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Chapter 491 - Chapter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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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1화

강지연은 가슴 가득 차오른 불쾌함을 어디에도 풀지 못한 채 답답함에 짓눌린 기분이었다.모르는 사람처럼 보는 척도 하지 말자고 먼저 말한 사람도 자신이었고 온하준에게 구해진 사람 역시 자신이었다.“내가 널 구했다고 생각하지 마.”그가 갑자기 그녀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입을 열었다.강지연은 고개를 돌려 온하준을 바라보더니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분노가 가슴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올랐다.‘지금은 왜 이렇게 눈치가 빨라진 거야? 예전엔 그렇게 분별력이 없더니.’“난 그냥 호범 아저씨한테서 연락받고 위치를 확인했을 뿐이야. 네가 아니라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어도 똑같이 달려왔을 거야.”그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결국 이 배에 있던 범인들은 경찰에 체포됐어. 아저씨가 지금은 해성에 없는데 내가 아니면 누가 이 배에 탔겠어?”강지연의 가슴속에 엉켜 있던 분노와 원망은 마치 누군가 갑자기 목을 조이는 것처럼 한순간에 막혀 버렸다.“그리고 결국은 내가...”“찾으셨습니까?”온하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네, 찾았습니다.”그는 바로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다.경찰이었다.경찰은 강지연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진술 기록을 남겼다.선원들과 화물의 안전을 위해 두 납치범은 이미 체포되어 고속정을 타고 육지로 이송되었고 경찰과 온하준은 그녀를 찾기 위해 배에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강지연은 그제야 알게 되었다.이제 그들은 다음 항구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다음 항구까지는 얼마나 걸리나요?”강지연은 무심코 경찰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들이 탄 배는 화물선이라 승객도 거의 없었고 앞으로 나아갈수록 칠흑 같은 깊은 바다만 보였다.끝이 보이지 않는 짙은 어둠을 바라보는 순간, 그녀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두세 시간쯤 걸릴 겁니다.”경찰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떠났다.강지연은 더 묻고 싶었지만 차마 따라가지 못하고 결국 말끝을 흐리며 조용히 한숨만 내쉬었다.“무서워서 그래?”옆에 있던 온하준이 그녀의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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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2화

“추워?”“아니, 괜찮아.”강지연은 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한번 재채기를 했다.온하준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녀를 덮어 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배에는 담요가 있긴 했지만 화물선이라 모두 선원들이 쓰던 것이었고 그녀라면 분명 거리낄 것이 뻔했다.게다가 그는 티셔츠 한 장만 입고 있었기에 벗어 줄 옷조차 없는 상황이었다.“선실 안으로 들어갈래?”그의 제안에 그녀는 단칼에 고개를 저었다.“싫어.”화물선의 선실은 전부 선원들이 쓰는 공간이었다.강지연은 남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불편했고 다른 남자가 쓰던 침대에 눕는 일은 더더욱 싫었다.“그럼 잠깐만 기다려.”그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녀는 온하준이 옷이나 담요 같은 것을 찾으러 갔을 거라 짐작했다.사실 지금 그녀를 괴롭히는 것은 단순한 추위만이 아니었다.뱃멀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듯했다.강지연은 속이 울렁거려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았다.배가 조금만 더 크게 흔들리면 정말 그대로 토해버릴 것만 같았다.온하준이 떠난 뒤 바람은 더 거세졌고 배는 크게 출렁이기 시작했다.강지연은 갑판 한가운데 앉아 사방을 둘러싼 칠흑 같은 어둠을 바라보았다.바다는 마치 거대한 블랙홀처럼 보였고 그녀는 이 파도가 더 거세지면 배가 뒤집히고 자신이 그대로 빨려 들어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까지 하게 되었다.그녀는 몸을 일으켜 온하준을 찾으러 가려 했지만 일어서려는 순간 현기증이 몰려오더니 눈앞이 캄캄해지고 균형을 잡지 못했다.결국 울렁거림은 점점 심해졌고 입안에는 이미 쓴맛이 올라오고 있었다.이건 그녀가 토하기 직전의 신호였다.강지연은 갑판 위에서 토하고 싶지 않았지만 난간 쪽으로 가는 것도 두려웠다.그녀는 결국 다시 갑판 위에 주저앉아 이를 악물고 토를 참고 있었다.“강지연, 이리 와!”반대편에서 온하준의 목소리가 들렸다.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왜 그래? 이리 와. 이쪽이 훨씬 따뜻해.”그의 손짓에 강지연은 다시 일어서 보려 했지만 갑자기 큰 파도가 밀려와 배가 흔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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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3화

