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hat ng Kabanata ng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Kabanata 351 - Kabanata 360

430 Kabanata

제351화

그는 온갖 말로 타이르며 설득했건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강세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할 말은 이것이 전부입니까?여봐라, 손님을 모셔 보내라.”“강 대인!”그는 두 사람을 더는 보지 않고 돌아섰다. 그의 눈동자에는 평소와는 다르게 냉담함만 남아있었다. 허튼소리뿐이었다. 정녕 어린 시절의 자신을 아이 취급하며 아무것도 모를 거라 여긴 것인가?시아가 여섯 살 이전의 기억을 잃은 이유가, 그 시절이 가장 어두웠기 때문이 아니고서야 무엇이겠는가? 어머니가 참혹하게 죽임을 당한 이유 또한, 맹 가가 체면이라는 이름으로 그녀를 버렸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제 와서 후계가 없다고 하다니. 웃기는 소리였다. 이것이 업보가 아니라면, 무엇이 업보라는 것인가?강세오는 문간에 서서 아직 깨어나지 않은 강시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녀의 옆모습은 어머니와 판박이인 수준이었다. 그는 어머니가 숨을 거두기 직전, 눈에 서려 있던 원망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 자신과 누이가 어떤 성을 쓰던지 상관없었다. 다만 그 성씨가 맹 이어서는 안될 뿐이다.앞마루에 있던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정중히 밖으로 모셔졌고 집안에는 고요가 찾아왔다. 연아는 주종현의 어깨에 기대 잠들어 있었다. 그 역시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문득, 작년에 황제가 자신에게 맹 노장군의 외손녀라는 신분을 강시아에게 덧씌우라 했던 일이 떠올랐다. 황제는 맹 가를 경성의 세가 다툼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속셈이었고 그는 당시 송 가와의 관계를 의식해 강시아를 노골적으로 감쌀 수 없었다. 맹 가의 이름을 달게 되면 송 가와 송하윤이 함부로 나서지 못하리라 여겼기에 그는 황제의 요구를 단번에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녀가 정말로 맹 노장군의 외손녀일 줄은 몰랐다.주종현은 딸을 더욱 꼭 끌어안았다. 그 순간, 하나의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황제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맹 가에는 후계가 없으니 강시아를 내세우면 맹 가와 주 가를 한데 묶을 수 있다. 그들은 황제의 제일 좋은 칼이 되어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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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2화

“조심해!”소휘의 말소리에 아람은 깜짝 놀랐다. 뒤에 주종현이 서 있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그대로 넘어질 뻔했다. 그녀가 다시 균형을 잡고 나서야 눈앞에 내밀려 있던 소휘의 손이 허공에서 물러났다. 주종현은 맞은편의 소휘를 경계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성왕 전하께서 새로 거느린 번병이 만여 명에 이른다 들었습니다. 그 규모는 임주 한왕에 필적하지요. 군영의 일로 바쁘실 텐데 이처럼 정현을 찾으실 한가함이 있으신지요?”소휘는 심중이 깊은 자였다. 병졸 하나 없이 경성을 나선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이미 계략으로 대규모 번병을 규합했으니 지금쯤이면 강 씨 남매가 맹 가의 후손이라는 사실마저 탐지했을 것이다. 지금은 맹 가의 서북대영을 손에 넣으려는 심산임이 분명했다. 주종현은 이를 악물었다. 이십만 대군이라니. 이것이 어디 한 명의 번왕이 감히 꿈꿀 수 있는 규모란 말인가? 소휘는 주종현의 눈에 스친 경계를 놓치지 않고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주 대인께서는 본왕에게 꽤 큰 불만이 있는 듯하군.”주종현은 눈빛을 낮추며 말했다.“전하께서 과히 염려하시는 겁니다. 저는 명을 받아 정현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지요. 요즘 현내에 공사가 시작되어 인파가 뒤섞이니 혹여 성왕 전하의 수레를 놀라게 할까 염려될 따름입니다.”그는 바깥을 힐끗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게다가 마차에는 미인도 기다리고 계신 듯하더군요. 새로 들이신 귀첩이라면, 혹여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건 좋지 않겠습니다.”문희가 첩으로 들어갔다는 말인가? 아람은 잠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문희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마음속의 뜻을 위해 세속의 틀을 부수고 나올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정작 경성을 벗어난 자신과는 달리 문희는 제 발로 성왕부로 걸어 들어간 것이었다. 소휘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웃었다.“귀첩이라니. 본왕의 눈에는 그저 하찮은 첩비일 뿐이다. 자발적으로 첩이 되겠다 한 순간부터 그녀의 과거는 아무런 값어치도 없어졌다.”아람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전하의 말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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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3화

