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문제적 군주의 아내: Chapter 261 - Chapter 270

314 Chapters

261장

“태자 저하.”애나가 목소리를 높여 부르며 동궁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오는 이현을 맞이했다.그녀가 내민 쟁반 위에는, 얼굴의 윗부분만 가려주는 하얀 여우 가면이 놓여 있었다.이현은 그것을 본 순간, 지윤의 입덧을 해결할 방도가 생겼다는 것을 곧바로 깨달았다.그는 아무 말도 묻지 않고 그대로 가면을 집어 들고 착용했다. 그 사이 애나는 기쁜 목소리로 재빨리 상황을 전했다.“태자 저하께서 부재하신 동안, 태자비 마마께서는 줄곧 그리워하셨습니다. 그래서… 얼굴 전체만 보이지 않으면 가까이 계셔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하시며… 가면을 준비하셨습니다.”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식당으로 들어섰다. 따뜻한 음식들이 줄지어 놓인 식탁 앞, 매 순간 그리워했던 여인이 가냘픈 모습으로 서 있었다.그 미소를 보는 순간, 한겨울처럼 얼어붙어 있던 가슴이 따스한 봄바람처럼 녹아내렸다.“서방님…”느슨한 치마를 입은 지윤이 며칠만에 보는 남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이현은 재빨리 다가가 두 팔을 벌려 그녀가 넘어지지 않도록 막아주었다.“지윤, 너무 빨리 걸으면 안 돼.”얼굴을 본 지 고작 몇 순간, 벌써 걱정부터 하는 그가 서운했는지, 지윤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그저 그리워서 빨리 달려왔을 뿐인데… 이렇게 혼내시다니요. 흐윽…”맑은 눈물이 순식간에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이현은 순간 얼어붙은 듯 어쩔 줄 몰랐다.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시녀들의 지친 표정과 맞닥뜨렸다.“요즘 태자비 마마께서는 감정 기복이 심하십니다. 하지만 임신 중에는 흔한 증상이오니, 부디 마음 놓으십시오.”그제야 이현은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는 지윤을 번쩍 들어 올려 식탁의 의자에 앉히고는, 그녀를 품에 안은 채로 식탁에 놓인 음식을 찬찬히 살폈다.“이 음식들은… 어의의 조언에 따라 준비하였습니다. 태자비 마마의 영양 보충을 고려해 만든 식단입니다.”향기로운 쌀죽에 혈기를 보충하는 구기자를 살짝 섞은 것, 맑고 부드러운 인삼·표고버섯 닭곰탕, 입덧을 진정시켜주는 생강·매실을 곁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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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장

붉은 장막이 부드럽게 내려앉으며 문득, 바람 한 점 없는 두 사람만의 세계를 만들어냈다.흰 여우 가면을 쓴 채 지윤을 바라보던 이현의 눈빛엔, 갈망과 함께 조심스러운 근심 또한 서려 있었다. 그 시선이 지윤의 아릿하게 볼록한 아랫배에 머무는 순간, 그녀는 곧장 그의 얼굴을 감싸며 입맞춤을 내려주었다.부드럽고도 깊은 숨결이 서로의 심장을 어루만졌다.“어의께서 무리하지만 않는다면… 괜찮다고 하셨어요.”두 시선이 곧게 맞닿는 순간, 이현은 더 이상 숨기지 않고 그녀의 입술에 응답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 가면이 스칠까 걱정한 그는 잠깐 숨을 돌리고 말했다.“지윤, 잠시 눈을 감아주겠어?”그녀가 순순히 눈을 감자, 이현은 가면을 벗고 부드러운 천으로 그녀의 눈을 가려주었다.“이 가면이… 혹시라도 당신 피부를 다치게 할까 걱정돼서.”그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지윤은 조용히 숨을 내쉰 뒤, 그의 손에 몸을 맡겼다.이현은 이내 옷 매듭을 풀기 시작했다. 초를 흔드는 바람 속, 그녀의 풍만하고 완벽한 몸매가 드러나며 빛을 발했다.아이를 갖게 되면서, 그녀의 몸의 몇몇 부분은 예전보다 더욱 탐스럽게 변해 있었다. 전보다 부드러워진 곡선, 생명을 품은 살결엔 어느 때보다 깊은 빛이 깃들어 있었다.이현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다짐했다.‘어의의 말을 기억하자. 오직 부드럽게.’이현은 호흡을 가다듬고 몸을 일으켜 자신의 옷도 벗어 침대 아래로 던져버렸다.넓은 침대 위에는 두 개의 그림자만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남았다. 그는 몸을 숙여 그녀 위에 겹쳤지만, 그녀의 배에 압력이 가해지지 않도록 몸을 긴장시켰다. 두 손은 그녀의 부드러운 살갗을 어루만지며 부드러운 봄바람을 태풍으로 바꾸어 놓았다.촉촉한 입술과 혀끝은 익숙한 매화 향이 나는 그녀의 목덜미 구석구석을 헤매고 다녔다.한참을 목덜미에 머물던 그의 입술은, 다른 곳을 찾기라도 하는 듯 어깨를 타고 아래로 내려와, 이윽고 봉긋하게 솟은 탐스러운 가슴에 도달했다. 이현은 한 손으로는 더욱 풍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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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장

