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Chapter 1001 - Chapter 1010

1103 Chapters

제1001화

“하지만 이대로 금영이 억울한 누명을 쓰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잖아!”맹운산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눈빛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 도무지 그 나이 또래의 소년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서늘한 기세였다.유진설이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그래. 그럼 가.”하지만 정작 맹운산은 발이 땅에 붙기라도 한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가고 싶었다.당장이라도 금영의 앞을 막아서고 싶었다.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그 역시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나선다 한들 금영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더 큰 골칫거리만 안겨 줄 뿐이었다.맹운산의 두 눈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눈빛 깊은 곳에는 짙은 낙담이 어려 있었다.그때 태자가 두 손을 맞잡아 예를 갖춘 뒤 입을 열었다.“아바마마, 소자가 원 귀비마마의 결백을 보증하겠사옵니다. 이번 일은 결코 원 귀비마마와 관련이 없사옵니다!”현비는 뜻밖이라는 듯 태자를 바라보다가, 이내 서 황후에게 시선을 옮겼다.서 황후는 여전히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은 이미 시퍼렇게 굳어 있었다.서 황후가 싸늘하게 꾸짖었다.“태자! 허튼소리 하지 말거라!”황제는 태자에게 시선을 돌렸다.얼굴에는 노기가 역력했다. 금세라도 벼락이 떨어질 듯 살벌한 기세가 감돌았다.그러나 태자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아바마마, 소자는 원 귀비마마와 오랜 세월 알고 지냈사옵니다. 그분이 어떤 사람인지 소자가 잘 아옵니다. 원 귀비마마께서는 절대로 남을 해칠 분이 아니옵니다!”금영은 태자를 바라보며 눈에 짙은 의문을 띠었다.‘이 와중에…… 태자가 나를 믿는다고?’‘예전에는 내가 배명월과 처음 만나 조금만 부딪쳐도, 번번이 내가 배명월을 해치려 했다고 여겼잖아.’‘그런데 이제 와서 나를 믿는다고?’‘우습지도 않나?’옆에 있던 이황자는 일이 아직 덜 시끄럽기라도 한 듯 한마디를 보탰다.“그렇사옵니다, 아바마마. 형님과 원 귀비마마께서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정이 있으니, 서로를 잘 아실 수밖에 없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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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2화

황제는 금영을 바라보았다.차갑기만 하던 두 눈에 오직 금영만이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옅은 온기가 스며들었다.모두의 시선이 황제에게 쏠렸다.서 황후의 눈에는 기대가 가득했고, 현비는 무언가를 곰곰이 헤아리는 눈치였다.여비마저도 어딘가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황제가 과연 이 일을 어떻게 처결할지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황제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본 뒤 다시 금영에게 시선을 돌렸다.이윽고 낮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금영에게 무슨 죄가 있다는 것이냐?”그 한마디에 서 황후의 얼굴에 떠올랐던 기대가 순식간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과 실망으로 바뀌었다.‘폐하께서 배금영을 감싸시겠다는 건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폐하께서는 늘 현명하신 분이거늘, 설마 배금영 하나 때문에 어리석은 군주라는 오명까지 감수하시겠다는 말인가?’금영은 황제의 눈빛에 담긴 한없는 너그러움을 느끼고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분명 알고 있었다.감정만큼 믿기 어려운 것도 없다는 것을.하물며 황실에서는 더더욱 그랬다.그런데도 가끔은 이 마음에서 도망칠 길이 없는 것만 같았다.금영은 살며시 눈을 내리깔았다.더는 황제와 눈을 마주칠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때 서 황후가 황제를 향해 두 손을 모아 예를 갖추며 말했다.“폐하! 신첩도 폐하께서 원 귀비를 총애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하지만 원 귀비가 정말 림비의 뱃속에 있던 아이를 해친 것이라면 이는 결코 가벼이 넘길 죄가 아니옵니다!”서 황후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신첩이 외람되오나 청하옵니다. 부디 이 일을 엄히 다스리시어 후궁의 기강을 바로잡고, 다시는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본보기를 세워 주시옵소서!”신하들의 눈에 지금의 서 황후는 황제를 위해, 나라와 사직을 위해, 대의를 지키기 위해 황권에 맞서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 현명한 황후처럼 보였다.곧 적지 않은 신하들이 잇따라 무릎을 꿇었다.그중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비록 후궁 안에서 벌어진 일이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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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3화

