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주문춘귀: Bab 491 - Bab 500

553 Bab

제491화

계연수는 태자가 화폭을 내미는 것을 보고,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으로 공손히 받으려 했다.고개를 숙여 두루마리를 살피니 종이는 누렇게 바래 있었고 세월이 깊이 스며든 듯했다. 그녀는 더욱 조심스럽게 그것을 받아 들었다.그런데 한동안 두 손을 들어 기다려도 태자가 그림을 내려놓지 않았다.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들자 시선이 태자의 눈과 마주쳤다.강현은 온화한 눈매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그녀가 올려다보는 것을 보자 가볍게 웃으며 그제야 화폭을 그녀의 손 위에 내려놓았다.계연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조심스럽게 두루마리를 펼쳐 옆의 작은 탁자 위에 놓았다.손끝으로 오래된 종이 위의 마른 먹 자국을 더듬어 보았다. 색은 이미 많이 바래, 꽃의 본래 모습은 선명하게 알아보기 어려웠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태자를 향해 물었다.“전하, 그 꽃이 피어 있던 당시의 모습을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강현은 그녀를 바라보았다.느긋하면서도 흐트러짐 없이, 살짝 몸을 틀어 자신을 향해 앉아 있는 모습. 나이는 어려 보였지만, 그 몸가짐에는 이미 번잡함을 덜어낸 듯한 맑고 단정한 기운이 배어 있었다.그는 알고 있었다.어머니인 황후가 이 혼사를 얼마나 반대했는지, 그날 대장공주가 입궁했을 때 황후와 심서준이 얼마나 격렬하게 부딪혔는지. 심지어 그날 황제조차 이를 말리지 못했다.이런 내막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으니 계연수 역시 모를 터였다.하지만 이 혼인이 얼마나 어렵게 이루어졌는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리고 솔직히 말해, 외숙부인 심서준 같은 사람이 이런 선택을 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다.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계연수는 아직 어린 나이였다.그는 심서준과 동갑이었고, 계연수는 자신보다도 다섯 살이나 어렸다. 얼굴은 맑고 깨끗해, 이미 혼인한 여인이라는 흔적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눈동자는 검고 또렷했으며, 사람을 바라볼 때 그 살짝 둥근 눈에는 은은한 정이 담겨 있었다.방금 전, 그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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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2화

책상 위에는 궁중에서 소중히 간직해 온 징심당지가 펼쳐져 있었는데 결이 촘촘하면서도 질겨, 붓을 받아들이는 힘이 남달랐다. 그 옆에는 휘주에서 진상된 자옥 벼루가 놓여 있었고, ‘천추광’이라 새겨진 오래된 먹도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앞쪽의 필가에는 크고 작은 붓 수십 자루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붓대는 모두 상비죽과 상아로 만들어진 것이었다.계연수는 아직 집안이 기울기 전, 아버지가 좋은 붓과 종이, 먹을 구하는 것을 즐겨 하셨던 기억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궁중의 물건에는 미치지 못했다.이렇게 좋은 것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을 보니, 그녀는 저도 모르게 하나하나 손에 들어 한참을 만지며 감상했다.안료 또한 빼어나, 석록색을 살짝 찍어 종이에 시험 삼아 발라 보았다. 색이 겹겹이 쌓이면서도 탁해지지 않고, 맑고 투명하게 살아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계연수는 속으로 감탄하며, 이렇게 좋은 색은 쓰기가 아까울 정도라고 느꼈다.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용춘에게 화구를 정리하게 하고, 자단목 화안 앞에 앉았다. 종이를 진지로 눌러 고정하고 먹을 갈며 천천히 생각에 잠겼다.옆에 펼쳐 둔 옛 그림을 다시 한 번 바라본 뒤, 한참을 고심하다가 비로소 붓을 들었다.*심서준이 찾아왔을 때는 이미 해가 기울어 가는 무렵이었다.방 안에 들어섰을 때도, 계연수는 여전히 책상에 엎드린 채 붓을 놀리고 있었다. 옆의 작은 쟁반에는 이미 몇 장의 초안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계연수는 그림에 온전히 몰두해 있어, 심서준이 들어온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심서준은 주변에 사람들에게 방해하지 말라는 눈짓을 보내고는 조용히 책상 앞에 서서 그녀가 그려 둔 초안을 집어 들었다. 몇 번의 간결한 붓질만으로도 이미 형태와 기운이 살아 있었다.그는 계연수의 집중한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가볍게 웃으며 초안을 내려놓고 옆에 조용히 앉았다.처음에는 계연수가 사양하지 못해 억지로 이 일을 맡은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오히려 즐기고 있는 듯했다.계연수는 윤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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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3화

