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문제적 군주의 아내: Chapter 111 - Chapter 120

318 Chapters

111장

“없어. 그냥… 밟으면 돼.”이현은 담담히 말하며, 손가락 끝에 조용히 기운을 모았다.“그럴게요, 왕자님.”지윤은 고개를 끄덕이고 살짝 떨리는 마음으로 대답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발을 들어 올려 힘껏 내려찍었다. 그 순간, 이현이 손가락을 튕기자, 보이지 않는 내공이 번개처럼 날아가 기왓장을 산산이 부쉈다.“와아!”주변에서 놀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신부가 기왓장을 박살 내다니… 태정왕은 입을 벌린 채 굳어 버렸다.‘저건… 비밀 호위무사들의 무술 훈련용 흑옥 돌판인데…!’태정왕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지윤의 발끝으로 향했고, 바로 이어서 신부 쪽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시선이 이현의 날카로운 눈과 마주치자,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떨었다.‘아버지 짓입니까?’이현의 눈빛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멀리 떨어진 태정왕 자리까지 파도처럼 밀려왔다.“앗, 오늘따라 바람이 차네요.”주실은 팔을 어루만지며 창밖을 둘러보고는 궁녀에게 말했다.“창을 닫고, 난로를 더 가져오너라.”“예, 마마.”궁녀는 급히 움직였다.주실은 그제야 옆에 있는 태정왕의 얼굴을 살피다 그의 미간과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발견하고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어찌 땀을 이리 흘리십니까? 더우신가요?”“아… 아니, 문제없다.”태정왕은 더듬거리며 답했다.‘망했다… 결국 봉황 같은 아들에게 들켜버렸군. 나, 무사할 수 있으려나…?’그때 신랑신부가 문지방을 넘어 대청으로 들어섰다.태정왕과 주실 앞에 멈춰 서더니, 이현이 정중히 말했다.“첫 번째 절은 하늘과 땅에.”두 사람은 문 밖 파란 하늘을 향해 절을 했다.“두 번째 절은 부모님께.”태정왕과 주실에게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세 번째 절은 부부가 서로에게.”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본 채 몸을 낮추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순간, 공기 사이가 묘하게 온기와 떨림으로 흔들렸다.“신방으로 모시거라!”의식이 끝나자, 이현의 입가에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번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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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장

이현은 붉은 색의 길상 문양으로 장식된 서쪽 별채 이홍루의 문턱을 천천히 넘었다. 용과 봉황이 새겨진 혼례 촛불이 침상 옆에서 은은하게 타오르고 있었고, 방 안의 공기는 이미 뜨거운 숨결로 출렁였다.이현은 가장 소중한 것을 다루듯, 조심스레 지윤을 안고 침상에 눕혔다. 그는 의식에 맞춰 옥으로 만든 여의를 들어 조심스레 그녀의 붉은 얼굴 가리개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의식은 여기까지만. 그의 눈빛은 이미 의식의 경계를 넘어서 있었다.“아… 왕자님.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닌가요?”‘왜 벌써 가리개를…?’이현이 그녀의 코끝을 가볍게 톡 건드리며 말했다.“잊었어? 우리, 이미 신혼방에 들어온 지 꽤 오래지.”“그렇다면… 왕자께서는 손님들을 맞이하러 가셔야 하지 않나요?”“가야지.”“다만, 당신을 피곤하게 하고 싶지 않을 뿐이지.”그는 그녀에게 몸을 기울여 빠르게 입술을 스쳤다.그 짧은 스침만으로도 그녀의 심장은 크게 흔들렸다.이어 혼잣말처럼 부드럽게 속삭였다.“애나와 애춘에게 널 보살피라 할게. 목욕을 하든, 음식을 들든, 누워 쉬든… 원하는 대로 해.”지윤은 그의 다정함에 슬며시 미소 지었다.“네, 왕자님.”이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이제 내 집안으로 들어온 사람인데, 왜 아직도 날 ‘왕자’라 부르지?”그 말의 숨은 의도를 깨닫는 순간, 지윤의 얼굴은 금세 붉게 물들었다.“그… 그럼… 서방님…?”이현의 입가가 천천히 치켜올라갔다.“옳지.”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다시 그녀의 입술을 파고들었다.이번엔 아까처럼 가볍지 않았다. 그녀의 입술을 깊이, 길게, 뜨겁게, 숨이 섞일 만큼 천천히 탐했다. 서두르지 않지만, 거부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열이 깃들어 있었다. 이현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더 깊이 끌어당기고 있었다.그 순간.“왕자님! 태정왕께서 어서 들라 전하십니다!”문 밖에서 효성의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한순간, 방 안의 모든 열기를 단숨에 얼려버렸다.이현은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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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장

