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애걸복걸! 도련님의 고백: Chapter 511 - Chapter 520

563 Chapters

제511화 반격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통에 거리는 순식간에 공동묘지처럼 적막해졌다.연재윤과 권엽은 호텔 입구에서 주변 동태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발을 뗐다.호텔에서 빌려준 우산을 각자 받쳐 든 채 미리 대기시킨 차에 올라탔다.길 위에 차가 많지는 않았지만 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퍼붓는 폭우 탓에 운전이 쉽지 않았다.권엽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거북이걸음을 하는 차 안에서 불만을 터뜨렸다.“날씨가 이 모양이라 일을 다 망치게 생겼군.”연재윤이 무심하게 대꾸했다.“뒷좌석에 우비 있어. 우산 쓰고는 움직이기 불편할 테니까 나중에 그거 입어.”권엽은 짧게 대답하고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운전하던 연재윤이 힐끗 옆을 보았다. 권엽은 칼을 꺼내 들고 닦고 또 닦으며 서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 모습이 위태로워 보여 연재윤은 결국 한마디 거들었다.“진짜 맞닥뜨려도 절대 흥분하지 마. 너 아직 몸도 다 안 나았고 서경민 쪽에 머릿수가 얼마나 될지도 모르니까. 천천히 가자고.”“알아.”권엽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차는 외곽으로 향했다. 부하가 보내온 정보에 따르면 장훈의 위치가 어느 구멍가게 근처에서 포착되었다고 했다.재개발 구역 근처에 다다르자 정말 낡은 구멍가게 하나가 나타났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인지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연재윤은 멈추지 않고 곧장 인적이 끊긴 무인지대로 차를 몰았다.이곳은 집들이 비어 있어 평소에도 오가는 사람이 없었지만 이런 악천후에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동네를 한 바퀴 돌았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자 결국 연재윤은 어느 골목 모퉁이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껐다.“여기서 좀 지켜보자. 무작정 찾아다니다간 오히려 역으로 들이받힐 수 있어.”연재윤의 말에 권엽은 묵묵부답이었다.연재윤의 부하들이 장훈이 이곳에서 물건을 사는 걸 보고 미행하긴 했으나 빗줄기 탓에 구체적인 은신처까지는 따내지 못했다.지금 상황에서 무리하게 뒤지는 것보다 길목을 지키는 게 최선이라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연재윤은 습관처럼 담뱃갑을 만지작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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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2화 잠복

구급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단지 안으로 들이닥쳤다. 대기하던 의료진이 쓰러진 경호원들을 급히 처치한 뒤, 차에 실어 떠나자 소란스러웠던 마당은 폭우 소리와 함께 다시 적막에 잠겼다.남겨진 관리실 직원은 떠나려다 말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어라, 같이 온 동료는 어디 갔지?”관리실 규정상 방문 점검은 무조건 2인 1조였다. 하지만 이제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옆에 있던 경호원이 무심하게 대답했다.“먼저 간 것 아닙니까? 딱히 주의 깊게 보질 않아서 모르겠네요.”직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보고하러 먼저 들어갔나 보네. 나한테 말이라도 좀 해주고 가지.”그가 투덜거리며 멀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창가에 서 있던 하시윤이 몸을 돌렸다.방 한구석에는 직원으로 위장했던 여자가 양손이 묶이고 입이 막힌 채 있었다.얼굴은 온통 피범벅이었지만 하시윤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당장 처치가 필요한 상처라는 건 알았으나 굳이 자비를 베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어차피 이 정도로 죽지는 않을 터였다.