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자, 비로소 내가 사랑을 알았다의 모든 챕터: 챕터 161 - 챕터 170

289 챕터

제161화

점심 무렵, 허미란은 딸 지연과 함께 은호를 만나러 HJ병원으로 향했다.HJ병원이 하씨 가문 소속 병원이기에, 하씨 가문의 아가씨인 지연을 모르는 병원 직원은 거의 없었다.“둘째 사모님, 지연 아가씨.”안내 데스크의 간호사가 다가와 반갑게 맞이했다.“어쩐 일이십니까?”지연이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엄마랑 함께 은호 씨와 사모님 뵈러 왔어요.”간호사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저, 아가씨. 권 대표님과 사모님은 방금 외출하셨는데요.”“뭐라고요?”지연이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허미란을 돌아보았다.“엄마,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내가 보러 오겠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나 피하려고 일부러 나간 거 아니에요?”지연은 은호를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아했다. 은호가 아니면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정도였다.마침 하동민 역시 권씨 가문과의 혼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비록 아직 권씨 가문에서 확답을 주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지연은 오직 자신만 은호에게 어울린다고 확신했다.허미란이 미간을 찌푸렸다.“너는 하씨 가문 아가씨란 애가, 행동을 좀 조심할 수 없니?”아무리 그래도 제 배 아파 낳은 자식이니 알 수 있었다.이런 제멋대로인 성격은 평범한 남자라도 감당하기 힘들 텐데, 하물며 지체 높은 권씨 가문의 도련님이라면 오죽할까?“난 하씨 가문 아가씨잖아! 나 말고 누가 그 사람한테 어울린다는 거야?”지연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하씨 가문에서 태어날 때부터 부족함 없이 자랐다.모두가 부러워하는 부귀영화를 누리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쉽게 얻어왔으니, 굳이 자신이 몸을 낮출 이유가 없었다.허미란은 고개를 저으며 간호사를 향해 미소 지었다.“은호 씨와 사모님이 어디로 가셨는지 혹시 말씀하셨나요?”“그건 따로 말씀 안 하셨습니다.”간호사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뭔가 생각난 듯 덧붙였다.“아, 두 분만 나가신 건 아닙니다. 어떤 여자분도 같이 가셨는데요, 권 대표님의 비서분이 그 아가씨 성이 ‘심’ 씨라고 하는 걸 들었습니다.”허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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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화

이담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이담이 막 입을 열려던 순간, 귓가에 은호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연 씨, 제가 누구와 함께 있든 그건 제 권리입니다. 당신이 제게 이래라저래라 참견할 자격은 없는 것 같은데요.”지연은 멍해졌다. 자신의 오빠를 제외하고, 감히 이런 싸늘한 태도를 보인 남자는 이제껏 단 한 명도 없었다.그것도 이담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은호 씨는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이 여자는 사실...”지연은 답답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지연이 하려던 말은 이담이 자신의 새언니라는 사실이었다하지만 지연은 단 한 번도 이담을 새언니로 인정한 적이 없었다.게다가 하진혁조차 이 관계를 공개하지 않는데, 먼저 밝혔다가 행여나 진혁과 초연 사이를 망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이담은 지연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뻔히 알았기에 입꼬리를 차갑게 비틀었다.“내가 사실 뭐?”지연은 이를 꽉 깨물었다. 도저히 분을 삭일 수가 없었다.“너 같은 건 남자한테 빌붙어 사는 속물일 뿐이잖아! 우리 오빠를 넘본 것도 모자라서 진 대표를 꼬시더니, 이제는 은호 씨까지 꼬시는 거야?”은호가 이담의 앞을 막아서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하씨 가문의 가정 교육은 이런 식이었습니까?”“은호 씨...”“지연아!”마침 이쪽으로 오다가 이 광경을 목격한 허미란이 황급히 다가왔다. 은호의 등 뒤에 있는 이담을 훑어보는 눈빛에는 의외라는 기색이 스쳤다.허미란에게 이담은 그저 우연히 좋은 자리를 차지한 평범한 여자일 뿐이었기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었다.하지만 감히 은호의 보호를 받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무래도 자신이 이담을 얕잡아 본 모양이었다.허미란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권 대표님, 너무 화내지 마세요. 제가 자식 교육을 엄하게 하지 못한 탓에 지연이가 저렇게 제멋대로 자랐네요.”“워낙 솔직한 아이라 말이 좀 거칠 뿐입니다. 악의는 없습니다.”“사모님께서는 그런 말을 두고 솔직하고 거침없다고 하십니까?”은호의 얼굴에서 점차 웃음기가 가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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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화

