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주문춘귀: Bab 971 - Bab 980

1070 Bab

제971화

황제는 본래부터 심씨 가문의 높은 명망을 경계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번 일을 빌미로 관직에 있는 심씨 일족을 모조리 파직할지도 몰랐다.심태숙의 우려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다.지금 황제가 손보경의 고발을 이용해 심씨 가문을 억누르려 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조정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번 일이 단순한 탄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황제와 태후, 그리고 심씨 가문이 서로의 힘을 견제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황제는 가장 먼저 심서준에게 관인을 반납하게 했다.설령 심서준이 끝내 아무런 죄도 입지 않고 무사히 벗어난다 해도, 결당하여 사익을 꾀했다는 혐의는 심씨 가문 전체를 겨냥하고 있었다. 심씨 가문의 다른 관리들도 얼마든지 이를 구실로 파직될 수 있었다.심태숙이 심서준의 서재를 찾아왔을 때, 심서준은 막 아버지의 처소에서 돌아온 참이었다.그는 편안한 짙은 녹색 겉옷을 걸친 채 서안 앞에 앉아 쌓여 있는 서신을 처리하고 있었다. 관직에서 물러난 사람답지 않게 침착한 모습이었다.심서준의 직무 정지는 며칠 동안 조정과 민간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도찰원의 동료들과 청류파 관원들은 하나같이 분개했다. 그중에는 심서준의 결백을 밝히겠다며 직접 상소를 올리려는 사람도 있었다.태후의 탄핵이 사사로운 원한에서 비롯된 무고라는 사실은 바보가 아닌 이상 누구나 알 수 있었다.하지만 심서준은 그들에게 일일이 답신을 보내 만류했다.삼법사가 반드시 진상을 밝혀낼 것이니, 황제와 삼법사의 공정한 판단을 믿고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심서준은 지금 심씨 가문의 말과 행동을 금의군이 낱낱이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심씨 가문에서 오가는 서신 한 통, 찾아오는 사람 하나까지도 빠짐없이 기록되어 황제의 어안 위에 올라갈지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오히려 죄를 지었기에 조급해한다는 빌미를 내어 줄 수 있었다.그래서 심서준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수하들을 시켜 영청후부 사건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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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2화

말을 마친 심서준은 지친 듯 눈을 감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문득 계연수의 아버지에게 변고가 닥쳤던 해, 자신의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계정윤이 심씨 가문과 그토록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더라면, 어쩌면 한 가닥 살길이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아버지가 관직에서 물러난 것도 바로 그해였다. 조정을 뒤흔들 만큼 막강했던 심 수보가 스스로 물러나자 황제는 비로소 경계를 풀었고, 그 뒤부터 심서준을 중용하기 시작했다.결국 황제가 심씨 가문을 신뢰하는 것과 경계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황제는 심씨 가문을 믿으면서도 그 명망과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져 조정의 판도마저 좌우하게 되는 것을 우려했다.심태숙은 넋을 잃은 채 심서준의 말을 들었다. 뒤늦게 그 뜻을 온전히 깨닫자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몸이 몇 번이나 휘청거렸고, 하마터면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이내 참지 못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심 수보는 평생 조정에서 청렴하고 올곧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결국 황제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경성조차 떠나, 남은 평생을 고향에서 보내야 했다.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심태숙에게는 자신의 벼슬길도 더는 그리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하고 싶은 말이 수없이 많았지만, 이제는 단 한마디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심서준은 그런 심태숙을 바라보다가 다시 현실적인 문제를 짚었다.“금의군은 틀림없이 넷째 형님도 조사할 것입니다. 태후가 심씨 가문을 결당과 모함으로 탄핵한 일은 우선 제쳐 두셔도 됩니다.”심태숙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스쳤다.심서준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지금 형님께서 더 걱정해야 할 것은 따로 있습니다. 그동안 관직에 있으면서 금의군에 발각될 만한 일을 한 적이 없는지부터 돌아보십시오.”그 말에 심태숙의 얼굴이 그대로 굳었다. 가슴속으로 서늘한 기운이 훑고 지나갔다.관직 생활을 하면서 티끌만 한 허물조차 남기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작은 과오도 지금 같은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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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3화

