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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판: 내 곁의 새아버지 (2)

이현은 날카로운 눈썹을 치켜올렸다.“???”“아빠를… 바꾸겠다고?”이현은 아들의 말을 되뇌었다.그 순간, 시후는 제 입에서 무심코 속마음이 튀어나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푹 숙였다. 작은 귀까지 붉게 달아오른 모습을 본 이현은 그만 웃음이 새어 나올 뻔했다.‘어쩌지… 아빠가 엄청 화나셨을 텐데…’이현은 터져 나올 웃음을 억누르며 입술을 꼭 다물었다. 이렇게 시후가 사람 앞에서 당황하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었다. 늘 빈틈을 보이지 않는 아이였기 때문이었다.“그렇다면 말해 보거라. 새 아빠로 누굴 원하느냐?”느긋하고 태연한 이현의 목소리에, 시후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그의 복숭아꽃 같은 눈에는 분노의 기색이 전혀 없었다.조금 안심한 시후는 가슴을 펴고 머리를 빠르게 굴리기 시작했다.‘누가 좋을까… 이 수도에서 아빠보다 높은 사람은…’‘아빠보다 높은 사람은 할아버지뿐이고…’‘얼굴도… 솔직히 아빠보다 잘생긴 사람은 못 봤고…’‘엄마도 늘 아빠는 문무를 겸비한 미남이라고…’이현은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근엄한 얼굴로 아들을 바라보았다.‘근데… 난 하나도 그렇게 안 느껴지는데. 흥!’‘할아버지의 상주문 처리만 빠른 거지… 무예는…’‘태어나서 지금까지 아빠가 칼을 드는 걸 본 적도 없잖아.’‘그럼 무예에는 약한 거 아니야?’‘그렇다면… 무예에 강한 새 아빠를 찾으면 되겠네!’‘양성 아저씨가 말했지… 대선 왕국에서 제일 강한 장수가 누구랬더라… 아!’“철면 장군이요!”시후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눈은 반짝이고, 표정에는 스스로 똑똑한 선택을 했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다.“흠?”이현은 낮게 웃음을 흘렸다.“철면 장군? 철면 장군을 아느냐?”“알아요!”시후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양성 아저씨가 말해줬어요! 철면 장군은 대선 왕국 최고의 장수고, 북방을 평정했고, 명 왕자의 반란도 아빠랑 같이 진압한 분이라고요!‘봤죠? 아빠보다 센 사람 찾았다고요!’시후의 눈빛에는 대놓고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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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판: 내 곁의 새아버지 (3)

방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가, 다시 아주 가볍게 닫혔다.바깥에서 남편과 아들이 주고받던 실랑이는 크게 시끄럽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조용하지도 않았다. 그 소리에 지윤은 결국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다.이현이 어둑한 방 안으로 들어서자, 희미한 빛 속에서 지윤이 힘겹게 상체를 일으키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왜 벌써 깼어.”이현은 성큼 다가가 그녀의 뒤에 앉아, 등을 받쳐 주듯 몸을 포개 안았다.“오늘… 시후랑 같이 눈사람을 만들기로 약속했거든요.”잠에서 막 깬 지윤의 목소리는 쉰 듯 낮게 울렸다.이현은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요즘만큼은… 그는 정말로 지윤을 누구에게도 내어줄 수가 없었다.“방금… 시후가 저를 찾으러 왔던 거죠?”정면으로 들어온 질문에, 이현은 짧게 숨을 내쉰 뒤 사실대로 말했다. 지윤을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아무리 숨겨도 그녀는 결국 알게 될 사람이었다.“그래. 당신 찾으러 왔었지.”잠시 뜸을 들인 뒤, 그가 덧붙였다.“당신이 시우를 돌보느라 지쳐서 아직 못 일어났다고 말해뒀어.”어둠 속에서 지윤의 시선이 곧장 날아왔다.“서방님… 시후가 바보도 아니고, 제가 무엇 때문에 피곤한지 모를 리가 없잖아요.”이현은 입꼬리를 올리며 어깨를 으쓱하더니, 안고 있는 팔에 힘을 주어 더 바싹 끌어당겼다.“알지. 그래서 나한테 그러더군. 아빠를 바꾸겠다고.”지윤은 그대로 그를 돌아봤다.“!!!”‘설마 둘 사이가 그렇게까지 틀어진 건 아니겠지?’“그, 그래서… 서방님은 허락하신 거예요?”