“누가 감히 우리 아가를 괴롭혀!”김미영이 뛰쳐나오더니 손에 들고 있던 인형을 허미란 모녀를 향해 마구 던졌다.“아주머니.”이담이 김미영을 말렸다.“에잇, 나쁜 여자들, 나쁜 여자들!”김미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인형을 던졌다.지연과 허미란은 날아오는 인형에 맞으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마침내 참다못한 지연이 꽥 소리를 질렀다.“이 미친 여편네가 돌았나!”“지연 씨, 우리 어머니한테 말조심하시죠. 하씨 가문 아가씨라고 해서 제가 가만히 있을 줄 압니까?”은호의 부드러웠던 분위기에 강렬한 압박감과 싸늘한 한기가 서려 있었다.‘어머니...’지연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이, 이분이 권씨 가문의 사모님이라고요?”허미란 역시 소문으로만 듣던 권씨 가문의 사모님을 직접 본 건 처음이었는데, 눈부신 미모에 내심 크게 놀랐다.분명 비슷한 나이일 텐데 세월조차 비껴간 듯한 미인이었다. 타고난 골격부터가 남달라 한눈에 봐도 압도적인 미인이었다.권씨 가문의 사모님이 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하다는 소문은 진작에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인 권호산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다.오래전에 뉴스에까지 난 사건이었다.용주시 상류층의 한 재벌가의 사람이 권씨 가문 사모님의 미모에 반해서,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는 점을 이용해 욕보이려고 했던 일이 있었다.하지만 다음 날, 그 사람은 재계에서 자취를 감췄고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그 일 이후로 용주시 상류층에서 권씨 가문의 사모님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비록 정신 장애를 앓고 있어도 남편은 그녀를 지극히 사랑했고, 아들 또한 어머니를 끔찍이 아꼈다. 심지어 권씨 가문 어르신들조차 조금도 흉보지 않았기 때문이다.원래는 과장된 소문쯤으로 여겼건만, 오늘 직접 보니 그 소문이 사실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사모님, 오해하셨습니다. 저와 지연이는 악의가 없어요.”허미란이 부드럽게 해명하며 김미영과 거리를 좁히려 했다.하지만 허미란이 다가가기도 전에, 김미영은 다시 장난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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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화

한편, 은호는 이담을 배웅하러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이담이 차에 타려던 순간, 은호가 불쑥 입을 열었다.“이담 씨, 저희 어머니는 어떠신 것 같습니까?”이담은 멈칫하며 의아한 눈으로 은호를 바라보았다.“아주머니 정말 좋은 분이시잖아요. 왜 그러시는데요?”“단순히 그런 의미로 여쭤본 건 아닙니다.”은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전 이담 씨가 무척 친근하게 느껴집니다.”“적어도 저한테는 다른 분들과는 다르게 느껴지거든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희 어머니의 수양딸이 되어 주시지 않겠습니까?”이담이 화들짝 놀랐다.“제가요?”“이담 씨도 보셨잖아요. 저희 어머니가 저보다 이담 씨를 더 챙기신다는 거요.”은호가 어깨를 으쓱거렸다.“경성시에서 이담 씨를 만난 뒤로, 용주시에 계실 때보다 훨씬 즐거워하십니다. 아버지와 집안 어르신들이 아셔도 분명 찬성하실 겁니다.”이담은 눈을 내리깔았다. 왠지 모르게 여기서 거절하면 평생 후회할 것만 같은 묘한 예감이 들었다.왜 그런 예감이 드는지 이담 자신도 몰랐지만.“제가 난처하게 만들었나요?”이담이 그제야 눈을 들어 은호를 쳐다보았다.“아니요. 다만 제가 곧 경성시를 떠날 예정이라 걱정이 되어서요...”“괜찮습니다. 어디에 계시든 그때 알려만 주시면 저희가 찾아가면 되니까요. 비행기 한 번 타면 되는걸요.”은호는 거리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이담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터뜨렸다.“그럼, 앞으로는 오빠라고 불러야 하는 건가요?”그 ‘오빠’라는 한마디에 은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마치 눈앞의 이담이 진짜 여동생인 것만 같았다.하지만 그 시절, 그 갓난아기는 분명 사산아였다.‘내 여동생이 살아 있을 리가 없는데.’이담은 은호와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차를 몰고 떠났다.병원으로 돌아온 이담은 기분이 좋은지 걸음걸이마저 가벼웠다.눈가에는 숨길 수 없는 웃음기가 맴돌았고, 평소보다 한층 더 생기 있어 보였다.그 모습을 한 남자가 우연히 지켜보고 있었다.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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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화

