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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별이 되어 빛나리: Chapter 921 - Chapter 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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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1화

외국인 남자는 고작 40만 원짜리 단역 배우에 불과했다. 대본에 이토록 디테일한 것까지 적혀 있을 리 만무하니 도무지 알 도리가 없었다.궁지에 몰린 남자는 황급히 고개를 들어 애원하듯 백지유를 쳐다보았다.그러나 그녀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아무런 기색 없이 침묵할 뿐이었다.심성빈의 눈가에 서늘한 빛이 스쳤다. 목소리엔 힘이 실려 남자의 거짓을 한방에 꿰뚫었다.“이분의 가장 기본적인 생활 습관조차 모르면서 입만 열면 여자친구라 우기고 임신까지 꾸며내 모함하는 겁니까?”그는 남자를 올려다보며 말투가 좀 더 가라앉았다.“우리 화인국에서는 허위 사실로 타인을 모욕하고 악의적으로 비방하면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해요. 지금 그쪽은 구류는 물론이고 전과자로 낙인이 찍힐 텐데 그래도 계속 이 난리를 피울 건가요?”이 한마디에 외국인 남자는 완전히 얼어붙어서 어쩔 바를 몰랐다.그저 빨리 돈을 버는 일거리가 생겨서 온 건데 감옥살이까지 각오해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당혹스러운 건 백지유도 마찬가지였다.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이야.그녀가 은밀히 눈짓을 보내자 외국인 남자는 황급히 몸을 돌려 꽁무니를 빼듯 도망쳤다.카페가 다시 고요해지고 심성빈이 고개를 돌려 백지유에게 물었다.“경찰에 신고해드릴까요?”이에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그럴 필요까진 없어요.”곧이어 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고마워요, 성빈 씨.”지금 이 순간만큼은 심성빈이 진짜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냉철하고 이성적이며 모든 것을 간파하는 통찰력을 지닌 이 남자. 일방적인 소문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녀를 위기에서 구하고 끝까지 보호하려 들었다. 심성빈의 인품과 그릇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때마침 심성빈의 휴대폰이 진동했다.고개를 숙여 메시지 창을 여니 송하나에게서 온 문자였다.실은 조금 전, 쇼핑하던 중 차설아가 백화점의 핫플레이스인 펄러비즈 공방을 보고는 갑자기 흥미가 생겨 송하나를 이끌고 들어갔던 것이다.송하나는 귀여운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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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2화

심성빈의 눈빛이 약간 짙어지고 목소리는 차갑고 낮게 가라앉았다.“그러니까 방금 카페로 뛰어들어 난동을 부린 그 남자는 지유 씨가 돈 주고 고용한 배우라는 건가요?”백지유는 흠칫 놀라더니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당당히 인정했다.“맞아요. 알아보셨네요?”심성빈은 손끝을 가볍게 테이블 가장자리에 올렸다. 자세는 편안해 보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상대를 꿰뚫어 보려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애초에 이 선 자리를 망치려는 게 지유 씨 목적이었고 또 제가 지유 씨한테 관심이 없다는 것도 알았으면 그냥 흐지부지 끝내면 될 것을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꾸고 선뜻 협력을 제안하는 거죠?”백지유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어딘가 모를 체념과 함께 약간의 무력감이 서려 있었다.“오늘 이 선 자리가 망가진다 해도 저희 부모님은 쉴 틈 없이 또 다음 자리를 마련하실 거예요. 전 정말 질식해 죽을 지경이에요. 