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내 아이를 모르는 그가 내 상사라니!: Chapter 81 - Chapter 90

153 Chapters

제81화

허설아는 저도 모르게 한 번 더 쳐다봤다.상대가 권지헌이 아니었다면 사진까지 찍고 싶을 정도였다.다른 의뢰인 그림의 밑그림으로 쓰거나 수정 참고용으로 말이다.권지헌은 무슨 옷을 입어도 멋있고 품격 있는 완벽한 옷걸이였다. 대학 다닐 때는 정장 입은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었다.그래도 허설아는 말한 적 없었다.권지헌이 정장 입은 모습을 제일 좋아한다는 걸.그때는 못 봤던 걸 지금 실컷 볼 기회가 생긴 셈이었다.다만 대놓고 쳐다볼 용기는 없었다.권지헌이 허설아의 시선을 알아채고 시선을 내리깔며 눈썹을 치켜 올렸다."무슨 얘기하고 있었어?"허설아는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약간 예민한 상태였고 강지연이 계속 도발하는 바람에 화가 나 있었다.하지만 권지헌 앞에서 허설아는 약간의 불만도 전부 사라졌다.직속 상사한테 대드는 건 아직 허설아 능력 밖이었다.게다가 방금 건 순간 흥분한 상태에서 함부로 한 말이었다.만약 권지헌이 강지연 편을 든다면 허설아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강지연은 권지헌이 오자 목청껏 울부짖기 시작했다.허설아를 가리키며 가엾은 듯 말했다."오빠, 저 여자가 나한테, 내가 오빠한테 들러붙는다고 했어요. 나 모함하는 거예요!"허설아는 듣고 있자니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권지헌은 어떻게 강지연을 참는 걸까?아니면 이런 스타일이 좋은 건가?허설아는 틈을 타서 커피잔을 들고 빠져나갔다.권지헌 뒤에 뒤늦게 도착한 조민규는 강지연의 말에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조민규가 굳은 얼굴을 급히 강지연을 끌고 나갔다.탕비실에는 권지헌만 남았다.창밖의 희미한 햇빛이 들어와 카펫 위를 비췄다.마디가 선명한 남자의 손이 작업대 위의 물건을 집어 들었다.고양이 머리 모양 도자기 뚜껑이 작업대 위에 놓여 있었다.색깔로 보아 허설아가 들고 있던 커피잔의 뚜껑이었다.뚜껑 테두리에는 옅은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는데 허설아의 립스틱 자국인 듯했다.입술 결까지 보였다.허설아에게는 습관이 하나 있었다.일에 집중할 때면 무의식적으로 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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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뚜껑 가져가려면 직접 탕비실로 가서 가져."허설아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탕비실에 두고 간 거면 다행이었다.답장을 보낸 허설아는 권지헌이 뒤의 사진을 삭제하지 않는 걸 보고 어쩔 수 없이 인용해서 답했다."대표님, 잘못 보내신 것 같아요.""응. 잘못 보냈네."허설아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아까 설렜던 마음도 점차 평온해졌다.아마 일정 보고를 하려고 누군가에게 보내던 거였겠지.예전 연애할 때 권지헌은 매일 뭘 하는지 허설아에게 말하지 않았다.대부분 하루 일과를 끝내고 나서야 허설아를 찾았다.허설아는 그때 권지헌이 자기 일을 다 끝내고 만나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다.방해받는 걸 싫어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허설아가 권지헌의 생활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도 싫어하는 거라고 묵인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상대를 위해 많은 핑곗거리를 만드는 것 같았다.지금은 그 변명들이 현실 앞에서 산산조각 나버렸다.온전했던 유리 한 장이 결국 파편으로 부서지고 조각마다 과거의 기억이 새겨져 허설아의 마음을 찔러 씁쓸하게 했다. 허설아는 소리 없이 웃고는 휴대폰을 닫았다.한참 일하고 프로그램 몇 개를 처리한 뒤에야 권지헌이 탕비실에 없을 시간이라고 생각해서 뚜껑을 가지러 갔다.