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놓자, 비로소 내가 사랑을 알았다: Chapter 301 - Chapter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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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1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진 이담의 귓가에 지훈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평소 하던 대로만 해요. 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하면 돼요.”입술을 지그시 깨문 이담은 이내 마음을 다잡고 로봇 수술 장비를 조작했다. 먼저 두개골을 연 뒤, 뇌 조직을 조심스럽게 박리하며 혈종을 제거해 나갔다.눈앞에 펼쳐진 참혹한 광경에 지훈은 점점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했지만 끝까지 버텨냈다.“고 선생님, 잠깐 쉬시고 다른 분으로 교체할까요?”조심스러운 간호사의 물음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이담에게 기구를 건넨 지훈이 짧게 대답했다.“괜찮습니다.”이담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수술에만 집중했다.그 시각, 수술실 밖.복도에 주저앉아 흐느끼는 송미연을 명월과 간호사가 곁에서 연신 달래고 있었다.“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왜 뇌출혈이 온 거예요? 이제야 겨우 사람답게 살아보나 했는데... 당신까지 쓰러지면 난 어떻게 살라고요.”눈물범벅이 된 그녀에게 명월이 휴지를 건네며 위로했다.“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분명 무사하실 거예요.”“머리를 여는 수술이라잖아요...”“저희 의료진을 믿으셔도 됩니다.”그 말에 송미연은 훌쩍이면서 더는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4시간이 흘렀다.이담이 마지막 봉합을 마친 뒤 환자의 생체 징후를 확인하니 안정적이었다. 그제야 수술실 안에 있던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무엇보다 놀라운 건 극심한 결벽증에 피를 전혀 보지 못하는 지훈이 4시간이나 수술실에서 끝까지 버텨냈다는 사실이었다.이담이 미소 지으며 입을 열려던 순간, 지훈이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깜짝 놀란 이담이 급히 그를 잡고 안으면서 소리쳤다.“고 교수님!”“고 선생님!”...얼마 지나지 않아 여정아와 지훈의 아버지 고정민이 급히 병실로 들어섰다. 줄곧 병상 곁을 지키던 정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아버님, 어머님...”“지훈이가 왜 쓰러진 거니?”걱정 가득한 여정아의 얼굴을 보면서, 정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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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2화

정우가 나가자 병실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수술 환자를 살펴보고 돌아오던 이담은 지훈의 상태를 확인하려고 병실로 향했다가, 마침 슬금슬금 나오던 정우와 마주쳤다.“최 선생님?”깜짝 놀란 정우가 급히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댔다.“쉿.”“무슨 일이에요?”“지훈이 부모님이 오셨어요.”정우가 겁에 질린 얼굴로 병실을 힐끗 보면서 가리켰다.“분위기가 장난 아닙니다.”병실 안을 살짝 들여다본 이담의 시선에 낯선 남녀의 모습이 들어왔다.여자는 오십이 넘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늘씬하고 우아했다.김미영과 비교하면 여정아가 좀 더 풍만한 체형이지만, 단아하면서도 기품 있는 동양적인 미인이었다.역시 재벌가 사모님들은 저마다 다른 분위기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여정아는 화려하고 매혹적인 미인이었고, 김미영은 맑고 단아한 분위기였다.이만옥은 또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잠시 더 바라보려는 이담을 정우가 얼른 한쪽으로 끌어당겼다.“보지 않는 게 좋습니다.”“두 분이 싸우기 시작하면 괜히 불똥이 튈 수도 있어요.”이담이 웃음을 머금었다.“그 정도예요?”“모르시는구나.”정우가 작게 혀를 찼다.“두 분도 젊었을 때는 사연이 참 많았거든요.”그러다 문득 뭔가 떠올린 듯 이담을 바라봤다.“아, 맞다. 심 과장님이 하 대표님 사모님이시잖아요.”“지훈이 아버지는 하씨 집안 이야기가 나오는 걸 가장 싫어하십니다.”이담이 잠시 멈칫하며 무슨 사연이 있는지 물어보려던 순간, 간호사 한 명이 다급하게 달려왔다.“심 과장님! ICU 환자 보호자가 계속 난리를 치세요.”“무조건 일반 병실로 옮겨 달라고 하시는데 아무리 설명을 해도 안 들으십니다.”“수술한 지 얼마 안 된 환자예요. 아직 경과를 지켜봐야 해서 일반 병실로 옮기면 응급 상황에 바로 대응하기가 어렵습니다.”“저도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전혀 안 믿으세요...”간호사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가볍게 한숨을 내쉬면서 이담이 나섰다.“제가 가볼게요.”정우도 곧바로 따라나섰다.“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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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3화

