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내 아이를 모르는 그가 내 상사라니!: Bab 101 - Bab 110

151 Bab

제101화

"정확히 말하면 전 이런 성격 싫어해요.""사귀고 나서도 마음이 없으면 헤어지면 되죠. 억지로 잡고 있을 이유가 뭐예요."허설아는 맑은 눈빛을 반짝였다. 사사로운 감정 하나 없는 속마음이라는 걸 보아낼 수 있었다.권지헌이 말하다가 멈칫했다."그게 그렇게 중요해? 말 한마디일 뿐인데.""대표님한텐 별거 아닐 수도 있죠. 하지만 여성 플레이어한텐 엄청 중요해요. 저라면 이런 남주는 바로 공략 포기할 거예요."허설아가 손에 든 펜을 빙글빙글 돌렸다."여성향 게임이잖아요, 현실이 아니라. 모든 건 플레이어 마음대로 해야 하니 대표님은 신경 안 쓰셔도 돼요.""다른 일 없으시면 나가볼게요."권지헌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그래."회의실 문이 열리더니 이내 다시 닫혔다.긴 테이블 끝, 혼자 남은 권지헌의 손이 주머니로 향했다. 하지만 회의실이니 담배는 곤란하다는 생각에 바로 포기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던 권지헌이 미간을 눌렀다.저녁에 술 한잔 같이하자는 서은석의 메시지가 도착했다.권지헌은 답장을 보내고 휴대폰을 내려놨다.잠시 후, 허설아가 제출한 대사 문구를 넘기던 권지헌은 녹음 버튼을 누르고 메시지를 전송했다. 자리로 돌아와 권지헌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던 허설아는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음성 메시지였다.25초.텍스트로 변환하니 이상한 문장만 하나 떴다.허설아는 주변을 슬쩍 둘러보고 조용히 이어폰을 꼈다.근무 시간에 권지헌이 메시지를 보냈다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권지헌이 허설아의 연락처를 갖고 있다는 것조차 아무도 몰랐다.이어폰을 낀 허설아가 재생 버튼을 눌렀다.낮고 길게 헐떡이는 숨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끊어지는 듯 이어지는 선명한 목소리, 게임 남주 대사였다."우연한 만남이란 없어. 다 오랜 계획이고 의도된 접근일 뿐이야.""넌 내 욕망의 근원이니까."테스트 대사는 딱 이 두 문장이었다.수백 명 성우의 오디오를 들었어도 별 감흥이 없었고 귀만 닳아버린 기분이었다.그런데 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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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모두 입을 다물었다.이제 막 알게 된 서은석도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강시우를 쳐다봤다.강시우는 머리를 긁적였다."그런 뜻이 아니라 어차피 가정이 있으니까 그냥 우리 엄마 대충 속여 넘기려는 거야. 매일 재촉하니까."재벌 도련님들은 당연히 믿지 않았다."눈 가리고 아웅 할 거면 무슨 사람이 없어서 꼭 가정이 있는 여자여야 돼?"강시우는 고개를 저으며 권지헌 안색을 슬쩍 살폈다.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에 안도했다.권지헌은 어차피 허설아를 좋아하지 않으니 그 말에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아는 사람이 편하잖아. 이번에 애 딸린 여자 데려가면 우리 엄마가 기겁할 거야. 이러다 다음에 신인 배우 데려가면 그때는 받아들이겠지."재벌 2세들이 껄껄 웃었다."그것도 그렇네! 애 딸린 여자를 누가 좋아하겠어!"어둠 속에서 권지헌의 시선이 사람들 쪽으로 싸늘하게 향했다.권지헌과 눈이 마주친 남자는 뭔가 모를 기분에 입을 다물었다.술을 적잖이 마신 서은석은 권지헌을 보며 혀 꼬인 소리로 말했다."지헌아, 네가 조사하라던 그 남자 소식이 있어."권지헌은 계속 술을 마실 뿐 대답하지 않았다.서은석이 이어 말했다."결혼한대."강시우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지헌아, 너 무슨 남자 조사했어?"설마 권지헌이 진짜 남자 쪽으로……?강시우는 순간 오싹했다.권지헌은 술잔을 내려놓고 무심히 말했다."허설아 전남편."전남편.강시우는 술이 확 깬 기분이었다.