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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6화

작가: 경옥
강현이 들어왔을 때, 계연수는 아직도 넋을 놓고 있었다.

곁에 있던 용춘이 낮은 목소리로 한 번 일깨워 주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니, 명황색 의복을 입은 태자가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계연수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올리려 했으나, 강현은 미소를 띤 채 손을 가볍게 저으며 그녀에게 앉아 있으라며 예는 갖추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는 말을 하며 계연수의 곁으로 다가와 탁자 위에 놓인 그림을 내려다보았다.

“이 그림은 어제 이미 보았습니다. 오늘은 따로 한 번 들러본 것뿐입니다. 아주 훌륭하더군요. 형상뿐 아니라 그 기운까지 고스란히 담아냈어요. 다만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말을 마친 강현은 손을 들어 옆에 그려진 나비를 가리켰다.

“외숙모께서는 어찌하여 이 나비를 덧그릴 생각을 하셨습니까?”

계연수는 그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가, 다시 조용히 대답했다.

“신첩이 듣기로 이 꽃은 향이 유난히 짙어 서역의 푸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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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문춘귀   제508화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익숙했다.계연수가 돌아보자, 심서준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태자 전하를 향해 예를 올리고 있었다.입궁한 이래, 계연수가 아침 시간에 심서준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그가 태자에게 예를 올리는 모습을 보자, 그녀도 급히 다가가 그의 곁에 서서 함께 몸을 굽혔다.강현은 그 모습을 보고는, 다시 심서준에게로 눈길을 돌렸다.이 시각에 온 것을 보니, 아마 외숙모가 부황께 불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들어온 것이리라 짐작했다.그는 미소를 띠고, 손을 뻗어 직접 심서준의 팔을 들어 올렸다.“외숙부께서는 외숙모를 찾으러 오신 듯합니다. 마침 저도 처리할 일이 있어, 오신 김에 잘 되었습니다.”계연수는 두 사람이 몇 마디를 더 나누는 것을 듣고 있다가, 태자가 돌아서 떠나자 비로소 몸의 긴장을 조금 풀었다.곧 손이 잡혔다. 심서준의 따뜻한 손이 그녀의 손을 감싸 쥐었다.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오늘 폐하를 뵈었느냐?”계연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황제의 서재에 다녀온 일을 하나하나 자세히 전했다.심서준은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았다.봄빛이 가득한 어화원 속에서, 꽃들이 한창 피어 있는 가운데 서 있는 계연수는 그 자체로 생기와 온기를 품고 있었다.그는 마음 한켠이 조금 느슨해지는 것을 느꼈다.그녀의 표정을 보아하니, 별다른 곤란은 겪지 않은 듯했다.사실 그는 늘 한 가지를 염려하고 있었다.황제가 계연수의 부친 일을 이유로, 그녀에게까지 경계를 품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제왕의 마음에 남은 미약한 연민은, 권력 앞에서는 언제나 사소한 것이었다.요 며칠 그는 바빴다.그날 이후로 제대로 찾아오지도 못했는데, 오늘은 관아에 있다가 소식을 듣고 곧장 달려온 것이다.그녀가 무사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이어서 계연수는 황제가 남은 백방을 맡겼다는 이야기와 태자가 금작약 한 그루를 보내겠다는 말까지 전했다.심서준은 고개를 살짝 기울여 그녀의 희고 단정한 얼굴을 바라보며 낮게 답했다.그러고는 아

  • 주문춘귀   제507화

    강현은 미소를 지었다.“그저 궁금했을 뿐입니다. 외숙모의 공필은 단정하고 치밀하여 산수에는 익숙하지 않을 듯했는데, 모후께서는 오히려 산수화가 더 눈에 든다 하시더군요. 그래서 더 궁금해졌습니다.”계연수는 황후가 자신의 산수화를 본 적이 있다는 사실에 잠시 놀랐다. 마음을 정리할 틈도 없이, 되물었다.“전하께서도 그림 감상을 좋아하십니까?”강현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답했다.“서재에 명가의 화첩 몇 점을 두고 있습니다. 가끔은 저도 붓을 잡아 보기도 하지요. 다만 외숙모의 솜씨에는 미치지 못합니다.”계연수는 서둘러 겸손히 말했다.“신첩의 그림은 그저 규방에서의 소일일 뿐입니다. 감히 전하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전하께서 괘념치 않으신다면, 다음에 함께 올리겠습니다.”강현은 옅게 웃었다.“좋습니다.”이렇게 이야기가 정해지고, 두 사람은 함께 어화원으로 향했다.어화원의 꽃들은 모두 정성껏 길러진 것이었다. 바깥에서는 보기 어려운 꽃들도 이곳에서는 그저 평범한 풍경처럼 자리하고 있었다.봄철이라 온갖 꽃이 만개하고, 향기는 공기 속에 은은히 퍼졌다. 정원 곳곳은 정교하게 꾸며져 있었고, 굽이진 길은 깊은 곳으로 이어져 끝이 보이지 않을 듯했다.계연수는 금작약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마침 작약이 한창 피어나는 시기였고, 눈앞의 한 그루는 유난히도 풍성하고 선명하게 피어 있었다.그녀는 살짝 몸을 숙여, 가까이에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겹겹이 쌓인 꽃잎과 촘촘히 모인 꽃술.가운데는 밝은 황색이 띠처럼 둘러져 있었고, 바깥쪽 꽃잎에는 연지빛이 번져 있었다. 햇빛 아래에서는 마치 금박을 입힌 듯 은은한 빛이 흘렀다.계연수는 이 꽃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금대위’라 불리기도 하는, 매우 드문 품종.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그래서 더욱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았다.이전에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눈앞에서만 느껴지는 그 특별함과 아름다움. 주변의 다른 화려한 작약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그녀는 조용히 감탄했