자신을 바라보는 정우를 보면서 이담도 잠시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어느 하 대표님을 말씀하시는 거죠?”송미연이 턱을 치켜들었다.“당연히 경성시의 하 대표님이죠!”이담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래요? 전 하 대표님에게 생명의 은인이 있다는 얘긴 처음 듣는데요.”코웃음을 친 송미연이 허풍을 떨었다.“모르는 게 당연하죠. 우리 딸이 어릴 때 하 대표의 목숨을 구해줬거든요.”“그때 두 집안이 사돈을 맺을 뻔했어요.”“우리가 승낙만 했으면 지금쯤 우리 딸이 하씨 집안의 며느리가 됐을 텐데요?”아무리 들어도 선뜻 믿기 어려운 이야기라서, 주변 사람들은 서로 얼굴만 마주봤다.정우가 웃음을 터뜨리더니 팔짱을 낀 채 이담에게 몸을 기울이면서 속삭였다.“심 과장님.”“남편분이 사기라도 당하신 게 아닐까요?”이담은 대꾸하지 않고 송미연만 바라봤다.“하 대표님이 누구든 상관없습니다.”“지금은 저희 병원에 계신 만큼 병원 규정을 따라주셔야 합니다. 협조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대신 책임은 직접 지셔야 합니다.”이담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책임 확인서에 서명해 주세요.”“환자분을 일반 병실로 옮긴 뒤 응급상황에 제때 처치하지 못해 사망하더라도, 그 책임은 병원이 아닌 보호자에게 있다는 내용입니다.”“서명만 하시면 바로 일반 병실로 옮겨드리겠습니다.”간호사는 순간 놀란 얼굴로 이담을 바라봤다.‘정면으로 맞받아치네...’송미연의 얼굴이 금세 굳어졌다.“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왜 내가 그런 걸 써야 하는데?”“사람을 살리는 건 병원 책임이지 내 책임이에요?”이담의 목소리는 끝까지 차분했다.“환자를 살리려면 보호자 협조도 필요합니다. 협조는 거부하면서 왜 병원에만 책임을 지라고 하십니까?”“환자분 목숨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으신가요?”잠시 말을 멈춘 이담이 담담하게 덧붙였다.“그렇다면 지금 장례식장부터 알아봐 드릴까요?”“무,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당장 민원 넣을 거예요!”“그러세요.”이담은 눈 하나 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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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4화

이담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피식 웃었다.“그래요. 다 오해였다니 그럼 이제 일반병실로 옮기실 건가요?”말문이 턱 막힌 송미연은 굳은 얼굴로 진혁의 눈치만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안 옮길게요. ICU에 그대로 있겠습니다.”더는 볼 것도 없다는 듯 이담이 돌아서서 걸어가자 진혁이 그 뒤를 따라가려고 했다. 그때 송미연이 급히 앞을 막아섰다.“하 대표님, 시간이 괜찮으시면 잠깐 들르실래요? 차라도 한잔하시죠.”진혁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안나가 앞으로 나섰다.“사모님.”안나의 목소리는 단호했다.“16억 원을 받으셨을 때 그 은혜는 이미 다 갚은 겁니다.”“이제 송씨 집안의 일에 대표님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앞으로 문제를 일으키실 때는 대표님 이름을 함부로 팔지 말아 주세요.”소매를 가볍게 정리한 진혁이 말없이 자리를 뜨자, 안나도 곧바로 그 뒤를 따랐다.호의를 기대했다가 차갑게 거절당하자 송미연의 표정은 씁쓸하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지금은 체면보다 남편의 상태가 더 급했다.돈은 전부 남편이 관리하고 있다.혹시라도 남편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다.이담을 따라잡은 진혁이 손목을 붙잡고 말했다.“내가 설명할게.”이담은 손을 빼내며 돌아섰다.“뭘 설명하려고?”“저 가족하고 특별한 사이는 아니야. 예전에 받은 은혜를 갚았을 뿐이야. 걱정하지 마. 저 사람들 일에 더 이상 관여할 생각은 없어.”은혜를 갚았을 뿐이라.이담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렸다.“남한테 진 빚은 정말 끝까지 잊지 않는구나. 정작...”그녀는 말끝을 삼켰다.‘내 은혜만 빼고.’진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정작 뭐?”“아무것도 아니야.”이담이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환자는 경막상 뇌출혈이야.”“뇌혈관 질환 가운데 사망률과 후유 장애 발생률이 가장 높은 질환이라서, 수술이 끝났어도 계속 경과를 봐야 해.”“그런데 보호자는 ICU 비용이 아깝다면서 계속 일반병실로 옮기려고 하는데, 하 대표가 직접 이야기하면 설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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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5화

