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남편의 결혼을 지지해요: Chapter 111 - Chapter 120

152 Chapters

제111화

서현주는 연지훈에게 와락 끌어안긴 채 온몸이 뜨겁게 떨렸다. 두 손은 애써 참으면서도 갈망하는 듯 그의 옷깃을 움켜쥐었고 시야는 줄곧 흐릿했다.“지훈 씨...”미세하게 떨리는 작은 목소리, 공기에 노출된 연지훈의 목덜미에서 그녀를 매혹하는 온도와 향기가 풍겨 나왔다.서현주는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땀에 흠뻑 젖었다.연지훈의 체취가 그녀의 욕구를 자꾸 건드렸다.이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고통이 사라질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서현주는 마치 홀린 듯 연지훈의 옷깃을 움켜쥐었던 손을 천천히 풀고 그 뜨거운 손으로 이 남자의 목을 잡았다. 이어서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며 손가락 끝으로 연지훈의 목을 계속 어루만지며 나직이 읊조렸다.“나 하고 싶어요...”몽롱한 시선 속에서 그녀는 연지훈의 목젖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서현주는 또다시 홀린 듯 엄지손가락 끝으로 그 꿈틀거리는 목젖 위를 꾹 눌렀다.다음 순간, 그녀의 귓가에 남자의 낮고 굵은 목소리가 꽂혔다.연지훈은 그녀를 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그는 시선을 내리깔고 길고 검은 눈동자에 서현주가 읽을 수 없는 어떤 감정을 싣고서 지그시 바라봤다.“현주야, 가만히 있어.”연지훈의 낮고 중후한 목소리가 서현주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순간 그녀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시선을 올리고 이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이내 눈앞의 남자는 흐릿하게 변해버렸다.누구지?이 사람 누굴까?서현주도 이제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그녀는 즉시 연지훈의 목을 끌어안고 고개를 젖혀 그의 목에 키스하려 아등바등했다.“하고 싶어요...”닿을 듯 말 듯, 도무지 닿지 않는 거리였다.안달이 난 서현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투덜거렸다.“왜 안 닿는 건데...”그녀는 연지훈의 목을 덥석 잡더니 손톱으로 목덜미를 날카롭게 긁어댔다.이어서 초조하게 소리쳤다.“내놔, 하고 싶단 말이야!”연지훈은 또다시 침을 꿀꺽 삼키고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좋아하는 향이 점점 가까워지자 서현주는 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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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화

연지훈은 제멋대로 구는 그녀를 냉랭하게 바라볼 뿐 표정이나 몸짓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오직 이마에 맺힌 잔잔한 땀방울만이 그의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냈다.서현주는 흐느끼며 말했다.“너무 괴로워요, 진짜 너무 괴로워.”그녀는 시종일관 연지훈의 손목 부분 천을 꽉 잡고 그를 단 한순간도 떠나지 못하게 했다.연지훈은 눈을 감고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눈가에 막 피어오르려던 욕망을 억지로 억눌렀다.그는 손을 뻗어 자신의 옷을 붙잡고 있는 서현주의 손을 강제로 떼어내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바로 병원에 데려다줄게.”서현주는 더욱 크게 울부짖었다.“싫어요!”이내 떼어진 손은 남자의 속박에서 벗어나 몸 사리지 않고 안전벨트를 풀어헤치며 그에게 달려들었다.“갖고 싶어...”향기롭고 나른한 그녀의 몸이 연지훈에게 착 달라붙었다. 한편 연지훈은 애써 욕망을 참으면서 그녀를 안지 않으려고 버텼다. 그저 두 눈을 질끈 감고 이 여자가 멋대로 몸을 더듬게 내버려 두었다. 아니 어쩌면... 그녀의 손길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서현주의 머릿속은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남자의 옷자락을 붙잡았고 자신은 뒷좌석에 반쯤 꿇어앉은 채, 입술로 남자의 뺨을 막무가내로 아무렇게나 비벼댔다.연지훈은 한참이나 참고 버텼다.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눈꼬리에는 희미한 붉은 기가 감돌았다.그는 줄곧 제멋대로 구는 서현주를 음침하게 바라보며 경고장을 날렸다.“현주야, 이건 마지막 경고야.”“내게서 떨어져.”그렇게 말하면서도 천천히 손을 들어 점점 아래로 미끄러지는 서현주의 몸을 감싸 안았다.연지훈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떨어졌다.“현주야, 너 지금 이러는 거 나중에 깨어나면 뒷감당 못 해.”하지만 서현주는 남자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제 고집대로 덮쳐들었다.바로 다음 순간, 그녀의 허리가 갑자기 움켜쥐어졌고 그대로 차 좌석 위로 끌려가더니 남자의 단단하고 넓은 몸에 그대로 짓눌려버렸다.더 이상 억누를 수도, 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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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화