이담은 진혁과 유리 벽 사이에 갇힌 채 도망칠 곳조차 없었다.타월로 이담의 몸을 간신히 가리고 있었고, 밖으로 드러난 맨살 위로 차가운 공기가 닿을 때마다 몸이 떨렸다.“당연한 거 아니야? 문초연 하나로는 모자라? 당신은 괜찮을지 몰라도, 난 역겨워!”진혁의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더니 더욱 깊은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이담은 예전엔 결코 진혁을 이토록 혐오하지 않았다.이담은 숨을 헐떡였고, 흠뻑 젖은 몸은 진혁의 뜨거운 품 안에서도 여전히 추위에 떨고 있었다.진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담은 숨 막힐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그래서, 결국 그 여자가 신경 쓰인다는 건가?”축축하게 젖은 이담의 머리를 매만지던 진혁이 귓가에 대고 목소리를 낮췄다.“내가 병이 있는지 없는지는, 네가 누구보다 잘 알잖아.”이담의 숨이 턱 막혔다.“무슨 뜻이야?”“말 그대로의 뜻이지.”진혁은 이담을 짓누르며 의미심장한 어투로 말했다.허리에 닿은 거친 손바닥의 감촉에 이담의 몸이 움찔했다.이담은 눈물을 머금은 채 거부했다.“나 지금 그럴 기분 아니야!”“곧 그렇게 될 거야.”진혁은 나지막하게 속삭이더니, 손가락으로 이담의 턱을 쥐고 고개를 돌려 거칠게 입을 맞췄다.이담이 주먹을 꽉 쥐자, 진혁은 억지로 손가락을 펴내어 깍지를 꼈다.이담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입술을 다물었지만, 진혁은 기어코 입을 열게 만들면서 온전히 차지하려고 했다.결국 치밀어 오르는 메스꺼움을 더는 참지 못한 이담이 진혁을 거칠게 밀쳐낸 뒤, 바닥에 엎드려 헛구역질을 해댔다.이 광경에 진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진혁은 이담의 손목을 낚아채고 억지로 마주 보게 했다. 남자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내가 만지는 게 그렇게 싫어?”이담은 위장이 찢어질 듯 괴로운 와중에도 눈시울이 붉어진 채 악을 썼다.“그래! 싫어!”“좋아.”진혁의 눈빛에서 방금 전까지의 열기가 사라지고, 대신 차가운 어둠이 자리 잡았다.“그 대단한 자존심, 어디 끝까지 지켜봐.”진혁의 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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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화

그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붉어진 이윤정이 망설임 없이 이담 앞을 막아섰다.“내 딸한테 허튼수작 부릴 생각은 꿈도 꾸지 마요!”이담은 멍하니 이윤정을 바라보았다.어머니의 보호를 받는 기분을 느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살면서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어머니...”“내가 하빈이를 지키지 못한 건 내 능력이 부족해서가 맞아요.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또 다시 내 아이를 잃는 걸 두 눈 뜨고 지켜볼 수만은 없어요.”이윤정은 심씨 가문과 끝까지 맞서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만큼은 지켜내겠다고 단단히 결심한 듯했다.그동안 온갖 설움을 겪어 왔지만,예전 같았으면 어쩔 수 없다고 넘겼겠지만, 이번만큼은 스스로 양심에 떳떳한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당장 네 앞가림도 못 하는 주제에 수양딸 챙길 정신이 있니?”강수연이 팔짱을 낀 채 탐욕스러운 본색을 드러냈다.“내가 이미 그 집이랑 다 말도 맞춰놨어. 얘 시집보내기로 했어. 어머님도 이미 예물까지 다 받으셨고. 이 혼사는 네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게 아니야.”이윤정은 분노로 몸을 떨었다.“형님, 이건 엄연한 범죄예요!”“어머니, 진정하세요.”이담이 차분하게 이윤정의 등을 쓸어내리더니, 태연한 얼굴로 강수연을 바라보며 비웃었다.“나보고 시집을 가라고요? 법적으로 중혼이 허용된다면, 저야 상관없지만요.”강수연은 멈칫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네 아빠가 네가 시집갔다고는 했다만, 지난 몇 년 동안 우린 국수 한 그릇 얻어먹은 적 없다.”“네 애비 체면 차리기 좋아하는 거 세상이 다 아는데, 네가 정말 좋은 집안에 시집갔다면 진작에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겠지!”죽은 심민철이 누구보다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라는 건 심씨 가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애초에 자신이 큰아버지 심민규보다 잠재력이 있다는 걸 증명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분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국 ‘배경 좋은 아내’를 얻은 큰아버지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이숙자가 코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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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화

