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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별이 되어 빛나리: Chapter 901 - Chapter 910

913 Chapters

제901화

“기억을 지운다고요?”심성빈의 목소리가 떨렸다.“네, 심 대표님.”의사는 안경을 고쳐 쓰며 침착하게 설명했다.“송하나 씨가 현재 겪는 고통의 근원은 차정원 씨가 총에 맞고 바다로 떨어지던 기억입니다. 만약 그 일을 잊게 해준다면 송하나 씨도 점차 안정을 되찾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차정원 씨와 관련된 일부 기억도 잃을 수 있어요.”“차정원을 잊는다고요?”“완전히 잊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흐릿해지고 많은 세부 사항이 사라질 것입니다. 또한 부작용으로 전반적인 기억력에 영향을 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건망증이나 집중력 저하 같은 증상 말이죠. 이 치료를 진행할지 여부는 가족분들께서 신중하게 결정하셔야 합니다.”심성빈은 복도에 앉아 오랜 시간 깊은 생각에 잠겼다.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머릿속에는 날로 야위어가는 송하나의 얼굴, 퀭한 눈동자, 그리고...창가에 앉아 허공에 대고 차정원의 이름을 부르던 모습까지 반복해서 떠올랐다.그녀가 이대로 절망에 잠식되어 가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얼마나 지났을까. 심성빈은 천천히 눈을 뜨고 병실로 돌아갔다.송하나는 침대에 기대앉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석양의 붉은 빛이 얼굴에 드리우자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유독 투명해 보였다.“하나야.”심성빈은 침대 옆으로 다가가 그녀의 차가운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너의 고통을 덜어줄 치료법이 하나 있대.”송하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두 눈은 여전히 충혈됐지만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무슨 방법인데요?”잔뜩 잠긴 목소리에는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이 치료를 받으면 일부 기억을 잃게 될 거야.”심성빈은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목울대를 굴리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차정원 씨가 바다로 떨어지던 일, 그 고통스러운 장면들을 잊게 될 거야. 하지만... 그밖에도 네가 차정원 씨랑 함께했던 다른 기억들까지 잊혀질 수 있어.”송하나는 침묵했다.병실에 기나긴 정적이 흘렀다.너무 길어서 그녀가 대답하지 않을 거라 여길 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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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2화

살짝 놀란 가문 의사가 한마디 물었다.“심 대표님, 정말 결정하신 겁니까?”“치료가 시작되면 부작용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차정원 씨에 대한 송하나 씨의 기억은 점점 흐릿해질 겁니다.”“결정했어요.”심성빈의 목소리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굳은 의지가 담겼다.“고통스러운 기억을 잊는 것이 하나가 편안하게 살고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게 하는 길이라면 잊어도 상관없어요.”송하나가 언젠가 모든 기억을 되찾고 차정원을 떠올렸을 때 심성빈이 그녀 대신 이런 결정을 내린 걸 알게 돼 원망한다고 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송하나만 잘 살아갈 수 있다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알겠습니다. 심 대표님,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치료는 다음 날 오후로 잡혔다.부드럽게 송하나의 손을 잡은 심성빈은 속죄하는 마음을 감추기 위해 최대한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하나야, 가문 의사 말이 네 우울증이 재발해서 간단한 심리 치료를 받아야 한대. 금방 끝나니까 한숨만 자고 일어나면 될 거야.”송하나는 별다른 의심 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가 와서 그녀를 치료실로 밀고 들어갔다.문 앞에 서서 문이 닫히는 모습을 지켜보던 심성빈은 한참 뒤에야 천천히 몸을 돌렸다.가문 의사가 동의서를 건네자 펜을 들었지만 손이 통제 불능으로 떨렸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자기 이름을 적었다.‘하나야, 미안해. 이번만큼은 이럴 수밖에 없어. 내가 너 대신 결정할 수밖에 없어...’치료는 무려 세 시간 동안 이어졌다.세 시간 내내 심성빈은 복도를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치료실 문 앞에 똑바로 선 심성빈은 온몸에 피로와 초조함이 배어 나왔다.그러면서 마음속으로 계속 기도했다.치료가 잘 돼 송하나가 고통에서 벗어나기를...드디어 치료실 문이 열리더니 송하나가 간호사에게 밀려 나왔다.눈을 감고 있는 송하나는 깊은 잠에 빠진 듯 눈썹을 살짝 찡그리고 있었다.“대표님, 치료는 순조롭게 마쳤습니다. 송하나 씨는 두 시간 뒤쯤 깨어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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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3화

