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Chapter 1011 - Chapter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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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1화

황제는 찻잔을 흘끗 바라보았다.찻물은 아직 한 모금도 줄지 않은 채 가득 차 있었다.보아하니 여비와 림비도 막 도착한 모양이었다.황제가 웃으며 물었다.“왜 그러느냐? 짐이 괜히 방해한 것이냐?”이어 조금 뜻밖이라는 듯 말을 덧붙였다.“림비야 그렇다 쳐도, 짐은 네가 여비와도 이리 어울릴 수 있을 줄은 몰랐구나.”그 말을 들은 금영은 속으로 생각했다.‘폐하께서 저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면 여비가 까다로운 성정이라는 걸 분명 알고 계셨던 거네. 그런데도 줄곧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셨던 거고.’하지만 이제 금영은 황제가 여비를 총애해서 그녀의 제멋대로인 성정을 받아 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예전에는 황제가 후궁의 일에 애초부터 아무런 관심이 없었거나, 아니면 따로 이유가 있었을 터였다.금영이 나긋하게 말했다.“신첩은 귀비이니, 후궁의 비빈들과 원만히 지내며 본을 보여야 하지 않겠사옵니까.”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법 온화하던 황제의 표정이 그 말을 듣는 순간 서늘하게 가라앉았다.“참으로 사려가 깊구나.”금영이 입궁하기 전까지만 해도 황제가 가장 흡족해했던 것은 분수를 알고 사려 깊은 궁비였다.그런데 지금은 달랐다.금영이 이렇듯 흠잡을 데 없이 처신하는 모습을 보니, 도리어 이유를 알 수 없는 짜증이 가슴속에서 치밀었다.금영은 과연 진심으로 자신을 대하고 있는 것일까.그 말을 끝으로 황제는 괜스레 마음이 뒤숭숭해져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 버렸다.황제가 들어왔다가 나가는 데는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해수가 다과를 들고 돌아왔을 때는 마침 황제가 소매를 떨치며 자리를 떠나는 모습이 보였다.해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마마, 폐하께서 벌써 가셨사옵니까?”금영 역시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자신이 딱히 잘못 말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멀쩡하던 황제가 어째서 갑자기 토라진 사람처럼 가 버린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린 금영은 해수가 가져온 복숭아꽃 과자로 시선을 돌렸다.하나를 집어 살짝 베어 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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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2화

이전은 이미 방 안에 들어와 있었다.서 황후의 말을 들은 이전이 얼른 비위를 맞추듯 말했다.“마마, 복안 내관이 직접 모시러 왔으니 틀림없사옵니다. 게다가 소인이 듣기로는 오늘 폐하께서 지란원에 들르셨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심기가 불편하신 채 자리를 뜨셨다고 하옵니다. 필시 원 귀비마마께서 폐하의 심기를 거스른 것이옵니다.”그 말을 듣자 서 황후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불안이 순식간에 가셨다.입가에는 어느새 기쁜 기색까지 번졌다.“분명 폐하께서 어제 림비의 거짓 회임 사건을 더는 추궁하지 않으시니, 원 귀비가 심통을 부리다가 폐하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야.”환옥이 웃으며 맞장구쳤다.“원 귀비마마께서는 어찌 아시겠사옵니까. 마마와 폐하께서는 젊은 시절부터 함께해 온 부부이시니, 그 정이 어찌 다른 사람과 같겠사옵니까.”조씨도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이야말로 더없이 좋은 기회이옵니다. 오늘만큼은 폐하의 마음을 다시 마마께로 돌려놓으셔야 하옵니다.”그 말을 들은 서 황후가 곧바로 명했다.“본궁의 옷을 갈아입혀라!”이번에는 잠자리에 들기 위한 옷이 아니었다.서 황후는 빛깔이 화사한 선홍빛 봄옷으로 갈아입고, 일부러 평소보다 한층 젊어 보이도록 치장했다.뒷모습만 보자면 열여섯 꽃다운 처녀라 해도 믿을 만큼 고왔다.손복안도 서두르지 않고 서 황후가 치장을 마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렸다.다행히 서 황후 역시 황제를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에 오래 꾸미지는 않았다.마침내 화사한 얼굴로 손복안의 안내를 받아 황제를 만나러 나섰을 무렵, 금영에게도 그 소식이 전해졌다.그때 금영은 아기 황자를 품에 안고 달래고 있었다.밖에서 들어온 해수는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이며 금영의 눈치를 살폈다.금영이 그런 해수를 보고 물었다.“무슨 일이냐?”해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마마, 폐하께서 황후마마를 청풍각으로 부르셨사옵니다.”황제가 사람들을 이끌고 춘산 사냥터로 온 뒤, 후궁의 비빈들에게는 저마다 머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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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3화

