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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가면을 쓴 남편: Chapter 701 - Chapter 710

777 Chapters

제701화

쓴웃음을 짓는 최보라의 눈에는 안타까움과 걱정이 가득했다.하지만 그녀는 모든 것이 운명이며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모두가 각자의 숙명과 시련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오롯이 스스로 겪어내야만 극복할 수 있는 것이었다.“그래, 잘 자, 남지야.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우선 푹 쉬도록 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어.”송남지는 언제나처럼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잠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최보라가 자신 때문에 걱정하며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알았어.”최보라가 떠난 뒤, 송남지는 호텔의 새하얀 천장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어젯밤에도 잠을 설친 데다 하루 종일 이리저리 시달렸으니 분명 몹시 졸릴 법도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눈이 감기질 않았다. 가슴 속에 북이라도 들어앉은 듯 둥둥둥 울려대며 그녀를 번민하게 했지만 그녀로서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이 모든 것이 너무도 갑작스럽게 닥쳐온 듯했다.준비할 겨를도 없이 말이다.한순간에 그녀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하씨 가문이나 하정훈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고 박재용과도 연락이 닿지 않았으며 심지어 서경권 전체에서 하정훈에 의해 암묵적으로 활동 금지 상태에 놓여 있었다.그녀에게는 재스민을 은지영에게 넘겨주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그날 밤, 그녀는 몽롱한 상태로 새벽 두세 시가 되어서야 비로소 지쳐 잠이 들었다.어렵사리 잠이 들었지만, 악몽이 끊이지 않아 밤새 시달렸다.꿈속에는 하정훈의 변덕스러운 얼굴이 가득했다. 바로 전 순간에는 침착하고 다정하며 사랑스러웠던 얼굴이 다음 순간에는 잔인하고 무정하며 거칠게 변해 있었다.다시 눈을 떴을 때는 어느덧 한낮이었다.송남지의 온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고 이마에는 가는 땀방울이 맺혔다. 격렬한 숨을 몰아쉬며 아직 악몽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녀에게 문밖에서 들려오는 거센 노크 소리가 현실로 끌어냈다.습관적으로 휴대폰을 찾았지만 손끝에 닿는 것은 차가운 감촉뿐,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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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2화

은지영은 사무실 문밖에서 차분한 표정으로 서 있었지만 자세히 보면 승리의 희열이 어려 있었다.그녀는 달려오는 민지현과 송남지를 쏘아보며 눈빛에 노골적인 도발을 담았다.민지현은 다급하게 이삿짐을 옮기는 사람들을 막으며 소리쳤다.“뭐 하는 짓이야? 누가 들어오라고 했어! 당장 나가!”송남지는 말없이 은지영을 응시했다.과거 은지영의 오만하고 확신에 찬 말들이 오늘에 와서 모두 현실이 된 듯했다.어쩌면 처음부터 고집을 부린 건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은지영은 눈썹을 까딱하며 민지현을 쳐다보았다. 가늘게 뜬 눈매에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내가 들어오라고 했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트 디렉터한테 일일이 허락이라도 받아야 하는 건가?”민지현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은지영을 쏘아보며 말했다.“아직 기한이 남았거든요. 그쪽이 이겼다고 해도 송 관장님 물건 함부로 내다 버릴 수 없어요. 내일까지 기다려야죠.”은지영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대단히 기개가 넘치는 줄 알았더니, 별거 없네요. 뭐, 틀린 말은 아니죠. 효력은 내일부터 발생하니 내가 좀 서둘렀던 건 인정하죠. 하지만 난 비효율적인 건 못 참는 성격이라서요. 당신처럼 뻣뻣하게 구는 사람을 내 밑에 둘 생각도 전혀 없고요.”은지영의 말은 명백했다.그녀가 재스민을 장악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며 장악 후 가장 먼저 처리할 사람은 민지현이라는 뜻이었다.송남지는 민지현을 등 뒤로 살짝 끌어당기고는 은지영에게 시선을 던졌다.“은지영 씨, 잠깐 얘기 좀 하지.”은지영은 줄곧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잠시 후 그녀는 호탕하게 웃으며 답했다.“그래. 송 관장님께서 나랑 사적인 얘기를 나누고 싶으신가 보네.”민지현은 분을 참지 못하고 다시 은지영에게 달려들어 따지려 했지만, 송남지가 붙잡았다.송남지는 민지현을 똑바로 응시하며 냉정을 유지하라는 신호를 보냈다.민지현은 송남지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억지로 분을 삭이며 이를 악물고 은지영이 거만하게 사무실로 들어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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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3화

