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랑은 부담, 돈은 환영이에요: Chapter 71 - Chapter 80

100 Chapters

제71화

그 광경을 목격한 주다현은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깊은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마음속에 계산해 두었던 모든 치밀한 계획까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그녀는 본능적으로 밖으로 뛰어나갔고 심하게 흔들리는 요트 위에서 제대로 설 수조차 없어 기어가듯 앞으로 나아갔는데 그 모습은 너무도 처절하고 초라했다.불과 10미터 남짓한 거리였지만 주다현에겐 끝없이 멀게만 느껴졌다.힘겹게 배준기 앞까지 기어간 주다현은 그의 손목을 꽉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 고정된 로프를 움켜쥐었다.폭우는 조금 약해졌지만 거칠게 밀어 오는 파도에 요트는 여전히 격하게 흔들렸다.“빨리 놔요. 이러다가 우리 둘 다 떨어진다고요.”배준기는 비바람 속에서 소리치며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을 뚫어져라 쳐다봤다.“싫어요.” 주다현은 이를 악물고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이건 명백히 그녀의 잘못이기에 절대로 손을 놓을 수 없었다.아니, 절대로 놓아선 안 된다.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저 놓아선 안 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꽤 오랜 시간을 버텼다.또 한 번의 큰 파도가 요트를 덮쳤고 주다현의 몸은 옆으로 심하게 휘청였지만 여전히 로프와 배준기의 손을 놓지 않았다.배준기의 눈동자엔 복잡한 감정이 일렁였다.그는 흔들림이 덜한 틈을 타 이를 악물고 힘을 모아 갑판 위로 올라섰다.주다현은 본능적으로 배준기를 끌어안았고 두 사람은 함께 미끄러운 갑판 위에 쓰러졌다.넘어지는 와중에도 배준기는 본능적으로 주다현을 품에 안아 충격을 대신 받아냈다.거센 비와 바람 속에서 두 눈이 마주쳤고 거친 숨결이 서로의 얼굴에 부딪쳤다.“미쳤어요?”배준기의 목소리는 공포와 격앙으로 떨리고 있었다.“나 수영 잘해요. 바다에 빠져도 괜찮다고요.”“그리고 곧 구급대원이 왔을 거예요. 그런데 당신은 빠지면 그냥 죽는 거라고.”눈을 빨갛게 충혈되었고 숨결은 가쁘고 날카로웠다.“왜 나한테 화내요?”주다현은 거의 고함을 지르듯 외쳤다.“그럼 그냥 준기 씨가 떨어지게 놔둬야 했다는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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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어느 한 별장.도우미가 말했다.“회장님 오셨습니다.”신여정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왔다고요? 지금 어디에 있어요?”“거실에 계십니다.”“알겠어요.”신여정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빠르게 거실로 향했다.배준기가 돌아온 이후로 배지원이 그녀의 집에 오는 횟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지원 씨.”신여정은 조용히 그의 이름을 불렀고 부드러운 눈빛은 애정을 가득 담고 있었다.비록 나이는 거의 쉰에 가까웠지만 잘 관리된 얼굴은 여전히 30대 초반처럼 보였다.젊을 때의 매력을 그대로 유지한 그 모습은 오히려 나이가 든 후 한층 더 성숙한 느낌을 주었다.“왜 연락도 없이 왔어요? 전화라도 했으면 미리 준비했을 텐데.”신여정은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그녀는 실크 잠옷을 입고 입었고 그 위에는 얇은 가디건을 걸쳤다.배지원은 정장 외투를 벗어 건네자 신여정은 곧바로 그것을 받아 집사에게 전달했다.“갑자기 생각나서 왔어. 너랑 애들도 보고 싶고.”배지원은 힐끗 쳐다보더니 피곤함에 찌든 목소리로 말했다.“지원 씨, 많이 피곤해 보여요.”신여정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요즘 많이 바쁘죠?”배지원이 아무 답도 하지 않자 신여정은 유연하게 화제를 돌렸다.“아참, 밥은 먹었어요? 마침 지원 씨가 좋아하는 보신탕을 끓였어요.”“부엌에 지원 씨가 좋아하는 반찬들도 몇 가지 있어요.”신여정의 세심한 배려에 배지원은 찌푸리고 있던 미간을 풀더니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사실 배가 좀 고팠어.”신여정은 배지원의 팔짱을 끼고 함께 식탁으로 향했고 미리 집사에게 얘기한 덕분에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되었다.어떻게 하면 남자들이 좋아하고 릴랙스할 수 있는지 잘 알았던 신여정은 능숙하게 행동했다.배지원은 식탁을 가득 채운 맛있는 음식을 바라보며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넌 항상 이렇게 세심해. 그래서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나 봐.”성격이 드세고 무뚝뚝한 아내와 비교할 때 눈앞의 신여정은 늘 부드럽고 세심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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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배지원은 젓가락을 멈추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원래 준기 손에 있던 프로젝트야. 