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내 아이를 모르는 그가 내 상사라니!: Chapter 151 - Chapter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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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화

하지만 연동근이 세상을 떠난 뒤론 조금 전을 제외하면 연씨 집안 친척들을 다시 본 적이 없었다.친척이 아무리 가깝다 해도 결국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식이었다.인생은 결국 스스로 살아가야 했다. 허설아가 천천히 말했다."권지헌 씨, 전에 이런 말을 본 적 있어요. 누군가를 생각하면 그 사람의 인연에 들어가게 된대요.""제 전남편이 그렇게 신경 쓰여요?"허설아는 권지헌이라면 말속에 숨은 뜻을 알아들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권지헌이 되려 되물었다. "내가 뭘 신경 쓰는지 몰라서 그래?"허설아는 몰랐다.헤어지고 나서 바로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다는 게 남자로서 자존심이 상한 건가?아니면 딸인 연희가 신경 쓰이는 건가?허설아가 권지헌을 쳐다보며 물었다. "내가 알아야 해요?"맑은 눈동자 속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함과 막막함, 혼란, 그리고 경계가 드러나 있었다. 권지헌에게 이런 감정들은 낯선 것이었다.예전의 허설아 눈에는 절대 이런 감정이 드러난 적 없었다. 하지만 왠지 또 익숙하기도 했다. 요즘 권지헌을 볼 땐 늘 이런 눈빛이었다.허설아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연민규에게서 온 전화였다."설아야, 아까 일은 오빠가 사과할게. 화내지 마."차 안 공간이 넓지 않았기에 수화기로 흘러나온 소리가 권지헌 귀에도 들렸다.허설아가 차갑게 말했다."신혼인데 오빠까지 같이 욕하고 싶진 않아.""아니, 설아야……""염치도 없어?"싸늘하게 뱉어내는 말에 연민규가 바로 두 손을 들며 항복했다."알았어, 알았어. 며칠 뒤에 연희 보러 가서 또 사과할게.""안 와도 돼, 끊을게."군더더기없이 짧은 답이었다.마치 작은 고슴도치가 날카로운 가시를 겉으로 드러낸 것 같았다.권지헌은 그제야 문득 깨달았다.권지헌이 매번 느꼈던 건 부드러운 허설아였다.웃으며 맞이하든 겁먹고 숨든 적어도 부드러운 모습이었다. 허설아의 몸처럼 말이다."집안 사람들에게는 꽤 사납네. 역시 허씨 가문 따님다워. 나한테는 왜 그렇게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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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2화

지하철역으로 들어간 허설아는 아직 개찰구를 들어가기 전이었다. 휴대폰을 꺼내어 지하철 카드를 스캔하려는데 권지헌이 보낸 메시지가 보였다."급한 의뢰는 돈 더 주면 되는 거지."이 말도 덧붙어 있었다. 권지헌도 의뢰 플랫폼 절차를 알아본 것 같았다.허설아는 최근 작업 중인 남은 작업물을 대충 정리해 보았다. 몇 장을 제외하면 다 금전적 힘으로 일정을 앞당겨 달라는 의뢰였다.권지헌 의뢰는 오히려 가격은 제일 높고 그리기는 제일 간단했다.머릿속에 권지헌의 의뢰 요구 사항이 떠올랐다.허설아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돌아선 허설아는 지하철역 편의점에서 시원한 물 한 병을 사서 얼굴에 대고 굴렸다.불덩이 같은 얼굴을 식히려 했다.허설아가 그제야 휴대폰을 꺼내 답장했다."오늘 병원갔다가 연희도 데리러 가야 해요. 시간이 부족해요."권지헌이 휴대폰을 들고 화면을 타다닥 두드렸다."나와, 태워다줄게. 그러면 시간이 돼."허설아는 뚜껑을 열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얼음물이 쭉 타고 내려가며 열기를 식혀주어 스스로 상상했던 모습 때문에 달아올랐던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대학 다닐 때는 누드 모델도 그려본 적 있었다.'이미 의뢰를 받은 이상 속전속결로 끝내자.'잠시 뒤 허설아가 길가에 세워진 권지헌 차 문을 열었다.권지헌은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전화로 업무를 지시하고 있었다. 