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주남은 손에 들고 있던 유리컵을 내려놓았다.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은호를 마주 보았다.“너희가 있잖아. 그 정도는 알아서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은호는 강준에게 먼저 나가 있으라는 눈짓을 보냈다.사무실에 두 사람만 남자, 은호는 책상으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큰고모 일은 그렇다 쳐도, 어머니한테 그런 일이 생겼는데 별로 신경 쓰이지 않으시나 봅니다.”“엄마는 자업자득이야.”권주남은 한숨을 내쉬며 책장 앞으로 걸어갔다.금융 서적 한 권을 꺼내 들고는 무심하게 말을 이었다.“내가 그렇게 말렸는데도 내 말을 안 들었어. 본인이 셋째 형과 몰래 만나는 걸 선택했으니 언젠가는 들킬 일이었지.”마치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을 이야기하는 듯했다.얼굴에는 감정의 흔들림조차 전혀 없었다.은호는 손가락 끝으로 책상을 느릿하게 두드리면서, 권주남의 뒷모습을 날카롭게 바라봤다.은호 역시 알고 있었다.권주남이 자신과 옛이야기나 나누자고 찾아온 건 아니었다.“저한테 무슨 용건이 있으십니까?”권주남은 들고 있던 책을 다시 책장에 꽂았다.몸을 돌린 얼굴에는 난감하다는 듯한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은호야, 오늘은 정말 너랑 속 얘기 좀 하려고 온 거야. 알다시피 우리 둘은 나이 차이도 별로 않나잖아.”“난 널 조카라고 생각한 적 없어. 동생처럼 생각하지.”은호는 담담하게 대꾸했다.“제 숙부님을 형제처럼 대할 수는 없죠. 다른 용건이 없으시면 이만 가주시죠.”그러면서 문 쪽으로 손을 내밀어 나가라는 뜻을 보였다.권주남의 난감한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가 이내 씁쓸한 미소로 바뀌었다.“넌 여전히 나한테 여지를 안 주네.”권주남은 천천히 책상 앞으로 걸어왔다.두 손으로 책상 끝을 짚고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은호야, 집안에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너도 나도 잘 알잖아. 그런데 나도 정말 선택지가 없어.”“그리고 내 적은 너도, 네 아버지도 아니야.”“그러니까 나도 너랑 적이 되고 싶진 않아.”그 말을 끝으로 권주남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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