쿵 하는 굉음과 함께, 낡은 장랑이 무너져 내렸다.“전하!”소휘의 수행 호위들이 황급히 달려들었지만 그들의 노력이 무색하게 소휘는 이마를 얻어맞았다. 아람은 창백해진 얼굴로 무너진 처마를 바라보았다.“여긴 더는 사람이 살 수 없겠어요.”집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 엄청난 소리에 놀라 뛰쳐나왔다. 막 잠들어 있던 복동이역시 놀라 울음을 터뜨릴 정도였다. 결국 현청 안에 있던 이들은 전부 밖으로 빠져나왔다. 강세오는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며 물었다.“다친 사람은 없습니까?”사람들은 서로를 살폈다. 모두 놀라기는 했지만 다행히 크게 다친 이는 없었다. 성왕부의 마차 안, 소휘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져 있었다. 문희는 숨도 크게 쉬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그의 이마 상처를 처리하고 있었다. 마차 밖에서는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모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누구 하나 마차 안에서 상처를 처리하고 있는 소휘를 관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강세오는 이미 폐허나 다름없는 현청을 바라보며 근심스러운 얼굴을 했다.“공부에 올려 조처를 받으려면 한 달은 족히 걸리겠구나.”주종현이 웃으며 말했다.“그리 급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공부에서 파견한 측량관들이 곧 도착할 터이니 현장에서 바로 살펴보고 결재를 받으면 됩니다. 그들이 직접 본다면야 비용 문제도 핑계로 미루지는 못할 겁니다.”강세오는 식솔을 데리고 선 누이를 힐끗 보았다.“괜찮다. 이 오라버니가 돈을 좀 모아 두었으니 이따가 집 하나 빌리면 되지.”“그럴 필요 없습니다. 제가 이미 집을 하나 빌려 두었습니다. 삼진짜리라 꽤 넓으니 제 쪽으로 오시면 됩니다.”주종현의 시선이 아람에게 잠시 머물렀다가 강세오에게로 옮겨졌다. 강세오의 중점은 다른 곳에 있었다.“집이 있으면서 왜 아직도 여기 눌러앉아 있는 것이냐?”주종현은 조금도 민망해하지 않았다.“빈집에 혼자 사는 게 무슨 재미가 있습니까? 역시 함께 사는 게 좋지요.”아람이 그를 흘겨보았다.“누가 당신 집에 간답니까? 저희는 저희 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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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4화

