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Bab 181 - Bab 190

340 Bab

제181화

배명월은 불안한 기색으로 태자의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태자 역시 하얗게 질린 얼굴로 간신히 입술을 뗐다."폐, 폐하를 뵙습니다."금영은 옅은 미소를 띤 채 태자와 배명월의 처참하게 굳은 얼굴을 바라보았다.'이런 걸 보고 인과응보라고 하는 거겠지.'배명월은 제 판이 뜻대로 굴러간다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설마 황제가 금영과 함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니 말이다. 그 덕분에 금영은 손 안 대고 코를 푼 격이 되었다.태자가 당황한 얼굴로 황제를 바라보았다."폐, 폐하. 이 깊은 밤에 이곳까진 어인 일이십니까?"황제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짐이 이 길을 지나지 않았더라면, 이 어처구니없는 광경을 놓칠 뻔했구나."그 말을 하며 황제는 곁에 선 금영을 슬쩍 훑었다. 금영은 고개를 숙인 채 바닥만 바라보았다. 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마음의 상처 탓인지 어깨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그제야 황제는 금영이 왜 늦은 시간까지 등월루를 지키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금영은 태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내 슬퍼 보였던 눈빛도, 끝내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던 이유도 분명해졌다. 태자는 약조를 어긴 것도 모자라, 처제가 될 여인과 밀회를 즐기고 있었다.황제가 노한 것을 알아차린 태자가 급히 무릎을 꿇었다."폐하!"하지만 배명월은 아직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인지 멍하니 있었다. 하지만 황제가 서늘한 눈빛을 보내자 뒤늦게 무릎을 꿇었다.황제는 바닥에 엎드린 태자를 내려다보며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이 못난 놈, 짐이 평소 너를 이렇게 가르쳤더냐?"태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다급히 대답했다."폐하,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고 잠시 제 말부터 들어주십시오. 저는...."하지만 태자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이미 모든 정황이 드러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그때, 배명월이 떨리는 목소리로 끼어들었다."폐하, 모든 잘못은 제게 있습니다. 제가 전하를 너무 사모한 탓입니다. 전하께서는 그저 제가 오랜 시간 험한 곳을 떠돌다 돌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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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2화

하지만 위명은 곧 떠올렸다. 과거 황제가 선대 영안후에게 금영을 잘 돌보겠다고 약조했던 것을 말이다. 그러니 이 모든 소란도 결국 선대 영안후의 체면을 생각한 처사일 터였다.'그래, 분명 그럴 거야. 다른 이유가 있을 리 없어.'태자는 격노한 황제 앞에서 감히 변명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잘못했습니다, 폐하."그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했지만, 지금은 일단 죄를 인정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었다.하지만 황제의 눈에 여전히 몸을 떨고 있는 금영이 들어왔다. 그의 미간이 다시 살짝 좁혀졌다. 그는 이 한심한 소동을 한시라도 빨리 끝내고 싶었다.황제가 싸늘하게 명했다."영안후부의 둘째 여식을 즉시 궁 밖으로 내보내라. 또한 그 부모에게 명하여, 자식을 엄히 가르치게 하라."그러더니 다시 차갑게 덧붙였다."태자 역시 즉시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 근신하라. 짐의 명이 있기 전까지는 한 걸음도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된다."태자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황제를 올려다보았다."폐, 폐하...?"겨우 이 정도 일로 근신까지 시키다니, 믿을 수 없었다. 평범한 가문이라면 근신이 대단한 벌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황실은 달랐다. 명백한 대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고서야, 아무리 황제라 해도 일국의 태자를 근신시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처분이 아니었다.황제의 눈빛이 한층 더 서늘해졌다."왜, 짐의 벌이 가볍다 여겨지느냐?"태자는 등골이 서늘해져 급히 고개를 저었다."아, 아닙니다."황제가 낮고도 무거운 목소리로 읊조렸다."그렇다면 당장 안 움직이고 무엇 하느냐!"태자는 몸을 일으키며 바닥에 꿇어앉은 배명월을 보았다. 평소였다면 당연히 손을 내밀어 일으켰겠지만, 찍어 누르는 듯한 황제의 시선에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배명월 역시 지금은 억울한 척 울먹일 때가 아님을 잘 알았다. 그녀는 얌전히 몸을 일으켜 규범에 맞춰 예를 올렸다."신녀도 물러가겠습니다."그 모습을 보며 금영은 입꼬리를 아주 조금 끌어올렸다. 배명월은 결코 규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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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3화

