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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가짜 결혼, 진짜 신분: Chapter 891 - Chapter 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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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1화

김태하의 안색까지 어두워진 것을 보고서야 서운혁은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렸다.“임신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김 대표님의 몸도 이제 회복 중이라고 하고... 두 사람이 걱정돼서 그랬어요.”강지현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더 짙어졌다.“저는 잘 지내고 있고, 태하의 몸도 당분간은 안정적이에요. 서 대표님이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그 말을 들은 김태하는 막 들어 올린 찻잔을 입에 대기도 전에 다시 내려놓았다.“해성 그룹은 전 직원 백하린을 어떻게 처리할지 아직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은 것으로 기억해요. 서 대표님은 지금 남의 집안일을 걱정하고 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을 텐데요?”서운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강지현을 만나러 온 이상 백하린 이야기를 피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그 역시 이미 준비해 왔기에 곧바로 설명했다.“백하린과는 다시 엮이지 않을 거예요.”“서 대표님, 농담도 잘하시네요. 서 대표님과 백하린 씨의 일은 저와 아무 상관없어요.”강지현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제 변호사는 이미 백하린의 여러 혐의에 대해 소송을 준비하고 있어요. 해성 그룹도 그 여자 때문에 손해를 봤다면 가능한 한 빨리 처리하는 게 좋을 거예요. 하지만 만약... 서 대표님이 백하린 때문에 오신 거라면 더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네요.”그 말을 들은 서운혁은 흥분한 나머지 벌떡 일어났다.“아니에요! 백하린 때문에 온 게 아니에요!”강지현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운혁을 바라봤다.생각해 보니 백하린을 위해 온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비위를 맞추며 다정하게 굴 이유가 없었다.자신과 김태하를 모두 화나게 해 봤자 백하린의 용서를 받아 낼 수도 없었다.서운혁은 자신이 흥분했다는 걸 깨닫고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혔다.“백하린과는 완전히 선을 그을 거예요. 그 여자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강 대표님이 어떻게 처리하든 당연히 받아들여야 해요.”강지현이 입을 열려 하자 김태하가 손으로 막았다.서운혁은 다시 자리에 앉아 한동안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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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2화

서운혁이 강지현을 붙잡으려 했지만 옆에 있던 집사가 곧바로 앞을 막았다.그가 떠난 뒤 집사는 정교하게 만든 벨벳 상자 하나를 김태하에게 건넸다.강지현의 아침 기분은 서운혁 때문에 완전히 엉망이 됐다.그녀는 운동실에서 잠시 요가를 하고 혼자 목욕을 했다.김태하는 따라가려 했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다.오후가 돼 최동윤이 결혼식 답례품 후보 몇 가지를 가져오고서야 강지현은 조금 기운을 차리고 나와 김태하와 함께 살펴봤다.“이걸로 하자. 이 정도면 될 것 같아.”강지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태하도 이견을 내지 않았다.일을 마친 최동윤은 서둘러 떠날 생각이었다. 지금은 대표님과 사모님의 신혼이나 마찬가지인 시기이니 단 15분도 방해꾼으로 있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강지현이 그를 다시 불러 세웠다.“참, 결혼식 초대 명단에서 서운혁은 빼 주세요.”“서 대표님을 빼요?”최동윤은 놀랐다.‘전에 서운혁을 명단에 넣자고 한 사람도 사모님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서운혁은 축의금도 거액을 보냈는데 정말 초대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사모님 말씀대로 해.”김태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자 최동윤도 곧바로 뜻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최동윤이 떠난 뒤 김태하는 강지현을 바라봤다.강지현은 고개를 숙인 채 테이블 위의 청첩장 견본을 만지작거렸다.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김태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서운혁 때문에 화낼 필요 없어.”“...”강지현은 손을 멈춘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네가 꺼내고 싶지 않은 과거라면 다시는 우리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게.”김태하의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러워졌다. 그는 강지현의 머리를 가볍게 끌어당겨 긴장을 풀고 자신의 가슴에 기대게 했다.남자의 가슴은 단단하고 불처럼 뜨거웠다.심장은 한 번 한 번 힘차고 안정적으로 뛰고 있었다.강지현은 그저 김태하의 곁에 기대 조용히 잠시 머물렀다. 뒤엉켜 불안하던 마음도 마침내 평온해졌다.“왜 내가 서운혁에게 그렇게 크게 반응했는지 묻고 싶지 않아?”한참 뒤에야 강지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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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3화