번마다 이런 억지 연극으로 빠져나가기도 불가능하고 또 운 좋게 성빈 씨처럼 괜찮은 사람을 계속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심성빈이 자신을 바라보자 그녀는 황급히 덧붙였다.“오해하지 마세요. 성빈 씨한테 빌붙으려는 마음은 전혀 없어요. 제가 대학에서 심리학을 부전공으로 배워서 사람 보는 눈이 제법 정확하거든요. 솔직히 말해서 저도 선을 몇 번 봤지만 ‘재벌 2세’란 타이틀만 달고 있는 허당들이라 오만하고 천박하기 짝이 없거나 또 혹은 저희 집안이 괜찮고 제가 좀 예쁘다 싶어서 음흉한 속셈으로 이득을 보려 드는 속물들이었어요.”“성빈 씨처럼 집안 좋고 능력이 출중한데도 전혀 과시하지 않고 차분하고 절제된 태도에 인품까지 올곧은 분은 정말 드물거든요. 게다가 성빈 씨 이미 마음에 둔 사람이 있다는 게 다 보여요. 저를 바라보는 눈빛은 처음부터 끝까지 낯선 이를 대하듯 그저 기본적인 예의와 체면만 유지했는데 방금 메시지를 확인했을 때, 성빈 씨 눈동자에서 꿀 떨어질 지경이었거든요.”“우리는 본질적으로 같은 부류에요. 둘 다 가문에 의해 결혼이 좌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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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3화

‘그럭저럭’이라는 말이 심성빈의 입에서 나왔다는 건 이미 최고의 찬사나 다름없었다.고여진은 망설임 없이 바로 물었다.“그럼 연락처는 주고받았니? 다음엔 언제 만나? 내가 뭐랬어, 그 아이 괜찮다니까. 자주 만나보면 분명 잘 맞을 거야!”“네, 연락처 교환했어요.”심성빈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이때 휴대폰 너머로 심용군의 진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대화가 잘 통하면 진지하게 만나 봐. 너도 이제 혼기가 찼으니 좋은 사람이다 싶으면 얼른 결혼해.”심성빈은 반박도, 장황한 설명도 하지 않고 단답형으로 대답했다.“네, 그럴게요.”가족들의 당부를 대충 넘긴 뒤, 그는 곧장 전화를 끊었다.이어서 백화점에 도착해 송하나와 차설아를 찾아 나섰다.그를 본 송하나가 눈웃음을 지으며 반겨주었다.“일 다 끝났어요, 성빈 씨?”“응, 다 끝났어.”심성빈의 목소리는 유난히 부드러웠고 눈빛에는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편안함과 애틋함이 그득했다.송하나가 작은 가방에서 앙증맞고 귀여운 만화 캐릭터 펄러비즈 키링을 꺼내 그에게 보여주면서 두 눈을 반짝였다.“이거 제가 만든 키링이에요. 예쁘죠?”심성빈은 고개를 숙여 자그마한 키링을 보다가 기대에 찬 그녀를 보면서 심장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응, 정말 예쁘네.”“일부러 두 개 만들었어요. 이건 성빈 씨 가져요.”그녀가 서슴없이 심성빈의 손에 쥐여 주었다.직접 만든 선물을 자신에게 주다니, 남자의 마음속에 따뜻한 전류가 흘렀다.심성빈은 멍하니 넋 놓고 있다가 키링을 받고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고마워, 하나야. 너무 마음에 들어.”그는 전혀 형식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송하나가 지켜보는 앞에서 작은 키링을 진지하게 자신의 차 키에 달았다.딱딱하고 심플하던 차 키가 생기발랄하고 귀여운 색감 덕분에 순식간에 생기를 머금었다.얼마 안 가 최로운도 차설아를 데리러 왔다.몇 사람이 마주친 김에 근처의 한적한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음식이 나오기 전, 차설아가 송하나의 팔을 잡아끌며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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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4화

