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문제적 군주의 아내: Chapter 121 - Chapter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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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장

“아… 배부르다...”지윤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홍춘궁 밖으로 걸어 나왔다. 한 손은 남편의 팔에 팔짱을 낀 채, 다른 손은 살짝 나온 아랫배를 슬쩍 문질렀다.“왕궁 음식은 정말 최고예요.”이현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자꾸 배를 쓰다듬고 다니면 사람들이 뭐라 하겠어?”“내가 벌써 임신시키기라도 한 줄 알겠다.”“그럼… 저더러… 뚱뚱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서방님?지윤은 입술을 비죽 내밀며 서운한 티를 냈다.이현은 칼날 같은 눈썹을 가볍게 치켜올렸다.“난 살쪘다는 말은 단 한 마디도 안 했다??“그 작은 머릿속은 어쩜 늘 빠르게 오해를 만들어 내는지 모르겠군.”그 말과 함께 이현은 장난스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설령 조금 통통해진다 해도 원상태로 돌리는 방법쯤은 있지.”그의 복숭아꽃 같은 눈빛이 장난스레 반짝였다.“직접 체험해 볼 생각은 없어?”‘대체 왜 결혼하고 나니 사람이 이렇게… 장난꾸러기가 된 거냐고요…’“흥, 몰라요!”지윤은 그 말에 얼굴을 붉히며 팔짱을 풀고,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종종걸음으로 마차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이현은 그 귀여운 도망을 보고 피식 웃었지만, 이내 눈빛을 날카롭게 바꿨다.“효성.”“네. 왕자님.”뒤에 있던 효성이 즉시 대답했다.‘역시다… 왕자비가 안 보이면 분위기가 달라진다.’“서야성에 사람을 보내라.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왜 나에게는 보고조차 없었는지 전부 조사해라.”“명 받들겠습니다.”효성은 명령을 받고 곧장 물러났고, 이현은 그제야 걸음을 재촉해 이미 마차에 올라탄 지윤을 향해 다가갔다.…마차가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마차 안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함 속에서도 지윤은 말이 끊이질 않았다.“아, 맞다. 한 가지 상의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서방님.”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현이 듣고 있는 걸 확인하자, 바로 말을 이었다.“서연 말이에요. 그 아이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어요. 언니의 몸종으로 묶여 있는 인생을 그만두게 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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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장

결혼식이 끝나고 사흘째 되는 아침.은은한 황금빛 햇살이 이훙루의 침실에 드리운 고운 비단 장막을 스며들 듯 비추었다.연분홍빛 매화 자수가 놓인 비단 의복을 입은 지윤은 단정하게 머리를 올려 묶고도, 어린 소녀의 생기와 청순함을 잃지 않은 모습이었다.침실 밖에서 직접 예물 상자를 하나하나 점검하고 있는 이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서방님, 선물들은 다 준비된 건가요?”지윤이 묻자, 이현은 고개를 돌리며 부드럽게 웃었다.“물론이지. 내 아내에 걸맞은 품격을 갖추었으니 안심해도 좋아.”작은 행렬은 지윤과 친정으로 조용히 향했다.단정한 장식의 마차가 앞장서고, 뒤이어 고급 비단으로 덮인 예물 상자들을 실은 여러 대의 수레가 이어졌다. 은빛 갑옷을 입은 호위병들이 정렬된 대오로 양쪽을 지켰다.마차 안, 지윤은 창밖을 보며 친정집을 떠올렸다.비록 사흘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부모와의 정은 여전히 깊고 그리움은 짙었다.그런 마음을 눈치챈 이현은 조용히 그녀의 손을 감싸며 물었다.“부모님이… 많이 그리워?”