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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0 Chapters

제1001화

심서준의 옷자락을 붙잡은 계연수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그녀는 심서준의 말에서 자신을 두고 떠나는 불안과 염려를 느낄 수 있었다. 조용히 숨을 고른 계연수가 다시 물었다.“부군께서 아주버님께 형수님을 내보내 달라고 하셨다지만… 형수님께서 순순히 장원으로 가려고 할까요?”어둠 속에서 심서준의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형수가 바라는 것은 결국 심씨 가문의 재산일 뿐이다. 내가 돌아오면 분가하여 형님과 가산을 절반씩 나누겠다고 이미 말해 두었다. 그러니 형수도 받아들일 것이다.”계연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헌데 어머님께서는…”계연수는 심서준의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심서준은 개인적으로 보유한 재산만 해도 이미 상당했다. 계연수가 그의 점포를 직접 관리해 본 적이 있어 그 사실을 잘 알았다. 심서준은 경영에 뛰어났고, 점포의 관사들도 하나같이 유능해 해마다 적지 않은 수익이 들어왔다. 심씨 가문의 재산에 연연할 이유가 없었다.다만 예부터 분가할 때는 가산의 대부분을 장자에게 물려주는 것이 관례였다.첫째는 형제들이 재산을 두고 다투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고, 둘째는 가문의 기반을 온전히 보전해 대대로 번성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형제들이 분가하며 재산을 흩어 놓으면 가업도 차츰 쇠락해 사라질 수 있었다.그러나 계연수는 그 점을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그녀는 심서준의 능력을 믿었다. 설령 분가하여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더라도, 그는 충분히 가문을 번성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문제는 심씨 노부인이었다. 그녀가 이 결정을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었다.심씨 노부인은 전통과 법도를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동안 백씨에게 집안 살림과 재정을 맡긴 채, 그녀가 중간에서 적잖은 이익을 챙긴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느 정도 눈감아 주었다.아마 훗날 심씨 가문의 재산을 모두 심서준에게 물려줄 생각이었기에, 백씨에게도 그만한 보상을 내어 주려 한 듯했다. 더는 아무것도 서운해하지 않도록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셈이었다.그런데 심서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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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2화

심서준은 걱정으로 조금 창백해진 계연수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좋은 점괘이니 걱정하지 말거라.”계연수는 심서준에게 손을 잡힌 채 밖으로 끌려가다가 그 말을 듣고 참지 못해 입을 열었다.“이게 어떻게 좋은 점괘예요?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고승께 풀이부터 여쭤보고 올게요.”심서준은 걸음을 멈추고 계연수를 돌아보았다.“고승은 흉한 점괘라고 할 테지만, 내게는 좋은 점괘다.”계연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어째서요?”심서준은 그녀의 표정을 내려다보며 차분하게 설명했다.“점괘에는 앞길이 험하고 막혔다고만 했다. 위험하다는 것이지, 죽을 길이라는 뜻은 아니다. 가기 어려운 길이라고 해서 끝내 통과하지 못하는 길은 아니지 않느냐. 암초라는 것도 결국 남몰래 꾸민 비열한 수작에 불과하다. 그런 수단은 이미 수없이 겪어 보았고, 어느 사건을 조사하든 피할 수 없는 일이다.”계연수는 무언가 말하려다 결국 물었다.“헌데 마지막 구절은…”심서준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길을 가다 거센 비바람을 만나는 것도 암초이고 시련이다. 그런 일까지 어떻게 모두 피하겠느냐.”계연수는 아무리 생각해도 억지라고 여겼다. 다시 반박하려던 순간, 심서준이 깊고 검은 눈으로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연수야, 설마 내가 가는 길에 반드시 온갖 고난이 닥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냐?”계연수는 말문이 막혔다.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가 정말 그대로 이루어질까 두려워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그녀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부군의 앞길은 반드시 순탄할 거예요.”심서준은 옅게 웃으며 계연수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돌아가는 마차 안에서도 계연수는 심서준을 위해 구한 평안부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그녀는 평안부를 정성스럽게 접어 심서준의 주머니 안에 넣어 주었다.“반드시 몸에 잘 지니고 계셔야 해요. 한순간도 몸에서 떼어 놓으시면 안 됩니다.”심서준은 마치 큰일이라도 난 듯 심각한 계연수의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났다. 그는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가볍게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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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3화

