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남편의 결혼을 지지해요: Chapter 81 - Chapter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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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뺨을 맞자 강혜인은 더 격렬하게 몸부림쳤다.“짐승들! 너희 전부 다 짐승이야!”매니저는 겁에 질린 얼굴로 강혜인을 보며 잔뜩 찌푸린 채, 조심스럽게 유강호의 눈치를 살폈다.“유 대표님, 이 애가 말을 안 들으면 말을 잘 듣는 애로 바꾸면 되죠.”매니저는 서현주의 손을 억지로 잡아 유강호 품에 떠밀었다.“유 대표님, 이 아이도 고등학생입니다. 게다가 이쪽이 훨씬 예쁘고 몸매도 좋아요.”유강호는 한 손으로 강혜인을 누르고 다른 손으로 서현주의 허리를 감아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참 예쁘네.”“하지만...”그는 서현주를 홱 끌어당겨 무릎 위에 앉히며 말했다.“굳이 고를 필요가 있나? 둘 다 가지면 되지.”서현주는 그의 몸에서 풍겨오는 향수 냄새에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았다.그런데도 유강호는 여유롭게 물었다.“이름이 뭐야? 난 너 같은 나이 또래 애들이 제일 좋더라. 풋풋하고 순수하잖아.”고개를 들어 올리자 서현주는 눈이 벌겋게 충혈된 강혜인과 마주했다.강혜인은 그녀를 보자 눈이 번쩍 커졌다.서현주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제 이름은...”그러면서 눈을 테이블 위의 술병에 고정시키고 손을 뻗어 병목을 움켜쥐더니 곧장 들어 올렸다.쾅!하지만 요란한 소리가 터진 곳은 서현주의 손에서가 아니라 바로 룸의 문 쪽이었다.문이 밖에서 세게 걷어차이며 벌컥 열렸다.“멈춰.”귀에 익은 목소리가 울렸다.누구도 예상 못 한 사람이 문가에 나타난 것이다.연지훈이었다.그는 잘 맞춘 고급스러운 블랙 수트를 입고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서 있었다.냉혹하고 날카로운 얼굴선, 그리고 어둑한 룸 속에서도 별빛처럼 차갑게 빛나는 검은 눈동자...서현주는 표정이 굳어지며 천천히 들어 올린 술병을 다시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어떻게 여기에 온 거지?’유강호는 그녀와 강혜인을 밀쳐내고 황급히 일어나 비위를 맞추듯 웃었다.“연 대표님,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습니까. 제대로 대접도 못 드렸는데.”조금 전까지 여자들과 희희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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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문밖에 서 있던 연지훈의 수행비서가 안에서 들려오는 소란을 듣고 서둘러 들어왔다.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곧장 문을 막아선 것이다.그는 서현주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현주 씨, 연 대표님이 아직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나가실 수 없습니다.”서현주는 고개를 홱 돌려 연지훈을 노려봤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연지훈은 손에 든 와인잔을 천천히 돌렸다.잔 속의 붉은 와인이 그 움직임에 따라 흔들렸다.고개를 들어 올리자 그의 검은 눈동자 속에는 숨김없는 냉기가 스쳤다.목소리마저 싸늘했다.“배짱이 크네. 술병으로 사람까지 후려치고.”서현주의 손가락이 움찔거리며 말려들었다.그러다 차갑게 내뱉었다.“이 아이는 원래 단순히 아르바이트만 하던 애예요. 유 대표님이 억지로 끌고 들어온 거라고요. 양심이 있다면 우리를 막아서는 안 되죠.”강혜인의 눈이 붉게 충혈된 채, 어딘가 의심이 서린 시선으로 물었다.“서현주, 너... 이 사람들이랑 아는 사이야?”“서현주...?”유강호가 그 이름을 중얼거리며 곧장 얼굴을 굳혔다.“네가 서현주라고?”‘이영이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하던 바로 그 서현주?’서현주는 입술을 꼭 다물고 차갑게 노려봤다.“그래요. 그게 나예요. 그래서요?”유강호의 얼굴에 살벌한 웃음이 번졌다.“네가 서현주였구나?”