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남편의 결혼을 지지해요: Chapter 1 - Chapter 10

100 Chapters

제1화

그녀의 딸이 죽었다.하지만 그녀는 장례식도, 발인도, 평범한 묘지를 살 돈도 없었다.그저 검은색 나무관과 유골함에 딸 연하나의 모든 걸 담았다.장례식장의 TV에서 극도로 사치스러운 세기의 결혼식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신랑은 그녀의 전남편이자 연하나의 친아빠인 연지훈이었고, 신부는 그가 줄곧 마음에 품어왔던 첫사랑 유이영이었다.연지훈은 마침내 소원을 이루었다.서현주는 유골함을 안고 화장터에서 나왔다. 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화장터에서 일하는 젊은 여직원이 무언가 말하려다 망설였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손님, 밖에 비가 많이 와요. 혹시 데리러 오신 분 있나요?”서현주는 핏기없는 얼굴로 유골함을 내려다보았다.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유일한 가족은 첫사랑 여자친구와 결혼식을 올리고 있으니까. 그는 이 두 모녀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는데 딸의 죽음을 알 리가 있을까?설령 여유가 있다고 해도 결코 그녀를 데리러 오지 않을 것이다.연지훈은 그녀를 끔찍이 미워한다.너무 밉다 보니 그녀의 딸까지 증오했다.며칠 전, 유이영이 차에 아들을 싣고 운전하다가 서현주와 연하나가 탄 버스를 들이받았다. 연하나는 심각한 부상을 입고 현장에서 기절했다.서현주는 인파 속에서 연지훈을 한눈에 알아보고 구명줄이라도 잡은 듯 그에게 달려갔다.“지훈 씨, 하나가 다쳤어요. 상태가 심각해요. 제발 우리 하나 병원으로 데려다줘요!”하지만 연지훈은 그녀를 밀쳤다. 서현주는 머리가 땅에 부딪혔고 눈앞이 어지러웠다.“서현주, 뻔한 연기는 제발 그만 좀 해!”말을 마친 연지훈은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더니 유이영의 아들을 안고 구급차로 향했다.서현주는 머리가 어지러운 와중에도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자존심까지 다 내려놓고 비참하기 그지없었다.“제발 부탁이에요. 하나 곧 죽을 것 같다고요! 우리 하나도 지훈 씨 딸이잖아.”연지훈은 전혀 믿지 않고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째려봤다.“몇 번을 말해? 내 생에 아이는 딱 한 명이야. 이영이가 낳아준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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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연씨 저택, 커다란 거실.서현주는 자신의 앳된 손을 내려다보며 마침내 본인이 환생했다는 걸 확신했다.소파 한가운데 연지훈의 할아버지 연동욱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진중하게 말했다.“현주 너 정말 지훈이 따라 한성시로 출장 갈 거야?”서현주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그녀는 이것이 전생의 결정적인 전환점이었음을 떠올렸다.연지훈이 한성시로 가는 것은 출장의 명목으로 첫사랑 여자친구 유이영을 만나기 위해서였다.이 사실을 알게 된 서현주 역시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그녀의 아빠는 연동욱의 운전기사였고, 연동욱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연씨 가문은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그녀를 연씨 가문으로 데려와 키워줬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줬고 친딸 못지않게 키워왔다.하여 이번에도 연동욱은 그녀가 연지훈의 출장에 따라가겠다는 요구를 수락했다.그녀는 연동욱의 옆에 있는 연지훈을 바라보았다.이 남자는 세련된 블랙 슈트 차림에 단추는 마지막까지 꼼꼼히 채웠고 무심하게 다리를 꼬고 있었다. 이마에 드리워진 머리카락은 날카로운 눈빛과 습관적으로 굳게 다문 얇은 입술을 가렸다.그를 처음 본 순간, 서현주는 숨이 턱턱 막히고 지난날의 모든 일들이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재현되었다.