이 말을 듣고 나서야 은지영은 늘 고고하던 송남지가 왜 여기까지 와서 상갓집 개처럼 꼬리를 내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알고 보니 민지현을 지키기 위해서였던 것이다.은지영은 입꼬리를 올리며 여전히 흥미롭다는 눈빛을 보냈다.“그 여자가 아무리 뛰어나도, 난 전 정권의 충신은 질색이거든. 게다가 걘 너한테 충성을 다하잖아. 그리고 너도, 확실히 내 심기를 불편하게 한 적이 있고 말이야...”송남지는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꾹 깨물더니, 한참 만에야 간신히 입을 뗐다.“미안해. 예전에 말로 상처 줬던 거, 사과할게. 민지현은 재스민에 충성하는 거지 나한테 충성하는 게 아니야.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지금 은지영의 얼굴에는 희열이 가득했다.송남지처럼 콧대 높은 인간의 입에서 사과를 다 듣다니, 참으로 드문 일이었다.하지만 사과 한마디로 은지영의 마음속에 맺힌 앙금이 다 풀릴 리 없었다.어쨌든 그날 병원에서는 그녀가 단단히 굴욕을 맛봤으니까.은지영은 계속 눈썹을 까딱이며 말했다.“왜 네 사과에는 진심이라곤 눈곱만치도 안 느껴지는 거지?”송남지는 이를 꽉 물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서더니, 은지영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미안해...”그녀는 서둘러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은지영의 대답을 묵묵히 기다렸다.은지영은 푹 숙인 그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지금 이 순간 승리의 희열을 마음껏 만끽했다.1분쯤 지났을까, 그녀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괜찮아, 내가 뭐 사사건건 원수 갚는 그런 사람도 아니고. 그래, 네가 그렇게 민지현을 위해 사정하니까, 네 체면 봐서 걔는 남겨둘게.”너무 오래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탓인지 송남지의 목덜미가 뻐근해졌다.고개를 드는 순간, 그 뻐근함이 눈가까지 번져 시큰거렸다.그녀는 필사적으로 감정을 갈무리하고는 숨을 한 번 고른 뒤, 천천히 내뱉었다.“고마워.”말을 마친 송남지는 숨을 내쉬며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이토록 초라해지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저 사람들한테 짐마저 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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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4화