벌떡 일어나 앉으며 손에 든 술잔을 옆으로 치웠다."전남편? 설아가 이혼했어?"말투에 서은석조차 알아챌 만큼 기쁨이 묻어났다.친구의 이혼을 축하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뭔가 다른 속셈이 있어 보였다.권지헌이 강시우를 쳐다보았다.칠흑같이 검은 눈동자에 강시우는 자신이 마치 깊은 밤 어둠 속에서 흉악한 맹수에게 노려진 먹잇감 같았다.몸이 덜덜 떨렸다.마음 깊이 숨겨뒀던 감정의 소용돌이가 틈새로 스멀스멀 새어 올라왔다.강시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지헌아, 너 허설아 안 좋아한다고 했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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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허설아 이름을 들은 정일우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권지헌, 진짜 허설아 좋아했어? 허설아 성격 되게 안 좋지 않았어?"강시우는 팔꿈치로 정일우를 쿡 찔렀다."권지헌 앞에선 성격 괜찮았어.""아, 그래서... 좋아한 거야?"누가 뭐라 해도 권지헌이 허설아한테 진심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누가 봐도 권지헌은 진심이 아닐 것 같았다. 권지헌은 담배를 한 모금 빨고 손에 든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말했다."성격 때문은 아니야."허설아는 권지헌 앞에서 성격이 참 좋았다.하지만 그건 전부 연기였다.심지어 몇 년 동안 권지헌을 좋아한 것조차 연기였을지 몰랐다.권지헌의 인생은 걸림돌 하나 없이 순탄하게만 흘러왔다.그런데 유독 허설아 앞에서만 고배를 마셨다. 그것도 두 번이나 말이다.심지어 두 번 다 권지헌 혼자 헛다리 짚은 거였다.권지헌은 고개를 젖히고 술을 벌컥 들이켰다.강시우는 분위기 파악하고 화제를 돌렸다."지헌아, 전에 해외 나갔을 때 어느 나라 갔었더라?""미국, LA에서 좀 있었지.""허설아도 LA에 있었던 것 같은데 못 만났어?"말을 마치고 나서야 강시우는 말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강시우는 스스로 벌로 술 몇 잔 들이켰다.그렇게 큰 LA에서 만날 리가 있나.이 망할 놈의 입.권지헌이 술을 한 모금 마셨다.저녁도 안 먹고 얼음까지 들어있는 독한 술을 마시자 마실 때는 괜찮았는데 술을 넘길수록 점점 속이 타들어 갔다.오장육부가 불에 타는 것 같았다.이러한 고통도 심장에서 느껴지는 질식감보단 덜했다.누군가를 찾으려고 LA에 갔다는 건 아무도 몰랐다.계속 술을 들이켰지만 아무도 감히 말리지 못했다.서은석은 권지헌 어깨를 두드리며 같이 술잔을 비웠다.위에서 타는 듯한 느낌이 점점 심해졌다.권지헌은 서은석 손을 짚고 일어서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비서한테 연락 좀 해줘, 병원 가야겠어."서은석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권지헌이 배를 움켜쥐고 쓰러졌다.한바탕 소란이 일고 권지헌은 병원으로 실려 갔다.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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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지는 중얼거리는 소리가 고막과 신경을 자극했다. 깊은 밤의 병원에서 유난히 선명하게 들렸다. 허설아가 뭔가 말하려 했다.'권지헌이 아프면 옆에 의사가 있을 텐데 나를 왜 찾는 거야.'허설아는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서은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허설아 씨, 지헌이가 지금 약을 안 먹으려고 하는데 한 번만 와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부탁할게요, 사례는 얼마든지 하겠습니다."사실 권지헌은 이미 혼수상태였다. 조민규는 서은석이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거짓말하는 것을 보며 한 수 배웠다고 생각했다. 