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Chapter 201 - Chapter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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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화

금영은 황제를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폐하."식사가 끝나자 현청전에는 다시 길고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황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태자의 일은 짐이 다시 고려해 보마."황제로서는 금영이 태자를 위해 나선 일이 못마땅했다. 하지만 그녀를 이곳으로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서 황후였다. 이 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중간에 낀 금영만 난처해질 터였다.금영이 곧장 예를 갖추며 말했다."다시 한번 황송하옵니다."사실 금영은 황제가 태자의 벌을 거두든 말든 크게 개의치 않았다. 서 황후도 딱히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황제가 먼저 이렇게 말해 준 이상, 끝까지 연극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밤이 늦었으니, 이만 돌아가 보거라."황제가 담담하게 말했다. 바로 그때, 금영은 문득 자신이 한 가지를 빠뜨렸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서둘러 무릎을 꿇었다. 황제의 시선이 다시 금영에게 향했다.금영은 눈을 내리깔고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과분한 은혜에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보내 주신 선물들 모두 무척 마음에 들었사옵니다."그 말을 들은 황제는 낮에 사람을 시켜 금영에게 보낸 선물이 떠올랐다.그의 입가가 미세하게 올라갔다."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구나."금영이 물러난 뒤, 황제는 다시 미간을 살짝 좁혔다.선물이라, 그에게는 제법 낯선 단어였다. 궁에서는 해마다 셀 수 없이 많은 하사품이 내려졌고, 그에 따라 사례하러 오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금영은 그것들을 하사품이 아니라, 자신이 받은 선물이라 말했다. 그 한마디에 황제는 왠지 모르게 그녀와 전보다 거리가 가까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연스레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번졌다.그런데 마침 그 모습을 상을 치우러 들어온 손복안이 보게 되었다. 단지 미소만 떠오른 것이 아니었다. 눈빛에도 희미한 온기가 감돌고 있었다. 황제 곁을 지키는 손복안조차 쉽게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도대체 금영이 무슨 말을 했기에 황제가 이토록 흡족해하는지, 그는 몹시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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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2화

금영은 어이없다는 듯 태자를 바라봤다.태자는 지금 그녀가 그저 토라져 심술을 부리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그가 다시 금영을 보며 웃었다."다 전해 들었다. 네가 폐하께 나를 근신에서 풀어 달라고 청을 올렸다며?"금영은 입만 매서울 뿐, 속은 여린 것이 분명했다.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을 위해 직접 나설 리 없다고 태자는 여겼다. 게다가 그토록 오랜 세월 자신을 마음에 품어 왔는데, 이제 와 그 마음이 바뀌었을 리도 없었다.금영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전하, 나가 주세요. 저도 옷 갈아입어야 합니다."금영은 감히 큰 소리로 사람을 부르지 못했다. 이 광경을 누가 보기라도 한다면, 훗날 태자비가 아닌 다른 신분으로 궁에 들어올 여지마저 사라질 터였다.태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만큼 달래 주었는데도 금영의 태도는 조금도 누그러질 기색이 없었다.금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전하께서는 장차 황위를 이으실 분입니다. 그런데 아직 혼례도 치르지 않은 처녀의 방에 이리 눌러앉아 계시면, 체통을 잃었다는 소문이 돌까 두렵습니다."눌러앉아 있다니, 태자는 그 말에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그가 얼굴을 굳힌 채 반박했다."네 눈에는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이느냐?"그러더니 화가 난 티를 내듯 소매를 떨치며 밖으로 나갔다.금영은 그제야 사람을 부를 수 있었다."해수야!"해수가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오더니, 금영이 마저 말을 잇기도 전에 기대 어린 얼굴로 물었다."아가씨, 좀 전에 태자 전하 보셨습니까? 어떠셨어요? 다시... 화해하셨어요?"금영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네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느냐?"해수는 제 본분을 다하지 못했다. 금영이 잠든 동안에는 그 누구도 함부로 침실 안까지 들여보내서는 안 되었다.그제야 금영의 심기가 몹시 상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해수는 서둘러 해명했다."송구합니다, 아가씨. 태자 전하께서 제게 절대로 아가씨를 깨우지 말라고 하시기에... 저는 그저 아가씨를 생각하셔서 그러시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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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화

