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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첫사랑만 구한 남자: Chapter 401 - Chapter 410

439 Chapters

제401화

양민석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물었다.“당신이 그 쓰레기입니까?”분노 섞인 말을 내뱉은 그는 방금 가져다준 음식을 들고 곧장 나가려 했다.그러자 변도영이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저는 그냥... 친구입니다.”“친구도 똑같은 사람이겠죠.”양민석이 차갑게 쏘아붙였다.“그러니 고이진 씨가 그렇게도 당신을 싫어하는 거고요.”변도영은 난감한 듯 서둘러 설명했다.“저랑 아는 사이는 맞습니다만 사실 거의 만나지 않습니다. 뭐,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면 얼굴 볼 일은 늘 생기기 마련이죠. 안 그렇습니까?”그 말에 양민석의 화기가 조금 가라앉았는지 다시 음식이 담긴 그릇을 제자리에 내려놓았다.변도영은 어쩐지 허탈했다.연성시에 있을 때만 해도 모두가 같이 밥이라도 한번 먹기 위해 악착같이 매달리고 억지로라도 인맥을 만들려 들었다.하지만 변도영은 그런 자신이 이렇게까지 사람에게 기피당할 날이 오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그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그... 전남편도 인품이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은 아닐 겁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그 사람은 남 괴롭히는 짓 같은 건 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제가 장담할 수 있습니다.”양민석은 원래 남의 가정사에 이래라저래라 할 생각이 없었지만 조금 전 변도영에게서 고이진에 관한 이야기를 여러 가지 들은 터라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에 코웃음을 쳤다.“이런 일은 꼭 앞장서서 해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신분이 모든 걸 말해주니까요. 남편이라는 사람이 아내를 괴롭히면 그건 다른 사람들에게도 괴롭히라고 허락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집안 식구들이 그걸 본다면 어차피 남편도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다 따라 할 겁니다.”변도영이 뭔가 반박하려는 듯 입을 뻐끔거렸지만 양민석은 그럴 틈도 주지 않았다.“아니면 한번 떠올려 보시죠. 가족들이 신지아 씨에게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한 집에서 첫 번째로 아내를 괴롭히는 사람이 생기면 나머지 사람들이 아무리 겉으로는 잘해주는 척해도 속으로는 이미 깔보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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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2화

신지아는 연성시에서 그와 결혼해 무려 5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살았다.신씨 가문은 그녀와 인연을 끊었고 변씨 가문은 변도영이 앞장서서 아내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렇게 신지아는 그런 처지 속에서 정확히 5년을 버텼다.그동안 그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왜 신지아가 그렇게까지 이혼을 고집했는지.그러나 이제 변도영은 뒤늦게 완전히 깨달았다.이 결혼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에게는 고통뿐이었다는 것을.하늘은 어느새 어둑해졌다.잘 수 있는 방은 딱 두 칸짜리 판잣집뿐이었다.밤이 되면 윤형우와 양민석이 한방에서 자고 신지아와 고이진이 다른 방에서 잤다.며칠을 바깥에서 보내며 추위에 덜덜 떨고 또 무슨 위험이 있을지 몰라 신경 곤두선 탓에 신지아는 제대로 잠도 못 잤다.그래서인지 이번에는 처음으로 편히 잠이 들었다.하지만 흐트러진 생체 리듬 탓에 날이 막 밝을 무렵 그녀는 눈을 떴고 옆에는 고이진이 깊이 잠들어 있었다.신지아는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그녀를 깨우기 싫었기에 조용히 이불을 잘 덮어주고 살금살금 밖으로 나왔다.공기는 연성시보다 훨씬 맑았다.비가 갠 뒤, 멀지 않은 하늘에 선명한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신지아는 습관적으로 찍으려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서야 지금 자신에게 휴대폰이 없다는 걸 떠올렸다.한편, 변도영은 양민석이 어젯밤 한 말들과 신지아와 함께 보냈던 지난 세월을 줄줄이 떠올리다 한숨도 자지 못했다.그러다 아침이 되어 신지아의 방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그는 그녀에게 사과할 기회를 잡으려 조용히 뒤따라왔다.곧, 신지아 옆으로 다가가 막 말을 꺼내려던 순간 그녀는 이미 누군가의 기척을 느낀 듯 움찔했다.사실 그녀는 변도영이 이 열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해 빨리 돌아가고 싶어 하는 줄 알았다.그래서 신지아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담담히 말했다.“저랑 이진이가 얘기해 봤어요. 민석 오빠가 길을 아니까 오늘 변도영 씨를 먼저 연성시로 모셔다드릴게요.”“날 먼저 데려다준다고?”변도영은 어딘가 이상한 부분을 단번에 알아챘다.“그럼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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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3화