해 질 무렵이었다.날은 이미 어스름해지고 있었지만 방 안의 촛불은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아 사방이 어둑했다.하지만 서 황후의 눈에는 오히려 그 희미한 촛빛이 따스하게 느껴졌다.방 안에 흐르는 공기마저 어딘가 아련하고 은근한 정취를 머금은 듯했다.서 황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그녀는 천천히 황제에게 다가갔다.황제가 미처 돌아보기도 전에 서 황후는 뒤에서 두 팔을 뻗어 황제를 끌어안았다.황제의 등에 뺨을 기대며 나직이 말했다.“폐하, 오늘 신첩을 불러 주셔서…… 신첩은 참으로 기쁘옵니다.”그러나 돌아오는 황제의 목소리에는 옅은 냉기가 서려 있었다.“그리 기쁜가?”서 황후는 더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신첩이 폐하와 이렇게 단둘이 시간을 보낸 지도 참 오래되었사옵니다. 어찌 기쁘지 않겠사옵니까.”잠시 뜸을 들인 그녀가 더욱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폐하…… 오늘은 신첩이 곁에서 정성껏 모시게 해 주시겠사옵니까?”하지만 서 황후가 더 움직이기도 전이었다.황제가 그녀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힘이 어찌나 강한지 서 황후는 순식간에 뒤로 떼어졌다.뜻밖의 움직임에 그녀의 얼굴에 순간 당혹감이 스쳤다.간신히 몸을 바로 세운 서 황후가 불안한 눈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폐하? 혹 심기가 불편하시옵니까? 원 귀비가 폐하의 심기를 거슬렀사옵니까?”그녀는 황제의 안색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원 귀비는 아직 나이도 어리고 궁중의 법도에도 익숙하지 않사옵니다. 폐하의 총애를 믿고 조금 제멋대로 굴며 폐하께 제 뜻을 따라 달라 한들 이상한 일도 아니옵니다…… 부디 너무 마음에 두지는 마시옵소서.”황제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듯 서 황후를 한번 바라보았다.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황후는 참으로 귀가 밝군.”서 황후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그제야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황제는 후궁 사람들이 자신의 행적을 캐묻고 엿보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서 황후가 황급히 변명했다.“신첩이 일부러 알아보려 한 것은 아니옵니다. 그저 폐하께서 난초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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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4화

황제는 서 황후를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짐이 어제 그 자리에서 이 일을 바로 처결하지 않은 것은, 누가 꾸민 짓인지 몰라서가 아니네. 태자의 체면을 조금이나마 지켜 주고 싶었기 때문이지.”황제의 목소리가 더욱 싸늘해졌다.“조정의 신하들이 황후가 이토록 깊은 계략을 꾸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태자가 무슨 낯으로 그들 앞에 서겠는가?”그제야 서 황후의 머릿속이 완전히 맑아졌다.‘폐하께서 오늘 나를 부르신 건 옛정을 되새기기 위해서가 아니었어.’‘처음부터 나를 문책하려고 부르신 거야!’서 황후는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혔다.눈시울을 살짝 붉혀 한층 억울하고 가련해 보이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폐하, 이번 일이 수상한 것은 신첩도 인정하옵니다. 하지만 그저 수상하다는 이유만으로 신첩이 꾸민 일이라 단정하실 수는 없사옵니다!”서 황후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신첩에게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 하여도, 원 귀비 역시 림비가 실제로 회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지 않았사옵니까? 그렇다면 원 귀비에게는 아무런 의심도 가지 않으시는 것이옵니까?”이 와중에도 금영을 끌어들이려는 말을 듣자 황제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방자하구나!”황제의 눈빛이 얼음처럼 식었다.“그 일은 짐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황후는 짐에게도 의심할 구석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서 황후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신첩이 어찌 감히 그런 뜻을 품겠사옵니까.”황제가 냉랭하게 말했다.“감히 못 한다고?”그의 입가에 싸늘한 기색이 스쳤다.“짐이 보기에는 못 할 일이 없어 보이는군.”그 말을 듣는 순간 서 황후의 마음도 차갑게 식었다.그녀는 황제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폐하께서는 아무런 증거도 없이 신첩에게 이 일을 인정하라 하시옵니다. 신첩은 받아들일 수 없사옵니다!”이번만큼은 서 황후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오히려 황후라는 자리에 걸맞은 기개와 위엄이 얼굴에 서렸다.황제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런 서 황후를 바라보았다.“끝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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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5화