계연수도 심서준이 갑자기 자신의 앞에 쪼그려 앉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그녀는 허리를 숙여 심서준과 눈을 맞추며 고개를 저었다.“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심서준은 두 눈을 감고 계연수의 배 위에 손을 가만히 얹었다. 둥그렇게 부푼 배에서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를 느끼자 굳어 있던 눈매가 한없이 부드러워졌다.계연수도 움직이지 않고 고요히 앉아 있었다.심서준은 한참 동안 그녀의 배를 어루만지다가 아쉬운 듯 손을 거두었다.“우리 바둑 한 판 더 두겠느냐?”계연수가 물었다.“제가 이기면요?”심서준이 웃었다.“무엇을 원하느냐?”계연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무사히 돌아오겠다고 약속해 주세요.”심서준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연수의 손을 잡고 바둑판이 놓인 곳으로 데려가며 망설임 없이 약속했다.심서준은 바둑돌을 집어 들고 계연수를 바라보았다.“그럼 내가 이기면, 돌아왔을 때 동심결을 하나 만들어 주거라.”계연수는 순간 넋을 잃었다.등불 아래에서 빛과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심서준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심서준이 날마다 계연수와 바둑을 두어 준 덕분에 그녀의 실력은 눈에 띄게 늘어 있었다. 심서준은 훌륭한 스승이었고, 계연수 역시 이제는 그가 바둑을 두는 방식과 수법을 제법 파악하고 있었다.예전에는 그와 한 판을 둘 때마다 버겁기만 했지만, 지금은 훨씬 수월하게 맞설 수 있었다.방 안은 숨소리마저 들릴 만큼 고요했다.계연수는 돌 하나하나를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내려놓았다. 두 사람이 헤어지기 전 함께 보내는 마지막 밤이었기에, 이 순간이 더없이 소중했다.마침내 대국이 끝나자 계연수는 바둑판을 바라보며 한동안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심서준의 입가에도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네가 이겼구나.”계연수는 기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부군도 결국 저를 이기지 못하셨네요.”“내 실력이 너에게 미치지 못했다.”심서준은 순순히 인정했지만, 계연수는 그가 진지하게 두지 않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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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4화

하지만 계연수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손보경이 문득 그녀 앞으로 다가오더니,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앞으로 저도 자주 찾아가 오숙모의 말벗이 되어 드릴게요. 아이를 가지셨을 때는 무엇보다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가지셔야 하잖아요.”계연수도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래.”한동안 못내 아쉬운 작별 인사가 이어졌다. 어느덧 떠날 시각이 가까워지자, 모두 함께 대문으로 향했다. 마침 그때 말을 타고 달려오는 태자와 마주쳤다.황후가 특별히 태자를 보내 배웅하게 한 것이었다. 말에서 내린 태자는 곧장 심서준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외숙부, 부디 몸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막 마차에 오르려던 심서준은 걸음을 멈추고 태자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몇 마디 당부를 건넸다.태자의 시선이 잠시 계연수에게로 향했다. 외숙부가 외숙모를 두고 떠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사실 태자는 심서준이 지나치게 조심한다고 생각했다. 부황께서 이제 와 다시 심씨 가문을 어찌하실 리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부탁받은 일은 반드시 지켜야 했기에, 그는 이내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당부를 모두 마친 심서준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계연수에게 닿았다.계연수는 담담하게 그를 보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심서준과 눈이 마주친 순간, 결국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 그녀는 심서준의 곁으로 다가가 재차 당부했다.“자주 서신을 보내겠다고 약속했잖아요. 잊으면 안 돼요.”심서준은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이 계연수의 눈썹부터 턱 끝까지 한 치 한 치 천천히 훑어 내렸다. 떠나기 전 그녀의 모습을 눈에 온전히 새기려는 듯했다.이윽고 그는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고개를 숙여 계연수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모두 어린 부부의 금실이 참으로 좋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오직 심정우만이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곁에 서 있던 이수옥은 심정우가 눈도 떼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의 팔을 가볍게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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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5화