장 아주머니는 뒷부엌을 정리하고 있었고 아설과 아람은 방을 치우고 있었다. 집은 사람이 오래 머물지 않아 먼지가 조금 쌓였을 뿐 더럽지는 않았다. 아설은 아람을 한 번 힐끗 보았다.“언니, 세자께서 집까지 마련해 둔 걸 보면 꽤 오래 머무를 생각이신 것 같아요.”아람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빌린 집 하나 준비한 걸로 무슨 장기 계획이야? 게다가 임대료도 내가 한 푼도 빠짐없이 치를 거야. 그런 말은 더 하지 마. 나는 경성으로 돌아가지도 않을 거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아.”아설은 어깨를 으쓱하며 입술을 살짝 눌렀다.“언니, 화내지 마세요. 그냥… 요즘 세자께서 저렇게 신경 쓰는 모습이 낯설어서요. 예전 같지 않아서 혹시 언니도…”“신경을 쓴다고?”아람은 궤짝 뚜껑을 덮고 나서 고개를 돌려 아설을 바라보았다.“그 정도로 마음을 돌릴 수 있었다면 내가 그동안 겪은 고생은 다 헛수고라는 말이잖아.그리고 그가 어떻게 나오든 나는 여기 있을거야. 다른 이유는 없어. 오라버니가 있고, 너희가 있으니까, 내 집은 여기 뿐이야.”아람은 스스로도 주종현을 완전히 꿰뚫어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예전에도 그녀에게 상처를 주기 쉬운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어떤 남자에게 자신의 앞날을 걸 생각이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그녀는 입술을 다물었다가 가볍게 웃었다.“그는 결국 영국공부 세자야. 언젠가는 경성으로 돌아갈 사람이지 이곳에 남을 사람이 아니란다.”한때 그는 그녀를 이용했다. 그렇다면 이제 그녀가 조금 더 계산적으로 굴어도 될 일이다. 아람에게 남편은 없어도 괜찮았다. 그러나 연아의 아버지라는 신분은 필요했다. 세상은 험하고 연아의 인생은 아직 한참 남아 있으니 말이다. 죄책감을 품고 있으면서도 권세와 지위를 지닌 친부가 있다는 사실은 훗날 아이에게 훌륭한 방패가 될 수 있었다. 지금의 주종현은 경성에 있을 때보다 훨씬 아버지다웠다. 부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언젠가 연아에게 위험이 닥쳤을 때 이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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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5화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 하 가 저택 서쪽 담장 너머로 날렵한 그림자 하나가 단숨에 몸을 날렸다. 하연이가 착지하며 몸을 돌려 바라보니 열 걸음쯤 떨어진 곳에 아버지와 큰 오라버니가 서 있었다. 그 앞에는 십여 명의 관병이 일렬로 늘어서 그녀의 퇴로를 빈틈없이 막고 있었다. 하문정이 손을 들었다.“셋째 아가씨를 데려가거라.”하연은 몸에 메고 있던 보따리를 풀어내고 등 뒤에서 붉은 술이 달린 장창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두 손으로 창자루를 움켜쥔 채 뒤로 물러서며 땅을 긁어내자 발밑에 깊은 자국이 남았다. 몸은 이미 공격 자세였다.“누가 감히!”관병들은 잠시 머뭇거렸다. 모두가 하연과 한 번쯤은 맞붙어 본 이들이었다. 누구 하나 그녀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훈은 그런 누이를 안쓰러운 눈길로 한 번 바라보았다. 하문정이 차갑게 말했다.“함께 덤비거라.”전장에 서는 병사들은 모두 진검을 다뤄 온 자들이다. 하연의 홍영창이 휘둘러질 때마다 바람을 가르며 달려드는 관병들을 쓸어냈다.“아버지!”하훈은 누이보다 열여섯 살이나 위였다. 거의 자신의 손으로 키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연이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애지중지 기른 아이가 아닙니까? 지금은 잠시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을 뿐이지, 이렇게까지 하시면 아이 마음만 다치지 않겠습니까!”“연아!”그때 하 부인이 두 며느리를 데리고 황급히 달려왔다.“다들 그만둬라!”십여 명의 관병이 즉시 칼을 거두고 뒤로 물러섰다. 혼자라면 몰라도 여러 명이 동시에 달려드니 하연도 버티기가 어려웠다. 그들 역시 진심으로 그녀를 다치게 할 생각은 없었다. 하 부인의 등장은 그야말로 때맞춘 단비였다. 하연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고 그녀는 이를 악문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하 부인은 눈물이 그렁그렁해져 소리쳤다.“하문정! 연이가 손가락 하나라도 다친다면 당신은 이 집에 발을 들일 생각도 하지 마세요!”“다 네가 버릇없이 키운 탓이다!”하 장군은 화가 나 손을 치켜들었다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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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6화