허설아가 타자 권지헌이 손가락으로 톡톡 가리켰다.허설아는 권지헌을 너무 잘 알았다.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말이 필요 없이 권지헌의 뜻을 바로 알아차렸다.조금 전 거래처에서 가져온 품질검사 보고서를 펴서 건넸다.아주 호흡이 척척 잘 맞았다.상대가 뭔가 말하자 권지헌이 눈길로 허설아를 힐끗 보고는 낮은 러시아어로 대화를 이어갔다. 허설아는 러시아어를 못 알아들었다.하지만 권지헌이 허설아 얘기를 한다는 걸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게다가 권지헌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러시아어는 떨리는 음이 몇 개 있어서 잘하는 사람이 말하면 기타 줄을 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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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3화

하지만 가까운 사람들은 허설아의 속마음이 아주 단순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지금도 권지헌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권지헌은 손을 뻗어 허설아의 오똑한 코끝을 톡 쳤다."네 딸이 영어 그림책 들을 때 딱 이런 표정이야."권지헌은 행동이 아주 빨랐다.허설아가 정신 차렸을 때 이미 손을 거둔 뒤였다.차가 앞으로 달려갔다."맞다." 권지헌이 허설아 무릎에 휴대폰을 휙 던졌다."유혜원이 네 연락처 추가하고 싶대. 연락처 리스트에서 찾아서 네 번호 보내줘."저번에 잠깐 얘기를 나눠봐서 유혜원 성격이 괜찮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직설적이고 사람 해칠 마음도 없는 단순하고 솔직한 사람이었다.허설아는 친구 사귈 생각은 없었지만 사람 하나 더 아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권지헌은 운전해야 했기에 휴대폰 보기 불편했다.권지헌 휴대폰은 케이스도 없고 보호필름도 없었다. 휴대폰 자체의 촉감을 더 좋아하고 긁히거나 깨지는 것도 신경 안 쓰는 듯했다.비밀번호는 여섯 자리였다.허설아가 나지막하게 말했다."대표님, 비밀번호 해제해서 주면 안 돼요?""예전 비밀번호 그대로야."허설아가 멈칫했다.예전 비밀번호라면 허설아가 갑자기 꽂혀서 꼭 바꿔주겠다고 한 거였다.허설아 휴대폰 잠금 비밀번호와 똑같았다.비밀번호도 커플이어야 한다며 말이다.그때도 권지헌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묵인했었다.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안 바꾼 거야?허설아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비밀번호를 입력해 잠금화면을 풀었다.권지헌 sns를 누르자 맨 위 상단에 고정된 대화창이 보였다.상대 계정은 이미 삭제된 상태라고 표시되었다.권지헌이 왜 이미 삭제된 계정을 상단에 고정해놨을까?유혜원 계정을 찾은 허설아는 연락처를 보내고 휴대폰을 도로 내려놓으려 했다.그런데 실수로 상단 고정 연락처를 눌러버렸다.대화창에는 상대가 메시지를 한 개 취소했고 권지헌은 물음표로 답한 게 보였다.더 위로 올리자 드문드문 이어지는 대화가 있었다.내용이 많지 않았지만 허설아는 알아볼 수 있었다.허설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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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화

차가 병원 주차장으로 들어갔다.권지헌은 안전벨트를 풀고 트렁크에서 선물 상자 두 개를 꺼냈다.허설아는 권지헌이 양은석 의사한테 인사하러 거라 생각했다. 지난번 권지헌과 양은석의 대화를 보면 오랜 지인인 게 분명했다.그런데 권지헌이 선물 상자를 들고 허설아를 따라 허민정 병실로 들어올 줄은 몰랐다.권지헌이 허민정에게 선물 상자를 건넸다.전부 환자용 고급 영양제였고 포장만 봐도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게 느껴졌다. 허민정도 예전엔 호의호식하며 값 비싸고 좋은 걸 많이 봤기에 이 선물 박스 브랜드를 본 적 있었다. 수천만 원짜리 보약이었다.허민정은 받지 않았다. 