“그리고 림비, 아이를 잃고도 아무 할 말이 없는 것이냐?”옥비가 림비를 바라보며 물었다.금영은 그런 옥비를 힐끗 바라보더니 가볍게 비웃었다.“옥비는 참으로 다급한 모양이군. 아이를 잃은 사람이 옥비라도 되는 듯하니 말이야. 대체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어.”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황제의 시선이 옥비에게 향했다.옥비는 흠칫 놀라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신첩은…… 신첩은 그저 걱정되어서…… 황자께서 걱정되어 그랬을 뿐이옵니다.”옥비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어찌 되었든 원 귀비마마께서 림비마마의 뱃속에 아이가 없었다고 말씀하시는 것만으로는 모두를 납득시키기 어렵사옵니다!”서 황후도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폐하, 이는 결코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옵니다. 림비가 회임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사옵니다. 게다가 오늘 이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유산까지 하였는데…… 이 일을 원 귀비의 말 한마디만으로 덮을 수는 없사옵니다. 부디 폐하께서……”서 황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황제가 싸늘한 목소리로 꾸짖었다.“황후, 그만하게! 짐은 단 한 번도 림비를 품은 적이 없네. 그런데 그 뱃속에 대체 어디서 황자가 생겼단 말인가?”앞서 금영이 림비의 뱃속에 아이가 없었다고 말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그녀가 죄를 벗기 위해 마지막 발버둥을 치는 것이라 여겼다.하지만 지금 황제의 입에서 직접 이런 말이 나오자 모두가 놀란 눈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그 누구도 쉽게 믿지 못하는 기색이었다.서 황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폐하께서는…… 림비를 한 번도 품지 않으셨다는 말씀이시옵니까?”황제가 차갑게 웃었다.“지금 짐을 의심하는 것인가?”“하지만 폐하께서는 분명 유광재에서 밤을 보내셨고, 게다가…… 물도 세 번이나 들이라 하셨사옵니다.”서 황후가 다급히 반박했다.‘폐하께서 배금영 저 천한 것을 감싸기 위해 황제의 신분으로 거짓말까지 하신다는 건가?’금영이 나직이 웃었다.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또렷하게 울렸다.“폐하께서 유광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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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4화

서 황후에게서는 조금 전의 서슬 퍼런 기세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창백해진 얼굴로 그녀가 입을 열었다.“신첩이…… 신첩이 림비가 회임한 줄로만 알고 황자를 염려한 나머지 경황이 없어…… 그만 원 귀비를 오해하고 말았사옵니다.”거기까지 말한 서 황후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금영을 바라보았다.“원 귀비, 모두 본궁의 잘못이야. 원 귀비는 본래 사려가 깊으니 본궁을 탓하지는 않겠지?”금영도 미소를 지었다.“황후마마께서는 중궁의 주인이시옵니다. 이번 일도 후궁의 비빈들을 염려하시어 그러신 것이니, 신첩이 어찌 마마를 탓하겠사옵니까?”금영이 웃는 낯으로 황제에게 말했다.“폐하께서도 황후마마를 너무 나무라지 마시옵소서.”그 말을 들은 서 황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금영이 현숙한 척하느라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일을 더 키울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그렇다면 자신도 이 일에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서 황후가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원 귀비의 너그러운 마음에 감사하네.”그녀는 슬며시 황제의 안색을 살폈다.황제가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서 황후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려 했다.바로 그때, 맑으면서도 어딘가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폐하, 신첩이 보기에는 황후마마께서 누군가에게 현혹되신 듯하옵니다. 마땅히 일을 꾸민 장본인을 밝혀 엄히 다스리고 본보기로 삼아야 하옵니다!”말을 꺼낸 이는 여비였다.모두의 시선이 여비에게 쏠리자, 그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황후마마께서 원 귀비를 오해하신 것도 애초에 림비가 거짓 회임을 꾸몄기 때문 아니옵니까! 그러니 엄히 벌해야 할 사람은 림비이옵니다!”“후궁의 법도에 따르면 거짓 회임으로 총애를 다투려 한 죄는 구족을 멸해도 부족하지 않사옵니까!”여비는 원래 입이 매서운 사람이었다.그녀의 입에서 이 정도 독설이 나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예전 여비가 금영을 헐뜯고 저주할 때만 해도 서 황후는 속으로 통쾌해했다.하지만 지금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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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5화