지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속으로는 누구보다 아들을 끔찍이 아끼는 이현이, 그런 말을 그냥 넘길 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응.”이현은 태연하게 대답했다.“철면 장군을 새 아빠로 모시고 싶다더군.”“!!!”지윤의 단정한 입술이 그대로 벌어졌다. 그 모습을 본 이현은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들과 엄마가, 놀랄 때 짓는 표정이 어쩜 이렇게 똑같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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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판: 내 곁의 새아버지 (4)

“태손 저하.”마차가 동궁을 떠나 천천히 달리는 가운데, 양성이 낮은 목소리로 시후를 불렀다.“저하께서는 어디로 가시려는 것입니까?”시후는 입술을 꼭 다문 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그럼… 철면 장군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음… 철면 장군… 장군이라면… 같은 장군에게 물어보면 되겠지?’“진원후 저택으로 가줘!”시후가 아는 장군이자, 또 친분이 있는 곳이라곤 진원후 구씨 가문뿐이었다. 특히 어머니와 각별한 사이인 서유 이모라면, 분명 무언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구 아저씨께 여쭤보면, 철면 장군에 대한 소식쯤은 들을 수 있겠지…’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마차는 진원후 저택 앞에 멈춰 섰다. 양성이 빠르게 문지기에게 신분을 알리자, 오래지 않아 상현과 서유가 서둘러 나와 맞이했다.시후는 양성의 도움을 받아 마차에서 내려, 정중하게 인사했다.“구 공자님, 이모!”“태손 저하.”서유는 다정하게 부르며, 자연스레 마차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늘 함께 오던 지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오늘은 저하 혼자 오셨나요?”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구 공자님께 여쭤볼 일이 있어요.”상현과 서유는 서로를 바라보며 잠시 의아해했다. 태손이 아침 일찍 직접 찾아와 묻고자 할 일이 있다니. 하지만 문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예가 아니었기에, 서유는 시후를 안으로 안내했다.진원후 저택의 대문이 닫히자, 형식적인 격식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서유는 계단을 내려오며 시후의 통통한 손을 살며시 잡았다.“시후, 삼촌에게 무엇을 묻고 싶은 거니?”상현 역시 고개를 돌려 조카를 바라보았다.시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철면 장군에 대해 묻고 싶어요.”“철면 장군?”상현이 되물었다.“무엇이 궁금한 거니?”사실 시후가 철면 장군을 궁금해하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대선 왕국 전역에서 철면 장군은 나라를 구한 영웅, 살아 있는 전설이었기 때문이다.수많은 소년들이 그를 동경하며 무예를 연마했고, 자원해서 군에 입대한 이들 중에도 그의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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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판: 내 곁의 새아버지 (5)

“그럼 차라리 태자 저하께 한 번 여쭤보는 게 어떨까?”상현이 호의로 꺼낸 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시후의 작은 얼굴이 점점 더 삐죽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반면 서유는 그 미묘한 감정 변화를 단번에 눈치챘다.사실 서유는 시후가 홀로 진원후 저택을 찾았을 때부터 마음에 걸렸다. 평소라면 지윤이 늘 함께였고, 시후를 데리고 와 자신의 쌍둥이 남매 가람, 가은과 놀게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즘은 막 두 살이 된 막내 가현까지 있어, 집안은 늘 아이들로 북적였다.“시후, 이제 막 도착했는데 벌써 돌아가려고?”서유는 얼른 말을 꺼내 분위기를 바꾸었다.