허설아와 많이 닮아있는 눈에는 뭔가 떠보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허민정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회사 대표님이 병문안 오는데 이렇게 비싼 영양제를 들고 오다니요? 저희 설아가 회사에서 말썽 피우진 않았죠?"눈앞의 젊은 남자는 말끔한 정장 차림에 단정하고 세련된 인상이었고 얼굴에는 흠잡을 데 없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속내는 허민정조차 쉽사리 꿰뚫어 볼 수 없을 정도였다. "회사 차원이 아니라 제 개인으로 온 겁니다."솔직한 답이 허민정의 마음에 들었다. 허민정은 거절하지 않고 허설아를 보며 웃었다."설아야, 받아도 돼?"허설아가 목소리를 낮춰 손가락으로 권지헌의 반듯한 등을 쿡 찔렀다."양은석 선생님께 드리려고 가져온 거 아니에요?"권지헌이 고개를 돌리고 몸을 살짝 숙였다. 마치 두 사람이 다정하게 귓속말하는 것처럼 보였다."대놓고 뇌물 주라고? 은석 아저씨한테 말년에 불명예 안겨드리고 싶지 않아."의료진은 선물 받는 거에 대한 관리가 아주 엄격했다. 허설아도 양은석이 청렴한 분이라 너무 비싼 건 안 받으신다는 걸 알고 있었다.허설아가 고개를 저으며 고집했다."너무 비싸요.""어머님 몸에 좋고 상처 회복에도 도움 되는데 그래도 안 받을 거야?"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금 허설아가 갚을 수 있는 능력 범위를 넘어서면 부담이 됐다.권지헌은 시선을 거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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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화

권지헌이 입을 열었다."어머님, 그냥 지헌이라고 불러주세요."공손한 태도에 허민정 얼굴에 놀라운 기색이 역력했다. 권지헌은 안타까운 말투로 말했다. "전에 아버님을 뵐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몰라봬서 좀 실례를 했습니다."권지헌 허리를 찌르던 허설아가 행동을 멈추고 미간을 찌푸렸다. '권지헌이 언제 아빠를 본 거지?'권지헌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고 허설아도 허민정 앞에서 물어보기 뭐했다."두 사람 원래 아는 사이였어?"권지헌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허설아가 말하길 기다렸다.허설아가 더듬더듬 말했다."같, 같은 학교……"허민정은 단번에 허설아가 거짓말하는 걸 알 수 있었다.허설아는 거짓말할 때 이렇게 눈빛이 흔들리고 사람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같은 학교라고? 건영대에 매년 졸업생이 얼마나 많은데. 게다가 조승현도 건영대 대학원생인데 왜 조승현 허리는 찌르는 걸 못 봤을까?허민정은 허설아의 마음을 들추지 않았다."같이 간 건 아니고 호텔에서 우연히 마주쳤어요."호텔 얘기가 나오자 허설아 기분이 다운되었다. 허민정이 뒤로 몸을 기댔다.권지헌은 한 손에 쿠션을 들어 허민정 뒤에 놓아 적당한 위치를 맞춰준 뒤에야 손을 뗐다.전혀 어색하거나 억지스러운 기색이 전혀 없었다.허민정도 처음엔 왠지 실례인 것 같았지만 자연스러운 권지헌의 행동에 그냥 받아들였다."큰아버지가 언짢은 말 했으면 마음에 담아두지 마.""됐다, 나도 피곤하니까 이제 연희 데리러 가. 그리고 연희 병원에 데려오지 마. 원래도 면역력이 약한데 자꾸 병원에 오면 없던 병도 생겨."허설아는 간병인과 의사에게 이틀 동안 허민정이 어땠는지 자세히 물었다.모든 게 다 괜찮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병원을 떠났다.허설아가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보던 허민정 얼굴에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연중근이 모진 말을 일삼는다는 건 허민정도 모르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허민정은 본인이 몸이 좋지 않아 언젠가 세상을 떠나면 허설아는 의지할 곳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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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화