“신첩은 이것이 황후마마의 뜻인 줄 알았사옵니다. 감히 거역할 수 없어 회임한 척할 수밖에 없었사옵니다.”림비는 억울하다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이쯤 되자 서 황후도 어찌 모르겠는가.자신은 또다시 금영이 파 놓은 덫에 걸려든 것이었다!‘배금영 저 천한 것이! 림비가 갑자기 회임했다고 했던 그날부터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으면서도, 모르는 척 나와 함께 이 연극을 벌였어!’‘나를 완전히 바보 취급한 것이야!’아니었다.서 황후를 바보로 만든 사람은 금영 하나만이 아니었다.또 한 사람이 있었다.서 황후는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황제를 바라보았다.황제의 얼굴은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금영과 림비가 손을 잡고 자신을 함정에 빠뜨렸다 치자.그렇다면 황제는?황제는 어째서 진작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단 말인가.황제가 처음부터 림비를 품은 적이 없다고 분명히 밝혔더라면, 서 황후가 어찌 림비에게 거짓 회임을 꾸미게 했겠는가.하지만 지금의 서 황후는 감히 황제에게 그 이유를 따져 물을 수 없었다.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억지로 삼키는 수밖에 없었다.그때 금영이 가볍게 웃었다.“신첩도 황후마마께서 결백하시리라 믿사옵니다. 하지만 림비가 스스로 거짓 회임을 꾸민 것이 아니라면, 그 뱃속에 있다는 있지도 않은 아이는 대체 누가 만들어 낸 것이옵니까?”조금 전까지의 소란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주변은 지나치리만큼 고요해졌다.황제는 언제라도 터져 나올 듯한 노기를 억누른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서 황후를 빤히 바라보았다.“황후, 아무 할 말도 없는가?”황제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아무리 눈치가 둔한 태자라 해도 이제는 상황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금영은 혐의를 벗었다.하지만 그 대신 자신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어마마마가 이 일에 휘말리고 있었다.태자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아바마마, 이는 그저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옵니다. 어마마마께서는 본래 어질고 선하신 분이옵니다. 림비와 황자를 염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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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6화

서 황후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확실한 증거가 없는 이상, 이 일에 서 황후가 연루되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금영은 조금 전까지 가장 앞장서서 소란을 피우던 내관 유위를 바라보았다.황제는 곧바로 금영의 뜻을 알아차렸다.“저자를 끌고 오너라!”차가운 명이 떨어졌다.그 순간 유위가 돌연 혀를 깨물었다.사람들이 달려가 붙잡기도 전에 그의 고개가 힘없이 옆으로 꺾였다.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다.위명이 다가가 상태를 살핀 뒤 말했다.“치아 안에 독을 숨겨 두었습니다.”금영은 눈살을 찌푸린 채 서 황후를 바라보았다.역시 서 황후였다.뒤에 마련해 둔 수단마저 잔인하고 빈틈이 없었다.하지만 유위가 이렇게 죽어 버린 이상, 이제 누구도 이 모든 일을 단순한 우연이라 여기지는 않을 터였다.누가 보아도 금영을 노리고 꾸민 음모였다.유위가 죽은 것을 확인한 서 황후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나 황제의 얼굴에는 점점 더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금영은 다시 서 황후를 바라보았다.그 얼굴에는 서 황후의 죄를 당장 밝힐 수 없게 된 것에 대한 아쉬움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서 황후는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가면 자신이 이긴 것이라 생각하는 걸까?그럴 리가.황제는 이미 서 황후를 전보다 훨씬 깊이 의심하고 있었다.지금 황제가 서 황후를 바라보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증거가 없다 해도 황제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서 황후에게 죄를 물은 것이나 다름없었다.황제의 마음은 때로 사건의 진상보다 더 중요했다.금영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폐하, 바람이 차가워졌사옵니다…… 지금 당장 더 살핀다 해도 별다른 실마리를 얻기는 어려울 듯하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 쉬시옵소서.”가슴속에 분노를 누르고 있던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매를 거칠게 떨치고 돌아섰다.서 황후의 곁을 지나던 순간, 황제의 발걸음이 잠시 멎었다.그녀를 내려다보는 눈에는 서늘한 냉기만이 가득했다.서 황후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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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7화