지윤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네… 자주 꾸중을 듣긴 했지만, 막상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이상한 기분이에요.”“그렇다면… 꾸중 듣는 걸 좋아하는구나?”이현은 웃음 섞인 말투로 장난을 건넸다.“그런 건 아니라니까요!”지윤은 투덜대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음… 장인어른, 장모님께 말씀을 좀 드려야겠군. ‘우리 아내는 혼을 좀 내줘야 그리워한다’고.”“제가 언제요!”그 말에 지윤은 팔짱을 끼고 콧김을 내쉬며 말했다.“요즘 들어서는 서방님이랑 대화가 잘 안 되는 느낌이에요!”그 말에 이현은 끝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 내 웃었다.‘이 여인은… 정말이지 내 삶에 가장 큰 즐거움이구나.’…마차가 친정집 앞에 다다르자, 저택 대문은 즉시 열리고 호위들은 무릎을 꿇었다. 마차가 멈추자 양성이 먼저 다가와 문을 열어 주었다.지윤은 가슴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끼며 마차에서 내려, 익숙한 대문을 올려다보았다. 그 뒤로 이현도 내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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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장

“그럼, 물론이지.”채윤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에 서연을 매화정으로 보내줄게.”“고마워. 언니.”지윤은 환한 미소로 답했다.…식사를 마친 뒤, 이현은 임 후작에게 ‘바둑 한 판’ 제안을 받고 응접실로 향했다. 장인과 사위 간의 관계를 다지기 위한 시간이기도 했다.그 사이 지윤은 애나와 애춘을 데리고 매화정으로 먼저 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연이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애나, 애춘.”지윤이 낮은 목소리로 지시했다.“저기 밖에서 지키고 있어 줘.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고.”“네, 마마.”이제는 자연스러워진 호칭이 부드럽게 흘러나왔다.둘은 눈치 있게 물러났고, 매화정의 문이 닫히자 지윤은 중앙 의자에 앉아 서연에게 손짓으로 자리를 권했다.“큰아가씨께 들었어요. 두 시녀에게 화장법을 가르치라셨다면서요? 그런데 왜 두 사람은 나가라고 하신 건지…”서연은 의아해하며 자리에 앉았다.“지금은 우리뿐이니까, 평소 말투로 해도 돼.”지윤은 턱을 괴고 고개를 기울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그리고 난… 약속을 지키러 왔어.”“약속?”서연이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무슨 약속?”“네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어주겠다던 약속. 이지은.”그 이름을 듣는 순간, 서연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이미 포기했고, 이미 단념했으며, 자신의 이름조차 버린 줄 알았다.‘서연’이라는 노비 신분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인생에… 지금, 누군가가 ‘다시 되찾아주겠다’고 말하고 있었다.“무슨… 뜻이야?”떨리는 목소리. 두려움과 희망이 뒤섞여 있었다.“왕자님과 상의했어.”지윤은 천천히 손목 사이에서 작은 약봉지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먼저 이 약을 먹어.”“약…?”서연이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그래. 아프게 만드는 약이야.”지윤은 단호하게 설명을 이어갔다.“약효가 나타나면 내가 바로 왕궁의 의원을 불러올 거야. ‘병세가 기이해서 원인을 찾기 위해 치료를 진행하겠다’는 명목으로 널 데려갈 거야. 그리고 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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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장