몇 마디 인사를 더 나눈 뒤, 심서준은 계연수를 데리고 먼저 자리를 떴다.강현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한 번 더 바라보다가, 다시 응휘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자단 화안 위에는 한 폭의 그림이 고요히 놓여 있었다.아직 채색되지 않았음에도, 난초의 형상은 이미 살아 있는 듯 생동했다.옆에 겹쳐 놓인 열 장 남짓의 초안들을 바라보며, 강현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그는 손을 들어 종이 위에 살며시 얹었다.그리고 아무 말 없이 뒤편의 배나무 의자에 앉아, 한참이나 그 그림을 바라보았다.*한편, 계연수는 심서준의 손에 이끌려 걸음을 옮겼다.심서준의 보폭은 크고 빨라, 그녀는 거의 따라잡기 벅찼다. 결국 참지 못하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후작께서… 조금만 천천히 걸어주세요.”그제야 심서준은 자신도 모르게 서두르고 있었음을 깨닫고 걸음을 늦췄다.다행히 길은 길지 않았다.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는 곧장 계연수를 문 뒤로 밀어 붙였다.말없이 쏟아지는 입맞춤이 이어졌다.심서준의 입맞춤은 거칠고도 급했다.그는 그녀의 턱을 잡아 고개를 고정시키고, 망설임 없이 입술을 벌려 깊이 파고들었다. 손끝에는 힘이 실려, 그녀가 고개를 돌려 피하려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계연수의 등은 조각 문양이 새겨진 문에 닿아, 은근한 통증이 전해졌다.고개는 뒤로 젖혀지고, 입술은 닫을 틈도 없었다. 턱을 붙잡힌 채,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자세가 되어 버렸다.낯설고도 격렬한 입맞춤에, 그녀는 숨이 가빠졌다.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소리는 더욱 그녀를 당황하게 했다. 문 밖에는 궁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혹여 이 소리가 전해진다면 황후에게 또다시 흠잡히지 않을까.그러나 가슴을 밀어내려는 힘은 심서준을 조금도 움직이게 할 수 없었다.허리를 단단히 잡는 손길과 함께, 그녀의 몸은 자연스럽게 침상 쪽으로 이끌렸다.계연수의 마음속에 긴장과 두려움이 번졌다.거칠어진 숨소리와 깊게 가라앉은 그의 눈을 보며 그가 무엇을 하려 하는지 깨달았다.그녀는 힘을 주어 밀어내려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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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4화

계연수는 이미 물 위에 떠 있는 배처럼, 밀려드는 파도에 따라 오르내리며 그 흐름 속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잠잠해졌던 숨결이 다시금 가늘게 떨리며 흘러나왔다. 감당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감각이 이미 그녀의 이성을 깊이 잠식해 버린 뒤였다.바깥은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궁인들이 아직 등불을 들이지 않아, 방 안은 어둑하게 가라앉아 있었다.심서준은 몸을 살짝 일으켜 앉았다.계연수를 끌어안아 자신의 무릎 위에 앉히고,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여전히 여운 속에 잠겨 있는 듯한 얼굴을 바라보며 그는 애틋함과 다정함이 뒤섞인 입맞춤을 한참이나 이어갔다.계연수가 겨우 정신을 조금 되찾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을 때, 그 눈동자는 물기를 머금어 반짝였고, 비를 맞은 듯 촉촉했다. 붉게 물든 뺨은 아직 가라앉지 않은 채였다.심서준은 그녀의 수줍음을 알고 있었기에 굳이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흐트러진 옷깃을 정리해 주며 이마를 가볍게 맞대고 낮게 물었다.“피곤한 것이냐?”계연수는 온몸에 힘이 빠져 있었다.말을 할 기운도 없었고, 조금 전 일을 되짚어 생각할 여력조차 없었다.그저 심서준의 가슴에 구겨진 옷자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심서준은 그녀의 나른한 모습을 보며 낮게 웃었다.“잠깐 자거라. 이따가 용춘을 들여보내 목욕을 시키게 하겠다. 오늘은 방 안에서 식사하면 된다. 내가 다 말해 둘 테니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거라. .”계연수는 여전히 그의 품에 기대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눈을 감은 채, 금세 잠에 빠져드는 듯했다.*다음 날 아침, 계연수가 눈을 떴을 때도 몸은 여전히 풀린 채 몽롱했다.심서준이 언제 떠났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몸은 무겁고 나른했지만, 황후 곁의 여관은 이미 정해진 시각에 문밖에 서 있었다.그녀의 아침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기에 계연수는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오전 내내 황후 곁에 서 있던 중, 손보경이 웃는 얼굴로 다과를 들고 찾아왔다.계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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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5화