저녁을 먹고 심성빈, 송하나, 최로운, 차설아 네 사람은 함께 식당을 나섰다.최로운과 차설아가 먼저 작별을 고하고 같은 차에 올라 딸 이솔이를 데리러 최씨 저택으로 향했다.심성빈은 차 옆에 서서 매너가 넘치게 조수석 문을 열어 주었다. 또한, 손끝으로 문 가장자리를 가볍게 짚으며 그녀가 머리를 부딪치지 않게 배려했다.송하나가 허리를 숙여 막 차에 오르려던 찰나, 등 뒤에서 놀란 기색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망설임이 섞인 목소리였다.“하나야? 송하나?”송하나는 멈칫하며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쉰을 넘긴 중년 남성 두 명이 서 있었다. 두 남자 모두 그녀를 뚫어지라 쳐다보았다.기억의 조각들을 천천히 되짚어 보며 송하나가 간신히 두 사람을 알아보았다.한 명은 아버지가 생전에 가장 신뢰하던 운전기사 안재준, 다른 한 명은 송진 그룹의 전 부대표 신창현이었다.과거 그녀가 삼촌 송종현의 손에서 송진 그룹의 핵심 사업을 되찾은 뒤, 하이 테크를 설립해 경영권을 안재준과 신창현에게 전적으로 맡긴 바 있었다.지금 두 사람은 단정한 정장 차림에 영락없는 성공한 중년 남성의 모습이었다. 예전의 몰락한 모습과는 판이했다.“재준 삼촌? 창현 삼촌?”송하나의 눈가에 온화함이 번졌다. 그녀는 무심결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예전 호칭을 불렀다. 오랜만에 재회한 익숙함과 따뜻한 감정이 그 목소리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그녀임을 확인한 안재준의 눈가가 순식간에 붉어졌다.그가 성큼 다가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하나야, 정말 너였네! 우리 방금 멀리서 보고 잘못 본 줄 알았거든.”신창현도 뒤따라오며 눈동자에 기쁨과 그리움이 가득 차 있었다. 그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송하나에게 물었다.“이 반년 동안 대체 어디서 지낸 거야? 네가 갑자기 연락이 끊겨서 얼마나 애가 탔는지 알아? 혹시라도 너한테 무슨 일 생겼을까 봐 엄청 걱정했어.”그들은 매달 꼬박꼬박 송하나에게 하이 테크 업무 보고를 올렸다.그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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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5화

여기까지 들은 신창현은 가슴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개를 들어 멀리 서 있는 송하나를 바라보았다. 가늘고 곧은 자태에 눈매가 부드럽고 평온한 그녀를 보고 있자니 가슴 깊은 곳에서 짙은 연민이 일었다.송하나의 삶은 어찌 이리도 고단할까?어릴 적 부모를 잃고 남들이 겪지 못한 고초를 다 겪은 그녀.겨우 가업을 일으켜 세우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차정원을 만나 드디어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 여겼건만 또다시 이런 변고를 당할 줄이야.회장님과 사모님이 하늘에서 딸이 겪는 연이은 풍파를 보신다면 얼마나 가슴 아파하실까.신창현의 눈가가 붉어지고 목소리도 억눌린 듯 탁하고 쉬어 있었다.“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이렇게 착하고 순수한 하나가 평생을 남을 위해 살았는데 왜 이리도 시련만 안겨주는 걸까요!”잠시 후, 송하나는 회사 구경을 마치고 몸을 돌렸는데 신창현의 충혈된 두 눈과 마주쳤다. 그녀는 의아해하며 물었다.“창현 삼촌, 왜 그러세요? 눈이 다 충혈되었어요. 무슨 일 있으세요?”신창현은 급히 눈물을 닦고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니야, 아무것도. 우리 하나를 너무 오랜만에 봐서 기뻐서 그래. 너무 기뻐서...”하이 테크를 나와 송하나는 심성빈의 차에 올랐다.그녀는 조수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목소리에 옅은 그리움을 실은 채 나직이 말했다.“성빈 씨, 저 부모님 뵈러 가고 싶어요.”심성빈은 가슴이 녹아내려서 다정하게 대답했다.“그래, 가자.”꽃집을 지날 때, 그는 차를 세우고 송하나와 함께 들어가 꽃다발을 골랐다.이곳은 예전에 그녀가 자주 다니던 그 가게였다.송하나가 열심히 국화꽃을 고르는 모습을 보며 남자의 마음속에 자잘한 기억들이 피어올랐다.전에 그녀와 우연한 만남을 가장하려고 친구 회사의 개업 핑계를 둘러대며 일부러 멀리 이곳까지 와서 꽃을 샀던 기억이 아른거렸다.꽃다발을 고른 뒤, 두 사람은 다시 차를 몰아 묘원으로 향했다.송하나가 비석 앞에 다가가 허리를 숙이며 꽃다발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이어서 손을 뻗어 비석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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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6화

