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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e Kapitel von 가면을 쓴 남편: Kapitel 681 – Kapitel 690

777 Kapitel

제681화

“지난 10여 년의 세월을 승리했다고, 이제야 전세를 뒤집었다고 믿고 있었나 본데 서경으로 돌아오면 다들 우러러봐 줄 줄 알았나요? 어떻게 그 여배우를 쫓아냈는지 사람들이 궁금해해 주길 기대했겠지만, 미안한데 아무도 관심 없어요.”은지영은 결국 참지 못하고 병실 문을 거칠게 걷어찼다.“무슨 헛소리야! 너 진짜 병이 깊어서 미쳤구나? 하정훈이 네 이런 미친 꼴을 봐야 하는데. 그랬으면 당장 너랑 결혼한 걸 후회했을걸!”광기 어린 은지영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송남지는 한결 온화하고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정곡을 찔린 사람이야말로 조바심을 내는 법이었다.송남지는 은지영이 무슨 말을 하든 개의치 않았다.지금 은지영이 내뱉는 모든 말은 그저 화풀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내가 말했지, 당신은 나한테서 그 무엇도 뺏어갈 수 없다고. 하정훈도 재스민도 말이야. 게다가 당신과 당신 어머니가 오래전 잃어버린 체면을 되찾으려 애쓸 시간에, 서경 천지에 널린 야심가들을 경계하는 게 어때? 당신 아버지는 워낙 다정한 분이시잖아. 그때 그 여배우 같은 일이 또 반복되지 않으리란 법도 없고. 아니, 요즘 모델이나 인플루언서들은 아예 전문적으로 교육까지 받는다던데, 남의 가정 파탄 내는 것쯤은 일도 아닐 거야.”송남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미소 지었다.“나를 괴롭힐 시간에 당신 어머니랑 잘 상의해 봐. 서경으로 돌아온 지금, 어떻게 해야 은씨 가문 안주인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말이야. 당신 아버지, 과거 전적이 화려하시잖아.”“이게 진짜!”분노한 은지영이 손가락으로 송남지의 코앞을 가리켰다.송남지는 불쾌한 접촉을 피하려 뒤로 물러났으나, 은지영은 기어이 다가와 팔을 휘둘렀다.뺨을 내리치려던 찰나, 갓 병상에서 일어난 몸임에도 송남지의 반사 신경은 살아있었다.송남지는 은지영의 팔을 단숨에 가로채더니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은지영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목소리가 떨릴 정도의 강한 힘이었다.“이거 안 놔?”은지영은 손목이 부러질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송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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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2화

연휴가 끝나기 전, 최보라는 출근 전 마지막 일탈이라는 명목으로 친구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았다.당연히 송남지도 그 자리에 불러주었다.최보라가 자신을 위해 판을 깔아준 것임을 송남지는 알고 있었다. 혼자 있으면 우울해질까 봐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하정훈을 잊게 해주려는 깊은 속내였다.사실 연휴 내내 하정훈은 감감무소식이었다.정확히는 송남지의 세상에서만 하정훈의 소식이 사라진 것이었다. 다른 이들에게까지 소식이 끊겼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송남지가 모임에 나간다는 말에 오가은은 특별히 화려하고 눈에 띄는 스타일을 골라주었다.심지어 패션쇼에 막 등장했던 한정판 악어가죽 가방까지 브랜드 측에서 공수해 왔다.“와, 이 악어가죽 가방을 드니까 정말 제법인데? 너무 예쁘다.”오가은은 송남지를 찬찬히 훑어보며 숨길 수 없는 감탄사를 내뱉었다.가끔 송남지는 오가은이 자신을 마치 친딸처럼 키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조금의 거리감도 없이 지극정성으로 챙겨주는 것은 물론, 진심으로 자신을 아껴주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특히 이런 때일수록 송남지는 자신이 대체 어떤 덕을 쌓았기에 이토록 대단한 분의 인정을 받게 된 것인지 자문하곤 했다.문득 수년 전, 서경 미대에 갓 입학했을 때가 떠올랐다.당시 학교 개막 행사의 특별 게스트는 다름 아닌 오가은이었다.갓 성인이 된 송남지는 강당 객석에 앉아, 단상 위에서 여유롭고 당당하게 담소를 나누던 오가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그때 그녀는 오가은이 얼마나 독보적인 여성인지 실감했다.오가은이 없었다면 지금의 성은 그룹이라는 비즈니스 제국도 존재하지 않았을 터였다.그녀에게 오가은은 마땅히 삶의 귀감이 되어야 할 인물이었다.그런데 세월이 흘러 오늘, 오가은의 눈에는 자신을 향한 애정과 신뢰가 가득했다.송남지는 자신이 이미 99%의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니 지금 겪는 작은 시련을 결코 넘지 못할 산맥처럼 키우며 괴로워할 이유가 없었다.생각을 정리한 송남지가 화려한 가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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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3화

