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Chapter 841 - Chapter 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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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1화

“지난번에 마님께서 입부하신 뒤로, 큰 마님의 몸 상태가 점점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시고요. 이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마님께서 지니신 흉한 기운이 큰 마님의 복과 장수를 누릴 운과 서로 충돌하여 상극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주변에서 일제히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그래서였군…”“그러니까요. 큰 마님께서 원래 그렇게 강건하셨는데 어째서 갑자기…”문간에 서 있던 맹시은의 귀로 수군거림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그녀는 가만히 손을 뻗어 주종현의 소매를 붙잡았다.“주종현.”낮게 부르는 음성에는 아무런 감정의 결도 실려 있지 않았다.주종현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평온하기 그지없는 얼굴, 맑고 투명한 눈동자에는 억울함도, 분노도 없었다. 그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차분한 고요만이 담겨 있었다.“효가 먼저이고 조모님이 우선입니다.”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조모님께서 위중하시니 먼저 들어가세요. 제가 들어갈 수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그녀의 말은 이치에 맞았고 빈틈이 없었다.주종현의 효심을 온전히 세워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힌 말이었다.주종현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 밑에서 감정이 거칠게 요동쳤다.안타까움, 분노, 자책…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밀려와 그를 집어삼킬 듯했다.그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오로지 자신을 위해, 이 온 집안의 칼날과 창끝을 홀로 감당하려 한다는 것을.그의 목울대가 크게 요동쳤다.“이건 네가 감당할 일이 아니다. 소만에게 시켜 널 데려다주게 하겠다.”맹시은은 고개를 저었다.“기다릴게요.”지금 온 경성이 이곳을 주시하고 있다.대성조는 효를 근본으로 나라를 다스린다.이 자리에서 그녀가 돌아서 버린다면, 내일 주종현을 탄핵하는 상소가 하늘을 뒤덮을 것이다.그러니 맹시은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문밖에서 잠시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그 정도조차 견디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다시 한 번 그를 가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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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2화

붓과 먹, 종이와 벼루까지, 필요한 것은 이미 빠짐없이 갖춰져 있었다.회랑 아래에 선 조 씨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입가에는 희미하게 걸린 냉소가 스쳐 지나갔다.이 첫 기선 제압. 그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그녀로서는 오히려 반가웠다.맹시은은 등을 곧게 편 채, 시선을 가만히 떨구었다. 그녀의 눈길이 한 번 스치듯 훑고 지나갔다.향로에는 값싼 단향이 이미 피워져 있었고 푸른 연기는 가늘게 피어오르며 어딘가 싸구려 같은 조롱의 기운을 풍겼다.고 유모는 두 팔을 끼고 서서 턱을 살짝 치켜들고는 기다리고 있었다.이 국공부 대문 앞에서, 온 경성의 시선이 쏠린 이 자리에서, 그녀가 어떻게 체면을 바닥까지 떨어뜨리고 웃음거리가 되는지.그러나 맹시은은 눈꺼풀 하나조차 들지 않았다.그때였다. 그녀가 움직였다. 하지만 향안 앞으로 향한 것이 아니었다.그녀는 몸을 돌려, 붉은 칠에 금박이 더해진 위엄 어린 영국공부 대문을 마주했다.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그녀는 천천히 치맛자락을 들어 올렸다.“쿵.”두 무릎이 차갑고 단단한 청석 바닥 위에 깊게 부딪혔다. 둔중하고 단호한 소리였다.마치 무거운 망치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의 가슴을 세게 내리친 듯했다. 이어 그녀는 깊이 몸을 숙였다.이마가 바닥에 닿을 만큼, 조금의 흠도 없는 완전한 오체투지의 큰절이었다.“손부(孫媳)가 조모님께 절을 올립니다!”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맑고 또렷해 찬 바람을 가르며 현장에 있던 모든 이의 귀에 선명하게 꽂혔다.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의 얼굴은 이미 눈물로 젖어 있었다. 목소리에는 억누를 수 없는 비통함과 울먹임이 짙게 배어들었다.“손부가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조모님께서 위중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불타는 듯 조급하여 당장이라도 침상 곁으로 달려가 약을 시중들고 싶었습니다! 허나 손부의 몸에 ‘흉한 기운’이 있다 하여, 조모님의 평안을 해칠까 두렵고, 병세를 더 악화시킬까 염려되니, 이 또한 크나큰 불효입니다!”그녀는 손수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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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3화