서현주는 화장실에 서서 옷을 모조리 벗었다.이어서 손으로 물을 떠다가 제 몸에 조금씩 뿌렸다. 손바닥으로 연지훈이 남긴 흔적을 하나둘씩 쓸어내렸다.무표정한 얼굴로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피부를 아주 세게 문질렀다.서현주의 피부는 곱고 부드러웠지만 거칠게 문지르다 보니 피부 위에 붉은 자국들이 가득 남았다.연지훈의 흔적을 지울 수 없다면, 더 강한 흔적으로 커버해야 했다.반 시간 후, 서현주는 온몸이 흠뻑 젖은 채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녀는 두 팔로 자신을 단단히 끌어안았다.고개를 숙인 채 몇 걸음 옮겼을 때, 마침 병실 밖에서 연지훈이 걸어 들어왔다.서현주는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그녀의 맑은 눈동자에 어떠한 명확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오히려 연지훈이 짙은 눈길로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을 바라보더니 미간을 살짝 구기고 목소리를 내리깔았다.“아픈데 무슨 샤워야?”서현주는 입을 굳게 다물고 차가운 눈길로 그를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기분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고 제스처도 너무 방어적이었다. 자신의 몸을 꽉 움켜쥐고 있었으니까.연지훈은 점차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그는 안색이 확 굳어지고 서현주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손을 뻗어 그녀의 옷깃을 걷어냈다.옷깃 아래, 붉게 남은 수많은 자국들은 마치 누군가 비비고 문지른 듯했다. 이 자국들은 연지훈이 남긴 흔적을 완전히 덮어버렸다.그의 눈가에 분노가 차올랐다.연지훈은 격노하여 실소를 터뜨리며 서현주에게 다가가 나직이 물었다.“왜? 내가 더러워?”“기억해야지. 네가 먼저 매달렸잖아.”서현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차가운 시선으로 연지훈을 바라보았다.그걸 잊을 리가 있을까. 자신이 먼저 매달리고 한껏 요염한 표정으로 애원하던 모습을...서현주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연지훈과 거리를 두려 했다.곧이어 그녀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지훈 씨, 이 일은 내가 약에 중독돼서 스스로 제어하지 못해서 벌어진 거예요.”“날 구해준 건 고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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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화