계연수는 오전에 태자를 만나게 되면, 그림을 수정할 부분이 있는지 물어볼 생각이었다.그러나 아침 내내 찾아온 것은 이황자뿐이었고, 태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아침에 여러 후궁들이 황후에게 문안을 드리고 물러난 뒤, 황후가 자신에게 건넸던 말들이 다시 떠올랐다.황후는 말했다.남자의 후원은 결코 지나치게 억누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아무리 깊이 정을 주는 남자라 해도 그 마음은 길어야 십여 년일 뿐이고, 여인의 아름다움은 결국 시들게 마련이며, 더 젊고 더 고운 여인은 언제든 나타나게 되어 있다고. 지나치게 옥죄려 들면 오히려 더 큰 화를 부를 뿐이라고 했다. 특히 심씨 가문처럼 높은 문벌일수록 그런 일은 더욱 흔하다고.그 말을 하며 황후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넷째 대감의 이야기도 꺼냈다.넷째 다감은 심정우의 부친이었다.가장 엄정하고 고지식한 성정으로, 관직에서는 스스로를 엄격히 단속했고 자식들에게도 엄격했다.그런 그조차 네 명의 첩을 두었다.대가문에서는 자손의 번성을 무엇보다 중히 여긴다. 자식이 많을수록 그중에는 반드시 뛰어난 이가 나오고, 가문이 번창할 가능성 또한 커지기 때문이다.계연수는 황후의 뜻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처음부터 심서준이 평생 자신만을 두고 살 것이라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또한 황후가 왜 이런 말을 꺼냈는지도 알고 있었다.사옥현과의 화리가 외부에서는 단지 한 첩실 때문으로 보였을 테니, 황후로서는 그녀를 속 좁고 사소한 일에 집착하는 여인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그녀는 오전에 몇 마디 설명을 덧붙이긴 했다.하지만 황후의 담담하고도 냉정한 한마디에, 더는 아무 말도 이어갈 수 없었다.“자신이 남자의 유일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이야말로 여자로서 가장 어리석은 생각이다.”그 순간, 계연수는 깨달았다. 아무리 설명해도 황후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같은 여인이라 해도 겪어보지 못한 고통은 알 수 없는 법이다. 설명과 변명은 그저 공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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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6화

강현이 들어왔을 때, 계연수는 아직도 넋을 놓고 있었다. 곁에 있던 용춘이 낮은 목소리로 한 번 일깨워 주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니, 명황색 의복을 입은 태자가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계연수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올리려 했으나, 강현은 미소를 띤 채 손을 가볍게 저으며 그녀에게 앉아 있으라며 예는 갖추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그는 말을 하며 계연수의 곁으로 다가와 탁자 위에 놓인 그림을 내려다보았다.“이 그림은 어제 이미 보았습니다. 오늘은 따로 한 번 들러본 것뿐입니다. 아주 훌륭하더군요. 형상뿐 아니라 그 기운까지 고스란히 담아냈어요. 다만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말을 마친 강현은 손을 들어 옆에 그려진 나비를 가리켰다.“외숙모께서는 어찌하여 이 나비를 덧그릴 생각을 하셨습니까?”계연수는 그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가, 다시 조용히 대답했다.“신첩이 듣기로 이 꽃은 향이 유난히 짙어 서역의 푸른 나비를 가장 잘 끌어들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마리를 더해 본 것입니다.”그 말을 들은 강현은, 생동감 있게 그려진 푸른 나비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참으로 절묘하군요. 이 나비 한 마리를 더하니, 그림에 한층 더 생기가 깃들었습니다. 아마 폐하께서도 이번에는 분명 흡족해하실 것입니다.”그는 말을 마치고 계연수를 향해 공손히 손을 모아 예를 표했다.“외숙모께서 애써 주셨습니다.”계연수는 오히려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나비를 더한 것은 그저 순간 떠오른 생각이었고, 혹시라도 기억이 틀린 것은 아닌지 내심 확신도 없었다. 자신의 판단이 섞여 있던 일이었는데, 이렇게 태자가 만족해하며 예까지 표하니, 그 신분을 생각하면 도무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는 급히 한 걸음 물러서며 다시 예를 올리며 사양했다.강현은 고개를 들어 계연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가까이서 그녀를 보고, 또 그녀의 말을 듣고 있으니, 말투에는 아직 어딘가 서툰 기색이 남아 있었다.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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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7화