전서준이 허설아 손을 잡고 말했다."설아 이모, 엄마가 주말에 연희더러 우리 집에 놀러 오래요. 괜찮아요?"유혜원은 전서준한테서 연희네 집에서 자고 왔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연희 집에서 먹고 자기까지 한 것이다. 그래서 시간 날 때 연희도 집에 놀러 오라고 초대하고 싶었다.연희가 기대 가득한 얼굴로 허설아를 봤다.연희는 아직 친구가 없었다.어린이집 친구 집에 가본 적도 없었다.허설아가 고민하자 연희와 전서준 둘 다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빤히 쳐다보았다.심지어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미어캣처럼 두 손을 모아 비비는 제스처를 하며 계속 허설아에게 부탁했다. 허설아는 순간 마음이 약해져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알았어. 서준이 엄마한테 챙겨가야 할 게 있는지 물어볼게."전서준이 바로 아무것도 안 챙겨와도 된다며 말했다."우리 집에 다 있어요!"차가 한 식당 문 앞에 섰다.도시락을 든 종업원이 익숙하게 다가와 도시락을 조수석에 놓고 떠났다.이번 내비게이션 목적지는 허설아네 아파트 단지였다.차에서 내린 후 권지헌은 도시락을 들고 전서준을 안아 들었다.전서준은 권지헌 품에서 버둥거리며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작게 중얼거렸다."여기 너무 익숙해. 외삼촌 집도 여기 아니었어요?""네가 잘못 기억한 거야."저번에 유혜원이 한 번 데리고 온 적 있는데 그걸 기억할 줄이야.권지헌은 집이 많아서 전서준도 여기가 맞는지 아닌지 사실 잘 기억하지 못 했다.전서준은 권지헌 손의 도시락에 더 관심이 많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전서준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삼촌, 우리 왜 연희네 집에서 밥 먹어요?"엘리베이터 안에는 한쪽 면이 전부 거울이었다.권지헌의 시선이 거울 속에서 허설아와 마주쳤다.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의 권지헌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씩 올라갔다. "설아 이모랑 일 얘기할 게 좀 있어."전서준이 혀를 쏙 내밀었다."외삼촌 너무해.""왜 또 근질거려? 저번에 사준 그림책 다 봤어?"전서준이 즉시 풀이 죽어서 찐빵 같은 통통한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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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화

연희는 권지헌을 아주 좋아했다.혈연 관계란 참 신기한 것이었다.권지헌 곁에 있을 때마다 연희는 아주 즐거워했다.밥 다 먹고도 떨어지기 싫어하며 권지헌과 함께 있으려 했다. 연희가 턱을 괴고 허설아를 보며 말했다."엄마, 오늘 외숙모와 오빠 봤어요. 외숙모가 오빠를 우리 유치원에 보내고 싶은가 봐요."연희가 말한 외숙모는 연민규 전처였다.둘에겐 아이가 있었는데 이혼할 때 아직 수유 기간이었기에 아이는 엄마가 부양하게 되었다. 아이는 연희보다 좀 컸다.젓가락을 들고 있던 허설아의 손이 멈칫했다. 전에는 할머니 장례식, 아빠 건강, 막 태어나 딸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연민규 일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지금 생각해보니 연민규 아들 출생 날짜가...현서는 어떻게 감히 유부남을 유혹했고 연민규는 또 어떻게 아내 임신 중에 바람을 피울 수 있었을까?허설아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오르더니 그대로 위로 전해지며 순간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이 밀려왔다.입맛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허설아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외숙모가 또 뭐라고 했어?"연희는 고개를 저었다."아무 말도 안 했어요."허설아는 더 이상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권지헌이 몇 번 흘끗 쳐다보다 물었다."