서경 명주.땅거미가 짙게 깔린 시간,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서경의 화려한 야경은 오늘따라 유독 처연하고도 장엄했다.천남현은 시그니처 메뉴들을 주문하며 맞은편에 앉은 은지영을 바라보았다.“전부 네가 십몇 년 전부터 좋아하던 것들이야.”은지영은 딴생각을 하는 듯했지만, 얼굴에 번진 미소는 지금 그녀의 기분이 최고조에 달해 있음을 증명했다.천남현이 농담을 건넸다.“고작 송남지와의 내기에서 이긴 것뿐이잖아. 재스민 하나쯤이야 네가 원하면 내가 하나 차려줄 수도 있는데, 그렇게까지 기분이 좋아?”은지영은 통유리창 밖을 향했던 시선을 거두고 천남현을 보며 웃었다.“넌 당연히 모르겠지. 내가 기쁜 건 재스민을 얻어서가 아니라 송남지를 이겨서야. 게다가...”은지영은 방금 나온 디저트를 한 입 베어 물고는, 눈을 가늘게 접으며 아주 즐겁게 웃었다.“게다가 말이야, 그 멍청한 여자가 내가 예전 아트 디렉터를 내쫓을까 봐 겁먹고 고집도 안 부리고 바로 사과하더라고. 그 찌질했던 꼴을 생각하면 자꾸 웃음이 나. 어쩜 이렇게 통쾌할 수가 있지!”그녀는 턱을 괸 채 초승달처럼 휘어진 눈으로 천남현을 빤히 바라보았다.“사실 난 처음부터 그 아트 디렉터를 자를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었어. 내가 바보도 아니고 이쪽 업계는 하나도 모르는데 하정훈이 거액을 들여 스카우트해 온 아트 디렉터를 왜 내쫓겠어? 내가 미쳤어?”천남현은 미간을 찌푸린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반달처럼 휘어진 은지영의 눈웃음조차 지금 그의 시선을 온전히 붙잡아 두지는 못하는 듯했다.한참 뒤에야 그가 감탄하듯 내뱉었다.“연약한 여자인 줄 알았더니, 의외로 의리가 있네.”천남현이 송남지를 칭찬하는 말을 듣자 은지영은 금세 기분이 상했다. 그녀는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거두고는 콧방귀를 뀌며 비꼬았다.“의리는 무슨? 그냥 멍청해서 그런 거야. 세상에 걔만큼 멍청한 애가 또 어딨어? 머리를 조금만 굴려봤어도 내가 그 아트 디렉터를 내쫓을 리 없다는 걸 알았을 텐데. 나한테 고개 숙이며 빌 필요가 애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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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5화

천남현은 지그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지영아, 여긴 셰프가 바뀐 적이 한 번도 없어. 내가 하려는 건 셰프 이야기가 아니라 그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어떻게 아직까지 하정훈이 네 정답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지, 그게 의문이라는 거지.”은지영은 눈을 가늘게 뜬 채 고층 빌딩 아래로 반짝이는 네온사인을 내려다볼 뿐, 천남현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서경 전체를 통틀어 자신의 속내를 읽어낼 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자부했건만, 얄궂게도 단 한 사람만이 정곡을 찔렀으니 말이다. 송남지는 그녀가 재스민을 탐내고 하정훈을 빼앗으려는 이유가 결국 오랜 세월 서경에서 잃어버렸던 그녀와 어머니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하지만 그녀는 증명해 보일 생각이었다. 예전에 서경 사교계를 주름잡던 영애였으니 지금 돌아온 이상 당연히 서경 사교계의 최고 안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걸 말이다.결국 은지영은 묘하게 초조하고 짜증스러운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날의 저녁 식사를 끝내버렸다.“내일 아침 일찍 하정훈이 귀국해. 최상의 컨디션으로 마중 나가야 하니까 그만 돌아가서 피부 관리도 좀 받고 미용 잠도 자야겠어.”천남현도 곧바로 따라 일어났다.“데려다줄게.”주차장으로 내려온 은지영은 천남현의 벤틀리를 보다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송남지가 몰고 다니는 그 차, 나도 한 대 갖고 싶어.”천남현은 살짝 당황한 기색으로 멈칫하더니 입을 열었다.“그 차, 국내에 단 한 대뿐인 한정판이야.”은지영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더니 혀를 빼꼼 내밀며 핀잔을 주었다.“천 대표한테도 불가능한 일이 다 있네.”차 안, 천남현의 짙은 눈동자에는 의미심장한 기색이 일렁였다.“지영아, 그 차가 매력적인 이유는 국내에 딱 한 대밖에 없기 때문이야.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너한테 똑같은 걸 구해다 줄 순 있어. 하지만 오직 한 대여야 할 차가 두 대가 되어버린다면, 그건 그저 너희 두 사람의 격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일일 뿐이야. 수지타산이 안 맞지.”은지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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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6화