심장 박동이 거의 멈췄고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그녀를 지배하던 이 남자, 그녀를 완전히 쓰레기 취급하던 이 남자.서현주는 그를 증오했다.뼛속까지 증오했다.자신을 경멸하던 그 눈빛, 모든 걸 제압하던 그 몰골이 밤낮으로 머릿속을 맴돌아서 찢어 죽이고 싶은 충동까지 생겨났다.연지훈의 눈가에 드러난 경멸감이 더욱 짙어졌고 손가락은 천천히 무릎을 두드리고 있었다.이것은 짜증을 표현하는 방식이라는 걸 서현주는 누구보다 잘 안다.연지훈은 꼭 마치 그녀가 무조건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부릴 것을 확신하는 눈치였다.하지만 환생한 그녀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고 다짐했다.이제 막 입을 열려던 참인데 뒤에 있던 엄마 엄진경이 한껏 자세를 낮추고 말했다.“그럼요, 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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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서현주가 곧장 반박했다.“말했잖아요, 안 간다고요.”엄진경이 그녀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도대체 왜 이렇게 고집 피우는 거야?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데!”서현주는 주먹을 꽉 쥐고 단호하게 말했다.“무슨 기회인데요?”엄진경의 목소리가 커졌다.“당연히 연지훈 유혹할 기회지. 너 지훈이 좋아하잖아!”어쩌면 전생의 경험 때문이겠지. 서현주는 ‘연지훈’ 이름 석 자를 들을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몸이 파르르 떨렸다.그녀는 눈시울이 빨갛게 물들었다.“그런 거 아니...”똑똑.예고 없이 노크 소리가 울렸다.서현주는 눈가의 슬픔을 거두기도 전에 문밖의 연지훈의 차갑고 무심한 눈빛과 마주쳤다.시선이 마주친 순간, 서현주는 전생의 연지훈이 자신을 그렇게 쳐다보던 기억이 떠올랐다. 쓰레기를 보는 듯, 죽은 시신을 보는 듯한 저 눈빛.그녀는 순간 지옥 같았던 전생으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뒤로 몇 걸음 물러서며 눈길을 피했지만 얼굴에 닿은 이 남자의 강렬한 시선이 여전히 느껴졌다.연지훈은 방금 두 모녀의 대화를 들었다.그는 줄곧 꼼수와 계략으로 가득 찬 인간을 싫어했다. 게다가 엄진경의 속셈은 이제 너무나 명백하게 드러났다.연지훈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할 리가 없었다.엄진경 역시 멍하니 넋 놓고 있다가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지훈아, 난 그런 뜻이 아니라...”“됐어요. 당신들 역겨운 얘기는 듣고 싶지도 않아요.”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혐오에 찬 표정으로 눈길을 돌렸다.더는 이 두 모녀를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 듯 몸을 홱 돌리고 이 한 마디만 내던졌다.“할아버지가 식사하라고 부르세요.”그가 떠난 후 방안에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서현주는 마음을 가다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게 엄마가 원하는 결과예요?”엄진경은 문을 닫으며 이를 갈았다.“이렇게 된 이상 더 포기하면 안 되지.”“엄마 생각이 어떻든 나 짐 안 싸요!.”서현주는 완고한 엄진경을 설득할 수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이에 엄진경은 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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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가정부는 놀란 기색이 역력하여 이불을 뒤집어쓴 그녀를 멍하니 바라봤다.그러더니 심드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서현주는 기껏해야 어르신 운전기사의 딸인데 무슨 자격으로 자신에게 일을 시키는 걸까?“이봐요, 현주 씨. 이런 일은 원래 현주 씨가 해야 할 일이잖아요.”서현주는 대꾸도 없었다.한참 후, 가정부가 이불을 뒤집어쓴 그녀를 째려보다가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샤워를 마치고 방에서 나온 연지훈은 1층 부엌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곳에서는 희미하게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음주로 인한 불편함을 완화했다.