“이거 놔!”하지만 이번만큼은 온하준의 태도가 유난히 단호했다.그는 곧장 강지연의 허리를 끌어안았다.“제발 좀 놔줘!”강지연은 끝내 얼굴을 돌리지 않았다.온하준은 그제야 이유를 알아차린 듯 담담하게 말했다.“너 바보야? 내 앞에서까지 그렇게 체면 차릴 필요가 있어? 토하면 뭐가 어때서? 벌써 십 년이 넘었잖아. 네가 어떤 모습이든 내가 못 본 게 있어? 이 세상에서 나보다 너를 더 잘 아는 사람이 있어?”“온하준!”강지연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가 늘 이렇게 사람을 폭발하게 만든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보며 냉정하게 말했다.“이 세상에서 나를 제일 잘 안다고? 너한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어?”가장 잘 알기 때문에 그녀의 약점을 제대로 파악해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잔인하게 상처를 준 사람이 바로 그였다.온하준은 굳은 표정으로 강지연을 품에 껴안으며 말했다.“내가 잘못했어. 하지만 오늘만은... 오늘 밤만은 한 번만 믿어 줘. 절대 너를 다치게 하진 않을게.”“놔. 나 혼자 갈 수 있어.”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이 거친 파도 속에서 계속 난간만 붙잡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강지연은 한 손으로 그를 밀어내고 다른 한 손으로 선창 벽을 짚은 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천천히 반대편으로 향했다.다행히 그녀의 다리는 이미 80% 이상은 회복된 상태였다.그렇지 않았다면, 예전의 그 다리로 이 길을 걸었다면 몇 번이나 넘어졌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온하준은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고 배의 흔들림에 따라 휘청거리며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녀가 간신히 반대편 갑판에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선원들은 갑판 위에 모여 앉아 알코올버너로 샤부샤부를 끓이고 있었다.얼큰한 마라 향이 공기 중에 퍼지며 바닷바람의 비린 냄새를 희미하게 눌러 주고 있었다.“여기 앉아.”온하준은 빈자리를 찾아 앉으며 옆자리를 가리켰다.이번엔 강지연도 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선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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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4화

독한 술기운 때문에 취기가 순식간에 퍼졌다.강지연은 몸이 따뜻해지는 동시에 정신도 몽롱해지는 걸 느꼈다.그나마 다행이라면 의식이 흐릿해지자 아까처럼 그렇게까지 무섭지는 않다는 점이었다.선원들은 샤부샤부를 다 먹은 뒤 그릇을 치우고 흩어져 각자 맡은 일을 하러 갔다.갑판 위에는 어느새 온하준과 강지연 둘만 남았다.온하준은 그녀가 이렇게 독한 술을 마신 모습을 처음 봤다.강지연의 얼굴은 이미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괜찮아? 취한 거 아니야? 속은 안 불편해?”뱃멀미로 이미 속이 좋지 않은 상태에 술까지 마셨으니 더 힘들 법했다.강지연은 그저 고개를 저었다.머리가 조금 어지러웠으니 술을 마시든 마시지 않았든 힘든 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어쩌면 잠깐 눈을 붙이면 나아질지도 몰랐다.“눈 떠. 자지 마.”온하준은 그녀의 얼굴을 만지려고 손을 뻗었지만 결국 내민 손을 이내 다시 거두어들이며 말했다.“강지연, 눈 떠. 자면 안 돼.”“좀 조용히 해줄래?”강지연은 귀찮다는 듯 눈꺼풀을 겨우 들어 올리며 말했다.“강지연, 그냥 자면 내가 물을 가져다 끼얹는다!”“강지연, 눈 떠 봐! 자면 나 그냥 가버릴 거야. 혼자 여기 남아 있으면 바다 괴물이 나올지도 몰라.”“나 진짜 간다?”그녀는 눈을 살짝 뜨고 그가 아직 곁에 있는 것을 확인한 뒤 다시 눈을 감았다.“진짜야. 고개 한 번만 돌려봐. 뒤에 검은 물이 막 올라오고 있잖아?”겨우 공포에서 벗어난 참이었는데 온하준의 말에 두려움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밤바다라 검게 보이는 건 당연했지만 넘쳐 오를 리는 없었다.“온하준! 지금이 농담할 때라고 생각해?”강지연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됐어, 깼으면 이제 자지 마.”그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며 그녀의 분노를 피했다.“온하준, 너 대체 무슨 뜻이야?”강지연은 억지로 깨워진 짜증이 다시 치밀어 올랐다.온하준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바닷바람도 세고 술까지 마셨잖아. 이 상태로 자면 감기에 걸리기 쉬워.”그는 가볍게 웃는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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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5화