트라우마 기억을 지운 뒤 송하나의 상태는 눈에 띄게 호전되기 시작했다.눈가에 가득했던 절망은 서서히 사라졌고 하루 종일 울적해하던 모습도 없어졌으며 몸도 음식을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다.식사량은 많지 않았지만 신체 기능이 조금씩 회복되며 창백하고 야위었던 볼에도 서서히 혈색이 돌았다.다만 가끔씩 가는 바늘이 가슴을 콕 찌르는 듯한 아릿한 통증이 찾아왔다. 생명에 지장은 없었지만 무언가가 가슴속에서 빠져나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가끔 머릿속에 흐릿한 단편적인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빛과 그림자가 희미하게 어질러진 느낌, 거기에 인물 형체도 아른거렸다.하지만 그 장면을 붙잡고 자세히 떠올리려 할 때마다 머릿속 화면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더 큰 허전함과 알 수 없는 서글픔만 남았다.가문 의사도 이 증상에 대해 심성빈에게 설명해 줬다. 이는 기억 개입 치료 후 나타나는 가장 흔한 후유증이라고 했다.상처를 완전히 치유하고 남은 기억 파편을 억누르려면 일주일에 한 번씩 심층 심리 개입 치료를 최소 반년간 꾸준히 받아야 고통스러운 과거를 완전히 봉인할 수 있다고 했다.심성빈은 송하나를 곁에서 돌보는 한편 차정원의 행방을 몰래 수소문했다.시간이 꽤 흘러 모두들 차정원이 가슴에 총상을 입고 광활한 바다로 추락한 뒤 살아남기 힘들 것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심성빈은 포기하지 않았다.모든 인맥과 자원을 동원해 밤낮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수색을 이어갔다.한편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송하나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아무에게도 흘리지 않았고 철저히 비밀에 부쳤으며 내막을 아는 이는 모두 그가 신임하는 최측근일 뿐이었다.그런데 빅토르는 어떻게 이 소식을 알고 이렇게 빨리 쫓아온 걸까?마음을 가라앉히고 몰래 조사하던 심성빈은 드러난 진실에 격분했다.실수는 더 시걸 측에서 발생한 것이었다.그들은 이미 빅토르의 스파이에게 감시당하며 가는 곳마다 그들이 따라붙었음에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차정원을 호송해 국경을 넘나드는 여정 내내 빅토르의 부하들이 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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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4화

심성빈은 빅토르와 완전히 끝을 내고 단번에 그를 쓰러뜨려서 다시는 송하나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려는 결심이었다.이미 전에 빅토르는 차정원이 고용한 용병들의 기습을 받아 어깨에 상처를 입어 아직 낫지 않았는데 이번 해상 난전에서 또 차정원에게 복부를 맞았다.낡은 상처에 새 상처가 덧붙고 거기에 오랫동안 앓아온 병까지 더해져 이중, 삼중으로 치닫는 고통 속에서 최고의 의료진과 약, 그리고 모든 장비를 동원해 간신히 목숨만 건졌다.지금이야말로 빅토르가 가장 약하고 무기력할 때라 상황을 전혀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심성빈은 아주 분명하게 보고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빅토르를 완전히 끝장낼 최적의 순간이라는 것을...반드시 지금 움직여서 빅토르를 제거하고 영원히 후환을 없애야 했다.만약 휴식을 취한 빅토르가 회복되어 기력을 되찾게 놔둔다면 앞으로도 끝없는 집착과 보복이 이어질 것이 뻔했다.더 이상 상대에게 어떤 재기의 기회도 주지 않을 것이다.잠시 침묵하며 망설이던 더 시걸 책임자는 결국 이를 꽉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심 대표님, 꼭 최선을 다하겠습니다.”한편, 강현.최로운에게서 송하나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은 차설아는 감격해서 밤새도록 울었다.또한 심성빈이 차정원을 찾는 데 성공했다고 말해주었다. 곧 둘 다 귀국할 거라고...그날부터 차설아는 날마다 목이 빠지도록 기다렸다. 오빠가 무사히 돌아오길, 그리고 다시 하나를 만나길 간절히 바랐다.하지만 몇 날 며칠이 지나도 귀국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았다.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차설아는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애가 타서 계속 최로운을 재촉하며 물었다.“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우리 오빠랑 하나는 언제 돌아와? 나한테 정확한 소식 좀 알려 줄 수 없어?”최로운의 표정이 조금 자연스럽지 못했다.그도 며칠 전에야 심성빈에게서 진실을 알게 되었다.차정원과 송하나가 귀국하는 길에 빅토르의 부하들에게 제압당했고 차정원은 총에 맞아 바다에 떨어졌으며 며칠째 수색했지만 소득이 없어 이미 생사를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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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5화

