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371 - チャプター 380

430 チャプター

제371화

그녀는 먼저 복이 삼촌을 가리켰고, 이어 내일 친정으로 돌아가 사실을 알리겠다고 나선 그 아주머니를 가리켰다.“혼사를 깨뜨린 결과를 감당하기 싫으니, 그 모든 책임을 제게 미루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제 소작지에서 난 손해는 저자의 탐욕이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끝내 그 결과까지 제 몫으로 돌리려 하시는군요.”경성에 있을 때도 그랬다. 그녀는 송하윤의 질투와 살의를 감당해야 했고, 주 가와 송 가의 다툼 속에서 조악한 구실로 소비되었다. 단지 그녀에게 권세가 없고, 기댈 곳도 없고, 맞서 싸울 힘도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런데 정현에 와서까지 남들의 악행이 남긴 결과를 또다시 그녀가 감당해야 한다니. 사람이 착하면, 으레 만만해지는 법이었다. 복이 삼촌이 그녀를 힐끗 보며,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동가 부인 같은 분은 이렇게 큰 장사를 하시는데, 은전 아홉 냥쯤이야 손가락 사이로 빠지는 찻값 아니겠습니까. 설마 그 정도도 품지 못하실 줄은 몰랐습니다.”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사는 백성들이었다. 그의 이 말은, 순식간에 아람을 모두의 적으로 돌린 셈이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곧바로 조 가 집안이 떠올랐다. 조 가에서 사들이지 않으면, 감히 다른 곳에 팔 엄두도 내지 못했다. 큰 말로 곡식을 받아, 얼마나 많은 해를 백성들에게 입혔던가. 이제는 조 가 대신 아람 상행이 들어섰다 하지만, 다를 거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곡식을 낼 때는 큰 말을 쓰고, 돈은 한 되 값만 치르는 것이 대두출이었다. 그 사이에서 사라진 곡식은 조 가가 수년간 백성의 피를 빨아 모은 것이었다. 세금을 거둘 때는 작은 말을 썼다. 겉으로는 한 되라 했지만, 창고에 들어간 것은 그보다 훨씬 적었다. 남은 몫은 기록에도 남지 않은 채, 탐관의 손으로 흘러들어 갔다. 정현은 하도 관리가 좋았기에 큰 말로 백성들의 곡식 세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겨우겨우 조 씨네를 몰아낸 셈이기도 했다. 그때 한 농부가 소리쳤다.“당신네가 쓰는 큰 말로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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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2화

“그래요. 많이 사 와요. 아이들도 좋아하잖아요.”그가 몸을 돌리자, 위심과 아설이 나란히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쪽은 사근사근하게 수줍은 기색이었고, 다른 한쪽 역시 쑥스러웠는지 말없이 웃기만 했다. 서로의 눈에는 상대만이 담겨 있었고, 말 한마디, 몸짓 하나하나에 감정이 배어 있었다. 주종현의 가슴이 괜히 더 시큰해졌다. 막 그들을 부르려던 순간, 두 사람은 등을 돌려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앞쪽에 새로 연 냉차 노점이 있다던데, 다른 데보다 훨씬 시원하고 맛있다고 합니다.”“언니랑 세자님도 부를까요?”“아 마님은 많이 피곤해 보였습니다. 쉬게 두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세자님도 이런 건 즐기지 않으시니 괜히 번거롭게 하지 않는 것이 낫겠습니다.”두 사람의 뒷모습은 점점 멀어졌다.“…”즐기는지 즐기지 않는지 물어보기라도 하고 갈 일이지. 혹여라도 즐기면 어쩌려고 저러는 것인지. 저 둘은 기쁜지 시시덕거리며 떠났고, 집에 남은 사람은 그를 상대하기조차 싫어했다. 넓적한 마당 안에는 휑하니 비어 있었다. 담장 아래 비스듬히 자란 나무 위에는 그네 하나가 매달려 있었고, 아람이 그 위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고,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문득 예전의 작은 마당이 떠올랐다. 아담한 뜰에는 봄기운이 가득했고, 콩뼈의 경쾌한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주종현은 천천히 마음을 가라앉혔다.이튿날, 사람들이 모두 외출한 뒤, 그는 목수를 불러들였다. 넓은 마당 한가운데에 정자를 세워 뜰을 둘로 나누고는 화원을 불러 왼쪽에는 작은 화단을 옮겨 심고, 오른쪽은 청석으로 단단히 다졌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다니는 데 방해되지 않게 하면서도, 정자에서는 꽃을 보고 술을 마실 수 있도록 꾸민 것이었다. 작은 저택 안에는 하루 종일 연장이 부딪히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정오 무렵, 하주는 잠시 쉬러 돌아왔다가 어지럽게 변한 마당을 보고 물었다.“주 대인은 정원을 새로 손보실 생각이십니까?”주종현은 직접 삽을 들고 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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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3화