“이렇게 이른 시간에 왔으니, 아직 아침도 못 먹었겠구나?”아침부터 아빠 이현과 말다툼을 하고 궁을 뛰쳐나온 시후는, 그제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마치 그에 화답하듯, 작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서유는 아이 셋을 키우며 단련된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오늘은 이모랑 같이 아침 먹고 갈까?”“응!”시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서유의 손을 잡고 본채의 식당으로 향했다. 안에서는 하녀들이 이미 그릇과 젓가락을 단정히 차려 놓고 있었다.식당 중앙의 둥근 탁자 위에는 구리 냄비가 놓여 있었고, 국물이 보글보글 끓으며 뼈를 고아 낸 육수와 약재 향이 실내 가득 퍼져 있었다.‘아침부터 신선로를 먹는 거야?’시후는 살짝 눈을 굴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때 마침 구 장군과 홍 부인이 함께 들어왔다.“어머, 시후구나!”두 노인은 태손을 보자마자 반가운 얼굴로 불렀다. 지윤과 서유의 친분 덕분에 아이들은 두 집을 수시로 오갔고, 사적으로는 이렇게 다정했지만, 밖에서는 예법을 철저히 지키는 분들이었다.“오늘은 어쩐 일로 이렇게 아침 일찍 왔니?”홍 부인이 웃으며 물었고, 곧바로 서유를 향해 말했다.“시후가 왔으니, 오늘은 가람과 가은도 여기서 같이 밥을 먹게 하거라.”이 나이대 아이들은 보통 자기 처소에서 식사를 하고, 일곱여덟 살이 되어야 어른들과 한 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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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판: 내 곁의 새아버지 (6)

“태손 저하, 이제 정 왕자님의 저택에 도착했습니다.”양성이 동궁의 마차 안에서 다리를 흔들며 앉아 있던 시후에게 조심스레 알렸다. 진원후 저택에서 아침 식사를 마친 뒤였다.상현은 정 왕자가 철면 장군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시후는 망설임 없이 곧장 정왕부로 향하라고 양성에게 명했다.“시후?”이정은 눈을 의심하듯 조카를 불렀다. 그러곤 자연스레 형님과 형수의 모습을 찾았지만, 뒤따라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혼자 온 것이냐?”시후는 머쓱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무언가를 묻기도 전에, 또렷한 어린 목소리가 먼저 울려 퍼졌다.“태손!”세 살배기 여자아이가 치마를 휘날리며 빠르게 달려왔다.“리아!”시후는 이정의 맏딸, 리아의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맞았다. 한편, 아직 한 살인 막내딸 리영은 이정의 어깨에 기대 잠들어 있었다.“태손, 나 보러 온 거야?”리아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시후는 사실 부정하려 했지만, 그 기대에 찬 눈빛을 마주하자 차마 그러지 못하고 부드럽게 대답했다.“응, 너 보러 왔어.”“와! 그럼 오늘 뭐 하고 놀까?”리아는 신이 나서 물었다.이정은 조카의 어두운 기색을 놓치지 않고 입을 열었다.“리아.”그는 딸을 다정하게 불렀다.“아빠가 새 장난감 사다 준 거 있지 않아? 태손에게 보여 주지 않겠니?”리아는 그제야 가장 아끼는 장난감이 떠올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곧장 현관을 지나 자기 처소로 쪼르르 달려갔다.“시후야, 무슨 고민이라도 있느냐?”이정은 리영을 안은 채 의자에 앉았다. 시후도 그 옆자리에 따라 앉으며, 무의식 중에 또 다른 사람의 모습을 찾듯 주위를 둘러보았다.“숙모를 찾는 거냐?”시후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정은 약간 피곤함이 섞인 미소로 답했다.“숙모는 지금 채선관을 점검하러 나가 계시다.”채선관은 지윤과 지은이 함께 운영하기로 결정해, 청연각과는 별도로 새로 연 신선로 전문점이었다.청연각의 접객실 수가 한정되어 있어 예약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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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판: 내 곁의 새아버지 (7)