물론 이 말은 신지아가 홧김에 뱉은 말이었기에 변도영이 분명 화를 낼 줄 알았다.윤형우와 비교한 것도, 차라리 윤형우가 평생 숨겨둔 애인이 되겠다는 마지막 말도 그에게는 심각한 모욕이니까.지금까지 변도영은 언제나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었기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에게 잘 보이려 애썼다.그런 그가 이런 모욕을 당한 적은 한 번도 없으니 당연히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예상과 달리 변도영은 안색만 창백해질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넌 윤형우 씨가 그렇게 좋아?”어떤 생각이 스쳤는지, 그는 금세 다시 처음처럼 침착한 얼굴로 돌아왔다.“좋아. 네가 원한다면 숨겨둔 애인으로 사는 것도 허락할게. 단, 언론에만 새지 않는다면 받아들일 수 있어. 그리고 너랑 윤형우 씨가 헤어질 때까지 모르는 척 눈감아 줄게.”신지아는 변도영의 말에 그대로 얼어붙었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미쳤나? 진짜 제정신인가?’“돌아가면 이나은 씨랑 약혼해야 한다는 건 다 잊은 거예요? 게다가 이나은 씨 뱃속에 지금 당신 아이가 있잖아요.”그러자 그는 이미 이런 질문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아주 태연하게 대답했다.“약혼은 그냥 집안에 좋은 기운이 돌게 하려고 하는 거야. 할머니 병이 빨리 나아지길 바라면서 하는 거니까 그 자리에 누가 서느냐는 큰 의미가 없어. 나은이 쪽은 내가 잘 정리할게. 변씨 가문의 양녀 신분으로 시집보내면 돼. 아이가 있다는 사실은 아직 밖에 알려지지 않았어. 그리고 그 아이는 변씨 가문의 핏줄이니까 우리가 키우면 되잖아. 그건... 너한테 보상하는 셈이기도 하고.”그는 밤새 고민해 내린 이 결론이 둘에게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믿고 있었다.신지아를 잃은 뒤의 공허함과 혼란, 그리고 그녀가 지난 세월 겪어온 고통을 처음으로 조금이나마 체감했기 때문이었다.밤새 변도영은 앞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제대로 바로잡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예전에는 신지아가 괜한 떼를 쓰는 거라 생각했고 이 결혼은 이미 막다른 길이라 여겼는데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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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4화