“지현아.”김태하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그녀의 말은 가느다란 바늘처럼 촘촘히 그의 가슴을 찔렀다.강지현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김태하의 감정은 이미 거세게 요동쳤다.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온몸을 덮쳤다. 김태하는 깊은 눈빛으로 강지현의 얼굴을 들어 올려 이마에 힘주어 입을 맞췄다.“다행히 넌 이제 어른이 됐어.”김태하는 더 말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뜻을 알았다.서운혁이 미처 말을 끝내지 못한 건 강지현이 일부러 막았기 때문이었다.서운혁이 어머니를 언급한 순간, 강지현도 어렴풋이 무언가를 짐작했다.하지만 조금만 건드리면 찢어질 얇은 막 뒤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지도, 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아니, 그런 준비를 해 본 적조차 없었다.“내 가족은 김씨 집안 사람들과 너뿐이라고 이미 마음속으로 정했어.”강지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주승호는 강지현의 어머니와 짧은 인연을 맺었을 뿐이고, 자신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았다고 했다.하지만 강지현의 어머니는 달랐다. 그녀는 제 손으로 딸을 보육원에 버렸다.어릴 때는 부모를 원망했다. 자라서는 자신을 위로하려고 부모에게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을 거로 생각했다.하지만 아무리 자신을 달래도 지금 이 순간 느끼는 진짜 감정을 바꿀 수는 없었다.강지현은 용서할 수 없었다.자신을 버린 사람과 마주할 수도 없었다.“알아.”김태하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목울대가 힘겹게 위아래로 움직였다.“앞으로 내가 네 가족이자 동반자가 될게. 억지로 무엇을 할 필요 없어. 네 마음이 가는 대로 살면 돼.”감동한 강지현의 눈가에 물기가 어렸지만, 곧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응.”그녀는 언제나 강하게 모든 일을 마주하는 데 익숙했고, 감정을 다스리는 힘도 뛰어났다.하지만 김태하를 만나고서야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누군가가 자신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받쳐 들고, 약해지는 순간까지 받아 준다는 건... 얼마나 다정한 일인가.그 다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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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4화

이 목걸이를 낙찰받은 사람은 원래 서경시의 한 보석상이었다.당시 이 목걸이는 수도권 상류층 부인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팔렸다.목걸이를 사들인 사람은 바로 서운혁의 할아버지였다.김태하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서운혁의 할아버지는 딸의 혼수품으로 주기 위해 이 목걸이를 샀다고 했다.“이 목걸이는 서운혁의 어머니에게 준 거야. 그분은 계속 소중하게 간직했고 보관 상태도 아주 좋아.”“...”이번에도 말은 거기서 끝났다.서운혁이 어머니의 물건을 자신에게 건넨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그동안 서운혁이 보였던 이상한 행동도 모두 이해됐다.강지현의 얼굴이 희미하게 하얗게 질렸고 손바닥도 차가워졌다.‘만약 서운혁의 어머니가 나를 버린 생모라면...’서운혁은 자신과 피를 나눈 친오빠였다.서운혁은 경솔한 사람이 아니었다. 직접 찾아온 이상 잘못 짚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확인하려고 마음먹으면 아주 쉽게 검증할 수도 있었다.하지만 어머니뿐 아니라 서운혁이 자신의 친오빠라는 사실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분은... 지금...”“이미 돌아가셨어.”강지현의 심장이 갑자기 빨리 뛰었다. 머릿속이 순간 새하얘졌고, 솟구치던 감정도 갑자기 쏟아 낼 곳을 잃었다.김태하는 강지현이 침묵하자 곧바로 이야기를 멈췄다.“가자. 옷 입고 나랑 산책하러 나가자.”김태하는 보석 상자를 옆 서랍에 넣었다.강지현은 눈빛이 가볍게 흔들리다 고개를 끄덕였다.서운각 주변에는 경치 좋은 공원이 두 곳이나 있었다.김태하는 이곳을 처음 봤을 때부터 자신과 강지현이 나이 든 뒤 매일 저녁노을과 맑은 달빛을 벗 삼아 함께 산책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떠올렸다.인간은 평생 외로운 존재다.그렇기에 한정된 시간 동안 서로에게 더 많은 말을 건네야 한다.“이곳의 노을은 네가 어릴 때 보던 노을과 다르지?”김태하가 문득 물었다.그는 걸음을 멈추고 강지현의 바로 곁에 섰다. 넓고 큰 체격은 굳건히 서 있는 소나무 같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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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5화