송하나를 아파트에 안착시킨 후에야 심성빈은 마음을 놓고 집을 나섰다.그 시각, 심씨 저택.아들을 맞이하려고 고여진은 가정부를 시켜 푸짐한 저녁상을 차렸을 뿐만 아니라 직접 부엌에 들어가 심성빈이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반찬 몇 가지를 손수 만들었다.현관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고여진은 고개를 번쩍 들고 활짝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성빈이 왔어? 얼른 손 씻고 와. 오늘은 엄마가 직접 요리했어. 다 네가 좋아하는 음식들이야.”심성빈은 신을 갈아 신고 들어와 고분고분하게 손을 씻은 뒤 식탁에 앉았다.한 가족이 단란하게 모여앉아 식사했다.고여진은 아들에게 국을 떠 주며 끊임없이 화제를 꺼냈고 눈가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가득 찼다.“백씨 가문에서 오늘 오후에 연락이 왔는데 지유가 너한테 호감이 아주 큰 것 같아. 네가 꽤 좋은 인상을 남겼나 봐.”그녀는 국자를 내려놓고 말을 이었다.“우리 집안과 백씨 가문은 대대로 가깝게 지내는 사이라 서로 너무 친하지. 양가 어른들 모두 엄청 흡족해하셔. 너희 결혼을 성사시키려고 아주 적극적이야.”문득 심용군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늘 엄격하기만 하던 그의 눈매에 보기 드물게 온화함이 감돌았고 말투에도 당부가 실려 있었다.“네 엄마 말이 맞아. 지유 그 아이는 용모며 학벌이며 집안까지 뭐 하나 흠잡을 데가 없어. 서로 첫인상이 좋았다면 한번 잘 만나봐.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전처럼 감정 얘기만 나오면 대충 얼버무리지 마.”심성빈은 시선을 내려 그릇 안의 반찬을 바라보며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그는 부정도 변명도 하지 않고 낮게 한마디만 대답했다.“네.”바로 그때, 고여진의 시선이 무심코 식탁 가장자리에 놓인 그의 차 키를 스쳤는데 순간적으로 굳어졌다.심플한 블랙 차 키 위에 컬러풀하고 귀여운 만화 캐릭터 펄러비즈 키링이 걸려 있다니.이런 아기자기한 물건은 평소 차갑고 고귀하며 극도로 미니멀한 심성빈의 성향과 너무 안 어울렸다.고여진은 제 아들을 누구보다 잘 안다.그는 늘 까다롭고 도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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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7화

식사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심성빈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 위의 차 키를 집어 들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고여진은 벽에 걸린 시계를 흘긋 쳐다보았다. 예상보다 이른 시간이라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그녀가 결국 입을 열었다.“이 늦은 시간에도 꼭 나가야 해? 집에서 하룻밤이라도 편히 쉬면 안 되겠니?”“밀린 업무가 좀 많아서요. 꼭 오늘 밤 안에 끝내야 하는 긴급한 일이거든요.”심성빈은 곧장 재킷을 걸치고 태연하게 말했다.“두 분은 저 기다리지 마시고 일찍 쉬세요.”고여진은 그런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속절없이 고개를 젓고 조심스럽게 당부했다.“그래, 그럼 운전 조심하고 너무 무리하진 마.”“네.”심성빈은 짧게 대답하고 신발을 갈아 신은 후 문을 나섰다.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닫히고 거실은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고여진은 텅 빈 현관을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말투에는 쓸쓸함과 허전함이 잔뜩 묻어났다.“저 녀석은 뭐가 그리 바쁜지 집안은 1년 내내 썰렁하고 우리 둘만 멀뚱멀뚱 서로를 쳐다보고 있네요. 나이 들수록 외로운 건 어쩔 수가 없나 봐요.”그녀의 눈가에 희미한 기대감이 깃들기 시작했다. 이내 조용히 숨을 내쉬며 말했다.“올해는 지유랑 결혼하고 내년엔 아이도 낳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옆에서 애도 봐주고 집안이 얼마나 북적거리겠어요.”곁에 있던 심용군은 그녀의 말에 헛웃음을 삼켰다. 별다른 말 없이 손에 든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실 뿐이었다.