그러고는 별다른 생각 없이 계단을 내려가 거실 소파에 앉아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5분 후, 가정부가 부엌에서 나왔다. 그녀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해장국을 연지훈 앞에 내려놓았다.“대표님, 해장국이 아직 뜨거우니 천천히 드세요.”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목소리에 연지훈이 눈을 떴다. 그는 눈앞의 가정부를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왜 아줌마예요?”가정부는 조심스럽게 그의 표정을 살폈는데 눈가에 악의가 스쳐 지나갔다.이것은 원래 서현주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녀가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다면 가정부도 이곳에서 연지훈을 조심스럽게 시중들 필요가 없을 것이다.“제가 여러 번 말씀드렸는데 현주 씨가 싫다고 해서요. 대표님, 현주 씨를 잘 가르쳐주셔야 해요. 계속 저런 식이면 안 돼요.”연지훈은 서현주의 방을 힐긋 바라봤다.그녀의 방 문은 마침 거실과 마주해서 한눈에 보였다.방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가정부의 말대로 정말 자는 듯했다.연지훈은 그릇을 집어 들었다. 그의 눈빛은 평온했고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알았어요.”그는 막 한 모금 마셨을 뿐인데 미간을 찌푸렸다.이에 가정부는 심장이 바짝 조여왔다.“왜요? 입맛에 안 맞으세요?”연지훈은 해장국을 한 모금 더 마시고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맛이 확실히 달랐다.서현주는 14살 때 연씨 가문에 왔다.반년이 지난 후,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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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서현주가 머리카락을 움켜쥐며 짜증을 낼 때, 엄진경이 그녀의 어깨를 잡고 정색하며 다그쳤다.“연씨 가문에 우리를 환대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아직도 모르니? 가정부들도 이제 우릴 깔보고 있잖아. 엄마는 네가 성공해서 우릴 구원해주기만 바라고 있어!”전생에 서현주는 이 말을 귀가 아프게 들어서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말했잖아요. 난 절대...”“두 사람 아직도 망상에 빠진 거예요?”갑자기 앙칼진 목소리가 모녀의 귀를 파고들었다. 엄진경은 문 앞을 바라보더니 곧바로 아부하듯 말했다.“오셨어요, 아가씨.”서현주는 말없이 엄진경의 손에 들린 여행 가방을 빼앗아 침대 밑에 밀어 넣으려 했다. 그때 문가의 여자가 하이힐을 신고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연채린, 연지훈의 사촌 여동생이자 연동욱의 유일한 친손녀.그녀는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귀하게 자랐다.연채린은 거만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 눈빛은 서현주가 너무나 잘 아는 눈빛이었다.“왜요? 내가 안 돌아오면 당신들 우리 집안 발칵 뒤집어 놓을 속셈이었어요? 지훈 오빠가 아무 말 안 하던가요?”연채린의 농염한 얼굴에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오빠가 제발 좀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하는데 왜 이렇게 뻔뻔해요? 그렇게 오빠 옆에 들러붙고 싶어요? 출장까지 따라갈 만큼?”서현주는 담담한 표정으로 일어서서 연채린을 똑바로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채린 씨, 여기는 제 방이에요. 나가주세요.”연채린의 얼굴에 띤 야유가 더욱 짙어졌다. 꼭 마치 어처구니없는 말이라도 들은 것처럼.“이봐요, 서현주 씨, 여기 오래 살았다고 제집인 줄 알아요?”그녀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똑똑히 봐요. 여긴 연씨 저택이에요. 당신들 집이 아니라. 나만 원한다면 어느 방이든 다 갈 수 있어요.”