서은석이 한숨을 쉬었다."부탁드려요, 허설아 씨.""지헌이는 소화기내과에 있어요. 입원동 3층, 3202호예요."말을 마친 서은석은 전화를 끊었다.전화기 너머 허설아는 손가락으로 수화기를 막아 뚜뚜뚜하고 울리는 신호음을 가렸다.허민정 깰까 걱정되었다. 병상에서 허민정이 몸을 돌렸다."가봐."옆으로 누운 채 휴대폰 움켜쥐고 넋이 나가 있는 허설아를 보았다."여기 있을 필요 없잖아, 가봐.""아니……"허민정은 본능적으로 변명하려는 허설아의 말을 끊었다."내 딸인데 내가 모를 줄 알아? 예전에 네 아빠가 치킨 사 왔는데 내가 먹지 말래서 나 잔 다음 몰래 먹으려고 했을 때 딱 그 표정이야."그때 허설아 속마음을 간파했던 허민정은 바로 치킨을 찾아서 버렸다.허설아는 한참을 울었고 연동근이 하나 더 사준다며 몰래 달래서야 겨우 진정되었다. 허민정은 그때가 떠올라 감회에 젖은 채 반듯하게 누웠다.2인실인데 옆 침대 환자는 보호자가 없었다.허민정은 옆 침대 환자가 깰까 봐 목소리를 아주 낮추어 말했다.젊었을 때 허민정은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 호탕하고 강단 있는 성격이었다.시어머니와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딸이 홀로 출산하고 집안이 기울고 자기까지 병들고 나니 온몸의 날카로운 가시가 다 무뎌졌다.허민정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지금 엄마 잘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어.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해."허설아는 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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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화

허민정 말도 일리 있었다.허설아는 자리에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엄마, 저 사람이랑 나 무슨 사이인지 안 물어봐요?""상사 말고 또 무슨 관계가 있겠어?"허민정 눈이 반짝였다.기대로 가득한 눈빛이었다. 허설아는 일어나 허민정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잠깐 다녀올 테니 쉬어요. 내일 수술해야 하잖아요.""알았어."허설아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허설아가 떠나자 옆 침대 환자가 입을 열었다.허설아를 만족스러워하는 눈빛이었다."언니, 딸이 참 착하네요. 혼자예요?""혼자인데 외손녀가 벌써 두 살이에요."연희 얘기가 나오면 허민정의 얼굴에는 자연스레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딸 말이 맞았다. 허설아와 연희에겐 아직 허민정이 필요했다.허민정이 없으면 허설아 혼자 연희 키우느라 더 고생할 것이다.그러니 빨리 나아야 했다. 옆 침대 환자가 몸을 일으켰다."애가 있어도 괜찮아요. 애가 어릴 때 정 붙이면 더 좋죠. 우리 아들은 스물여덟인데 혼자거든요. 내일 소개해 볼까요?"허민정은 듣자마자 마음에 들었다. "그러죠. 애들 먼저 만나보게 해요. 혹시 서로 마음에 들면 우리가 애쓸 필요도 없고요."두 사람은 쿵짝이 잘 맞았다. 내일 수술에 대한 걱정도 한결 줄고 기분이 좋아졌다. 아래층 병실.허설아는 밑에서 죽을 사 왔다. 권지헌이 소화기내과에 입원했다니 과일은 못 먹을 것 같았다.허설아가 3층에 나타난 순간, 문 앞에 있던 조민규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이마의 식은땀을 닦으며 문을 열어 안으로 들여보냈다.조민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미 정신을 차린 권지헌은 눈을 감은 채 앉아 있었고 서은석이 옆에서 쫑알쫑알 떠들었다."일단 이 약만 먹어. 네 몸이잖아.""안 먹어."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서은석은 안경을 고쳐 쓰고 고개를 들었다.