겉으로는 담담해 보였지만 눈빛에는 똑같은 기대감이 숨어 있었다.그 시각, 심성빈은 차를 몰아 심씨 저택을 떠났다.24시간 영업하는 디저트 가게를 지나가다 그곳에 잠깐 시선이 머물렀다. 무심코 차 속도를 늦추고 길가에 차를 세웠다.가게 안으로 들어선 심성빈은 평소에 송하나가 좋아하던 치즈케이크 한 조각을 사서 다시 차를 몰아 아파트로 향했다.집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가정부가 마침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들고 주방에서 나왔다.그를 본 가정부는 황급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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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8화

송하나는 고개를 들어 심성빈을 바라보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항상 저를 챙겨줘서 너무 고마워요, 성빈 씨.”심성빈은 눈웃음을 짓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마음이 한없이 녹아내렸다.한편 송하나는 몇 입 먹다가 포크를 내려놓았다.잠자리에 들기 전 과식은 금물, 그녀는 많이 먹을 수 없었다.하지만 반이나 남은 멀쩡한 케이크를 보니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당일 만든 케이크가 가장 부드럽고 맛있는 법, 하룻밤이라도 냉장고에 들어가면 식감이 확 떨어진다. 그렇다고 그냥 버리기엔 너무 아까웠다.그녀는 남은 케이크를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난감한 표정이었다.심성빈은 그런 그녀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고 즉시 속마음을 알아챘다. 곧이어 송하나가 쥐고 있던 포크를 건네받고 홀가분하게 말했다.“저녁에 본가에서 얼마 안 먹었더니 배고프네. 케이크 낭비하지 말고 내가 다 먹어야겠다.”말을 마친 심성빈은 태연하게 고개를 숙여 남은 케이크를 모조리 먹어치웠다.평소 단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그였지만 송하나와 함께 지낸 이후로 점차 맛을 들이게 되었다.해외, 사립 병원.빅토르가 천근만근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리며 다시 의식을 되찾았다.흐릿한 잔상들이 눈앞을 어지럽히고 조각난 기억들이 천천히 되살아났다.총에 맞았던 기억, 심복이 자신을 끌고 구명정에 몸을 던졌던 순간, 차갑고 짠 바닷물이 상처를 파고들어 감각조차 마비시키던 그 고통까지도 모두 떠올랐다.그리고 찾아온 무채색의 어둠.희미한 기억 속에 짧게 의식이 돌아왔던 순간이 있었다.몸은 돌처럼 굳어 움직이지 않았고 목구멍은 타들어 갈 듯 메말라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눈앞의 인영들은 겹쳐 보였고 결국 그는 다시금 끝없는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이제야 비로소 혼수상태에서 완전히 깨어난 진짜 의식이었다.하지만 사지는 솜사탕처럼 늘어져 도무지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어깨의 관통상은 욱신거렸고 복부의 상처는 마치 칼로 도려내는 듯한 통증을 뿜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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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9화

“송하나.”빅토르의 목소리는 낮게 깔려 있었지만,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압박감이 담겼다.“너희들 결국 하나를 데려오지 못한 거야?”집사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빅토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목소리에는 깊은 죄책감과 무력함이 묻어났다.“보스, 당시 상황이 너무나 긴박했습니다. 심성빈 쪽 인원이 워낙 많아 화력으로 저희를 완전히 압도했어요. 저희로선 전혀 맞설 힘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보스가 총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고 계셨으니 도저히 다른 선택지가 없었어요. 