변도영은 신지아가 요구한 돈을 나눠서 주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었다.“전남편은 아직도 신지아 씨랑 재혼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제시한 금액이 너무 큽니다. 지금 제가 바로 준비할 수 있는 현금은 400억뿐이고 제 명의의 부동산과 지분을 전부 합쳐야 대략 4000억 정도의 가치가 됩니다. 예전처럼 돈이 벌린다는 가정하에 나머지 절반을 마련하려면 못해도 10년은 걸릴 것 같습니다.”변도영은 자신의 재산을 하나하나 꼼꼼히 계산해 가며 양민석이 좋은 조언을 해주길 기대했다.그러나 중간에 자신이 한 번 ‘전남편’이 아닌 ‘저’라고 말한 건 정작 알아채지 못했다.그 말을 들은 양민석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굳이 지적하진 않았다.“그냥 친구분한테 포기하라고 하세요. 이런 말도 안 되는 계산은 그만하시고. 신지아 씨도 상황 판단이 되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지는 않을 겁니다. 저런 조건을 내밀기 전에 분명 더 현실적인 조건을 먼저 제시했을 겁니다. 그걸 친구분이 못했거나, 아니면 하기 싫어서 피했겠죠. 그래서 일부러 불가능한 조건을 꺼내 이제 그만하자는 신호를 준 거고요.”양민석은 물 한 모금을 마시며 계속 말했다.“혹시 뭐 떠오르는 기억 없으십니까?”변도영은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 그 말이 끝나자마자 즉시 생각났다.신지아가 먼저 제시했던 재혼 조건, 이나은을 경찰서에 넘기라는 것.그때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양민석은 침묵하는 변도영의 어깨를 두드리며 마치 뭔가 큰 깨달음을 전해주는 사람처럼 이런 말을 덧붙였다.“감정은 사업하고 달라서 그렇게 복잡하지도 않아요. 사랑은 간단합니다. 여자에게 본인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다른 사람이랑 또 얼마나 다른지, 그걸 느끼게 하면 충분한 거예요. 연애는 조금 복잡해질 수 있지만 당신 말대로 신지아 씨가 예전에 남편을 사랑했던 건 사실이잖아요? 그러니까 기본적인 감정은 남아 있을 거고... 아마 제때 돌아선다면 아직 희망은 있을 겁니다.”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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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5화

윤형우와 변도영이 말릴 틈도 없이 고이진이 먼저 다가와 신지아를 끌어안았다.신지아가 왜 이렇게 무너지는지, 고이진 역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사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며칠간 함께 지내는 동안 고이진은 오랜만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기 전, 순진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둘이 방에서 이야기하다가 웃음이 터질 때면 문밖에서 성훈이 들어오며 예전처럼 웃으며 묻는 것 같았다.“무슨 얘기를 하는 데 그렇게 웃어?”고청산이 낯선 남자와 가까이 지내는 걸 허락하지 않았기에 고이진은 종종 신지아를 핑계로 삼아 성훈과 약속을 잡았다.그는 새로 생긴 카페나 맛있는 프렌치 레스토랑에 데려가 주곤 했다.물론 매번 윤재혁이 온갖 이유를 붙여 따라붙었지만 그 시절은 그래도 밝고, 가벼워서, 여전히 고이진이 자주 떠올리는 소중한 기억이었다.그러나 과거를 떠올린다고 해서 성훈이 다시 나타나 주는 건 아니었다.길이 엇갈렸던 그들처럼 그와의 시간도 이미 멀리 흩어져 버렸다.고이진은 아쉬움 가득한 눈으로 천천히 신지아를 밀어냈다.“지아야, 너는 나랑 달라. 너한텐 더 넓은 미래가 있어. 아직 끝내지 못한 일도 많잖아. 여기 남으면 그게 다 후회될 거야.”그러자 신지아는 울먹이며 반박했다.“너도 그래. 너도 미래가 창창하잖아.”신지아는 그녀도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길 바랐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하지만 고이진이 겪어온 긴 고통을 생각하면 그렇게 말하는 게 너무 잔인하게 느껴져 결국 하려던 말을 삼켜버렸다.고청산은 이익 앞에선 무엇도 가리지 않는 사람이다.만약 고이진이 돌아가면 그녀의 ‘가치’를 최대한 짜내려 할 것이다.그리고 윤재혁은 마음을 흔드는 데 능한 사람이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고이진을 붙잡을 게 뻔했다.한 번의 탈출이 있었다면 두 번째는 훨씬 어려워지는 법, 그래서 고이진은 연성시에 돌아가선 안 되는 사람이다.이윽고 이성을 되찾은 신지아는 두 주먹을 꽉 쥔 채 말을 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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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6화