그런데 들어서자마자 창가에 서서 창밖 풍경을 보고 있는 권지헌이 보였다. 계속 여기 있었던 건가?허설아는 어쩔 수 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안녕하세요."권지헌이 고개를 끄덕이고 손에 든 뚜껑을 건넸다.도자기 뚜껑이 남자 손에 한참 있었는지 약간 따뜻했다.전부 그의 체온이었다.허설아는 손에 쥔 뚜껑의 온기에 마음도 뜨거워져서 권지헌을 보며 말했다."저, 대표님. 아까 보내주신 사진, 제가 참고용으로 써도 될까요?"그 사진을 쓰려면 권지헌에게 말해야 할 것 같았다.권지헌의 눈에 웃음이 담겼다."한 장으로 충분해?"낮은 웃음소리가 탕비실에 울렸다.한 장으로는 사실 부족했고 몇 가지 포즈를 더 찍으면 더 좋을 것 같았다.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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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전문 빚 독촉 팀에 연락해서 허설아한테 빚 독촉을 가라고 시켰다.궁지에 몰린 허설아가 또 무슨 용기로 자기를 무시하는 말을 하는지 보고 싶었다.-저녁, 허민정이 닭백숙을 끓였다.하룻밤 푹 끓인 국물 위에 금빛 기름이 떠서 식욕을 자극했다.허민정이 고집스럽게 말했다."수술 일은 신경 쓰지 마. 난 안 갈 거야."나이 든 사람은 늘 고집이 세다.허설아가 한숨을 쉬고 굳은 얼굴로 말했다."집도의 예약 다 잡아놨어요. 안 가면 돈만 날리는 거예요."허민정은 지금 허설아가 돈이 없다고 생각되어 안쓰러운 것이었다. 회사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겨우 집안의 환자 두 명과 빚을 감당할 수 있었다. 원래 빚 같은 건 없었다. 회사 장부에 문제가 좀 있는 건 허민정이 직접 정리하려고 했다.회사 일만 정리되면 수술도 안 받을 생각이었다.세상을 살면서 제일 중요한 건 자식한테 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그런데 정리도 못 하고 수술 순서만 먼저 왔다.허민정이 국을 한 숟가락 뜨고 천천히 말했다."날 세상 물정 모르는 할머니로 보지 마. 수술도 안 하는데 어느 병원이 돈을 받겠어? 난 수술 안 받을 거니까 더 얘기하지 마."본질적으로는 여전히 고집 센 여장부였다.허설아는 지친 기색으로 국그릇을 내려놓고 화난 표정을 지었다."허민정 씨, 본인이 아직도 강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말씀드릴게요. 수술 안 하면 내일 당장 연희 데리고 나갈 거예요. 여기서 혼자 살아요!"허민정이 국그릇을 든 손을 떨며 고개를 들고 믿을 수 없다는 듯 허설아를 쳐다봤다.모녀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치했다. 허민정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날 버리겠다는 거야?""살아갈 생각이 없으면, 계속 우리 곁에 있고 싶지 않으면, 연희가 크는 걸 보고 싶지 않으면, 연희 결혼하고 아이 낳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우리도 엄마 필요 없어요."허설아의 목소리는 이미 흐느끼기 시작했다. 허민정의 마음도 조금씩 약해졌다.이렇게 하는 게 허설아한테 불공평하다는 걸 알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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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허설아 아버지 회사가 파산한 후 자산이 동결됐다.공장 생산 프로젝트 몇 건은 이미 계약된 상태라 빚이 좀 생겼고 허설아와 허민정이 상의한 끝에 집과 차를 팔아 겨우 갚았다.인터넷에는 가끔 재벌 2세가 파산하면 어떻게 사는지 보여주는 영상이 있었다.허설아는 자신이 무너질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허설아와 허민정은 둘 다 강했다.침착하게 뒷정리를 하고 먼저 할머니를 보내고 다시 아버지 곁으로 돌아가 마지막을 지켰다.허민정과 냉정하게 집안일을 의논하고 일자리를 찾고 채권자와 상환 계약을 맺었다.몇 년 동안 허설아는 이렇게 버텨왔다.불평한 적도 없었다.조금만 더 노력하면 허민정과 연희에게 더 나은 생활을 줄 수 있다고 믿었다.