손가락 관절이 뚜렷하게 드러난 긴 손가락이 검은 돌 하나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속도는 더뎠지만, 그 한 수만으로도 상대방에게 압박감과 긴장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장인어른, 두시지요.”임 후작은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검은 돌들이 견고한 벽을 이루며 바둑판을 장악하고 있었고, 자신의 흰 돌은 흩어진 고립무원 상태였다. 숨 쉴 구석조차 보이지 않자, 고개를 들어 사위를 바라보았다.‘사위는 장인에게 봐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군.’결국 임 후작은 한숨을 내쉬며 돌을 내려놓았다.“이 늙은이는… 왕자께서 이렇게 바둑에 능하신 줄 미처 몰랐습니다. 저의 실력은 아직 미숙할 뿐입니다.”“실력이라기보단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장인어른께서 봐주신 걸까요.”이현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바둑알을 정리했다.그러다 무심하게 말하듯 물었다.“근래 조정의 일들이 꽤나 번잡하시다 들었습니다. 몸은 괜찮으신지요?”“흠. 요즘 조정도 여러모로 어수선하긴 합니다.”임 후작도 돌을 거두며 고개를 끄덕였다.“며칠 전, 제가 왕궁에 들러 왕비를 뵈었을 때 서야성의 가뭄 소식을 들었습니다. 태정왕께서… 구호 임무를 정 왕자에게 맡기셨다지요?”“그렇습니다.” 임 후작은 이현이 조정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자세히 부연했다.“서야는 겨울이 혹독해져 주변 마을 사람들이 대거 유입된 탓에 곡식이 바닥났다고 합니다.”“도움이 될 수 있는 근처 도시 용천, 창린도 이미 같은 상황을 겪고 있었다지요. 다만 그 도시는 직접 수도에 도움을 요청할 정도는 아니었고, 서야만은 사정이 급했다고 합니다.”“왕께서는 우선 재무부장을 불러 창고 곡식이 충분한지를 확인하셨고, 눈치가 빠른 재무부장 서휘는 이미 회의 직전에 조사를 시켜 충분하다는 보고를 드렸지요.”“그래서 정 왕자를… 보내게 된 것이군요?”“그렇습니다.” 임 후작은 조심스레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현 왕자께서는 정 왕자와 함께 왕비 밑에서 자랐지요. 이번 일은… 아마 조정의 선택이자 입장 정리가 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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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장

“왕자님, 기상하실 시간입니다!”친근한 음성이 방 안에 울렸다.푹신한 침대 위, 부드러운 이불 속에서 이정이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뒤집었다.“지연… 나 지금 막 잠들었단 말이다…”그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당겨 세상과 단절하려 했다.지연은 한숨을 쉬었다.“그야 왕자께서 창린성의 성주와 새벽 두 시까지 술을 드셨으니까요. 당연히 이제서야 겨우 잠이 드신 것이지요.”대답이 없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조용해지더니 곧, 얕은 코 고는 소리가 이불 속에서 새어나왔다.“푸우우우웁…”“왕자님….” 지연은 탄식하듯 부르더니, 그가 가장 잘 반응하는 한 가지 약점을 떠올렸다. 입가에 슬쩍 미소가 번졌다.“왕자님! 왕비께서 이미 도착하셨습니다! 왕자께서 아직 주무시는 줄 알면 크게 노하실…!”“뭐? 어머니가 오셨다고?”“잠깐, 나 일어났어요! 깼어요! 악! 꼬집지 마세요! 어디에 계시… 응?”이불이 순식간에 벗겨지며 이정이 번개처럼 일어났다. 하지만 방 안엔 지연 혼자 서 있었다.“나를… 속였구나?”“속이지 않으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실 거잖습니까?” 지연은 태연하게 이불을 정리하며 말했다.“어서 준비하십시오. 이미 행렬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행렬…?”이정은 눈을 깜빡이며 머리를 굴리다가 곧 기억이 번쩍 하고 돌아왔다.“아! 그래! 서야성으로 가는 수레 행렬!” “빨리! 빨리 옷부터 입혀라!”지연은 미리 준비해둔 원정용 행군복을 꺼내 빠르게 입혀주며 상황을 설명했다.“해가 뜰 무렵, 류 부장군이 ‘성 밖에 천 대의 수레를 모두 정렬했다’고 보고했습니다. 왕자님만 준비되시면, 바로 출발할 수 있습니다.”“정말 다행입니다. 이번 행렬을 류 부장군이 맡아준 것 말입니다.”이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지. 어제 용천성에서도 그랬지. 내가 뭘 하든 행렬은 항상 먼저 준비되어 있었어. 덕분에 내가 신경 쓸 일은 하나도 없었다.”지연은 미소를 보냈다.“그러니 서야성에도 일정에 맞춰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이정은 만족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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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장