3년 전 준기가 자리를 비웠을 때 유성이가 잠깐 맡았던 거지.”“지금은 준기가 돌아왔으니까 당연히 다시 넘어가야지.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신여정은 미간을 찡그리며 답했다.“알아요. 두 사람 싸우거나 경쟁하게 만들려고 꺼낸 얘기는 아니에요. 다 내 성격이 문제인 거죠. 내가 부담 줘서 유성이가 힘든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가끔 들어요.”“유성이가 지난 3년 동안 리조트 프로젝트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았는지 우리 둘 다 알잖아요.”“그런데 돌아온 준기 입장에서 보면 유성이가 많은 권한을 얻고 자리도 대신했으니까... 한편으로는 준기가 불만을 품진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해요. 설령 모든 걸 다 돌려준다고 해도 마음속의 앙금은 여전히 남을 거예요. 그래서 제 생각엔...”신여정은 말끝을 흐렸지만 그 의미는 충분히 전달되었다.줄곧 침묵하던 배지원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무슨 걱정하는지 알아. 나도 상황 파악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 아들이 상처를 받거나 밑지는 일은 없을 거야.”신여정은 고개를 끄덕이고선 스무스하게 화제를 돌려 딸 신유나의 이야기를 꺼냈다.그렇게 분위기는 한결 편안해졌다.“아빠.”어디선가 밝고 활기찬 목소리가 울리더니 급한 발걸음 소리가 다가왔다.곧이어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나타났는데 여리여리한 몸매와 예쁘장하게 생긴 얼굴은 단번에 사로잡을 정도였다.막 파티를 마치고 돌아온 듯 드레스조차 갈아입지 못한 상태였다.그녀는 밝은 표정으로 배지원에게 달려들어 품에 안겼고 얼굴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가득했다.“아빠, 이게 얼마 만이에요. 드디어 오셨네요?”배지원은 웃으며 그녀를 안아줬다.“아빠가 온 게 그렇게 신나? 뭐 갖고 싶은 게 생겼어? 아빠한테 사달라고 부탁하려고?”신유나는 고개를 들더니 입술을 삐쭉 내밀고는 투덜거리며 배지원에게 말했다.“누가 보면 갖고 싶은 게 있을 때만 아빠 생각하는 줄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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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배지원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응. 준기가 요트에서 파도에 휩쓸려 다쳤나 봐. 지금 병원에 있다네?”“어머, 세상에나.”신여정은 화들짝 놀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심각해요? 많이 다쳤어요?”말을 그렇게 해도 속으론 이미 빠르게 계산을 마쳤다.배지원은 그녀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팔이 살짝 골절되었대. 며칠만 푹 쉬면 아무 문제 없을 거야.”신여정은 그 말을 듣고 내심 아쉬웠지만 일부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나마 다행이네요.”“그런데 준기는 이 밤에 왜 요트를 탄 거죠? 고객 미팅이 있었나?”배지원은 어느새 표정이 일그러졌다.“고객? 걔가 무슨 고객이 있어. 그냥 일 안 하고 놀러간 거지.”명색에 장남인데 말이 너무 심했나 싶어 곧이어 손을 흔들며 덧붙였다.“됐어. 그만하자. 난 빨리 병원에 가봐야 해.”그가 일어날 준비를 하자 신여정은 세심하게 외투를 건네고선 부드럽게 말했다.“가는 길에 조심해요.”배지원은 그녀의 손을 잡고 말을 이었다.“유나에게 미안하다고 전해줘. 오늘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어쩔 수가 없네. 다음에 오면 같이 있어 준다고 꼭 얘기하고.”“부녀 사이에 그런 말은 필요 없어요. 유나는 이해심이 많은 아이니까 괜찮을 거예요.”배지원은 죄책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그렇게 한 마디씩 주고받으며 어느새 주차장에 도착했다.차가 주차장을 나서는 순간 신여정의 얼굴에 드러난 걱정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남은 건 비웃음뿐이었다....유명 사립 병원의 VIP 병실.병상에 누운 배준기는 정형외과 의사에게 부러진 왼쪽 팔을 맡겼다.주다현은 그의 곁에 앉아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4주년 기념일을 챙기지 않았을 텐데...”배준기는 피식 웃었다.“왜 안 챙겨요? 난 꽤 재밌었는데.”주다현이 그를 보며 말하려던 찰나 병실 문이 갑자기 열렸다.서경희는 하이힐을 신은 채 급하게 달려왔는데 정교한 메이크업마저 그녀의 얼굴에 드러난 황당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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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주다현이 지금껏 살면서 받은 선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게다가 이렇게 편을 들어주며 지켜주는 사람은 더욱 없었다.