이제 심씨 노부인은 손보경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눈앞이 어지럽고 머리가 지끈거렸다.그녀는 더 이상 그 이름도, 며칠 사이 벌어진 일도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았다. 결국 시녀에게 자신을 부축해 방으로 데려가라 이른 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쉬고 싶다고 했다.계연수가 다가가 직접 부축하려 하자 심씨 노부인은 힘없이 손을 저었다.“너도 따라올 것 없다. 지금은 그저 혼자 있고 싶구나.”계연수는 더 권하지 않고 조용히 물러났다.밖으로 나오자 때마침 만씨가 분에 못 이겨 손보경을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우리 심한율이 그 아이에게 대체 무엇을 잘못했단 말이냐? 나 또한 언제 그 아이를 박대한 적이 있다고!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것을 며느리로 들였다니!”곁에 있던 진씨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을 보탰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심한율이 직접 그러지 않았습니까? 요즘은 손보경과 사이가 한결 좋아졌으니, 그 아이가 절대 심씨 가문을 고발하지 않을 거라고요. 헌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꿀 수가 있죠?”만씨는 답답한 듯 가슴을 두드리고 발을 구르며 울분을 토했다.“그걸 누가 알겠느냐!”하지만 계연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손보경이 궁에 들어간 순간부터 심씨 가문을 고발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더 이상 그녀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태후는 반드시 손보경에게 심씨 가문을 고발하도록 강요했을 것이다.태후가 손보경이 직접 나서지 못하게 막은 것도, 혹시라도 그녀가 말을 잘못해 거짓이 탄로 날까 두려워서일 가능성이 컸다.지난밤 심서준은 계연수에게 더 끔찍한 가능성까지 이야기했다.만약 손보경이 끝까지 협조하지 않는다면 태후는 그녀를 궁 안에서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그런 뒤 심씨 가문을 고발한 죄책감을 견디지 못해 죽음으로 자신의 뜻을 밝혔다고 꾸미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실제로 사람이 죽기라도 한다면 사건은 지금보다 훨씬 복잡하고 까다로워질 터였다.지금 태후는 오직 심씨 가문을 무너뜨리는 데만 마음이 쏠려 있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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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4화

계연수는 장부에 온 정신을 쏟고 있어 심서준이 다가오는 줄도 몰랐다.심서준은 그녀의 곁에 멈춰 서서 손에 들린 장부를 가만히 덮었다. 그러고는 귀비탑 한쪽에 앉아 손바닥을 계연수의 배 위에 포개고 둥근 곡선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계연수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일은 다 끝낸 겁니까?”심서준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아직.”계연수는 더 묻지 않고 찻잔을 들어 차를 따라 주었다.심서준을 위해 특별히 우려 둔 오매자소차였다. 새콤한 오매에 향긋한 자소가 어우러져 머리를 맑게 하고 피로를 깨우는 데 좋은 차였다.심서준은 찻잔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 혀끝에 번지는 새콤달콤한 맛과 은은한 자소 향이 제법 정신을 맑게 해 주었다.찻잔을 내려놓은 그는 계연수를 품에 안고 좁은 귀비탑 위에 나란히 누웠다. 긴장이 조금 풀린 듯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눈을 감더니, 가슴 깊은 곳에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계연수는 그의 품에 기대어 옆으로 누웠다.눈을 감은 심서준의 얼굴에는 희미한 피로가 드리워져 있었다. 계연수는 손을 들어 살짝 찌푸려진 그의 길고 곧은 눈썹을 손끝으로 부드럽게 쓸었다.“부군, 많이 피곤하십니까?”심서준은 눈을 뜨지 않은 채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내 손가락 사이로 제 손가락을 끼워 넣어 단단히 맞잡고는 느릿하게 대답했다.“괜찮다.”그는 계연수의 체온을 느끼듯 맞잡은 손을 가볍게 움켜쥐었다.“그동안은 일이 많아 네 곁에 오래 있어 주지 못했는데, 이제는 마침 한동안 함께 지낼 수 있게 되었구나.”계연수는 더 이상 조정의 어수선한 일을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았다. 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밝은 목소리로 제안했다.“그럼 저와 바둑을 두실 겁니까?”심서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계연수를 바라보았다. 한쪽 눈썹이 미묘하게 올라갔다.“정말 나와 바둑을 두고 싶은 것이냐?”그 물음에 계연수가 생긋 웃었다.“지금은 조회에 나가실 필요도 없으니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으셔도 되잖아요. 처리할 공무도 전보다 줄었으니, 이번 기회에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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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5화