이건 체면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하늘에라도 구멍을 뚫어버릴 기세의 미친 사람 같았다.고 유모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맹시은을 가리켰다. 입술이 덜덜 떨렸지만 끝내 욕 한마디 내뱉지 못했다.맹시은이 내뱉는 모든 말이 하나같이 ‘효’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를 꾸짖는 순간, 그건 곧 그녀의 효를 막는 일이 되고, 큰 마님을 공경하지 않는 일이 되어버린다.그러나 맹시은은 그런 기색조차 느끼지 못한 듯, 여전히 절절하게 울음을 이어갔다.비통한 울음소리는 처연하게 흘러나왔다. 하지만 고개를 살짝 떨군 눈동자 깊은 곳에는 싸늘한 조롱과 단호한 결의가 가라앉아 있었다.우는 걸 누가 못하겠는가? 불쌍한 척하며 동정을 얻는 법이라면 그녀는 이미 주 가 뒷마당에서 수도 없이 보아왔다.어차피 체면을 잃을 일이라면 어째서 자기 혼자만 이 자리에서 저들에게 모욕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망신을 당할 거라면 차라리 모두 함께 당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맹시은은 오늘 온 경성 사람들이 똑똑히 보게 만들 작정이었다.이 명문 사족, 공후 가문의 번듯한 문패 아래에 도대체 어떤 추악한 낯짝이 숨겨져 있는지를.회랑 아래에 서 있던 조 씨는 막 돌아서려던 발걸음을 멈췄다. 마치 바닥에 못이라도 박힌 듯, 단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문밖으로 몰려드는 인파, 탐색하듯 호기심 어린, 그리고 은근한 멸시가 섞인 시선들이 달궈진 쇠바늘처럼 그녀의 얼굴을 사정없이 찔러댔다.얼굴이 화끈거렸다. 마치 수없이 따귀를 맞은 듯한 통증이 번져갔다.이대로는 안 된다!조 씨의 가슴속에서 경종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켰다.그러고는 순식간에 얼굴 위에 알맞은 초조함과 애틋함을 덧씌운 뒤, 치맛자락을 들어 올리고 서둘러 밖으로 나섰다.“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냐! 시은아, 내 착한 아이야, 얼른 일어나거라!”그녀의 목소리에는 다정한 걱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마치 큰 억울함을 당한 딸을 보는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그녀는 재빨리 맹시은 곁으로 다가가 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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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4화

“뭐라고? 진국공께서 적을 너무 많이 베어서, 그 외손녀 몸에 흉한 기운이 깃들었다고?”순간 주변은 잠잠해졌다가 이내 더욱 거센 소란으로 들끓기 시작했다.“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맹 장군께서는 평생을 전장에서 보내며, 우리에게 변방 수십 년의 평안을 가져다주신 분일세! 그분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어디서 편히 살았겠는가!”“맞네! 당당한 영국공부가, 출처도 알 수 없는 떠돌이 중의 헛소리를 믿고 공신의 후손을 이렇게 괴롭힌다고?”“내가 보기엔 일부러 트집 잡는 것이네! 세자께서 데릴사위로 들어간 일 때문에 아직도 속이 뒤틀린 게지!”“은혜를 원수로 갚는 짓이네! 정말 배은망덕한 것들이 따로 없군!”분위기는 순식간에 들끓었다.백성들이 비록 고관대작 집안의 복잡한 속사정까지는 알지 못해도 그들 가슴속에는 저마다의 저울이 있었다.누가 영웅이고 누가 나라를 지켜왔는지, 그 정도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공훈을 사람을 해치는 ‘흉한 기운’이라 부르다니.그건 그저 우스운 이야기가 아니라 피를 흘리며 싸워온 모든 장수들의 가슴에 칼을 꽂는 짓이었다.조 씨의 얼굴빛은 이미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만큼 일그러져 있었다.세상이 빙글 도는 듯했고 귓가에서는 웅웅거리는 소리만 맴돌았다.일이 완전히 통제에서 벗어났다. 그녀는 도움을 구하듯 고 유모를 바라보았다.그 눈빛에는 독이 서린 원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이 쓸모없는 늙은 것! 일은 망치고 화만 키워놓는구나. 하필 대문 앞에서 무릎 꿇릴 생각을 하다니... 괜히 약점만 잡혀 일을 더 크게 만들어버린 셈이잖아.”오늘 일이 퍼져 나가기만 하면 내일 영국공부를 탄핵하는 상소가 어서재를 가득 메울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공께서 크게 노하실 게 분명하고 자신 또한 무사하지 못할 터였다.고 유모 역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자신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벌벌 떨며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었던 그 첩실이, 어느새 이렇게 혀가 날카롭고 수단까지 잔혹해졌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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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5화