다음 날 아침.최로운이 외출한 후, 차설아는 최이솔의 볼에 입을 맞추고 친정으로 데려가 가족들에게 부탁했다.별장으로 돌아와서는 간단히 짐을 쌌다. 해외행 비행기표를 예약해 바로 떠날 작정이었다.장을 보고 돌아온 가정부는 차설아가 캐리어를 끌고 여행 복장을 한 모습을 보고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사모님, 먼 길 가시는 겁니까?”차설아는 평온한 표정으로 아무 핑계나 대충 둘러댔다.“여행 패키지 하나 신청했어요. 기분 전환 좀 하려고요. 점심은 알아서 드세요.”가정부는 별 의심 없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당부했다.“네, 알겠습니다. 사모님. 그럼 길 조심하시고 즐겁게 다녀오세요.”살짝 고개를 끄덕인 차설아는 바로 짐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하지만 바로 공항으로 가지 않고 현지의 최고급 보안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톱스타와 재계 거물들에게 전용 경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전문성이 뛰어났다.높은 비용임에도 돈을 아끼지 않고 지불해 실력 좋은 경호원 네 명을 고용해 동행하기로 했다.그들이 호위해 주니 마음이 조금 더 든든했다.공항에서 대기할 때, 차설아는 심플하고 날렵한 정장 차림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뒤에는 체격이 좋고 까만 옷을 입은 당당한 경호원 4명이 바짝 따랐다. 그녀의 활기찬 모습과 함께 뒤에는 몸이 탄탄한 경호원들까지 있어 단번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은밀히 해외로 나가는 인기 여배우로 오해받기도 했다.차설아는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저 빨리 해외로 가서 오빠와 송하나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싶었다.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던가, 항공편이 일시적으로 지연된다는 통보를 받았다.오후 3시에 떠날 예정이었던 비행기는 해 질 무렵이 되어서야 이륙할 수 있었다.저녁, 최로운은 이강우를 자기 술집에 불러 조용히 만나기로 했다.고급스럽고 사적인 룸은 조명이 어두워 술기운을 물씬 풍겼다.최로운은 답답하고 괴로운 마음을 안고 술을 한 잔 두 잔 들이켰다.맞은편에 앉은 이강우는 가끔 잔에 든 술을 한 모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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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6화

지난번 송하나 사고 이후, 해외에서 돌아온 이강우는 마치 사람이 바뀐 듯 점점 더 바삐 일했다.심지어 자주 유라온으로 가곤 했고 예전에는 전혀 손대지 않았던 낯선 업종들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안 그래도 의아했던 최로운은 참다못해 물었다.“잘 돌아가고 있는 안정된 사업은 제대로 안 하고 왜 갑자기 낯선 분야를 이렇게 많이 확장해? 날마다 해외를 뛰어다니면 안 피곤해?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고개를 든 이강우는 담담한 어조로 대충 둘러댔다.“갑자기 흥미가 생겼을 뿐이야. 새 분야를 한번 해 보는 거지.”더 깊은 얘기는 일부러 피하며 일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했다.최로운은 그 모습을 보고 더 묻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사실 그 이유는 이강우 자신만 알 뿐이었다.지난 몇 달 동안 여러 국가의 정재계 인사를 만나며 막대한 재력, 인맥, 그리고 정력을 소비했다. 물론 이건 물밑 작업에 불과했다.이강우가 손댄 모든 업종들은 다름 아닌 빅토르 가문의 주력 사업 및 산하의 체인 산업이었다.송하나 사고 소식을 들은 그 순간부터, 이강우는 몰래 계획을 세워 두었다. 상업적 수단을 써서 송하나에게 상처를 준 그 나쁜 놈을 포위 섬멸하려는 것,,.설사 송하나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해도 이 계획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바로 그때 최로운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집에 있는 가정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아무 생각 없이 받으며 나른한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세요?”“대표님, 얼마 전 사모님을 위해 맞춤 제작한 고급 주얼리가 도착했습니다. 백화점 담당자가 직접 집에 가져왔는데 가격이 비싸서 대표님께서 직접 받으셔야 합니다. 저희가 대신 받을 수 없어서 연락드린 겁니다. 오늘 밤 귀가하시나요?”최로운은 무심하게 되물었다.“사모님은 집에 안 계세요?”가정부가 솔직히 말했다.“안 계십니다, 사모님은 오늘 오전에 캐리어를 끌고 나가셨어요. 가기 전에 작은 아가씨까지 친가인 차씨 가문 본가에 데려다주셨고요.”그 말이 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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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7화