송남지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어머니, 전 원래 금수저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런 철부지 짓은 더 못 배울 것 같아요.”오가은이 눈썹을 치켜세웠다.“하긴, 네 말이 맞다. 그나저나 요즘 갤러리는 별일 없지? 네가 해결하기 벅찬 일은 없는 거지?”송남지는 잠시 말을 멈췄다.찰나의 침묵 속에서 은지영과 맺은 조건부 계약이 뇌리를 스쳤다.하지만 이내 표정을 풀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두 분은 갤러리 일에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제가 충분히 처리할 수 있어요.”새해를 맞이한 서경은 서서히 날씨가 풀리는 기미가 보였다.밤이라 해도 더 이상 살을 에는 듯한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집에서 나와 차에 올라타는 짧은 시간 동안 송남지는 춥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혹독한 겨울은 성급히 찾아온 만큼 떠나는 것도 참 빨랐다.최보라는 서경에 새로 오픈한 바로 모임 장소를 정했다.그곳은 멤버십 제도로 운영되는 꽤 흥미로운 곳이었다.주로 서경의 상류층 자제들이 드나들었는데 굳이 젊은 층으로 한정된 이유는 멤버십 가입 조건이 만 32세 이하였기 때문이다.바로 향하는 차 안에서 송남지는 문득 몇 년 뒤면 이런 유행하는 장소에도 오지 못하게 될 자신의 나이를 실감했다.바는 서경에서 가장 번화한 금싸라기 땅인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다.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외관 장식과 번쩍이는 금빛 간판만 봐도 그곳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송남지는 그리 일찍 도착한 편은 아니었다.코트 깃을 여미며 차에서 내린 그녀가 고개를 들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곽지민이 보였다.“보라 언니랑은요?”“이미 한잔들 하고 있지.”곽지민이 가볍게 대꾸했다.병실에서 본 이후로 다들 송남지의 상태를 걱정했는데 지금 보니 꽤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었다.“오빠는 왜 같이 안 마시고?”곽지민이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네 언니가 다 큰 애가 길도 못 찾고 바에도 못 들어올까 봐 걱정된다고 나보고 입구에서 에스코트하래.”말을 마친 곽지민의 시선이 송남지의 가방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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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4화

