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아내 바라기가 된 대표님: Chapter 91 - Chapter 100

100 Chapters

제91화

엄나온은 이번에 제대로 세게 넘어졌다. 원래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 안 가리는 사람이었다. 대충 넘어져서야 송다빈을 망칠 수 있겠나. 송다빈을 무너뜨리지 못하면 고윤한의 마음도 되찾을 수 없었다.진여원 등도 엄나온의 비명에 이끌려 달려왔다.엄나온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한 손은 얼굴을 가린 채 다른 손으로 바닥을 짚고 있었다. 몸을 잔뜩 웅크린 얼굴엔 고통이 가득했다.그게 모두가 본 장면이었다. 넘어짐은 우연일 수 있었다. 그런데 얼굴을 가린 그 동작은 뭘 의미할까?송다빈은 엄나온처럼 쇼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미 밀실 통로에서 걸어 나왔다.사람들은 둘 사이를 번갈아 훑어봤고, 진여원이 제일 먼저 다가가 엄나온을 부축하려 했다.“무슨 일이에요? 왜 넘어진 거예요?”그는 일부러 얼굴 가린 동작은 못 본 척하고 그냥 넘어졌다고만 여겼다.“아! 못 일어나겠어요, 발목이...!”엄나온은 미간을 세게 찌푸린 채 누가 봐도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못 일어나겠어요?”상황의 심각성을 눈치챈 진여원 곁으로 장예리가 뛰어왔다. 그녀가 바짓단을 걷어 보곤 그대로 숨을 들이켰다.엄나온의 발목이 퉁퉁 부어올라 있었는데 보기에도 심했다. 그제야 모두가 정신을 차리고 우르르 몰려들었다.엄나온 주변은 금세 인산인해가 됐다. 여우주연상까지 받은 스타가 촬영 중 다쳤다? 일이 커지면 제작진 전체가 여론에 매몰될 일이었다.프로그램 감독이 곧장 결정을 내렸다.“빨리! 구급차 불러요.”지금 가장 중요한 건 엄나온이 즉시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었다....고윤한은 촬영장 바깥에서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렸다. 송다빈이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대신 구급차 사이렌이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주현우가 임시 세트장으로 들어오는 구급차를 보고 무심코 중얼거렸다.“누가 다친 건가요?”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고윤한은 단 1초도 앉아 있지 못하고 차 문을 열고 따라 들어갔다.촬영장에는 보안요원이 서 있었다. 고윤한과 그 뒤를 잇는 주현우는 문 앞에서 제지당했다.주현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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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현장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출연자들, 제작진, 소문을 듣고 몰려온 매니저들까지... 고윤한은 한 바퀴 훑어봤지만 송다빈은 보이지 않았다.오히려 엄나온이 먼저 그를 알아봤다. 넘어지고 난 뒤 처음으로 고통과 상관없는 표정이 얼굴에 떠올랐다.“윤한아, 너...”왜 왔냐고 묻고 싶었지만, 곧 떠올랐다. 송다빈도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설마... 송다빈을 보러 온 건가?’치밀어 오르는 질투가 얼굴을 일그러뜨릴 뻔했지만, 간신히 감정을 다잡고 입을 다물었다.누구 때문이든 상관없었다. 지금 그는 반드시 그녀의 곁에 있어야 했다.“윤한아, 내 발... 내 발목이 부러진 것 같아.”그 말을 듣자, 고윤한은 더는 송다빈을 찾지 않고 곧장 엄나온에게로 달려갔다.“괜찮아. 바로 병원 가자.”다친 엄나온 앞에서 그의 목소리는 유난히 부드러웠다. 밀실 통로에 몸을 숨긴 송다빈은 미세하게 떨렸다.알고 보니 고윤한도 누군가를 아끼고 달랠 줄 알았다.사람들이 엄나온의 들것을 에워싸고 밖으로 나갔다. 송다빈은 그들이 빠져나가는 틈을 타 조용히 밀실에서 걸어 나왔다. 쓸데없는 구설을 피하고 싶었으니까.사람이 절반 넘게 빠지자, 진여원 등은 남아서 밀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자 했다가 갑자기 송다빈의 손을 보고 굳어 버렸다.오른손 전체가 피로 물들어 있었고 붉은 피가 손가락을 타고 또르르 흘러내렸다.장예리가 놀라 외쳤다.“다빈 씨, 손!”그제야 정신이 든 송다빈이 손을 내려다보았다.손이 다친 건 알고 있었다. 아마 밀실을 만들 때 떨어져 남은 못을 제대로 치우지 않은 탓일 것이다. 엄나온에게 밀려 넘어졌을 때 손바닥을 짚었고, 날카로운 평머리못이 손바닥 깊숙이 박혔다. 못은 아직 살에 꽂힌 채였다.아파야 하는데, 왜 하나도 아프지 않을까. 그보다 가슴 쪽의 통증이 훨씬 선명했다.“다빈 씨, 구급차 따라가서 바로 병원 가요. 얼른요, 제가 같이 갈게요.”장예리가 다급히 다가와 그녀를 이끌었고, 진여원 등도 뒤를 따랐다.가고 싶지 않았지만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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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화