채권자 메시지에 답장을 보낸 허설아가 앱을 열어 잔고를 확인했다.빠듯했다.백엔드에서 의뢰인이 메시지를 보내어 아주 정중하게 물었다."서풍 선생님, 이 밑그림 구도를 좀 바꾸면 어떨까 해서요. 좀 맛이 안 사는 것 같아서요.""선생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서풍은 업계 대가였고 상대도 서풍이 기분 나쁠까 봐 조심스럽게 말했다."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수정할게요."예전 그림은 허설아가 인터넷에서 찾은 정장 차림으로 무릎 꿇은 화보 사진이었다.전체적인 느낌이 확실히 의뢰인이 원하는 그림과 조금 차이가 있었다.남성미가 부족했다.그림은 참고 자료가 필요했다.허설아의 머릿속에 권지헌이 낮에 보낸 사진이 떠올랐다.잘못 보낸 거였지만 사용해도 된다고 했다.허설아는 빠르게 그 사진을 저장했다.백엔드에 붙여 넣고 참고해서 새 밑그림을 그린 뒤 의뢰인에게 보냈다.의뢰인은 금방 답장을 보내왔다."대박! 서풍 선생님은 신이에요! 딱 이런 느낌이 필요했어요. 미쳤어요!""여전히 무릎 꿇은 포즈여야 해요."답장을 보낸 허설아가 무의식적으로 전자펜을 깨물었다.침대에 누워 휴대폰 연락처를 뒤적였다.의뢰인이 묘사한 몸매와 비슷한 남자는 많지 않았다.젊긴 하지만 허설아 주변 남자들은 배가 안 나온 것만으로도 다행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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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권지헌은 짧게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거울을 보며 운동하는 사진 두 장을 찍었는데 막 러닝을 끝내고 샤워하려던 참이라 상의를 입지 않은 상태였다.몸의 근육 라인이 선명하게 보였고 땀이 근육을 타고 흘러내려 운동복 바지에 흐릿한 자국을 만들었다.사진을 보낸 뒤, 서은석의 전화가 걸려 왔다.전화를 받자마자 서은석이 다짜고짜 말했다."지헌아, 네가 조사해 달라던 그 남자 이혼 상태래. 그건 왜 물은 거야?"이혼이라."전처가 누군지도 알 수 있어?""좀 어렵지, 개인 프라이버시잖아. 이혼한 건 본인이 직접 SNS에 올린 거고."프라이버시와 관련된 내용이라도 권지헌은 서은석이 조사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그런데 지금은 확실히 미혼이야. 왜? 그 남자 여자 친구가 네 전 여친이야?""아니."권지헌이 수건으로 머리의 땀을 닦았다.창밖에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빛났고 헬스장에는 권지헌 혼자뿐이었다.연민규가 이혼 상태라는 건 허설아가 이미 이혼했다는 말이었다.허설아네 집에서 허민정이 낯선 성인 남자를 허설아 방에 들이는 걸 묵인한 것도.허민정이 허설아를 타이를 때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찾겠다던 허설아의 말도.권지헌은 가슴속에 불꽃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서은석과의 통화를 끊고 주방으로 간 권지헌은 냉장고를 열어 시원한 물 하나를 꺼냈다.꿀꺽꿀꺽 마시고 나서야 타오르는 불꽃을 끌 수 있었다.이때, 허설아가 정장 차림 무릎 꿇은 사진을 보내며 이렇게 찍어서 참고용으로 보내줄 수 있냐고 물었다.권지헌이 메시지를 눌러서 답장했다."원하면 직접 와서 찍어."아래는 권지헌의 아파트 위치 주소였다허설아는 권지헌의 답장을 받고 휴대폰을 던질 뻔했다!권지헌이 또 메시지를 보냈다."이 각도는 셀카로 안 돼."허설아가 보낸 사진은 여자 손이 남자 턱을 잡고 남자가 정장 차림으로 카펫에 무릎 꿇은 채 여자를 올려다보는 모습이었다.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이었다.셀카로는 확실히 불가능했다."아니면 내가 아무 여자나 찾아서 이런 사진 찍어 달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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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허설아는 지금 자기 행동이 어딘가 좀 뚝딱거린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보기 민망했다. 