현비가 입을 열었다.“본궁은 원래 황후가 원 귀비에게 누명을 씌우는 데 성공하기를 기다렸다가, 배금영이 죽고 난 뒤에 이 일을 밝혀낼 생각이었어……”현비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꼼짝없이 빠져나갈 길 없는 판인 줄 알았는데, 배금영도 제법 수완이 좋더구나. 도리어 황후에게 이토록 큰 타격을 안겼으니.”요영지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그게 무슨 큰 타격입니까? 결국 황후마마께서 하신 일이라는 증거도 나오지 않았잖습니까.”현비가 희미하게 웃었다.“설마 폐하께서 이 일이 황후와 관련 있다는 생각조차 못 하시겠느냐? 증거가 나오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폐하께서 황후를 어떻게 보시느냐는 것이지.”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천천히 덧붙였다.“폐하께서 황후가 더는 중궁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기시는 순간, 우리에게도 기회가 오는 거야.”이황자가 감탄하듯 말했다.“오늘 모비마마께서 원 귀비마마의 편을 들어 주신 것도 참으로 절묘한 수였사옵니다.”그 말을 들은 현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얼굴에는 만족스러운 웃음이 번졌다.서 황후는 걸음을 재촉해 누구보다 먼저 거처로 돌아왔다.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생각할 겨를도 없이 탁자를 거칠게 뒤엎었다.탁자 위에 놓여 있던 물건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쏟아졌다.서 황후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느라 온몸을 떨었다.당장이라도 금영에게 달려가 살점이라도 물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잠시 뒤 태자가 밖에서 들어왔다.그리고 눈앞의 광경을 보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서 황후는 머리가 헝클어진 채 서 있었고, 방 안은 온통 난장판이었다.태자가 언제 이런 모습의 서 황후를 본 적이 있었겠는가.그는 깜짝 놀라 외쳤다.“어마마마!”서 황후는 태자를 바라보다가 돌연 차갑게 웃었다.“태자! 오늘 그 많은 사람 앞에서 그 천한 것을 감싸고 나설 때, 본궁이 네 어마마마라는 생각은 조금이라도 했느냐?”태자의 안색이 미묘하게 변했다.“어마마마! 소자도 어마마마께서 화가 나신 것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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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8화

마침 그때, 서 황후가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곧 선혈 한 모금이 입가로 흘러나왔다.태자는 그 모습을 보고 순간 굳어 버렸다가 황급히 서 황후를 부축했다.목소리에도 걱정이 묻어났다.“어마마마.”서 황후는 태자를 바라보았다.눈빛에는 깊은 상심이 어려 있었다.“네 아바마마가 본궁을 의심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그런데 너마저……”태자 역시 줄곧 의아했다.평소 어질고 현숙하던 서 황후가 어째서 갑자기 금영을 그토록 몰아붙였는지 이해되지 않았다.그런데 서 황후가 이토록 상심한 모습을 보자 마음 한구석에 죄책감이 일었다.“어마마마, 소자가 잘못했사옵니다. 소자가 어마마마를 의심해서는 아니 되었사옵니다.”잠시 말을 고르던 태자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다만 오늘 일에 정말 누군가 손을 쓴 것이라면, 그 사람이 금영일 리는 없사옵니다…… 어마마마께서도 금영을 오해하지 말아 주시옵소서.”서 황후가 이제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지금 이 순간에도 태자 앞에서 금영의 흉을 본다면, 태자가 또다시 자신에게 등을 돌릴지도 몰랐다.서 황후는 가슴을 누른 채 거친 숨을 천천히 가라앉혔다.그러고는 힘겹게 말했다.“오늘은 본궁이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경솔하게 굴었구나. 이제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보니, 대체 누가 본궁과 금영 사이를 갈라놓으려 한 것인지부터 살펴야겠어.”태자는 그제야 길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역시 어마마마께서는 현명하시옵니다. 이번 일은 분명 현 귀비의 소행일 것이옵니다!”태자가 목소리를 낮추어 당부했다.“어마마마, 부디 그 여인의 계략에 넘어가지 마시옵소서.”서 황후는 눈앞의 태자를 바라보다가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되었다. 본궁이 조금 피곤하구나. 너도 돌아가 쉬거라.”태자는 서 황후의 지친 안색을 살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어마마마, 태의를 불러 진맥이라도 받으시는 것이 좋지 않겠사옵니까?”서 황후는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본궁의 몸은 본궁이 가장 잘 안다. 그만 가 보거라.”그제야 태자는 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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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9화