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기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였다.서경희는 그 말을 듣고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니?”“믿든 말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사실이니까.”주다현을 더 이상 비난할 수 없음을 깨달은 서경희는 정색하며 분노의 화살을 요트 선원들에게 돌렸다.“배에 같이 타고 있던 사람들은 뭐 하고 있었어? 위험한 상황에서는 제일 먼저 구하러 가야지.”“다들 선실에 있었어요. 와주는 데 시간이 좀 걸렸고요.”배준기의 답은 짧고 굵었다.“어디에 있든지 간에, 제때 구하지 못한 건 직무 유기야.”“흐음.”배지원이 마른기침을 두어 번 하며 부자간의 언쟁을 끊었다.“그만해. 이쯤 하면 됐어.”“준기가 갖고 있는 요트야. 그러니까 직원 관리도 준기가 직접 하는 거고. 우리가 간섭할 필요는 없어. 그리고 지금 이렇게 아무 일 없으면 됐잖아.”서경희는 불만 있는 듯 한숨을 쉬었지만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뒤를 돌아선 배지원은 다친 아들을 바라봤는데, 그 얼굴에는 일말의 동정조차 없었다.“준기야, 넌 회사의 대표야. 위험에 빠지지 않게 좀 더 신중히 행동했어야지. 앞으로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사고당한 소식이 퍼지면 그룹 주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봤어?”“지원 씨.”서경희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아들이 심하게 다쳤으면 걱정부터 해야지, 이런 상황에 혼을 내고 싶어요? 당신 정말 준기한테 관심이 있긴 해요?”배지원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관심 없다고? 정말 관심이 없었으면 한밤중에 병원까지 달려왔겠어?”“참나, 그것도 말이라고 해요?”분노를 참지 못한 서경희는 어이가 없는 듯 헛웃음만 나왔다.“설마 안 올 생각도 했어요? 아들이 다쳤으면 아빠라는 인간이 당연히 와야죠. 한밤중? 아니, 어느 여우 년이랑 침대에서 붙어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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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배준기는 표정이 일그러졌다.“왜 반대하세요? 저랑 다현 씨 사이에 아이도 있어요. 결혼은 시간문제라고요.”서경희는 피식 웃었다.“누가 아이가 있으면 무조건 결혼해야 한다고 정했어?”배준기는 눈빛이 차갑게 돌변했다.“그럼 어머니는 다현 씨가 며느리 되는 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말씀인가요?”“그렇다면?”서경희는 오히려 당당했다.“너도 이제 돌아온 지 꽤 됐으니까 어느 정도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우리 배씨 가문은 아무나 시집올 수 있는 집안이 아니야. 급이 맞아야 한다고.”배준기는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물었다.“그렇게 다현 씨가 마음에 안 들었다면 애초에 왜 아이를 낳게 허락했어요?”“왜냐고?”서경희는 눈앞에 있는 아들이 한없이 순진하게 느껴져 웃음이 터졌다.예전 같았으면 이런 터무니없는 질문은커녕 어쩌면 서경희보다도 더 냉정하고 단호했을 사람이 배준기다.친자 확인이 없었다면 서경희는 눈앞에 있는 사람이 자기 아들이 아니라는 착각을 했을지도 모른다.성격이 유하게 변한 아들이 너무 좋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예전의 냉철함을 잃은 것 같아 내심 걱정이 되었다.“그래. 그럼 내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말해줄게.”의자에 앉은 후 다리를 꼰 서경희는 얼굴에 피로가 가득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세는 전혀 꺾이지 않았다.“너는 내 유일한 아들, 내가 모든 정성을 쏟아부어 키운 아이야. 나랑 네 외가, 그리고 할머니까지 온 가족이 너에게 큰 기대를 걸었어.”“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고가 나서 네가 사라졌어. 그때 엄마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절망적이었는지 넌 모를 거야.”“내가 얼마나 힘든 상황에 처했는지 넌 상상도 못할 거야.”눈시울이 붉어진 서경희는 곁눈질로 배지원을 힐끗 쳐다봤다.배지원은 차가운 표정으로 서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서경희는 시선을 거두며 계속하여 말을 이었다.“그러던 어느 날 주다현이 배씨 가문에 찾아왔어. 네 아이를 임신했다고 말하면서.”“이제 대답해 봐. 네가 만약 엄마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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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서경희는 그동안 상대의 권력에 의지하는 여성들을 많이 봐왔다.비록 주다현이 모든 면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고 예의도 바르며 처신도 적당해 아무런 흠을 잡을 수 없었지만 그 완벽함이 오히려 서경희에게 쉬운 여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주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기억은 잃었어도 바보는 아니에요. 