숨조차 막힐 듯 억눌린 적막이 내려앉아 있었다.회랑 아래, 하인과 부녀자들이 두 손을 모은 채 줄지어 서 있었다. 모두 숨을 죽인 듯 고요했고 호흡마저 극도로 억눌러 겨우 이어가고 있었다.주종현은 영벽 뒤에 서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그의 눈빛은 깊었다. 천 년 묵은 한못처럼,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음침하게 가라앉아 있었다.맹시은이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지만 그는 곧장 다가서지 않았다. 그저 그 깊은 눈동자가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그녀의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연약해 보이면서도 단단했다.예전에도 그녀는 이렇게 힘겨운 시간을 견뎌왔던 걸까. 그래서 목숨을 내놓을 각오까지 하며 죽음을 가장해 떠나려 했던 걸까.조 씨는 아들이 아직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방금 전 벌어진 일은 마치 그녀의 뺨을 세게 내리친 것처럼 느껴졌다.“현아…”주종현의 시선이 마침내 맹시은에게서 떨어져,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조 씨에게로 향했다.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어떤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어머니, 할머니 상태는 어떻습니까?”조 씨는 그 한마디에 말문이 막혀버렸다.미리 준비해두었던 수많은 말들이 목구멍에 걸린 채,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했다.“네 할머니는...”“어머니.”주종현이 조용히 말을 끊었다.“옳고 그름은 제가 직접 보았고, 제 나름의 판단도 있습니다. 지금은 할머니의 병환이 더 급합니다.”그는 더 이상 조 씨를 바라보지 않았다. 곧장 발걸음을 옮겨 그녀를 지나쳤고 곧장 맹시은의 앞에 섰다.그는 손을 내밀었다. 넓고 따뜻한 손바닥이 그녀의 차갑게 식은 손등 위에 조용히 내려앉았다.“두려워 말거라. 내가 있다.”낮고 단단한 목소리였다. 그 한마디는 따뜻한 기운처럼 스며들어 맹시은 마음속에 남아 있던 마지막 한 줄기 냉기를 단숨에 밀어냈다.맹시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온전히 기대고 아무런 의심도 없이 의탁하는 그 모습에 주종현의 가슴이 순간 저릿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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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6화

큰 마님은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얼굴에 깊게 패여 있던 주름마저 부드럽게 펴졌다.“그래, 그래, 착한 아이야…”흐릿해진 눈동자가 탐욕스럽게 손자의 얼굴을 더듬었다. 아무리 보아도 모자란 듯, 시선을 떼지 못했다.그 순간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무심코 주종현의 어깨 너머를 스치며, 문가에 서 있는 맹시은을 향했다. 큰 마님의 얼굴에 걸려 있던 미소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너!”갈라진 입술 사이에서 억지로 밀어낸 한 글자였다. 그 음성은 날카롭게 찢어져 마치 밤까마귀의 울음처럼 섬뜩하게 울렸다.“여기 와서 뭘 하는 게냐! 당장 나가! 당장 꺼져라!”큰 마님은 갑자기 광증이라도 오른 듯 몸부림치며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격한 감정이 폐부를 건드리자 숨이 끊어질 듯한 격렬한 기침이 터져 나왔다.“콜… 콜록… 콜록콜록…!”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몸은 고통에 웅크러지며 금세라도 숨이 끊어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큰 마님!”고 유모가 황급히 달려들어 등을 두드리고 숨을 고르게 했다. 조 씨 역시 얼굴이 새파래져 급히 다가와 거들었다.순식간에 방 안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주종현의 얼굴은 보기 드물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맹시은을 보려 했으나 큰 마님의 손이 쇠집게처럼 그의 손을 움켜쥔 채 놓아주지 않았다.고 유모는 큰 마님의 숨을 고르며 독이 어린 시선으로 맹시은을 향해 사납게 노려보았다.“마님! 이 늙은 종이 간청드립니다! 부디 자비를 베푸신다 생각하시고 한 번만 물러나 주십시오! 어서 나가 주십시오! 더 이상 여기서 큰 마님을 자극하지 마십시오! 큰 마님의 몸은 더 이상 이런 자극을 견뎌낼 수가 없습니다!”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달려들었다. 거의 밀치다시피, 억지로 맹시은을 문 밖으로 내몰았다.쾅!조각문이 그녀의 눈앞에서 거칠게 닫혔다.그 문은 단순히 공간을 가른 것이 아니었다. 안쪽에 있던, 정과 염려로 가득한 세계와 그녀를 완전히 단절시켜버렸다.문 안에는 주종현의 다급한 목소리, 큰 마님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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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7화