“태자 저하, 태자비 마마, 이쪽에 앉으시지요.”“저희의 초대에, 이렇게 귀한 걸음까지 해주시다니 송구할 뿐입니다.” 이현은 기분 좋은 미소를 띠며, 배가 부풀어 오른 지윤을 조심스럽게 부축해 앞줄에 마련된 의자에 앉혔다.고급 비단으로 덮인 의자에는 푹신한 방석까지 마련되어 있었지만, 일곱 달이나 된 몸을 움직이기에는 그 편안함조차 버거웠다. 그래도 다행히, 최근 들어 ‘남편 얼굴만 봐도 구역질 나는 증세’는 사라져 이현이 편히 돌볼 수 있게 된 상태였다.진원후 구성모 장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태자 저하와 태자비 마마께서 이 미천한 자의 아들 폐백에 직접 참석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집안에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옵니다.”“태자비 마마께서 많이 불편하실 텐데…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말씀해주십시오.” 홍 부인도 따뜻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지윤은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는 배를 어루만지며 대답했다.“지금… 살짝 배가 고파지는데요, 간단한 간식이라도 내어주실 수 있을까요?”“그럼 당연히 준비해 드려야지요.” 홍 부인은 부드럽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 장군 함께 두 사람만의 시간을 배려하듯 자리를 서둘러 비켜 주었다.이현은 옆자리의 그녀를 흘깃 보았다. 배를 쓰다듬는 손길이 꽤 진지했다.“또 배가 고픈 거야? 나오기 전에 어머님께서 보내주신 계화꽃 과자를 한 상자나 비웠던 것 같은데?”“그건 제가 먹은 것이 아니라 우리 복덩이가 먹은 거예요.”지윤은 배를 어루만지며 배 속의 아이에게 붙인 애칭까지 부르면서 씨익 웃었다. 이현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지만, 더 이상은 말을 아꼈다. 지금 함부로 말을 꺼냈다간 ‘나를 또 혼내는 거예요?’ 혹은 ‘왜 비꼬시는 건가요?’ 같은 말과 함께 눈물이 떨어질 법했다. 지윤은 임신 후 감정 변화가 잦아졌다. 남편의 한마디가 칭찬으로 들릴지, 꾸짖음으로 들릴지 전혀 예측이 불가능한 상태였다.그는 조심스럽게 시선을 돌려 구씨 가문 저택의 대청을 살폈다.붉은 비단 장막이 천장에서 길게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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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장