이담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지훈의 아버지가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게 느껴졌다.무슨 말이라도 하려던 순간, 문이 열리며 진혁이 병실로 들어섰다.진혁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쏘아붙였다.“맞습니다. 제 아내예요. 그러니까 고 회장님도 아드님 단속 좀 잘하시죠. 남의 아내한테 자꾸 붙어 다니지 않게요.”진혁의 얼굴에서 문득 하동규의 모습이 겹쳐 보이자, 고정민의 표정은 한층 더 차갑게 식었다.“내 아들이 어떤 애인지는 내가 더 잘 알아. 그보다 하 대표야말로 자기 아내부터 잘 챙겨야겠어.”“아버지, 그만 좀 하세요.”“내가 말도 못해?”“정민 씨, 애들까지 그렇게 몰아붙일 필요는 없잖아요.”여정아가 보다 못해 말렸다.손등 위로 핏줄이 불거질 정도로 주먹을 꽉 쥔 고정민이 맞받아쳤다.“내가 누구를 몰아붙였다는 거야? 하 대표를 말하는 거야?”“정말 너무하시네!”더는 참지 못한 여정아가 문을 세게 닫고 병실에서 나가 버리자, 순간 병실 안은 숨 막힐 만큼 조용해졌다.이담은 조용히 숨을 고른 뒤 입을 열었다.“전 이만 가볼게요.”말을 마친 이담이 병실을 나섰다.병실 안의 부자를 힐끗 바라본 뒤, 천천히 따라 나선 진혁은 엘리베이터 앞에 선 이담의 등 뒤에서 걸음을 멈췄다.“고 회장님은 우리 아버지와 오래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어. 그러니까 방금 전 말들은 마음에 담아두지 마.”이담은 뒤돌아보지도 않았다.“마음에 안 담았어.”남들이 하는 말을 하나하나 다 마음에 담았다면 진작에 지쳐 쓰러졌을 것이다.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뒤, 진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고지훈이 그렇게 걱정돼?”이담이 의아한 듯 돌아봤다.“친구 걱정도 하면 안 돼?”그러곤 진혁을 똑바로 바라봤다.“참견도 적당히 해.”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이담은 곧장 밖으로 나갔다.곧바로 따라붙은 진혁이 이담의 팔을 붙잡으면서 돌려 세웠다.“넌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할까?”이담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무슨 뜻이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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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6화

유담은 손에 쥔 카드를 꽉 움켜쥔 채, 차마 송미연의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그대로 서있기만 했다.오늘 몰래 아버지 방에 들어가 카드를 꺼내려다 들켜서 송인성과 크게 다퉜었다. 그가 손을 들자 밀쳐낸 뒤 그대로 뛰쳐나왔는데, 갑자기 뇌출혈이라니?“말 좀 해 봐!”화가 난 송미연이 유담을 밀치자, 휘청거리면서 뒤로 물러난 유담의 손에서 카드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카드를 주워 든 송미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이게, 왜 아빠 카드가 네 손에 있어?”유담은 끝내 대답하지 않았지만 송미연은 이미 모든 걸 알아차렸다.짝!송미연이 뺨을 후려치자, 유담의 얼굴이 옆으로 홱 돌아갔다.“너 사람 맞아? 어떻게 네 아빠 카드를 훔칠 생각을 해!”유담도 입술을 깨물며 눈을 붉히더니 송미연을 노려보며 소리쳤다.“내가 좋아서 그런 줄 알아요? 이 돈이 어떻게 생긴 건지 엄마랑 아빠도 다 알잖아요!”“내가 그 여자한테 2억을 안 주면, 우리 일을 다 폭로할 수도 있었단 말이에요!”“난 2억만 가져가려고 했는데, 아빠가 끝까지 안 줘서 훔칠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순간 송미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털썩 소파에 주저앉은 송미연이 얼굴을 감싸 쥐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어쩌다 이런 일이...”“이제야 겨우 사람답게 사나 했더니, 하늘도 우릴 가만두질 않는구나...”유담은 우는 어머니를 더는 상대할 마음도 없었다. 마치 송인성이 쓰러져 입원한 건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인 것처럼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다.방에 들어온 유담은 문득 주머니에서 팔찌 하나를 꺼냈다.낡은 붉은 매듭 팔찌에는 빛바랜 엽전 하나가 달려 있었고, 위에는 희미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크기를 보니 어린아이가 차던 팔찌였다.오늘 송인성의 방을 뒤지다가 우연히 함께 발견한 물건이었다.‘이런 고물도 돈이 되려나? 며칠 뒤에 전당포에 한번 가져가 봐야겠어.’...다음 날.송인성의 병실을 찾은 이담은,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물을 마시고 있는 그에게 다가갔다.“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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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7화