그녀는 방 안의 주씨 큰 마님이 정말로 병중에 있는지조차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회랑 아래에 조용히 서서 손을 들어 어깨 위에 내려앉은 눈을 털어냈다.그녀는 주종현이 나오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몸을 돌려 눈보라를 마주한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그녀가 영국공부를 찾은 것은 오로지 주종현을 위해, 그에게 할 도리를 다하기 위함이었다.사람들의 시선이 모인 자리에서 당당히 문을 넘은 것은 진국공부의 체면을 지키고온 경성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자신은 결코 누구에게나 마음대로 휘둘릴 연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지금 그 두 가지는 이미 이루어졌다.주씨 큰 마님의 처소에 들어갈 수 있느냐, 또 그녀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애초부터 중요했던 적이 없었다.방 안의 소란은 점차 가라앉았다. 주씨 큰 마님은 안정탕을 마시고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고 유모 모든 것을 정리하고 돌아서는 순간, 창밖으로 점점 멀어지는 가느다란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그녀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수축했다.설마 정말로 그냥 가버린 건가? 큰 마님은 아직 병중이고, 세자까지 이곳에 남아 있는데 그녀는 기다릴 생각조차 없이 이대로 훌쩍 떠나버렸단 말인가!이건 그야말로 사람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오만함이었다.고 유모는 소리 없이 물러나고는 다시 조용히 내실로 들어갔다.침상 곁을 지키고 있는 주종현의 옆으로 다가가 몸을 숙인 채, 비통함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목소리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세자, 보셨습니까? 마님께서 그대로 가버리셨습니다. 큰 마님께서 이렇게 아프신데, 어찌 한마디 안부도 묻지 않고 떠날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분 마음속에는 애초에 우리 큰 마님도, 이 주 가도 없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런 말, 제가 감히 드릴 처지는 아니오나 세자 저하를 어려서부터 모셔온 몸이라, 그저 가슴이 아파서 그럽니다.”주종현은 천천히 눈을 들어 올렸다. 얼음처럼 차갑게 식은 그 시선은 곧장 고 유모를 향해 꽂혔다.“내게 일을 가르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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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8화

영국공부에서 울려 퍼지는 말발굽 소리가 깊은 밤 눈 덮인 길 위에서 유난히 또렷하게 울렸다.주종현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고삐를 쥔 손을 놓지 않고 눈 쌓인 거리를 전력으로 달렸다. 칼날 같은 바람과 눈발이 얼굴을 후려치며 따갑게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 정도의 통증은 그의 가슴속에서 요동치는 감정에 비하면 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했다. 머릿속에는 맹시은이 국공부 대문 앞에서, 사람들의 손가락질 속에 오체투지로 엎드려 있던 그 장면이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었다.그녀의 등은 그렇게나 가늘었는데 어째서 그토록 꺾이지 않았던 걸까.본래라면 손바닥 위에서 보살핌을 받아야 할 보석 같은 사람이 그를 위해 몇 번이고 먼지 속으로 짓밟혀 내려앉았다.주종현의 손에 쥐어진 고삐가 점점 더 세게 조여졌다. 힘이 들어간 손마디는 희게 질렸고 손등에는 핏줄이 불거졌다. 가슴속에서 뒤엉켜 끓어오르는 분노와 자책이 그를 산산이 찢어놓을 듯했다.그는 더욱 속도를 올렸다. 하루라도 빨리, 지금 당장이라도 그녀를 보고 싶었다. 그녀를 품에 끌어안고 말해주고 싶었다.자신이 왔다고. 이제는 더 이상 혼자서 이 모든 것을 견디게 하지 않겠다고.*진국공부의 붉은 대문이 눈보라 속에서 우뚝 서 있었다. 문 앞에 걸린 두 개의 붉은 등롱이 따뜻하고 잔잔한 빛을 흘리고 있었다. 마치 칠흑 같은 밤 속, 유일하게 남은 온기 같았다.곽범은 이미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종현이 도착하자 곧바로 달려 나와 고삐를 받아들었다.“사위 어른.”주종현은 몸을 날렵하게 내려 고삐를 그에게 넘겨주고는 곧장 안으로 들어섰다.“시은은?”“아가씨께서는 난각(暖阁: 따뜻한 방)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직 주무시지 않고 있습니다.”주종현의 발걸음이 더 빨라졌다. 문을 밀어 열자 따스한 기운과 함께 은은한 매화 향이 스며들었다.맹시은은 침상에 앉아 있었다. 손에는 책 한 권을 들고 있었고 촛불 아래 비친 옆모습은 한 폭의 그림처럼 고요하고 부드러웠다.기척을 느낀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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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9화