주단우가 굳이 쌀알이 완전히 퍼질 때까지 푹 끓인 죽을 먹고 싶다고 했다.현다영은 오늘 일이 있어 애초에 늦게 도착했다.주단우는 요즘 운동량이 적어 입맛이 없다고 미리 말해 두었다. 현다영은 반찬 몇 가지를 사 와 대충 묽은 죽을 끓여 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주단우는 대충 먹기를 거부했다. 묽게 끓인 죽은 싫고, 그 자리에서 쌀알이 완전히 풀어지도록 푹 끓인 죽만 먹겠다고 했다.배달 음식을 시켜 주겠다는 것도 거절했다.현다영이 시중들고 싶지 않은 기색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곧바로 아픈 곳을 줄줄이 늘어놓으며 죄책감을 자극했다. 심지어 눈앞에서 현시우에게 전화까지 걸었다.그런데 친동생마저 주단우의 편을 들며 누나에게 제발 밥을 해 달라고 사정했다...어쩔 수 없었다.사람은 약속을 지켜야 했다.돌봐 주기로 했으니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했다.현다영은 시간을 확인했다. 주단우가 원하는 수준으로 죽을 끓이려면 한 시간은 더 필요했다.그녀는 아예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꺼냈다.화면에는 얼마 전에 다시 설치한 게임 아이콘이 보였다.송준호가 떠난 뒤 현다영은 게임을 다시 설치했다.매일 한 번씩 접속해... 송준호의 계정이 들어왔는지 확인했다.오늘도 마찬가지였다.하지만 매번 접속만 했을 뿐 실제로 게임을 한 적은 없었다.현다영은 잠시 망설이다 다시 게임을 실행했다.이번에는 그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그런데 접속하자마자 친구 추가 알림이 눈에 들어왔다.상대의 프로필 사진은 예전에 송준호가 쓰던 것과 완전히 똑같았다.현다영은 곧바로 수락했다.상대는 곧바로 파티 초대를 보냈다.현다영은 망설이지 않고 들어갔다. 게임 규칙은 이해했지만 아직 반쯤 초보라 조작이 익숙하지 않았다.상대 역시 새 계정이었지만 실력은 뛰어났다. 도저히 초보처럼 보이지 않았다.게임 중 현다영은 몇 번이나 그의 도움으로 살아났고,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승리했다.한 판이 끝나자 상대는 곧바로 다음 게임을 시작했다.이번에 두 사람이 선택한 캐릭터는 서로 협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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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6화