이현은 더는 말없이 잔걸음으로 연회장으로 향했다. 모여든 귀족과 대신들이 올린 축배를 일일이 받고, 축하 인사에 맞춰 잔을 비웠다.앞뜰 누각에서는 경극단이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손님들은 신부의 혼례 행렬이 얼마나 호화로웠는지, 그리고 현 왕자의 위세가 어떻다느니 이야기꽃을 피웠다.“현 왕자는 벌써 취한 것입니까?”주실이 손수건으로 입가를 가리고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비틀거리는 이현의 모습이 기특하다는 듯 그녀는 은근히 눈을 가늘게 떴다.“이렇게 취해버리면 왕자비께서 걱정하시겠는데요.”정 왕자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거들었다.“형님을 모셔가야 할 듯합니다. 어머니.”‘형님… 그렇게 새색시한테 가고 싶으면 그냥 말씀을 하시지… 억지로 취한 척을 한다고 해서 누가 속는다고…’’‘수도의 풍류왕이라 불리는 분이, 고작 다섯 잔에 취한 척이라니…’“어서 여섯째를 부축해 방으로 모셔라. 새 신부가 잘 챙겨주겠지.”옆에 있던 명 왕자까지 웃으며 명령을 내리자, 양성과 효성이 나란히 양옆에서 그를 부축해 재빨리 연회장을 빠져나왔다.이홍루로 향하는 길, 연회장의 소리가 멀어질수록 그의 발걸음에서 비틀거림도 사라졌다.“그만 놓아도 된다.”축 늘어져 있던 어깨가 곧게 펴지고, 눈빛은 맑게 가라앉았다.양성과 효성은 손을 뗀 채 그의 뒤에 섰다. 그리고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철면 장군이라 불리던 인물이 이렇게 ‘방으로 달려가는’ 날이 오다니.’‘앞으로 우리 목숨을 지키려면, 왕자비님 치맛자락에 제대로 매달려야겠군.’…문이 열리자 가벼운 비단 옷자락이 부드럽게 흔들렸다.목욕을 막 마친 지윤이 옅은 향기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애나와 애춘이 그녀의 팔을 받쳐주고 있었다.이현이 들어오는 것을 본 지윤은 습관처럼 말했다.“왕자님.”이현은 방 안 가득 퍼진 매화 향을 깊게 들이마셨다.“이제 막 씻고 나오는 거야?”“네.”지윤은 시녀들에게 물러가라는 신호를 보낸 뒤 고개를 갸웃거렸다.“그런데 어찌 이리 빨리 돌아오셨지요?”이현은 곧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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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장

