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월도 금영의 앞으로 다가와 예를 갖추었다.“원 귀비마마를 뵙사옵니다.”금영은 가볍게 웃었다.“회임한 몸으로 어찌 태자부에서 몸조리를 하지 않고 나왔는가?”배명월이 나직이 대답했다.“어마마마께서 몸이 편찮으시니, 신첩이 당연히 곁에서 병시중을 들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금영은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애초에 두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했으니, 굳이 오래 붙잡고 말을 섞고 싶지도 않았다.금영이 담담하게 말했다.“황후마마를 뵈러 온 것이라면 어서 들어가 보게.”말을 마친 금영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려 걸어갔다.금영의 모습이 이미 한참 멀어졌는데도 태자의 시선은 여전히 그녀의 뒷모습을 좇고 있었다.그 눈빛에 어린 짙은 정은 곁에 서 있던 배명월조차 모른 척할 수 없을 만큼 선명했다.배명월은 손톱으로 제 손바닥을 꾹 눌렀다.낯빛은 갈수록 싸늘하게 굳어졌다.*궁 밖에서는 온갖 풍파가 끊이지 않았지만, 정작 그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는 금영의 소녕전만큼은 늘 고요했다.황제는 하루도 빠짐없이 소녕전에서 밤을 보냈다.림비의 거짓 회임 사건이 서 황후에게까지 얽혀 들어간 뒤로, 비록 서 황후의 소행이라고 단정할 만한 증거가 더 나오지는 않았지만 태후와 서 황후 모두 어느 정도 찔리는 구석이 있었다.당분간은 감히 황제의 심기를 거스를 엄두도 내지 못했다.그 덕에 이제는 누구도 황제에게 다른 처소로 가서 밤을 보내라 권하지 않았다.금영의 나날도 제법 평온하게 흘러갔다.하지만 금영은 알고 있었다.후궁에 진정한 평온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머지않아 또 다른 풍파가 일어날 터였다.어느덧 단오가 찾아왔다.봄이 지나고 한여름으로 접어들면서 궁 안에는 짙푸른 녹음이 우거졌다.단오는 궁에서도 제법 큰 명절이었으니, 으레 한바탕 흥겨운 자리가 마련되곤 했다.그런데 이번 황실 연회는 뜻밖에도 서봉전에서 열리게 되었다.서 황후의 뜻인지, 아니면 현비의 뜻인지는 알 수 없었다.어찌 되었든 금영으로서는 참석하지 않을 수 없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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