“공주 구하는 영웅 질도 실력이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오늘 넌 절대 못 나가.”서현주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하지만 이내 이를 악물고 강혜인의 손을 잡아 무작정 뛰쳐나갈 생각을 했다.그러나 유강호가 성큼 다가와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낚아챘다.“연 대표님, 이 여자가 절 때렸습니다. 그냥 보낼 수는 없죠.”그는 급히 유이영까지 끌어들였다.“게다가 이 두 여자는 다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강혜인 이 여자가 먼저 꼬드겨서 들어온 거지, 제가 억지로 끌어들인 게 아닙니다. 강제로 한 게 아니에요.”강혜인의 눈이 더 붉어졌다.“당신은 정말 짐승이야! 분명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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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유강호의 손이 번개처럼 휘둘리자 서현주는 반항할 틈도 없이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무릎이 강하게 부딪히며 순간적으로 날카로운 고통이 온몸을 타고 퍼졌다.그녀는 바닥을 짚으며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주변에 있던 여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쳤다.겁에 질려 떨며 이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곧 유강호의 거친 욕설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오늘은 네년을 반드시 박살 내고야 말 거야!”서현주는 손을 휘두르며 버텼다.“꺼져!”유강호는 침을 탁 뱉으며 몸을 재빨리 피했다.서현주는 곧장 몸을 일으켜 옆에 있던 술병을 움켜쥐고는 방구석으로 몰려섰다.눈을 치켜뜨고 유강호의 움직임만을 똑바로 노려봤다.그 순간까지도 연지훈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서현주는 모욕감에 치를 떨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연지훈이 옳고 그름을 가려주리라 기대했던 자신이 우스웠다.그 기대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유강호는 입가를 닦더니 기괴한 웃음을 지었다.“서현주, 이제서야 무서운 거야? 아까 날 때릴 때는 왜 무섭지 않았지?”그는 성큼성큼 다가왔다.그때, 연지훈의 낮은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그만해.”유강호는 억울한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연 대표님, 아까 저년이 술병으로 절 쳤어요!”연지훈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검은 눈동자는 칼날처럼 차갑고 매서웠다.그 눈빛과 마주한 순간, 유강호는 아무리 말이 많아도 목구멍이 막힌 듯 더 이상 내뱉을 수 없었다.서현주는 여전히 술병을 쥔 채,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손아귀에 힘이 더 들어갔다.연지훈은 손을 들어 테이블 위의 잔들을 일렬로 정갈히 늘어놓았다.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이리 와.”“뭐 하려는 거예요?”서현주가 경계하며 물었다.연지훈은 잔마다 붉은 술을 따라내렸다.모두 열 잔이었다.“이걸 다 마셔. 그러면 보내주지.”‘보내주지’라는 말에 서현주의 눈이 순간 환해졌다.그러나 곧 어둡게 가라앉았다.‘열 잔이라니...’그걸 다 마시면 병원에 실려 가도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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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밖에서 갑자기 요란하고 혼잡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이어 곧 문이 발로 거칠게 차이는 소리가 서현주의 고막을 세차게 때렸다.귀가 웅웅 울리는 와중에도 그녀는 고개를 젖히고 술을 삼키려 했다.“아직도 술을 마셔?!”거친 고함과 함께 손에서 잔이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다.