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담은 잠시 침묵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안내해 주세요.”종업원이 2층으로 이담을 이끌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있던 경훈의 시선은 정확히 이담을 향해 있었다.종업원이 자리를 비켜주자, 경훈이 변함없는 미소를 띤 채 바라보았다.“뭐 좀 마실래? 이 집 꽃차가 꽤 괜찮은데, 한 잔 마셔볼래?”“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맞은편 자리에 앉은 이담은 평소보다 한결 선을 긋는 깍듯한 태도였다.“아무것도 안 마실게요.”경훈이 시선을 내리깔았다.“네가 날 원망하고 있다는 거 알아. 그래도 이 말은 꼭 해야겠어. 미안해. 어머니 일은 나도 정말 죄송하게 생각해.”이담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더니, 고개를 들어 경훈을 마주 보았다.“다 지난 일이에요.”너무도 평온한 말투였다. 마치 모든 걸 내려놓은 사람처럼 보였지만, 경훈은 그게 진심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이담아, 내가 이야기 하나 들려줄게.”경훈이 찻잔을 꽉 쥐곤 생사를 함께한 두 전우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편의상 A와 B라고 부르겠다고 하면서.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었지만, 두 사람은 친형제보다 더 끈끈한 사이였다.A는 명망 있는 집안 출신이었지만, 배경이 없는 B를 무시하지 않았다.B의 눈에 비친 A는 흔히 보던 재벌가 자식들과는 달랐다. 오히려 예의 바르고 따뜻하며 책임감 넘치는 사내였다.두 사람은 속내까지 털어놓는 사이가 되었고, A는 B가 세상에서 가장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었다.B에게는 여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남몰래 A를 짝사랑하고 있었다.A 역시 여동생에게 호감이 있었지만, 여동생은 A의 엄청난 집안 배경 탓에 늘 주눅이 들어 있었다.하지만 A는 어떻게든 집안을 설득해서 여동생을 아내로 맞겠다고 굳게 약속했다.B의 묵인 아래 두 사람은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랑을 키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동생은 아이를 가졌다.경성으로 돌아간 A가 약속을 지켜서 여동생과 아이를 곧 데리러 올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번 떠난 A는 그 길로 감감무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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