정자는 지은 그날부터 곧장 쓰임새를 드러냈다. 해가 기울고 나자 뜰 안에는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고, 꽃내음이 은은히 스며들어 답답한 방 안보다 훨씬 상쾌했다. 연아와 수주, 수련은 큰 나무 아래 매달린 그네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주종현은 얼음 장수한테서 얼음을 사 와 미리 과일을 얼려 두었고, 얼음으로 단유를 만들어 두기까지 했다. 차가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얼음그릇들이 하나둘 내어오자, 하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름철 얼음은 금값이나 다름없었다.“주 대인, 정자에 화단까지 모자라 얼음 음료까지라니, 주머니가 꽤 두툼하신 모양입니다. 밤이면 방 안도 무척 더운데, 얼음을 좀 더 사다 두지 그럽니까?”하연은 입을 열자마자 주종현을 슬쩍 비꼬았다. 아설은 차갑게 식은 얼음그릇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고개를 저었다.“그건 됐어요. 먹기도 아까운 걸 방에다 두다니요. 은자가 물처럼 녹아내린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차라리 더운 게 낫죠.”하연이 그녀의 등을 툭 찔렀다.“네 돈도 아닌데 왜 그래.”주종현은 하연의 적의를 이제는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람이 그에게 냉담한 날이 이어지는 한, 하연의 적의 또한 사그라들 리 없었다. 그는 머리를 들어 아람을 바라보았지만, 아람은 그를 볼 생각조차 없었다. 그저 손을 들어서는 놀고 있던 아이들을 향해 가볍게 손짓하며 불렀다.“이리 오렴.”연아는 땀으로 머리가 흠뻑 젖어 있었고, 키도 지난해보다 훌쩍 자라 있었다.“얼음 단유다!”그녀는 돌아서서 정자 밖에 서 있던 수주와 수련의 손을 끌어당겼다.“빨리 와요. 어머니가 같이 먹으래요!”정자가 있어서였는지, 그날 밤은 모두가 좀처럼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서로 얼굴을 트기조차 어려웠을지도 모르는 사이였건만, 지금은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침내 연아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어머니 품에 파고들었고, 눈을 붙이자마자 깊이 잠들었다. 주종현은 회랑 아래에 서서, 하루 종일 손수 꾸민 뜰을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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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4화

“신분을 바꾸기만 하면, 맹 장군의 손에서는 쓰기 좋은 장기말 하나가 될 수 있어. 마치 예전에 네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아람은 입술을 꼭 다물었다. 눈빛 역시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그 말은, 한 번 이용한 것으로는 모자라서 다시 한 번 더 이용하겠다는 뜻인가요”주종현은 그녀가 오해했음을 알아차리고 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나는 한 번도 너를 이용한 적 없어. 경성에 있을 때 너를 그 일에 끌어들인 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었어. 하지만 이번에는 너를 지키고 싶어.”“지킨다고요?”아람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 말은 이미 한 번 들어봤어요. 여러 번 들으니 이제는 별 의미도 없네요.”주종현의 눈동자에 고통이 스쳤다. 한참을 침묵한 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시아, 나는 한 말은 반드시 지킨다. 맹 장군이 거느린 이십만 병권은, 본래 조정에서 서로 편으로 삼으려 드는 대상이야. 맹 가에는 후계가 없고, 강세오는 경성으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으니 맹 장군이 그를 그냥 두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너 역시 마찬가지야.”아람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그럼 당신은요? 당신도 무장이고, 금군을 거느리고 있잖아요. 저를 매개로 맹 가를 끌어안을 생각은 없어요?”주종현은 고개를 저었다.“금군과 서북영이 연결되는 건, 폐하께서 결코 허락하지 않으실 일이야. 적어도 내 곁에 있으면, 너는 맹 가의 장기말이 되지 않아도 된단 말이다.”아람은 그 말이 우스웠다.“예전에 나에게 맹 가의 후손이라는 신분을 덮어씌운 것도 당신이잖아요. 국공부에서는 적잖은 하사까지 내렸고, 나를 사당에 올릴 귀한 첩으로 삼겠다고도 했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는, 맹 가의 사람이 되는 순간 장기말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도 당신이에요.”“시아,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주종현은 차분하게 설명하려 애썼다.“경성은 뿌리가 너무 깊어. 줄기를 베어도, 숨은 가지들이 남아 있어. 경성 밖에서는 맹 가와 하 가가 모두 중병을 쥐고 있지. 특히 맹 노장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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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5화