진심이랑 가식 정도는 구별할 수 있어요.”서경희는 싸늘한 웃음을 보였다.“기억도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어떻게 다현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단하니?”배준기는 이를 악물었고 눈빛은 확고했다.“저는 제 촉을 믿어요.”“네가 본 게 꼭 정확할 수는 없어. 다현이가 일부러 너한테 보여주려고 그런 모습을 연기한 거라면?”배준기가 반박하지 않자 서경희는 계속해서 말했다.“만약 네가 보잘것없는 가난한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아기를 낳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거야. 다현이는 처음부터 배씨 가문의 신분과 지위, 재력을 노린 거라고. 지금 사랑 타령하는 건 너밖에 없어.”배준기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그런 가설은 없어요. 설령 다현 씨가 사랑하는 게 제 재력과 능력이라도 상관없어요. 그것 또한 제 장점 아닌가요? 왜 굳이 그걸 부정해야 하죠?”“너...”서정희는 주다현을 옹호하는 아들의 모습에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도대체 걔가 뭘 줬길래 이렇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거니? 아예 모든 판단력을 잃었네.”“다현 씨는 저에게 진심을 줬어요.”“진심? 너 정말 미쳤구나? 기억도 못 하면서, 겨우 석 달 만난 여자랑 진심을 연연해?”“난 준기의 이 결혼 찬성이야.”조용히 있던 배지원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준기 말이 맞아. 우리 배씨 가문에서 다현이를 내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그 말이 끝나는 동시에 서경희는 가슴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결혼한 지 수십 년이 된 남편마저 아들과 같은 편이 되어 속을 긁고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어찌 답답하지 않을 수 있냐는 말이다.만약 아들이 주다현이라는 배경도 없는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다면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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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예상대로 서경희와 배지원은 격렬한 싸움을 벌였고 늘 그렇듯 싸울 때마다 옛날 일을 끄집어냈다.서경희는 배지원을 비난했다. 아들인 배준기는 안중에도 없고 늘 혼외 자식만 챙기는 그가 부모로서 자격이 없다며 원망을 쏟아냈다.결혼한 지 어언 삼십 년인 두 사람은 서로의 약점을 잘 알고 있어 어떻게 공격하면 상처가 될지 바싹했다.배준기는 그런 두 사람을 싸늘한 눈빛으로 지켜봤다.배씨 가문에 돌아온 후로 부모님의 싸움을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부모님이 사이가 안 좋다는 건 아주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심각한 줄은 몰랐다.미워하는 것도 모자라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면서 왜 이혼하지 않는 걸까?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배준기는 점차 시야가 흐릿해졌고 눈앞의 싸움이 희미하게 변해갔다. 그러다가 어느 한순간 서경희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기억의 문이 강제로 열리며 수많은 장면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다섯 살 때, 배준기는 침실 옷장 안에 숨어서 틈새로 부모님의 싸움을 지켜봤다.서경희가 배지원에게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그동안 당신이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든 다 눈감아 줬잖아요. 그런데 뭐 임신? 애를 만들어서 와?”“나는 그렇다고 쳐요. 우리 서씨 가문, 우리 준기한테 미안하지도 않아요?”배지원은 조금의 죄책감도 없는 듯 뒷짐 지고 건방한 자세로 서 있었다.“그게 뭐 어때서? 애가 생긴들 당신이랑 준기 자리 넘보는 사람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무슨 큰일이라고 이렇게 울고불고 난리야.”“이 일을 퍼뜨릴 건 아니지? 사람들이 알게 되면 당신도 난감할 텐데?”서경희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지금 이 상황에서 그게 할 말이에요?”“뭘 잘했다고 매번 그렇게 당당해요? 우리한테 미안한 마음은 정말 조금도 없어요?”“내가 왜 미안해야 하지? 죽어도 나한테 시집오겠다고 매달린 사람이 당신이잖아. 당신이 아니었으면 난 진작에 여정이랑 결혼했을 거야.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해.”서경희는 충격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집안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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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다 나가요.”