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Chapter 911 - Chapter 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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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1화

그는 술잔을 들어 올렸지만 입에 대지는 않고 그저 옅은 미소만을 띠었다.“전 관사께서 베풀어 주신 성의는 마음으로 충분히 받았습니다.”그는 술잔을 조용히 내려놓으며 말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그 안에는 거스를 수 없는 단호함이 담겨 있었다.“다만 오늘은 길을 서둘러야 하는지라, 술을 많이 들 수 없는 형편입니다. 훗날 다시 우주에 들르게 된다면, 그때는 전 관사와 마음껏 술잔을 기울리겠습니다.”이 말은 사실상 자리를 정리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그러나 전유덕은 마치 그 뜻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 사람처럼, 오히려 미소를 더 짙게 지었다.“아이, 열 공자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진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열 공자처럼 젊고 유망한 분을 저는 가장 좋아합니다. 이처럼 큰 뜻을 품은 영웅호걸과 사귀는 것, 그보다 더한 즐거움이 또 있겠습니까! 다만 만난 시간이 너무 짧은 것이 한스럽습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공자와 발을 맞대고 누워 사흘 밤낮을 마시며 이야기했을 텐데요!”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더욱 절절한 목소리로 덧붙였다.“공자께서 길을 재촉하셔야 한다는 것, 저도 잘 압니다. 그러니 오늘은 길게 마시지 않겠습니다. 딱 한 잔, 마지막 한 잔만!”그는 다시 술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불타는 듯한 눈으로 열무를 바라보았다.“이 한 잔만 비우시면, 제가 직접 말을 준비해 공자와 부인을 성문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그 말은 얼마나 간절하고, 또 얼마나 호방한가.마치 이 한 잔을 거절하는 순간, 그의 진심을 저버리고 이 우정을 업신여기는 일이 되는 것만 같았다.열무의 시선은 고요한 물결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광기에 가까운 열기를 띤 전유덕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입가에 문득 의미심장한 웃음을 띠었다.천천히 술잔을 들어 올린 그는 전유덕의 기대에 찬 시선을 마주한 채 단숨에 잔을 비워냈다.“좋습니다!”전유덕은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그의 눈빛에 안도의 기색이 번뜩였다.연회는 아직 끝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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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2화

먹빛처럼 짙은 밤이 내려앉자 정현성 전체가 고요 속에 잠겼다. 객잔 밖을 순찰하는 관병들의 발걸음 소리는 마치 목숨을 재촉하는 북소리처럼, 한 번 한 번 사람의 심장을 두드렸다.주연아는 침상 위에 누운 채 눈을 감고 고른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미 깊이 잠든 듯 고요했다. 옆방의 열무 역시 숨결이 길고 잔잔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창밖에서 야경을 도는 사람이 삼경을 알리는 목탁을 두드리는 순간, 그 길게 이어지던 호흡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주연아는 번쩍 눈을 떴다. 눈동자는 맑게 빛났고, 조금의 졸음도 남아 있지 않았다.그녀는 소리 없이 몸을 일으켜, 재빠르게 야행복으로 갈아입고 긴 머리를 묶었다. 움직임은 살쾡이처럼 가볍고 민첩했다.창문을 살짝 밀어 틈을 만들고, 그녀는 낙엽처럼 가볍게 몸을 날려 짙은 밤빛 속으로 스며들었다.주연아는 알지 못했다. 그녀의 그림자가 사라지자마자, 또 하나의 검은 그림자가 조용히 뒤를 밟아 나섰다는 것을.