엄나온의 발목은 부러지지 않았다. 다만 근육과 인대가 다쳐 제대로 쉬며 치료해야 했다. 지금 그녀는 이미 1인실로 옮겨진 상태였다.병실 문밖에서 엄나온의 어시스턴트가 이태영에게 연락을 취했다. 현장의 동행 스태프들은 촬영장 휴게실에서 대기 중이었고, 소식을 듣자 곧장 엄나온의 곁으로 달려왔다.이태영은 고윤한이 와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남진시행 비행기표를 끊고, 밤샘 비행으로 넘어올 준비를 했다....고윤한은 병상 앞에 서서 시선을 엄나온의 얼굴에 고정했다.그녀의 뺨에는 선명한 손자국이 있었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엄나온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얼굴 한쪽을 가렸다.“얼굴은 왜 그래?”엄나온이 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아니야. 실수로 부딪쳤어.”표정도, 목소리도 어수선했다. 거짓말이 뻔했다.고윤한이 미간을 찌푸렸다.“하필 손자국 모양으로 딱 부딪쳤다고?”엄나온은 난처하게 침묵했다. 말할 듯 말할 듯 머뭇거릴수록 숨기는 게 있다는 사실만 더 도드라졌다.고윤한이 다시 물었다.“대체 무슨 일이야? 누가 때렸어?”엄나온은 뺨을 감싼 손을 놓지 않은 채 고개를 살짝 저었다.“아무것도 아니야. 아무도 안 때렸어. 윤한아, 더는 묻지 마.”말끝에는 억울함이 섞였고 울음기가 배어 있었다.그때 어시스턴트가 전화를 마치고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막 그 말을 듣고는 성큼 병상으로 다가왔다.“나온 언니, 맞으셨어요? 역시 송다빈이죠!”‘송다빈?’고윤한의 눈살이 깊어졌다.엄나온은 여전히 서러운 얼굴로 낮게 말했다.“함부로 말하지 마.”“그럼 누가 있겠어요!”어시스턴트는 분통을 터뜨렸다.“그때 밀실에는 언니랑 송다빈 둘뿐이었잖아요. 언니를 때린 게 그 여자가 아니면, 언니가 스스로 자기 뺨을 때렸다는 거예요?”그 마지막 말에 엄나온의 표정이 순간 미세하게 갈라졌다. 다행히 얼굴을 가린 탓에 눈치채긴 어려웠다.“그만해.”엄나온이 눈짓으로 타이르며 말을 그만두라는 신호를 보냈다.어시스턴트 안지영은 엄나온이 귀국한 뒤 이태영이 붙여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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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화