채선관 같은 신선로 전문점은 여러 별채로 나뉜 대규모 저택에서 운영되었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종업원들이 술과 음식을 제때 신속하게 나르기 어려웠던 것이다.이에 지윤과 지은은 직접 바퀴 달린 신발을 설계해 만들었고, 세 지점의 모든 종업원들에게 이를 완전히 숙달할 때까지 훈련시켰다. 그 덕분에 손님들은 훨씬 빠르고 편리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은 장차 뷔페 형식의 운영도 도입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세 곳을 동시에 개점한 채선관만이 막대한 수익을 올린 것이 아니었다. 청연각 역시 옥림정을 매입해 청연각 제2분점으로 개조를 마쳤다.또한 수도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미사 화장품 상점 역시 기존의 본점과 분점 두 곳에서 더 나아가 세 개의 지점을 추가로 확장했다. 다만 새로 연 지점들에서는 해당 지역의 고객층에 맞춰 판매 화장품의 종류를 조정하는 전략을 취했다.그 결과, 고객의 수요를 정확히 충족시키는 동시에 각 매장에 사람이 과도하게 몰리는 문제도 효과적으로 완화할 수 있었고, 일부 달에는 지점별 특별 판매 정책까지 시행되었다.이렇게 미사, 청연각, 채선관은 모두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며 동궁과 정왕부로 매년 수십만 냥의 수익을 안겼고, 새로 임명된 호부상서는 세 상점이 매년 국고에 납부하는 세금 보고서를 보고 그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시후는 여덟째 삼촌의 설명을 들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채선관은 손님이 너무 많아서, 가게 문지방이 닳아버릴 정도라 그랬어요.”“그래.”이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지금은 벌써 네 번째 지점을 열 저택을 찾고 있단다. 네 어머니께 손을 좀 늦추시라고 해 다오. 이젠 창고에 쌓아 둘 은전 자리가 없을 지경이야.”시후는 난처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아빠도 엄마를 말리지 못하시는데, 내가 어떻게요...”“하아…”이정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지금도 지점이 세 곳뿐인데, 나와 함께할 시간이 거의 없어. 네 번째까지 열리면… 내 얼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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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판: 내 곁의 새아버지 (8)

시후가 정 왕자의 저택 정왕부를 나설 수 있었을 때는 이미 저녁 무렵이었다. 신선로를 먹은 뒤, 새로 받은 장난감을 들고 다가온 리아가 하루 종일 그를 붙잡고 놀아 달라 조르던 탓이었다.결국 리아가 지쳐 곯아떨어진 틈을 타 겨우 자리를 정리하고 나올 수 있었다. 다행히도 이정은 이미 시후가 다음 목적지로 태정왕을 찾아 왕궁에 갈 것을 눈치채고 미리 전갈을 넣어 둔 상태였다.왕궁 정문 앞에 도착했을 때, 조우 내관은 이미 미소를 머금고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막 닫히려는 시각이라 왕궁 안으로 들어가는 건 가능했지만, 규율상 다시 나올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려웠다.“양성 아저씨는 먼저 동궁으로 돌아가. 오늘 밤은 할아버지와 궁 안에서 묵을 거야.”양성은 고개를 숙이며 공손히 대답했다.“그러면, 내일 아침 일찍 모시러 오겠습니다.”“응.”시후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편안히 궁 내부를 걸어 들어갔다. 조우 내관이 뒤에서 속도에 맞춰 따랐다.“태손 저하, 폐하께서 저하를 건청궁에서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건청궁은 태정왕이 거처하는 내전으로, 누구도 함부로 드나들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손자는 예외였다. 심지어 하룻밤 머무는 것조차 허락받은 존재였다.원래라면 왕궁에 묵기 위해서는 왕의 엄격한 허가가 필요했다. 하지만 동궁의 부자 앞에서는 그 규율도 무색했다. 둘은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서 태정왕은 속수무책이었다. 잔소리라도 했다간 두 사람은 며칠씩 모습을 감춰버렸고, 결국 보고 싶어 못 견디게 되는 건 태정왕 자신이었다.그래서 그는 결국 동궁 부자는 언제든, 원하면 입궁할 수 있도록 특혜를 내렸다. 다행히도 그들은 무례하게 시간 외에 들이닥치지는 않았다.물론 궁문이 닫히는 시간 이후엔… 아들 녀석이 태자비와 침실에 틀어박혀 있으니, 들어올 일도 없었다.시후는 건청궁 안으로 익숙하게 발을 들였다. 짙은 백단향이 은은하게 돌고, 황금빛 비단이 드리워진 높은 천장, 벽면의 명화, 흰 옥 탁자 위에 쌓인 서책들… 웅장하지만 어딘가 서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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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판: 내 곁의 새아버지 (9)