그녀는 곧 몸을 씻고, 이른 시간에 침상으로 향했다.그날 심서준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찾아왔다. 막 도착하자마자 계연수가 몸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는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들어가 보니, 그녀는 얇은 옷차림으로 은사 백합 무늬의 큰 베개에 기대앉아, 그릇에 담긴 유락 앵두를 한 입씩 떠먹고 있었다.보아하니 제법 맛있게 먹는 모양이었다.심서준이 다가오자, 계연수도 그를 알아보고는 손을 멈췄다.그는 그녀의 곁에 앉아 손을 뻗어 이마를 짚으며 걱정스레 물었다.“어디가 불편한 것이냐?”계연수는 입을 열었다가, 그의 걱정 어린 눈빛을 마주하자 문득 마음 한켠이 찔렸다. 그래서 작게 말했다.“그냥 머리가 좀 아프네요. 아마 그림을 오래 그려서 그런 것 같아요.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예요.”심서준은 여전히 미간을 찌푸린 채, 길고 단정한 손가락으로 그녀의 희고 단아한 얼굴을 살며시 쥐고 이리저리 살폈다. 물기 어린 살구빛 눈, 옅게 물든 뺨, 그리고 촉촉한 입술까지. 기색만 보면 딱히 아픈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이내 그녀가 들고 있는 유락 앵두를 흘끗 보며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머리가 아프다면서도 먹는 건 또 챙기고 있었다.그가 올 때 이미 식사를 마쳤다는 말을 들었으니, 입맛도 나쁘지 않은 듯했다.손을 놓으며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방금 황후 마마께 말씀드려 두었다. 태의를 부르라 했으니 와서 진맥을 보게 하겠다.”계연수는 순간 멍해졌다. 이제 와서 태의를 부르지 말라고 하자니 이미 늦은 듯했고, 속으로는 슬며시 후회가 밀려왔다.곧 태의가 도착했고, 황후 마마도 함께 들렀다. 계연수가 그림을 오래 그리다 두통이 왔다는 말을 듣고 황후는 부드럽게 말했다.“이 일에 너무 마음 쓰지 않아도 된다. 돌아가서 천천히 그려도 괜찮다.”계연수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태의는 맥을 짚어 보고 별다른 이상은 없다고 했으며, 그저 지나치게 무리하지 말라는 말만 남겼다. 약조차 필요 없다는 진단이었다.태의와 황후가 돌아간 뒤, 심서준은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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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8화

심서준의 그 압박감 어린 한마디는 계연수에게 있어 가장 머리가 저릿해지는 순간이었다.왜냐고 묻는다면 그건 도무지 입에 올리기 어려운 일이었다.그럼에도 계연수는 이를 악물고 입을 열었다. 손을 아랫배에 얹은 채, 작게 말했다.“조금… 시큰해서요.”심서준이 잠시 말을 멈췄다. 그녀의 손길을 따라 시선을 떨군 그는, 곧 손을 덮어 얹어 부드럽게 문질렀다.“시큰하다고? 불편한 것이냐? 방금 태의가 왔을 때는 왜 말하지 않았느냐?”계연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태의는 남자였고, 곁에는 황후 마마까지 서 있었으니,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는 일이었다.게다가 심서준이 아직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하자,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는 다시 어렵게 말을 이었다.“어제 그 일 이후로 좀 시큰해요. 지난번에도 그랬는데, 하루 이틀 지나니 괜찮아졌습니다.”그제야 심서준은 그녀의 뜻을 알아들었다. 그는 이런 일 뒤에는 오직 즐거움만 따르는 줄로만 알았지, 몸이 이렇게 시큰해질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계연수가 왜 거짓말을 했는지도 금세 이해가 되었다. 그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고,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안은 채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낮게 말했다.“내일 태의에게 물어보겠다. 왜 그런 건지.”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계연수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이런 일로 심서준이 태의에게 묻는 건, 도저히 바라지 않았다.사실 이유쯤은 그녀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저 지나치게 좋았기 때문이고, 금세 괜찮아질 것이었다.그러나 심서준은 여전히 진지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런 일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앞으로 너와 나 모두에게 좋을 테니.”계연수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앞으로. 너와 나.그 두 마디가 가슴 깊숙이 내려앉았다.계연수는 멍하니 굳어버렸다. 심서준은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오늘 네가 아프다 하여, 황후께서 폐하께 말씀을 올렸다. 오늘 밤은 내가 궁에 남아, 너를 지켜볼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그러고는 남아 있던 유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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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9화