이틀이 흘렀다.약효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때라는 말 그대로, 이현의 궁중 어의가 남긴 처방은 정확했다.이날 아침, 지윤은 작전 실행을 구실로 현 왕자 저택의 창고에서 정주에서 만들어진 고급 비단 수십 필을 꺼내 들고 임 후작의 저택으로 향했다.…“어머니!”지윤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저택에 들어서자, 차 부인은 두 팔을 벌려 딸을 맞이했다.“또 왔어? 이틀 전에도 왔었지 않았니. 너무 자주 친정을 찾으면 사람들 입방아에 오른단다. 현 왕자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라도 돌면 어찌 하려고 그래.”“알고 있어요. 어머니.” 지윤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며, 능숙하게 차 부인과 채윤의 팔을 붙잡고 응접실로 향했다.“창고에서 정주에서 만들어진 비단을 발견했어요. 어머니와 언니에게 어울리는 옷을 지어드릴까 해서요.”그녀가 손짓하자, 수십 필의 고급 비단이 줄지어 정면에 놓였다.“너… 이걸 훔쳐온 건 아니겠지?”차 부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지윤의 팔뚝을 살짝 툭 쳤다.“어머니!” 지윤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훔쳤다면 이 많은 비단을 어찌 들고 나올 수 있었겠어요? 그리고… 현 왕자께 이미 허락까지 받았다고요.”계산 빠른 대답. 말끝마다 영리함이 묻어났다.지윤의 손짓에 따라 애나와 애춘이 비단을 펼쳐 보이자, 알록달록 수십 필의 광택 있는 비단이 한껏 모습을 드러냈다.차 부인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아휴, 간 떨어지는 줄 알았구나. 비단을 어서 보여다오.”여러 개의 의상실을 직접 운영하는 수도 최고의 옷장수답게, ‘비단’이라는 단어는 차 부인의 관심을 단번에 사로잡았다.차 부인이 비단을 만져보며 감탄에 빠진 사이, 지윤은 시선을 돌려 말했다.“언니, 서연은?”언니 뒤에는 시녀 서진만 서 있을 뿐이었다.채윤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서연이 좀 아파.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어서…”지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곁에 서 있던 애춘을 향해 아무렇지도 않게 지시했다.“그럼 애춘, 궁중의 어의를 불러와. 서연의 상태를 확인하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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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장

15분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시녀들의 처소 문이 천천히 열렸다.주 의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나오는 순간, 분위기는 이미 어두워졌다.채윤은 거의 달려가다시피 그 앞에 멈춰 섰다.“서… 서연은 괜찮은가요? 치료는 가능한가요? 아니 혹시…?”“언니, 잠깐 진정해.”지윤이 자연스럽게 끼어들며 흐름을 잡았다.“먼저 설명을 듣는 게 좋겠어.”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듯, 채윤은 숨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 의원님. 제 초조함이 지나쳤습니다…”“충분히 이해합니다.”주 의원은 조용히 미소를 보였다.지윤이 대신 물었다.“서연의 상태는 어떤가요?”“음… 증세가 꽤 특이합니다.”주 의원은 잠시 말을 고르며 무거운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열이 비정상적으로 높아 몸은 뜨겁게 달아오르는데… 환자는 오히려 냉기가 뼛속까지 스민 듯 떨고 있습니다. 게다가…”주 의원은 잠시 말끝을 흐렸다.