잔은 산산이 부서져 와인이 카펫 위로 번져갔다.서현주는 멍하니 고개를 들어 올렸다.강혜인이었다.언제 들어왔는지, 든든한 친구들과 함께 우르르 클럽 안으로 쳐들어왔다.손마다 굵직한 몽둥이와 칼을 들고 있어서 수행비서 뒤에 있던 경호원들마저 얼어붙은 듯 꼼짝 못 했다.강혜인은 곧장 서현주의 손목을 낚아채며 끌어올렸다.“멍하니 서 있지 말고, 빨리 가자!”서현주는 그녀에게 이끌려 인파를 가르며 곧장 클럽을 빠져나왔다.뒤에서는 강혜인 무리가 내지르는 환호성과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는 욕설과 비명이 뒤엉켜 울려 퍼졌다.차가운 밤바람이 귓가를 스쳐 지나가자 서현주의 온몸의 체온이 확 꺼졌다.달리다 보니 속이 심하게 요동쳐 견디기 힘들었다.결국 그녀는 강혜인의 손을 뿌리치고 쓰레기통 곁에 웅크려 앉더니 위 속의 것들을 죄다 토해냈다.토사물과 함께 거의 위장까지 쏟아낼 것만 같은 고통스러운 구토였다.강혜인이 다급히 달려와 얼굴을 굳혔다.“이게 뭐야... 피잖아?!”“위 출혈이야?”서현주는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나도... 몰라.”강혜인은 그녀의 손을 세차게 끌어당겼다.“일단 병원부터 가자.”그녀가 팔을 당기자 서현주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순간 시야가 하얗게 날아가며 의식을 잃었다.눈을 다시 떴을 때, 서현주는 병원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곁에서 강혜인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깼어?”그러고는 곧바로 투덜대듯 덧붙였다.“그럼 빨리 돈 내. 나 돈 없어.”서현주는 눈을 깜빡이며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내가 낼게.”그녀는 몸을 일으키려 했고 강혜인은 재빨리 다가와 부축했다.“천천히 해. 지금 수액 맞고 있잖아.”서현주는 침대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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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연지훈은 그저 눈꺼풀만 살짝 내리깔며 무심하게 학생들을 바라봤다.그 한 눈길에, 조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학생들이 순식간에 풀이 죽어 고개를 떨궜다.그 모습을 본 강혜인은 입술을 씰룩였다.그 무리에게 눈을 부릅뜨며 속으로 욕했다.‘겁도 없는 놈들이라더니, 결국 기죽기는.’서현주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담담히 연지훈을 바라봤다.“무슨 일로 왔어요?”겉으로는 침착했지만 쉰 목소리는 감출 수 없었다.뒤이어는 입꼬리를 비틀며 비아냥댔다.“설마 어제 남긴 술 마시라고 온 건 아니겠죠?”마침 그때, 복도에서 규칙적으로 울리는 하이힐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왜들 여기 막고 있어요? 안 들어가고.”흰 롱드레스를 입은 유이영이 나타났다.가녀린 몸매가 더욱 돋보였고 청순한 미모에 병실 안 학생들의 눈이 동그래졌다.남학생들은 홀린 듯 바라보다가 옆의 여학생에게 뺨을 얻어맞고서야 황급히 자세를 고쳤다.유이영은 개의치 않고 상냥히 웃으며 연지훈의 팔에 팔짱을 꼈다.“현주 씨 동창들이죠? 저랑 지훈 씨는 병문안 온 거니까 긴장할 필요 없어요.”그녀는 자연스레 연지훈의 손에서 보온 통을 받아 병상 옆 탁자에 올려놓았다.“현주 씨, 이건 내가 집에 있는 양 아줌마한테 부탁해서 끓인 닭고기 수프예요. 현주 씨가 양 아줌마 요리를 좋아한다는 말 듣고 가져왔어요. 맛 좀 봐요.”‘양 아줌마...’서현주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눈빛에는 비웃음이 스쳤고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양 아줌마, 즉 양수애는 연씨 저택의 가사 도우미였다.유이영이 연씨 저택을 자기 집이라고 칭한 순간, 서현주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은근한 영역 표시, 은근히 스스로를 안주인처럼 여기는 듯한 말투...하지만 서현주가 보기에는 그저 우스웠다.애초에 그녀는 연지훈과 결혼할 생각도, 다시 연씨 저택으로 돌아갈 마음도 없었다.이미 아이까지 가진 유이영은 연지훈과 혼인할 게 뻔했고 연동욱 또한 가문의 자손을 중시하니 그 자리는 확정이나 다름없었다.