“신부 가마가 도착했다!”문 앞에서 울려 퍼진 외침에 대청 안은 사람들은 다시 부산스레 움직이기 시작했다.홍 부인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일들을 하인들에게 지시한 뒤, 이현과 지윤이 앉아 있는 상석 오른편의 의자에 돌아와 자리를 잡았다.붉은 비단 예복을 갖춰 입은 신랑과 신부가 점점 가까워졌다. 문 앞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상현의 듬직한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한 번도 사라지지 않았다. 두 손으로 붉은 비단 끈을 꼭 쥔 채, 옆의 자그마한 신부만을 바라보며 조용히 안부를 묻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지윤은 안도에 찬 미소를 지었다.자신의 소중한 친구를 상현이라면 충분히 잘 돌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구씨 가문 역시 마찬가지였다.“하늘과 땅에 첫 절을 올리시오!”두 사람은 문 밖을 향해 돌아선 뒤, 고개를 숙여 하늘과 땅을 향해 절했다.“부모님께 두 번째 절을!”신랑 신부는 돌아와 눈시울을 적시는 구 장군과 홍 부인에게 절을 올리고, 이어 이현과 지윤에게도 예를 올렸다. 참석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부부 서로에게 절하시오!”상현과 서유는 마주 보고 고개를 숙여 맞절했다.“신방으로 들이거라!”주례의 외침이 끝나자, 상현은 붉은 비단 끈을 잡아 서유를 신방으로 이끌었다. 손님들의 축하 소리는 두 사람이 멀어질수록 잦아들었다.신방의 큰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자, 문은 눈치 있게 닫혔다. 그제야 상현은 붉은 비단 끈을 내려놓고, 무거운 신부 예복을 입은 작은 몸을 그대로 번쩍 들어 올렸다.“아앗! 저기…!”갑자기 안겨버린 서유는 놀란 숨을 내쉬었다.상현은 그녀를 조심스럽게 침상 위에 앉혔다. 서유는 얼떨떨해 움직이지 못한 채,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만 들리고 있었다.그때, 그의 손이 부드럽게 신부의 가리개를 걷어 올렸다.방 안의 화려한 장식들이 눈앞에 펼쳐졌고, 신랑의 잘생긴 얼굴까지 드러나자 서유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다.상현은 미소 지으며 술잔을 가져와 내밀었다.“먼저… 팔을 걸고 술을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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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장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두 달이 금세 지나갔다.지윤의 몸은 여전히 가냘팠지만, 이현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그녀의 배는 날이 갈수록 또렷하게 불러왔다. 이는 전적으로 이현의 정성 어린 보살핌 덕분이었다.임신이 여덟 달을 넘기고 아홉 달로 접어들자, 태어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어의와 산파들의 예측에 따라 이현은 태정왕에게 상소를 올려 지윤이 산후조리를 마치는 백 일 동안은 동궁에 머무르며 업무를 보겠다고 상소를 올렸다.태정왕의 얼굴이 어떠했을지는 굳이 상상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결국, 제아무리 불만이라도 귀한 태자에게 상소를 냅다 던질 수는 없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이를 갈며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비록 곧 태어날 아이가 태정왕의 ‘첫 손주’는 아니지만, ‘태자의 아이’이자 태정왕이 평생 가장 사랑했던 송나은의 혈통이었다. 그러니 무엇이든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이현은 모든 대비를 완벽하게 갖추었다. 언제라도 출산 준비가 가능하도록 분만실을 정비하고, 산파와 어의를 동궁에 상주시키고, 필요한 물품과 사용법을 궁녀들에게 반복 숙지시켰다.그 시각, 지윤은 동궁의 정원 한가운데 놓인 의자에 누운 채 이른 아침의 햇살을 받으며 눈을 감고 있었고, 애나와 애춘이 나른함을 풀어주기 위해 어깨와 허리를 조심스레 주물러주고 있었다.그때 궁녀 하나가 들어와 말했다.“태자비 마마, 민 공주와 임 후작의 부인이 뵙기를 청합니다.”“어머니와 언니가 오셨다고?”지윤은 눈을 번쩍 뜨며 밝게 물었다. 어머니와 언니를 만나게 된다는 기쁨에 목소리까지 생기 넘쳤다.“어서 모셔와.”궁녀는 공손히 인사한 뒤 곧장 물러났다.차 한 모금도 지나지 않아, 차 부인과 채윤이 미소 가득한 얼굴로 들어왔다. 지윤은 배가 커져 몸을 일으키기 힘들어 애나와 애춘의 부축을 받으며 앉았다.그 모습을 본 차 부인이 급히 다가와 함께 부축했다.“배가 정말 많이 나왔구나. 복덩이는 분명 건강하게 태어나겠어.”지윤은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복덩이가 외할머니 얼굴을 보고 싶어 하는 게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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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장