최보라는 송남지가 제법 공들여 꾸민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겉모습에 신경을 쓴다는 건 송남지의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다는 신호였기에 최보라는 진심으로 기뻐했다.송남지가 웃으며 말했다.“어머니가 선물해 주신 거야. 대단한 건 내가 아니라 우리 시어머니 실력이지.”최보라는 송남지 곁에 앉아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지금 은씨 가문에서 소문을 얼마나 내고 다니는지 몰라. 은지영이 조만간 네 자리를 꿰찰 거라느니, 네가 몸져누워 정신도 못 차린다느니 악담을 퍼붓고 있거든. 그런데 오늘 네가 이렇게 나타났으니, 머리 좀 돌아가는 사람들은 상황 파악 끝났을 거야. 누구 배경이든 상관없어. 적어도 이제 너에 대해 함부로 떠드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분석을 마친 최보라를 향해 오지훈이 엄지를 치켜세웠다.“역시 내 여자답네. 나랑 지내더니 안목이 꽤 늘었어.”유경태는 어이가 없다는 듯 핀잔을 줬다.“보라 씨는 원래 똑똑했어. 어디서 네 공으로 돌려? 네가 예전에 저지른 멍청한 짓들 우리가 다 까발려야겠어?”최보라는 그들의 말다툼은 안중에도 없었다.이번 모임의 목적은 오직 송남지를 위로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남지야, 네 시어머니가 이렇게 널 아끼시는데 걱정할 거 없어. 혹시라도 하정훈이 마음이 변한다고 해도 아주머니 성격에 밖에서 만나는 여자를 쉽게 집안에 들이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 안심해.” 송남지는 앞에 놓인 술잔을 들었다. 평소 술을 즐기지 않고 잘 마시지도 못하지만, 이런 식으로 제조된 도수 낮은 술은 가끔 입에 대곤 했다.“하정훈은 변심하지 않을 거야. 난 그를 믿어.”복잡한 풍미가 목을 타고 넘어갔다. 첫맛은 달콤했지만 끝 맛은 쌉싸름한 발효향이 났다.단순하지 않은 그 맛이 꼭 인생 같았다.최보라는 송남지의 손을 꼭 잡았다.“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다. 일단 우리 자신부터 잘 챙기자. 어쨌든 너에겐 재스민이 있잖아.”재스민의 이름이 나오자 송남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분위기가 무르익자 유경태가 말을 꺼냈다.“다들 은지영이 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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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5화

송남지를 태운 차는 순식간에 멀어졌다.하씨 저택 앞에 도착한 송남지는 바람을 쐬고 싶어 요금을 결제하며 말했다.“기사님, 여기서 내릴게요. 여기서부터는 걸어가도 돼요.”기사가 어마어마한 저택 부지를 보며 물었다.“손님, 안까지 모셔다드릴까요? 걸어 들어가시기엔 너무 먼 것 같은데...”송남지는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아니에요. 술을 좀 마셔서 바람을 쐬고 싶거든요.”차에서 내린 송남지는 경비원들을 깨우지 않으려고 직접 안면 인식기를 이용해 정원으로 들어선 뒤, 고요한 정원 산책로를 걸었다.평소 술이 약한 편이었지만, 오늘 밤은 오랜만에 친구들과 마음을 열고 어울린 탓에 과음했는지 몸이 조금 휘청였다.발을 내디딜 때마다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니 정신이 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본관을 향해 걷던 송남지는 1층 남쪽 서재에 아직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새벽 1시였다.‘이 늦은 시간에 아버님과 어머님은 왜 아직도 쉬지 않는 걸까?’도대체 안에서 무슨 일을 의논하고 계신 건지 궁금증이 일었다.의구심을 품은 채 본채로 들어선 송남지는 달빛에 의지해 어두운 등을 딱 하나만 켜고 남쪽 서재로 향하는 길을 살폈다.어쩌면 지금 서재에서 나누는 이야기가 하정훈이 처한 문제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엿듣는 비겁자가 될 것인지 고민하던 것도 잠시, 그녀의 발걸음은 이미 이성을 앞질러 서재 문턱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차를 정원 멀리 세워두고 발소리를 최대한 낮추고 기척을 죽이며 다가갔기에 서재 안의 누구도 그녀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송남지는 조심스레 서재 근처로 다가갔고 심장은 터질 듯이 요동쳤다.비밀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과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이 동시에 밀려와 그녀는 몇 번이고 숨을 고르며 마음을 다잡은 뒤에야 서재 문 앞에 섰다.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서재 안의 무방비한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졌다.송남지는 서재 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오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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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6화