다급한 상황에서 보스를 먼저 살리는 것이 최우선이라 판단해 송하나 씨까지 모셔올 겨를이 없었습니다...”“쓸모없는 것들.”빅토르의 얼굴은 병색으로 창백하게 질려 있었지만, 눈빛에는 난폭하고 음침한 기운이 가득했다.치밀하게 판을 짜고 모든 것을 내던지며 무모하게 달려갔건만 결과는 참혹했다.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자신이 원하던 사람조차 데려오지 못한 채 허탕을 친 셈이었다.불만과 분노가 가슴속에 맹렬히 쌓여갔다.빅토르는 끓어오르는 살기를 억지로 짓누르며 이를 악물고 물었다.“그래서 송하나 지금 어디 있어? 여전히 차정원이랑 같이 있는 거야?”“차정원은 총상을 입고 바다에 빠진 후 여태껏 행방불명입니다.”집사는 자신이 알아낸 상황을 신중하게 보고했다.“송하나 씨는 심성빈에게 끌려갔고 지금은 이미... 화인국으로 돌아갔습니다.”“심성빈이라.”빅토르는 낮은 목소리로 그 이름을 곱씹었다. 이를 악물 때마다 눈빛에는 먹구름이 가득했고 그 안에서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타올랐다.그가 주먹을 쥐자 손등 위로 시퍼런 핏줄이 울퉁불퉁 솟아올랐다.‘심성빈, 또 너야?’지난번에 심성빈은 빅토르와 그의 수하들까지 감쪽같이 속이고 송하나를 개인 별장에 숨겨두었다.그 기만극에 완전히 놀아났던 치욕은 아직 갚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더 나아가 그녀를 화인국으로 빼돌리다니!거듭되는 방해와 조롱, 사사건건 제 앞길을 막아선 죗값을 반드시 처절하게 물어줄 생각이었다. 빅토르는 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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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0화

빅토르가 얇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깊은 눈동자 밑으로 칠흑 같은 분노가 소용돌이쳤고 광기와 잔혹함이 뒤섞여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에 서늘한 살기를 내뿜었다.“내가 의식을 잃은 틈을 타서 기어올라? 감히 선을 넘었다 이거지. 좋아, 두고 봐! 절대 저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을 거야!”다음 날, 강현.심성빈은 프라이빗한 바에서 이강우와 만나기로 약속했다.“빅토르가 깨어났어.”그는 목소리를 내리깔고 곧장 본론에 들어갔다.“해외에서 연락이 왔는데 그놈 이제 완전히 고비를 넘겼대.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 강우야.”이강우의 눈가에 서늘한 한기가 스쳤다. 말투에도 약간 냉소적인 기색이 묻어났다.“지독한 놈이야. 한 달 넘게 혼수상태였는데도 살아남은 걸 보면.”그는 고개를 들어 날카로운 시선으로 쏘아붙였다.“절대 회복할 틈을 줘선 안 돼. 유라온 쪽은 내가 속도를 높여 전면적으로 압박할 테니 그 자식 핵심 사업에 타격을 입히고 다른 데 신경 쓸 여력조차 없게 만들어버릴 거야.”심성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은 차분하고 단호했다.“나 역시 그 자식 범죄 증거를 끝까지 파헤칠 거야. 완전히 몸을 회복하기 전에 단숨에 짓밟아버려야 해.”두 사람 모두 신중하고 탁월한 전략가였다.그들은 빅토르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감히 방심할 수 없는 존재였다.광기에 가까운 집착, 잔혹한 수법, 그리고 탄탄하게 다져진 기반까지, 만약 그가 다시 세력을 재정비한다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지 모른다.오직 그가 중상을 입고 거동이 불편한 틈을 타 허를 찌르는 게 속수무책으로 무너뜨릴 유일한 기회였다.두 사람은 이어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조율했다. 다음 단계를 위한 작전을 확정 짓고 나서야 그들은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그날 오후, 심성빈은 송하나가 지루해할까 봐 시간을 쪼개 요즘 한창 인기 있는 영화를 보러 갔다.영화관은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그들이 예약한 곳은 프라이빗한 VIP 관이었다.스크린 위로 화려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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