비행기는 밤새도록 날아 동이 틀 무렵 마침내 이국땅의 공항에 착륙했다.차설아는 출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뒤로는 경호원이 캐리어를 끌며 그림자처럼 붙어 그녀의 안전을 지키고 있었다.차설아는 무심결에 휴대폰을 열었다. 화면에는 최로운에게서 온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가 떠 있었다.‘개자식, 내가 집에 없는 걸 알아채고 따지려는 거겠지.’다만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진실을 확인하기 전까진 절대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차설아는 대수롭지 않게 휴대폰을 가방에 쑤셔 넣고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출구를 막 나서려는 찰나, 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그녀 앞을 가로막았다.무리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차설아 씨,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그녀는 멈칫했다.“누구시죠? 저를 아세요?”출국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공항까지 마중을 나온 걸까?남자는 담담하게 대답했다.“네.”차설아의 얼굴에 의구심이 서렸다.“혹시 최로운이 보냈어요?”최로운 말고는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혹시 그녀에게 진실을 숨기려고 일부러 사람을 보내 공항에서 가로막으려는 건 아닐까.차설아는 서늘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쏘아붙였다.“가서 전해요. 오늘 오빠랑 하나를 만나기 전까진 절대 안 돌아간다고. 아무도 막을 생각 하지 마세요!”“사실 저희는 심성빈 대표님이 보내셨습니다. 송하나 씨를 만나고 싶다면 저희를 따라오세요.”심성빈 이름 석 자를 듣자 차설아의 경계심이 한풀 꺾였다.애초에 심성빈이 송하나를 구해주었으니 이 사태의 전말을 잘 알고 있는 인물 역시 심성빈뿐이었다.차설아는 마음이 흔들렸지만, 여전히 의심의 끈을 놓을 순 없었다. 이 사람들이 일부러 속임수를 쓰는 걸 수도 있으니까.그녀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제가 낯을 좀 가려서 낯선 사람과 한 차에 타는 건 불편하네요. 차 한 대 내주시겠어요? 앞장서시면 저랑 경호원이 뒤따라갈게요.”어쨌거나 제 돈 주고 고용한 경호원이니 당연히 그녀의 안전을 지켜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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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8화

차설아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코끝이 시큰거리고 붉게 달아올랐으며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심성빈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기에 전부 그의 탓으로 돌릴 순 없을 터.하지만 평생을 함께 자란 오빠인데 이토록 비극적인 현실을 어떻게 단번에 마주하란 말인가.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에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긴 침묵 끝에 차설아는 울음을 삼키며 두 눈이 충혈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하나는요? 하나는 어떻게 됐어요?”“하나는...”심성빈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말투에는 안쓰러움과 어쩔 수 없는 무력감이 묻어났다.“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아서 거의 무너져 내릴 지경이었어요. 자칫 잘못하면 정말 견디지 못할 상황까지 치달을 뻔했어요.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어요. 의사의 권유에 따라 가장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지웠어요. 지금 하나는 많은 기억을 잊은 상태에요. 차정원 씨도 포함해서요...”차설아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송하나와 차정원이 그토록 서로를 사랑하는데, 눈앞에서 사랑하는 이의 사고를 목격한 송하나는 아마 차설아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억지로 삼키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하나를... 만나볼 수 있을까요?”“지금 자고 있어요.”심성빈이 답했다.“우선 가정부 시켜서 객실 하나 내어줄 테니 좀 쉬세요. 하나 깨어나거든 모셔다드릴게요.”말을 마친 심성빈은 차설아를 똑바로 응시하며 신신당부했다.“설아 씨, 이따 하나 만나면 꼭 좀 감정 잘 추스르길 바랄게요. 겨우 안정을 되찾은 상태라 작은 자극도 견디기 힘드니 절대 하나 앞에서 말실수라도 하면 안 돼요.”차설아는 눈물을 머금은 채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네. 이해해요. 자제할게요.”가정부는 차설아를 객실로 안내했다.문이 닫히는 순간, 애써 지탱하던 모든 강인함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그녀는 문에 등을 기댄 채 바닥으로 미끄러지듯 주저앉아 소리 없이 오열했다.생사조차 알 수 없는 오빠의 안위,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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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9화