황제는 안색을 굳힌 채 금영을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고개를 숙인 순간, 그녀의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금영은 온몸으로 흐느끼며 낮게 중얼거리고 있었다."하,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습니다."황제는 한참 망설이던 끝에 결국 금영을 떼어내지 못했다. 오늘 배명월이 보인 행태로 미루어 볼 때, 금영이 집안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을지는 보지 않아도 자명했다. 아마 그 넓은 저택 어디에도 그녀의 편은 없었을 터였다. 선대 영안후의 죽음으로 황제는 충실한 신하를 잃었으나, 금영은 자신을 아껴주던 유일한 혈육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황제가 보아온 금영은 충심과 효심이 남다른 아이였다. 황제를 구하려 제 목숨을 내놓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고, 조부를 위해서는 삼년상의 고단함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제 못난 아들과 그 여동생에게 이토록 업신여김을 당했으니, 아무리 침착하고 단정한 성정이라 한들 무너지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황제는 선대 영안후의 유언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녀를 각별히 보살펴야겠다고 생각했다.그제야 황제는 예전에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일을 깨달았다. 선대 영안후가 세상을 떠날 당시 금영에게는 엄연히 부모가 있었다. 그런데도 왜 굳이 혈육이 아닌 자신에게 금영을 돌보아 달라 당부했는지, 그 의중을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이제 보니 선대 영안후는 벌써 오늘 같은 날이 올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금영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할아버지가 너무 그립습니다, 폐하...."그러면서 황제를 붙든 두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황제는 본능적으로 생경한 거부감이 밀려왔으나, 이내 침착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비단처럼 검은 머리칼 위에 얹고 가볍게 두드렸다. 생전 해본 적 없는 조심스러운 위로였다."그만 울어라. 네가 이렇게 계속 울면 선대 영안후께서 하늘에서 보고 짐이 너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고 나무랄 것이다."그의 어조는 다정했으나, 스스로 느끼기에도 낯선지 살짝 어색함이 묻어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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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4화

작게 한숨을 내쉰 황제는 몸에 두르고 있던 망토를 풀어 금영의 어깨 위로 무심하게 툭 덮어주었다.'참 손이 많이 가는군.'갑작스러운 무게감과 함께 전해진 황제의 온기에 금영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황제는 대꾸도 없이 다시 앞장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금영은 그의 보폭에 뒤처지지 않으려 서둘러 작은 발걸음을 재촉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현청전에 이르렀다. 금영은 문밖에 선 채 잠시 망설였다. 그러자 황제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멍하니 서서 무엇 하느냐. 어서 들어오거라.”금영은 고개를 들어 현판에 적힌 세 글자를 올려다보았다. 마치 살아 꿈틀대는 용처럼 힘차고 위엄이 담긴 필체였다. 현청전은 황제가 정무를 보는 곳이자 그의 침소이기도 한 곳이었다. 또한 황궁을 통틀어 용상을 제외하면 가장 높고 존귀한 공간이기도 했다.귀신으로 떠돌던 시절, 금영은 본의 아니게 몇 번 이곳까지 딸려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살아 있는 몸으로 현청전에 발을 들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현청전에 들어서는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금영은 언젠가 이 황제의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 생각이었다.바깥을 지키던 태감 손복안은 황제가 여인을 데리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인을 현청전 안으로 들이다니, 그야말로 천지개벽할 일이었다. 황후와 현비를 제외하면 다른 후궁들은 이곳에 들어올 자격조차 없었으며, 설령 그녀들이라 해도 황제의 허락 없이는 발을 들이지 못했다.'도대체 어느 분이기에 폐하께서 이토록 특별한 은총을 베푸시는 거지?'손복안의 시선이 금영의 어깨에 걸친 황제의 망토에 머물렀다. 그는 본능적으로 후궁에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음을 직감했다.금영이 문 앞을 지나며 손복안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제야 얼굴을 확인한 손복안은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이 크게 잘못 짚었음을 깨달은 손복안은 황망히 고개를 떨구었다. 황제가 금영과 남녀의 정을 나눌 리는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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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5화