정현의 밤은 낮보다 훨씬 더 엄중한 검문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횃불을 든 관병들이 무리를 지어 순찰했고, 철갑이 부딪히는 소리는 텅 빈 거리 위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주연아의 몸은 지붕 처마와 골목의 어둠 사이를 가르며 스쳐 지나갔다. 오르내릴 때마다, 그녀는 정확하게 순찰의 불빛을 피해 움직였다.*성 남쪽, 성황묘.향불이 그리 성하지 않은 그 사당은 밤이 되면 더욱 적막해져, 어딘가 음산한 기운마저 감돌았다.주연아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담장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 가볍게 몸을 숨기듯 대전 안으로 스며들었다.전각 안은 촛불이 희미하게 흔들릴 뿐, 제단 위의 두 개의 장명등만이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다. 콩알만 한 불꽃이 바람에 일렁이며 성황신의 위엄 있는 흙빛 금신을 비추었다.그녀는 경계심 어린 눈으로 주위를 훑어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곧장 커다란 향로 앞으로 다가갔다.향로 안에는 다 타버린 향대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고, 두툼한 향재가 넘칠 듯 쌓여 있었다.주연아는 타다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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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3화

거의 동시에, 전각 밖에서 아주 미미한 발소리가 스며들듯 들려왔다.주연아는 순간 정신을 번쩍 차리고, 곧장 숨을 죽였다. 심장은 금방이라도 목구멍까지 튀어 오를 듯 뛰었다.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더니, 마침내 대전 문 앞에서 멈췄다.소림은 그녀의 작은 몸을 완전히 제 뒤로 감싸듯 숨기고, 깊고 어두운 시선으로 매처럼 바깥의 기척을 노려보았다.잠깐의 정적 끝에, 짙은 남빛 옷자락 하나가 문턱에 스쳤다.소림의 몸이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튀어나갔다. 주먹이 가르는 바람이 매섭게 휘몰아치며, 그 옷자락의 주인을 향해 맹렬히 쏟아졌다.상대 역시 반응이 빨랐다. 몸을 비틀어 가까스로 치명적인 일격을 피했다.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허공을 가르는 옷자락의 바람 소리와 살과 살이 부딪히는 묵직한 충돌음만이 전각 안을 채웠다.주연아는 신상 뒤에서 몸을 내밀어 상대의 얼굴을 확인했다.은공이다!“그만하십시오!”그녀는 생각할 틈도 없이 뛰쳐나가 다급히 외쳤다.“둘 다 당장 멈추세요!”격투 중이던 두 사람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동시에 움직임을 멈췄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 공격을 거두고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열무는 자세를 바로 세운 뒤, 입가에 스친 피 한 줄기를 무심히 훔쳤다. 그리고 시선을 소림 너머로 넘겨 주연아에게 꽂았다.그는 비웃듯 짧게 웃었다. 그 웃음에는 노골적인 조롱과 차가운 기색이 가득했다.“아가씨께서 한밤중에 목숨 걸고 나선 이유가 이거였습니까? 정인을 만나러 온 겁니까?”주연아는 그를 노려보며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무슨 헛소리를….”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절 문 밖에서 소란스러운 발소리와 함께 거친 고함이 들려왔다.“안에 누구냐! 나와라!”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섯 여섯 명의 관병들이 등불을 들고 칼을 쥔 채 들이닥쳤다.순식간에 열댓 개의 등불이 켜지자 어둡고 낡은 성황묘 안은 대낮처럼 환해졌다.선두에 선 관두는 전각 중앙에 서 있는 세 사람을 한눈에 발견했다. 그리고 시선이 열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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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4화

