갔을까? 서현주는 체온이 급격히 오르고 다리에 힘이 풀려 걸음을 휘청거리기 시작했다.이마에 손을 대보니 열이 오를 대로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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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화

남자들이 재빨리 피하려 했지만 서현주는 날카로운 발길질 몇 번을 성공시켰다.남자들은 욕설을 내뱉으며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귀가 먹먹할 정도로 세차게 내리쳤다. 순식간에 서현주의 눈앞이 캄캄해지고 정신은 더욱 혼미해졌다.그녀가 아무리 격렬하게 저항해도 남자 여럿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결국 그녀는 구석으로 끌려갔고, 흥분한 남자들의 옷 벗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서현주는 절망의 벼랑 끝에 몰렸다.연씨 저택.연지훈은 유이영이 닭탕을 마시는 것을 지켜보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나 현주 데려다주고 금방 올게.”순간 유이영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그녀의 눈가에 독기 어린, 예상치도 못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연지훈이 지금 나갔다가 무언가 눈에 띄기라도 하면 계획이 틀어질 게 뻔했다.유이영은 재빨리 그릇을 내려놓고 그의 손을 붙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지훈 씨 그냥 여기서 나랑 함께 있어 주면 안 돼요?”연지훈은 그녀의 손을 가볍게 떼어내고 다정하게 말했다.“금방 올게.”유이영의 눈빛에 찰나의 어둠이 스쳤다. 그녀는 연지훈의 손목을 더욱 꽉 잡으며 억울하면서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지훈 씨, 어젯밤 그 일... 아직도 조금 무서워요. 내 옆에 있어 주면 안 될까요? 현주 씨한테는 다른 사람 보내면 되잖아요.”연지훈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았다.순간 유이영의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댔다.이 남자가 자신의 계략을 간파한 줄 알았으니까.이때 갑자기 연지훈이 입을 열었다.“그냥 내가 갈게. 현주한테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그는 허리를 숙여 유이영을 품에 안고서 따뜻하고 단단한 손으로 그녀의 슬픔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괜찮아. 금방이면 돼.”유이영은 더 이상 이 남자의 뜻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애써 억지 미소를 지으며 연지훈의 허리를 감싸 안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기다릴게요.”길모퉁이에서 서현주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옷을 붙잡고 있었다. 남자들의 손이 그녀의 몸을 헤집으며 언제라도 속옷을 찢어버릴 듯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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