강혜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가슴을 펴고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생각났다. 성태우네 아빠 엄마는 걔 어릴 때 이혼했어. 태우는 아빠랑 살았고, 엄마는 거의 찾아오지 않았어. 몇 년 전에 걔네 엄마가 위암에 걸렸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며칠 전에 돌아가셨대.”“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태우가 엄마 묘지에 간다고 그랬는데, 다른 애들한테 여쭤보니까 걔네 엄마 묘지가 성동 일대에 있대.”성동이라...서현주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성동 지역은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으로 알려져 있었다. 시내뿐 아니라 외곽의 부유층들도 그곳에서 묘지를 고를 정도로 평당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곳이다.가정 형편이 어려운 성태우가 어떻게 그 비싼 묘지를 살 수 있었을까?서현주는 어렴풋이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섰음을 느꼈다.그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즉시 퇴원하고 강혜인과 함께 택시를 잡아 성동 묘지로 향했다.묘지.서현주와 강혜인은 이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 묘지 앞에 멈춰 섰다.다른 묘비에는 생전의 위대한 업적이나 중요한 성과들이 새겨져 있었지만, 눈앞의 중년 여성 묘비에는 빛바랜 사진 한 장과 짧은 문구만 적혀 있었다.[다음 생은 부디 평안하고 순탄하길.]사진 속 중년 여성은 눈가에 주름이 깊게 패도록 웃고 있었다. 인자하고 밝은 미소였지만, 그 안에는 약간의 어색함도 섞여 있었다. 그녀의 이목구비는 성태우와 약간 닮았다.강혜인이 나직이 말했다.“성태우 엄마야. 나 전에 본 적 있어.”“성태우 부모님이 이혼한 건 아빠의 가정폭력 때문이었어. 엄마는 결혼 이후로 전업주부라 수입이 없었지. 그래서 이혼할 때 법원에서 양육권을 아빠 쪽으로 넘겼던 거야.”“태우는 효자였어. 엄마가 위암 말기라는 걸 알았을 때부터 엄마 병을 고치려고 아르바이트를 계속했는데... 암 말기라서 이미 너무 늦었어. 더 이상 살릴 수가 없었지.”“태우네 엄마는 너무 가난해서 쓰레기를 주워 생계를 유지했을 정도였어.”“그런데 성태우가 어떻게 이 비싼 묘지를 살 수 있었을까?”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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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화

유강호가 벌떡 고개를 들고 충혈된 두 눈으로 그녀를 노려봤다.“야, 서현주, 건방 떨지 마라. 왜? 내가 곧 감옥 들어갈 것 같아?”그가 험상궂은 미소를 날렸다.“두고 봐. 금방이면 나올 거야.”서현주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유이영이 갑자기 달려들어 그녀의 어깨에 두 팔을 올려놓고 충혈된 눈으로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현주 씨, 내가 강호 대신 사과할게요. 정말 미안해요. 우리 강호 용서해주면 안 될까요?”“다 내 잘못이에요. 괜히 나 때문에... 강호는 나를 너무 아끼다 보니 그랬을 뿐이에요... 절대 고의는 아니었어요.”서현주는 야유를 머금고 유이영의 손에서 팔을 뿌리쳤다.“이게 고의가 아니면 대체 뭐가 고의라는 거죠?”그 순간, 유이영은 마치 갈대처럼 흔들리며 서현주의 가벼운 힘에도 비틀거리더니 연지훈의 품으로 쓰러졌다.“지훈 씨...”유이영이 애처롭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부드러운 두 팔로 연지훈의 허리를 감싸 안고 어깨를 들썩이더니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녀의 모습은 가련하기 짝이 없었다.한편 연지훈은 입을 굳게 다물고 미간을 찌푸리며 몹시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만약 낯선 사람이 이 광경을 본다면 서현주가 가엽게 우는 유이영을 괴롭혔을 거로 착각할 게 뻔하다.서현주는 앞으로 나아가 경멸하는 눈빛으로 맞은편 세 사람의 얼굴을 훑어보았다.“유이영 씨, 그날 밤에 지훈 씨가 날 병실 문 앞에서 무릎 꿇게 했던 일을 설마 다 잊은 건 아니겠죠?”그녀가 말을 이었다.“대체 뭘 그렇게 순진한 척 연기하는 거예요?”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 전까지 유이영 일행은 무고한 사람으로 보여도 괜찮았다.하지만 진상이 밝혀진 후에도 유이영은 여전히 무고한 피해자인 양 울었고 은근슬쩍 서현주를 가해자처럼 몰아붙였다.정말 볼만한 구경거리였다.유강호가 침을 퉤 뱉으며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누나, 쟤한테 사과할 필요 없어. 난 아무 잘못 없어. 쟤는 그냥 당해도 싸. 안 그러면 왜 딴 사람 놔두고 하필 쟤만 건드렸겠어?”강혜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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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화

