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듣고 나서야 은지영은 늘 고고하던 송남지가 왜 여기까지 와서 상갓집 개처럼 꼬리를 내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알고 보니 민지현을 지키기 위해서였던 것이다.은지영은 입꼬리를 올리며 여전히 흥미롭다는 눈빛을 보냈다.“그 여자가 아무리 뛰어나도, 난 전 정권의 충신은 질색이거든. 게다가 걘 너한테 충성을 다하잖아. 그리고 너도, 확실히 내 심기를 불편하게 한 적이 있고 말이야...”송남지는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꾹 깨물더니, 한참 만에야 간신히 입을 뗐다.“미안해. 예전에 말로 상처 줬던 거, 사과할게. 민지현은 재스민에 충성하는 거지 나한테 충성하는 게 아니야.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지금 은지영의 얼굴에는 희열이 가득했다.송남지처럼 콧대 높은 인간의 입에서 사과를 다 듣다니, 참으로 드문 일이었다.하지만 사과 한마디로 은지영의 마음속에 맺힌 앙금이 다 풀릴 리 없었다.어쨌든 그날 병원에서는 그녀가 단단히 굴욕을 맛봤으니까.은지영은 계속 눈썹을 까딱이며 말했다.“왜 네 사과에는 진심이라곤 눈곱만치도 안 느껴지는 거지?”송남지는 이를 꽉 물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서더니, 은지영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미안해...”그녀는 서둘러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은지영의 대답을 묵묵히 기다렸다.은지영은 푹 숙인 그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지금 이 순간 승리의 희열을 마음껏 만끽했다.1분쯤 지났을까, 그녀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괜찮아, 내가 뭐 사사건건 원수 갚는 그런 사람도 아니고. 그래, 네가 그렇게 민지현을 위해 사정하니까, 네 체면 봐서 걔는 남겨둘게.”너무 오래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탓인지 송남지의 목덜미가 뻐근해졌다.고개를 드는 순간, 그 뻐근함이 눈가까지 번져 시큰거렸다.그녀는 필사적으로 감정을 갈무리하고는 숨을 한 번 고른 뒤, 천천히 내뱉었다.“고마워.”말을 마친 송남지는 숨을 내쉬며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이토록 초라해지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저 사람들한테 짐마저 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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