이현은 마지막 옷마저 떨구더니, 손가락 끝으로 얇은 비단 장막을 휘리릭 걷어내렸다.곧 침대를 둘러싼 장막이 천천히 내려오며 둘만의 은밀한 공간이 완성되었다.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오직 두 사람만의 밤이 찾아온 것이다.그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침대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붉게 달아오른 눈빛이 자신의 왕비를 바라보는 눈빛만으로도, 지윤의 뺨은 뜨겁게 달아올랐다.“내가 도와줄까.”저음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동시에 그의 거친 손이 매끈한 허리를 따라 미끄러지며 매듭을 풀어내자, 비단 겉옷이 힘없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침대 위에 쓰러진 그녀의 피부는 은빛 달빛 아래 한층 더 눈부시게 빛났다.숨을 마실 때마다 천천히 오르내리는 가슴, 그 움직임 하나에도 이현은 눈을 떼지 못했고, 마치 마법에 걸린 듯 그녀에게 몸을 기울였다.뜨거운 숨결이 겹치는 순간, 입맞춤이 시작되었다. 심장이 울릴 만큼 깊고 진한 입맞춤.젖은 혀끝이 입술을 천천히 훑자, 지윤은 본능적으로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더 깊은 애정을 받아들이듯 고개를 젖혔다. 더 가까이, 더 깊게. 그리고 그들의 몸과 숨결과 체온이 겹쳐지는 순간, 방 안엔 촉촉한 입맞춤 소리가 진하게 번졌다.부드러운 소리가 두 입술 사이에서 흘렀고, 네 손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몸 위를 천천히 더듬었다. 마치 오래된 지도를 탐색하듯, 익숙하면서도 다시 처음인 듯 조심스럽게.“아… 하… 서방님…”그녀의 목소리가 떨림과 함께 작은 숨으로 흘러나왔고, 이현은 목덜미에 연달아 입맞춤을 남기며 은은한 자국을 새겼다. 거친 손바닥이 따뜻한 곡선을 감싸 쥐자, 그녀의 호흡은 더욱 흐트러졌다. 허리가 흔들릴 때마다, 두 사람의 체온은 자꾸만 더 가까워졌다. 마치 조금만 더 움직이면 서로를 넘어뜨릴 듯, 그 벼랑 끝의 긴장감이 짜릿하게 스며들었다.이현은 문득, 첫날밤을 떠올리고는 미소를 흘렸다. 그때의 그녀는…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다.그의 얕은 웃음에 지윤이 눈을 가늘게 떴다.“지금… 웃으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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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장

세월의 그림자가 드리운 밤, 침실은 부드러운 불빛 아래 고요히 숨을 쉬고 있었다. 침대 위에 앉은 지윤의 손끝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서늘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던 지윤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곳을 감싸 쥐었다. 손끝이 위아래로 움직일수록 이현의 숨도 점점 거칠어졌다.그리고, 지윤 천천히 고개를 숙이는 순간, 이현은 숨이 끊어질 듯 흔들리며 낮게 신음을 삼켰다.“아… 아, 잠시… 흐읏…”스읍. 입술이 닿은 뒤 이어진 뜨거운 온기에 이현의 온몸이 전율했다.지윤은 눈을 감은 채, 온 감각을 집중해서 그를 느꼈다.이현은 눈을 감은 채 온몸이 굳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입술과 혀가 조심스럽게 움직일 때마다, 그는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맛있네...’그 생각이 고스란히 들려왔고, 이현의 가슴은 이상하게도 따뜻해졌다. 솔직한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순간이었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여인은 누구보다 솔직했고 누구보다 매혹적이었다.그녀의 혀가 움직일 때마다, 그의 모든 이성은 마치 침대 위에 버려진 듯 사라져 갔다.“준비됐나요…? 내 사랑.”그녀가 얼굴을 올리고 촉촉하게 젖은 입술을 핥으며 속삭였다.그리고는 그의 몸 위에 천천히 올라타며 양쪽 무릎을 벌려 중심을 잡았다. 그 순간, 그는 숨을 멈췄다.우아하게 피어난 매화 한 송이가 눈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젖은 꽃잎처럼 열린 그 모습은 도발적일 만큼 아름다웠다. 지윤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내려앉았다.스윽. 온기가 맞닿는 순간, 이현은 숨조차 고르지 못했다.“읏…!” 두 사람의 숨이 동시에 퍼져나갔다.그녀의 꽃잎이 자신의 침으로 반짝이던 그의 뜨거운 존재를 완전히 삼켜내는 순간, 한기가 느껴질 만큼의 짜릿함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들어… 온 것 같아요… 하아…”지윤의 떨리는 목소리가 퍼졌다.그녀의 몸은 숨을 몰아쉬며 반응했고, 사내는 숨을 내뱉으며 그녀의 허리를 감싸 쥐었다.“움직여봐, 지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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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장