서현주는 며칠간 조용한 나날을 보냈다. 평범하게 학교 나가서 공부하고 집에 오는 일상이었다.그렇게 잠잠하게 보내고 있었지만 학급 분위기는 며칠간 무겁게 가라앉았다.늘 정의롭다고 생각했던 성태우가 무고한 여성을 희롱한 죄로 감옥에 갔다는 사실을 모두 알게 되었으니까.이 소식은 많은 학생과 선생님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서현주와 강혜인은 내막을 알고 있지만, 굳이 이야기하지는 않았다.며칠 후, 유강호의 지시를 받은 사람들이 정말로 성태우 어머니의 유골을 파헤쳤다.다행히도 서현주가 얼마 전 연씨 가문으로부터 10억 원을 받았고, 진상이 밝혀짐에 따라 연지훈이 보상 차원으로 2억 원을 더 보냈다.이번에는 서현주가 성서의 한 추모공원에서 성태우 어머니를 위한 평범한 묘지를 골라주었다. 비싸지 않은 가격이라 그녀는 즉시 비용을 지불하고 성태우 어머니를 안장했다.이제 성태우 어머니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쫓길 걱정 없이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다.이후, 서현주는 강혜인과 함께 다시 한번 성태우를 면회하기 위해 경찰서에 갔다.수갑을 찬 성태우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고 그녀에게 고마움을 전했다.이날부로 성태우는 성희롱 죄로 4개월 형을 살게 되었다.한편 유강호는 자신이 내뱉은 말대로 명백한 증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그 후 며칠간, 서현주는 더 이상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지 않았다.그러던 어느 날, 유이영의 손에 감시 카메라 영상이 전달되었다.영상은 흐릿했지만, 한쪽 구석에서 연지훈이 한 여성을 안고 중앙에 보이는 롤스로이스를 향해 빠르게 걸어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유이영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화면 속 여자는 잿더미가 돼서도 알아볼 수 있는 사람, 바로 서현주였다!영상 속 연지훈은 뒷좌석 문을 열어 서현주를 안에 밀어 넣은 후 자신도 올라탔다.유이영이 안심하려던 찰나, 서현주가 뒷좌석에서 손을 뻗어 연지훈의 허리를 꽉 붙잡고 무언가를 몹시 갈망하는 듯 그의 몸에 달라붙었다.유이영의 얼굴색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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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화

유이영은 영상 속 서현주와 연지훈이 뒤엉킨 장면을 떠올리자 속이 뒤집히는 듯한 메스꺼움과 느끼함이 가슴을 턱 막아왔다. 그녀는 허리를 숙여 바닥에 마구 토했다.머리를 쥐어짜며 갖은 수단을 생각했고 많은 노력도 해왔는데 결국 서현주 좋은 일만 하게 된 꼴이라니!‘현주가 우리 지훈 씨랑...’어쩐지 그렇게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더라니, 서현주에게 발목 잡혔을 줄이야.아직 유이영도 거기까지 진도가 나가지 못했는데 서현주가 먼저 선수를 쳤다.‘서현주, 이 죽일 년!’유이영은 가슴을 움켜쥐고 눈가에 분노와 표독스러운 기운이 거세게 타올랐다.너무 화난 나머지 본인이야말로 서현주에게 약을 탄 장본인이란 사실까지 까맣게 잊어버렸다.모든 일의 근원이 바로 유이영이었다. 그녀만 아니었다면 이런 일들은 아예 일어날 수가 없다.다만 유이영은 지금 오직 서현주가 내 남자를 가로챘다는 사실만 머릿속을 맴돌았다.문밖에서 그녀의 구토 소리를 들은 가정부가 즉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이영 씨, 괜찮으세요?”저택의 가정부들은 연지훈이 그녀에게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잘 알고 있다. 또한 연지훈과 연씨 가문 사람들로부터 유이영을 잘 보살피라는 거듭된 당부를 받아왔기에 그녀의 작은 인기척에도 행여나 무슨 문제가 생길까 바짝 신경 쓰고 있었다.유이영은 시선을 내리깔고 눈 밑에 어두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부서진 휴대폰 조각을 주워들며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고 부드럽게 말했다.“몸이 좀 아파서 지훈 씨 집으로 불러주실 수 있을까요?”가정부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망설였다.연지훈은 현재 회사에서 근무 중이고 퇴근 시간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게다가 지금은 운진이 회사를 인수하는 중대한 시기였기에 연지훈은 줄곧 밤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온다.아주 사소하거나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로 그를 방해했다가는 욕을 먹을 수도 있었다.가정부들은 이미 몇 번이나 그런 경험이 있었다.결국 가정부가 망설이며 말했다.“이영 씨, 대표님께서 지금 바쁘실 텐데 급한 일이 아니시면 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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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화