문가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마친 경호원이 다가와 보고했다.“곧 사람들을 보낼 겁니다. 그들이 이 여자를 데려갈 거예요.”여자가 그 소리에 겁을 먹었는지 몸을 비틀었다.하시윤은 차갑게 말을 내뱉으며 방을 나섰다.“알았어요.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해서 처리해 주세요.”그녀가 방으로 돌아갔을 때, 서정우는 동생의 기저귀를 벗겨놓고 쩔쩔매고 있었다. 새 기저귀를 손에 쥐긴 했으나 채우는 법을 몰라 침대 주변만 안절부절못하며 맴도는 중이었다.하시윤은 엉망이 된 기분이었지만 아이의 기특한 모습에 날카로웠던 감정이 조금은 누그러졌다.그녀는 다가가 기저귀를 건네받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세상에, 우리 정우가 동생 기저귀까지 벗겨준 거야? 정말 대견하네.”서정우는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 채 대답했다.“그런데 채우는 법을 모르겠어요.”하시윤은 아이의 뺨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아직 어려서 모르는 게 당연해. 괜찮아.”그녀는 능숙하게 서시은의 기저귀를 채워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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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3화 도주

한참을 뱅뱅 돌던 택시는 결국 구석진 곳에 자리한 아주 보잘것없는 집 앞에 멈춰 섰다.마당은 좁고 집은 작다 못해 낡아빠져서 유리창 몇 군데는 아예 박살이 나 있었다.기사는 대문 앞에서 반 분 정도 기색을 살피더니 그제야 안으로 들어갔다.연재윤과 권엽은 그가 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하지만 몇 걸음 채 떼기도 전에 연재윤의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무시하려다 슬쩍 꺼내 본 화면에는 서지혁의 이름이 떠 있었다.소리를 끄려던 연재윤은 잠시 고민하다 걸음을 멈췄다. 그는 권엽을 잡아끌어 구석으로 몸을 숨긴 뒤 전화를 받았다.“나중에 통화해. 지금 우리...”“들어가지 마.”서지혁이 다짜고짜 말을 잘랐다.연재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어?”“계속 기다려.”연재윤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너 지금 이 근처야? 어디 있는 건데?”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상대는 할 말만 끝내고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연재윤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기더니 결국 권엽을 붙들고 좀 더 먼 곳으로 물러났다.상황 파악이 안 된 권엽이 속이 타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왜 안 들어가는 거야?”연재윤인들 이유를 알 리 없었다. 그저 짧게 대답할 뿐이었다.“일단 좀 더 지켜보자고.”그렇게 10여 분을 더 버텼을까. 낡은 집 문이 열리더니 기사가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는 태연하게 우산을 쓰고 자리를 떠났다.그제야 연재윤은 무릎을 쳤다. 이곳 역시 은신처가 아니라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한 경유지였던 것이다.만약 미행이 붙었다면 이 정도 시간은 추격자의 인내심을 바닥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분명 참지 못하고 들이닥쳤을 터였다.기사 수준에서 나올 법한 잔머리가 아니었다. 필시 서경민의 지시였을 것이다.이쯤 되니 연재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늙은 여우의 치밀함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두 사람은 다시 기사의 뒤를 밟았다. 기사는 결국 길가에 늘어선 어느 평범한 단층집 앞에 멈춰 섰다.마당도 없이 길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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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4화 기약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서경민의 목소리가 들렸다.“지혁아.”서지혁은 핸들을 꽉 쥐며 짧게 답했다.“네.”“맨 뒤에서 따라오는 차, 너 맞지?”“맞습니다.”서지혁의 대답에 서경민이 나직하게 물었다.