“비 온 뒤의 하늘은 항상 더 아름답기 마련이에요, 어머니.”지윤은 슬쩍 화제를 바꾸며 더 이상 박이찬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돌렸다.“저는 서유 오빠가 분명 언니를 잘 아끼고 보살펴줄 거라 믿어요.”차 부인도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그래, 나도 그렇게 믿는다. 양승우 호부상서 댁 사람들은 하나같이 성품이 반듯해. 조 부인이 찾아와 기철이 너를 마음에 두고 혼담을 청했다 했을 때는 나도 꽤 놀랐단다.”“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굳이 정이 없는 집안에 너를 보내 둘 이유가 뭐가 있겠니. 큰 집안에 시집간다고 해서 안전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조 부인의 집안이라면… 난 오히려 마음이 놓여.”차 부인은 친딸을 대하듯 채윤의 희고 고운 손을 꼭 잡았다.“엄마가 너희 둘 가운데 한쪽만 편애해서 더 좋은 혼처를 골라준 게 아니란다. 네가 이미 민 공주 작위를 받았다 하더라도 말이야.”“혼처는 신분이 비슷해야 맞는 법이지만, 나는 이미 한 번 크게 실수했지 않니? 그 뒤로 확실히 깨달았다. 신분이 아무리 높아도, 네가 출가한 뒤 안전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는 걸 말이지.”“호부상서의 지위가 아주 높지는 않지만, 기철은 재능이 있고 멀리 갈 아이야. 조 부인도 심술궂은 성품이 아니니 시어머니에게 괴롭힘을 당할 일도 없을 거다.”“아니, 설령 조 부인이 너를 괴롭힌다고 해도 넌 그냥 친정으로 와서 나에게 말해. 내가 대신 나서서 혼쭐을 내주마, 응?”차 부인은 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런데 왜 울어? 혹시 이 혼처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채윤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눈물로 젖어가는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는 차 부인을 꼭 끌어안았다. 사실 처음 있는 일이었다.“아니에요, 어머니. 저는 아무 불만도 없어요… 어머니 마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에요.”“그럼 만족하는데 왜 우는 거야?”차 부인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두 손으로 딸의 뺨을 감싸고 눈물을 닦아주었다.채윤은 그 손을 두 손으로 꽉 잡았다.“고맙습니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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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장

분만실의 문이 닫히는 순간, 이현과 차 부인, 그리고 채윤은 문 앞에서 숨을 삼킨 채 서 있었다. 안쪽에서는 지윤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고, 그 소리는 듣는 이의 심장을 죄어오는 듯 섬뜩할 만큼 처절했다.차 부인은 그 소리를 들은 채윤이 출산을 두려워하게 될까 걱정해 애춘을 불러 그녀를 정원 한가운데의 정자로 데려가게 했다.분만실 내부는 깨끗한 흰 천과 가림막이 펼쳐져 있었고, 위생과 사생활을 위해 촛불도 희미하게 줄여져 있었다.노련한 산파 두 명과 여러 궁녀들이 빠르고 긴장된 걸음으로 방안을 오가며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과 굳은 표정으로 분투하고 있었다.지윤이 깨끗한 흰 천이 덮인 침대에 눕혀지자 궁녀들은 조용히 물러서며 자리를 내주고, 두 명의 원로 산파만이 침상으로 가까이 다가갔다.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 속에서 노련함과 걱정이 뒤섞인 눈빛이 번뜩였다. 산파 한 명이 허리를 굽혀 침대 옆에 앉고 주름진 손을 아주 조심스럽게 이불 아래로 넣어 지윤의 배를 섬세하게 더듬어 확인했다.태아의 위치, 자궁 수축의 강도… 그 모든 것을 집중해 손끝으로 느끼며 산파는 잠시 눈을 감았다.다른 산파는 재빨리 지윤의 맥을 짚었다.가느다란 손가락 아래로 뛰는 맥의 속도와 힘을 집중해 세던 그녀의 이마에는 걱정스러운 주름이 더욱 깊게 파였다.방 안에는 지윤의 거친 숨소리와 산파 둘의 낮고 긴장된 대화만이 흐르고 있었다.“맥박이 아까보다 더 빠르고 강해졌습니다. 수축이 더 잦아졌어요.”“그래… 아이도 준비가 됐어. 거의 때가 되었어.”두 산파의 눈빛이 짧게 맞부딪쳤다. 그리고 곧장 궁녀들에게 힘 있는 목소리로 지시했다.“뜨거운 물 더! 깨끗한 천도 가져와!”그 후, 산파는 지윤의 얼굴로 시선을 돌리고 부드럽게 말했다.“태자비 마마, 지금 몸도, 배 속 아기도 모두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제 힘을 주세요, 마마. 천천히, 깊게… 힘주세요.”“아… 아아… 아아아…!”지윤은 산파의 말에 맞춰 온 힘을 쥐어짜듯 힘을 주었다.“조금만 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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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장