전화가 끊긴 후, 가정부들은 연지훈이 유이영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일밖에 모르는 연지훈이 그녀를 일보다 우선시한다는 사실에 가정부들의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이때 유이영이 문을 열고 나왔다. 얼굴은 조금 창백했지만 미소가 어렸다.“어때요, 지훈 씨 곧 오겠죠?”가정부가 웃으며 대답했다.“이영 씨도 참. 대표님께서 이영 씨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시는지 모르는 거 아니잖아요. 곧 돌아오신대요.”유이영은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네, 고마워요들.”문을 닫은 후, 그녀의 얼굴에 띤 미소가 싸악 사라졌다.그녀는 참지 못하고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 연지훈의 차가 곧 저택 안으로 들어오기를 간절히 바랐다.서현주는 떠날 채비를 하는 연지훈을 바라보며 야유를 날렸다.“대표님은 기억력이 금붕어이신가 봐요. 나 찾아오면서 집에 ‘아름다운 아내’가 있다는 걸 새까맣게 잊었어요?”묘지에서 나온 후, 연지훈은 그녀를 강제로 끌고 왔다.커피숍에서 남자가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유이영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그러자 연지훈은 말없이 떠나려고 했다.그는 정장 외투 단추를 채우며 미간을 찌푸리고는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이영이가 아프대. 내가 좀 가봐야겠어.”서현주는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봤다.강혜인이 어느새 커피숍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이에 그녀는 연지훈보다 더 단호하게 떠났다.“앞으로는 누가 그날 내게 약을 탔는지 밝히는 것 외에는 더 이상 연락하지 마세요. 지훈 씨 집에 계신 그분께서 질투하고 괜히 또 나한테 화풀이할까 봐 무섭네요.”서현주는 아주 침착한 어투로 말했다.정작 마음속엔 거센 파도가 일었지만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등 뒤에서 연지훈의 낮고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기사 불러서 집까지 바래다줄게.”서현주는 아무 대답 없이 성큼성큼 문밖을 나섰다.그녀와 강혜인은 결국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버스 안에는 사람이 많아 두 여자 모두 서서 가야만 했다. 서현주는 강혜인 뒤에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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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화