“아무리 그래도 우리 사이에 꼭 이렇게 남들까지 끌어들여서 이 아비를 구석으로 몰아야겠니?”“자수하세요. 그럼 다른 길도 있습니다. 앞쪽 나들목으로 나가면 제가 변호사 붙여드릴게요.”그 말에 서경민이 실소를 터뜨렸다.“참 효자 났구나. 나를 위해 그런 길까지 미리 다 닦아놓고.”비웃음 섞인 웃음소리는 금세 차갑게 식었다.“그래서, 자수하면 내 끝이 달라지기라도 해?”서지혁은 입술을 굳게 깨물었다.그가 저지른 짓들을 생각하면 자수든 뭐든 참작될 여지가 없었다. 그의 결말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서경민이 다시 말을 이었다.“나도 너한테 선택지를 하나 주마. 앞쪽 나들목에서 빠져나가.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네가 살던 하강으로 돌아가라.”그가 덧붙였다.“앞으로 우리 부자는 남남으로 사는 거야. 다시는 엮이지 말고.”곁에서 듣고 있던 연재윤이 눈을 부릅뜨며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안 된다는 듯 입 모양으로 다급하게 신호를 보냈다.하지만 서지혁은 전방만 주시한 채 냉정하게 말을 가로챘다.“그럼 시윤이는요?”그 질문에 서경민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어이가 없다는 말투였다.“너란 놈도 참... 이 판국에도 그 여자 때문에 나랑 거래를 하려고 드네.”서지혁은 대답 대신 침묵했다.서경민은 잠시 입맛을 다시더니 중얼거렸다.“하시윤이라...”그 이름을 내뱉는 목소리에는 증오가 뚝뚝 묻어났다.본인은 숨기려 했겠지만 서지혁은 단번에 알아챘다. 그는 절대로 하시윤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서지혁이 한숨을 내쉬며 뼈아픈 진실을 뱉었다.“제가 고속도로를 내려가든 말든 상황은 안 바뀌어요. 아빠는 경찰 못 피합니다. 오늘 저희가 아니었어도 어차피 끝이었어요.”그가 쐐기를 박듯 덧붙였다.“신지원이 다 불었습니다. 하강도 곧 압수수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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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5화 파멸

거대한 굉음이 터지더니 연달아 몇 번의 충돌음이 고막을 때렸다. 거리가 제법 벌어진 탓에 전방 상황은 보이지 않았다.서지혁은 급히 속도를 줄이며 연재윤보다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권엽, 들리면 대답해!”수화기 너머에서는 무언가 부딪히고 깨지는 소름 끼치는 소리만 들릴 뿐,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연재윤 역시 미친 듯이 이름을 불렀지만 돌아오는 건 정적뿐이었다. 그는 창백해진 얼굴로 서지혁을 돌아봤다.“방금 그 소리, 뭐야?”서지혁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방금 들린 둔탁한 소리는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뒤의 굉음은...서지혁이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뗐다.“사고가 난 것 같아.”연재윤이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설마... 아니지? 그럴 리 없잖아.”그는 현실을 부정하듯 덧붙였다.“누가 사고가 났다는 거야? 네 아버지가? 그 사람에게 사고라도 난 거야?”서지혁은 대답 대신 액셀을 밟았다.한참을 더 달린 후에야 전방의 상황이 시야에 들어왔다. 도로는 이미 꽉 막혀 있어 마비된 상태였다.서지혁은 갓길에 차를 급히 세우더니 안전벨트를 풀며 외쳤다.“내려, 어서!”연재윤도 상황을 직감했다. 뒤편에서 유조차와 대형 화물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여기서 멈춰 있다가는 뒤차에 들이받혀 끔찍한 연쇄 사고에 휘말릴 터였다.앞차의 운전자들은 상황 파악을 못 한 채 창문만 내리고 투덜거리고 있었다.연재윤이 목청이 터져라 소리쳤다.“당장 내려요! 차 버리고 대피하라고!”그제야 정신을 차린 운전자들이 차를 버리고 멀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서지혁은 가드레일을 뛰어넘어 사고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앞쪽으로 달려갔다. 얼마 가지 않아 눈앞에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차량 여러 대가 뒤엉킨 채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제기랄.”서지혁이 나직이 내뱉었다.“저 안에 있을 거야.”뒤따라온 연재윤이 그 소리에 당장이라도 불길 속으로 뛰어들 듯 달려 나갔다.“권엽이 저기 있다는 거야? 권엽?”“가지 마!”서지혁이 그의 팔을 낚아채며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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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6화 확인