재스민을 떠나던 날, 송남지는 자신의 모든 물건을 싸 들고 그곳을 나섰다.이삿짐센터를 부르긴 했지만, 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그녀 스스로도 목적지를 명확히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결국 기사에게는 임시로 머물 호텔 주소를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기사도 황당해하긴 마찬가지였다. 이삿짐 트럭을 몰고 호텔로 향하는 손님은 그도 머리털 나고 처음이었으니까.민지현은 곁에서 송남지를 배웅하고 있었다.그녀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어쩌다 하룻밤 사이에 모든 상황이 이렇게 뒤바뀌어버린 건지 지금까지도 영문을 알지 못했다.하지만 그녀 역시 어렴풋하게나마 뭔가 단단히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직감하고 있었다.송남지와 하씨 가문, 그리고 하정훈 사이에 분명 무슨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었다. 그것도 아주 큰 문제 말이다.민지현은 송남지를 끝까지 배웅하려 했지만 송남지가 그녀를 만류했다.“지현 씨, 시간도 늦었는데 그만 돌아가 봐요.”민지현은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듯 이삿짐센터 트럭 곁을 서성이며 말했다.“난 어차피 매일 늦게 자요, 내가 데려다줄게요.”송남지는 입술을 달싹이며 옅게 웃었다.“오늘 밤엔 일찍 쉬어야죠. 내일은 최상의 컨디션으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해야 하니까.”민지현은 입을 벙긋거리며 무언가 말하려다 끝내 목구멍으로 삼켰다.송남지가 호텔에 막 도착했을 때, 최보라가 이미 호텔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곁에는 오지훈도 함께 서 있었다.송남지가 이삿짐센터 트럭과 함께 온 것을 본 최보라의 안색이 확 굳어지며 재빨리 다가왔다.“어쩐지 아침 일찍부터 민 실장이 미친 듯이 전화해서 네 행방을 묻더라니. 그 망할 기집애가 기어이 널 재스민에서 쫓아낸 거야? 쥐도 궁지에 몰면 무는 법인데, 걘 대체 적당히 멈출 줄을 모른대?”오지훈은 분노한 최보라가 혹여나 욱해서 무슨 짓을 저지를까 봐 전전긍긍하며 그녀의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송남지는 그런 오지훈을 힐끗 보며 억지로 미소를 지어 인사를 건넸고 오지훈의 눈동자에는 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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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7화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나서기도 전에 송남지가 다급히 그들을 막아섰다.“아니에요, 그냥 호텔 방에 놔두세요!”최보라는 송남지의 팔뚝을 붙잡고는 속상하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네가 뭐 때문에 부담스러워하는지 다 알아. 걱정 마, 나랑 오지훈 지내는 집에 갖다 놓겠다는 거 아니니까. 내가 전에 아파트 하나 사둔 거 까먹었어? 나 지금 거기 안 살아. 짐은 다 그쪽으로 넣고 너도 거기서 지내고 싶은 만큼 맘 편히 지내.”그제야 송남지는 이삿짐센터 직원들을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송남지의 캐리어가 아직 호텔에 있었다.“올라가서 짐 챙기고 체크아웃할 테니까,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줘.”송남지가 호텔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던 최보라가 마침내 참았던 화를 터뜨리며 원망스러운 얼굴로 오지훈을 쏘아보았다.“이게 너희들이 그렇게 입이 마르고 닳도록 말하던, 절대 변심 안 한다던 남자야? 지금 꼴 좀 봐. 한눈파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사람을 벼랑 끝으로 밀어서 죽이려고 하고 있잖아!”오지훈은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최보라에게 하정훈이 송남지에 대한 투자를 전면 차단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하정훈은 늘 젠틀한 녀석이었는데, 어떻게 그런 치졸한 짓을 한단 말인가?아무리 마음이 식었다고 해도, 다른 여자에게 눈이 돌아갔다고 해도, 그래서 이혼까지 하며 시끄러웠다고 해도, 이렇게 바닥까지 내몰 위인은 절대 아니었다.“나도 지금 정훈이랑 연락이 안 닿아. 그러니 벌써부터 걔가 한 짓이라고 섣불리 결론 내리지 말자...”최보라는 오지훈의 손을 거칠게 쥐고 흔들며 쏘아붙였다.“이 지경이 됐는데도 아직도 하정훈 편을 들어? 내 동생이 저렇게 비참해진 거 안 보여? 남지도 처음엔 하정훈이 이런 짓까지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거야. 하지만 너도 봤잖아. 사방팔방으로 투자금을 구하러 다녔는데, 너희들 빼고는 아무도 남지한테 감히 투자를 못 하는 거. 걔도 현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과감하게 포기한 거잖아. 그런 애가 너희들 우정에 흠집이라도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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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8화