“응애! 응애!”갓 태어난 아기의 날카롭고 작은 울음소리가 분만실 밖까지 울려 퍼졌다.그 소리에 이현과 차 부인은 동시에 움찔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낳았어! 지윤이… 드디어 낳았어!”이현은 들뜬 목소리로 외치며 제자리에서 발을 번갈아 딛고 섰다. 아이가 무사히 태어난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죄는 것은 그 아이를 낳아준 그의 아내, 연인이자 생명 같은 여인. 그녀도 무사한가? 정말로 괜찮은가?“낳았구나… 낳았어… 잘됐다…”차 부인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딸이 분만실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어머니인 그녀는 손발이 얼어붙을 만큼 두려웠다.출산은… 한쪽 발을 저승 문턱에 내딛는 것과 다름없다.새 생명이 탄생하는 자리엔 언제나 죽음이 그림자처럼 붙어 다닌다는 것을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차 부인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며, 딸이 무사하기만을 간절히 바랐다.그때, 급히 뛰어오는 또 한 사람이 있었다.“아주머니! 지윤은 어찌 되었어요?”지윤이 진통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서유도 상현을 재촉해 곧장 동궁으로 달려온 것이다.상현은 서유를 부축하며 달려온 아내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태자비 마마께서야 당연히 무사하실 거야. 하지만 당신은… 이제 막 임신한 몸이니 거동을 훨씬 조심해야지.”그러자 서유는 발끈해 고개를 홱 돌렸다.“그렇게 걱정되면, 당신이 대신 임신하시지 그러세요?”“…”‘아니, 아내와 뱃속 아기를 걱정한 죄밖에 없는데… 왜 또 혼나야 하는 건가?’집에서는 어머니가 늘 ‘서유’ 편만 들고, 밖에서는 아내가 또 자신을 혼내니 살아가는 것이 어찌 이렇게 고달픈지… 참으로 서글픈 팔자였다.“낳았어! 지윤이 드디어 낳았어!”차 부인이 서둘러 분위기를 바꿨다.바로 그때, 분만실의 문이 드디어 열렸다.이리저리 서성이며 안절부절하던 이현의 동작이 문 열리는 소리에 딱 멈췄다.그의 시선은 곧장 산파의 품에 안긴 하얀 보자기에 꽂혔다.산파가 말했다.“축하드립니다, 태자 저하! 왕자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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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장