“그는 결코 고루한 선비 같은 사람이 아니야!”하연은 참지 못하고 입가에 웃음을 걸었다.“재주야 말할 것도 없고, 얼굴도 반듯해서 보는 사람 눈길을 사로잡는 사람이라구.”하주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대체 어떤 사내길래, 평소 글이라곤 가까이도 하지 않던 네가 이렇게 술술 말을 늘어놓게 만든 건지.”하연은 그대로 발을 들어 그의 발등을 밟았다.“놀리지 말라고 했지! 내가 시집을 가든 말든, 오라버니가 장가를 가야 하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아!”하주는 말없이 입을 다물고는 품에서 초청장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자, 이거 봐.”주둔지 자사의 집에서 여는 손자의 만월연 초청장이었다.“이게 무슨 뜻이야?”하연은 초청장을 다시 던져주며 말했다.“난 안 가.”하주가 낮게 혀를 찼다.“네가 둔한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하연이 금세 발끈하려 하자 그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그날은 부모님도, 두 형님과 형수들도 전부 집에 없잖아. 그럼 너도 당당하게 나갈 수 있지. 밤마다 담을 넘나들지 말고. 그러다 귀신이라도 마주치겠어.”하연은 평소에도 믿음직하지 않은 셋째 오라버니를 노려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설마 나를 팔아넘기지는 않겠지?”하주는 초청장으로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툭 쳤다.“나는 네 오라버니지 원수가 아니야.”그제야 하연의 눈이 반달처럼 휘어졌다.“고마워요, 셋째 오라버니!”하주는 손가락을 가볍게 흔들었다.“내 누이잖아. 네 편을 안 들면 누구 편을 들겠어.”마침 하 부인도 남편과의 언쟁을 끝내고 셋째 아들을 흘끗 바라보았다. 하주는 팔짱을 끼고, 오른손으로 팔을 두 번 가볍게 두드렸다. 하연은 오로지 부모님이 연회에 나서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셋째 오라버니가 자신의 이름을 내세워 어머니와 두 형수에게서 적잖은 돈을 받아내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연이는 어릴 적부터 고집이 셌잖아요. 이렇게 달래 주지 않으면 언제 어디로 도망갈지 모릅니다. 그땐 이미 늦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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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7화

두 필의 말이 빗속을 가르며 달려왔다. 그의 시선은 앞서 달리던 흰 말 위의 인물에게 멈췄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등 뒤에 멘 붉은 술이 달린 장창만은 또렷이 보였다. 하연은 말에서 내려 도롱이를 풀어 던지고 온몸에 빗물을 머금은 채 불과 두 달 만에 그녀를 그리움에 앓게 만든 사내를 향해 달려갔다.“책벌레!”강세오의 먹빛 눈동자에 별처럼 잔잔한 빛이 스치더니 등 뒤로 모아 두었던 손도 자연스레 앞으로 나왔다. 하연은 활짝 웃으며 그대로 마음속에 담아 둔 사람에게 뛰어들 듯 달려갔다.“에헴.”세 걸음쯤 남겨두었을 때, 누군가 그녀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순간 숨이 막혀 눈앞이 핑 돌았다.“하주! 나 죽이려고 작정했어?”하연은 분노로 얼굴을 붉히며 셋째 오라버니를 노려보았다. 오는 내내 따라다닌 것도 모자라 어머니와 형수들이 그렇게나 챙겨 준 돈을 단 한 푼도 나눠 주지 않아 옷 한 벌 새로 장만할 여유조차 없었다. 하주는 그녀의 옷깃을 잡아 뒤로 끌어당겼다.“부모님 곁을 벗어났다고 마음대로 해도 되는 줄 아느냐?”“이미 했거든.”하연은 작게 중얼거렸다. 강세오는 두 사람의 닮은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공손히 두 손을 모았다.“하 공자, 하 아가씨.”하주는 그제야 손을 놓았다.“그대가 우리 연이의 혼을 쏙 빼놓은 그 강 대인입니까?”강세오의 귀끝이 붉어지더니 다시 한 번 예를 갖췄다.“하 공자. 하 아가씨는 성정이 솔직하고 당당한 분입니다. 저 역시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가문도 미천하니 아가씨와는 차이가 크지요. 그러하여 반년의 약속을 정했습니다. 그때까지 마음이 변치 않는다면 정식으로 혼담을 올리고자 합니다.”하주가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혼담이라. 무엇으로 올릴 생각입니까? 권세도 없고 재물도 없으시잖아요. 경성의 세가 자제들과 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하연이 즉시 앞으로 나섰다.“셋째 오라버니, 왜 이래! 출신이야 별로라 하지만 신과를 급제한 장원이라고. 오라버니야말로 아직 아무것도 아니잖아. 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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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8화