백씨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심태숙을 힐끗 바라보았다. 평소 좀처럼 엄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던 그의 얼굴이 유난히 굳어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지만, 결국 아무 말 없이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방으로 돌아간 지 불과 일각도 지나지 않아, 안에서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찻잔이며 집기들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소리가 연달아 울리더니, 이내 흥분으로 음성마저 날카롭게 갈라진 백씨의 외침이 문밖까지 새어 나왔다.“대체 왜요? 그 사람이 나를 장원으로 보내라고 했다고 해서, 당신이 정말 나를 보내야 할 이유가 뭐냐고요!”백씨는 분을 이기지 못한 채 탁자를 거칠게 내리쳤다.“심태숙,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사내다운 기개가 있었다면 이 집안에서 사람들에게 이토록 업신여김당하며 살지는 않았을 거예요.”숨을 거칠게 몰아쉬던 그녀는 갈수록 목소리를 높였다.“당신은 그래도 후작의 넷째 형이고, 나는 그의 넷째 형수예요. 헌데 그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나를 장원에 보내느냐고요!”심태숙은 난동을 부리는 백씨를 냉랭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잔잔하게 가라앉은 눈빛에는 어떠한 동요도 떠오르지 않았다. 늘 한발 물러서서 백씨의 성미를 받아 주던 그가 처음으로 한 치의 온정도 보이지 않았다.“당신을 장원으로 보내려 한 것은 서준이가 아니오.”심태숙의 담담한 목소리가 어지러운 방 안에 낮게 내려앉았다.“내가 진작부터 그렇게 하려고 했소.”백씨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심태숙을 바라보았다. 입술이 몇 번 달싹였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심태숙은 그런 백씨를 내려다보다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서준이 말로는 영국공부의 사건도 곧 마무리될 거라고 하더군. 그러니 몇 달 동안 장원에 머무는 것도 나쁘지 않소.”그는 잠시 뜸을 들인 뒤, 더욱 무거운 목소리로 덧붙였다.“그리고 서준이가 돌아오면 분가할 것이오.”백씨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큰 충격을 받은 듯, 두 눈만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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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6화

그 말을 듣는 순간, 백씨의 얼굴에 걷잡을 수 없는 기쁨이 번졌다.심씨 가문은 대대로 쌓아 온 재산이 막대했다. 그 많은 가산을 형제가 절반씩 나누어 가진다면 몇 대에 걸쳐 써도 다 쓰지 못할 터였다. 이제 그녀에게는 기댈 친정도 없었지만, 적어도 넉넉한 재산만 손에 쥘 수 있다면 앞으로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었다.백씨는 조금 전까지의 분노를 깨끗이 잊은 듯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장원으로 가라면 갈게요. 오늘 당장 떠나도 좋아요.”그러고는 입가에 흐뭇한 미소까지 띠며 말했다.“그래도 후작이 당신을 형으로 존중하기는 하나 보네요. 재산을 절반이나 나누겠다고 했다니, 그나마 다행이에요. 나도 그동안 어머님을 정성껏 모셨으니 이제야 고생한 보람을 얻는 셈이고요.”앞날을 그려 보는 백씨의 목소리는 한결 가벼워졌다.“분가하고 나면 나도 더는 누구를 모실 필요가 없잖아요. 내 생각에는 진작 분가했어야 해요.”심태숙은 눈앞의 사람이 갑자기 돌변하는 모습을 싸늘하게 지켜보았다. 조금 전까지 온갖 집기를 내던지며 분노하던 백씨가 재산 이야기를 듣자마자 기쁨을 감추지 못하니, 그의 낯빛은 더욱 어둡게 가라앉았다.“그 재산은 받지 않을 것이오.”냉랭한 한마디에 백씨의 미소가 그대로 굳었다.“나중에 어머니와 아버지께도 직접 말씀드릴 생각이오. 나는 이미 심씨 가문에서 받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받았소. 그러니 그 절반은 받지 않을 것이오. 그 재산은 모두 서준이의 것이오.”백씨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심태숙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지 의심하는 듯 입술을 벌린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당신…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어요?”가까스로 말을 내뱉은 그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내가 이 집안의 살림을 몇 년이나 맡아 왔는데, 심씨 가문 재산의 절반이 얼마나 되는지 몰라서 그래요?”그러나 심태숙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차분한 눈으로 백씨를 바라보며 되물었다.“그 재산이 내 것이오?”백씨의 입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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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7화