권지헌이 허설아를 보며 말했다."냉장고에 음료수 있어. 나 옷 갈아입고 올 테니까 사진에 필요한 요구 사항 있어?""소매 밴드랑 셔츠 클립도 있으면 좋겠어요.""응, 알았어."허설아는 자기 요구가 좀 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런데 권지헌은 다 들어준다고 했다.예전에도 권지헌더러 모델 서달라고 한 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 좀 은밀한 포즈를 그릴 때였다.그때 서풍의 그림체는 소년미의 신이라고 불렸다.지금은 허설아의 화풍도 점점 성숙해졌다.온통 검은색 가구에 바닥도 짙은 월넛 우드인 권지헌네 집은 모델하우스로 내놓아도 손색없을 정도였다.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다.냉장고 안에는 전부 술이었고 개봉하지 않은 우유 몇 병과 투명한 병에 담긴 알록달록한 액체들이 있었는데 아마 주스인 듯했다.허설아가 하나 꺼내 마셔보니 왠지 좀 써서 더 마시지 않았다. 병에 전부 러시아어로 쓰여 있어서 허설아는 자기가 꺼낸 게 술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권지헌네 냉장고에는 주스가 없다는 걸 몰랐다. 침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남자가 빠르게 옷을 입고 풀셋 정장 차림으로 나왔는데 허설아는 본 적 없는 스타일이었다.자수까지 박힌 넥타이를 그냥 목에 걸친 채 나왔다.허설아는 자기가 보낸 사진에서도 넥타이가 저렇게 아무렇게나 걸쳐져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허설아 뺨이 저도 모르게 빨개졌다.권지헌은 업무를 보는 듯한 태도였다."어디서 찍을까? 여기 카펫 괜찮아?""괜찮아요. 어디든 괜찮아요."권지헌네 집은 전체가 카펫이어서 어디서든 찍을 수 있었다.남자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와서 허설아가 앉아 있는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권지헌을 바라보던 허설아는 순간 숨 쉬는 것조차 잊었다.권지헌이 손을 뻗어 허설아의 손을 잡고 자기 턱에 갖다 댔다.허설아는 자기 얼굴이 지금 엄청 빨개져서 귓불까지 다 빨개졌을 것 같았다.권지헌은 운동을 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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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권지헌 집 냉장고 술은 작은 병일수록 도수가 높았다.허설아가 한 모금 마신 건 독한 보드카였다.허설아가 권지헌의 턱을 잡으며 좀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너무 많이 입었어요, 벗어요.""재킷도 벗고 셔츠도 벗어요. 빨리."허설아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권지헌은 고개를 돌려 탁자 위에 놓인 뚜껑이 열린 술병을 발견했다.우유는 안 마시고 왜 저걸 마셨을까?하지만 이미 마신 이상 권지헌도 말릴 수 없었다. 허설아가 취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천천히 재킷을 벗고 셔츠 단추를 풀려는데 허설아가 손을 잡았다."내가 도와줄게요. 너무 느려요."가느다란 손가락이 서서히 셔츠 단추를 풀었다.얼굴에는 약간의 취기가 올라 뺨이 빨갛게 물들었고 권지헌 가슴에 숨결이 닿을 정도로 아주 가깝게 붙어 있었다. 권지헌의 호흡도 따라서 거칠어졌다."허설아, 내가 누군지 알아?"혹시 전 남편으로 착각하는 건 아닐까?그 생각에 권지헌은 갑자기 미묘한 질투심이 들었다.허설아가 멈추고 고개를 들어 권지헌을 보았다."당신이 누구냐고요? 권지헌 씨?"드디어 허설아 입에서 그의 이름이 나왔다.권지헌의 마음이 원래 다시 평온해지려던 찰나, 허설아가 입술을 달싹이는 모습에 다시 세찬 파문이 일었다.허설아는 술을 마신 데다 계속 입술까지 핥아서 더 빨갛게 보였다. 마치 유리병에 그려진 체리 같았다.권지헌이 허설아의 손가락을 잡고 있던 손바닥에 힘을 줘서 손을 완전히 감쌌다."연민규가 누구야?"허설아가 잠시 멈칫하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권지헌이 이런 때 갑자기 다른 사람 얘기를 꺼내는 게 좀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았다.