송남지의 눈동자가 얼어붙었고 숨결마저 딱딱하게 굳었다.시간이 이대로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송남지는 비명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한 손으로 벽을 지탱한 채 다른 손으로 입을 꽉 막으며 요동치는 마음을 억누르려 애썼다.조금 전 바에서 최보라와 오지훈 일행 앞에서는 하정훈이 변심할 리 없다고 그토록 확신하며 말했건만, 그 다짐이 지금은 날카로운 뺨을 때리는 손길처럼 매섭고도 무겁게 돌아와 그녀의 얼굴을 내리쳤다.이제 오가은과 하정훈의 통화 내용만으로도 대략적인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대체 무엇을 이토록 숨겨온 것일까. 오가은조차 참다못해 이혼을 권유할 정도라면, 하정훈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것 말고는 그 어떤 설명으로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송남지는 누군가에게 목을 세게 졸린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고 억지로 내뱉는 숨결마다 날카로운 통증이 배어 나왔다.서재 안의 오가은이 곧 통화를 끝내고 나올 기척이 들리자, 송남지는 숨을 죽인 채 소리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향해 서둘러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은 마치 충분히 빨리 달아나기만 하면 방금 들은 이야기를 없었던 일로 만들 수 있다는 듯 처절해 보였다.서재에 있던 오가은이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림자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그녀는 낮게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정훈아, 남지가 다 들었다.”수화기 너머로 한참 동안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창밖 달빛 아래 흔들리는 나뭇가지 그림자를 바라보며 오가은은 연신 한숨을 내뱉었다.“정훈아, 잘 생각해야 한다. 남지는 누구보다 단호하고 영리한 아이야. 이번엔 절대 자신을 속이며 넘기지 않을 게고 하씨 가문과도 지체 없이 인연을 끊어내려 할 것이야.”기나긴 정적 끝에 들려온 그의 목소리는 평소의 묵직하고 힘 있는 어조와 달리 힘없이 부서질 듯 가냘팠다.“알아요. 늘 확실하고 명확한 사람이었죠. 그래서 결국 행복해질 수 있을 겁니다.”오가은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마지막 당부를 전했다.“여긴 너무 늦었으니 난 이만 쉬어야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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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7화

송남지의 피곤한 눈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있었고 간밤의 고민이 그녀의 모든 기력을 송두리째 앗아간 듯했다.아침 식탁 앞, 이미란은 여느 때처럼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하종현은 차를 마시며 경제 신문을 읽고 있었다. 다만 오가은만이 우아하게 꽃을 만지던 평소와 달리 초조한 기색으로 나선형 계단 쪽만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무언가 초조하게 기다리는 기색이 역력했다.잠시 후, 검은색 오피스 룩을 차려입은 송남지가 나선형 계단을 내려오며 모습을 드러냈다.오늘 아침 하씨 저택 사람들은 각자 복잡한 심경을 품고 있었다.오직 식사 준비를 돕던 이미란만이 아무것도 모른 채 밝은 모습이었다.이미란은 송남지를 반갑게 맞이하며 말했다.“작은 사모님, 오늘 주방에서 서경의 전통 고기 찐빵을 만들었어요. 분명 입맛에 맞으실 거예요!”이미란은 말을 마치고 따뜻한 두유를 정성껏 따랐다.송남지는 식탁 옆에 섰지만 서둘러 자리에 앉지 않았다.그 사소한 움직임에 이미란은 뒤늦게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송남지와 오가은을 번갈아 살피던 이미란은 두 사람 사이의 냉기류를 눈치채고는 재빨리 물러나 주방으로 들어갔다.그러고는 다른 고용인들에게 당분간 식당 근처에 나타나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다.오가은의 얼굴에서 태연함이 점차 사라져 가자 송남지는 그제야 천천히 입을 뗐다.“어머니, 죄송해요. 실은 어젯밤 어머니와 정훈 씨가 통화하는 걸 우연히 들었어요. 저한테 숨기려 하셨던 일들 대충은 다 알게 됐고요.”오가은은 처음엔 당황한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안타까운 듯 말했다.“남지야, 난 진심으로 널 좋아해. 나는...”송남지가 손을 살짝 들어 그녀의 말을 막았다.“어머니, 정훈 씨와 정식으로 이혼하기 전까지는 어머니라고 부를게요. 정말 저를 아끼셨다면 제가 광대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이리저리 휘둘리게 내버려 두지는 않으셨을 거예요. 정말 저를 좋아하셨다면, 정훈 씨가 그런 일을 벌이기 전에 따끔하게 혼내주셨겠죠.”송남지는 사실 오가은을 탓하고 싶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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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8화