이 지역 사람들은 원래 이 숲을 깊이 들어가려 하지 않았고 아무리 비싼 돈을 걸어도 안내를 맡겠다고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결국 그들은 스스로 방법을 찾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안전을 위해 윤해원은 사람들을 최대한 숲 깊숙이 휴대폰 신호가 완전히 끊기는 지점까지 이끌었다.그리고 모두의 허리에 길게 이어 붙인, 총 수천 미터가 넘는 밧줄을 묶었다.지금 밧줄은 거의 끝까지 풀렸다.지형은 점점 복잡해졌지만 아직 그들이 추락한 지점조차 도달하지 못했다.길은 갈수록 험해졌고 방향은 점점 더 분간하기 어려워졌다.윤해원의 마음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갔다.마침내 그녀는 결단을 내려 사람들을 불러 모아 돌아갈 사람과 남을 사람을 나눌 생각을 했다.구조를 위해 누군가는 더 깊숙이 들어가야 했으니까.그때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누나!”“선배! 저희 여기 있어요!”처음에 너무 오랫동안 잠을 못 자 환청이 들리는 건가 싶어 윤해원은 자신의 뺨을 때려봤다.그런데 옆에서 누군가 눈을 크게 뜨고 두려움에 가까이 붙는 걸 보고서야 그녀는 깨달았다.‘나만 들은 게 아니구나.’“이제 다 끝났네요. 저희 지금 귀신 만난 거 아니에요?”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다른 이들의 안색도 하얗게 질렸다.그들은 여태 살아 돌아오지 못할 각오까지 하고 수색에 나섰다.곧, 윤해원이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리고 동생의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빠르게 걸어갔다.그러다 그녀는 또 다른 생각이 떠올라 근처의 고씨 가문 측 구조대원에게 말했다.“고우빈 씨한테 연락해서 실종된 네 사람을 찾았다고 알린 다음 데리러 오라고 하세요.”그러자 구조대원은 즉시 전력으로 달려가 전화를 걸었다.고청산이 붙여준 인력이 대거 합류한 후, 고우빈은 수색 가능성이 높은 여러 지점에 사람을 배치해 놓은 상태였다.최대한 빨리 찾기 위해 그는 추락 지점과 가장 가까운 곳, 산 정상에 가장 근접한 위치에 머물고 있었다.윤해원이 있는 곳까지는 차로 약 30분 거리였다.전화를 받은 고우빈은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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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7화

“위험해요! 어서 피하세요!”말이 끝나자마자 큰 총성이 빽빽한 숲속을 가르며 울렸다.나무 위에 숨어 있던 새들이 한꺼번에 날아오르고 구조대에서는 비명이 쏟아지며 모두가 허둥지둥 몸을 숨겼다.변도영은 조금 전부터 나무 뒤에서 수상쩍게 움직이는 사람의 실루엣을 보고 있었다.그리고 그 총구가 신지아를 겨누는 걸 보는 순간 그는 거의 반사적으로 신지아 쪽으로 뛰어들어 그녀를 힘껏 밀쳐냈다.이내 강렬한 통증이 가슴을 파고들었다.변도영은 정말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런 행동을 했다.정신이 다시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이 이미 바닥에 쓰러져 있다는 걸 발견해 일어서려고 했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귀에 들리는 소리는 마치 심해 속에 있는 듯 흐릿했다.곧, 신지아의 얼굴이 변도영의 시야에 들어왔다.공포와 걱정이 엉켜 있는 얼굴.하지만 그녀는 그를 잠깐 바라본 뒤 바로 누군가에게 끌려가는 듯 돌아서서 뛰어갔다.변도영은 점점 멀어지는 신지아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고작 한 번이라도... 한 번은 뒤를 돌아봐도 되는 거 아니야?’그는 화가 나면서도 너무 속상해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그러다 문득, 두 달 전의 사고가 떠올랐다.피범벅이 된 얼굴로 공포와 절망으로 그를 바라보던 눈, 그 눈의 주인은 분명 신지아였다.그제야 깨달았다.‘그때 지아도 지금의 나처럼... 내가 등을 돌리는 걸 그대로 지켜보고 있었던 건가?’세상이 통째로 자신을 버린 것 같은 그 감각이 이렇게까지 아픈 건지, 이렇게 슬픈 건지, 처음으로 뼈저리게 느꼈다.얼마나 지났을까, 언제 총성과 소란이 멎었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이 흐릿해졌다.그러다 아주 멀리서 변하늘의 목소리가 들렸다.“오빠!”변도영은 눈을 뜨려 애썼지만 짙은 피로가 파도처럼 밀려오고 눈은 자꾸만 감겼다.다시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코를 찌른 건 병원 특유의 강한 소독약 냄새였다.변도영은 천천히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봤다.‘병원이네.’아직 정신이 채 들지도 않았지만 가장 먼저 머릿속을 스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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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8화

