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미처 반응하기 전에, 충성후의 손이 번개처럼 뻗어 가까이 있던 병사의 허리의 검을 낚아챘다. 날카로운 칼끝이 그의 눈에 비치며 차갑게 반짝였다.그는 눈을 감고 팔을 돌렸다. 자신의 목을 베어, 아들과 함께 죽기 위해서였다.그러나, 칼날은 끝내 그의 목에 닿지 않았다.충성후가 눈을 번쩍 뜨고 내려다보니, 붉은 피가 바에 넓게 퍼져 있었다.그리고 그 피는, 어떤 누군가가 칼날을 맨손으로 붙잡아 멈춰낸 피였다.순간, 조정의 모든 눈이 크게 흔들렸다.“태자!”태정왕의 외침이 가장 먼저 폭발했다. 상현은 본능적으로 먼저 정신을 차리고 충성후를 강하게 걷어차 쓰러뜨렸다. 그와 동시에 이현은 손에서 검을 놓았다무거운 검은 피가 뭍은 쇳덩이가 ‘쾅’ 하고 바닥에 떨어지며 그 소리에 모두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인식했다.“어의!” 태정왕은 호통치듯 외쳤고 조우 내관은 곧장 달려가 어의를 불러왔다.핏줄기 가득 흐르는 손을 내버려둔 채, 이현은 곧장 충성후 앞까지 걸어갔다.“진정 그 죄를 갚기 위해 죽으려 한 것인가? 아니면… 북방의 고통을 피하려 한 것인가?”이현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무엇 때문인지는… 스스로 알 터.”“저, 저는… 정말 죄를 갚고자…”충성후는 더듬거리며 변명했다. 숨겨둔 속내가 드러난 탓이었다.둥근 체형의 어의가 달려와 약상자를 펼쳤고 이현의 손에 피가 많이 흐르는 걸 보자 곧장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하지만 태자 본인은 고통을 전혀 느끼지 않는 듯 무표정했다. 그저 손을 내어 치료하기 쉽게 도와줄 뿐이었다.치료가 끝나자, 이현은 다시 충성후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정말 죄를 갚고 싶다면, 목숨을 버리지 말아라.”“살아서 북방의 백성에게, 몸으로 죄를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그는 병사들에게 명했다.“박씨 가문의 일가를 모두 확보하고,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무사히 북방까지 이송하라. 그곳에서 그들이 등에 진 죄를 끝까지 갚을 수 있도록 하라.”“폐하… 폐하…”점점 멀어져 가며 끌려가는 충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