바로 그때 서재 문이 열리며 심 수보와 황제가 나란히 밖으로 나왔다.한쪽에 물러나 있던 여인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누구도 감히 두 사람의 표정을 살피지 못했다.황제는 심 수보를 경성의 성문 앞까지 직접 배웅했다.그 모습만 보면 최근 조정에서 벌어진 일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듯했다. 심씨 가문의 세 사람에게 직무 정지를 명한 이가 황제가 아닌 것처럼, 황제는 시종일관 스승을 공경하는 제자의 예를 다했다.이날 심 수보를 배웅하러 온 사람은 황제뿐만이 아니었다.그가 길러 낸 문하생들 중에도 남몰래 찾아온 이들이 적지 않았다.굳이 남몰래 와야 했던 까닭이 있었다. 심 수보는 떠나기 이틀 전 문하생들에게 일일이 서신을 보내, 자신이 출발하는 날에는 누구도 배웅하러 오지 말라고 당부했다.황제가 겉치레를 위해서라도 직접 자신을 배웅하러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자리에서 수많은 문하생이 몰려든 모습을 황제가 본다면, 아무래도 심기가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조정에서 오랫동안 교분을 나눈 옛 벗들은 더욱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정세에 조금이라도 밝은 사람이라면 이번 일이 심씨 가문에 엄청난 죄가 있어서 벌어진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지금 조정에서 심씨 가문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졌기에, 황제가 이 기회에 그 기세를 한 차례 꺾으려는 것뿐이었다.계연수는 뒤편의 마차 안에 앉아 멀어지는 황제와 태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시선을 돌려 출발을 앞둔 심 수보를 바라보았다.만날 때마다 인자하게 웃어 주던 사람이었다. 불과 어제만 해도 심서준의 곁을 지켜 줘서 고맙다고 다정히 말해 주었다.그런 그가 이제 정말 떠나려 하고 있었다.심 수보를 태운 마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심씨 가문 사람들의 마음에는 소중한 무언가가 텅 비어 버린 듯한 허전함이 번졌다.그날 밤, 심서준은 계연수가 잠들 때까지 곁을 지키며 다독였다.그녀의 숨소리가 고르게 가라앉은 것을 확인한 뒤에야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서재로 향했다.홀로 서안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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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6화

창밖의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었다.처마를 두드리는 빗소리가 어슴푸레한 새벽의 적막을 촘촘히 채웠고, 막 돌아온 심서준의 옷자락에서는 축축한 습기가 배어 나왔다.이제 겨우 인시를 넘긴 시각이었다. 평소라면 계연수가 벌써 일어나 있을 리 없었다.요즘 계연수는 식욕이 조금씩 돌아왔고 잠도 전보다 깊이 자는 편이었다. 더구나 이제는 아침마다 시어머니의 처소에 문안을 드리러 갈 필요도 없어, 자연스레 늦잠을 자는 버릇까지 들었다.심서준은 침상 곁으로 다가갔다.가까이에서 보니 계연수의 뺨은 창백했고, 눈가에는 밤새 잠들지 못한 듯 짙은 피로가 어려 있었다. 충혈된 눈시울마저 희미하게 붉었다.심서준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어찌 이리 일찍 일어난 것이냐?”심서준을 본 순간, 계연수는 밤새 가슴을 짓누르던 불안을 한꺼번에 내려놓았다. 크게 안도한 그녀가 곧바로 물었다.“부군, 어디에 다녀오신 겁니까?”심서준은 젖은 옷을 벗으며 느긋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권책에 약간 문제가 생겼다.”계연수는 곧바로 허리를 세워 앉았다.“무슨 문제인데요?”심서준은 축축한 겉옷을 벗어 한쪽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계연수를 안아 함께 침상에 오른 뒤, 물안개가 낀 듯 흐릿한 그녀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계연수는 기다렸다는 듯 그의 품으로 몸을 바싹 붙였다.그 모습에 심서준의 입가에 옅은 웃음이 스쳤다. 그는 그녀가 춥지 않도록 품 안에 단단히 감싸며 말했다.“누군가 권책에 손을 댔다.”계연수는 놀라서 즉시 고개를 들었다.“누가요?”심서준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짧게 답했다.“폐하.”자신이 신뢰하는 수하까지 움직여 권책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황제밖에 없었다.심서준이 빗속을 뚫고 한밤중에 밖으로 나간 것도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제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계연수는 충격을 받은 듯 굳어 버렸다.그러나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황제가 왜 그런 일을 했는지 금세 깨달았다.“폐하께서도 부군이 영청후부를 모함했다는 증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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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7화