최보라는 아파트에 머물며 송남지와 함께 밤을 지새웠다.그날 밤, 그녀는 밤새 수차례 잠에서 깼으나 송남지의 방문은 미동조차 없었다.다음 날 아침, 서경의 날씨는 다시 매서운 추위와 함께 눈송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최보라는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문득 겁이 났다.‘이 기집애, 혹시 나쁜 마음이라도 먹은 건 아니겠지?'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최보라는 억지로라도 문을 열려 했으나, 손을 뻗기도 전에 문이 안에서 열렸다.송남지의 얼굴이 의외로 차분해 보이자 최보라는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같이 가줄까? 재스민이든 카페든...”사실 송남지는 누군가의 동행이 필요하지 않았다.성인이라면 모든 결과를 스스로 감당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최보라의 불안을 덜어주기 위해 동행을 수락했다.“응, 재스민 들렀다가 카페로 가자.”“그럼 얼른 씻고 준비해. 아침 차려줄게.”요리하기 귀찮아하는 최보라였기에 냉동식품을 데우고 우유 두 잔을 따뜻하게 데우는 정도가 다였다.옷을 갈아입고 나온 송남지에게 최보라는 억지로 립스틱까지 발라주었다. 그러고는 만족스러운 듯 감탄했다.“음, 훨씬 낫네. 얼굴에 핏기가 좀 돌아.”송남지는 힘없이 미소 지었고 최보라는 생색을 내며 아침 식사를 강권했다.“오지훈도 내가 직접 차린 아침을 못 먹어봤거든.”입맛은 전혀 없었지만 송남지는 최보라의 성의를 생각해 자기 몫을 전부 비워냈다.건물 밖으로 내려오자 엘리베이터 앞 복도까지 눈송이가 흩날려 들어왔고 바닥에서 녹아내린 눈 줄기마다 서늘한 한기가 배어 있었다.송남지는 저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며 목을 움츠렸다.최보라는 손에 입김을 불며 지상 주차장으로 향했고 송남지는 그 뒤를 바짝 뒤따랐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더니 어느새 지면을 하얗게 덮어버렸고 그녀가 지나온 자리에 발자국이 줄지어 남았다.최보라는 송남지의 상태가 걱정되어 직접 운전대를 잡겠다고 나섰지만, 송남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내가 운전할게.”지금 이 순간, 그녀에겐 흐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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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9화