복도 끝에서 걸어오던 지훈이 이담 앞에 멈춰 섰다.이담이 먼저 입을 열었다.“몸은 괜찮아요?”지훈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어제 일은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아버지가 심 선생님한테 악감정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빙긋 웃은 이담이 눈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알아요, 제 신분 때문이잖아요.” “괜찮아요, 마음에 담지 않았어요.”지훈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습니까?”잠시 멍하니 있던 이담이 이내 웃으며 대답했다.“살면서 별소리를 다 들어봤는데요. 그런 걸 하나하나 다 마음에 담았으면 매일같이 사람들하고 싸우고 살았겠죠.”입을 다문 채 자신을 바라보는 지훈에게 이담이 물었다.“교수님이랑 마동순 회장님도 서로 교류가 있으셔서, 두 집안도 나쁘지 않은 관계인 줄 알았는데.”“아버님은 하씨 가문 얘기만 나오면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세요?”“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요?”지훈이 되물었다.“하진혁은 아무 말도 안 했습니까?”이담은 고개를 저었다.피식 웃더니 한동안 말이 없던 지훈이 이윽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제 어머니와 하진혁의 아버지는 예전에 서로 사랑했던 사이였습니다.”“그런데 어머니가 아버지와 결혼한 뒤에도 그 인연을 완전히 끊지 못했죠.”이담은 깜짝 놀랐다.‘관계가 이렇게까지 복잡했다고?’굳어진 이담의 표정을 본 지훈이 말을 이었다.“아버지는 그 일 때문에 지금까지도 어머니 마음속에는 아직 그 사람이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그래서 하동규 씨를 미워하게 됐고, 하씨 가문 사람이라면 누구든 곱게 보질 않습니다.”순간 시부모를 떠올린 이담은 생각에 잠겼다.언제나 서로를 존중하는 부부처럼 보였지만 그 관계에는 사랑이 없었다.하동규는 본가에 와서도 중요한 일만 처리한 뒤, 마동순과 진혁을 만나 식사하면서 몇 마디 나누고는 곧바로 떠나곤 했다.그동안은 부자가 원래 성격이 비슷해서 그런 줄만 알았다.‘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구나.’생각을 정리하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이담이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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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8화

“퇴원요?”송인성의 얼굴에 걱정이 스쳤다.“병원에 계속 있으려니 마음이 편치 않아.”그때 수액을 들고 들어온 소연이 커튼을 걷으며 말했다.“환자분, 수액 맞으셔야 합니다.”남편이 퇴원하고 싶어 하는 만큼 같은 마음이었던 송미연이 얼른 물었다.“간호사님, 저희 남편은 언제쯤 퇴원할 수 있을까요?”미소를 지으면서 소연이 대답했다.“죄송하지만 그건 담당 선생님께서 결정하셔야 해요. 게다가 수술하신 지 아직 사흘도 안 되셨잖아요.”부부의 실망한 표정을 본 소연은, 수액을 연결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집에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으세요?”송인성이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아,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집이 좀 그리워서요.”소연은 더 묻지 않았다....저녁.집에서 이담과 함께 저녁을 먹던 소연이 문득 송인성 이야기를 꺼냈다.“송인성 환자분이 퇴원하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국을 뜨던 손을 멈춘 이담이 되물었다.“퇴원하고 싶다고요?”“네. 그런데 두 사람이 좀 이상했어요.”“아내분도 그렇고요. 남편이 수술한 지 얼마 안 됐는데 퇴원하겠다고 하니까 말리는 기색도 없더라고요.”가볍게 웃은 이담이 대답했다.“나이가 드신 분들은 병원에 오래 있는 걸 싫어하시잖아요. 입원비 아깝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고.”“아마 돈을 아끼려고 그러시는 걸 거예요.”그때 초인종이 울리자 소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제가 나가 볼게요.”문을 열자 진혁이 서 있었다. 소연은 얼른 비켜서면서 인사했다.“대표님, 오셨어요? 들어오세요.”진혁이 집 안으로 들어섰다.소연은 주방으로 가서 수저를 하나 더 꺼내 오려고 했지만, 그 모습을 본 이담이 입을 열었다.“배고프면 알아서 먹을 사람이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소연은 진혁을 한 번 바라보고는 머쓱한 표정으로 수저를 내려놓았다.“그... 알겠어요.”의자를 끌어당겨 앉은 진혁이 입을 열었다.“잘 차려 먹고 있네.”이담이 태연하게 대꾸했다.“굳이 굶을 이유는 없으니까.”진혁은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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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9화