하지만 권지헌은 허설아 손을 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허설아는 어쩔 수 없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나쁜 남자예요!"민규 오빠는 허설아와 현서가 다툼이 있는 걸 알면서도 현서를 선택한 나쁜 사람이었다. 권지헌이 손을 놓아주었다.허설아가 신나서 사진 몇 장을 찍고는 휴대폰을 들고 한참 들여다봤다."권지헌, 진짜 잘생겼어.""그냥 잘생긴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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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밤이 깊어지고.몽롱한 정신에 깬 허설아는 일어나 앉아 눈을 감은 채 슬리퍼를 찾았다.발이 부드러운 카펫에 닿는 느낌에 눈을 벌떡 떴다.눈에 보이는 건 낯선 침실이었다.짙은 색 원목 바닥에 회색 캐시미어 카펫이 깔려 있었고 침대 머리맡에는 나이트등이 아주 어둡게 조절되어 있었지만 눈앞 상황을 보기에는 충분했다.허설아 집 침실이 아니었다.에어컨 바람이 몸에 닿자 허설아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뇌리에 술을 마시던 모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발가락으로 카펫을 움켜쥐었다.권지헌 집에서 취해서 잠들어 버렸다니.주변을 둘러보니 방에는 허설아 혼자뿐이었다.그나마 안도의 숨이 쉬어졌다. 화장실을 가고 싶어진 허설아가 조심스럽게 화장실로 갔다.욕실 안에는 물건이 아주 적었다. 남성용 스킨케어 제품 몇 개, 전기 면도기 하나, 전동 칫솔 하나가 끝이었다.세면대 위는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허설아는 손을 씻은 후 찬물을 손에 받아 얼굴을 적시며 정신을 차렸다.권지헌 집에서 잠든 걸 깨달은 순간 잠이 완전히 깨버렸다. 새벽 3시인 지금 문을 열고 나가면 좀 이상할 것 같았다.차라리 그림 장비를 꺼내 밑그림 수정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하지만 휴대폰 사진첩의 사진들을 본 순간 허설아의 뺨에서 귓불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손으로 휴대폰을 잡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도대체 뭘 찍은 거야!권지헌의 셔츠를 풀어놓고 엄청 여러 장을 찍었다.취해서 손이 떨렸는지 어떤 사진은 심지어 특정 부위 클로즈업이었다.너무 창피했다.사진들에는 대부분 권지헌 얼굴이 나오지 않아서 그때 권지헌이 어떤 표정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아마 짜증 났을 것이다.전에도 매번 모델을 서달라고 하면 그런 표정이었다.허설아는 머릿속 생각을 지웠다.권지헌의 사진 몇 장을 참고하니 그림 영감이 풍부해져서 금방 그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허설아는 한 장 더 그렸는데 정장 차림으로 무릎을 꿇고 셔츠를 푼 밑그림이었다.다 그리고 나니 허설아 스스로도 만족스러웠다.서둘러 수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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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학교 다닐 때도 권지헌은 손쉽게 어렵고 난해한 문제를 풀 수 있었는데 그건 천부적인 재능이었다.하지만 천재도 산더미 같은 문제를 풀어내며 경험을 쌓아야 했다.허설아가 알기로 권지헌이 여러 대회에서 상을 탈 수 있었던 건 그의 노력의 결과였다.여러 번 권지헌과 외박했을 때에도 권지헌은 공부했고 그때면 허설아는 그림을 그렸다.그때가 두 사람이 지낸 시간 중 가장 조화로웠던 때였다.허설아는 사실 집착하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권지헌과 함께하고 나서는 늘 매 순간 같이 있고 싶었다.예전에도 허설아가 몇 번 잠에서 깼을 때 권지헌은 그때도 공부하거나 일하고 있었다.