가벼운 흔들림이 몸을 감싸 오며 잠을 깨웠다.지윤은 잠결에 몸을 뒤척이며 더 편한 자세를 찾으려 했지만, 묘한 기분이 계속 따라붙었다.‘음… 이 느낌… 왜 마차 위에 있는 것처럼 흔들리지?’‘지금 침대에서 자고 있어야 하는데…?’긴 속눈썹이 빠르게 파르르 떨린 뒤, 지윤은 눈을 떴다.눈앞에는, 이제는 익숙해질 법한 현 왕자 저택의 마차 천장이 있었다. 두터운 커튼 사이로 아침 햇살이 비집고 들어왔다.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상황을 파악하던 그녀가 고개를 들어보니 장난기 서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이현이 있었다.“지윤, 눈 떴구나?”“네…”아직 정신이 온전히 들지 않은 듯,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어젯밤 마지막 기억은… 이홍루 침대 위였는데…?’‘눈을 떠보니 마차라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뭐가 그렇게 혼란스러워?”그의 손가락 끝이 장난스럽게 그녀의 콧등을 톡 건드렸다.하지만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왜 아내가 지금 머릿속이 새하얗게 된 건지.“여긴 어디죠? 아니… 제가 왜 마차에 있는 거예요?”“오늘, 왕비께 차를 올리러 가야 한다고 했잖아.”‘아, 맞다!’지윤의 눈이 확 커졌다. 상황을 깨닫는 순간, 목소리도 함께 커졌다.“앗! 벌써 아침이라고요? 왜 저를 더 일찍 안 깨우셨어요? 왕궁에는 새벽에 들어가야 한다고…”“깨웠지.”그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어깨를 으쓱였다.“당신이 안 깼을 뿐이지.”지윤은 단숨에 눈을 치켜 떴다.“그게 누구 때문인데요? 분명 ‘두 번이면 충분하다’고 했죠? 그런데 당신은 새벽까지…”더 말이 이어지기도 전에, 그는 순식간에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술을 눌렀다.“부인, 지금은 길 위야. 밤에 우리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람들한테 다 들려주고 싶은 건 아니지?”‘아앗! 진짜 얄미워. 저 잘생긴 얼굴을 언젠가는 꼭 한번 할퀴어야겠어!’지윤은 분노를 억누르며 눈을 부릅떴다.어젯밤, 두 사람이 침대 위에서 서로를 휘감으며 주고받던 뜨거운 순간들이 번개처럼 스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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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장

지윤은 이현에게 더 이상 묻지 않고, 마음속 걱정을 그대로 꺼냈다.“그렇다면… 왜 저를 조금 더 일찍 왕궁에 데려오지 않으셨나요? 이 시각이라면… 왕비께서 저를 불쾌하게 보실지도 모르잖아요.”그 말을 들은 이현은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감아 안으며 나직하게 답했다.“이미 새벽에 사람을 보내 알려두었어. 내가 몸이 피곤해 일어나기 어려우니, 조금 늦을 수도 있다고.”‘하… 또 반하겠어…’지윤은 참지 못하고, 그의 뺨에 빠르게 입을 맞췄다.“그 말… 너무 사랑스러워서 상 주는 거예요.”이현의 입가에는 그 어느 때보다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 그의 가슴은 포근한 온도로 가득 채워졌다. 지윤을 알게 된 후로 그의 하루하루는 무언가에 씐 듯 달콤했다. 마치 꿀물 속에 잠겨 있는 듯, 모든 감정이 달콤하고 부드럽게 번져 갔다.“그렇다면… 오늘 아침 아내의 옷을 입혀 드린 공로는 보상받지 못하나?”그의 눈빛엔 쉽게 숨길 수 없는 기대와 장난기가 어른거렸다.지윤이 수줍은 듯 눈을 깜빡이며 답했다.“그 보상은… 오늘 밤에 드리겠습니다.”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친 채, 온화한 미소가 번졌다. 이현은 지윤의 이마에 천천히 자신의 이마를 기댔다. 숨결이 맞닿는 순간, 마치 깊은 약속을 나눈 듯 고요한 떨림이 흘렀다.“내 아내는 정말… 매일 더 사랑스럽군.”그렇게 마차는 늦은 아침이 되어서야 왕궁 앞에 도착했다.…마차의 문이 열리자, 주실의 측근인 진 시녀장이 기다리고 있었다.두 사람이 내리는 모습을 보며 진 시녀장의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도도하기로 유명한 현 왕자가 새 신부를 극진히 챙기며 다정하게 손을 잡고 내리는 모습이라니.‘만약, 송나은 왕비께서 살아 계셨다면… 이 장면을 보시곤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진 시녀장의 마음 한 편엔 그런 아쉬움과 기쁨이 동시에 자리했다.“진 시녀장.” 이현이 먼저 인사했다. 하지만 지윤의 손은 끝내 놓지 않았다.“안쪽으로 드시지요. 왕비께서 오래 기다리셨습니다.”…두 사람은 낯설지 않은 걸음으로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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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장