금영이 만약 태자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당장 정신 차리라며 찬물을 얼굴에 끼얹고도 남았을 것이다.태자가 다시 인내심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금영아, 이제는 차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느냐?"금영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전하를 대신해 폐하께 청을 올린 일 때문에 절 찾아오신 것이라면, 굳이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감사는 제가 아니라 황후마마께 드리셔야 하니까요. 제가 청을 올린 것도 모두 황후마마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금영이 담담히 말하자, 태자의 얼굴에 언짢은 기색이 스쳤다."금영아, 오늘 내가 널 찾아온 것은 사과하기 위해서다. 그날 나와 명월 사이에 있었던 일은... 네가 생각한 것과 다르다. 모두 오해였다. 나는 그저 명월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어 태자부에 들이려 했을 뿐이다. 네가 원치 않는다면, 다시는 입에 올리지 않고 없던 일로 하마."태자는 한발 물러서기로 한 모양이었다.그러자 금영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전날 밤, 태자가 얼마나 완고한 표정으로 배명월을 측비로 들이겠다고 했는지 금영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제 허락 따위는 필요 없다며 그토록 단호하게 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딴 사람이라도 된 듯 행동하고 있었다.황제에게 그의 근신을 풀어 달라 한 번 청했다고 해서 사람이 이렇게까지 바뀔 리는 없었다.거기까지 생각한 금영은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 태자가 왜 이토록 이상하게 구는지, 짐작이 갔다.*이건 태자가 금영의 처소에 들기 전 있었던 일이다.태자는 근신이 풀리자마자 곧장 황제를 찾아가 무릎을 꿇었다.황제가 태자를 향해 싸늘하게 말했다."금영이 먼저 너를 위해 청을 올리지 않았다면, 결코 이리 가볍게 넘어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태자는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황제가 다시 차가운 눈빛으로 태자를 바라보며 경고하듯 말했다."선대 영안후가 목숨을 던져 짐을 구하지 않았다면, 짐은 물론이고 이 대량 또한 지금과 같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짐이 금영에게 주고자 하는 것은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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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화

태자는 그런 핀잔을 듣고도 소녕전을 떠나지 않은 채, 여전히 진지한 눈빛으로 금영을 바라보고 있었다.금영은 그런 태자를 보며 점점 혐오감이 치밀었다.차라리 끝까지 배명월을 택했더라면, 그나마 일편단심이라 여겨 두 사람을 나름 인정했을지도 몰랐다.하지만 지금 보이는 태도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배명월을 좋아한다고 하더니, 이제는 그 모든 것이 오해였다고 말을 바꾸고 있었다. 자신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이토록 뻔뻔하게 굴 수 있는지, 어처구니가 없었다.금영이 차갑게 말했다."전 전하는 물론, 배명월에게도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 굳이 제게 사정을 설명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이만 선화전에 가서 의규를 배워야 하니, 전하께서도 돌아가 주십시오."그 말을 끝으로 금영은 소매를 떨치며 밖으로 향했다. 그 단호한 뒷모습을 본 태자는 관자놀이에 핏줄이 돋을 만큼 분노했다.그는 장차 황제가 될 몸이었다. 그런데도 먼저 고개를 숙이고 물러서 주었건만, 금영은 고맙게 여기기는커녕 여전히 차갑기만 했다.옆에 있던 신귀안이 태자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전하, 정말 명월 아가씨를 들이실 생각은 이제 없으신 겁니까?"태자가 낮게 말했다."폐하께서 굳이 이 일을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으시는 건, 영안후부의 체면을 생각해서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다시 명월이를 언급한다면, 그건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신귀안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명월 아가씨도 참 기구한 운명입니다. 듣자 하니 영안후부로 돌아간 뒤 크게 벌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직도 사당에 무릎 꿇고 계신다 하더군요."그 말을 들은 태자의 눈빛이 흔들렸다."뭐라고? 아직도 사당에 무릎 꿇고 있다고?"신귀안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소인이 괜한 말씀을 드린 듯합니다."태자는 곧장 영안후부로 향하려 했다. 하지만 궁 입구에 이르자, 황후의 측근인 대총관이 앞을 막아섰다.봉의궁.태자가 황후를 바라보며 다급히 입을 열었다."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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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화