서지혁이 걸음을 옮겼다.세 구의 시신이 들것 위에 놓여 있었는데 상태가 처참했다. 두 구는 반듯하게 뉘어져 있었고 나머지 한 구는 몸을 웅크린 자세 그대로였다. 훼손을 우려한 탓인지 억지로 펴지 못한 모양이었다.서지혁은 나란히 놓인 두 구를 살폈다. 직감적으로 서경민이 아니라는 느낌이 왔다.그는 웅크린 시신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이 시신, 어느 차에서 나왔습니까?”소방대원도 확답하지 못했다. 차들이 워낙 심하게 뒤엉키고 녹아내려 경계조차 불분명한 탓이었다.서지혁은 시신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시신은 마치 겁에 질린 듯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이마를 무릎에 맞대고 있었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다른 시신들과 달리 기괴한 자세를 하고 있었고 사지도 온전해 보였다.뒤따라온 연재윤이 거침없이 손을 뻗어 시신을 헤집었다.“열어보면 알 거 아니야.”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주변 사람들도 미처 말리지 못했다. 어차피 확인해야 할 일이었기에 누구도 나서서 제지하지 않았다.시신은 연재윤의 손길이 닿자마자 바스러지는 소리가 났다.“악, 깜짝이야.”연재윤이 급하게 손을 털어냈다.시신의 한쪽 손이 복부를 누르고 있었다. 몸을 웅크린 덕분인지 그 손의 뼈대는 제법 온전했다. 팔뼈는 부서졌지만 손뼈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서지혁이 그 뼈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뼈에 끼워진 반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그는 단번에 알아봤다. 그 반지는 서경민의 것이었으니까.뼈를 돌려 확인하던 서지혁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유해의 새끼손가락 끝마디 뼈가 한 마디 모자랐다. 서경민은 예전에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다쳐 끝마디가 없었다.다가온 소방대원이 설명을 덧붙였다.“이 세 구가 있던 차량들이 사고의 중심부였습니다. 불길이 가장 거셌던 곳이죠.”세 대의 차량이 1차 충돌을 일으켰고 뒤따르던 십여 대의 차량이 연쇄 추돌하며 화재가 발생했다는 설명이었다. 워낙 충격이 커서 불이 붙기 전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서지혁은 여전히 그 손뼈를 쥔 채 반지를 빼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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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7화 통지

서인준이 보내온 대형 에어바운스는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다. 마당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웅장한 성이 세워지자 서정우는 채 완성되기도 전부터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온갖 아양을 떨었다.“삼촌, 삼촌은 진짜 최고예요! 제가 제일 사랑하는 거 알죠?”그 말에 서인준은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그 소리 한 번 더 하면 다음번에는 더 좋은 거 사줄게.”하시윤은 서시은을 품에 안은 채 기가 찬다는 듯 마당을 바라보았다.“너무 과한 거 아니에요?”“애들이 좋아하면 그만이죠. 과할 게 뭐 있습니까.”서인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며 서시은의 볼을 살짝 건드렸다.“그나저나 형은 언제 온대요? 연락 왔어요?”“곧 온다고만 하고 정확한 날짜는 안 알려주네요.”서인준이 길게 숨을 내뱉으며 화제를 돌렸다.“요즘 아빠한테 계속 전화를 드리는데 통 연락이 안 돼요.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요.”하시윤 역시 서경민과 연락이 닿지 않던 터였다. 전에는 여러 번 걸면 마지못해 받기라도 하더니 이제는 아예 묵묵부답이었다. 그가 또 무슨 뒤통수를 치려고 이토록 조용한 건지 의구심이 피어올랐다.경호원들이 에어바운스 점검을 마치자 서정우는 신발을 벗어 던지고 성 안으로 돌진했다.