최보라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지만, 송남지가 이토록 비참한 순간에 뒤따라가고 싶지도 않았다.사람에게는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자존심이라는 게 있으니까.잘나갈 때는 주변에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상관없지만, 마음이 꺾였을 때의 초라한 모습만큼은 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법이다.최보라는 송남지가 홀로 차에서 내려 재스민으로 향하는 뒷모습을 걱정스럽게 지켜보았다.그새 더 마른 것 같은 동생은 눈 내리는 날씨에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금방이라도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그녀의 쓸쓸하고 가냘픈 실루엣은 찰나의 순간 이 도시와 지독하게 겉돌고 있었다.재스민 안으로 들어서자 민지현이 송남지를 보자마자 격앙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재빨리 다가와 송남지를 구석으로 이끌며 나지막이 말했다.“남지 씨, 내가 계약 조건을 다시 봤는데 관장님이 꼭 나가야 한다는 조항은 없어요. 재스민에 계속 남으셔도 돼요.”송남지도 이미 알고 있었다.그 계약서는 그녀가 직접 서명한 것이니 재스민에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하지만 이곳에 계속 남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자신의 피땀 어린 노력이 은지영의 손에 망가지는 걸 지켜보라는 건가?아니면 은지영에게 직접 유린당하라는 건가?일이 이쯤 된 마당에 그녀는 재스민을 떠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송남지는 군더더기 많은 관계를 질색했다. 감정도 그랬고 일은 더더욱 그랬다.송남지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민지현은 더는 말을 보태지 않았다.그저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로 송남지를 바라볼 뿐이었다. 한마디 더 붙이고 싶었지만, 그녀의 시간을 더 뺏는 것 같아 말을 아꼈다.“사인 다 하시면 저랑 나가서 바람이라도 좀 쐬어요.”송남지는 엷게 미소 지었다. 역시 민지현을 위해 고개를 숙였던 보람이 있었다.“오늘은 안 될 것 같아요. 할 일이 좀 있어서요. 나중에 시간 될 때 그때 같이 나가요.”은지영의 비서가 송남지를 부르러 왔다.“송남지 씨, 은 대표님이 기다리시니까 어서 가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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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0화

송남지는 이미 충분히 참으며 양보했다.하지만 은지영은 상대의 자존심을 완전히 짓밟아야 만족하는 인간이었고 기어이 송남지의 앞길을 막아 세웠다.은지영은 송남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더니 비아냥거리는 투로 도발했다.“너 정훈 오빠 못 본 지도 꽤 됐지? 그러지 말고 내가 데려가 줄 테니까 몰래라도 한 번 볼래?”제멋대로 구는 은지영의 모습에 송남지의 마음속에서는 분노가 들불처럼 번졌다.하지만 그녀는 폭발하는 대신 고개를 숙이며 담담하게 말했다.“사양할게. 은지영, 네 말대로 난 거기 갈 자격이 없어. 자격 있는 네가 가야지.”은지영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승리자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눈치 하나는 빨라서 좋네.”송남지가 자리를 뜨려 하자 은지영은 한 번 더 그녀를 저지했다.“지금 네 그 비참한 패잔병 같은 몰골이 아주 볼만하거든. 조금만 더 감상하게 해줘도 괜찮지?”송남지는 잠시 멍해졌지만, 이내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네가 날 구경하든 말든 상관 안 해. 그런데 굳이 나한테서 우월감을 찾으려 들지는 마. 이제 네가 넘어야 할 벽은 내가 아니니까. 알겠니, 은지영?”송남지는 은지영의 이름을 한 글자씩 또박또박 내뱉었다.은지영은 처음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멍하니 서 있는 은지영을 바라보며 송남지는 씁쓸한 마음을 거둔 채 미소 지었다.“설마 아직도 몰랐던 거야? 하정훈 옆에 벌써 다른 사람이 생겼다는 걸. 공항 마중 갈 거라며? 나한테 쏟아부을 에너지가 있으면 아껴뒀다가 그 여자한테나 써. 나한테 낭비하지 말고.”이번에 송남지는 은지영이 반응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떠났고 은지영은 혼란에 빠진 채 홀로 남겨졌다.재스민의 옛 직원들과 일일이 작별 인사를 나눈 송남지는 아무런 아쉬움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오히려 오랫동안 함께했던 직원들의 눈가에 아쉬움이 가득했다.송남지 같은 대표를 다시 만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재벌가의 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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