계연수도 자신이 조금 성급하게 단정했다는 것을 깨달았다.지난번 심서준이 말했듯, 어떤 황제 아래에 있느냐에 따라 신하가 처신하는 방식도 달라지는 법이었다. 심씨 가문 역시 무작정 고립을 자처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그때 머리 위에서 심서준의 피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연수야, 이제 조금 자자.”계연수는 그제야 심서준이 지난밤 거의 한숨도 자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그녀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품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밤새 마음을 짓누르던 불안도 심서준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자 비로소 가라앉았다.두 사람은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 이른 아침의 고요 속에서 함께 잠이 들었다.그 뒤로 며칠 동안은 별다른 풍파 없이 평온한 시간이 흘렀다.다만 금의군이 이따금 심씨 가문을 찾아와 심서준에게 몇 가지 일을 묻고 돌아갔다.심서준은 겉으로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지만, 바깥의 동향은 여전히 심씨 가문에 빠짐없이 전해졌다.세가의 전횡을 혐오하는 청류파 관원들은 대부분 심서준을 지지했다. 그가 직접 움직이지 않는다 해도 대신 나설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다.더구나 심서준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날이 올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었다. 미리 몇몇 원로 대신을 만나 정세를 정돈해 두었고, 여론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지도 마련해 놓았다.가장 먼저 나선 사람은 도찰원의 검독어사였다.그는 상소를 올려 영청후부 사건의 권책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으며, 죄를 입증할 증거 또한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심서준이 죄를 날조해 영청후부를 모함했다는 탄핵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검독어사가 먼저 상소를 올리자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관원들도 하나둘 그 의견에 동조하기 시작했다.비슷한 시기, 경성 안에서도 영청후부 사건에 관한 소문이 갑작스레 퍼져 나갔다.대부분 영청후부가 오랫동안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는 이야기였다. 태후가 정사에 간섭하고 뒤를 봐주었기에 그들이 거리낌 없이 죄를 저지를 수 있었다는 말도 함께 나돌았다.과거 양주의 관리가 태후에게 뇌물을 바쳤던 일까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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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8화

그날 밤, 계연수는 일찌감치 하품을 터뜨렸다.바둑판 앞에 앉아 있기는 했지만 눈꺼풀이 자꾸만 내려앉았고, 정신은 이미 딴곳을 헤매고 있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심서준이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내가 일곱 수를 양보하겠다. 네가 이긴다면 오늘 밤은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마.”그는 바둑돌을 손가락 사이에 가볍게 굴리다가 고개를 들어 계연수를 깊이 바라보았다.“헌데 네가 진다면… 오늘 밤은 내 뜻을 따라야 할 것이다.”심서준의 눈빛에 담긴 뜻이 너무도 선명했다.계연수는 거의 한순간에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차렸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잠이 쏟아져 용춘에게 앵두를 한 접시 더 가져오라고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떨어지자 졸음도 먹을 생각도 순식간에 달아났다.계연수는 멍하니 심서준을 바라보았다.심서준은 역시 이 정도로 몰아붙이지 않고서는 계연수가 바둑에 집중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고고하고 단정한 얼굴에 의미심장한 기색이 서렸다.“듣자 하니 손을 묶고 눈을 가리는 것도 부부 사이에서는 색다른 정취가 된다더군.”계연수는 눈을 크게 뜬 채 그를 바라보았다.그러나 머릿속에는 저도 모르게 심서준이 말한 광경이 그려지고 있었다.눈은 천으로 가려지고 두 손마저 묶인 채, 잡아먹히기를 기다리는 어린 양처럼 심서준이 이끄는 대로 꼼짝없이 맡겨진 자신의 모습이었다.상상만으로도 등골에 오싹한 전율이 흘렀다.계연수는 심연처럼 깊고 검은 심서준의 봉황 같은 눈을 마주하자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우리…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되나요?”심서준은 그녀를 한 번 바라보고는 단호하게 거절했다.“안 된다.”그는 지난 판의 바둑돌을 하나씩 느긋하게 거두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거절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어조로 물었다.“누가 먼저 두겠느냐?”계연수는 불공평하다며 항의하고 싶었다. 하지만 심서준의 엄숙한 얼굴을 보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한참 망설이던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흥정했다.“열 수를 먼저 두게 해 주시면 안 되나요?”심서준의 목적은 애초에 계연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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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9화