금전적인 보상이라...송남지는 눈썹을 모으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어쩌면 이 비참한 결혼 생활의 대가로 거액을 요구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하지만 그녀는 태생부터 계산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요즘 시대에 이런 태도가 바보처럼 보일지라도, 송남지는 사랑과 돈을 하나로 묶어버리면 이 세상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남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송남지는 오가은이 내민 마지막 손길을 뿌리쳤다.대신 상대방이 미안해하고 있을 때가 부탁을 들어주기 가장 좋은 때라는 걸 알았기에 딱 한 가지만 요청했다.“금전적인 보상은 필요 없어요. 대신 제게 주셨던 재스민만큼은 계속 제가 운영하게 해주세요.”오가은은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남지야, 그건 당연하지. 한 번 준 걸 다시 뺏을 리 있겠니. 나중에 재스민을 운영하다 힘들면 언제라도 연락해라.”송남지는 대답 대신 침묵을 선택했다.아무리 재스민이 위태로워져도 먼저 손을 내미는 일은 없을 터였다.송남지는 하씨 가문에서 지내며 사용하던 물건들을 단출하게 정리했다.엄밀히 따지면 그녀의 몫이라 할 수 있는 물건은 꽤 많았으나 대부분 하정훈이나 시부모님이 사준 사치품들이라 본래도 잘 쓰지 않았고 이제 와 챙길 이유도 없었다.오가은은 짐을 싸는 송남지의 곁을 묵묵히 지키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24인치 캐리어가 가득 차자 송남지의 가슴엔 형언할 수 없는 씁쓸함이 차올랐다.평생을 평온하게 함께 걷는 연인이란 참으로 드문 법인가 보다.대개의 인연은 시작은 아름다우나 끝은 이토록 허무한 것을.송남지는 나쁜 결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이토록 급격한 변화는 감당하기 벅찼다.얼마 전 맨성에서 세상 누구보다 달콤한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 말이다.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당당하게 버티겠노라 다짐했건만 발치에 놓인 검은 캐리어는 그녀를 비웃는 농담처럼 느껴졌다.정원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마저 그녀를 바보라고 놀리는 것만 같았다.그 순간 송남지는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지만 캐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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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9화