충격과 후회, 자책이 뒤섞인 얼굴로 온하준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럴 리가 있겠어? 아무리 그래도 내가 어떻게...”“그럴 리가 왜 없어?”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강지연이 말을 이었다.“‘타이타닉’에 명장면 기억해? 남자가 여자 뒤에서 허리를 받쳐 주고 선두에서 두 팔을 벌리고 있던 그 장면 말이야. 그게 나랑 너였다면 난 진작에 바다에 빠졌을 거잖아.”“강지연... 난 그런 뜻이...”“입 닥쳐!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더는 듣고 싶지도 않아. 다 지난 일이야. 그러니까 그냥 내 인생에서 멀리 꺼져 줘.”온하준은 고개를 숙이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고개를 들더니 가볍게 웃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알겠어. 내가 멀리 꺼질게. 그럼 너 혼자 여기 있을 거야?”강지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몸만 돌렸다.그렇게 최소 1분이 흘렀지만 아무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그녀가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온하준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간다며? 왜 아직도 안 갔어?”“그래, 갈게.”그가 몸을 움직이며 말을 덧붙였다.“강지연, 몸 좀 움직여봐. 조금씩 움직이면 술도 깨고 덜 추워.”말을 마친 온하준은 반대편으로 가볍게 뛰어가기 시작했다.지금은 배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흘러가고 있었기에 그의 발걸음도 흔들림이 없었다.강지연은 그 정도로 미치지 않았기에 그의 뒤를 따라 뛰지는 않았다.술은 겁쟁이에게 배짱을 키워준다던 온하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취해 있을 때는 그냥 자고 싶었고 두려움도 잊고 있었지만 깨어 있는 상태에서 온하준마저 떠나자 머리는 여전히 어지러웠지만 파도 소리에 또다시 공포감이 치밀었다.그때 갑자기 배 위에서 하모니카 소리가 흘러나왔다.아마 선원 중 누군가가 부는 모양이었다.예전에 각종 문예 작품들을 보면 항상 선원이 외롭게 바다 위에서 하모니카를 부는 모습이 나오곤 했다.그 순간 강지연의 마음속에 충동이 일었다.‘그래, 내가 온하준을 따라 달리지는 못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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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6화

분명 늘 곁에 있었지만 온하준은 결국 강지연을 잃고 말았다.몇몇 선원들이 사진과 영상을 찍어 그녀에게 보여주며 간직해도 괜찮은지 물어왔고 혹시 싫다면 바로 삭제하겠다고 말했다.강지연은 영상 속의 자신을 조용히 들여다보았다.짙은 어둠에 잠긴 심해의 밤, 배 위 갑판을 비추는 한 줄기 빛이 마치 그녀만을 위한 무대 조명처럼 내려앉아 있었다.그 빛 속에서 강지연은 춤을 추고 있었고 세상에는 오직 바람 소리와 하모니카 소리만이 남아 있었다.너무도 아름다운 장면이었다.그녀가 얼마나 잘 췄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영상이 만들어 낸 분위기 자체가 지금껏 수없이 올랐던 그 어떤 무대보다도 가장 아름다운 무대가 되어 주고 있었다.“지울 필요 없어요. 오히려 저를 이렇게 예쁘게 찍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강지연은 휴대전화를 돌려주며 말했다.사실 그녀 역시 그 영상과 사진을 간직하고 싶었다.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상황이었다.“좋아요. 그럼 우리도 다 같이 춤이나 춰 볼까?”아까 강지연에게 술을 따라 줬던 선원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그러자 다른 선원들이 곧바로 그를 놀리듯 받아쳤다.“춤을 알기나 해요?”“내가 왜 몰라? 내가 젊은 시절에는 배 위에서 동아시아 댄스 킹으로 불렸었다니까.”“그럼 한번 보여 줘요!”순식간에 모두가 떠들며 부추기기 시작했다.선원 아저씨는 숨길 것도 없이 온하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이봐, 자네 얼른 하모니카 다시 불어 봐.”그는 이미 하모니카를 내려놓은 지 오래라 익숙하지 않은 곡은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하여 잠시 망설이더니 결국 국민들이 다 알고 있는 ‘곰 세마리’를 불기 시작했다.경쾌한 멜로디가 흐르자 선원 아저씨는 곰처럼 좌우로 흔들흔들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강지연은 깔깔 웃으며 그와 함께 춤을 췄다.“다들 이리 와서 같이 춰!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아시아 흑곰인 거야.”선원 아저씨는 호탕하게 웃으며 함께 일하는 형제들을 불렀다.온하준이 이 곡을 선택한 건 절대 이런 의미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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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7화