다음 날.함께 집을 나서던 이담과 소연은 마침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지훈과 마주쳤다.“고 선생님, 좋은 아침이에요.”소연이 먼저 인사하자, 지훈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두 사람 너머로 현관문에 기대선 진혁이 눈에 들어왔다.“고 선생님, 좋은 아침입니다.”진혁이 웃으며 먼저 말을 건넸지만, 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차가운 시선만 던질 뿐이었다.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눈치채지 못한 채, 이담은 그대로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반면 슬쩍 뒤를 돌아본 소연은 속으로 중얼거렸다.‘이게 무슨 상황이지?’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나서야 지훈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하 대표님, 굳이 사람 신경을 긁으실 필요까지는 없지 않습니까?”진혁은 태연하게 옷깃을 정리했다.“제가요?”지훈이 피식 웃었다.“아주 티가 납니다. 서원 오피스텔을 통째로 사들이고, 심지어 제 옆집으로까지 이사를 오셨잖습니까?”“절 견제하려는 거 아닙니까?”진혁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지훈을 바라보더니 왼손 약지의 결혼반지를 천천히 매만졌다.“전 아직 이혼하지 않았는데, 고 선생님은 틈만 나면 제 아내에게 다가오시잖아요.”“이 정도면 경계할 수밖에 없죠.”지훈의 입가에 비웃음이 번졌다.“하 대표님도 불안하신가 보군요.”말끝에 비꼼이 묻어났다.“지금의 심 선생님과 예전의 하 대표님을 바꿔 생각해 보시죠.”“심 선생님이 초연 씨를 경계하던 그때, 하 대표님은 단 한 번이라도 심 선생님을 안심시켜 준 적이 있었습니까?”순간 진혁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지만, 지훈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그래도 전 하 대표님의 전 여자친구보다는 선은 지킬 줄 압니다.”“심 선생님이 아직 이혼하지 않은 이상, 절대 선을 넘는 일은 없을 겁니다.”말을 마친 지훈은 그대로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복도에 홀로 남은 진혁의 얼굴은 불빛 아래에서 한층 더 차갑게 가라앉아 보였다. 주변의 공기마저 싸늘하게 식을 정도로....유담은 팔찌에 달려 있던 엽전을 시내 전당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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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0화

그 순간 뒤에서 강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생각에 잠겨 있던 은호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알겠어요. 제가 직접 만나 볼게요.”전화를 끊은 은호가 돌아서서 바라보자, 앞에 멈춰 선 강준이 보고했다.“도련님, 경매장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이미 들었어.”놀란 표정을 지은 강준이 되물었다.“벌써요?”목에 걸친 수건을 내려놓으며 은호가 지시했다.“그 여자 정보부터 가져와.”“네.”은호는 핸드폰 화면을 천천히 훑어본 뒤 다시 돌려주며 말했다.“차 준비해.”강성대학병원.함께 ICU를 찾아 송인성의 상태를 확인하러 간 이담과 정우는, 침대 곁에 앉아 남편에게 밥을 먹여 주고 있는 송미연을 발견했다.이담이 다가가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환자분, 몸은 좀 어떠세요?”이담을 힐끗 바라보던 송인성은 금세 시선을 피하면서 대답했다.“많이 좋아졌습니다. 이제 퇴원하면 안 될까요?”송미연도 얼른 거들었다.“그러게요, 선생님. 요 며칠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있어요.”“거의 다 나은 것 같은데 오래 입원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정우가 차분히 설명했다.“보호자분, 퇴원 여부는 환자분 상태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합니다.”“환자분이 원하신다고 바로 퇴원하실 수 있는 건 아닙니다.”“혹시 퇴원 직후에 문제가 생기면 병원에도 책임이 따르게 됩니다.”송미연이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뭐라고 하려는데, 송인성이 먼저 물었다.“그럼 얼마나 더 있어야 합니까?”차트를 넘겨보며 정우가 대답했다.“내일까지 지금 상태를 유지하시면 일반 병실로 옮기실 수 있습니다.”“그리고 닷새 뒤 실밥을 제거하고, 그동안 합병증만 없으면 퇴원 절차를 진행해 드리겠습니다.”송미연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래요.”“그럼 그렇게 하죠.”적어도 언제 퇴원할 수 있는지 알게 됐으니, 송인성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ICU를 나온 뒤 정우가 문득 입을 열었다.“며칠 전에 지훈이 아버님한테 혼이 났다면서요?”웃어넘긴 이담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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