정현에는 비가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끊이지 않는 장마가 하늘을 잿빛으로 눌러 담아, 숨조차 막히는 듯한 답답함을 드리웠다. 임차한 논에는 막 다시 심어 놓은 모가 이미 물에 잠겨 있었고, 그녀의 임차지뿐 아니라 농가들의 논밭 또한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아람은 우산을 받쳐 든 채 끝없이 이어지는 회색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음까지 함께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돈은 전부 이 땅에 묻혀 있었다. 이 비가 멈추지 않아 혹여 홍수라도 나게 된다면 그간의 수고와 자금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터였다.“아 마님!”석 포두의 칠백부가 짚신을 신고 도롱이를 걸친 채 논에서 달려 나왔다. 그는 얼굴에 흐르는 빗물을 훔치며 다급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아 마님, 이제야 오셨군요. 지금 논에 물이 너무 많습니다. 논두렁을 터서 물을 빼야 합니다. 마님의 임차지는 지대가 낮아, 지금 손보지 않으면 모가 전부 상할 겁니다.”그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벼는 물에서 자라지만 물이 지나쳐도 모가 썩습니다. 나중에 이삭이 맺히는 데도 큰 탈이 나구요.”아람은 직접 농사를 지어 본 적은 없었지만, 어릴 적부터 이런 광경은 수없이 보아 왔다. 논은 늘 물을 가두기도 하고, 때에 맞춰 빼내기도 해야 하는 법이었다. “석 백부, 걱정 마세요. 이미 사람을 보내 손을 쓰고 있습니다. 비가 그치면 도랑을 정비해서 앞으로는 물을 바로 배수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그러나 석 백부의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마님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지금은 배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늘의 문제지요. 이 비가 더 이어지면, 이번 철 수확은 모조리 망할 수도 있습니다.”농사란 늘 두려움과 함께였다. 비가 많아도 걱정이고, 가물어도 걱정이었으며, 벌레가 들끓어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 모든 고비를 넘겨 어렵사리 풍년을 맞이하면 이번에는 탐관오리와 간상인들을 걱정해야 했다. 한 해 내내 땀을 흘리고, 한 해 내내 마음을 졸여야 하는 삶이었다.아람의 미간도 깊게 찌푸려졌다. 지금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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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9화