금영은 얼떨결에 우산을 받아 들었다.바로 그 순간, 황제가 느닷없이 허리를 숙여 금영을 품에 안아 들었다.금영의 몸이 가볍게 떠오르자 황제가 낮게 말했다.“짐이 황후를 찾은 것은 그저 분명히 해 둘 일이 있어서였다. 금영아, 그 일로 질투할 필요 없다.”그 말을 듣는 순간, 어째서인지 금영의 가슴을 답답하게 짓누르던 것이 조금은 사라지는 듯했다.금영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폐하께서 말씀하시려던 일은 다 말씀하셨사옵니까?”황제가 눈을 가늘게 떴다.“아직이다.”본래 황제는 서 황후에게 마지막 체면 정도는 남겨 줄 생각이었다.그래도 이십 년을 함께한 부부였다.서 황후가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행궁으로 물러나겠다고 청했다면, 황제 역시 그녀에게 최소한의 체면을 남겨 주고 황후의 자리까지 거두지는 않을 생각이었다.하지만 서 황후는 그 체면마저 원하지 않는 모양이었다.금영이 황제의 품에 안겨 지란원으로 돌아왔을 무렵에는 바람도 빗줄기도 한층 거세져 있었다.그 시각 서 황후는 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빗속을 걷고 있었다.빗줄기가 굵어지자 비틀거리던 그녀는 결국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오늘 황제가 자신을 부른 것은 오랜 정을 되새기기 위해서인 줄 알았다.하지만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정반대였다.황제는 오늘 그녀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던졌다.환옥이 황급히 달려와 서 황후를 일으키려 했다.하지만 서 황후는 거칠게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환옥은 곁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불렀다.“마마,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사옵니까?”서 황후의 목소리는 처연하기 그지없었다.“폐하께서…… 폐하께서 결국 황후를 폐위할 생각을 품으셨어……”비록 황제가 오늘 대놓고 그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하지만 그 뜻을 서 황후가 어찌 모르겠는가.림비의 일만큼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처리했다고 자신했다.그런데도 황제는 더 이상 그녀를 믿지 않았다.황후의 자리에 오른 지 이십 년.황제가 이런 생각을 품은 것은 처음이었다.서 황후에게는 결코 가벼운 충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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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6화

금영은 속에 남은 화를 꾹 눌러 참고 있었다.그러다 어째서인지 갑자기 심술이 치밀었다.금영은 황제를 바라보다가 몸을 숙여 그의 목덜미를 덥석 깨물었다.다른 누군가가 감히 이런 짓을 했다면 구족이 멸할 대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물론 다른 사람에게는 애초에 황제의 목덜미를 깨물 기회조차 없겠지만.막상 깨물고 나자 금영은 곧바로 후회가 밀려왔다.‘내가 너무 심했나?’하지만 황제는 화를 내기는커녕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금영아,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는다면 몇 번 더 물어도 괜찮다.”감히 우러러보기조차 어려운 황제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달래고 있으니, 금영에게 남아 있던 화도 어느새 눈 녹듯 사라졌다.금영은 조심스럽게 황제의 목덜미를 만져 보았다.정말 황제를 물어 죽일 생각은 아니었기에 중요한 혈맥은 피했고 힘도 많이 주지 않았다.그런데도 목덜미에는 제법 큼지막한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고, 살갗에는 핏방울까지 살짝 배어 나왔다.그 모습을 보자 금영은 더욱 후회가 되었다.손끝으로 상처 난 곳을 살며시 어루만지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폐하, 많이 아프시옵니까?”사실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하지만 금영이 저토록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자 황제는 갑자기 숨을 들이켰다.“읏!”그러고는 애써 태연한 척 말했다.“아프지 않다. 정말 조금도 아프지 않다.”만약 위명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아마 한마디 하지 않고는 못 배겼을 것이다.‘지난번에는 화살이 폐하의 어깨뼈를 관통했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슴팍 살이 크게 찢어졌을 때도 군의가 바늘과 실로 상처를 꿰매는데 아무 말 없이 버티셨고요.’금영이 문 자국쯤은 모기에게 물린 것과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그런데 황제는 유난히 엄살을 부리고 있었다.효과는 확실했다.금영은 조금 전까지 화를 내던 것도 잊은 채 상처가 아플까 싶어 황제의 목덜미에 살살 바람을 불어 주었다.그 모습을 본 황제의 입가에 은근한 미소가 번졌다.금영의 숨결에는 은은하고 맑은 향이 배어 있었다.그 숨결이 목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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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7화