배준기의 목소리에는 싸늘함이 묻어 있었다.체면이 전부인 배지원은 기분이 많이 상한 듯 얼굴을 찌푸리며 병실을 떠났고 서경희는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어머니도 나가세요.”배준기의 말투는 조금 부드러워졌다.“준기야, 방금 그 말... 설마 기억이 떠오른 거야?”배준기는 차갑게 말했다.“맞아요. 어릴 때 기억이 떠올랐어요. 두 분이 끝없이 싸우던 그 기억...”서경희는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했다.“그건 네 아빠 잘못이야.”“그만해요. 심판설 생각 없어요. 피곤해서 쉬고 싶으니까 이만 나가주세요.”목소리에서 피곤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어린 시절의 배준기는 몇 번이고 서경희의 앞을 가로막으며 배지원과 맞섰다.하지만 매번 가장 먼저 등에 칼을 꽂는 사람 또한 서경희였기에 이제는 이런 상황에 지쳤다.서경희는 아들의 불만을 알아차렸고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해졌다.“넌 아직도 엄마가 결혼 반대하는 걸 원망하는 거니?”“이유를 모르겠어? 다 널 위해서 이러는 거잖아.”“만약 네 아빠한테 혼외 자식이 없었다면, 너의 자리를 탐내는 사람이 없었다면 결혼에 간섭할 생각은 단 한 순간도 하지 않았을 거야.”여전히 입 꾹 닫고 있는 배준기를 보며 서경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준기야, 돌아온 지 꽤 됐으니까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알 거라고 생각해.”“그 여자의 아들이 회사에 자리 잡은건 알지? 네 아빠의 전폭적인 지원까지 받고 있으니 조만간 네 자리를 위협할 거야.” “너는 사업을 위해서라도 급이 맞는 여자를 데려와야 해. 그래야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말이야.”배준기는 피식 웃었다.“아버지 같은 무능하고 비겁한 사람들만 여자를 이용해서 자리를 지키려고 해요.”서경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준기야, 아무리 그래도 네 아빠야.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혼외 자식에게 이득을 주는 꼴은 죽어도 지켜볼 수 없었기에 서경희는 부자 사이가 멀어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배준기는 그런 어머니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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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배준기는 눈빛이 어두워졌다. 거절하려 입을 열려던 찰나 서경희가 먼저 말을 꺼냈다.“싫다고 하기 전에 생각부터 좀 해.”“너희들을 괴롭히려고 하는 게 아니야. 너는 지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잖아.”“다현의 말만 듣고 이런 중요한 결정을 내리면 안 돼. 만약 걔가 말한 게 전부 거짓말이라면 어쩌려고?”서경희는 일부러 말을 잠깐 멈췄다.“배씨 가문의 미래를 책임질 사람의 아내가 사기꾼일 수는 없잖아.”배준기는 서경희를 바라보며 물었다.“어머니, 제 판단을 의심하는 건가요?”서경희는 한숨을 쉬며 답했다.“네가 사랑에 눈이 멀어서 이성을 잃을까 봐 걱정이야.”“결혼 전 계약서 하나 작성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니?”“기억이 돌아오고 나서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그 계약을 파기해도 돼. 그때는 나도 반대하지 않을게.”서경희는 한 번 더 양보했지만 배준기의 태도는 여전히 차가웠다.“어려운 일은 아니죠.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죠.”“왜 필요 없어?”서경희는 가슴이 답답해졌다.“너의 결혼은 수천억의 자산과도 연관되어 있어. 이게 네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니?”“설마 주다현이 오로지 사랑 하나만으로 널 선택했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어? 돈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어?”배준기는 눈에 담긴 감정을 숨기려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주다현이 그를 향해 달려오던 모습이 떠올랐다.그 장면이 너무도 강렬해서 아직까지 선명했고 생각할 때마다 좀처럼 심장을 통제할 수 없었다.“어머니, 만약 제 입장이 되어본다면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요트가 뒤집힐 것처럼 심하게 흔들렸어요. 갑판 위에 서 있던 저는 언제든지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바다에 빠질지 모르는 상황이었죠.”“그런 위험 속에서도 다현 씨를 저를 향해 달려왔어요. 날 위해서 목숨까지 내걸었다고요.”서경희는 잠시 입을 열지 못하고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주다현이 꾸며낸 계략일지도 모른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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