“정현은 큰 물줄기의 중심은 아니나 하도가 제대로 손질되지 않아 배수 능력이 떨어집니다. 결국 수해를 입을지 말지는 하늘이 돕느냐에 달린 셈이지요.”강세오가 그를 바라보았다.“하 공자께서는 수리에도 밝으십니까?”하주는 고개를 저었다.“저는 그저 일개 무인일 뿐입니다. 잡서를 조금 읽었을 뿐이지, 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그때 하연이 뒤에서 그의 옷깃을 잡아 몇 걸음 끌어당겼다.“모르면 말하지 마. 풍한도 아직 낫지 않았으면서 얌전히 누워 있기나 하지. 괜히 나서서 난리나 만들고.”하주는 누이의 이마를 가볍게 튕겼다.“말대꾸 한 번 더 하면 지금 당장 잡아서 집으로 끌고 간다?”하연은 그제야 입을 다물고 못마땅한 얼굴로 물러섰다.하주는 다시 말을 이었다.“열다섯 해 전, 수십만 명이 피해를 본 대홍수는 실상 한 무능한 관리의 잘못된 판단에서 비롯됐습니다. 그 한 번의 결정으로 다섯 개의 주와 서른 개의 현이 물에 잠겼지요. 그러니 지금 상황은 강 대인 한 분이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아람은 이런 일에는 밝지 않았지만 조정에서 하천을 파고 둑을 쌓으라는 명을 내렸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그렇다면 정현에 둑을 쌓으면 이후는 홍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요?”하주가 웃음을 지었다.“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둑을 쌓은 뒤, 혹 열다섯 해 전과 같은 대홍수가 나면, 정현이 잠기는 대가로 하류에 있는 큰 주부들을 지키게 됩니다.”하연이 벌떡 일어났다.“정현은 너무 허술한 곳 아니야? 쌓아도 잠기고, 안 쌓아도 잠기면, 여기서 어떻게 업정을 쌓으라는 거야?”강세오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작은 곳을 희생해 큰 곳을 지키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설령 잠기더라도 미리 백성을 대피시키면 됩니다. 게다가 하 공자도 말했듯이 그런 규모의 대홍수는 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지요. 정현에 둑을 쌓으면 가뭄 때는 물을 저장할 수 있고, 평소에는 농지에 물을 대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러니 백성에게 이로운 일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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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0화

모든 논두렁에는 하나씩 물을 빼는 틈이 있었다. 빗물이 넘치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도록 만든 배수구였다. 복이 삼촌의 논에는 분명히 그 틈이 열려 있었지만 바로 맞닿은 임차 논에는 아무런 구멍도 나 있지 않았다.“흥, 내가 일찍 와서 본 게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어도 네 사람들이 와서 물을 다 빼놨을 거다. 그러면 이 손해는 전부 내가 뒤집어썼겠지!”복이 삼촌은 분을 참지 못하고 괭이를 땅에 내리쳤다. 비에 젖은 흙은 워낙 물러, 괭이가 박힌 자리에는 큼지막한 웅덩이가 그대로 패였다. 아람은 몸을 낮춰 흙을 짚어 보았다. 큰비가 막 지나간 뒤라 수분이 가득 머금어져 있었고 손가락이 들어갈 만큼 부드러웠다.다른 논두렁의 배수구들도 똑같았다. 열흘 가까이 이어진 빗물에 씻겨 가장자리는 매끈했고 인위적으로 파낸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모습을 확인한 복이 삼촌이 코웃음을 쳤다. “내 논은 복이 드는 땅이라 한 해에 쌀 세 섬은 거뜬히 납니다. 한데 이제는 모가 다 잠겨 버려 다시 심을 틈도 없으니 삼 마지기 몫으로 은 아홉 냥은 받아야 할 것입니다.”아설이 앞으로 나서며 목소리를 높였다.“어디서 그런 터무니없는 소리를 합니까! 당신 논이 남들 것보다 크기라도 합니까? 한 마지기에 많아야 두 섬이 나오는 게 보통입니다. 게다가 요즘 시세가 한 섬에 팔백 문인데, 무슨 쌀이 그렇게 귀해서 섬당 한 냥이나 받는 것입니까?”복이 삼촌은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지금 이 판에서는 자신이 명백한 피해자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 참 재미있는 아가씨네. 우리 집 논에서 벼를 심어 본 것도 아니면서 얼마나 나오는지 어떻게 압니까?”아설이 웃으며 맞받았다.“논을 심어 본 적은 없어도 당신네 집 쌀은 제가 직접 사 갔으니 얼마를 팔았고, 얼마를 받았는지 장부만 들추면 다 나옵니다!”복이 삼촌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으나 이내 목을 빳빳이 세우고 소리를 높였다. “쌀을 적게 팔았다고 해서 적게 난다는 소리는 아니지 않습니까! 식구도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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