“오해입니다, 전부 오해입니다! 열 공자 댁의 집안일이라면, 저희가 더는 방해하지 않겠습니다.”관병들이 물러나자, 대전 안은 다시 죽은 듯한 적막에 잠겼다.공기 속에는 보이지 않는 칼날들이 서로 부딪히며 튀기는 것처럼,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소림은 차갑게 주연아를 한 번 흘겨보았다.“여기서 뭘 더 하고 있는 것이냐? 떠나기 아쉬운 것이냐?”한 점의 온기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였다.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돌아서서, 성황묘의 허물어진 문을 먼저 나섰다.열무는 오히려 팔에 힘을 더 준 상태로 고개를 숙인 채 낮게 웃었다. 소리는 작았지만, 문간에 다다른 소림의 귀에는 또렷이 닿았다.“연아 아가씨, 이제 와서 다리를 끊을 생각이십니까?”주연아는 슬쩍 소림을 흘끗 보더니, 그대로 열무의 발을 세게 밟았다.열무는 순간 통증에 숨을 삼키며 낮게 신음했고, 그제야 손을 놓았다.자유를 되찾은 주연아는 그와 더 말다툼할 겨를도 없이 급히 밖으로 따라 나섰다.서릿빛 달빛이 길 위에 차갑게 내려앉아, 객잔으로 돌아가는 길을 한층 더 쓸쓸하게 비추고 있었다.소림은 맨 앞에서 걸었다. 등은 소나무처럼 곧았지만, 그 모습은 산처럼 고독했다.주연아는 그 뒤를 따르며 서너 걸음 거리를 유지했다. 가까이 다가갈 수도, 그렇다고 멀어질 수도 없었다.열무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두 손을 머리 뒤로 깍지 낀 채, 느긋하게 맨 뒤를 따라왔다.세 사람, 세 개의 그림자.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길을 걸었다.그 분위기는 숨막힐 듯 눌려 있어, 길가의 벌레들마저 눈치를 보듯 울음을 멈춘 듯했다.객잔에 도착하자, 열무는 눈치 좋게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주연아는 머뭇거리며 소림의 뒤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방 안에는 촛불이 고요하게 타오르고 있었다.주연아는 감히 소림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했다.두 사람 사이에는 팔선탁자 하나가 놓여 있었지만, 그 거리는 오히려 숨조차 쉬기 어려울 만큼 답답하게 느껴졌다.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으로 옷자락을 쥐어짜듯 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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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5화

“그 열씨 라는 자, 우리 대성조 사람이 아니다. 그가 정현에 온 목적이 결코 단순할 리 없다. 그걸 아무 의심 없이 믿는 건, 너뿐이겠지.”은공이… 대성조 사람이 아니라고?주연아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곧 생각이 스쳤다.그가 그녀를 구해준 건 사실이었다.그가 어느 나라 사람이든, 그는 그녀의 은공이었다.그러나 그 말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눈앞의 소림은 더 이상 예전의 ‘소림 오라버니’가 아니었다.그가 친정을 시작한 이후, 그는 곧 대성조의 하늘이 되었고, 만백성의 주인이 되었다. 그의 시선 하나, 말 한마디마다 거스를 수 없는 위엄이 실려 있었다.주연아의 마음속에 억울함이 쌓이고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이 들끓어도 그 앞에서는 단 한 점도 드러낼 수 없었다.그저 생각 없는 메아리처럼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짙고 길게 드리운 속눈썹 아래로 모든 감정을 감춰버렸다.“예. 알겠습니다.”소림은 눈앞의 여인을 바라보았다.고개를 숙인 채, 온순하게 굴복한 모습이 마치 한 마리 토끼처럼 보였다.그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마지막 불꽃마저도, 이내 완전히 사그라들었다.결국, 그는 끝내 그녀에게 매정해질 수 없었다. 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자.그는 가장 정예의 호위들을 붙여 그녀의 안전을 지키도록 했다.그러다 그녀가 세상 물정을 모르고, 혼자 정현이라는 진흙탕 속으로 뛰어들겠다고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그날 밤, 신분을 감춘 채 궁을 빠져나와, 밤새 말을 달려 이곳까지 달려왔다.그는 평생 한 번도 수도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아마 평생 바깥 세상의 풍경을 직접 볼 일도 없었을 것이다.주연아. 그녀는 그의 고독한 삶을 비추는, 단 하나의 빛이었다.그 빛이 꺼지는 것을 그는 견딜 수 없었다. 또한, 놓아줄 수도 없었다.한참 뒤, 소림의 목울대가 천천히 움직였다.그의 마음속 모든 감정은 결국 아주 미약한 한숨으로 흩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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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6화