지금은 막 곡식 창고에 새 곡식이 들어와야 할 시기였다. 그런데도 새쌀이 전혀 입고되지 않고 있었다.“어찌 된 일이에요?”아람은 장부에서 고개를 들었다. 제 아저씨가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창고에 들어온 새쌀은 임대지에서 거둔 수확까지 합쳐서 겨우 열세 석입니다. 임대지 주변 마을들에서도 아예 곡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임대지 주위라…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법했다. 아람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그럼 그쪽은 신경 쓰지 말아요. 전에 능현에서 농가 몇 곳과 이야기해 둔 게 있잖아요. 아저씨가 사람들을 데리고 한 번 다녀오세요.”제 아저씨는 무언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아람이 이미 다시 장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아람은 다른 장부 하나를 펼쳤다. 그녀가 따로 관리하고 있는 사계장이었다. 그녀는 소휘의 돈으로 자신만의 일을 할 생각이었다. 소휘는 줄곧 노골적으로든 은근히든 그녀에게 약재 상단을 열라고 재촉해 왔다. 진정으로 소휘의 상행 관사가 될 마음은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루어왔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약재 장사가 아닌 선박 운송에 눈독을 들였다. 하천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현재, 정현과 능현, 우주와 임주가 모두 물길로 이어지게 된다면 경성으로 올라가는 길도,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도 막힘없이 열릴 터였다. 여객선이든, 화물선이든, 상선이든 모두 절호의 기회였다. 선박 운송만큼은 절대 소휘의 손을 타게 둘 수 없었다.“언니.”장부를 덮고 고개를 들자 볼이 잔뜩 부은 아설이 앞에 서있었다.“또 누가 널 화나게 했니?”아설은 아람의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저 사람들은 정말이지 은혜를 원수로 갚아요. 작년에 누가 그 곡식들을 다 받아줬는데요! 지금은 곡식을 돼지 먹이로 주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한테는 안 팔겠대요.”아람은 다시 장부를 펼치며 말했다.“방금 제 아저씨가 와서 나하고 말했어. 능현 쪽으로 사람을 보냈으니 괜찮아. 곡식이야집집마다 다 심는 건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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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6화

아람이 곡물상에서 돌아왔을 때 달은 이미 나뭇가지 끝에 걸려 있었다. 요즈음 그녀는 정말이지 발에 땅이 닿지 않을 정도로 바빴다. 하지만 일부러 피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뜰은 이미 말끔히 정돈되어 있었고, 밤공기에는 꽃내음이 달게 퍼져 있었다. 공중에는 은근한 고기 냄새도 섞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정자 안에 숯불이 피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하주는 술에 잔뜩 취해 있었고, 강세오와 하연이 양옆에서 그를 부축하고 있었다.“우리 셋째 오라버니도 술이 약한 편은 아닌데, 그렇게 마셔놓고 너는 멀쩡하네?”하연은 키가 아람보다도 반 뼘은 더 컸지만 그녀의 셋째 오라버니 앞에서는 여전히 힘에 부쳤다. 그녀는 하주를 질질 끌다시피 하면서, 다리가 정자 계단에 그대로 끌려 내려오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강세오를 보며 말했다.“너, 천 잔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 거야?”강세오가 답했다.“술을 거의 마시지 않아서, 취하는지 어떤지도 아직 모르겠소.”하연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도움이 되지도 않는 오라버니가 책벌레를 술로 눕혀버리겠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자기 혼자 꽐라가 되고 만 것이다.“…그럼 제일 많이 마셔본 게 얼마야?”강세오가 잠시 생각했다.“방이 나오는 날이었소. 초주에서 온 응시생 열댓 명이 함께였는데, 다들 쓰러졌고, 나도 살짝 어지러웠지.”하연은 다리가 풀릴 뻔했다.“…열댓 명이서, 도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일곱여덟 항아리였나, 여덟아홉이었나. 기억은 안 나오.”“앞으로 누구랑 마셔도 너랑은 절대 안 마신다.”“마시면 안 되오.”“알았어, 너랑 안 마셔.”“누구랑도 마시면 안 되오.”“책벌레, 아직 혼례도 안 했는데 벌써 간섭질이야?”세 사람의 모습은 점점 멀어졌고, 말소리도 함께 희미해졌다. 정자 안에서는 고기 굽는 냄새가 짙게 퍼지고 있었다. 그 냄새를 맡자, 아람도 살짝 배가 고파왔다.“안 먹을 거면, 남은 건 다 내 배로 들어가겠네.”이런 방식은 그녀도 영국공부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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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7화