  • 주문춘귀   제506화

    계연수는 황제가 아버지의 이름을 꺼내는 순간,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그러나 곧 다시 시선을 떨구고,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그 어떤 반응도 보일 수 없었다.그녀의 아버지는 죄인으로 죽은 사람이었다. 어떤 말도, 어떤 표정도 옳을 수 없었다.황제는 그런 계연수의 얼굴을 잠시 살폈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에는 아무런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그 역시 크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지는 않았다. 제왕이라는 자리는 언제나 선택과 버림을 요구하는 법이니까.계정윤 또한 제 몫의 운명을 다했을 뿐이었다. 억울함을 풀어 줄 수는 없지만 그의 딸에게 조금쯤 보상해 주는 것은 가능했다.황제는 곁에 선 강현을 향해 말했다.“이 일은 네가 심씨 둘째 마님에게 잘 전하거라.”강현은 곧장 답했다.“폐하께서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반드시 잘 처리하겠습니다.”계연수는 강현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강현은 그녀에게 화보 한 권을 건넸다. 아직 그리지 않은 그림이 네 폭 남아 있었는데, 모두 보기 드문 꽃들이었다.경화, 하판란, 선객래, 금작약.이 정도는 계연수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였다가, 태자를 향해 물었다.“신첩이 이틀 뒤면 출궁하게 됩니다. 돌아가면 시간이 넉넉하지 않을 듯한데… 이 그림들은 언제까지 완성하면 됩니까?”강현은 미소를 지었다.“급하지 않습니다. 언제든 좋아요. 연말이 되어도 괜찮습니다.”그 말을 듣고 계연수도 마음이 놓였다.“그렇다면 한 폭씩 완성될 때마다 사람을 시켜 먼저 전하께 올리겠습니다.”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워, 마치 꾀꼬리 소리처럼 은은했다.강현은 그 눈빛을 바라보며 잠시 시선을 두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습니다.”그리고 이내 덧붙였다.“이 꽃들은 어화원에도 있습니다. 보고 싶다면 지금 함께 가 볼 수도 있어요.”사실 계연수도, 꽃을 먼저 보고 그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실제의 생김과 기운을 보아야만 그림에 생동을 담을 수 있었으니까.가 보고 싶기는 했지만

  • 주문춘귀   제505화

    계연수는 황제가 자신을 부른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살짝 조여들었다.황후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낮은 목소리로 일렀다.“폐하께서 네 그림을 보신 모양이다. 이만 가 보거라.”계연수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황후는 다시 한 번 그녀를 바라보며 덧붙였다.“폐하는 본궁과 완전히 다르다.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내가 가르친 규범들, 모두 기억하고 있느냐?”계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염려 마십시오, 황후 마마. 모두 익혔습니다.”황후는 본래도 계연수를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방금의 말도 그저 한 번 더 주의를 주려는 것이었을 뿐이었다. 손을 가볍게 들어 올려, 서둘러 다녀오라 이르렀다.전갈을 전하러 온 두 명의 궁녀를 따라나서는 동안, 계연수의 마음은 전혀 진정되지 않았다.이번이 황제를 처음으로 뵙는 자리였다.더구나, 예전 계부 역시 황제의 한 마디 판결로 무너졌던 기억이 있었다.그 감정은 쉽게 설명할 수 없었다.그날 감옥에서 아버지를 만났을 때, 그는 원망하지 말라 했었다.세상은 본래 이러하니, 흥망이 교차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흐름이며, 굴러가는 먼지와도 같은 것이라 했다.어디에도 완전한 공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생각은 멀리까지 흘러갔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문 앞에 서 있었고, 옆에서는 궁인이 공손히 안으로 들라 청하고 있었다.계연수는 소매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안으로 들어섰다.그곳은 황제의 서재였다.한쪽에는 태자 강현이 서 있었고, 방 안에는 용연향의 향내가 은은히 퍼져 있었다. 그 향은 자연스레 사람을 눌러앉히는 듯한 위압감을 지니고 있었다.계연수는 감히 시선을 올리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어 예를 올렸다.강현은 고개를 낮춘 채, 계연수를 내려다보았다.무릎을 꿇은 그녀의 몸은 단정하고도 가녀렸고, 방 안의 빛은 모두 그녀의 옅은 푸른 옷자락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황제 또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계정윤의 딸.한때 그가 가장 아끼던 아이. 궁연에 데려와 품에 안고 다니던