심서준의 물음에 계연수는 잠시 얼떨떨해졌다. 그녀는 무승부라면 내기도 자연히 없던 일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심서준의 말투를 들어 보니, 아까 정한 벌칙은 여전히 유효한 듯했다.계연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그게 무슨 뜻이에요?”심서준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내가 너를 이겨야 내 승리인데, 비겼다는 건 결국 내가 이기지 못했다는 뜻이지.”짤막한 한마디였지만, 계연수는 그 속에 담긴 뜻을 단번에 알아차렸다.그가 이기지 못했다면, 결국 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그렇다면 진 사람이 받아야 할 벌은…계연수는 뺨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넋을 잃은 채 심서준을 바라보았다. 눈이 가려진 심서준이 도살을 기다리는 어린 양처럼 꼼짝도 하지 못한 채, 그녀가 마음대로 하도록 몸을 내맡기는 모습은 아무리 애써도 상상되지 않았다.그녀는 제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마저 낯설게 느껴졌다.“꼭… 꼭 지켜야 하나요?”심서준의 맑고 준수한 눈매가 붉은빛으로 물들어 가는 계연수의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 물론 그는 그녀를 놀리려는 것뿐이었다. 자신은 정말로 그래도 좋았지만, 계연수라면 틀림없이 부끄러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더욱이 계연수는 지금 아이를 품고 있었다. 회임한 뒤로 갸름하던 얼굴에도 살이 올라 한결 둥글고 윤택해진 데다, 성정마저 순하고 얌전했다. 설령 마음껏 자신을 다루도록 내버려 둔다 한들, 그녀가 무슨 대단한 짓을 벌일 수 있겠는가.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두 사람이 혼인한 지도 아직 얼마 되지 않았으니, 앞으로 함께할 날은 길고도 길었다.그는 일부러 엄한 표정을 지으며 눈썹을 치켜올렸다.“나와 한 내기가 그렇게 쉽게 없던 일이 되어도 되는 것이냐?”스스로 묶이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계연수도 난생처음이었다. 심서준이 아무리 기꺼이 응한다 해도, 정작 그녀는 차마 그런 짓을 할 수 없었다.계연수는 조심스레 타협을 시도했다.“그냥 벌을 주지 않으면 안 됩니까?”심서준은 느긋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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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0화

계연수는 심서준의 물음에 말문이 막혔다. 얼굴이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자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전 그런 생각 해 본 적 없어요.”심서준은 입꼬리를 슬쩍 당기며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뜨거운 숨결이 한데 뒤얽혔다.“헌데 내가 너에게 그러고 싶다면?”계연수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심서준은 생김새만 보면 더없이 반듯하고 고결한 사람이었지만, 낯 뜨거운 말을 할 때만큼은 누구보다도 막힘이 없었다. 일부러 자신을 놀리려고 이러는 줄 뻔히 알면서도, 계연수는 번번이 당황한 나머지 무어라 대꾸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그러다 그의 얼굴에 웃음기가 차츰 선명해지는 것을 보고서야 문득 깨달았다.심서준은 또 자신을 놀리고 있었다.계연수는 바둑판에서 바둑알 하나를 집어 그에게 던졌다. 그저 장난으로 한 짓이었는데, 바둑알은 공교롭게도 심서준의 얼굴을 맞힌 뒤 바닥으로 떨어졌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발치까지 데구루루 굴러갔다.계연수의 가슴이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움직임을 멈춘 채 심서준의 얼굴을 살폈다.그토록 오랜 시간이 흐르고 두 사람이 이만큼 가까워졌는데도, 계연수는 심서준과 함께 있을 때면 무의식중에 자신의 말과 행동을 하나하나 헤아리곤 했다.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거나,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일은 결코 없었다.지금처럼 감히 바둑알을 그의 얼굴에 던지는 일도 마찬가지였다.심서준은 하늘이 내린 듯 모든 것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계연수는 여전히 그를 우러러보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 그를 바라보던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심서준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좋아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지만, 계연수는 아직도 제게 무엇이 있어 그의 마음을 얻었는지 알지 못했다.정말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었다면, 어째서 사씨 가문 사람들은 아무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았던 걸까.그래서 때로는 심서준의 사랑조차 그가 자신에게만 베푸는 특별한 편애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편애가 더없이 기쁘면서도, 그 사랑만 믿고 함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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