“게다가 피부에 붉은 발진도 올라왔습니다, 그것도 속옷 안에만요.”채윤의 안색이 서서히 하얗게 질려갔다.“그렇다면… 치료할 수는 있는 건가요?”“이 부분은…”주 의원은 잠시 고민하다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만… 현실적인 가능성도 솔직히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말씀해 주십시오.”채윤은 마른 숨을 삼키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주 의원이 처소를 한 번 바로본 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상태가 중합니다. 마음의 준비는… 어느 정도 필요하겠습니다.”그 말이 끝나자 채윤은 숨을 삼키며 뒤로 비틀거렸고, 마침 옆에 있던 시녀가 급히 그녀를 잡아주었다.“그… 그 정도인가요?”“맥박도 약하고, 호흡은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의식도 흐릿하고, 얼굴은 창백합니다. 모두 중증의 징조입니다.”주 의원은 잠시 말을 멈추고 이어 말했다.“당분간… 제가 데려가 직접 치료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부탁드립니다… 부탁드릴게요. 주 의원님!”희망이 단 한 줄기라도 있다면, 채윤은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눈가를 붉히며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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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장

늦은 오후. 마차가 조용히 마당 안으로 들어왔다.지윤은 먼저 애나에게 서연을 손님용 별채로 옮기게 하고, 자신은 익숙한 발걸음으로 이홍루로 향했다.그때, 서고 앞을 지키고 서 있는 효성을 발견했다.“어? 왕자께서 이미 돌아오셨나요?”지윤의 발걸음이 곧장 서고로 향했다.“왕자비마마.”효성은 즉각 예를 갖춰 고개를 숙였다.“왕자께서는 안에 계십니다.”이현의 저택에 들어온 이후, 지윤은 누굴 만나든 첫 질문은 늘 똑같았다.“그분은 어디 계신가요?”이제는 누가 먼저 말해줄 정도로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지금… 바쁘신 건 아니죠?”“아… 아닙니다.”효성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지금은 절대 방해해선 안 되는 때였다. 평소라면 누구든 쫓겨났을 것이다. 혹은…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었다.그러나, 지금 이 앞에 있는 이는 ‘그녀’였다.망설일 필요가 없었다.왕자비가 들어가겠다는 데 누가 막겠는가. 천하의 현 왕자라도 차마 그녀를 책망하진 못하리라.효성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주었고, 지윤은 자연스럽게 서고 안으로 들어갔다.…서고는 고요했다. 단 하나, 묵직한 한숨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그 한숨 속엔, 걷잡을 수 없는 고민과 무력감이 섞여 있었다.그가 누군가의 발걸음을 감지한 순간,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남자는 입을 열어 꾸짖으려다가… 말을 멈췄다.저 발걸음. 그 숨결.“지윤…”지친 목소리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지윤은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칸막이 뒤에서 얼굴을 내밀었다.“서방님…”이현은 의자에 기대 앉은 채 다리를 자연스럽게 벌리며, 무심한 듯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두드렸다.‘이리 와 앉아.’말 한마디 없었다. 그 가벼운 초대에 지윤은 망설임 없이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지윤은 익숙한 듯 이현의 무릎 위로 몸을 올렸고, 두 팔을 그의 목에 감은 채 차분히 자리를 잡았다.“오늘 일… 많이 힘들었어요?”그녀는 자그마하게 속삭이며, 기댈 수 있는 가장 편한 자리를 찾아 몸을 기댔다.부드러운 어조. 약간의 애교.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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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장