고윤한이 눈을 가늘게 떴다.“그 말 송다빈이 했어?”엄나온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다빈 씨를 탓하지 마. 어디든 풀 곳은 필요하잖아.”고윤한의 등장이 엄나온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그녀가 범인을 찾아라 촬영에 오는 일은 대외적으로도, 내부적으로도 철저히 비밀이었고, 고윤한은 그녀가 여기 있다는 걸 모를 터였다.그렇다면 그는 송다빈을 보러 온 것이다.이 깨달음은 쓰디쓴 좌절감을 안겼지만, 동시에 하늘이 자신을 돕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이번 기회를 반드시 붙잡아 송다빈을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뜨려 다시는 못 일어나게 하리라.직접 눈으로 본 것은, 온라인 뉴스로 아는 것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엄나온의 원래 계획은 이랬다. 범인을 찾아라 촬영분 일부가 새어 나가게 만들어, 자신이 다쳐 입원했다는 사실이 퍼지게 하는 것이다.이태영은 이미 댓글 알바를 준비해 두었고, 송다빈이 엄나온의 뺨을 때렸다는 이야기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도록 판을 깔아 두었다.그들은 아주 치밀하게 움직였다. 심지어 의도적으로 송다빈보다 먼저 프로그램에 합류했다. 이렇게 해 두면 설령 누군가가 먼저 시비를 건 건 엄나온이라 의심해도, 먼저 촬영 계약을 맺었다는 증거를 내밀 수 있다.후발 주자는 송다빈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시비를 건 것일까? 아무도 쉽게 단정할 수 없었다.설령 송다빈이 무고하다고 해도 어쩌겠는가. 온라인의 사람들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여론만 살짝 몰면 곧이곧대로 믿었다. 이 누명을 송다빈은 벗어나기 어려웠다.나중에 고윤한이 뉴스를 본다 해도 의심은 할지언정 끝내 밝혀내지 못할 것이다. 어차피 그때 밀실에는 그녀와 엄나온 둘뿐이었고, 다친 건 엄나온이니 약자가 누군지는 분명했다.어찌 됐든 결국 누명을 벗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네티즌에게도, 고윤한에게도 말이다.속으로는 흐뭇했지만 겉으로는 끝까지 억울함을 삼키는 표정을 지었다.“윤한아, 그냥 내가 부주의해서 넘어진 걸로 하자. 난 따질 자격도 없어. 추궁하고 싶지도 않고.”자신은 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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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화

안지영은 병실 문 앞을 지키다가 송다빈이 오자 곧장 문을 막아섰다.“여기 왜 왔어요!”안지영이 경계 가득한 얼굴로 송다빈을 노려봤다.송다빈이 입매를 살짝 올렸다.“고 대표님 명으로 엄나온 씨께 사과하러요.”그 말을 듣자 안지영은 의기양양해졌다.“이제 무서운 거 알았죠? 감히 우리 언니를 건드리다니, 연예계에서 계속 일할 생각은 있는 거예요?”송다빈은 안지영의 말에 흥분하지 않았다. 대신 주현우가 벌컥 성이 났고, 한마디 하려다가 송다빈의 눈짓에 멈춰 섰다.안지영은 주현우가 고윤한의 비서인 줄 알기에 스스로 달콤하다고 여기는 미소를 그에게 건넸다.주현우가 콧소리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비켜요.”안지영은 영문을 몰랐다. 고위층 곁에서 명망가들을 늘 보던 사람이 작은 어시스턴트인 자신을 눈에 안 차 하대하는 줄만 알았다. 그래서 말 한마디 더 못 하고 순순히 비켰다.주현우가 문을 열고, 송다빈을 향해 손짓으로 먼저 들어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아주 공손한 태도였다. 그 모습에 안지영은 더더욱 종잡을 수 없었다.남의 남자친구를 뺏으려는 여우일 뿐인 사람에게, 왜 대표 비서가 그렇게 예의를 갖추는 거지 싶었다.안지영은 따라 들어가 구경하고 싶었지만 주현우가 문을 닫아 버려 문밖에 남았다....촬영장에서는 송다빈이 고윤한과 엄나온이 다정한 모습을 보자 초라하게 몸을 숨겼다.하지만 그녀는 곧 후회했다. 숨을 이유가 없었다.바깥사람만 두둔하는 남편이라면 상심할 가치도, 그를 위해 참고 숨어 줄 가치도 없었다.고윤한이 굳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송다빈은 눈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쳤다.그는 실망했다. 송다빈은 선한 사람이라, 아무리 엄나온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곤란하게 만들지는 않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믿음은 틀린 듯했다.송다빈이 엄나온을 때렸다. 그것만은 용납할 수 없었다.엄나온은 그의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을 뻔했고, 몸에는 지워지지 않는 흉터까지 남았다.그래서 고윤한은 엄나온이 다치는 것을 무엇보다 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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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화