온하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집에 가자.”육지가 점점 가까워지자 휴대전화에 신호가 잡혔고 그의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전화 좀 받을게.”그는 옆으로 비켜서며 낮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안나?”바닷바람보다도 더 부드럽고 가벼운 목소리였고 바람에 섞여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이쪽에 좀 문제가 생겨서 나 지금...”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낮아져 무슨 말을 하는지 아예 들리지도 않았다.반면 안나의 목소리는 유난히 높았고 내용은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흥분한 채로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있었다.“You can’t... You can’t...”그것만으로도 그녀의 분노가 얼마나 치밀어 올랐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그 뒤로는 온하준이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지나치게 공손한 태도였고 어쩌면 조금은 비굴해 보이기까지 했다.강지연에게는 처음 보는 온하준의 모습이었다.“강지연, 너 하나한테 얼른 사과해!”“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네가 하나를 내쫓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야!”“강지연, 너 말투가 왜 이렇게 날카로워졌어?”이런 모습이야말로 진짜 온하준이었던 게 아닌가?비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저 사라진 줄 알았던 기억들이 파도처럼 솟구쳐 올라온 것이다.그녀는 늘 사람은 마음이 아니라 행동을 보라는 말을 믿어왔고 어떤 사람인지는 그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만 보면 된다고 생각했다.강지연과 함께 있을 때 온하준이 했던 일들은 모두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짓이 아니었다.그러니 그의 마음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하지만 다행히도 그녀는 이미 그 시간에서 빠져나왔고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온하준은 통화를 마치고 돌아와 한참 동안 휴대전화로 무언가를 설정하고 있는 듯했다.강지연은 그를 등지고 서서 점점 가까워지는 항구의 불빛만 바라보고 있었다.‘정말 재수 없어!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 하필이면 온하준과 하룻밤을 보내게 되다니!’그녀는 어젯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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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8화

그들은 마침내 육지에 발을 디뎠다.온하준이 항구 로비에 두라고 했던 것은 새로 산 담요와 한 켤레의 신발이었다.그는 신발을 꺼내 강지연 앞에 무릎을 굽히고 직접 신겨 주었다.맨발로 계속 돌아다닌 그녀를 떠올리며 어찌 춥지 않았겠냐는 듯한 표정이었다.그녀는 신발만큼은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분명 선을 그어야 했지만 일부러 고생을 사서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돌아가면 신발값만 보내 주면 될 일이었다.하지만 담요는 대체 어디에 쓰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연은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기에 그대로 곧장 로비를 빠져나왔다.차는 온하준이 이미 불러 둔 상태였다.“얼른 타.”그는 차 문을 열어 주며 말했다.“차에서 한잠 푹 자. 날씨가 더워서 아마 에어컨을 틀 거야. 넌 아까 술도 마셨고 땀도 흘렸잖아. 그러니까 이 담요는 덮고 가. 괜히 감기에 걸리지 말고.”온하준은 담요를 건네며 말을 덧붙였다.“새 거야. 방금 퀵으로 가져온 거야.”신발은 물론 담요도 강지연을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그럼 넌?”그녀의 말은 그는 돌아가지 않느냐는 뜻이었다.온하준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같은 차 타기 싫으면 내가 따로 한 대 더 부르면 돼.”“그럴 필요는 없어. 네가 앞에 타.”“그래, 알았어.”그는 그녀를 태운 뒤 차 문을 닫아주고 조수석에 앉았다.차가 출발하자마자 강지연은 곧바로 졸음이 쏟아졌다.온하준의 말대로 차 안은 에어컨 바람 때문에 서늘했고 그가 산 얇은 담요가 딱 알맞았다.춥지도 덥지도 않은 온도 속에서 그녀는 금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강지연은 잠결에 흐리멍덩한 채 기사와 온하준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두 분 싸우신 거예요?”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가볍게 웃기만 했다.“이봐요, 총각. 부부끼리 여행 갔다가 돌아와서 이혼하는 경우도 있어요.”기사는 그들이 항구에서 나온 모습을 보고 여행에서 돌아온 줄로만 생각한 듯했다.“그래요?”온하준의 웃음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웃음이었다.“사실 간단해요. 아내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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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9화