이번에는 상대가 곧바로 답했다.[못하면 연습을 더 해.]“...”현다영의 손가락이 멈췄다.‘송준호가 직설적인 편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독설을 했던가?’현다영이 대답하지 않자 상대가 다시 한마디를 덧붙였다.[사실 그렇게 못하진 않아. 반응도 빠른 편이고. 다음에도 같이 하자. 내가 가르쳐 줄게.][좋아요. 그럼 잘 부탁해요.]그 말을 보고서야 현다영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송준호가 이렇게 말했으니 앞으로도 자주 게임에 접속할 모양이었다.현다영이 답장을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의 프로필이 회색으로 변했다.그녀는 혼자 연습 게임을 몇 판 더 했다.얼마 뒤 침실 문이 열리고 주단우가 걸어 나왔다.현다영은 그를 흘끗 바라봤다.“죽 아직 안 됐어요.”“얼마나 더 기다려야 해?”주단우는 답답한 듯 천천히 소파로 걸어왔다. 현다영이 자신을 부축해 줄 줄 알았지만, 이 못된 여자는 힘겹게 걷는 모습을 보고도 휴대전화만 들여다봤다.“거의 다 됐어요. 한 30분?”현다영은 고개도 들지 않았다.주단우가 가볍게 헛기침했다.“그 정도면 됐어. 배고프니까 지금 먹자.”“조금만 기다려요. 아직...”현다영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휴대전화를 빼앗겼다.주단우는 몇 번 손가락을 움직여 게임을 종료하고 화면까지 잠근 뒤 옆 탁자에 올려놓았다.“너 게임 중독이야? 계속 나를 이렇게 소홀히 대하면 강지현한테 전화할 거야. 자기가 아끼는 부하 직원이 은인을 어떻게 홀대하는지 보여 줘야겠어.”“쳇.”현다영은 기가 막혀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주단우를 조금 다르게 보기 시작하면 이 남자의 못된 버릇은 번번이 호감을 바닥까지 떨어뜨렸다.주단우는 눈을 내리깔고 휴대전화를 집어 들려는 시늉을 했다.“알았어요. 밥 먹으면 되잖아요. 주단우 도련님, 기다리세요.”현다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됐어. 내가 참으면 그만이야.’이런 일로 강지현까지 귀찮게 했다가는 오히려 더 황당할 것 같았다.죽은 주단우가 원한 만큼 완전히 퍼지지는 않았지만,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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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7화

주단우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이내 코웃음을 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현다영은 엄경미가 어린 시절부터 주단우를 혹독하게 대했고, 자주 어두운 방에 가둬 학대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 일로 상처가 남아 혼자 있기를 싫어하는 거라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예전에도 주단우는 엄경미에게서 벗어날 때마다 호텔에 묵기 싫어했고, 차라리 현다영의 집 앞에서 버티곤 했다.유일하게 호텔에 머문 날에도 온갖 방법을 써서 현다영이 함께 있게 했다.현다영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미리 말해 두는데, 저는 한번 잠들면 잘 못 일어나요. 한밤중에 사람을 돌보는 건 힘들 거예요.”주단우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괜찮아. 어차피 객실을 내줄 생각은 없으니까. 너는 나랑 같은 방에서 자.”“주단우 씨!”현다영은 깜짝 놀랐다.“너, 너무 심하잖아요!”“내가 뭘 어쨌다고?”주단우의 눈에 장난기가 스쳤다.“그저 같은 방에서 자자는 거지, 같은 침대에서 자자는 게 아니야. 내 침실에 네가 잘 만한 소파가 있어.”현다영이 미간을 찌푸렸다.“거실 소파에서 자면 되잖아요. 무슨 일 있으면 부르고요.”“거실은 침실에서 너무 멀어.”주단우가 느긋하게 말했다.“게다가 방금 누가 한번 잠들면 잘 못 일어나서 밤에는 사람을 돌보기 힘들다고 하지 않았나?”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눈썹을 치켜들었다.“아, 선택지가 하나 더 있어. 내 침실 문 앞 바닥에서 자도 돼.”현다영은 또다시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소파에서 잘게요. 주단우 도련님께서 기분 좋게 회복하실 수만 있다면 됐죠.”주단우는 언제나 그녀보다 한 수 위였다.‘괜찮아. 이 시기만 버티고 나면 주단우와 완전히 빚을 청산하고 다시는 엮이지 않으면 그만이야!’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그것도 소파에 누워 있으려니 현다영은 좀처럼 잠들 수가 없었다.반면 주단우는 약을 먹은 뒤 세상모르고 곯아떨어졌다. 저렇게 잘 자는 사람에게 정말 밤새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한지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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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8화