주종현이 바라본 그녀의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가득했고, 틀어 올린 머리도 흐트러져 있었다. 몸에서는 술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데다가 품에는 큼지막한 술 항아리를 안고 있었다. 손에는 아직 다 익지 않은 구운 고기까지 들고 있었다. 대체 어느 만큼 취했기에 이런 꼴이 된 것인지.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고기를 받아서는 말했다.“아직 덜 익었구나. 내가 구워주마.”아람도 차차 술기운이 올라왔는지라 약간 어지러우면서도 어딘가 정신만은 또렷한 상태였다.“너는… 히끅.”입을 여는 순간 술 트림밖에 나오지 않았다. 주종현은 노을처럼 붉게 물든 그녀의 얼굴을 힐끗 보고는 다 구워진 고기 꼬치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영국공부에는 규칙이 많아서, 이렇게 고기를 크게 씹으며 술을 들이켜는 일은 해 본 적이 없었지. 그런데 여기서는 오히려 아무 거리낌이 없구나.”그의 손에 들린 고기 꼬치에서 기름이 자글자글 배어 나오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절로 나고 말았다. 아람은 거절하려던 말을 되레 삼켜 버렸다. 다른 건 몰라도 배를 굶을 수는 없었다. 오라버니라면 절대 이런 일은 해 주지 않았을 터였다. 하 씨네 남매가 어디서 구해 왔는지 모를 양념은 고기에 전혀 다른 풍미를 더하고 있었다. 연아가 잠들어 있지 않았다면, 분명 배가 터질 때까지 손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경성을 떠난 지도 어느덧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아이는 키도 훌쩍 자랐고, 몸도 눈에 띄게 단단해졌으며, 성격도 한층 거칠어졌다. 전생의 이맘때, 연아는 겁이 많고 내향적인데다가 몸은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듯 말라 있었다. 지금의 연아는 규수다운 단정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것이야말로 아람이 가장 보고 싶었던 모습이었다. 고기 한 꼬치를 다 먹고 나자, 목 안쪽을 태우던 열기가 그제야 가라앉았다. 주종현은 그녀가 다 먹은 것을 보자마자, 쉼 없이 다음 꼬치를 건넸다.“맛이 괜찮느냐? 신무후네 둘째 공자는 미식가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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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8화

그녀가 애교 가득한 목소리로 외숙모라고 부를 때마다 하연은 얼굴이 환하게 풀렸다.고기든 닭다리든, 하연은 남의 손을 빌리지도 않고 직접 불 앞에 서서는 구웠다. 아람은 딸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경성의 일들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조금쯤은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중 그녀를 이렇게 밝게 웃게 할 수 있는 일들은 그 작은 뒤뜰뿐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 이곳에서는 모두가 아이를 아끼고 보살피고 있었다. 그러니 괜찮았다.주종현은 먼지투성이가 된 채 말에서 내려섰다. 숨을 돌릴 틈도 없었지만, 늘 문 앞에서 그를 맞이하던 콩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콩뼈는 어디 있느냐.”관사는 세자가 돌아오자마자 개부터 찾을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그, 그 개는….”주종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내쫓았느냐.”관리인은 고개를 떨구었다.“귀인을 놀라게 해서, 국공께서 사람을 시켜 때려 죽이셨습니다…”주종현의 얼굴이 그 말에 순간 새하얘졌다. 콩뼈는 몹시 얌전한 개였다. 늘 그에게만 달라붙었고, 작은 뜰 안에서만 먹이를 먹었으며, 밖에서 함부로 짖는 법도 없었다. 그런 개가 어찌 귀인을 놀라게 했다는 말인가. 그가 마음속에 그려 두었던, 모두가 함께 모이는 장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다. 연아가 슬퍼하는 모습이 저절로 머릿속에 떠올랐고, 강시아가 다시는 자신과 말을 섞어 주지 않지는 않을지, 모든것이 걱정되었다. 관사 역시 이 개가 주종현이 연아를 위해 직접 사 온 것임을 알고 있었다. 강시아와 연아가 떠난 뒤로는 늘 개를 통해 그들을 그리고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세자가 그렇게 애지중지 하던 개는 그가 경성을 떠난 지 몇 달도 채 되지 않아 죽고 말아버린 것이다.“현아가 돌아왔구나.”마침 국공의 마차가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린 그는 햇볕에 그을린 아들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국공은 큰 부인의 병세가 위급하다고 급히 편지를 쓴 사람 치고는 너무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아버지, 조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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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9화