금영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황제 또한 다시 상소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이내 실내에는 묵직한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적막한 방 안에는 황제가 종이를 넘길 때마다 들려오는 사각거림만이 잔잔히 울려 퍼졌다.금영은 마른 과자 하나를 집어 들고 면사 한쪽을 살짝 걷어 입에 넣었다. 은은한 단내를 머금은 과자가 입안에서 부드럽게 풀어지며, 겨울밤의 한기를 조금씩 밀어냈다.금영은 슬쩍 눈을 들어 황제를 바라보았다. 촛불 아래에서 황제는 붉은 주필을 쥔 채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일렁이는 불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자, 준수한 윤곽 위로 제왕의 위엄이 한층 더 또렷하게 드러났다. 금영은 한참이나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저도 모르게 넋을 놓고 말았다.이윽고 황제가 붓을 내려놓았다. 금영의 시선을 눈치챈 듯 그가 고개를 들어 금영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눈이 마주치자 금영은 놀라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황제는 기세를 조금 누그러뜨린 채 나직이 물었다.“여전히 많이 속상하냐?”금영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그렇지 않습니다. 폐하께서 직접 나서 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계속 속상함을 담고 있겠습니까.”금영은 맑은 눈동자에 감사함을 듬뿍 담았다. 그런 다음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다만... 저보다 동생이 태자 전하와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저는 이제 예전 같은 신분이 아니니까요.”그러면서 눈을 내리깐 채 어깨를 축 늘어뜨려 안쓰러운 모습을 보였다.하지만 황제는 금영을 달래기는커녕 정색하며 그녀를 쏘아보았다.“어울리고 말고는 짐이 정한다.”단호하게 내뱉은 황제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다시는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말거라. 너는 그저 마음 편히 혼례를 기다리면 된다. 나머지 일은 짐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금영은 그제야 황제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랐음을 알아차렸다. 만인지상의 신분으로 이토록 참을성 있게 자신을 달래준 것만으로도 이미 상당히 파격적인 일이었다. 여기서 더 미련을 부렸다간, 황제는 틀림없이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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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6화

금영이 조심스레 책장을 넘기자, 반듯한 본문 사이로 빛바랜 글씨들이 눈에 들어왔다. 필법이 채 완성되지 않은, 제법 앳된 필체였다.처음 제목만 봤을 때는 단순한 지형 기록물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펼쳐 보니 각지의 민속과 기이한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그러다 한 구절이 금영의 시선을 붙들었다.“먼 북쪽에는 영물, 거대한 곤(鯤)이 존재한다.”그 옆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주석이 달려 있었다.“만일 그 곤을 타고 천지를 유람할 수 있다면, 이 작은 모퉁이에 갇혀 지내지 않아도 될 텐데.”금영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폐하, 정말로 곤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황제의 주필이 멈추었다. 그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짧게 답했다.“아니.”금영은 입술을 살짝 삐죽이며 말했다."하지만 신녀는 이 세상에 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금영은 잠시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아니, 설령 곤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품은 뜻을 버리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 넓은 바다에 닿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그러자 황제가 의외라는 듯 고개를 들어 금영을 바라보았다. 그 깊고 차가운 눈빛이 자신에게 머무는 순간, 금영은 이번에도 제 예상이 맞아떨어졌음을 확신했다. 그녀는 또 한 번 황제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금영은 여느 여인들처럼 미색으로 황제의 눈길을 구걸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달랐다. 황제와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이 책은 상당히 오래 현청전에 놓여 있었던 듯했다. 금영은 자연스레 황제를 떠올렸다. 앳된 느낌이 물씬 풍겼지만, 필체 자체는 굉장히 익숙했다. 안성당, 이 세 글자도 황제의 손에서 나온 것이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즉위 전, 소년 시절의 황제가 자유를 꿈꾸며 적어 둔 흔적일 터였다.금영의 말을 들은 순간, 황제는 생각에 잠겼다.그는 황자로 태어나 마침내 황제의 자리까지 올랐다. 쉽지 않은 길이었고, 어깨에 짊어진 짐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어린 시절 품었던 생각과 마음도 자연스레 빛이 바래 있었다.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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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화