왕좌.그것은 한 번도 꿈꾼 적 없는 자리였다.젊은 날, 전장의 선봉에서 철면 장군으로 싸우던 시절, 잠깐씩 마음이 흔들린 적은 있었다.‘내가 직접 왕이 되어 정치를 바꿔보면 어떨까…?”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는 어떤 진실을 보게 되었다.밤낮없이 국정을 돌보는 태정왕의 뒷모습, 아직도 강건하신 그의 앞에서 미리 권력을 탐하며 다투는 왕자들의 짐승 같이 추악한 모습. 그 모든 것이 서서히 마음을 지치게 만들었다.심지어 정 왕자, 왕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정 왕자조차 왕의 눈에 들기 위해 끝없는 계산, 끝없는 전략, 끝없는 노동 속에 살아가야 했다.그 모두가 오직 세자, 후계자라는 이름 하나를 위해서였다.하지만 그 자신은 달랐다.양자로 자란 왕자.친모 송나은은 자신을 낳다 세상을 떠났고, 뒤를 받쳐줄 정치적 기반도 존재하지 않았다.“어떻게 행동하라”는 강요도 없이 어릴 적부터 자유가 허락되었다. 아무도 그에게 “후계자가 되라”고, “권력을 쥐라”고 말하지 않았다.그렇기에, 그는 언제나 자유로웠다.심지어 태정왕이 직접 군권을 맡기며 여러 왕자들이 비밀리에 키우던 병력들을 박살내라고 명령했을 때조차, 그는 마음 깊은 곳에서 갈등만 느꼈을 뿐이었다.겉으로는… 바람 따라 움직이는 잔잔한 수면.그 누구도 자신의 삶을 구속하지 못했다.하지만 그 깊은 바닥에는 다른 왕자들과 다르지 않은 ‘권력의 갈증’이 조용히 도사리고 있었다.그렇다.그 갈증은 늘 존재했다.다만 왕이 내어준 군권이, 그 불을 잠시 눌러두고 있었을 뿐.이현은 처음으로 혼란이라는 감정을 진지하게 마주했다.왜냐하면…“서방님이… 왕좌에 앉습니다.”지윤의 말에 거짓이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그리고 그 분석은 언제나 날카로웠다.정말… 내가 왕이 되는 걸까?그렇다면… 언젠가는 이 권력투쟁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어야 한다.다른 왕자들과, 다른 귀족들과 ‘진짜 싸움’을 해야 한다.“서방님?”그 때, 달콤한 목소리가 그의 생각을 끊었다.차가웠던 복숭아꽃 눈동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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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장

“폐하, 현 왕자께서 알현을 청하셨습니다.”조우 내관이 낮은 목소리로 아뢰며 조심스레 고개를 숙였다.지금 태정왕은 용 왕자의 병력 불법 소집 관련 상소를 검토 중이었다.“현 왕자?”태정왕이 눈썹을 치켜올렸다.“무슨 일로 왔다는 것이냐?”“알현 이유는 밝히지 않았습니다.”“설마 용 왕자 처리 문제를 따지기 위해 온 것은 아니겠지.”태정왕은 진저리치듯 탄식했다.자기 혼례 때 얌전히 들어오라 했더니… 그 혼례 전날, 용 왕자의 상소문을 내던지며 ‘자식은 아버지가 직접 훈계해야 한다’고 말하고는 사라진 장본인.‘그때부터 눈치 챘어야 했어… 전부 계산된 복수였다는 걸.’조우 내관은 속으로 헛웃음을 삼켰다.‘왕가가 싸운다면, 신하는 조용히 구경하며 과자나 먹는 것이 상책이지요.’“들여보내라.”태정왕은 결국 손을 내저었다.사랑했던 송나은이 낳은 아들 앞에서는 언제나 마음이 약해지는 자신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폐하께 인사 올립니다.”현 왕자는 단정히 무릎을 꿇으며 예를 올렸다.“그래, 일어나거라.”“오늘은 무슨 일로 궁에 들어온 것이냐? 용 왕자의 문제라면 이미 보고 받고 있으니, 답을 재촉하진 말거라.”“용 왕자가 아니라, 정 왕자 때문입니다.”태정왕의 눈빛이 바뀌었다.“정 왕자?”“예. 제가 사람을 보내 서야성의 상황을 조사한 결과, 정 왕자가 배급한 구호미는 ‘썩은 쌀’이었습니다. 그것도 ‘배급용’으로 포장된 채로 말입니다. 그 탓에 백성들이 복통을 호소하고, 정 왕자에게 크게 분노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뭣이라?”태정왕이 책상을 내려치며 크게 분노했다.“그 정도 일도 처리 못 하다니, 대체 정신이 있는 것이냐?”“폐하.”현 왕자의 호칭과 말투가 순간 미묘하게 달라졌다.아들의 어조가 아닌, ‘정치인’의 어조.“이번 일은… 정 왕자의 실수가 아니라, 누군가의 의도적인 함정이라 생각됩니다.”“정 왕자 편을 들지 말라!”태정왕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사이란 건 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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