문 앞에 선 여자는 파란 민소매 상의에 흰색 와이드 팬츠를 입었는데 홍콩 배우 느낌이 났다, 이런 옷은 몸매와 분위기를 따지는데 화장기 없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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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분명 환자인데도 힘은 허설아보다 셌다.저 근육들은 대체 어떻게 만든 건지 몰랐다.허설아는 속으로 어쩌면 자기가 너무 힘이 없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생수병 뚜껑 여는 것도 종이에 싸서 돌려야 겨우 열 수 있는데 권지헌의 강철 같은 힘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뜨거운 손바닥 온도로 인해 권지헌이 잡은 피부까지 덩달아 뜨거워졌다. 허설아가 손목을 흔들어 보았지만 뿌리칠 수 없었다. 병실엔 불이 꺼져 있었다.창문으로 비치는 달빛과 침대 옆 조명으로 권지헌 표정을 보기엔 충분했다.창백한 안색에 병색이 역력했다.얼굴을 가까이서 보니 허설아가 최근 만든 게임 속 남주보다 훨씬 정교했다.일부러 연예계 유명 미남들 얼굴을 기반으로 모델링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권지헌 앞에선 뭔가 좀 부족해 보였다.이런 표정은 허설아에게 낯설면서도 익숙했다.허설아가 가려고 하자 권지헌은 허설아 손을 잡아당겨 자기 몸 위로 넘어뜨렸다.허설아가 몸부림치자 권지헌이 낮게 신음했다.권지헌의 위를 누른 것이다.허설아는 링거줄을 누를까 봐 감히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둘밖에 없는데 권지헌한테 무슨 일 생기면 곤란한 건 허설아였다.머리 위로 권지헌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목소리가 귀를 타고 쭉 전해져 내려왔다.권지헌이 다시 반복했다. "야근 수당 줄게.""5배로."허설아가 일단 놓으라고 발버둥쳤지만 소용없었다.기가 막혀서 웃음이 났다."대표님도 이제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사람이 됐어요?"허설아가 은근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비꼬았다.권지헌의 팔에 약간 힘이 들어갔다."살 수 있어?"권지헌이 말할 때 따뜻한 숨결이 허설아 귓가에 닿았다.중얼거림 같기도 하고 반복적이면서 불확실한 탐색 같기도 했다."살 수 있을까, 내가 사고 싶은 거.""그건 대표님이 뭘 사고 싶으신지에 달렸죠."열이 나서 온몸이 불덩이 같은 권지헌이 허설아를 감싸안았다."널 사고 싶어. 오늘 밤 나랑 같이 있어 줘. 그래도 돼?"허설아는 거의 들리지 않게 한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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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권지헌은 똑똑 떨어지는 링거를 바라보며 말했다. "바람피운 거 아니야. 네가 그랬잖아, 이건 복수야."서은석은 코웃음 쳤다.'말도 안 돼.''누가 복수한다고 수천만 원씩 써. 게다가 전화 끊고 나서는 눈이 빠지게 문만 쳐다보고.막상 오니까 또 화나게 만들어서 쫓아냈잖아.'"잘 생각해 봐. 허설아 씨한테 애도 있는데 아버님, 어머님이 받아들이시겠어?"권지헌은 눈을 감았다."쓸데없는 생각하지 마."권지헌은 지금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만약에 박희수과 권정우, 그리고 권씨 가문이 허설아 아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허설아와 연희를 데리고 권씨 가문을 떠날 것이다.권씨 가문 떠나도 셋이서 충분히 잘 살 수 있었다.이런 생각에 스스로 놀란 권지헌은 그만 멍해졌다. 권지헌은 그제야 입으론 서은석에게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라면서 정작 본인이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심지어 이미 미래까지 계획해 둔 것이다.조민규가 전화를 받았다."대표님, 병원에서 대표님이 내신 돈을 허설아 씨가 거부했다고 합니다."조민규는 말하는 내내 권지헌 안색을 살폈다."의사는 취소 안 된다고 해요."의사는 권지헌 명의로 밤새 섭외한 상태로 이미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었다. 