변도영이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신지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고마워요. 이번 일로... 저희 이제 서로 빚은 없는 걸로 해요.”예전에 그는 신지아를 죽일 뻔했고 이번엔 그녀를 위해 총을 맞았다.그러니 이제 서로 아무도 누구에게 빚지지 않았다는 뜻이었다.하지만 그 말에 변도영은 숨이 턱 막혔다.사실 그녀가 어디 아프지는 않은지, 많이 다쳤는지, 물어보며 걱정할 줄 알았다.하지만 돌아온 건 단 하나, 이제 빚은 없다는 말.‘이렇게까지 나랑 선을 긋고 싶은 건가?’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변도영은 한참 동안 침묵했다.그러나 신지아는 그의 침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듯 바로 본론을 꺼냈다.“총을 쏜 사람은 못 잡았어요.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온 사람이에요. 도망칠 경로도 미리 생각해 뒀던 것 같지만 길이 하도 험해서 추적은 못 했대요. 상황을 조사해 보니까 변씨 가문 구조대에 섞여 들어온 사람이었어요. 그쪽에서 윤해원 씨 팀으로 이동됐고요.”그 말을 들은 변도영은 잠시 멍해졌지만 이내 삽시간에 표정이 굳어버렸다.“범인 못 잡았다며?”곧, 그는 비꼬듯 물었다.“그런데 범인이 변씨 가문 사람인지 어떻게 알아? 증거 있어?”신지아가 담담하게 설명했다.“증인은 있어요. 같은 조에서 수색하던 사람이랑 이야기를 나눴대요.”“물증은 없다는 거네?”말은 다 하지 않았지만 그의 표정은 이미 충분히 말하고 있었다.누가 먼저 변씨 가문 사람이라고 주장했든, 그게 고우빈이든, 윤형우든. 신지아가 증거도 없이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변도영을 불편하게 만들었다.심지어 고씨 가문과 윤씨 가문이 힘을 합쳐 변씨 가문을 해치려고 한다는 건 왜 생각하지 않는지 따지고 싶었다.그러나 그 말은 끝내 밖으로 나오지 못했고 목구멍까지 치밀었다가 다시 삼켜졌다.신지아는 그런 변도영을 가만히 바라보았다.원래도 창백하던 얼굴이 더 하얗게 변했고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그가 전처럼 화를 내고 자신을 믿지 않는다고 할 줄 알았던 신지아는 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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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9화