서 황후는 낯빛을 굳힌 채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사내는 제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내리는 서 황후의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웃었다.“마마께서 원하신 일이니, 신이 마마의 뜻대로 해 드리겠사옵니다.”사내가 물러간 뒤.서 황후가 굳은 얼굴로 명했다.“가위를 가져오너라.”환옥이 곧 가위를 가져왔다.그러자 서 황후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방금 그 사내의 손이 닿았던 머리카락을 잘라 버렸다.환옥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마마, 어찌 이러시옵니까……”서 황후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오직 서늘한 냉기만이 감돌았다.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마음속에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그 사람이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었다.자신이 그의 정실이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그런데 이제 황제는 배금영 그 천한 것 때문에 자신을 폐위할 생각까지 품었다.누구도 그녀의 곁에서 황제를 빼앗아 갈 수 없었다.감히 그런 사람이 있다면.서 황후는 그 사람을 없애 버릴 뿐이었다.*그날 황제와 서 황후 사이에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금영도 자세히 알지 못했다.다만 그날 이후 서 황후는 혼이라도 빠져나간 사람처럼 지냈다.병세도 갈수록 심해졌다.결국 어느 날 황실 연회가 끝난 뒤에는 스스로 먼저 궁으로 돌아가 병을 돌보겠다고 청하기까지 했다.황제와 서 황후 사이에는 이미 깊은 틈이 벌어진 뒤였다.황제 역시 서 황후를 마주하고 싶어 하지 않았으니, 그녀가 떠나겠다는데 굳이 붙잡을 이유도 없었다.그렇게 며칠이 눈 깜짝할 새 흘렀다.이날 저녁 현비가 연회를 마련했다.이제 곧 춘산 사냥터를 떠나게 되었으니, 신하들과 함께하는 큰 연회와는 별도로 황실 식구들끼리 조촐하게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이었다.황실 식구들끼리의 자리라고는 해도, 실상 초대된 사람은 후궁의 비빈들과 황자들이 전부였다.황제는 아직 처리하지 못한 일이 남아 있어 사람을 보내 금영에게 먼저 가 있으라 전했다.자신은 일을 마치는 대로 뒤따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이에 금영은 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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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8화

지란원.금영은 독사에게 물리지는 않았지만, 조금 전과 같은 일이 벌어진 이상 황제가 그대로 가족 연회를 이어 갈 리 없었다.현비는 황제의 곁에 무릎을 꿇고 불안한 얼굴로 죄를 청했다.“폐하, 모두 신첩의 불찰이옵니다. 신첩이 미처 세심하게 살피지 못하여 원 귀비마마를 놀라게 하였사옵니다.”황제가 싸늘하게 되물었다.“놀라게 했다고?”고작 놀란 것으로 끝난 일이었던가.당연히 아니었다.금영은 조금 전 일을 떠올리기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졌다.그때 손복안이 밖에서 들어왔다.황제가 차갑게 물었다.“어찌 되었느냐?”손복안이 곧바로 아뢰었다.“폐하, 말라 죽은 나무 속에 왕코브라의 알이 있었사옵니다. 모닥불을 피우는 과정에서 알이 상한 듯하옵니다. 이 뱀은 제 둥지를 건드리면 몹시 사납게 달려드는 습성이 있사옵니다.”손복안은 잠시 뜸을 들였다.“그나마 원 귀비마마께서 물리지 않으셔서 천만다행이옵니다. 만약 물리셨더라면……”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정황만 놓고 보면 우연한 사고처럼 보였다.현비에게 특별한 잘못이 있다고 하기도 어려웠다.하지만 황제는 결국 벌을 내렸다.“궁으로 돌아간 뒤 한 달 동안 근신하라.”현비의 얼굴에 오히려 안도하는 기색이 스쳤다.“폐하의 너그러우신 처분에 감사드리옵니다.”금영은 다친 곳 하나 없었지만, 그날 밤 내내 악몽에 시달렸다.황제는 안쓰러운 마음에 밤새 금영의 곁을 지켰다.그런데도 다음 날 금영의 얼굴은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결국 황제는 환궁을 명했다.하지만 금영 일행이 궁에 돌아가기도 전에 춘산 사냥터에서 벌어진 일은 이미 서 황후의 귀에 들어가 있었다.환옥의 보고를 다 들은 서 황후가 싸늘하게 말했다.“여비가 쓸데없이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배금영 그 천한 것은 이미 목숨을 잃었을 텐데.”잠시 뒤 그녀의 입가에 차가운 웃음이 떠올랐다.“그래도 그자가 본궁에게 약속했으니, 이번에 실패했다고 해서 걱정할 것은 없어. 다음번에는 반드시 그 천한 것을 죽일 수 있을 테니까.”환옥이 놀란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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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9화