허설아가 아무리 고집스러워도 허민정 몸으로 장난치진 않을 거라는 걸 권지헌은 알고 있었다. 역시나 잠시 후 조민규가 돌아와 말했다. "의사 일은 대표님께 감사하다고 합니다."권지헌의 호의를 받아들인 셈이었다.조민규가 다시 입을 열었다."제가 갔을 때 허설아 씨 옆에 젊은 남자가 있었는데 강원 그룹 강 대표님 같았습니다."강시우?여기서 마주치지 않았으면 권지헌도 허민정이 내일 수술한다는 걸 몰랐을 것이다.그런데 강시우가 왔다니.술집에서 허설아가 이혼했다는 말을 듣고 기쁜 표정을 숨기지 못하던 강시우 눈빛이 떠올랐다.겨우 좀 나아지던 권지헌 안색이 다시 어두워졌다.권지헌은 뒤로 기대며 눈을 감았다.머릿속에 온통 대학 시절 강시우와 허설아가 어울리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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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화

10여 분 후, 권지헌 병실 문이 열렸다.강시우는 과일을 들고 들어오더니 이마를 탁 쳤다."아, 지헌이 위궤양이라 과일 못 먹는 거 깜빡했네. 잘못 샀어.""지헌아, 좀 괜찮아?"권지헌은 강시우가 든 과일 바구니를 보더니 차갑게 힐끗 훑어보았다. "어디 갔다 왔어?"강시우는 잠깐 멈칫하다가 이내 히죽 웃었다."마침 설아도 이 병원에 있길래 위층에 가서 설아 어머니 문병하고 왔어. 그래서 과일도 같이 산 거야."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강시우는 허설아 어머니를 보러 왔다가 겸사겸사 권지헌 보러 온 것이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강시우는 속으로 좀 찔렸지만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태연하게 권지헌을 보며 웃었다.물러설 생각은 없었다.권지헌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허설아한테서 멀리 떨어져."강시우는 손으로 코를 문지르며 손에 든 과일을 침대 옆 테이블에 내려놓고 당당하게 말했다."지헌아. 넌 나한테 허설아한테서 멀리 떨어지라고 할 자격 없어."강시우가 단 한 번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던 말이었다.사실 대학 갓 들어갔을 때 강시우는 허설아를 꼬셔볼 생각이었다.허설아한테 사귈 거냐고 물었던 말도 농담이 아니었다.얼마나 진심이었는지는 강시우 본인만 알고 있었다.지금 권지헌과 허설아는 이미 헤어진 남이었다. 권지헌이 강시우더러 허설아한테서 떨어지라고 할 자격이 없었다.이 세상에서 딱 한 사람만 강시우를 거절할 권리가 있었다.허설아였다. 권지헌은 손으로 위를 눌렀다.감정의 기관이라 불쾌한 감정에 영향을 받았는지 뱃속에서 경련하듯 통증이 밀려왔다.심장 부위도 누가 움켜쥔 것처럼 숨이 막히고 피가 막히는 듯한 기분에 권지헌이 순간 눈을 감자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서은석이 침대 옆 테이블 위의 죽 뚜껑을 열었다. 권지헌에게 죽을 건네며 일부러 우스갯소리를 했다."역시 허설아 씨가 세심하네. 우리 같으면 뭘 사줘야 할지 생각이나 했겠어. 허설아 씨만 네가 이거 좋아하는 거 기억하고 있었네."허설아가 산 건 좁쌀죽 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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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펼쳐보니 거의 다 허설아가 혼자 말한 것이었고 권지헌은 그중 몇 개만 골라서 답했다.허설아는 영원히 지칠 줄 모르는 열정적인 작은 새처럼 권지헌 귓가에서 지저귀고 떠들었다.하지만 지금은 예전과 비교하면…… 하늘땅 같은 차이에 권지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휴대폰을 잠그고 나서도 강시우가 떠나지 않은 것을 본 권지헌이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돌아가. 앞으로도 계속 이해가 안 되면 더 이상 권율과 거래하지 마."적나라한 협박이었다. 강시우는 씁쓸하게 웃었다.권지헌이 마음만 먹으면 말 한마디 할 것도 없이 건영시에서 발붙일 곳이 없게 만들 수 있었다.