신지아는 처음엔 단호히 거절할 생각이었다.하지만 마지막에 낮고 조심스레 부탁하던 변도영의 목소리, 창백하고 힘없는 얼굴을 보자 끝내 거절 의사를 밝히지 못했다.‘떨어질 때 머리를 좀 세게 부딪쳤나? 이틀 지나면 방금 한 말도 다 잊어버리겠지?’게다가 변씨 가문에는 사람도 많으니 죽 한 그릇도 못 얻어먹을 정도는 아니었다.그러니 굳이 변도영과 이런 사소한 문제로 얽힐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 신지아는 거절도, 승낙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가볍게 넘겼다.“보고 시간 되면 한번 올게요.”그 말을 끝으로 신지아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을 나섰고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 밖으로 향했다.밖에는 윤형우가 기다리고 있었다.신지아는 주변을 살피며 조심히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탔다.아까 갑작스럽게 벌어진 사고에 솔직히 너무 놀랐다.한번 실패한 시도라면 분명 상대는 또다시 노릴 게 분명했다.그러나 이곳은 병원, 어떠한 사람이라도 이런 장소에서 다시 총을 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하니 숨이 조금 트였다.윤형우는 간단히 변도영 상태를 물었고 이미 정신을 차려 위급한 건 아니라는 말에 안도했다.물론 진심으로 변도영을 걱정해서는 아니었다.“지금 변도영 씨한테 사고라도 나면 곤란해.”윤형우가 낮게 말을 이어갔다.“재혁이 형이 귀국했어. 이제부터 진짜 골치 아플 거야.”신지아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사건 직후 고우빈이 범인이 변씨 가문 소속이라고 말했을 때, 범인이 현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그녀는 이미 눈치챘다.자신을 죽이려는 진짜 사람은 누구인지.변씨 가문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진 않더라도 굳이 이렇게까지 잔혹하게 죽음을 노릴 이유는 없다.신지아를 매일 증오하고, 병적으로 집착하고, 죽기를 바랄 정도로 미쳐 있는 사람은 오직 윤재혁 한 명뿐이다.윤형우 역시 같은 결론에 이른 듯 옆을 보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무서워?”신지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전에는 무서웠지만 이상하게 이제는 별로 안 무서워요.”특히 고이진과 지낸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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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0화

고이진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 떠오른 신지아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그녀는 목소리를 최대한 낮춰 고이진의 소식을 고우빈에게 전했고 그의 눈빛에는 이내 놀라움과 기쁨이 스쳤다.신지아는 고우빈이 뭘 묻고 싶은지 이미 알고 있었기에 먼저 말했다.“지금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저희가 이번에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다 이진이 덕분이에요.”더 설명해 주고 싶었지만 고우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냈다.“괜찮아. 아무 일도 없으면 됐어.”그는 주위를 한번 훑어보았다.윤형우를 신뢰하긴 하지만 윤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 심지어 윤해원조차 지금은 완전히 믿기 어렵다는 뜻이었다.신지아도 그의 경계를 이해했고 말을 더 잇지 않았다.아까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았기 때문에 윤해원은 내용을 명확히 듣진 못했지만 두 사람의 미묘한 표정만으로도 자신을 경계하고 있다는 건 짐작한 듯했다.윤해원은 남의 비밀에 크게 관심을 두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괜히 기분이 나빴다.그녀는 고우빈 쪽으로 걸어와 그를 뚫어지게 본 뒤 고개를 저으며 몇 번이나 혀를 끌끌 찼다.“쳇.”고우빈은 그 소리에 등골이 오싹해졌고 신지아도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이 휘둥그레졌다.두 사람이 가만히 윤해원을 바라봤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그들을 지나 그대로 2층으로 사라졌다.윤형우는 한눈에 윤해원이 일부러 저러는 것임을 알아챘다.자기를 믿지 못한다는 그들의 태도에 작게나마 ‘복수’하는 것.그래서 그는 피식 웃으며 두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윤해원을 따라 2층으로 향했다.잠시 있었던 그 작은 소동은 금방 지나갔다.이후 고우빈은 그동안 연성시에서 벌어진 일들을 신지아에게 모두 설명했다.UME와 공장은 매우 순조롭게 굴러가고 있었다.그녀가 예상한 계획대로 모든 흐름이 흘러가고 있었고 특히 UME의 스마트 로봇 제품이 시장을 완전히 전환한 뒤로 판매량도 급격히 올라가고 영향력도 점점 커지는 중이었다.현재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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