송남지는 돌아서며 당혹스러운 눈빛을 보냈다.평소 격조를 중시하던 오가은이 이토록 무너진 음성으로 자신을 부를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아주머니, 아직 하실 말씀이 남았나요?”오가은의 눈에는 형언할 수 없는 무력감이 서렸고 목구멍까지 차오른 수만 가지 감정이 만감을 교차하게 했다.“날이 차구나, 기사더러 데려다주라고 하마.”하지만 결국 그녀가 어렵사리 내뱉은 말은 이것뿐이었다.송남지는 거절하지 않았다.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본채 밖 차고로 향했다.차고에는 하정훈이 아끼던 차들이 여느 때처럼 즐비하게 서 있었다.송남지가 도착하자 기사가 곧 뒤따라왔는데 그가 몰고 온 차는 다름 아닌 하정훈이 그녀에게 선물했던 차였다.송남지는 순간 거부감을 느꼈지만 이내 오늘 이 집을 나가면 하씨 가문과는 남남이라는 생각에 굳이 차 종류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마음을 다잡았다.그녀는 고개를 떨군 채 씁쓸하게 웃으며 기사가 열어준 차 문 안으로 힘없이 몸을 실었다.기사가 짐을 싣고 운전석에 올라타자 차는 미끄러지듯 출발했다.하씨 저택에서 재스민으로 향하는 이 길을 송남지는 수없이 오갔지만 오늘 느끼는 심경은 그 어느 때와도 달랐다.무겁게 가라앉은 정적을 견디지 못한 그녀가 나직하게 음악을 청했고 흘러나오는 잔잔한 선율에 몸을 맡긴 채 송남지는 깊은 상념 속으로 빠져들었다.그녀의 머릿속은 현재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했다.사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떠나고 단호하게 이혼을 결정한 것이 그저 홧김에 저지른 일은 아닐까 자문해 보기도 했지만 한참을 고민해 봐도 단순히 감정에 휩쓸려 내린 결론은 아니었다.하정훈이 변심했다면, 떠나는 것이 그녀가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체면이었다.정월 초여드레, 서경의 모든 직장이 업무에 복귀하고 귀경객들이 몰리면서 도로가 정체되기 시작했다.평소라면 30분도 걸리지 않을 거리가 오늘은 한 시간 가까이 걸리고 있었다.그때 민지현에게서 재촉하는 메시지가 도착했다.[관장님, 올해 첫 회의인데 늦으시면 곤란해요.]시간을 보니 회의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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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0화

기사가 사정하는 모습에 송남지는 차마 모질게 굴지 못했다.이 차를 곁에 두고 볼 때마다 가슴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것과 무고한 사람의 생계를 끊는 것 사이에서, 송남지는 결국 전자를 택했다.송남지는 차 키를 꽉 쥐며 마음속의 불편함을 억지로 삼켰다.“알았어요, 차는 제가 받을 테니 그만 가보세요.”기사는 구원이라도 받은 듯한 표정으로 연신 머리를 숙였다.“감사합니다, 사모님! 정말 감사합니다!”송남지는 입술을 달싹였다.더는 사모님이라 부르지 말라고 말하려 했지만, 결국 말이 나오지 않았다.멀어지는 기사의 뒷모습을 보며 송남지는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 사실이든 아니든 이제 와서 강조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어차피 머지않아 하정훈이 그 새 연인을 데려오면 그녀가 더 이상 하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라는 건 온 세상이 알게 될 테니까.그녀는 재스민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전 심호흡을 하며 평정심을 되찾았다.공과 사는 엄격히 구분해야 했다.송남지는 미소지으며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서며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에게 밝게 인사했다.“다들 고생 많으세요, 조만간 보너스 하나씩 챙겨드릴게요!”“송 관장님, 감사합니다.”아주머니들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별말씀을요.”송남지는 회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연휴가 끝나면 늘 골치 아픈 일들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은지영과의 투자 조건부 계약이었다.하지만 민지현은 이 일이 얼마나 큰 폭풍이 될지 모른 채 기대에 차 있었다.“관장님, 성은 그룹에서 투자금 천억은 언제 들어오나요? 이렇게 큰 투자를 받고 계약까지 따냈으니, 올해 우리 재스민 사업 계획도 완전히 달라지겠는데요?”송남지는 차분하게 자리에 앉았다. 완전히 자리를 잡고 앉자 그녀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엄숙해졌다.민지현은 방금 자신이 한 말이 송남지의 기분을 거슬리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평소 송남지는 재스민이 성은 그룹과 엮여 거론되는 것을 몹시 싫어했기 때문이다.민지현은 얼른 말을 바꾸었다. “그러니까 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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