“감사합니다. 어머님.”지윤은 손가락으로 은은한 옥의 결을 쓰다듬으며 공손히 인사했다. 여우 같은 눈빛에는 이미 반짝이는 기쁨이 스며 있었다.‘하얀 옥에 봉황이 새겨져 있다니…! 이걸 팔면… 얼마나 받을까?’“…”‘나한테 금은보화가 부족한 것도 아닌데… 어찌 우리 부인은 저런 걸 볼 때마다 눈이 반짝일까. 남이 들으면 우리 집안 망한 줄 알겠군.’이현이 말없이 지윤을 흘겨보는 동안, 주실이 이야기를 이었다.“사실, 태정왕께서도 네 차를 직접 받고 싶어 하셨단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새벽부터 조정에 나가셔야 했다더구나. 큰일이 생겼다고 하더라.”“큰일… 말씀이십니까?”이현의 눈썹이 자연스럽게 좁혀졌다.그는 지윤의 손을 살며시 잡아 의자에 앉히며 말을 이었다.요즘은 나라 또한 조용했고, 자신이 지시한 용 왕자의 불온 세력 정리 말고는 그 어떤 보고도 없었다.“나도 자세한 건 모르지만, 아침에 조우 내관이 직접 와서 급보를 전했다더구나. 그래서 태정왕께서 즉시 조정에 나가셨고… 정 왕자도 급히 불려 나갔다더라.”마지막 말은 분명 지윤을 향한 듯했다. 정 왕자 또한 지윤의 차를 직접 받고 싶어 했다는 호의를 전하려는 의미였다. 그 마음을 짐작한 지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그러나 말을 더 잇기 전에 궁문 너머에서 내관이 큰 소리로 외쳤다.“정 왕자 드시옵니다!”주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오, 왔구나!”그녀가 사랑하는 친아들, 이정이 입장한 것이다.…이정은 태정왕 친아들이자, 주실의 유일한 자식이었다.후계자 자리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지금, 그가 선택 받길 바라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태정왕이 아직 후계자를 정하지 않았기에, 각 왕자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첫 왕비가 낳은 이는 공주뿐이었고, 후계의 자리는 오래 전부터 비어 있었다.지금까지의 평가를 보자면, 이정은 ‘장인수의 부패 사건’을 성공적으로 처리해 태정왕의 총애를 받는 중이었다. 반면 명 왕자나 용 왕자는 뚜렷한 공적이 없었고, 그저 맡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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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장