안 먹어?""입맛이 없어요."책상 위의 휴대폰에 메시지 몇 통이 도착했다. 허설아 연락처를 추가한 유혜원이 아마 이제야 일을 끝냈는지 메시지 몇 개를 보냈다."설아 씨, 서준이 자기 집에 있죠? 방금 음성 보내서 설아 씨네 집에서 밥 먹는다고 하더라고요. 애도 참, 폐 끼쳐서 너무 미안해요!"허설아가 답장했다."괜찮아요, 서준이 삼촌도 있어요."유혜원은 전서준한테서 권지헌도 있다는 걸 이미 들었다.타이핑도 못하는 꼬맹이가 언제 유혜원에게 음성을 보냈는지도 몰랐다."그건 그렇고 주말에 연희 데리고 우리 집에 와요. 우리도 제대로 한잔해야죠!"메시지를 본 허설아는 유혜원 말투까지 상상할 수 있었다.처음 만났을 때와는 많이 다른 보습이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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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화

이내 단추를 푼 셔츠가 옆으로 휙 던져졌다. 허설아가 셔츠를 보며 물었다. "빨아드릴까요?""아니, 일 먼저 해."확실히 그림 의뢰가 중요한 일이긴 했다.하지만 지금 권지헌은 상반신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단단한 가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바지를 입고 있긴 했지만 저번보다 나을 건 없었다.허설아는 권지헌이 일어서기만 하면 바지가 벗겨지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헛기침으로 마음속의 묘한 설렘을 억누르고 화판을 세우고 도화지를 폈다. 허설아는 사실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린 지 꽤 오래 되었다. 최근에는 대부분 타블렛으로 작업했다. 다행히 느낌이 아직 살아있었다.대략적인 윤곽 하나를 그린 허설아는 앉아 있는 권지헌을 힐끗 쳐다봤다.권지헌은 아예 꼼짝하지 않고 허설아만 바라보고 있었다."휴대폰 해도 돼요. 계속 한 자세를 유지할 필요 없어요, 많이 힘들 거예요."권지헌이 고개를 저었다."내가 힘든 것 같으면 나랑 대화해 줘."솔직히 허설아는 권지헌과 할 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하지만 오늘은 마침 한 가지가 있었다."언제 우리 아빠 본 거예요?"권지헌은 휴대폰을 하지 않았다.그저 라이터를 들고 이따금씩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불꽃이 깜빡이며 미소를 띠고 있는 권지헌 얼굴을 비추었다. "잊어버렸어."허설아가 펜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일부러 그러는 거예요?"방이 크지 않아서 권지헌이 앉은 위치는 허설아 앞에서 멀지 않았다.권지헌이 살짝 움직였다.이어 라이터를 옆에 놓고 손가락으로 허설아 무릎을 톡 쳤다.짓궂고도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허설아 귀로 전해졌다."너도 잊는데 나는 왜 안 돼?"권지헌은 차 안에서 왜 전에 화내지 않았냐고 허설아에게 물었을 때 잊었다고 한 걸 말하는 거였다.허설아는 확신할 수 있었다.권지헌이 허설아에게 보복하고 있다는 걸.허설아는 갑자기 권지헌이 언제 아빠를 봤는지 별로 알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설아는 아예 고개를 돌리고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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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화

치마 끝자락을 향해 미끄러지는 손이 이미 권지헌의 답을 말해주고 있었다.허설아는 손을 뻗어 권지헌 손을 눌렀다.허설아는 자신의 얼굴이 이미 새빨갛게 달아오른 걸 모르고 있었다. 오렌지빛 조명 아래, 허설아 얼굴의 부끄러움과 분노는 마치 오렌지 사이다 속 톡톡 터지는 거품 같았다.권지헌을 취하게 만들었다."나, 나 신고할 수도 있어요."권지헌이 앞으로 좀 다가앉더니 허설아 얼굴에 바싹 붙어서 말했다."오, 대단한데. 칭찬해 줄까?""진심이에요."권지헌이 짧게 음하고 대꾸했다. "신고해서 뭐라고 할 거야? 나 모르는 사람이라고? 아니면 내가 너한테 뭘 하려고 한다고 할 거야?"권지헌은 더 깊은 의도를 드러내지 않았다. 눈빛이 적나라하고 목젖이 움직였다고 그게 뭘 증명하는 건 아니었다.