경훈이 자연스럽게 이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보시는 대로입니다만.”이담은 순간 멈칫했지만, 굳이 손을 밀어내지는 않았다.이숙자가 막 무언가 말하려던 순간, 강수연이 나섰다.“어머, 동서. 이담이한테 남자친구가 있다는 걸 왜 진작 말 안 했어? 자칫 우리가 괜한 오해를 할 뻔했잖아.”이윤정이 코웃음을 치면서 이담과 경훈의 관계를 굳이 해명하지 않았다.“말했다고 형님이 믿기나 했겠어요?”“동서, 우린 한 식구인데 굳이 그렇게 날을 세울 필요가 뭐 있어.”이윤정에게 다가간 강수연이 막 손을 잡으려 했지만, 이윤정은 싸늘한 표정으로 손을 뿌리쳤다.“가식 떨지 마요. 형님네가 내 딸 팔아 넘긴 거,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니까.”강수연과 이숙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20년도 더 지난 일을 아직까지 잊지 않고 있을 줄은 몰랐다.강수연도 눈치가 있기에 더 이상 얽히지 않고, 이숙자와 일행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하지만 이담은 두 사람이 이대로 순순히 물러설 리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일행이 떠나고 나서야, 경훈은 이담의 어깨에서 손을 떼었다.“미안해, 이담아. 아까는 상황이 좀 급해서 그랬는데, 혹시 내가 다른 마음이 있다고 오해하는 건 아니지?”“풉!”이담은 경훈이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해명할 줄 몰랐던 터라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아니에요.”“경훈아, 정말 고맙다.”이윤정이 경훈을 바라보는 눈빛에 호감이 한층 더 깊어졌다.‘이런 든든한 청년이 내 사위라면 얼마나 좋을까.’“어머님, 그런 섭섭한 말씀 마세요. 앞으로 어머님과 이담이 일은 저도 함께 챙기겠습니다.”이담은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이윤정은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듣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안나가 이숙자 일행이 이담의 본가에 찾아가 행패를 부렸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진혁은 의자에 기대 앉아 이마를 짚은 채 서류를 살펴보고 있었다.처음엔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경훈이 나서서 상황을 해결해 주었다는 안나의 말에 진혁의 동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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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화

심씨 가문 본가.이윤정이 경훈에게 점심을 먹고 가라고 권하자, 경훈은 거절하지 않았다.이윤정은 부엌으로 들어갔다. 마치 일부러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거실을 비워주는 듯했다.그러면서도 틈틈이 거실 쪽 분위기를 살폈다.경훈은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멍하니 생각에 잠긴 이담을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걱정 마. 그 사람들이 다시 괴롭히러 오면, 언제든 나한테 연락해.”이담이 퍼뜩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하지만 선배한테 너무 폐를 끼치는 거잖아요.”“폐는 무슨.”경훈이 찻잔을 내려놓았다.“네 일은 한 번도 귀찮다고 생각한 적 없어.”이담은 왠지 불편해졌다.‘내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건가?’이상하게도 그 말이 돌려서 마음을 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이담의 미묘한 변화를 눈치챈 경훈은 찻잔만 만지작거리며 입을 다물었다.‘너무 놀라게 한 건가?’바로 그때, 이담의 핸드폰이 몇 번 울렸다.확인해 보니 발신자에 하진혁의 이름이 떠 있었다.이담은 받지도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하지만 곧이어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순간 이담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핸드폰을 힘주어 쥐었다.‘설마...’이윤정이 손을 닦으며 부엌에서 나오자, 경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어머니, 제가 나가보겠습니다.”경훈이 문을 열자, 밖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진혁이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진혁의 입가에 조소 섞인 미소가 번지면서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진 대표님은 참 한가하신가 봅니다.”경훈 역시 웃으며 받아쳤다.“하 대표님만큼 한가할까요?”진혁의 시선이 경훈을 넘어 이담의 얼굴에 꽂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진혁은 얼굴이 굳어 있는 이윤정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장모님께서는 제가 반갑지 않으신 모양입니다.”이윤정은 앞치마를 꽉 움켜쥐었지만, 어쩔 수 없이 예의를 차려야 했다.“무슨 말씀을요. 하 대표님, 농담도 참.”진혁의 미간이 찌푸려졌다.그 호칭이 내심 불쾌한 듯했다.“저희는 아직 부부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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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화