말을 마친 심태숙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마루로 나온 그는 곧장 시녀를 불러 차갑게 명했다.“백씨의 짐을 꾸려라. 준비가 끝나는 대로 바로 떠나게 할 것이다.”백씨는 여전히 방 안에 넋을 잃은 채 서 있었다. 그런데 문밖에서 들려오는 심태숙의 목소리에, 비로소 그의 말이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온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그녀는 휘청이는 걸음으로 방을 뛰쳐나왔다. 마루 끝에 서 있는 심태숙을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바라보며 다급히 물었다.“당신, 정말 이럴 작정이에요?”심태숙이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는 백씨를 한동안 고요히 바라보다 단호하게 대답했다.“당신은 반드시 떠나야 하오.”백씨는 이를 악물었다. 눈에는 원망과 분노가 짙게 뒤엉켜 있었다.“내가 가지 않겠다면요?”“그렇다면 사람을 시켜서라도 묶어 보내겠소.”심태숙의 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담담했다. 백씨가 충격에 굳어 버렸지만, 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우리 집안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해도 상관없소. 어차피 당신이 이미 적지 않은 소란을 일으켜 놓았으니, 이제 와 더 감출 것도 없지 않소.”그 말을 내뱉은 심태숙의 눈빛에 복잡한 기색이 스쳤다. 분노뿐 아니라 오랜 세월 쌓인 피로와 실망이 깊게 배어 있었다.“당신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시오. 제수가 이 집안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소? 살림을 맡은 지 얼마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 집안의 많은 사람들이 제수를 좋아하고 있소.”그는 떨고 있는 백씨를 바라보며 낮게 되물었다.“평소 집안의 크고 작은 모임이 열릴 때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제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지 당신도 보지 않았소? 그런데도 정녕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모르겠소?”한숨과 함께 심태숙의 어깨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는 더없이 지친 기색으로 마지막 경고를 건넸다.“당신이 끝까지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이대로 고집을 부린다면, 나 역시 더는 부부의 정을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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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8화

비록 자신은 심씨 가문을 떠나 별장에 머물게 되었지만, 그곳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움직임은 하나도 빠짐없이 알아야 했다. 그런데 따로 당부하지 않았는데도 이수옥이 먼저 그 뜻을 헤아렸으니, 백씨로서는 이 며느리가 더없이 마음에 들 수밖에 없었다.백씨는 이수옥의 손을 더욱 힘주어 잡았다. 주변에 듣는 사람이 없는지 살핀 뒤, 목소리를 한층 낮추어 말했다.“네 오숙부가 이번에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분가할 거란다.”이수옥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그녀가 심씨 가문으로 시집온 데에는 지금의 높은 문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시아버지 심태숙은 이미 관직에서 좌천된 처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분가까지 한다면 그들이 누리는 가문의 위세는 예전보다 크게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이수옥으로서는 어떻게든 분가를 막고 싶었다. 분가하고 나면 더는 같은 집안에서 한솥밥을 먹는 사이가 아니었다. 게다가 시아버지는 적통도 아닌 데다, 오숙부 심서준에게는 작위까지 있었다. 관례대로 가산을 나눈다면 자신들이 받아 올 몫은 그리 많지 않을 터였다.불안이 치민 이수옥이 다급히 물었다.“정말이에요?”백씨는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오숙부는 분가하면 재산을 형제가 절반씩 나누겠다고 했단다. 헌데 네 시아버지는 이제 완전히 오숙부 편에 서서 정우와 정민의 앞날은 생각하지도 않아. 심씨 가문의 재산을 받지 않겠다는 어리석은 소리까지 하더구나.”백씨의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네가 보기에도 네 시아버지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지 않으냐?”이수옥의 눈빛이 놀라움과 의심 사이에서 흔들렸다.놀라운 것은 오숙부가 그 막대한 가산을 형과 절반씩 나누겠다고 했다는 사실이었다. 몇 대가 써도 모자라지 않을 재산을 아무런 미련 없이 나누려면 대체 얼마나 큰 배포가 있어야 한단 말인가.하지만 그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시아버지의 태도였다. 가만히 앉아서 막대한 재산의 절반을 얻게 되었는데, 대체 왜 거절하려는 것인가. 그런 기회를 마다한다면 어리석다고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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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9화