“뭐야... 나 이렇게 멀쩡히 잘 있잖아.”송하나가 상냥하게 웃으며 차설아를 다독였다.“지난번에 실수로 물에 빠지는 바람에 고생 좀 했지만 여기서 조금만 더 회복하고 귀국해서 너 보러 가려고 했어.”그녀는 말을 마치고 심성빈을 돌아보며 은근한 의지와 확신이 담긴 눈빛을 보냈다.“그렇죠, 성빈 씨?”심성빈의 시선이 그녀에게 머물렀다.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지면서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몸 잘 추스르면 돌아가자.”송하나는 단지 귀국한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자신과 함께 돌아갈 사람이 따로 있었다는 건 전혀 몰랐다.차설아는 분위기를 따라 눈빛에서 슬픔을 서서히 거두고 울음 끝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이 조용히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던 찰나, 현관에서 갑자기 급박한 발소리가 들려왔다.최로운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허둥지둥 뛰어 들어왔다. 양복은 구겨져 있었고 턱에는 거뭇한 수염 자국이 선명했다. 눈은 핏발이 서서 밤새 한숨도 못 자고 달려왔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들어오자마자 차설아를 발견한 최로운의 눈동자가 안도감으로 흔들렸다.그는 다른 것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성큼성큼 다가가 차설아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았다는 안도감과 그간의 두려움이 섞여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여보, 왜 말도 없이 이런 곳까지 혼자 온 거야?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차설아는 그가 너무 세게 껴안는 바람에 숨이 막혔고 한편으로는 화가 치밀면서도 서러움이 밀려왔다. 그녀는 최로운의 다리를 툭 찼다.“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이 남자가 계속 거짓말로 둘러대고 회피만 하지 않았어도 그녀가 진실을 파헤치겠다고 이 먼 곳까지 홀로 오진 않았을 것이다.오빠의 실종을 생각하자 조금 전 애써 눌러두었던 눈물이 다시 핑 돌았다.최로운도 제 잘못을 아는지라 그녀를 더욱 꽉 안아줄 뿐이었다.그는 자세를 낮추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잘못했어. 다 내 탓이야. 여보, 앞으로는 제발 말 한마디 없이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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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0화

심성빈은 송하나를 조심스럽게 부축해 식탁으로 데려갔다. 의자를 빼주는 제스처는 더없이 다정하고 자연스러웠다.한편 차설아는 최로운을 끌고 뒤따라가면서 더 이상 헛소리하지 말라는 듯 눈빛으로 경고했다.최로운은 그 뜻을 알아차리고는 입술을 지퍼로 잠그는 시늉을 해 보였다.언제든 마누라 말을 잘 듣는 게 최고니까.식사 후, 차설아와 송하나는 정원 산책에 나섰다.넓은 정원은 정성스럽게 가꾸어져 무성하고 아름다웠다. 그 안에는 온갖 꽃들이 가득 심겨 있었다.따스한 햇살이 꽃가지 위로 쏟아져 내렸다. 떨어진 꽃잎들이 형형색색으로 흩날렸고 은은한 꽃향기가 바람에 실려 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이 정원 진짜 이쁘다.”차설아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이 꽃들 다 성빈 씨가 심었어. 시간 날 때마다 직접 물도 주고 그랬거든.”송하나는 무심코 한 말이었지만 차설아는 듣고 나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꽃과 나무들이 얼마나 정성스럽게 관리되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으니까.심성빈이 이 모든 것을 가꾸는 것은 오롯이 송하나를 위해서였겠지.그녀를 향한 배려와 보살핌, 또한 그녀를 바라볼 때 눈빛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따뜻함과 애정 어린 시선은 자리에 있는 누구라도 느낄 수 있었다.어쩌면 심성빈이 송하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차정원보다 못지않을지도 모른다.송하나가 기억을 잃은 상황, 모두가 그녀를 죽었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심성빈은 얼마든지 그녀를 숨기고 평생 함께할 수 있었다.하지만 그는 진실을 말하고 희생을 택했으며 송하나를 차정원에게 돌려주려 했다.그런 점에 비추어 보면 심성빈은 말 그대로 참된 어른이었다.하지만 차정원은...겨우 고통 속에서 희망을 찾았는데 사랑하는 하나를 데리고 귀국하기도 전에 불행을 겪다니.여기까지 생각한 차설아는 또다시 눈시울이 빨개졌다.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저 멀리 피어 있는 꽃을 보는 척했다.“설아야.”별안간 송하나의 목소리가 들렸다.차설아가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내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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