흐트러진 옷차림 사이로 살결이 어른거리는 모습을 본 순간, 금영은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남녀가 서로 뒤엉켜 있는 것이 분명했다.황제를 찾지 못한 것만으로도 난처한데, 이런 망측한 밀회의 장면까지 목격하게 되다니. 금영은 적잖이 당황했다.바로 그때, 여리고도 교태 어린 젊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황자 전하...."그 한마디에 금영은 안에 있는 이들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방금 들린 목소리는 분명 요영지의 것이었다. 그리고 궁 안에서 이황자라 불릴 사람은 소종 한 명밖에 없었다.금영은 서둘러 몸을 돌렸다. 애초에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다. 괜히 훔쳐보다 들키기라도 하면 공연히 화를 불러올 수 있었다. 더구나 남의 은밀한 사정을 굳이 더 들여다보고 싶지도 않았다.그런데 바로 그 순간, 안에서 인기척을 알아챈 듯 요영지가 날카롭게 외쳤다."거기, 누구냐!"그 호통에 금영은 더 급히 물러서려다 미처 뒤를 살피지 못하고 누군가와 부딪히고 말았다. 충격에 몸이 잠시 휘청였으나, 중심을 잡기도 전에 누군가가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가볍게 받쳐 주었다.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상대는 마치 불에라도 데인 듯 급히 손을 거두었다. 금영도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곳에는 황제가 서 있었다.요영지는 자신의 호통에도 바깥이 조용하자, 그저 지나가는 고양이나 들짐승이겠거니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니, 설령 정말 누군가 있었다 해도 멈출 생각은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거사는 반드시 성사되어야 했다. 물론 이번 일로 태자부에 들어갈 가능성이 완전히 끊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황자와 인연을 맺을 수만 있다면, 그녀로서는 손해 볼 것 없었다.금영이 잠시 놀란 채 굳어 있는 사이, 안에서는 다시 여인의 교태 어린 신음이 흘러나왔다."전하, 조금만 살살... 영지 아파요...."바람과 눈발이 거세, 음성이 아주 또렷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렴풋이 들려온 그 한마디만으로도 황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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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6화

황제의 시선이 먼저 닿은 것은 문가에 흐트러진 상태로 놓여 있는 붉은 치마 자락이었다.그리고 그 시선은 천천히, 더는 숨을 곳도 없이 드러난 두 남녀에게로 옮겨갔다.이황자는 처음에는 허둥댔다. 하지만 눈보라를 뒤집어쓴 채 황제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경악한 얼굴로 황제를 바라봤다."부, 부황...?"이내 지금 자신이 어떤 꼴로 들킨 것인지 깨달은 이황자는, 품에 파묻혀 있던 요영지를 급히 밀어내고 무릎을 꿇었다."부, 부황. 제, 제발 제 말 좀 들어주십시오. 저는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오늘 상사원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기마술을 익혔습니다. 그런데 날이 너무 추워 술을 조금 마셨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이곳이었습니다...."황제는 누구보다 예법과 규율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런 황궁 안에서 정체도 분명치 않은 여인과 뒤엉켜 있는 모습을 들킨 이상, 아무리 둘러대 보아도 빠져나갈 구실은 없어 보였다.이황자의 옷차림은 몹시 흐트러져 있었다. 무릎을 꿇은 채인데도 가슴팍이 훤히 드러날 정도였다. 게다가 허리띠조차 반쯤 풀려 있어 방금 전까지의 낯뜨거운 정황을 숨길 길이 없었다.황제는 곁에 금영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는 곧 몸을 돌려 금영의 시선을 가린 뒤, 두 사람에게 등을 보인 채 차갑게 말했다."옷이나 똑바로 입고 다시 해명하거라."황제는 이곳에서 두 사람이 옷을 추스르기를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금영이 신경 쓰였다. 그는 금영에게 눈짓을 보냈고, 그녀는 곧장 그 뜻을 알아차리고 황제와 함께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내려가는 길, 금영은 황제를 가볍게 부축하려는 듯 손을 내밀었다."폐하, 조심하십시오."그렇게 두 사람은 전각 밖을 나갔고, 금영은 황제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폐하... 괜찮으십니까?"황제는 그 물음에 바로 답하지 않고 되물었다."너는 어쩌다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이냐?"금영이 나직이 답했다."감히 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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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화