백씨를 태운 마차가 떠나자, 이수옥은 곧바로 몸을 돌려 들뜬 걸음으로 심정우를 찾아갔다.그녀에게는 참으로 중대한 일이었다.오숙부가 직접 분가하겠다고 말했다면 단순히 화가 나서 꺼낸 말일 리 없었다. 더구나 심씨 가문의 재산 절반이라면 문원후부의 가산조차 그에 미치지 못할 터였다.문원후부는 무관으로 일어나 가문을 세웠지만 그 역사가 길어야 백여 년에 불과했다. 반면 심씨 가문은 다섯 대 전부터 경성에 터를 잡았고, 대대로 조정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문관을 배출했다. 오랜 세월 쌓아 온 재산이 얼마나 될지는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다.이수옥은 요 며칠 백씨를 따라 심씨 가문의 점포를 관리하면서 그 막대한 재력의 일부를 직접 확인하기도 했다. 경성뿐 아니라 각지에도 수많은 점포와 장원이 흩어져 있었다. 장부를 들여다볼 때마다 그녀조차 놀랄 정도였다.그토록 커다란 복이 제 발로 굴러들어 왔는데, 대체 왜 마다한단 말인가.심정우가 바보가 아니라면 당연히 재산을 받으려 할 것이라 생각했다.그러나 이수옥의 예상과 달리, 이야기를 모두 들은 심정우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아버지는 본래 어머니보다 사리에 밝으신 분이오. 아버지께서 받을 수 없다고 하셨다면, 나도 받지 않는 게 옳다고 생각하오.”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담담히 말을 이었다.“내게는 멀쩡한 두 손과 두 발이 있고, 나는 아직 젊소. 앞으로 전공을 세워 내 힘으로 출세할 수도 있는데, 무엇 때문에 내 것이 아닌 재산을 탐내야 하오?”이수옥은 멍하니 심정우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리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탓에 한동안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당신, 바보예요?”정신을 차린 이수옥은 기가 막힌다는 듯 되물었다.“오숙부께서 먼저 주겠다고 한 거잖아요. 우리가 달라고 요구한 것도 아닌데, 왜 받지 않겠다는 거예요?”심정우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분가한다고 해서 가산을 절반씩 나누는 집안이 어디 있소?”그는 이수옥이 반박할 틈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평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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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0화

심정우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이수옥을 바라보았다.“그 결정은 할머니께서 내리신 건데, 왜 어머니께서 끼어든단 말이오?”이수옥은 그의 말에 울화가 치밀어 눈을 부릅떴다.“당신, 혹시 외숙모한테 홀리기라도 한 겁니까? 대체 왜 그리 감싸는 겁니까? 지난번에도 굳이 찾아가서 무슨 나무 인형인가를 건네주더니. 도대체 외숙모가 당신한테 뭘 해 줬다고 그래요?”“우리는 한집안 사람이에요. 나는 당신의 부인이고, 어머니는 당신을 낳아 주신 분이라고요. 옳고 그름을 떠나서 어떻게 남의 편을 들 수가 있어요? 당신은 외숙모가 사람이 좋다느니, 성품이 온화하다느니 입이 닳도록 말했죠.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었다면 예전에 사씨 집안에서는 왜 마다했겠어요?”“얼마 전에는 사옥현도 자기 사촌 여동생과 혼인했잖아요. 왜요? 외숙모가 정말 다듬지 않은 옥이라면, 그쪽 사람들은 죄다 눈이 멀어서 귀한 옥을 내던지고 돌멩이를 부인으로 맞았다는 건가요…”이수옥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날카로운 파열음이 터졌다.짝!단둘뿐인 방 안에 뺨을 때리는 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이수옥은 한쪽 뺨을 감싸 쥔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심정우를 바라보았다.심정우 역시 자신이 여자에게 손을 올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얼이 빠진 얼굴로 제 손바닥만 내려다보았다.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분노는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이수옥의 막무가내인 성미도 참을 수 있었다. 그녀가 이리저리 말을 돌려 가며 자신을 몰아붙이고 제멋대로 구는 것도 받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수옥이 이토록 인품이 그릇된 여인이라는 것만큼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심정우는 더 이상 이수옥을 쳐다보지 않았다. 아니, 보고 싶지도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돌린 그가 낮고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어른을 눈앞에 두고도 공경할 줄 모르고, 남을 함부로 헐뜯다니. 당신이 이토록 교양 없는 사람인 줄은 몰랐소. 내 곁에 머물기 싫다면 친정으로 돌아가시오. 설령 이혼하게 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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