그러니 유이영의 이런 태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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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연지훈의 눈빛이 순간 어두워지며 목소리에 압박하는 듯한 기색이 실렸다.“서현주, 그게 무슨 태도야?”서현주는 고개를 들고 고집스럽게 그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비웃듯 씩 올렸다.“내가 어떤 태도를 보이기를 원하는 거예요? 술 마시다 위출혈까지 온 환자가 가해자 가족의 감정까지 챙겨야 해요?”연지훈은 낮게 말했다.“유강호가 한 짓은 이영이와 상관없어. 이영이 곤란하게 만들지 마.”서현주는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하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끝내 하지 못했다.차라리 묻고 싶었다. 유강호가 왜 그곳에서 감히 깡패처럼 군림할 수 있었는지.그건 바로 유지훈의 아내 자리를 차지한 사촌 동생 유이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유강호가 배짱을 부리는 건 거의 전부 유이영에서 비롯된 건데... 연지훈, 당신은 정말 모르는 거야?’유이영은 연지훈의 품에 기대어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애처롭게 말했다.“현주 씨, 정말 미안해요. 내가 임신 중이라 아이가 너무 보채서 오빠를 세심히 다잡을 시간이 없었어요.”연지훈은 유이영의 어깨를 감싸 쥔 손에 힘을 더하며 그녀를 지지했다.서현주는 눈을 감아 마음을 다잡은 뒤, 다시 뜨며 담담히 말했다.“가세요. 저 혼자 쉬고 싶으니까.”유이영은 정말로 나갔지만 연지훈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그렇게 병실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서현주는 예의도 없이 그냥 몸을 돌려 누워 그에게 등을 보였다.연지훈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서현주, 이영한테 화풀이하지 마.”그러자 서현주는 하품을 하며 비꼬았다.“오해예요. 전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이에요. 내가 언제 화를 냈다고 그래요?”잠시 고요해졌다.그러다 갑자기 큰 손이 그녀의 어깨를 눌러 억지로 몸을 돌려세웠다.다음 순간, 서현주의 시선이 연지훈의 깊고 검은 눈과 맞닿았다.그는 몸을 거의 겹치듯 낮췄고 그 바람에 두 사람은 숨결이 얽힐 만큼 가까워졌다.서현주의 동공이 좁혀지고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밀어내며 있는 힘껏 저항했다.“지훈 씨, 미쳤어요?!”연지훈은 표정을 굳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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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서현주는 속으로 생각했다.‘이게 대체 뭐야? 어젯밤에는 고도수의 술 열 잔을 억지로 마시게 하더니 지금은 이런 짓을 해? 병 주고 약 주는 건가?’그녀가 ‘세컨드’라는 말을 꺼낸 순간, 연지훈은 잠시 조영해졌다가 곧 몸을 뗐다.이와 함께 은은한 전나무 향도 멀어졌다.서현주는 컵을 꼭 끌어안고 이불 속으로 몸을 웅크렸다.이불 너머로 연지훈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스며들어왔다.“누가 널 세컨드 취급했는데?”서현주는 냉소하며 곧장 말했다.“지훈 씨랑 이영 씨, 두 분 다복하시길 빌어요.”그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기에 바깥 상황을 똑똑히 알 수 없었다.연지훈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고 다만 그가 걸어 나가는 발소리와 마지막 한마디만이 남았다.“닭고기 수프, 꼭 마셔.”병실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들린 뒤에야 서현주는 이불 속에서 나왔다.왼손에 꽂힌 링거 바늘을 조심스레 피해 앉아 시선을 머리맡의 탁자 위로 돌렸다.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닭고기 수프가 놓여 있었다.기름진 냄새가 코끝에 스치자 속이 울렁거리고 구역질이 치밀었다.서현주는 얼굴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보온 통을 들어 화장실로 향했다.