손복안은 금영을 데리고 소녕전 앞에 멈춰 선 뒤, 웃으며 말했다."소녕전은 예전에 유가공주(柔嘉公主)께서 머무시던 곳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폐하께서는 슬하에 따로 공주가 없으시지 않습니까? 그분께서 멀리 화친으로 떠나신 뒤로는 줄곧 비어 있었사옵니다. 그러니 당분간은 이곳에 편히 머무르시면 됩니다."손복안이 금영을 이곳에 머물게 한 데에는 나름 깊은 생각이 있었다.후궁 안에는 전각이 많았으나, 아무 곳에나 금영을 들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궁비들이 지내던 거처에 머물게 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내궁과는 조금 떨어져 있으면서도 체면을 세울 수 있는 전각이어야 했다.게다가 이곳은 본래 공주가 머물던 곳이었다. 황제가 금영을 아랫사람처럼 아끼고 챙기고 있으니, 이곳만큼 알맞은 곳은 없었다.금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곳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현청전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이곳에 머무르면 황제와 우연히 마주칠 기회도 그만큼 많아질 터였다.금영이 부드럽게 말했다."태감, 제 시비 해수를 이리로 불러 주시겠습니까."손복안은 웃으며 답했다."안 그래도 사람을 보내 두었습니다."금영은 속으로 감탄했다.과연 궁 안에서 일하는 이들은 남달랐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앞서 생각하고 알아서 일을 처리해 두었다.금영은 소녕전 안으로 들어섰다. 침구는 이미 새롭게 갈려 있었고, 전각 안팎도 말끔히 청소되어 있었다.손복안이 웃으며 말했다."그런데 가구들이 조금 오래되긴 했습니다.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새것으로 바꿔 드리겠습니다."금영은 얼른 사양했다."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이곳에 잠시 머무를 뿐인데, 공연히 태감께 번거로움을 더하고 싶지 않습니다."손복안은 여전히 웃는 낯으로 말했다."그것이 어찌 번거로움이 되겠사옵니까? 폐하께서 이토록 아가씨를 중히 여기시는데.... 게다가 장차 태자부의 주인이 되실 분 아닙니까? 이토록 귀하신 분을, 소홀히 대할 수는 없지요."거기까지 말한 손복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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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화

해수의 말대로, 어쩌면 이번 일로 태자와의 사이가 완전히 틀어질지도 몰랐다. 하지만 금영에게는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지지부진하게 얽히느니 단칼에 끊어지는 편이 훨씬 속이 편했다.그러나 이를 알 리 없는 해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황제의 명이 있었다 해도 아직 혼례를 치르기 전인데, 태자와 사이가 틀어지는 것이 어떻게 잘된 일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그냥 홧김에 하신 말씀이겠지. 그래, 진심일 리 없어.'해수는 애써 그렇게 결론 내리며 불안한 마음을 다독였다.*그 시각, 배명월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영안후부에 들어서고 있었다.그녀를 이곳까지 직접 압송하듯 데려다준 이는 위명이었다. 위명은 황제가 굳이 자신에게 이 일을 맡긴 의중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불미스러운 추문이 담장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확실히 입단속을 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본래 태자가 혼례 전 측비를 들이는 일 자체가 그리 품격 있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하물며 황제가 점지한 정비의 동생과 이토록 분간없이 얽히다니, 이는 도를 넘는 처사였다.결국 가장 체면을 구긴 쪽은 영안후부였다.이미 깊은 잠에 들었던 영안후와 송정희는 궁에서 사람이 왔다는 시종의 다급한 외침에 놀라 급히 몸을 일으켰다. 정적을 깨고 터져 나온 송정희의 목소리에는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궁에서 사람이 왔다고? 설마 금영이가 무슨 분란을 일으킨 건 아니겠죠?"송정희가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궁에서 상이 내려지거나, 하사품이 내려올 일이라면 이런 깊은 밤을 택할 리 없었다. 한밤중에 궁에서 사람이 들이닥쳤다는 건,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그러더니 혼자 결론을 내리듯 말을 이었다."틀림없어요. 금영이, 그 아이가 회양에서 돌아온 뒤로 점점 더 버릇이 없어졌잖아요. 집안에서도 부모를 거스르고 형제자매와 다투더니, 궁에 들어가서도 그 성정을 고치지 못해 큰 화를 불러일으킨 게 분명합니다!"그 말을 듣고 있던 영안후의 얼굴에도 노기가 어렸다. 두 사람은 곧바로 대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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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9화