진혁은 이담을 한참 바라보다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진경훈이랑 좋은 시간 보내고 있는데, 내가 방해해서 기분 상했어?”이담은 진혁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대꾸했다.“내가 당신이랑 문초연 사이 방해했을 때, 당신은 기분 좋았어?”말이 끝나자마자 진혁의 손이 이담의 몸을 거칠게 돌려세웠다.진혁은 이담의 턱을 움켜쥐고 억지로 시선을 맞췄다.“우리 아직 이혼 안 했어.”“이혼은 언제 할 건데?”“그렇게 급해?”“어, 급해.”이담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당장이라도 진혁을 떠나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았다.진혁의 손아귀에 들어간 힘이 조금 더 강해졌다.이담의 얼굴에 꽂힌 뜨거운 시선을 보면, 그 대답은 진혁이 바라던 게 아닌 듯했다.한참 뒤, 진혁이 입을 열었다.“난 안 급해.”이담은 순간 속이 철렁했다.“지금 나 갖고 장난해?”진혁은 실소를 터뜨릴 뿐 대답하지 않았다.잠시 멍하니 있던 이담이 문득 뭔가 떠오른 듯, 차가운 눈빛으로 진혁의 시선을 맞받아쳤다.“설마 오늘 일, 전부 당신이 꾸민 거야? 나 협박하려고?”진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내가 꾸민 짓이라고 생각해?”“당신이 아니라면, 어떻게 심씨 가문 본가에 나타난 건데?”예전에 심씨 가문에 일이 생겼을 때, 진혁은 단 한 번이라도 나타난 적이 없었다.어젯밤 진혁이 경고하자마자, 오늘 이숙자와 강수연이 곧장 찾아와 행패를 부렸다.우연치고는 너무 딱 맞아떨어졌다.“오해하셨습니다. 사실 그건...”“됐어.”진혁이 무거운 목소리로 안나의 말을 끊었다.눈앞의 이담을 품 안으로 끌어당긴 진혁의 눈빛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차라리 진짜 내가 한 일이 되는 게 덜 억울하겠네.”이담을 놓아준 진혁이 안나에게 심씨 가문 쪽에 당장 연락하라고 지시했다.이담은 진혁의 양복자락을 꽉 움켜쥐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진혁이 또박또박 내뱉었다.“네가 의심하는 바로 그 일.”안나가 전화를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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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화

이담은 잠시 침묵하다가 평온한 어조로 진혁을 보며 말했다.“뭐 먹고 싶은데? 내가 해줄게.”진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이담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기쁜지 화가 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이담의 얌전한 모습은 진심이 아니라 억지로 만들어 낸 순종처럼 느껴졌다.진혁의 얼굴은 평온했지만 속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굳이 이담의 속내를 들추지 않았다. 그저 팔을 뻗어 이담을 품에 안더니 번쩍 들어 올렸다.“다른 것부터 먼저 먹어도 되겠지.”“...”침실 안에서는 긴 시간이 이어졌다. 하늘거리는 창가의 커튼 너머로 햇살이 스며들면서 방을 밝혔다.이담을 끌어안은 진혁은 더욱 거세게 몰아붙였다. 마치 이담을 조금씩 심연으로 끌어내려 모든 것을 잊게 만들려는 것처럼.이담의 손톱이 진혁의 어깨와 목덜미를 파고들었다.이담은 싸늘한 눈빛으로 천장을 응시했다. 몸은 진혁을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마음속에는 더 이상 아무런 감정도 일지 않았다.마치 몸과 마음이 철저히 분리되어 버린 것 같았다.얼마나 지났을까, 이담은 격렬한 정사 끝에 정신이 아득해졌다.땀에 흠뻑 젖은 진혁이 등 뒤에서 이담을 껴안더니, 한참 뒤에야 이런 정적을 깼다.“예전에 내게 해줬던 점심, 그대로 해줘.”이담이 눈을 깜빡이며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당신이 뭘 좋아했었는지 기억 안 나.”애초에 이담은 단 한 번도 진혁에 대해 제대로 알았던 적이 없었다.예전에는 이담 혼자 일방적으로 매일같이 메뉴를 바꿔가며 삼시 세끼를 차려주곤 했지만, 그 식단은 전부 심계화의 입을 통해 전해 듣고 만든 것들이었다.진혁은 침묵했다.한참 뒤, 땀에 젖은 이담의 피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딱히 가리는 건 없어.”몸을 일으킨 이담은 옷을 입고 침실을 나선 뒤, 부엌으로 가서 간단한 식사를 준비했다.가운을 걸친 진혁이 부엌으로 걸어왔다.이담에게 다가가지는 않은 채 그저 벽에 기댄 채 지켜보기만 했다.머릿속에는 과거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던 이담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때 푸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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