소림의 시선이, 아무렇지 않은 듯 흘러가며 곡 현령의 얼굴을 스쳤다. 그 얼굴에는 아첨의 웃음이 한껏 쌓여 있었다.“누추한 집이 빛난다고?”곡 현령의 두툼한 볼살이 움찔 떨렸다. 이마에는 자잘한 식은땀이 맺혔다.그 말 속에 담긴 경고를 그는 분명히 알아들었다.경성에서 온 이 귀인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대인께서 농을 하십니다. 소인… 소인은 그저 대인의 안위를 걱정했을 뿐입니다.”소림의 눈빛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한겨울 심연처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곡 현령. 이렇게 많은 인원을 데리고 온 걸 보니, 무언가 들킬까 두려운 모양이군.”“절대 그런 뜻은 없습니다, 결코 아닙니다!”곡 현령의 목소리에는 미세하게 떨림이 섞여 있었다.“소인은 그저 대인께서 먼 길에 지치셨을까 하여, 변변찮은 술자리를 마련해 대인을 맞이하고자 했을 뿐입니다.”소림은 낮게 코웃음을 칠 뿐, 더는 대꾸하지 않았다.관병들은 객잔을 완전히 포위해, 빈틈 하나 없는 철통 같은 형세를 만들고 있었다. 새 한 마리조차 날아나갈 수 없을 듯했다.이게 어디 환영이란 말인가. 이건 명백히 땅을 그어 감옥을 만든 것이나 다름없었다.잠시 후, 소림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그는 내려다보듯 곡 현령을 바라보며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걸었다.“이렇게까지 성의를 보이는데 내가 응하지 않으면, 그대의 정성을 저버리는 셈이겠지?”곡 현령은 그 말을 듣자마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소인이 곧 준비를...”말이 끝나기도 전에 끊겼다.“헌데 술은 필요 없다. 나는 정현의 풍토와 사정이 더 궁금해서 말이지.”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는 거스를 수 없는 기색이 실려 있었다.“들으니, 정현의 철광이 꽤 이름났다고 하더군. 나는 줄곧 경성에만 있어 견문이 좁다. 곡 현령이 직접 안내해 주면, 눈을 좀 트일 수 있겠지.”곡 현령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대… 대인, 그건… 그건 아무래도 곤란할 듯합니다.”그는 더듬거리며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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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7화

“빨리! 당장 그 열씨 라는 놈을 쫓아! 살아서든 죽어서든 반드시 찾아내라! 놈은 수행원 하나만 데리고 있었다. 멀리 못 갔을 거다!”전유덕은 여전히 불안했다.직접 확인해야 할 일이 있었다.그는 숨을 몰아쉬며 서쪽 성문 쪽에 있는 비밀 창고로 달려갔다.창고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구리 자물쇠는 힘으로 부러져 바닥에 내던져져 있었다.창고를 지키던 두 명의 호위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의식도 없는 상태였다.그리고 창고 안. 그 열댓 자루의 화총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그 물건들은 그의 마지막 명령 없이는 절대 반출될 수 없는 것들이었다.그 열 공자라는 자는 창고의 위치를 아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출고 절차까지 훤히 꿰고 있었다!처음부터 그의 목적은 바로 이 화총들이었던 것이다!“대인! 대인! 큰일 났습니다!”전유덕은 미친 멧돼지처럼 숨을 헐떡이며 주루로 되돌아왔다.“창고가 털렸습니다! 그 화총들… 한 자루도 남김없이, 전부 열씨 라는 놈이 가져갔습니다! 제가 말했잖습니까! 그들은 한패입니다! 완전히 한패입니다!”곡 현령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사적으로 화총을 제조한 것 자체가 이미 구족을 멸할 중죄였다.그런데 지금 그 화총이 도난당했고, 그 사실이 경성에서 온 이들에게 들켜 황제 앞까지 올라간다면... 