태후는 그 모습을 보고 얼굴을 굳혔다.“황후가 덕을 잃었다고요? 황후가 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덕을 잃었다는 것이옵니까?”황제가 되물었다.“어마마마께서 이미 알아보신 것 아니옵니까?”태후가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림비의 일을 말하는 것이옵니까? 황제, 그 일은 황후가 한 짓이 아닙니다!”태후는 곧이어 황제를 똑바로 바라보며 따져 물었다.“더구나 황제는 림비가 실제로 회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도 일부러 밝히지 않았지요. 배금영을 위해 결발지처인 황후에게까지 함정을 파려 한 것이옵니까?”황제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렸다.“황후에게 애초에 남을 해칠 마음이 없었다면, 림비가 진짜 회임했든 거짓 회임했든 무슨 상관이 있겠사옵니까?”황제는 눈을 가늘게 뜨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지금 중요한 것은 그 일이 정말 황후의 짓이었는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옵니다.”목소리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짐은 그저 황후가 덕을 잃었고, 더는 황후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길 뿐이옵니다.”태후의 얼굴이 굳었다.“황제, 선대의 유훈을 잊으시면 아니 됩니다. 아무런 명분도 없이 황후를 폐위해서는 아니 됩니다!”태후의 태도는 더없이 단호했다.“더구나 나 역시 황후를 폐위하는 것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황제는 태후를 잠시 바라보다가 낮게 말했다.“어마마마 말씀이 옳사옵니다. 명분 없이 황후를 폐위할 수는 없사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황후가 언행을 삼가지 않는다면……”황제가 희미하게 웃었다.하지만 눈에는 한 점 웃음기도 없이 차가운 기색만이 가득했다.서 황후는 고개를 숙였다.“폐하, 이번 일에 대해서는 신첩도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모르겠사옵니다. 하지만 신첩이 약조드리겠사옵니다. 앞으로는 결코 황후의 체면을 손상시킬 만한 일은 하지 않겠사옵니다.”서 황후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하지만 황제는 차갑게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이내 소매를 떨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떠나 버렸다.서 황후의 말을 과연 얼마나 마음에 담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황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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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0화

금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기 황자를 품에 안고 잠시 달래 주었다.그러다 여비를 바라보며 물었다.“여비도 자세히 한번 보겠는가?”여비는 뜻밖이라는 듯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귀비마마께서 금이야 옥이야 아끼시는 아기 황자님을 신첩이 어찌 감히 자세히 보겠사옵니까. 괜히 보다가 탈이라도 나면 목숨이 여덟 개라도 모자랄 것이옵니다.”여비는 입만 열면 귀비마마라 꼬박꼬박 높여 불렀다.말투만 놓고 보면 더없이 공손했지만, 정작 하는 말은 사람 속을 뒤집어 놓기 일쑤였다.금영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하지만 여비가 몇 번이나 도와주지 않았다면, 염아도 오늘 이렇게 무사히 내 품에 있지 못했을 것이네.”여비는 한동안 아기 황자를 바라보다가 결국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공교롭게도 바로 그때였다.아기 황자도 작은 손을 뻗어 여비의 손가락을 살며시 움켜쥐었다.아이의 보드라운 손에 손가락이 잡힌 순간, 여비의 눈시울이 갑자기 붉어졌다.그녀는 얼른 고개를 들어 천장을 한번 바라보더니 이내 못마땅한 듯 퉁명스럽게 말했다.“얼른 데려가시옵소서. 신첩은 아이를 가장 싫어하옵니다.”금영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아이를 싫어했다면, 폐하께 받은 하사품이며 궁에서 매달 나오는 녹봉까지 모조리 내어 궁 밖에 제세당을 세우지는 않았겠지.”이른바 제세당은 갈 곳 없는 고아들을 거두어 보살피기 위해 세운 곳이었다.금영도 불과 며칠 전에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러니 예전 여비가 늘 독한 말을 내뱉어도 황제가 그녀의 본성만은 선하다고 여겼던 것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여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신첩이 아무리 많은 선행을 한다 한들, 신첩의 아이는 돌아오지 않사옵니다.”잠시 말을 멈췄던 여비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 아이가 살아 있었다면 지금쯤 아홉 살이 되었을 것이옵니다. 이제는 신첩을 모비마마라 부를 나이였겠지요.”금영은 잠시 여비를 바라보다가 물었다.“여비는 궁에서 그토록 오래 지냈는데도, 정말 그때 일이 그저 우연이었다고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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