허설아가 권지헌 얼굴을 밀어냈다.펜을 들고 다시 그림을 그렸다."전에는…… 내가 성격 안 좋은 거 들킬까 봐 겁났어요, 날 싫어할까 봐."조금 전의 야릇하고 묘한 거품들이 허설아 목소리에 전부 톡하고 터져버렸다.허설아도 권지헌이 앞에 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가까이 있으니 오히려 그려야 할 디테일을 더 잘 관찰할 수 있었다."나를 싫어하고 미워할까 봐, 나랑 헤어지려고 할까 봐 걱정했어요. 대표님, 알아듣겠어요?"짜증이 섞인 말투였다. 권지헌이 허설아를 빤히 쳐다보았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권지헌은 허설아 눈에서 평온함을 보아냈다.활활 타오르는 불길 같던 권지헌 감정도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한참 뒤.멍 자국을 주물러서 다 풀어주고 나서야 권지헌이 허설아 다리를 내려놓았다."3학년 때 네 룸메이트, 오늘 그 신부 말이야. 나 찾아온 적 있어."권지헌은 현서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 했지만 허설아 룸메이트라는 것만 알았다."그 여자가 너 나이 많은 남자한테 스폰 받으면서 산다고 하더라."허설아가 제대로 된 재벌가 딸도 아니고 나이 많은 남자 돈으로 사치하면서 이미지 메이킹을 해서 권지헌 뒷바라지하고 있다고 했다. 권지헌에게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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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화

몇 번 울렸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권지헌은 고집스럽게 기계음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끊고 또 다시 걸었다.계속 아무도 받지 않았다.알코올의 힘에 뇌 속 생각이 뒤죽박죽 엉켰다.성인이 된 뒤로 권지헌은 거의 취하지 않았다. 늘 자신은 절제되고 또렷하고 이성적이고 객관적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허설아를 만날 때마다 술잔 속 얼음덩어리처럼 보이지 않는 사이에 체온과 시간에 함께 녹아버렸다. 권지헌이 고개를 젖히고 술을 한 모금 크게 들이켰다.차가운 액체가 뱃속으로 흘러들어가고 알코올이 전해지며 관자놀이에서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전해졌다.얼마나 마셨을까, 권지헌이 잠긴 목소리로 혼잣말하듯 말했다. "설아가 이젠 날 안 좋아해."서은석은 권지헌의 이런 모습을 본 적 없었다. 권지헌은 언제나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었고 모든 사람을 내려다봤다.어릴 때 군 부대 관사에서 애들끼리 놀 때도 권지헌은 늘 장군이었고 서은석과 정일우는 다 부하들이었다.그 순간, 네온처럼 찬란한 형형색색의 술집 조명이 권지헌 얼굴을 비췄다.한없이 어두운 눈빛이었다. 표정이 똑똑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쓸쓸해 보였다. 그 모습에 서은석은 안쓰러우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꼭 허설아여야 돼? 넌 여자가 없는 것도 아니잖아. 내가 며칠 뒤에 몇 명 소개해줄게."권지헌이 고개를 젖히고 잔 속 술을 원샷했다."네가 소개해 주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건 권지헌의 권 자야."서은석이 술잔을 쥐고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차이가 있어? 결혼이 원래 두 집안 일이잖아."재벌가 집안 사람들은 하나 같이 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결혼에서 집안은 제일 중요한 카드였다. 외모나 인품보다 더 중요했다. 둘 사이 감정은 있으면 금상첨화고 없어도 당연시했다.잠시 침묵이 흘렀다.조민규가 이어 말했다. "걔가 지금 너 안 좋아하면 좋아하게 만들면 되잖아."권지헌은 말이 없었다.또 독한 술을 여러 잔 시켜서 전부 털어넣었다. -깊은 밤. 허설아는 잠이 깊이 들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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