잠깐 정신을 판 순간 권지헌과 시선이 마주쳤다.허설아는 가방을 메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몰래 빠져나가려던 참이었다.마치 권지헌 집에 1분만 더 있어도 불편해서 견딜 수 없다는 듯 말이다.권지헌이 미간을 찌푸리며 언짢은 듯 말했다."어디 가?""……어젯밤에 실수로 잠들어서 대표님 방해했네요. 지금 갈게요."권지헌이 미간을 찌푸리며 툭 던졌다."이 시간에 어디 가게? 다리 밑에서 거지랑 자리 싸움할 거야?"이 시간에 호텔 가는 것도 낭비였다.출근까지 몇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대중교통도 운행 전이었다. 권지헌이 아는 지금의 허설아라면 24시간 편의점을 찾아 뭐 좀 사먹으며 출근 시간을 기다릴 것 같았다.권지헌의 짐작이 맞았다.의도를 들킨 허설아는 가방 끈을 꼭 잡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남, 남편이 걱정할 거예요."말할수록 자신감이 없어졌다.권지헌이 차갑게 웃었다.새벽의 서재에서 유난히 도드라지게 들린 웃음소리는 두 사람 모두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가서 자."허설아는 움직이지 않았다.권지헌이 고개를 들자 높은 미간이 살짝 치켜 올라갔고 분명 앉아 있음에도 서 있는허설아를 좀 내려다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잠이 안 오면 일해. 오늘 회의에서 네 프로젝트 얘기할 거야."그 프로젝트는 아직 완성하지 못한 부분이 확실히 많았다.하지만 여기서 야근하는 건 좋은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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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이어폰에서 한국어를 하는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형, 누구랑 얘기해? 설마 곧 형수님이 생기는 거야?"권지헌이 고개를 숙이고 품에 웅크린 채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여자를 힐끗 쳐다봤다.지금 소리를 내면 오해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었다.두 사람의 사이를 오해할까 봐서였다. 권지헌의 손은 마치 집게 같아서 허설아가 몇 번이나 벗어나려 했지만 풀리지 않았다.전화기 너머 권지혁은 흥미가 생긴 듯했다.권지헌에게 여자가 없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그래서 박희수는 절에 갈 때마다 항상 권지헌이 빨리 여자를 만나서 빨리 권씨 집안 대를 이었으면 좋겠다고 빌었다.딸이어도 좋으니 권씨 집안 다음 세대의 희망만 보게 해달라고 빌었다.밑에 있는 동생들도 다 권지헌을 따라 배우느라 형이 결혼도 안 해서 본인들도 안 찾는거라고 했다.권호성은 이제 권지헌만 보면 머리가 아팠다.용왕님이라도 찾아서 굿을 하고 싶었다. 권지헌은 강력하게 거부했다.다시는 안 볼 거라고 협박해서야 권호성도 어쩔 수 없이 그만뒀지만 입으로는 계속 재촉했다.권지혁이 신나서 말했다."형, 형수님한테 한마디 하시라고 해!"권지헌이 품 안에서 아예 눈을 감아버린 허설아를 보며 천천히 말했다."부끄러워하네."권지혁이 신난 리트리버처럼 계속 말했다."형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권지혁이고 권씨 집안 셋째예요! 무서워하지 마세요. 저 좋은 사람이에요!"어떤 사람이 자기소개하면서 자기가 좋은 사람이라고 해?권지혁은 어렸을 때부터 홍콩에서 자라서 한국어를 할 때 특유의 억양이 심했다.허설아가 참지 못하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이내 다급하게 입을 막았지만 남는 건 후회뿐이었다.권지혁이 허설아 목소리를 듣고는 더 신이 나서 말했다."형, 여자 친구 있으면서 왜 집에 말을 안 해. 지난주에 큰어머니가 나한테 빨리 여자 친구 찾으라고 재촉했는데 진짜 무서웠어."권지헌의 손가락이 이따금씩 허설아의 허리를 쓰다듬었다.심지어 셔츠 밑단을 들춰 올려 안으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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