요영지는 황제가 직접 자신의 이름을 입에 올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순간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황제가 저토록 다정한 어조로 자신을 부르는 것을 보니, 어쩌면 자신을 좋게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만약 자신도 황제의 총애를 얻을 수 있다면, 이황자의 정비가 될 기회 역시 생길지 몰랐다.황제가 금영을 각별히 여겨 태자와의 혼사를 내려 준 것처럼 말이다.하물며 금영은 서녀였다. 서녀에게조차 태자비 자리가 주어졌는데, 자신에게도 아주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고 여겼다.그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요영지는 얼굴을 붉히며 황제에게 답했다."폐하를 뵙습니다. 영지라고 하옵니다."황제의 얼굴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이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네까짓게?"요영지는 순간 얼어붙었다. 눈에는 당혹과 혼란이 가득했다. 도무지 황제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았다.금영은 옆에서 그 광경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그녀의 눈빛은 오늘따라 유난히 맑았다.하지만 속으로는 실소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그러다 문득, 황제는 입궁할 귀녀들의 명단 속에 비슷한 이름이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그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금영에게 물었다."아는 사이냐?"금영이 고개를 끄덕였다."요영지라고, 신녀와 함께 선화전에서 의규를 배우고 있습니다."황제가 낮게 되물었다."의규라... 저게 의규를 배운 결과란 말이냐?"다행히 그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노기가 담겨 있지 않았다. 하지만 감정을 짐작할 수 없어서 더 섬뜩했다.그때 이황자가 반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처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금영의 입에서 요영지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안색이 확 달라졌다. 그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부, 부황, 잘못했습니다. 전... 전 그 여인인 줄 몰랐습니다."서 황후는 황제가 이름에 지(芝) 자가 들어간 여인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니 자연히 그녀를 경계하고 있던 현비의 귀에도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이황자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이토록 다급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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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8화

머리를 조아리는 순간, 요영지의 이마에 수북이 쌓인 눈이 닿았다.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꽤 딱하게 여겼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황제는 아니었다. 그는 요영지에게 연민은커녕, 오히려 표정이 더욱 험악해졌다.'이 여자가 미쳤나?'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이황자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저건 결국 제 손으로 제 목을 조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설마 처음부터 서 황후의 사람이었나? 나를 이 함정에 빠뜨리려고 움직인 건가?'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황자는 등골이 서늘해졌다.하지만 그의 짐작과 달리 요영지의 속사정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그녀 역시 이 말을 꺼내는 순간 이황자의 미움을 사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당연히 앞날이 순탄할 리도 없었다. 그러나 이황자가 끝까지 발뺌하는데, 정절을 잃은 그녀에게 남은 선택지는 없었다. 그러니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이황자가 자신을 책임지게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어차피 미움쯤이야, 훗날 가서 풀면 그만이었다."이런 방자한 것! 분명 네가 먼저 나를 유혹해 이 지경에 이르게 해 놓고, 이제 와 부황께 제 편을 들어 달라고 한단 말이냐?"이황자는 이 모든 일을 요영지에게 떠넘기기로 마음먹었다.그 말을 들은 요영지는 끝내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 비로소 후회가 밀려들어왔다. 이번 일을 발판 삼아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으리라 여겼건만, 오히려 스스로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전하께서 끝내 책임지지 않으시겠다면, 신녀는 이 자리에서 죽겠습니다!"요영지는 울부짖듯 외치더니, 곧장 몸을 일으켜 곁에 있던 기둥에 머리를 박으려 했다. 하지만 다행히 위명이 한발 먼저 움직여 그녀를 막아서는데 성공했다.황제가 이황자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짐은 너에게 매우 실망했다."이황자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부황, 제발...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정말 그 여인인 줄 몰랐습니다...."황제는 분노가 극에 달한 나머지, 오히려 헛웃음이 나왔다."저 여인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네가 정절을 빼앗았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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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화