진국공부 안은 더욱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등롱이 곳곳에 걸리고 장식이 더해져, 하인들의 얼굴에도 환한 기운이 번져 있었다.그날 저녁 식사가 끝난 뒤, 맹시은은 하인들을 물리고 직접 주종현에게 따뜻한 차를 따라주었다.차에서 피어오른 김이 은은하게 그녀의 얼굴을 흐릿하게 감쌌다.“내일이면 설날이에요.”그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주종현은 그녀의 손을 잡아 입가에 가져다 살짝 입을 맞췄다.“그래. 내일은 어디에도 가지 않고 집에서 너랑 아이들과 함께 있으마.”그러나 맹시은은 조용히 손을 빼냈다.“부군.”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진지했다.“내일은 영국공부로 돌아가세요.”주종현의 눈썹이 살짝 굳었다.“뭐라고?”“큰 마님께서 아직도 병중이시잖아요.”맹시은의 목소리는 담담했다.“명절은 온 가족이 함께하는 날이에요. 손자인 당신이 곁에서 효를 다하는 게 당연한 일이죠. 당신이 불효라는 말을 듣는 것을 저는 원하지 않아요.”“시은…”그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안타까움이 묻어났다.“네가 이러면 내가 너무 쓸모없는 사람 같지 않느냐.”주종현은 자신의 부인과 아이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아니에요.”맹시은은 그의 따뜻한 품에 기대며 조용히 말했다.“당신은 제 하늘입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당신이 버텨줘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사소한 일은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얼른 가서 큰 마님 곁에 있어 주세요.”*설날 밤.온 경성이 떠들썩한 것과는 달리 영국공부는 유난히 쓸쓸했다.등롱은 걸려 있고, 춘련도 붙어 있었지만 명절다운 따뜻한 기운은 찾아볼 수 없었다.공기에는 지워지지 않는 짙은 약 냄새가 배어 있었다.주종현이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발끝에서부터 차가운 기운이 스며 올라왔다. 넓은 저택은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고요했다.하인들은 발끝으로 걸음을 옮겼고 숨소리조차 죽인 채 움직였다.그때, 조 씨가 마중 나왔다. 그를 보자 눈에 잠시 반가움이 스쳤지만 이내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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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0화

그날 밤, 영국공부에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주종현은 회랑 아래 서서 황량하게 가라앉은 마당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폭죽 소리만이 고요를 가르고 있었다.그는 문득 이 저택이 화려하게 꾸며진 하나의 무덤처럼 느껴졌다.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그대로 가두어버린, 차가운 무덤.*그 시각, 진국공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펑! 펑!“하하하! 삼촌, 보세요! 이 불꽃이 얼마나 높이 올라가는지!”마당 한가운데, 연아는 새빨간 새 옷에 흰 여우털 망토를 걸치고, 추위에 볼이 발갛게 물든 채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맹서강은 길게 탄 향을 들고, 다음 폭죽에 불을 붙이느라 조심스레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복동이는 두 손으로 귀를 막은 채, 검은 눈동자를 굴리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놀고 싶으면서도 겁이 나 급기야 외치고 말았다.“누님! 저도 하나만 불 붙여주세요!”맹여산과 하연은 따뜻한 정자 안에 앉아 아이들이 떠드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할아버지! 외숙모! 이것 좀 보세요!”연아는 자랑이라도 하듯 작은 ‘딱총’을 들어 올려 힘껏 바닥에 던졌다.“딱!”경쾌한 소리가 터졌다.“히히!”한편, 맹시은은 부엌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를 들고 나왔다.딸아이의 장난스러운 모습을 보며 한숨처럼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저었다.“연아야, 조심해야지. 다치면 어떡하려고 그러느냐.”“알겠어요, 어머니!”연아는 또랑또랑하게 대답하고는 다시 맹서강에게 매달려 폭죽을 더 달라 졸라댔다.“자, 자, 다들 안으로 들어오세요. 다 같이 만두를 먹읍시다!”맹시은이 목소리를 높이자 사람들은 따뜻한 봄처럼 포근한 화청에 모여 앉았다.상 위에는 풍성한 설 음식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가장 큰 접시에는 막 쪄낸 만두가 하얗고 통통하게 김을 올리고 있었다.“자, 다들 먹어 보세요. 오늘 누가 운이 좋아서 동전이 들어 있는 걸 먹는지 보자고요!”하연이 웃으며 하나씩 만두를 나눠주었다.“저는 꼭 찾을 거예요!”연아는 자신만만하게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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