“왜요, 이걸로는 마음에 안 들어요? 꼭 제가 엄나온 씨한테 사과해서 제 자존심을 발밑에 짓밟히게 해야 해요?”송다빈은 절망 끝에서 눈가가 붉어졌다.“윤한 씨, 어찌 됐든 저희는 3년 동안 부부로 살았어요. 그런데 제 3년은 그렇게도 아무 값어치가 없나요?”고윤한은 순간 어리둥절했다. 그는 그저 사과하라고 했을 뿐이었다. 그녀가 때리고 다치게 했으니 사죄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런데 왜 갑자기 존엄과 3년의 청춘까지 끌려오는 걸까?“송다빈, 나랑 나온이가 얘기 끝냈어. 네가 사과만 하면 더 안 따지겠대.”따진다니? 우습지도 않았다.그녀가 감히 따질 수 있나? 고윤한이 자기 편이라는 걸 믿고, 그 힘으로 앞에서만 으스대는 것뿐이었다.송다빈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엄나온을 바라봤다.“엄나온 씨가 제 형사 책임을 묻겠다는 거예요? 좋아요. 고씨 가문 법무팀을 찾아가서 얘기해요. 저한테 유죄를 씌워 감옥에 넣을 수만 있다면, 인정할게요.”엄나온은 한껏 무고한 얼굴로 작은 목소리로 고윤한에게 말했다.“윤한아, 됐어. 나는 괜찮아.”사람을 때려 놓고도 저토록 거만하다니. 고윤한은 처음 보는 거칠고 막무가내인 송다빈의 얼굴에 놀랐다.“송다빈, 선 넘지 마.”“제가요?”그녀가 비웃었다.“제가 고씨 가문 법무팀을 못 움직일 줄 알아요? 아니면 그 법무팀을 아예 엄나온 씨한테 빌려주고 싶어요? 이 일, 아버님이 알면 허락하시겠어요?”“너...”고윤한은 말문이 막혔다.“엄나온 씨, 보셨죠? 고윤한의 비호가 있다고 해서 제가 당신 손아귀에서 주물럭거릴 사람은 아니에요. 저는 송다빈이고, 고씨 가문이 인정한 며느리예요. 고씨 가문의 자원 당신은 쓸 자격이 없고, 저는 있어요.”“윤한아...”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도, 엄나온은 겉으로는 한없이 연약한 표정을 지켜 냈다.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녀의 얼굴에 상처를 내고 싶었지만 웃음으로 씹어 삼켰다.송다빈이 그녀를 위아래로 훑었다.“윤한 씨를 붙들고 징징대서 뭐 해요. 저랑 직접 얘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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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화

송다빈의 손에서 뼈를 찌르는 통증이 치솟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입술을 꼭 깨물어 간신히 신음을 참고 넘겼다.“사모님, 손 괜찮아요?!”주현우는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송다빈의 손에서는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그제야 고윤한도 그녀의 손이 다친 걸 보았다.“손이 왜 그래?”송다빈은 그가 자신을 불쌍한 척한다고 여길까 봐 다친 손을 줄곧 소매 속에 숨기고 있었다. 방금 넘어지는 순간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며 감추고 있던 손이 드러나 버렸다.고윤한은 급히 다가와 그녀의 손을 보려 했고, 그 기세로 부축해 일으켜 세우려 했다. 그는 일부러 밀친 게 아니었다. 갑자기 송다빈이 엄나온 쪽으로 손을 올리자, 무의식적으로 밀어 버린 것이었다. 이미 후회하고 있었다.하지만 사과 한마디 꺼내기도 전에 송다빈의 제지에 가로막혔다.“만지지 말아 주세요.”그녀는 눈가를 붉힌 채 또박또박 말했다.“역겨워요.”송다빈에게로 뻗어 가던 고윤한의 손이 허공에서 굳어 섰다.그녀의 눈빛은 지나치게 차가웠다. 마치 낯선 사람을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 인식이 고윤한의 가슴에 알 수 없는 불안을 퍼뜨렸다.그는 그 불안을 감추려는 듯 주현우를 돌아봤다.“다빈이 손이 왜 이래!”주현우는 속으로 악다구니를 쏟아냈다.‘이럴 때 물어서 뭐 합니까. 이미 다 늦었어요, 대표님. 사모님은 대표님 태도에 온통 상처투성인데!’“어... 사모님 손에 못이 깊게 박혔습니다. 의사 말로는 조금만 빗나갔어도 뼈를 다쳐서 자칫 손을 못 쓸 뻔했다고 했습니다.”뒤의 두 문장은 주현우가 보태 말한 것이었지만 대충 맞는 말이니 과장은 아니라고 여겼다.고윤한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렇게 큰 상처라니 말이다.‘어떡하지? 나한테 화가 나서 손도 못 대게 하는 데 어쩌면 좋아... 주 비서도 참, 멀뚱멀뚱 서서 뭐 하는 거야!’“그러고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의사부터 불러서 다시 붕대 감게 해!”고윤한의 호통에 주현우도 퍼뜩 정신을 차렸다.“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필요 없어요.”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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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화