계연수는 눈을 감았다.그녀는 줄곧 심서준 앞에서는 늘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훗날 두 사람이 진정한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해도, 스스로 알고 있었다. 자신은 그를 거부하지 못할 것이며, 애초에 어떻게 거부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어쩌면 흐름에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 모른다.그녀는 굳이 정절을 지켜야 할 사람도 아니었고, 누구를 위해 지킬 이유도 없었다.눈을 감은 채 한참을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던 계연수는, 이내 피곤함에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막 잠에 들려는 순간, 몸이 다시 뒤집히며 심서준을 향하게 되었다.심서준의 옷깃은 느슨하게 풀려 있었고, 그 안으로 드러난 단단하고 탄탄한 가슴은 평소의 문신다운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달아오를 만큼 선명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계연수는 반쯤 감긴 눈으로 잠시 바라보다가, 곧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나 곧 뜨거운 숨결이 가까이 다가왔고, 턱이 살짝 들리며 깊은 숨이 섞인 입맞춤이 내려앉았다.꼭 다물려던 입술은 심서준의 손길에 의해 살짝 벌어졌고, 이어지는 입맞춤은 촘촘하고 집요했다. 졸음에 젖은 그녀는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고, 이미 침상 위에 눌린 채 아무런 저항도 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이튿날 새벽, 아직 바깥이 밝아오기도 전이었다.계연수가 눈을 뜨자, 이미 단정히 차려입은 심서준이 몸을 숙인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계연수는 비단 이불 속에 몸을 파묻은 채, 잠에 취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조차 떠오르지 않았다.심서준은 낮게 웃음을 흘리며 그녀의 얼굴 곁에 손을 짚고 몸을 숙였다.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잠시 후 황후 마마를 뵈러 가야 한다. 너는 좀 더 자도 좋다.”그는 다시 한 번 깊은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틀 동안은 무리하지 말거라. 그 그림에도 너무 마음 쓰지 말고. 며칠 쉬었다가 이어 그리면 된다. 몸부터 잘 추슬러라, 자꾸 피곤하다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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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0화

계연수는 손보경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속내를 끝내 분명히 헤아리지는 못했다.다만 손보경은 늘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찾아와, 가벼운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다 오래 머무르지 않고 물러났다. 거리 또한 적절히 지키며, 때로는 함께 자수를 놓고 그 솜씨를 논하기도 했다.계연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손보경은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데 능했고, 타인과 가까워지는 법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규방의 이야기와 자수, 여인들 사이의 은근한 속내를 나누며,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 놓았다.사실 손보경의 마음속에도 계연수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뜻이 없지 않았다.어찌 되었든 계연수는 심서준의 부인이었고, 그 사실은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와 가까이 지내면, 넉넉하고 도량 있는 평판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황후와 심가의 호의 또한 얻을 수 있었다.이미 마음속에는 혼인할 상대도 정해 두고 있었다.지금 조정에서 가장 기세가 뜨거운 가문은 단연 심가였고, 심서준의 백부 쪽 집안 또한 번성한 명문으로 서로 깊이 얽혀 있었다. 그 집안 가운데서도 예부주사로 재직 중인 심한율이 눈에 들어왔다. 나이 스물하나, 삼 년 전 과거에 급제한 인재로 재능이 뛰어났으며, 종가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적손이었다. 또한 몸가짐이 단정해 첩도 두지 않았고, 아직 정해진 혼약도 없었다. 경성 안에서 따져 보아도 꽤 만족스러운 인물이었다.이러한 까닭에, 손보경은 그간 정종현에게 몇 차례 편지를 보내, 절대 계연수에게 손을 대지 말라 당부해 두었다.며칠 함께 지내는 사이, 손보경은 이미 계연수를 어느 정도 꿰뚫어 보았다. 그 정교한 공필화 솜씨를 본 뒤로는, 그녀의 재능과 성품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계연수는 여느 귀족 규수들처럼 속셈이 깊지 않았고, 심서준이 날마다 찾아오는 모습을 보아하니, 분명 마음 깊이 아끼는 존재였다. 이런 사람에게 손을 댄다면, 결국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길일 뿐이었다.이제 그녀는 완전히 마음을 접었다.처음의 그 억울함도 사라지고, 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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