  • 주문춘귀   제504화

    심서준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그 안에 담긴 기색은 이전과는 달랐다.계연수는 그 미묘한 변화를 눈치챘다.눈앞에 선 심서준의 깊고 어두운 눈빛을 마주하자 마음이 조용히 조여들었다.그러나 그의 시선 속에서 그녀는 여전히 순순히 입을 열었다.“부군…”그 한마디가 떨어지자마자, 심서준은 숨을 깊이 들이켰다.곧장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붙잡듯 덮쳤다.며칠이나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고 입맞춤조차 하지 않았던 터였다.억눌려 있던 것이 한순간에 번져 올라, 그는 그대로 계연수를 좁은 귀비탑 위로 밀어 눌렀다.길고 단정한 손가락이 망설임 없이 그녀의 옷깃을 풀어냈고, 곧장 그녀를 끌어안듯 입맞추었다.스치듯 전해지는 감각이 아프면서도 간지러워, 계연수의 입가에서 낮은 숨이 새어 나왔다.심서준은 말이 없었다.거의 반쯤 풀어진 그녀를 안아 들어 그대로 침상으로 옮겼다.문 밖의 궁인들은 이미 물러나 있었지만, 그에게 허락된 시간은 고작 반 시진 남짓이었다.턱없이 부족했다. 화려한 발보침상의 장막이 내려앉았다.그는 계연수에게 말을 꺼낼 틈조차 주지 않았다. 드물게 드러나는 강압적인 기색으로, 그녀의 두 손을 머리 위로 눌러 묶듯 붙들고는 자신의 옷자락을 정리했다.계연수는 희미하게 스며드는 장막 속 빛 아래에서, 멍하니 그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심서준의 시선 역시 그녀를 향해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몸짓은 거침없이 그녀를 파고들 듯 다가왔지만, 그의 얼굴에는 오히려 욕망보다는 눌린 듯한 엄중함이 어려 있었다.이내 그는 몸을 낮추며 낮게 말했다.“연수야, 조금만 참거라.”그것은 묻는 말도, 달래는 말도 아니었다. 그저 따라야 할 명령처럼, 그녀를 향해 내려온 말이었다.계연수는 눈앞의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지금의 심서준은 어린 시절 그녀가 알던 그와 다르지 않았다.늘 자신의 중심에서 모든 것을 정돈하고,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사람.그 순간, 그녀 역시 그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몸이 들려 올라가고, 입술이 막히며, 낮게 눌린 숨이 흘러나왔다

  • 주문춘귀   제503화

    황후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결국 한숨처럼 내뱉었다.모든 것은 결국 자신의 동생이 억지로 붙잡고 있었던 것이었음을.순간 마음속이 복잡해졌다.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얽히고설켜 올라왔다.그날 오후, 심서준이 또다시 문안 인사를 드리러 왔다가 곧장 계연수에게 향하려 하자, 황후가 그를 불러 세웠다.심서준의 마음은 온통 계연수에게 가 있었다.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왔기에, 그녀 곁에 머물 수 있는 시간도 고작 반 시진 남짓이었다. 그는 못내 성급한 기색으로 돌아섰다.황후는 며칠 빠진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찾아오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 눈에 어린 미묘한 짜증까지 놓치지 않았다.그러나 얼굴에는 아무런 기색도 드러내지 않은 채, 방금 전 계연수와 나눈 대화를 조용히 전해 주었다.황후의 마음속 생각은 분명했다.만약 계연수가 자신의 동생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면, 굳이 자신의 동생이 일방적으로 매달릴 이유는 없었다.세상에 여인은 많으니 그의 동생이 굳이 이런 마음의 손해를 감당할 필요는 없었다.황후의 말을 들은 심서준의 시선이 잠시 멈췄다.이내 그는 낮게 입을 열었다.“앞으로는 제 부인 앞에서 그런 말씀은 삼가 주십시오. 괜한 생각을 하게 될까 염려됩니다. 애초에 저는 다른 여인에게 뜻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황후는 비웃듯 웃었다.“괜한 생각? 차라리 그런 생각이라도 했으면 좋겠구나. 내가 말하지 않으면, 네게 마음이 없다는 걸 어떻게 알겠느냐? 그토록 마음이 없는 사람이, 어찌 너에게 시집을 왔겠느냐. 대체 무엇을 바라고?”심서준은 담담히 황후를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조용히 말했다.“그녀가 바라는 것이라면, 제가 줄 수 있으면 충분합니다.”황후는 그의 말을 듣고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그가 돌아서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간을 짚고 가볍게 문질렀다. 묘하게 머리가 아파왔다.*심서준이 계연수의 처소에 도착했을 때, 계연수는 귀비탑에 앉아 자수를 놓고 있었다.솔직히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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