“나온 언니, 대표님은 왜 가셨어요? 그 송다빈이라는 여자랑 같이 나갔어요.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안지영이 말을 끝내자마자 바닥의 핏자국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피예요! 이 피 어디서 난 거예요!”“나가! 당장 꺼져!”괜히 아픈 데를 건드리는 말에, 엄나온은 뒤에 있던 베개를 집어 던졌다. 안지영은 놀라서 줄행랑쳤다....의사가 한숨을 쉬며 송다빈의 상처를 다시 감쌌다.“어쩌려고 그래요? 병원에서 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다쳐요? 아가씨, 뼈 안 다쳤다고 가볍게 보면 안 돼요. 손에는 모세혈관이 엄청 많아요. 자칫 염증이라도 나면 고생합니다.”송다빈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들었다.옆에서 고윤한은 자책하며 의사의 주의 사항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었다.처치가 끝나자 송다빈은 곧장 병원을 나섰고, 고윤한과 주현우가 뒤에서 따랐다.살을 에는 찬 바람이 불었지만 그녀는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병원을 나와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았다.고윤한은 주현우에게 차를 가져오라 시키고, 본인은 너무 가까이 가지는 않은 채 조금 떨어져 서서 그녀의 곁을 지켰다.송다빈은 휴대폰을 꺼내 백시현에게 전화를 걸었다.“다빈아, 어때? 촬영은 순조로워?”송다빈이 씁쓸하게 웃었다.“죄송해요, 언니. 제가 망쳤어요.”휴대폰 너머의 백시현이 단번에 정신이 들었다.“무슨 일인데? 자세히 말해봐.”“엄나온이 비밀 게스트로 프로그램에 왔어요. 촬영 중에 너한테 같은 조로 하자고 해서 밀실 통로로 데려갔고요. 자기 뺨을 한 번 때린 다음 통로 밖으로 굴러떨어졌어요. 그쪽이 다치고, 저도 다쳤고요. 촬영은 중단됐어요.”밤바람이 세고 고윤한은 멀찍이 서 있었다. 송다빈의 말은 그의 귀에 닿지 않았다.“너도 다쳤다고?”“엄나온이 떨어지기 전에 저를 한 번 밀었어요. 통로 옆에 남아 있던 평머리못에 손바닥이 찔렸어요. 그래도 심하진 않고 처치는 끝났어요.”“못이라고? 파상풍 주사는 맞았어?”“네, 맞았어요.”“엄나온이 어떻게 감히... 너희 뒤에 촬영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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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화