이정은 맞은편 의자에 앉아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실은… 꽤 급한 일이었습니다. 어머니.”이현이 눈썹을 올리며 관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모두가 조용히, 그의 이야기를 기다렸다.“서북의 서야성의 성주가 긴급 보고를 올렸습니다. 유난히 매서운 추위와 폭설로 인해 농토가 얼어붙고 굶주림이 이어지고 있다고. 그래서 성주가 수도에 구호 식량을 요청했다고 합니다.”“서야성이라면…”주실이 성 이름을 되뇌며 고개를 갸웃했다.“북쪽에 있는 그 성이구나. 빠른 기병이라면 하루면 도착하는 곳이 아니냐?”“그렇습니다. 어머니.”이현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그곳의 성주는… 겨울 대비 식량을 미리 비축해 둔 것이 아니었단 말이냐?”이정은 고개를 저으며 설명했다.“올해 겨울은 유달리 혹독했다고 합니다. 근처 마을 사람들이 대거 서야성으로 피신해 오는 바람에 기존에 비축해 둔 식량이 빠르게 소진됐다고 합니다. 형님.”그 외 인근의 용천성, 창린성도 상황이 비슷하다는 보고가 있었다. 하지만 두 곳은 난민이 적어 성 내부의 식량으로 버티고 있지만 서야성까지 도울 여력은 없다는 것이었다.“그래서…”이정의 눈빛이 더 밝아졌다.“태정왕께서는 재무부장 서휘에게 명을 내려 내일 새벽 곧장 서야성으로 식량 천 수레를 출발시키라고 명하셨습니다.”그 표정엔 기쁨이 감춰지지 않았다.주실의 눈매가 가늘게 휘어졌다. 아들의 표정만 봐도 이미 알 수 있었다.“설마… 네가?”“네. 어머니.”이정은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태정왕께서 저에게 식량 호송 임무의 총지휘를 맡기셨습니다!”“잘됐다! 아주 잘됐어!”주실은 만족스레 연이어 말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이 임무를 맡겼다는 건 즉, 왕께서 너를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다.”주실은 왕이 아들에게 맡기는 그 어떤 임무도 하찮게 여기지 않았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아들이 그것을 완벽히 해낸다는 것 자체가 ‘시험을 통과’ 했다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이정은 이미 장인수 부패 사건을 처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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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장

“지윤?”주실이 부드럽게 부르는 순간, 지윤의 생각이 뚝 끊겼다. 멍하니 허공을 보던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돌리며 허둥지둥 대답했다.“네, 네! 어… 어머님!”이현은 그 모습을 보고 답답한 한숨을 몰래 내쉬며 의자에 기대어 천장을 바라봤다.‘어머니… 왜 하필 지금 부르시는 겁니까…’주실은 그런 생각은 전혀 모른 채 밝은 음성으로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곧 점심 시간이 되겠구나. 가기 전에 내가 준비한 음식을 함께 하고 가거라.”“네! 물론입니다. 어머님.”음식이라는 단어가 들리자마자 지윤은 생각의 조각을 잊은 듯 눈을 반짝이며 답했다.“왕궁 음식을 맛보는 건 처음입니다!”“…”이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처음이라니? 지난 태정왕 탄신연에서 먹은 건 뭐였단 말이지? 대체 그 기억은 어디로 날려버린 거냐고…’주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잘됐다.”그녀는 옆에 있던 진 시녀장에게 고개를 돌렸다.“진 시녀장, 어서 음식상을 준비하게.”“알겠습니다. 마마.”진 시녀장이 물러나자, 곧 시녀들과 내관들이 부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그때,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주실이 이정을 바라봤다.“그러고 보니… 하나 묻는 것을 깜빡했구나. 명 왕자는 어찌 되었느냐? 이번 임무를 태정왕께 청하지 않았더냐?”이정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차분히 답했다.“운이 좋았습니다. 어머니. 오늘 둘째 형님께서 갑자기 병이 나서… 조정 회의에는 참석조차 못하셨지요.”“평소에는 그렇게 멀쩡하던 왕자가…”주실은 고개를 갸웃했다.이정은 차를 내려놓으며 덧붙였다.“둘째 형님의 신하들이 대신 태정왕께 요청을 올리긴 했지만, 왕께선 일이 급하다고 판단하시고, 회복이 불확실한 자에게 맡길 순 없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임무를 내려주셨습니다.”“좋다! 정말 잘된 일이다!”주실은 쾌활한 웃음을 터뜨렸다.‘명 왕자는 평소에 아픈 적도 없는 아이인데… 이럴 때 아프다니… 하늘이 내 아들을 돕는구나.’그녀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강렬했다.지금 이 순간조차 눈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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