서현주의 눈가에 서늘한 빛이 스쳤다.“하지만 적어도 할아버지 앞에서는 여기가 제 방이에요.”연채린의 안색이 굳어졌다.“감히 나한테 말대꾸하는 거야? 게다가 할아버지를 내세워서 날 협박해? 네가 뭔데?”전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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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서현주는 생각에 잠겼다.전생에도 똑같은 장면이 이 거실에서 펼쳐졌었다. 달라진 건 그녀의 태도뿐이다.그때의 그녀는 유이영과 연지훈이 이미 헤어졌다는 사실을 근거로 유이영이 연씨 가문에 머무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았고, 줄줄이 큰 망신을 당했다.가정부는 시큰둥해서 지켜보기만 했고 연동욱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유이영은 늘 연지훈 뒤에서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채 우아하고 단정하게 서 있었다. 미쳐 날뛰는 그녀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그녀는 똑똑히 기억했다. 연지훈이 그녀에게 사과를 강요했고 한밤중에 연씨 가문 정원에서 반성하게 했다.그날 밤, 서현주는 유이영이 연지훈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고 밤새도록 방안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굳게 닫힌 창문 너머로 두 사람의 실루엣이 은은하게 비쳤다.서현주는 문득 계단에서 걸음을 멈췄다.그때 왜 그렇게 유이영이 연씨 가문에서 지내는 걸 막으려 했던지 깨닫게 되었다.전생에 서현주는 연지훈을 따라 한성시로 갔고 유이영과 같은 호텔에 묵었다.유이영은 그녀와 연지훈의 컵에 약을 탔는데 본래의 의도는 그녀와 연지훈이 관계를 갖도록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적절한 시간에 둘을 떼어놓고 서현주가 일부러 연지훈을 유혹했다고 누명을 뒤집어씌워서 이 남자에게 미움받게 할 계획이었다.하지만 아쉽게도 그날 연지훈의 방 문 잠금장치가 고장 났다.다음 날 아침, 유이영이 사람들을 데리고 문을 따고 들어왔을 때, 모든 것이 늦어버렸다.유이영의 예상대로 서현주는 확실히 연지훈에게 미움받고 경멸당하며 평생의 치욕으로 여겨졌다.또한 그날 밤, 서현주는 연하나를 임신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그 아이를...임신 때문에 서현주는 학업을 포기하고 고등학교 졸업장도 못 따서 평생 제대로 된 직업을 찾기가 어려웠다.계단에 멈춰선 그녀의 모습에 연채린이 물었다.“또 무슨 수작이에요, 현주 씨? 이영 언니가 와서 속이 많이 심란하죠?”그들을 등지고 있지만 자신을 향한 연지훈의 따가운 시선이 충분히 느껴졌다. 그건 마치 그녀가 유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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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연채린은 비웃는 표정으로 편지를 한 글자씩 읽어내려갔다.“지훈 오빠, 저는 항상 뒤에서 오빠를 지켜보고 있어요. 이런 저를 뒤돌아 봐줄 수 있나요?”연채린의 목소리를 들으며 서현주는 주먹을 꽉 쥐었다.이것은 확실히 그녀가 쓴 것이다. 환생하기 전에, 연지훈에게 허황한 환상을 품고 있을 때 쓴 편지였다.다만 그녀는 늘 연애편지를 잘 숨겨두었기에 연지훈의 방에 편지를 둘 리가 없었다.단 한 가지 가능성이 있다면 누군가가 훔쳐서 연지훈의 방에 넣은 것이었다.그건 연채린일 수도 있고 유이영일 수도 있다.“됐어, 그만해.”연지훈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분노가 잠겨 있었고 눈가에 싸늘한 빛이 감돌았다.“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연채린은 차갑게 웃으며 입을 다물고 혐오스러운 듯 편지를 서현주의 품에 찔러 넣었다.환생한 서현주조차도 연지훈의 이런 눈빛을 보고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었다. 온몸이 차갑게 식는 느낌이었다.“서현주, 뭐라고 설명해봐야지?”이때 유이영이 갑자기 연지훈의 팔을 잡아끌며 부드럽게 말했다.“현주 씨가 아직 애라서 그래요, 지훈 씨. 너무 신경 쓰지 말고 화 좀 풀어요. 다만...”유이영이 연민이 스친 눈빛으로 서현주를 쳐다봤다.