송다빈은 걸음을 멈췄다.“왜 따라와요?”엘리베이터는 카드키를 찍어야 했다. 카드를 대면 층수 버튼이 자동으로 켜지는데, 그녀는 분명 그들이 최상층에 묵는 걸 보았다. 재유 그룹 대표라는 그의 신분에도 딱 맞았다.주현우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열림 버튼을 누른 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난처해했다. 그는 숨을 최대한 죽이며 존재감을 줄였다.“손 다쳤잖아. 내가 돌봐줄게.”고윤한은 그녀의 손을 보며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송다빈도 그의 팔을 바라봤다.“윤한 씨도 도긴개긴이잖아요. 어떻게 저를 돌보겠어요?”고윤한은 맞춤 수트를 입고 있어 팔에 깁스를 했는지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았다. 그의 팔꿈치 아래에는 골절이 있었고, 원래는 가슴 앞으로 붕대를 걸고 다녔지만 불편하다고 느껴 아예 풀어 버렸다. 꼭 매달 필요는 없었고, 그 팔만 쓰지 않으면 됐다.송다빈은 그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곧바로 말을 덧붙였다.“게다가 저는 윤한 씨 돌봄이 필요 없어요. 한가하면 엄나온 씨나 잘 챙기세요.”고윤한은 잠시 말이 막혔다. 공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그때 엘리베이터에서 삑삑 경고음이 울렸다. 주현우가 열림을 오래 누르고 있던 탓이었다.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둘 사이의 침묵을 깨뜨렸다.“올라가요. 솔직히 지금은 윤한 씨 보는 것 자체가 싫어요.”그 말을 듣자, 고윤한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송다빈, 왜 이렇게 고집을 부려!”송다빈은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신경 꺼요. 제가 어떤 사람이고 무슨 성격인지는 윤한 씨랑 상관없어요.”“왜 상관이 없어. 나는 네 남편이야!”송다빈의 미소는 더 대담해졌다.“남편이요? 참 좋은 남편이네요. 제 앞에서 애인부터 감싸고. 뭐예요, 두 여자 끼고 살 꿈이라도 꿔요? 꿈 깨요. 제가 말한 조건 잊지 마요. 윤한 씨가 엄나온 씨랑 정말 뭔가라도 생기면, 저는 바로 이혼해요. 제 기분이 더 나쁘면 혼인 중 부정행위로 바로 소송 걸 수도 있어요. 그러니 고윤한 씨, 앞으로 저한테 명령하지도 말고, 저더러 엄나온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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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화

백시현은 송다빈과 통화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프로그램 총감독에게 연락했다.“이지훈 감독님, 이번 일은 반드시 납득할 만한 답을 주셔야 해요. 우리 다빈이 아직 대박 난 건 아니어도, 곧 지원우 씨랑 안성균 감독과도 협업할 유망 신인이에요. 저희는 성의껏 협력하려고 들어왔는데 결과가 이게 뭡니까? 프로그램 측 운영이 너무 허술한 거 아닌가요?”백시현의 한마디 한마디에 감독은 얼굴을 들 수 없었다.한 번 촬영에 게스트 둘이 다쳤다. 어찌 변명할 여지가 있겠는가.“백 대표님, 이쪽도 조사 중입니다. 촬영이 중단돼서 저희도 손실이 큽니다. 서로 좀 이해를...”“이 감독님, 일적으로 이후 보충 촬영이 필요하면 저희가 얼마든지 맞출게요. 하지만 촬영 중에 다빈이가 다쳤고, 곁에 붙어 있어야 할 촬영 감독도 자취가 없었죠. 이게 말이 됩니까?”“그... 방금 파악해 보니, 촬영 감독이 잠시 방심해서 놓쳤다고 합니다.”백시현이 피식 웃었다.“놓쳤다, 정말 그럴싸하네요. 이 감독님은 그 말이 믿기세요?”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백시현이 곧장 말했다“저는 못 믿겠네요. 촬영 동선이 얼마나 큰데요? 얼마나 어리석어야 그걸 놓칩니까? 그 실력으로 앞으로 업계에서 일할 수 있겠어요?”이지훈은 말 그대로 골이 지끈거렸다. 역시 명불허전, 백시현은 만만하지 않았다.“백 대표님, 뭐라 해도 저희 과실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이 감독님, 이건 사과로 끝낼 문제가 아니에요. 촬영 감독이 놓쳤다면서 공교롭게도 바로 그사이에 엄나온과 우리 다빈이 둘 다 다쳤어요. 이게 밖으로 알려지면 파장이 얼마나 크겠는지 생각해 보셨어요? 우리 다빈이 앞날로 장난치는 겁니까?”“아니, 아니요, 백 대표님. 그건 과한 말씀이에요.”“글쎄요, 저는 과한 것 같지 않은데요. 온라인 뉴스 다들 보셨죠? 가장 민감한 시점에 이런 사고가 났으니, 저도 난감합니다.”이지훈이 한숨을 내쉬었다.“알겠습니다. 반드시 결과를 드리겠습니다.”“그 말이면 됐어요. 제안 하나 드리죠. 엄나온과 다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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