“위치 추적도 그냥 대략적인 것뿐이야. 그 정도로 정확하진 않아.”온하준은 휴대전화를 쥔 손에 힘을 주더니 무언가 숨기고 있는 듯한 미묘한 기색이 스쳤다.“참, 그러고 보니 너한테 할 말이...”“휴대전화 이리 내놔.”강지연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그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저 그녀를 바라만 보았다.“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내놔!”강지연은 물러설 수 없었다.“온하준, 내 앞에서 잔꾀 부리지 마! 이미 헤어진 사람이라면 죽은 사람처럼 사라져 줘야 하는 거야. 너한테도 그렇고 나한테도 마찬가지야. 안나 씨한테 내가 겪었던 고통을 겪게는 하지 마!”온하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결국 휴대전화를 그녀의 손에 넘겨주었다.“잠금 해제해.”강지연은 그의 얼굴 앞에 휴대전화를 들이밀었다.그리고 잠금이 풀리자마자 기기 찾기를 열었다.그러나 목록 안에는 그녀의 휴대전화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이게 뭐야? 날 속인 거야? 목록에 내 휴대전화 자체가 없잖아! 방금 차 안에서 지웠다는 말은 하지 마!”강지연은 곧바로 그의 카카오뱅크 까지 열어 보았다.가족 카드 목록에 여전히 자신의 이름이 남아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말을 덧붙였다.“이것도 당장 해제해! 나랑 연결된 건 전부 다 끊어버려!”그리고 휴대전화를 다시 그에게 던지듯 돌려주며 따져 물었다.“설명해 봐. 왜 거짓말했어? 내가 배에 있다는 건 또 어떻게 알았어?”온하준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결국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이하나 때문이야.”“뭐라고?”강지연은 어젯밤 자신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결국 모든 사건은 그로 인해 시작된 것이었다.“그런데도 거짓말을 했다고?”“어젯밤 네 상태가 너무 예민해 보여서 불필요한 자극은 주고 싶지 않았어. 그러니까...”“변명하지 마! 또 시작이야? 상황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아직 이하나를 감싸고 돌아? 이하나 일이라면 넌 수백수천 가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변호해 주잖아! 널 죽이려 했던 여자야! 그런데도 감싸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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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0화

“말하면 네가 더 화낼지도 몰라.”강지연은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내가 지금 이미 이 정도로 화나 있는데 속일 필요가 있어? 솔직하게 말해 봐. 난 정확히 알고 넘어가야겠어. 설령 화가 나 죽는다고 해도 알고 죽을 거야.”온하준은 씁쓸한 웃음을 짓더니 휴대전화에서 기기 찾기 앱을 열어 ‘하준이’라고 적힌 기기를 그녀에게 보여주며 말했다.“내가 예전에 이하나한테 사줬던 휴대전화야. 나중에 새 걸로 바꾸면서 쓰지 않고 있었거든. 그런데 어젯밤 이 휴대전화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한 거야. 그때 바로 경찰에 신고한 거지. 그리고 곧 호범 아저씨한테서 연락이 왔었어.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묻더라. 난 이 휴대전화랑 관련이 있을 것 같아서 계속 추적했던 거지. 그렇게 항구까지 따라가게 된 거고, 거기서 네 신발을 발견한 거야.”강지연은 더 이상 화조차 나지 않았다.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른 것은 분노가 아닌 냉정한 비웃음이었다.그녀는 냉정하게 웃으며 말했다.“온하준 씨, 참 정이 깊으시네요. 폐기한 휴대전화 하나도 연동 해제를 못 하다니요. 왜요? 해제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두면 보물 같은 이하나가 항상 곁에 있는 기분이라서요?”“해제하지 않은 건 그런 뜻이 아니었어. 단지 업무 습관일 뿐이야. 작은 흔적이라도 남겨 두면 나중에 무슨 일이 생겨도 증거가 될 수 있으니까.”“그러거나 말거나.”강지연은 손을 내저으며 등을 돌렸다.“넌 이미 나랑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야. 누굴 남기든 말든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고. 나랑 연관된 것만 해제하면 돼. 너한테 아직도 나랑 연관된 흔적이 남아 있다는 생각만 해도 토나올 것 같으니까.”그녀는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고 온하준은 그녀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앞쪽 멀지 않은 곳에는 이미 장시범이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그 자리에 얼마나 오래 서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강지연도 그를 발견하자마자 전력으로 달려갔다.장시범은 그녀를 보자 웃으며 달려오더니 힘껏 끌어안았고 두 발이 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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