황제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앞으로 눈 오는 날에는 함부로 밖을 돌아다니지 말거라."그 말에 금영은 차를 따르던 손을 잠시 멈췄다. 하지만 이내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찻잔을 마저 채운 뒤, 주전자를 내려놓고서야 조용히 입을 열었다."폐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앞으로 함부로 밖을 돌아다니지 않겠습니다."말을 마친 금영은 살며시 눈을 내리깔았다.황제는 그녀의 표정과 말투를 보고, 금영이 자신의 뜻을 다르게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결국 그는 어쩔 수 없이 한마디를 덧붙였다."그게 아니라, 바람과 눈이 차니 네가 또 괜히 앓을까 염려되어 한 말이다."황제의 자리에 있으면, 아랫사람이 자신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굳이 헤아릴 필요가 없었다. 더구나 오해를 살까 직접 뜻을 풀어 말하는 일은 더욱 드문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금영에게만 예외였다.금영이 고개를 들어 황제를 바라봤다. 그의 반응이 상당히 뜻밖인 듯했다."지금... 신녀를 걱정하신 것이옵니까?"황제는 금영의 어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가 뭐라 할 틈도 없이, 금영이 다시 말을 이었다."아직 이 세상에 신녀를 걱정해 주는 사람이 남아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황제는 선뜻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었다.'도대체 영안후부에서 이 아이를 어떻게 대했기에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거지?'금영은 마치 세상에 홀로 남겨진 어린아이 같았다. 친딸이 나타난 뒤로 금영을 홀대했을 영안후부가 떠오르자, 황제는 자신도 모르게 속에서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결국 금영의 눈에 담긴 쓸쓸함을 외면할 수 없었던 황제는 나직이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그래."고작 두 글자였지만, 그것만으로도 금영에게는 충분한 답이 되었다.'황제가 나를 걱정하고 있다.'조금 전까지 어두웠던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금영의 눈은 마치 별을 머금은 듯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다시 은근한 기대가 스민 목소리로 황제에게 말했다."신녀를 이리 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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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0화

더 나아가, 이번 일이 금영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황제가 몸소 못 박아 준 셈이기도 했다. 금영은 속으로 조용히 숨을 돌렸다. 적어도 이 일에 얽혀든 것만큼은 정말 우연이었으니까 말이다.하지만 이 사태 자체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요영지가 붉은빛이 도는 치마를 입고 나타난 순간, 금영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서 황후가 짜 놓은 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영지라는 이름은 금영이 황제를 만났을 때 썼던 이름과 같았다. 과정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서 황후는 황제와 영지 사이에 무언가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어렴풋이 눈치챈 듯했다. 다만 금영의 정체까지는 알지 못한 채, 이름만 좇다가 요영지를 찾아낸 것이다. 그렇게 서 황후는 눈엣가시 같던 요영지를 없애기로 마음먹었으나, 대놓고 손을 쓸 수는 없었기에 이런 계략을 꾸민 것일 터였다.거기에 이용된 것이 바로 이황자였다. 서 황후는 모종의 수를 써 그를 술과 약에 취하게 한 뒤, 요영지가 기다리고 있던 전각으로 끌어들였을 것이다. 이황자는 본디 혈기가 왕성한 나이였고, 약과 술기운까지 더해졌으니 눈앞의 여인을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그다음 남은 것은 황제에게 그 광경을 들키는 일뿐이었다. 이황자는 황제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여인을 제 손으로 더럽힌 대가를 치르게 될 터였다.그야말로 일석이조였다. 단 한 번의 계략으로 거슬리던 두 사람을 모두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이황자도 더는 태자의 자리를 위협할 수 없게 된다. 역시 서 황후는 무서운 여자였다.하지만 이 계획엔 크나큰 오판이 있었다. 바로 요영지가 애초에 황제가 찾던 여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요영지는 약에 취한 이황자와 만났을 때, 억지로 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순순히 협조했다.그렇게 공들여 꾸민 계략도 결국은 빗나가고 말았다. 진짜 요영지를 없애지 못한 것도 모자라 이황자 또한 예상했던 만큼 치명적인 처벌을 받지 않았다.물론 그렇다고 얻은 것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적어도 이번 혼사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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