"위 총령,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영안후는 불안한 얼굴로 위명을 바라보았다.위명은 잠시 말을 고른 뒤 입을 열었다."오늘 이 집의 둘째 아가씨가 태자 전하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폐하께 들켰는데...."위명은 차마 일을 낱낱이 밝히기 어려워, 상황을 대략적으로만 전했다.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영안후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곧바로 알아차렸다.그냥 이야기를 나눴다고 표현했지만, 정말 평범한 담소였다면 황제가 이토록 노할 리가 없었다.십중팔구 두 사람이 몰래 정을 통하다가, 하필 황제에게 들킨 것이 분명했다.금영의 혼사가 얽혀 있지 않았다면, 혼인을 앞둔 배명월이 태자와 어느 정도 연이 닿아 있다 해도 그리 큰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금영과 태자가 아직 혼례도 치르기 전에, 배명월이 태자와 얽혀 버렸다. 이 일이 밖으로 새어나가면 체면을 구기는 쪽은 영안후부만이 아니었다. 태자의 명성 또한 함께 실추될 터였다. 그러니 황제가 노하지 않는 편이 이상했다.영안후는 싸늘한 눈빛으로 배명월을 바라보았다.배명월은 살짝 고개를 들었다가, 영안후의 얼굴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배명월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불렀다."아버지..."그 순간, 맑고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짝! 영안후의 손바닥이 배명월의 뺨 위에 그대로 떨어졌다."이 몹쓸 것!"영안후는 그것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는 듯 노기를 담아 꾸짖었다.배명월은 눈을 크게 뜬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아버지가, 아버지가 나를 때리다니...!'영안후부로 돌아온 뒤로, 사람들은 그녀를 금이야 옥이야 하며 극진히 아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들어주었고, 줄곧 귀하게만 여겨 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고작 이런 일로 자신을 때리다니, 믿을 수 없었다.배명월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한없이 가련한 모습이었다.그 장면을 본 위명은 곧장 고개를 돌려 예를 취했다."폐하의 분부는 빠짐없이 전해 드렸으니,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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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화

오늘 위명이 남긴 경고는 영안후의 머리 위로 찬물을 들이붓듯, 뼛속까지 한기가 스며들게 했다. 어느새 영안후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그사이 배명월은 송정희에게 이끌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어머니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가늘게 어깨를 떨며 흐느꼈다. 그런데 영안후가 서슬 퍼런 기세로 들어서자, 송정희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독기와 분노가 가득했다.송정희는 이제 현숙한 부인의 가면조차 집어던진 채 차갑게 쏘아붙였다."아무리 명월이가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자초지종은 물으셨어야지요! 외인들이 보는 앞에서 아이를 그리 매질하시다니, 명월이가 입을 상처는 안중에도 없는 것입니까?""잘못을 했으니 매를 든 것이오! 내 집안 단속을 내가 하겠다는데 못 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이오!"영안후는 결국 참았던 분통을 터뜨리며 언성을 높였다."이제 궁에 들어간 지 며칠이 되었다고, 폐하께서 친히 사람까지 붙여 쫓아낸 경우를 내 지금까지 본 적이 없소! 이건 영안후부의 체면을 모조리 진흙탕에 처박은 것이나 다름없소!"그러더니 점점 더 격조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아직도 사태 파악이 안 되는 것이오? 조금 전 위 총령이 한 말이 그리 알아듣기 어려웠소? 저 아이가 태자와 사사로이 정을 주고받다 폐하께 들켰단 말 아니오! 가문의 예법을 짓밟고 문벌을 더럽힌 저 계집을 매질한 것이 그리도 잘못되었소?"영안후는 머리끝까지 치민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이미 배명월에게 태자와 지나치게 가깝게 지내지 말라고 미리 당부까지 했었다. 예전에 명월을 금영 대신 태자비로 앉힐 생각을 품었던 때조차, 자신이 판을 짜고 주도하는 그림이었지 배명월이 스스로 태자를 유혹하는 천박한 방식이 아니었다.아무리 위세 높은 가문이라 할지라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체통이 있었다. 기루에서나 벌어질 법한 추문을 가문에 끌어들였다가는 온 도성의 손가락질과 침 세례를 피할 길이 없었다.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최악의 경우까지 떠올라 있었다. 폐하의 노여움이 이 일로 끝나지 않는다면,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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