태자비가 태정왕의 새로운 왕손을 순산했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온 조정에 퍼졌다.그중 상당수는 이현이 대놓고 ‘아들 자랑’을 하고 싶어 일부러 흩뿌린 소문이었다.소식을 들은 문무백관과 장수들은 연달아 동궁으로 찾아와 축하를 올리고, 각종 진귀한 예물을 바치며 태자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려 애를 썼다.태정왕 또한 몹시 기뻐하며 조우 내관을 시켜 수십 상자에 달하는 상을 태자비와 새로운 왕손에게 하사했다. 그리고 서둘러 작명까지 내렸다.이름은 김시후.이 소식은 이현을 몹시 분개하게 만들었다. 본래는 아내와 함께 조용히 시간을 보내며 아들을 위한 이름을 고를 예정이었는데, 아버지인 태정왕이 선수를 쳐 버린 것이다.하지만 불만은 불만대로 남겨둔 채, 아들 시후가 태어난 다음 날, 이현은 지윤이 잠든 틈을 타 아기를 마차에 태워 궁으로 가 태정왕에게 첫 인사를 드렸다.작고 예쁜 시후의 얼굴을 보자마자 태정왕은 단번에 홀딱 반해 아이를 품에 끌어안은 채 내내 놓지 않았다.옛말에 ‘자식은 안지 않아도 손자는 품는다’ 했던가. 정말 그 말이 딱 맞았다.“시후, 참말로 순하구나.” 태정왕이 흐뭇하게 웃었다. 손자는 울지도 않고, 동그란 눈으로 할아버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그렇지? 네가 알고 있는 거지. 지금 안고 있는 사람이 네 할아버지라는 걸?”“…”‘아버지를 몰라서 우는 게 아닙니다. 할아버지가 누군지 몰라서 잠시 ‘관찰’ 중인 거죠…’이현은 정색하며 넌지시 덧붙였다. “폐하께서 안고 계실 때는 정말 얌전합니다. 하지만 동궁에서는… 하루 종일 울고 떼쓰는지라 저나 태자비가 직접 안아야만 그칩니다.”태정왕의 눈썹이 번쩍 올라갔다.“허어? 그런가?”그 말은 곧… ‘할아버지도 특별한 존재’라는 뜻 아닌가?태정왕의 입가에 미소가 더 크게 번졌다.“시후, 넌 정말 사람을 잘 고르는구나!”이현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폐하께서 이해해 주신다니 다행입니다.”그 순간, 태정왕의 눈썹이 꿈틀했다.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드는 듯했다.“방금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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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장

시후를 낳은 뒤, 지윤은 특별히 준비된 산후 요양실에서 꼬박 석 달의 산후조리를 시작했다. 요양실 안에는 늘 은은한 한약 냄새가 감돌았고, 모퉁이의 작은 화로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온기가 공기를 채웠다. 이는 모두 왕비 주실이 공에서 산후 조리 전문 궁녀들을 선발해 동궁으로 보내준 덕분이었다.그들은 지윤 곁을 떠나지 않고 식사부터 찜질, 체온 조절, 청결관리까지 전부 세심하게 돌보았다.낮 동안, 태자비의 침전은 강한 햇빛이 한 줄기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두터운 암색 비단 휘장이 드리워져 있었다. 길 안내용으로 켜 둔 등불만이 희미하게 방 안을 밝히고 있을 뿐이었다.어의와 산파들은 매일 들러 맥을 짚고 상태를 살피며 보양 음식과 약재 복용을 엄격히 관리했다.지윤이 먹는 음식은 향이 강한 재료는 일절 쓰지 않은 온기 있는 죽과, 오래 푹 고아낸 탕들뿐이었다. 손목과 허리가 연약해 거의 일어나지 못하니 애나가 직접 침대 옆에서 음식을 떠 먹여야 했다.밤이 되면 방은 더욱 조용하고 어두웠다. 창틈으로는 희미한 달빛만 흘러들고, 곁에는 작은 요람에서 잠든 시후의 규칙적인 숨소리만이 맴돌았다.궁녀들은 교대로 밤새 조를 서며 화로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관리하고 방 안의 온기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했다. 태자비의 몸을 감싸는 한기는 철저히 차단되어야 했기 때문이다.석 달 동안, 지윤은 거의 외부 세계를 보지 못했다. 바람도 햇빛도 맞지 못했고, 몸을 움직이는 일이라고는 침대 위에서 살짝 몸을 뒤척이는 정도가 전부였다.그런데도 지윤은 전혀 괴롭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기간 동안 이현이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와 궁 밖의 소식과 재미난 이야기들을 전해주었기 때문이었다.비록 몸의 기운이 허약해 산파들의 지시에 따라 두 사람 사이 거리를 두어야 했지만, 그의 목소리와 존재는 지윤의 가장 큰 위안이었다.산후 조리 중 여인의 기혈은 고갈되고 음이 강하고 양이 약해진 상태이기에 남자의 강한 양기와 가까이 닿으면 회복이 더디거나 장차 병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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