그때, 강혜인이 추종자들을 데리고 병실로 들어왔다.곧 서현주의 뒷모습을 보고는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너 어떻게 일어났어?”서현주는 뒤돌지 않은 채 낮게 답했다.“나 그렇게까지 허약하지는 않아.”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강혜인은 고개를 빼꼼 내밀며 물었다.“너 그 닭고기 수프 버리려는 거야? 안 마실 거야?!”잠시 손을 멈칫하더니 이윽고 서현주가 고개를 돌려 진지하게 말했다.“냄새만 맡아도 속이 울렁거려. 도저히 못 마실 것 같아.”강혜인은 안쓰럽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보온 통을 낚아챘다.“안에 닭고기도 많고 닭 다리도 있는데 이건 완전 음식 낭비잖아. 눈치도 없어?”“국물 색깔만 봐도 알잖아. 풀어 키운 닭으로 끓인 거라니까. 사료로 키운 닭이랑은 비교도 안 돼. 영양도 듬뿍인데.”서현주 역시 버리는 게 내심 아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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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하지만 이번 일의 파장은 서현주의 예상보다 훨씬 컸다.쉬는 시간마다 교실 밖을 오가는 학생들 사이에서 은밀하고도 흥분된 수군거림이 오갔다.죽음을 한 번 겪어 본 서현주에게 그런 소문쯤은 대수롭지 않았다.다만 강혜인과 그 무리가 괜히 피해를 입지 않을까 그게 신경 쓰였다.방과 후, 서현주는 일부러 강혜인 옆으로 다가가 낮게 물었다.“오늘도 알바 가?”강혜인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알바는 하나뿐이잖아. 너도 봤잖아.”서현주가 다시 물었다.“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강혜인은 텅 빈 가방을 어깨에 걸치며 담담하게 웃었다.“어떻게 하긴, 그냥 되는 대로 살아야지.”서현주는 망설이다가 입을 열려 했지만 강혜인이 손을 들어 막았다.“야, 돈 빌려주겠다는 소리 하지 마라. 나 아직 그 정도로 궁하지는 않아.”“알았어.”둘이 길가에 나섰을 때, 서현주는 알았다.소문은 자신이나 강혜인을 향한 게 아니었다.그 화살은 유이영을 향해 있었다.“야, 들었어? 유이영이 사람 시켜서 서현주 괴롭히려다 강혜인까지 휘말렸다잖아.”“맞아, 나도 들었어. 유이영 사촌 오빠가 그 짓을 했다던데? 서현주를 어쩌려다 실패한 거라잖아. 강혜인이 사람 데리고 와서 막았다더라.”“뭐? 유이영이 그런 짓을 한다고? 난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네가 어떻게 알아? 겉만 보고 알 수는 없지. 나 원래부터 유이영 그 사람 꼴 보기 싫었어. 완전 불여시라니까.”“인터넷에도 똑같이 올라왔어.”“그런데 연지훈은 가만있었어? 아무리 그래도 서현주가 연씨 가문에 몇 년은 살았잖아.”“그게...”“쉿, 서현주 뒤에 있어. 그만해.”서현주는 소녀들 옆에 멈춰 서서 눈살을 찌푸렸다.“너희 지금 무슨 얘기 하는 거야?”여학생들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아냐. 우리 아무 말도 안 했어.”서현주가 한 발 더 다가가려 하자 그들은 손을 잡고 달아나 버렸다.남은 건 뒷모습뿐이었다.서현주의 미간은 점점 더 깊게 찌푸려졌다.조금 전 들은 말이 머릿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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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그날은 연동욱의 일흔여덟 번째 생일이었다.연씨 가문 위아래로 백여 명이 모여 성대한 잔치를 열었고 그 자리에 서현주도 불려갔다.연씨 가문이 자신을 키워준 은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연동욱이 잔치에 참석하라 했을 때 서현주는 잠시 망설였다.이번에는 연지훈의 부모까지 오는 자리였다.연씨 가문의 사업은 전 세계에 뻗어 있었고 연지훈의 부모는 주로 해외 일을 맡아 드물게 귀국하고는 했다.하지만 몇 번 안 되는 만남만으로도 서현주의 기억 속에는 강렬히 각인돼 있었다.전생에도 그녀는 이 일흔여덟 번째 생일 연회에 참석했었다.그때도 연지훈의 부모가 와 있었다.그리고 이미 그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이 널리 퍼져 있었을 때였다.연지훈의 어머니, 차정인은 우아하고 온화한 기품의 여인이었다.