“우리 태손!”문 앞에서 기쁨이 가득 담긴 낮고 힘 있는 목소리가 울렸다. 굳이 뒤돌아보지 않아도, 시후는 단번에 목소리의 주인을 알 수 있었다.시후는 일어나 공손히 절을 올렸다.“할바마마…”태정왕은 손자의 얼굴을 보자 기쁨으로 가득 찬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옆에 서 있던 조우 내관에게 명을 내렸다.“조우 내관, 저녁상을 준비하게 하라. 오늘은 태손과 함께 하겠다.”“네, 폐하.” 조우 내관이 고개 숙여 받들었다. “어떤 음식으로 준비할지…”“그래, 그걸로 하라. 태손이 좋아할 것이다.”태정왕은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잘라 말했다.조우 내관은 미소만 남긴 채 알겠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할아버지와 손자만의 시간을 두기 위해 건청궁의 문을 닫았다.태정왕이 먼저 입을 열었다.“오늘은 어찌하여 궁에 들어왔느냐? 아비는 함께 오지 않았느냐? 어찌 홀로 왔단 말이냐?”“할바마마…” 시후가 조심스럽게 말을 끊더니, 서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바마마는… 저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건가요?”“???”갑작스러운 질문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시후가 이현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느낀다고?’‘말도 안 된다! 이현만큼 아들을 아끼는 자도 없다. 다만 아내를 더 아낄 뿐이지…’태정왕은 부드럽게 되물었다.“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느냐?”그는 이현이 늘 장난으로 시후를 괴롭히기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장난이 아이에게 이런 마음을 품게 할 줄은 몰랐다.‘이거… 내가 나서서 화해를 시켜줘야겠구나…’“그냥… 아바마마는 늘 제 마음을 맞춰주지 않아요. 원하는 걸 한 번도 들어준 적이 없어요.”시후는 입술을 삐죽이며 속상한 목소리를 냈다.“요즘은 시우만 예뻐해요. 저를 잊으신 것 같아요…”“시후…”태정왕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왕의 위엄을 내려놓고, 오로지 손자를 달래는 할아버지의 표정으로 다리를 벌려 무릎을 두드렸다.“이리 오너라.”시후는 기다렸다는 듯 달려가 무릎 위에 안겼다. 작은 팔로 왕의 목을 꼭 끌어안고, 길을 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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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판: 내 곁의 새아버지 (10)

그 말에 시후는 고개를 들어 할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작은 눈가는 눈물로 반짝였고, 둥근 볼에는 눈물이 줄을 그으며 흘러내려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태정왕은 손을 뻗어 조심스레 그 눈물을 닦아주었다.“모든 아비는 자식을 사랑한단다. 다만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를 뿐이지.”태정왕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구 공자와 정 왕자는 온화하게 사랑을 보여주지. 그런데 네 아비가 그렇게 대한다면, 너는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역질문에 시후는 고개를 숙이고 생각했다. 아빠가 자신을 부드럽게 달래는 모습… 머릿속에 그려보자마자…‘으… 소름…’그런 온화한 모습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손자가 온몸을 떨며 상상조차 끔찍해하는 모습을 본 태정왕은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듯 박장대소했다.