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며 내지르는 비명이 마당 가득 울려 퍼졌다.품 안의 서시은도 기분이 좋은지 짧은 다리를 힘차게 버둥거렸다.그때, 서인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화면을 하시윤에게 보여주며 곤란한 기색을 내비쳤다.“경찰이에요.”그는 한숨을 내쉬었다.“뻔하죠. 또 아버지랑 연락됐냐고 묻는 걸 겁니다.”경찰은 집요했다. 서경민의 행방을 쫓는 데 진전이 없는지 수시로 전화를 걸어와 귀찮게 굴었다.서인준이 전화를 받으러 자리를 비운 사이, 하시윤은 서시은을 에어바운스 위에 살짝 올려주었다.“삼촌! 삼촌도 같이 놀아요!”서정우가 소리쳤지만 전화를 마친 서인준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삼촌은 일이 생겨서 가봐야겠다. 미안하다, 정우야.”그는 다급히 하시윤에게 다가왔다.“집에 일이 좀 생겼답니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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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8화 DNA 검사

전화는 금방 연결됐다. 변성기를 거친 기괴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상대는 여유로운 태도로 말을 이었다.“아이고, 그걸 막아내네. 대단해.”하지만 이내 비아냥거리는 투로 덧붙였다.“그런데 한 번은 막아도 매번은 못 막을걸? 집 밖에 깔린 경호원들,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하나하나 다 치워버릴 수 있거든. 다음번에는 이번처럼 미리 귀띔해 주는 친절은 없을 거야.”자신만만한 목소리였다. 그는 마치 재미있는 놀이라도 하듯 천연덕스럽게 물었다.“경호원 다음은 또 누구 차례일까?”그는 혼자서 대답까지 내놓았다.“뭐, 서지혁이 또 새로운 사람을 붙여놓겠지만 상관없어. 우린 시간 많으니까.”하시윤이 침묵을 지키자 그는 낮게 낄낄거렸다.“앞으로 매일매일을 살얼음판 걷는 기분으로 살게 될 거야. 생각만 해도 짜릿하지 않아?”“입 닥쳐.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하시윤이 서늘하게 쏘아붙이자 상대의 웃음기가 가셨다. 목소리는 금세 진지해졌다.“차를 한 대 준비해 뒀어. 이게 마지막 기회야. 이번에 안 가면 앞으로는 가고 싶어도 못 가게 될 거다.”“너무 갑작스러워. 난 아직 못 가. 시간이 필요해.”하시윤의 말에 상대가 대답했다.“시간은 무슨. 그냥 시간 끌면서 간 보려는 거 모를 줄 알아?”상대는 다 알고 있다는 듯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우리 회장님이 곤란한 상황에 부딪치니까 결과 나올 때까지 버티려는 모양인데 단언컨대 네가 원하는 결과는 안 나올 거야. 그러니까 헛수고하지 마.”그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내일 차 보낼 테니까 탈 거면 타고 말 거면 말아.”하시윤이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그는 할 말만 내뱉었다.“나중에 다시 연락하지. 그럼 이만.”전화는 그대로 끊겼다.하시윤은 휴대폰을 쥔 손을 천천히 내렸다.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미뤄왔지만 서경민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랐을 터였다. 그 잔인하고 단호한 사람이 이만큼이나 기다려준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었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서정우는 갓 목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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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9화 나조차 믿기지 않아서