짙은 초록빛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고 4,50세를 넘겼음에도 서른 중반의 세련된 아름다움을 간직한 듯했다.아들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자애로운 온정이 가득했지만 서현주를 바라볼 때는 달랐다.마치 물건을 감정하듯 차갑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가치를 재단했고 결론은 뻔했다.서현주는 연지훈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존재라는 것.그 결과, 차정인은 인사조차 건네지 않았고 술잔을 돌릴 때도 서현주만은 일부러 빼놓았다.연지훈의 아버지, 연홍택은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그 점은 연지훈을 똑 닮아 있었다.그날 그가 서현주에게 건넨 단 한 마디는 이랬다.“집에 들어가 있어라. 남들 앞에서 창피 주지 말고.”대중 앞에서 똑똑히 내뱉은 그 말은 곧 조롱과 비웃음이 되어 쏟아졌다.수많은 시선이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순간, 서현주는 거의 도망치듯 자리를 떠야 했다.잔치는 하루 종일 이어졌지만 그녀는 도우미 방에 틀어박혀 단 하루를 꼬박 보냈다.그날 하루, 방 안의 물 한 모금 외에는 아무것도 입에 대지 못했다.밖에서는 웃음소리와 축하가 이어졌고 마침내는 유이영이 임신했다는 소식이 공개됐다.연씨 가문의 아이를 품었다는 사실 말이다.잔치의 목적은 단순히 연동욱의 생일을 축하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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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서현주는 미간을 살짝 움직이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연동욱이 먼저 이어갔다.“이번에는 기자들도 온단다. 내가 사람 붙여서 네 스타일링도 해주고 예쁜 사진도 좀 찍어줄 거야.”그 말에 서현주는 단번에 이해했다.연지훈과 유이영의 약혼 소식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연씨 가문은 언론을 불러 대대적인 보도를 준비하는 중이었다.자신이 운전기사 아버지를 잃은 뒤 연씨 가문에 입양된 사실은 이미 세상에 잘 알려져 있었다.체면을 중시하는 연씨 가문은 늘 그녀를 ‘입양해 선행을 베푼’ 사례로 내세우며 좋은 이미지로 포장했다.만약 기자들이 자신이 이미 가문에서 쫓겨났다는 걸 알아차린다면 연씨 가문 명성에 흠집이 갈 게 분명했다.그래서 연동욱이 이렇게 집요하게 서현주를 불러내려 하는 것이었다.서현주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연씨 가문 체면이 좋아지든 말든 자기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전생에서 자기 명예가 짓밟힐 때, 그들은 도리어 짓눌러버리기 바빴다.서현주는 부드럽게 웃으며 가볍게 말했다.“괜찮아요, 할아버지. 즐겁게들 노시면 돼요. 굳이 제 스타일링까지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그러고는 연동욱이 대답하기도 전에 말을 이어갔다.“미리 축하드릴게요. 생신 축하드립니다.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세요.”“그럼 전 이제 공부해야 해서 끊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전화를 끊는 순간 마음이 시원해졌다.고개를 돌려보니 엄진경이 기대와 아쉬움이 섞인 눈길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엄진경은 조심스레 물었다.“어르신이 우리더러 잔치 오라고 한 거야?”서현주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리고 식탁에 앉아 노릇노릇하게 구운 달걀을 집어 입에 넣었다.엄진경은 그녀 맞은편에 앉아 물었다.“그럼 거절했어?”서현주는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네. 어차피 그 잔치는 연지훈이랑 유이영 약혼 발표하려는 자리일 텐데 괜히 들러붙을 필요 없잖아요.”아직도 연씨 가문에 기대를 품고 있을 줄 알았는데 엄진경은 뜻밖에도 두 손을 부르르 떨며 외쳤다.“뭐라고? 지훈이가 전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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