“현주 씨 공부에 집중하고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도록 잘 가르쳐 줄 필요는 있겠네요.”연지훈은 냉랭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서현주, 제발 그런 더러운 생각 좀 하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해? 주제넘게 굴지 마.”서현주는 깊은숨을 들이쉬었다.“난 이 편지 이 방에 둔 적 없어요. 딴 사람 짓일 거예요.”연채린이 실소를 터트렸다.“뭐라고요? 이 집에서 현주 씨처럼 뻔뻔한 인간이 또 어디 있는데요? 이런 짓거리로 오빠랑 이영 언니 떼어놓으려는 수작이잖아요.”서현주는 그녀의 말을 아예 무시했다.그러고는 연지훈의 싸늘한 눈빛을 똑바로 쳐다봤다.“연지훈 씨! 제가 잘못했어요. 이런 오해가 없도록 명확하게 말했어야 하는데.”연지훈은 여전히 냉랭한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잘 들어요. 난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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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도망갈 생각 마.”서현주는 이를 갈았다.연지훈은 역시나 그녀를 유이영으로 착각하고 이토록 미쳐 발광하고 있었다.그가 옷 속으로 손을 뻗으려 하자 서현주는 온몸으로 거부하며 팔꿈치로 그의 가슴팍을 내리쳤다.“손대지 마!”서현주는 이를 악물고 쏘아붙였다.“역겨워 진짜.”연지훈의 손이 갑자기 멈췄다. 곧이어 그의 거친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뭐라고?”서현주는 이를 갈았다.“너 진짜 역겹다고, 연지훈!”연지훈은 잠시 침묵하더니 곧바로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고 분노에 찬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닥쳐!”이어서 서현주의 상의를 걷어 올리며 뜨거운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더듬었다.서현주는 절망에 휩싸인 채 욕실 문에 머리를 맞댔다.등 뒤에는 늑대처럼 달려드는 연지훈이 있어서 꼼짝달싹하지도 못했다.설마 또 전생의 비극을 반복해야 하는 걸까?어쩌면 하늘이 그녀를 돕는 건지도 몰랐다. 그때 마침 방 문이 자동으로 벌컥 열렸다.그 순간 서현주는 온 힘을 다해 연지훈을 밀어내고 문밖으로 뛰쳐나갔다.밖으로 나오자마자 그녀는 문을 세게 닫았다.정신없이 몇 걸음 뛰다가 유이영과 연채린과 마주쳤다.유이영은 그녀를 보자 저도 몰래 목소리를 높였다.“현주 씨,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서현주의 얼굴이 굳어졌다.“난 여기 있으면 안 돼요?”유이영은 불쑥 그녀의 손을 더욱 세게 잡으며 다그치듯 물었다. 손톱은 살을 파고 들어갈 기세였다.“현주 씨 입술이 왜 이렇게 빨개요? 지훈 씨랑 무슨 일 있었던 거예요?”서현주는 차가운 눈빛으로 침착하게 말했다.“아니요. 그럴 일 없으니까 안심하세요. 난 절대 이영 씨 남자를 넘보지 않아요.”연채린이 피식 웃었다.“그걸 누가 장담해요? 현주 씨는 원래 뻔뻔스러운 여자잖아요. 내 말 틀려요?”서현주는 그런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계속 유이영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연지훈 씨 지금 많이 힘들어하는데 들어가서 함께해주는 건 어때요? 어쩌면 오늘 밤이 지나면 두 사람 다시 합칠 수도 있을 텐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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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서현주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녀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아니요. 잘못 들은 거예요.”이 남자가 어젯밤 일과 그녀가 했던 말까지 전부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유이영으로 착각한 게 아니라고?연지훈은 불쑥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반항하는 그녀를 무시한 채 강제로 무릎 위에 앉혔다.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그녀의 책가방이 차 시트 아래로 떨어졌다.서현주는 미친 듯이 연지훈의 어깨를 때렸다.