그는 더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순간, 그의 눈 속에 남아 있던 모든 망설임과 공포가 잔혹한 살기로 바뀌었다.이제 와서는 입을 막는 것밖에 살길이 없었다. 그는 굳게 닫힌 방 문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드드득 하고 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새어나왔다.“전유덕. 잘 들어라. 오늘 일은, 하늘만 알고 땅만 알고, 너와 나만 아는 일이다. 그 안에 있는 두 사람은 화총을 탈취한 강도들이며 끝까지 저항하다 현장에서 사살된 것이다. 알겠느냐?”전유덕은 온몸이 떨렸다. 그러나 곧 곡 현령의 뜻을 알아차렸다.선조치, 후보고.그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흉악한 웃음을 지었다.“알겠습니다!”*수십 발의 화살이, 메뚜기 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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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8화

“히이이잉!”청명하게 터져 나온 말 울음이 번개처럼 아래층을 뒤흔들었다.곧이어 사람과 말이 뒤엉키는 소란과 곳곳에서 터지는 놀란 외침이 연달아 일었다.“누구냐!”아래의 관병들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주연아의 동공이 급격히 수축했다.그는… 이미 떠난 것 아니었나?“데리고 가거라!”더 생각할 틈도 없이, 소림이 그녀의 허리를 낚아채듯 안아 들더니 난간 아래로 내던졌다.“안 돼!”주연아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고개를 들었지만, 돌아서는 소림의 뒷모습만 보일 뿐이었다.열무는 정확히 낙하 지점을 맞춰 그녀를 받아냈다. 마치 자루 하나를 다루듯, 그녀를 그대로 말등 위에 가로로 눕혔다. 모든 동작이 흐르듯 이어져, 단 한 치의 어긋남도 없었다.“가!”짧게 내지른 일갈과 함께, 검은 말이 네 발굽을 번쩍이며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내달렸다.“소림!”주연아는 요동치는 말등 위에 엎드린 채, 뒤돌아볼 틈조차 얻지 못했다. 눈물이 순식간에 시야를 흐렸다.“돌아가야 합니다! 어서 돌아가서 그를 구해야 합니다!”그녀는 안장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발버둥치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외쳤다.급박하게 울리는 말발굽 소리, 귓가를 찢듯 스치는 바람.열무는 듣지 못한 듯, 그저 미친 듯이 말을 몰아 달릴 뿐이었다.“부탁입니다! 돌아가서 그를 구해주십시오! 정말로 죽을 수도 있어요!”주연아의 목소리는 이미 절망에 젖은 애원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마침내, 열무가 입을 열었다. 바람에 부서지듯 흩어지면서도, 그 말은 또렷하게 그녀의 귀에 닿았다.“제가 왜 그를 구해야 합니까?”그 어조는, 한 치의 온기도 없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주연아는 그 물음에 순간 말을 잃었다.그래, 그가 왜 소림을 구해야 하는가?“그는…”목이 막힌 듯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그는 대성조의 천자요, 구오지존이라 그를 구한다면 하늘 같은 공을 세울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그러나 입술에 맺힌 그 말은 끝내 삼켜졌다.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기 때문이다.그는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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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9화