“하하하하!”아비의 부드러운 모습에 기겁하는 손주.그런 걸 기대할 수 없는 아들.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자신…달리 보면, 시후도 만만치 않은 녀석이었다. ‘동궁은 날마다 시끌벅적하겠구나…’‘부자가 서로 골려 먹고 복수하려 든다면, 태자비가 고생이 클 터… 상을 더 챙겨줘야겠구나…’태정왕은 손자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사실 말이다, 이 할아비 역시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단다. 네 아비가 태어났을 때, 나는 돌봄을 남에게 맡기고 재물로만 보상했었단다. 편히 지내게 해주면 그뿐이라 여겼었지.”“왕으로서 날마다 상주문을 처리해야 했으니 내가 바란 건 자유였다. 그래서 아이에게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았단다. 그저 건강하게 자라, 원하는 삶을 살기를, 권력 다툼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지.”“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자랐다. 한량처럼 자유롭고 물 흘러가듯 살았지. 때로는 나조차 부러울 만큼 말이다.”황제는 미소 지었다.“하지만 누가 알았겠느냐. 무능해 보이는 그 겉모습 아래에 숨겨진 날카로운 발톱을. 반란도 진압하고, 수많은 사건을 해결해낸 장본인이었지.”“…”‘양성 아저씨가 말했었지… 하지만 그건 다 어머니 공이라고…’“나는 그제야 깨달았단다. 기대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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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판: 내 곁의 새아버지 (11)

그제야 태정왕은 깨달았다. 다섯 살이라면 이제 막 글을 배우기 시작하는 시기, 시후도 마찬가지였다.태정왕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그렇다면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 책장을 열심히 넘기기에 읽을 줄 아는 줄 알았지…’“자, 자! 그럼 할아비가 읽어주마.”태정왕은 그 비밀 수첩을 다시 받아 들고, 첫 장부터 읽기 시작했다.첫 장은 시후가 태어난 날부터 기록이 시작되어 있었고, 날짜와 시간, 그리고 그날 있었던 일들이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태정왕은 줄마다 또박또박 읽기 시작했다.…12월 1일지윤이 아들을 낳았다. 감격스럽다. 원래는 함께 이름을 지으려 했으나, 왕께서 먼저 이름을 내려주셨다. 하지만 괜찮다. ‘시후’라는 이름, 뜻도 좋고 소리도 곱다. 우리는 ‘호’를 나중에 함께 지어주기로 했다. 아직 나는 좋은 아버지가 어떤 아버지인지 모르지만, 그 아이에게 가장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시후는 할아버지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봤다. 친아들의 속마음이 글로 드러나 있으니 민망할 만도 했다. 하지만 태정왕은 못 본 척하며 계속 읽었다.12월 9일시후가 처음으로 나를 보며 웃어주었다. 그 미소는 너무나 맑고 영롱하여, 나는 그 미소를 평생 지켜주고 싶어졌다.3월 4일시후가 작은 손으로 내 손을 꼭 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 손이 너무 작고 부드러워 무공을 가르쳐야 하나 고민된다.9월 26일시후가 첫 걸음을 뗐다. 보모와 시녀를 더 붙여야 하나, 아니면 넘어져도 덜 다치게 무릎 보호대를 만들어줄까?12월 10일시후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빠’라고 부르는 듯하지만 아직 ‘빠’라고 밖에 못 한다. 그래도 좋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다. 언젠가 또렷하게 ‘아빠’라고 부르는 날을 기다리겠다.…수첩을 모두 읽어내릴 즈음엔 시후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작은 심장은 쿵쿵 울려 방 안에 울릴 듯했다.시후는 몰랐다. 아빠가 자신에 대해 이렇게까지 세세히 기록하고 있었다는 것을.얼굴이 화끈거렸다. ‘창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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