송하윤이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 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단정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고조모께서 종현 오라버니께서 이미 도착하셨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지금 송학당에서 기다리고 계세요.”송하윤은 그 자리에 단아하게 서 있었다. 아람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의아함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한때는 오만방자하고 무례했던 송 가의 아가씨가 지금은 아예 다른 사람이 된 듯했기 때문이다. 주종현은 그녀를 보지도, 대답하지도 않았다. 그저 여전히 그의 고삐를 붙잡고 있는 국공을 바라보며 말했다.“아버지, 잊지 마십시오. 폐하 곁에 꼭 주종현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황제가 경성을 숙청하며 베어 낸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만큼 끌어올린 사람도 많았다. 새로 떠오른 귀인 역시 누구나 될 수 있는 것이다. 국공의 눈빛이 순간 흔들리더니 고삐를 붙잡고 있던 손에도 힘이 풀렸다. 주종현은 입경한 지 고작 두 각만에 집 안에 발도 들이지 않은 채 다시 떠났다. 국공은 그런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서서히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강 씨와 연아가 죽은 뒤로 그는 점점 더 말이 없어졌다. 아들은 그가 마음속으로 그려 왔던 모습대로 자라 주었지만, 그만큼 그들로부터도 멀어져 갔다. 그는 고개를 돌려 아직 문 앞에 서 있는 송하윤을 보았다.“누가 나오라고 했느냐!”그는 하마터면 며느리가 될 뻔했던 송하윤한테 조금의 좋은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가 기어코 송하윤을 감싸주지 않았더라면 영국공부에 그녀의 자리가 있을 리는 없었다. 송하윤은 몸을 낮춰 공손히 예를 올렸다.“고조모께서 종현 오라버니를 오래 그리워하셨습니다. 몸이 이제 막 회복되신 터라, 혹 기다리시다 마음 쓰실까 염려되어서요.”국공은 소매를 거칠게 털었다.“여기에 네 오라버니는 없다. 앞으로는 다른 이들처럼 세자라 불러라.”송하윤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조금 더 허리를 숙여 말했다.“알겠습니다.”국공은 더는 그녀를 보지 않고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송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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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0화

“저도 콩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대인께서 경성에 계시지 않는 동안은 제가 데리고 키우고 있었습니다. 다만 이 다리가 문제라서, 조금만 오래 뛰면 떨리곤 합니다.”콩뼈는 마치 두 사람을 위로라도 하듯, 먼저 계소만의 손을 핥고는 고개를 돌려 주종현의 손도 한 번 더 핥았다. 주종현은 그런 콩뼈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그럼 나랑 같이 가자. 연아가 너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다.”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콩뼈는 고개를 쳐들고 연달아 크게 짖어댔다. 주종현은 반짝이는 그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가자. 연아를 만나러 가자.”그는 천 조각 하나로 콩뼈를 몸에 단단히 묶었다. 경성에 들어온 지 한 시각도 되지 않아 주종현은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다시 떠났다.황성 안.황제는 막 황후의 침전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전각 앞에는 봉의전 상하의 궁인 마흔여 명이 꿇어앉아 몸을 떨며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황후가 유산했다. 황제의 첫 번째 혈육이나 다름없었다.“모두 죽여라.”황제는 낮은 목소리로 단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 순간 봉의전 안팎에서 울음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그는 돌아서며 황후 곁을 지키던 그녀의 심복 여관을 바라보았다.“너도 포함이다.”여관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고, 얼굴은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황제가 주먹 잡아 가린 목 안쪽에서 짧은 기침이 몇 차례 새어 나오자 전 내관이 즉시 앞으로 나서 그를 부축했다. 폐하를 실은 가마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봉의전을 막 벗어나자 전 내관이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곧바로 금위군 한 대열이 들이닥치더니 비명이 길게 이어질 시간도 없이 봉의전에 있던 모두가 몰살당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첫 혈육을 잃은 제왕이 분노에 휩싸인 듯했으나 실은 황후의 추문을 묻기 위함이었다. 전 내관마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등골이 서늘해지며 식은땀을 흘렸다. 자신조차 한 줄의 풍문도 듣지 못하였을 때, 황제는 황후가 대응할 틈조차 주지 않고서는 사람들을 모조리 없애 버린 것이었다.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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