강혜인은 휴대폰을 닫고 퀭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석양의 여광이 그녀의 앳된 얼굴에 쏟아졌는데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녀는 지금 고등학생이라기보다는 세상살이에 지친 어른처럼 보였다.강혜인이 나직이 말했다.“외할머니가 편찮으셔. 큰 병이라서 치료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해.”서현주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전생에서 몇 년 뒤 강혜인의 할머니에 대한 소식을 더 이상 듣지 못했다.아마도 이 무렵에 돌아가셨을 거라고 짐작했다.별안간 강혜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는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꾹 참았다.“며칠 전에 실은 나도 학교 안 나갔어. 병원에서 외할머니 간호해드렸거든. 집안의 거의 모든 돈을 치료비에 썼고 이제 통장엔 몇천 원밖에 안 남았어. 며칠 뒤면 밥도 먹기 힘들걸.”서현주가 뭐라 말하려 할 때 강혜인이 쉼 없이 이어갔다.“병원은 그래도 공정하고 정의로운 곳일 줄 알았는데... 분명 입원비도 냈는데 의사에 간호사까지 무자비하게 우리 할머니를 병실에서 내쫓더라.”강혜인은 코를 훌쩍이며 눈가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우리 외할머니 지금 병원 복도에서 지내고 계셔. 할머니 병실을 차지한 사람은 돈이 많고 뒤를 봐주는 사람들도 있어서 내가 도저히 맞서 싸울 수가 없어.”서현주가 인상을 구겼다.“뭐? 지금 바로 병원 가보자.”강혜인이 할머니를 위해 선택한 병원은 이 도시에서 매우 유명한 대학병원이다. 타지에서 치료받으러 온 환자와 가족들로 북적였고 복도까지 사람들로 빼곡해 걷기도 힘들 정도였다.그녀는 한참을 걸어서야 서현주를 할머니의 병상 앞으로 데려갈 수 있었다.강혜인은 복도에 놓인 침대 앞으로 다가가 한가운데 누워 있는 할머니를 조심스럽게 부축했다.“할머니, 조심하세요.”서현주가 다가가 할머니에게 인사드렸다.“할머니, 안녕하세요. 저 혜인의 친구예요.”외할머니는 연세가 높으셔서 볼이 꺼지고 두 눈이 움푹 파였으며 쇠약하고 병의 기운이 짙게 드리워졌다. 그럼에도 서현주를 향해 자애롭고 상냥한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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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화

그렇다면 이 남자는 심각한 병이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순간 서현주는 울화가 치밀었다.침대 주위에는 이 남자의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그녀는 사람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처음에는 그래도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며 너무 다그치진 않았다.“실례합니다만 이 침대에 있던 전 환자는 어디로 갔나요?”중년 남자와 그의 가족은 서현주를 의심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며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복도에 있을 거예요. 나가서 찾아보세요. 여긴 그쪽이 찾는 사람 없으니까!”서현주는 이때까지도 예의를 갖추며 상냥한 말투로 물었다.“그냥 한번 여쭤보는 건데 예전 환자분은 왜 멀쩡히 병실에 있다가 복도로 나가게 된 거죠?”중년 남자는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는 치킨을 치킨 통에 던졌다. 그는 치킨 가루가 묻은 입을 벌리고 흉악한 몰골을 드러냈다.“뭐야? 네가 그 할망구 가족이야? 병실에서 쫓겨났다고 따지러 왔어?”중년 남자가 피식 웃었다.“그럼 잘 들어. 너희 같은 거지들이 돈 없어서 병원비도 제대로 못 낼 정도인데 뭘 어쩌겠어? 나 뒤 봐주는 사람 있으니까 괜히 나서서 시비 걸지 마라. 돈 있으면 돈 내놓거나 사람 있으면 불러와서 해결해달라고 하든가.”서현주의 뒤에 있던 사람이 그녀의 어깨를 거칠게 잡아끌었다.“이봐요, 누군데 여기서 소란을 피워요? 시끄럽게 굴지 말고 당장 나가요. 안 나가면 경비 부를 겁니다!”서현주는 그 사람의 손을 뿌리치고 냉소를 지었다.“다들 낯짝도 참 두껍네요. 연로하신 분을 병실에서 내쫓고. 너희가 그러고도 인간이야? 짐승만도 못한 것들!”그녀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병실 안의 다른 사람들까지 시선을 끌었다.그때 요염하면서도 야유 섞인 목소리가 갑자기 울렸다.“서현주 씨? 현주 씨가 바로 그 할머니 가족이었어요?”서현주가 고개를 돌렸다.카키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키 큰 여자가 병실 입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예쁘장한 얼굴에 손에는 과일 바구니를 들고 있었고 얼굴에는 서현주가 흔히 봐왔던 야유로 가득 찼다.그녀는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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