강시우는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예전엔 허설아가 권지헌을 선택했었다.그런데 왜 지금도 강시우한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거지?"지헌아, 만약 내가 달라지면?"처음부터 모델이고 신인 배우고 아무 감정이 없었다. 심지어 형식적인 연기라고도 할 수 없었다.서로 원하는 걸 주고받는 정도였다. 강시우는 원하는 걸 얻고 상대는 인맥과 돈을 가져갔다.강시우를 무심하게 쳐다보는 권지헌의 잘생긴 얼굴에 온기 없는 웃음만 느껴졌다."이렇게 말하는 건 오지랖이 아니라 네가 설아를 방해하지 않길 바라서야.""시우야, 정말 자신 있었으면 왜 지금까지 기다렸어?"권지헌 말에 강시우의 얼굴에 핏기가 조금씩 사라지며 칙칙하게 변했다.강시우는 이를 악물고 힘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고개를 숙여 자기 신발을 보는 순간 웃음이 곧 한숨이 되어 흘러나왔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권지헌 말이 맞았다.서은석은 좀 재밌다는 듯 물었다."전에 말 안 한 건 허설아 씨가 아직 이혼 안 했다고 생각해서야?"강시우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자조적으로 웃었다.빛을 보지 못하던 마음속에 깊은 구석에 빛이 드는 순간 오히려 담담해졌다.강시우가 당당하게 말했다."그건 아니야. 나 그렇게 도덕적인 사람 아니거든. 허설아한테 남편 있건 말건 내겐 솔직히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어. 단지 허설아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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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화

다음 날 아침 일찍.허설아는 밤새 비행기를 타고 온 의사와 몇 마디 나눈 뒤 허민정을 수술실로 들여보냈다.수술실 지시등이 켜졌다.수술실 밖에 혼자 앉아 있는 허설아는 손발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그때 옆에 뚜껑 열린 텀블러가 하나 나타났다. 약재가 들어 있어 한약재 특유의 은은한 향이 났다.고개를 들자 아직 환자복을 입은 권지헌이 앞에 서 있었다.허설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넋이 나간 모습에 눈에는 초점이 없었고 울 기력조차 없어 보였다.권지헌은 자연스레 허설아 옆에 앉아 텀블러를 손에 쥐여주며 강하게 말했다."좀 마셔.""어머님 수술도 안 끝났는데 네가 먼저 쓰러지면 안 되지."허설아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심지어 텀블러조차 제대로 잡지 못했다.권지헌이 허설아 손을 잡고 텀블러를 입가에 가져다 대서 억지로 마시게 했다.안에는 먹을 수 있는 약재도 좀 있었다. 이른 아침 권지헌이 사람을 시켜 가져오게 한 한방 음료수였다. 뭐라도 좀 먹은 허설아는 그제야 안색이 조금 나아졌다. 손발에도 감각이 돌아왔다.그제야 권지헌이 허설아 두 손을 꼭 잡은 채 놓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는 걸 깨달았다. 아주 따뜻하고 힘 있는 권지헌 손은 허설아의 온몸에 온기와 열기가 전해지게 했다. 뛰어난 두 사람 외모 탓에 지나가는 의료진들이 연신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저 커플 사이가 진짜 좋아 보이네. 남자 쪽도 아직 환자인 것 같은데.""몰랐어? 아침 일찍부터 올라와서 아까부터 저기 한참 서 있었대.""어머, 그렇게 다정해?"……허설아는 의료진들이 수군거리는 목소리에 권지헌 손에서 자기 손을 빼려고 했다.한참을 애썼지만 전부 헛수고였다.허설아는 어쩔 수 없이 나지막하게 말했다."대표님."권지헌은 대꾸하지 않고 오히려 허설아 손을 잡고 입가에 가져가 입김을 호호 불었다.허설아 손이 따뜻해진 걸 확인하고 나서야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텀블러를 들어 허설아한테 좀 더 먹으라고 했다.허설아는 어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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