서지혁이 차에서 내려 인사를 건넸다.“구 형사님.”구정환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따라 내리는 연재윤을 보고는 말했다.“연재윤 씨도 여기 있었군요.”“아, 원래는 다른 데서 좀 놀려고 했는데 말입니다. 서지혁이 여기 있다길래 들러봤죠.”연재윤이 특유의 건들거리는 태도로 낄낄거리며 말을 이었다.“방해되는 건 아니죠? 이 양반이 일 보러 간다는데 너무 심심해서 억지로 따라왔거든요.”구정환은 짧게 답했다.“안으로 들어가죠.”경찰서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서지혁이 연재윤을 돌아보며 말했다.“너는 여기서 기다려.”사건과 관련된 보안 사항이 있을 수 있으니 당연한 조치였다.연재윤도 납득한다는 듯 로비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다녀와.”서지혁은 구정환을 따라 2층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법의관이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서지혁에게 서류 한 뭉치를 건넸다.서지혁은 앞부분은 보지도 않고 마지막 장으로 넘겼다. 결론을 확인하던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이게 무슨 뜻입니까?”“혈연관계라는 건 확실합니다. 이 손뼈의 주인이 서지혁 씨의 가족이라는 증거죠.”서지혁은 한동안 상대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몇 초가 지나서야 간신히 입을 뗐다.“하지만 부자 관계라는 증명은 안 된다는 건가요?”법의관은 최대한 차근차근 설명을 덧붙였다.“화재 당시 온도가 너무 높았습니다. DNA가 심하게 파괴되어 추출할 수 있는 파편이 너무 적어요. 정보가 불완전하다 보니 부자 관계라고 확정 지을 수 있는 수치에 도달하지 못한 겁니다.”곁에 있던 구정환이 서지혁에게 물었다.“숙부나 같은 친척은 없어요?”서지혁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고개를 저었다.“없습니다.”서씨 가문에는 다른 친척이 없었다. 서무열도 서경민도 외동이었고, 그 윗세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독자였다.서경민은 평소 그 사실을 몹시 아쉬워했다. 워낙 의심이 많은 인간이라 곁을 지키는 심복들도 기왕이면 혈연으로 묶인 자들이길 바랐기 때문이다.그는 처가 식구인 성씨 일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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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0화 어쩌면 그 자신도 몰랐을 터였다

연재윤은 한참을 기다려도 두 사람이 나오지 않자 결국 문을 두드렸다.대답이 없기에 그는 곧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서지혁은 창가에 서서 등을 돌린 채였다. 그 표정이 어떤지는 보이지 않았다.서인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는데 방 안에 딸린 작은 욕실에서 물소리가 나는 걸 보니 그 안에 있는 모양이었다.연재윤이 입을 열었다.“시간도 늦었는데 다들 식사하러 갈래?”서지혁은 돌아보지도 않고 짧게 답했다.“입맛 없어. 됐어.”연재윤도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럼 푹 쉬어. 방해 안 할 테니까.”그가 몸을 돌려 나갔고 잠시 후 밖에서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서지혁은 계속해서 창밖을 응시했다. 하늘에서는 다시 빗방울이 가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창틀에 놓인 휴대폰 화면에는 예매 정보가 띄워져 있었다. 내일 정오 비행기였다.오전 비행기는 이미 매진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한참 지나도 서인준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는 몸을 돌려 거실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그 사이, 빗줄기가 굵어졌다.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제법 소란스러웠다.어제 추격전 당시에는 이보다 훨씬 더 거센 비가 쏟아졌었다. 와이퍼가 부러질 듯 움직여도 시야 확보가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그토록 쏟아붓던 비조차 그 불길을 잠재우지는 못했다.서지혁이 침묵에 잠겨 있을 때, 마침내 서인준이 욕실 문을 열고 나왔다.세수를 한 모양이었지만 붉게 충혈된 눈은 그대로였다.“형.”서지혁이 그를 돌아보며 입을 뗐다.“난 내일 집으로 돌아가야 해. 며칠 집을 비웠더니 네 형수랑 애들이 걱정돼서 말이야. 여긴 네가 남아서 마무리해 줘.”그가 덧붙였다.“이런 상황에 너한테 짐을 떠넘기면 안 되는 건데. 그동안 숨겨온 것도 내 몫이고 이 난장판을 치우는 것도 내 몫이어야 맞지만 너무 걱정되어서 그래.”서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알아, 형. 다녀와. 여기 일은 내가 잘 처리할 수 있어.”그는 손등으로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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