그녀의 뺨은 분노로 인해 살짝 부풀어 올랐다. 눈동자는 눈물에 씻긴 듯, 놀랄 만큼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그 생생하고도 살아 있는, 아무런 방비도 없는 그 모습이 그대로 열무의 시야 속으로 곧장 파고들었다.그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얼굴에 걸려 있던 웃음이 한순간 굳어 버렸다.심장이 이유 없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 짧은 멍해짐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덮어 버렸지만, 마음의 호수에 던져진 돌이 일으킨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열무의 목울대가 거의 티 나지 않게 한 번 굴렀다.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와 서늘하게 스치는 저녁 바람.두 사람과 한 필의 말은, 고요한 황혼 속에서 어딘가 어색한 침묵에 잠겨 들었다.한참이 흐른 뒤, 먼저 입을 연 건 열무였다.“곧 어두워집니다.”그의 목소리는 다시 평소처럼 담담했고, 감정은 읽히지 않았다.“머물 곳을 찾아야겠어요.”주연아는 대답하지 않았다.그녀의 마음도 이때쯤엔 어느 정도 가라앉아 있었다.열무가 더 이상 위험 속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면 혼자 돌아가는 것도 결국 무모한 짓일 뿐이다. 차라리 가까운 우주로 가 병력을 동원하는 편이 나았다.열무는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개의치 않고, 말고삐를 잡아채더니 능숙하게 몸을 올렸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이번에는 주연아도 버티지 않았다.그녀는 그 뚜렷한 마디가 드러난 손을 붙잡고, 그 힘을 빌려 말 위로 올라탔다.그리고 그의 앞에 자리를 잡았다.말은 다시 네 발을 옮기기 시작했지만, 전보다 훨씬 안정된 걸음이었다.두 사람 사이에는 주먹 하나 들어갈 만큼의 거리가 남아 있었고 그 누구도 더 말을 꺼내지 않았다.밤이 점점 깊어지고 하늘에는 별들이 하나둘 떠올랐다.얼마나 달렸을까. 마침내 앞쪽에 희미한 등불빛이 나타났다.열무는 우주성 밖 마을,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객잔 앞에서 말을 세웠다.그가 고삐를 잡아당기자마자 어둠 속에서 건장한 사내 하나가 번쩍 모습을 드러냈다.“주군! 이제야 기다리던 때가 왔습니다!”그는 타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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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0화

“다시는 만날 일 없을 거예요.”그녀가 막 한 걸음을 떼려는 순간, 희미하게 감도는 은은한 향기가 조용히 코끝을 파고들었다.이내 강렬한 어지러움이 의식을 휩쓸듯 덮쳐왔다.“당신…”뒤돌아보려 했지만 몸은 이미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오히려 힘이 풀리듯 무너져 내렸다.의식이 완전히 어둠에 잠기기 직전, 그녀는 다정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충분히 단단한 품 안으로 떨어져 들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주연아는 거칠게 흔들리는 진동 속에서 눈을 떴다.힘겹게 눈을 뜨자, 빠르게 뒤로 밀려나는 나무 그림자들이 시야에 들어왔다.그녀는 누군가의 넓은 품 안에 갇혀 있었다.“놓으세요! 감히 저를 기절시킨 겁니까?”분노로 날카롭게 치솟은 목소리에는, 미세하게 떨림이 섞여 있었다.“제가 누군지 압니까? 이건 자초한 죽음입니다!”열무는 그녀의 몸부림에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허리를 감싸고 있던 팔에 힘을 더 주었다.그는 앞을 바라본 채, 담담하게 말했다.“기절시키지 않으면, 그대로 죽으러 가게 놔두라는 겁니까?”가볍게 던진 말이었지만, 그 한마디는 주연아의 분노를 완전히 폭발시켰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닙니다!”그제야 열무가 고개를 돌렸다. 깊은 눈동자가 그녀의 시선과 맞부딪혔다.“대성조는 향불을 잇고 혈맥을 이어가는 걸 그토록 중하게 여긴다고 했습니다. 헌데 당신 오라버니는 목숨을 걸고, 살 기회를 당신에게 넘겼어요. 그런데도 돌아가서 죽겠다고 나서는 겁니까? 그의 희생을 헛되이 만들겠다는 것입니까?”그는 비웃듯 짧게 웃었다.“연아 아가씨, 그자는 정인이겠지요?”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이었지만 듣는 이는 달랐다.주연아의 몸이 순간 굳어 버렸다.정인…난간 밖으로 자신을 밀어내던 소림의 뒷모습이 다시 또렷하게 떠올랐다.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성지는 이미 내려졌고 온 세상이 알고 있다.그녀는 중궁 황후. 소림의 부인이었다.그녀는 천천히 눈을 내리깔았다. 가늘게 떨리는 속눈썹이 눈 속의 격정을 가려냈다.“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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