서 황후의 폐립은 황제가 가볍게 던진 한마디로 당장 결정될 만큼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하지만 상관없었다.황제의 마음속에 씨앗 하나만 심어 둘 수 있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싹을 틔울 터였다.어쩌면 훨씬 전 금영이 심어 둔 그 씨앗은 이미 남몰래 뿌리를 내리고 새순까지 내밀었는지도 몰랐다.*다음 날.금영이 눈을 떴을 때 황제는 이미 정사를 논하러 나간 뒤였다.이날 황제는 장안과 송염 두 사람을 파격적으로 발탁했다.장안은 본래 예부시랑이었는데, 이번에 곧바로 예부상서로 승진하여 기존 예부상서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올랐다.예전에 금영이 입궁할 당시, 서 황후 측 사람들이 온갖 방법으로 앞길을 막았었다.그때 금영의 편에 서서 입궁을 강하게 주장한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장안이었다.본래부터 서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청렴한 문관 계열이기도 했다.송염은 이부에 들어갔다.비록 사품 벼슬에 불과했지만 결코 낮은 자리는 아니었다.더구나 송염은 올해 막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었다.장원을 한 것도 아니고 셋째로 급제했을 뿐이었다.그런 그가 단숨에 사품 관직에 올랐으니, 이미 상당한 파격 인사였다.황제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사이, 금영은 옷을 갈아입고 림비를 데리고 서 황후에게 문안을 드리러 갔다.문 앞을 지키고 있던 환옥이 두 사람을 막아섰다.“황후마마께서 몸이 편찮으시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 주시옵소서.”금영은 못내 아쉬웠다.오늘 다시 한번 서 황후의 속을 긁어 놓을 생각이었는데 말이다.서 황후는 화가 날수록 평정심을 잃기 쉬웠다.스스로 빈틈을 드러내기 시작한다면, 그녀를 끌어내릴 날도 그만큼 가까워질 터였다.금영이 막 돌아서려던 그때, 조씨가 안에서 나왔다.“원 귀비마마, 황후마마께서 들라 하시옵니다.”금영은 림비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서 황후는 이미 의자에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단정히 앉아 있었다.붉은 비단옷에는 금실로 봉황 무늬가 화려하게 수놓여 있어 더없이 귀하고 위엄 있어 보였다.하지만 아무리 분을 두껍게 발라도 눈 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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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0화

여비는 도도한 눈길로 림비를 한번 흘겨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금영이 먼저 나직이 입을 열었다.“어제 일은 고맙네.”금영이 여비에게 고마워한 것은 단지 결정적인 순간에 림비의 거짓 회임이 누군가의 함정이라고 짚어 주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어제 모두가 금영이 곤경에 빠지는 모습을 구경하려 들 때, 여비는 서 황후의 미움을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먼저 나서서 금영을 두둔했다.겉으로는 오만하고 제멋대로인 듯 보여도, 사실 궁 안에서 여비의 처지는 누구보다 녹록지 않았다.그런데도 여비는 그 순간 자신만 살겠다고 몸을 사리지 않았다.금영은 그 마음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여비가 금영을 바라보며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감사 인사는 됐사옵니다. 다만 신첩도 원 귀비마마께서 이토록 수완이 좋으신 분인 줄은 몰랐사옵니다. 그분을 벌써 몇 번이나 제대로 넘어뜨리셨지 않사옵니까.”금영이 웃었다.“대단한 수완이라 할 것까지 있겠는가. 세상일이라는 게 결국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지. 그쪽에서 먼저 본궁과 림비를 함정에 빠뜨리려 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생기지 않았을 걸세.”그 말을 들은 여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금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여비도 시간이 괜찮으면 지란원에 들러 우리와 차나 한잔하게.”그러자 여비는 대답도 없이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주변 사람들은 그 거리낌 없는 태도에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몇 걸음 앞서가던 여비가 문득 몸을 돌려 금영을 바라보았다.“차를 마시러 오라 하신 것 아니옵니까? 설마 이제 와 마음이 바뀌신 것이옵니까? 좋은 차가 아까우신가 봅니다.”금영은 그 말에도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고 웃으며 뒤따라갔다.“그럴 리가 있겠는가. 여비가 기꺼이 와 준다니 본궁이야 당연히 반갑지.”얼마 지나지 않아 금영은 림비와 여비를 데리고 지란원에 도착했다.복령은 상궁 둘과 함께 뜰에서 아기 황자를 달래고 있었다.금영 일행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 황급히 예를 올렸다.여비는 조금 떨어진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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