“지훈 씨 왜 이래요 정말? 미쳤어요?”연지훈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운전석 시트에 밀어붙였다. 이어서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고 서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내가 바보로 보여?”서현주는 둘 사이에 팔을 뻗쳐서 거리를 유지했다.“날 유이영으로 착각하는데 역겹다고 하는 게 뭐가 잘못됐어요? 진작 말했잖아요. 지훈 씨랑 거리 두겠다고. 자꾸 선 넘는 쪽은 지훈 씨에요. 그리고 약 탄 거! 누가 한 짓인지 제대로 조사했어요?”그녀는 연지훈의 깔끔하게 재단된 옷깃을 움켜쥐었다. 차가운 눈동자에 눈물이 서서히 고였다.“더는 날 억울하게 만들 생각 마.”“더는?”연지훈은 어두운 눈길로 그녀를 차분하게 바라보았다.“내가 언제 너를 억울하게 했는데?”곰곰이 되새겨보니 전생에 수없이 많았다.그토록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던 서현주... 연지훈과 유이영은 반드시 마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문득 연지훈이 피식 웃으며 그녀의 턱을 잡았다.“그리고 또 뭐? 거리를 두겠다고? 난 허락한 적 없는데.”서현주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무슨 뜻이에요?”연지훈의 목소리는 아주 담담했다.“내가 모든 것을 제대로 조사할 때까지 도망갈 생각 마.”“결국 지훈 씨는 유이영을 의심하지 못하는 거잖아요.”서현주는 이 상황이 참 아이러니했다.“일이 이미 명백해졌어요. 그 과일 주스 말고 다른 의심할 곳은 없어요.”그녀는 연지훈을 향해 경멸의 미소를 날렸다.“유이영도 손에 넣었잖아요. 안 그래요?”연지훈의 눈빛이 더욱 서늘해졌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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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서현주는 손안의 옥고리를 들어 연지훈에게 내밀었다.“이 옥고리 연채린이 부순 거예요.”담임 선생님은 옥고리를 흘긋 보더니 차갑게 말했다.“채린이가 얼마나 착한 애인데 어떻게 일부러 네 옥고리를 부쉈겠어? 학교에서 감히 채린이한테 누명 씌우지 마. 오히려 너야말로 앞뒤 안 가리고 주먹을 휘둘렀잖아. 진짜 언제 정신 차릴는지, 쯧쯧!”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연채린이 그녀의 옥고리를 부순 것은 고의가 아니고, 그녀가 연채린을 때린 것은 품행이 불량하고, 고의적이라고 한다.이때 유이영이 그 옥고리를 보더니 부드럽게 말했다.“이거 그다지 비싸 보이지도 않는데, 그렇게 아쉬우면 내가 하나 사줄게요. 이런 일로 굳이 화낼 필요는 없잖아요. 게다가 채린 씨한테 품질 좋은 옥이 차 넘칠 텐데 뭣 하러 현주 씨 옥고리를 부쉈겠어요. 현주 씨가 우리 채린이 오해했네요.”그녀는 빙빙 돌려 말하면서 착한 사람 코스프레만 했다.하지만 상황파악이 되는 사람이라면 유이영이 지금 얼마나 대놓고 야유를 날리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연채린은 연씨 가문의 따님이라 이딴 싸구려 옥을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고 오히려 서현주만 하찮은 옥을 보물처럼 여기고 있다는 뜻이다.모두가 그렇게 여기는 눈치였다.주위에 있던 학생들이 웃음을 터트렸으니까.서현주는 연지훈을 바라봤는데 이 남자가 한창 짙은 눈길로 그녀를 마주 보고 있었다.주변 사람들의 진술에 대해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이건 아마도 묵인이겠지.서현주는 마음속으로 아이러니하고도 씁쓸했다.이곳은 모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뿐이니 어찌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그때 교장이 다가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현주야, 이번 일은 네가 먼저 손댔으니 채린이한테 제대로 사과하렴.”교장의 태도는 확고했다.서현주가 연씨 가문에서 입양한 딸이지만 이 집안에서 중히 여기는 건 사실상 연채린이었다.그렇다면 연씨 가문 사람들 앞에서 진실은 더 이상 중요치가 않다.서현주는 반드시 사과해야 한다.엄진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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