현다영은 그의 호흡이 안정될 때까지 잠시 더 기다린 뒤 천천히 손을 빼냈다.그러나 이번에는 곧바로 떠나지 않고 남자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현다영의 위로가 이어지자 주단우의 찌푸린 미간도 서서히 펴졌고 다시 편안하게 잠든 듯했다.주단우의 곁에 엎드려 있던 현다영도 밀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현다영도 깊이 잠들려던 순간, 낮고 쉰 목소리가 갑자기 귓가에 들렸다.“현다영?”“네?”현다영은 멈칫했다. 몇 초가 지나서야 둔하게 몸을 일으켰다.“깼어요?”“너 왜...”주단우는 두 사람의 자세를 내려다봤다.현다영은 자신의 손 바로 옆에서 팔을 베고 엎드려 있었다. 오해하기 딱 좋은 모습이었다.“오해하지 말아요! 악몽을 꾸기에 와서 본 것뿐이에요.”현다영은 그가 트집 잡기 전에 재빨리 설명하고 손까지 떼며 결백하다는 걸 보여 줬다.하지만 주단우는 평소와 달리 말싸움을 걸지 않았다.“미안해. 네 잠을 방해했네.”“그 사과 참... 정말 제 잠을 방해하기 싫었다면 애초에 여기서 지키라고 하지 말았어야죠.”현다영은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지만 주단우의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그의 마음에 잠시 피어났던 부드러운 감정은 순식간에 사라졌다.“그러네. 어차피 날 돌보러 온 거잖아. 목마르니까 물 한 잔 가져와. 따뜻한 물로. 너무 차갑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게.”“참...”현다영은 주단우가 자신에게 진심으로 잘해 줄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래도 울며 겨자 먹기로 시키는 대로 했다.그런데 물을 가져왔을 때 주단우는 이미 몸을 돌리고 잠들어 있었다.깨워서 마시게 하고 싶었지만 조금 전 불안하게 잠들었던 모습을 떠올리자 또 마음이 약해졌다.현다영은 물을 옆에 내려놓았다. 자신도 몹시 피곤했기에 소파에 눕자마자 아침까지 푹 잤다....다음 날 현다영이 눈을 떴을 때는 벌써 오전 10시였다.주단우는 이미 방 안에 없었다.현다영은 의아했다.‘분명 아침 일찍 어딘가에 함께 가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씻고 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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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9화

“부모님을...”현다영은 눈빛이 흔들리며 잠시 말문이 막혔다.“혼자 가고 싶지 않았어. 다른 친한 친구도 없고. 힘들겠지만 같이 가 줘.”현다영이 무언가 말하기도 전에 주단우가 덧붙였다.현다영은 입술을 다문 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2시간 뒤, 차는 교외의 고요한 묘지 앞에 멈췄다.아주 작은 묘지였다. 주단우의 부모는 조그만 비석 하나를 함께 쓰고 있었다.주변에는 잡초가 무성했고 비석에는 두꺼운 얼음과 때가 뒤엉겨 있었다.누가 찾아온 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듯했다.주단우는 입구에서 산 꽃을 비석 옆에 내려놓았다.그러고는 힘겹게 무릎을 꿇고 도구를 꺼내 비석의 묵은 때를 닦기 시작했다.뒤따르던 현다영이 부축하려 했지만 미처 손을 뻗지 못했다.주단우의 기분은 순식간에 바닥까지 가라앉은 듯 세상에 혼자 남은 사람처럼 비석만 바라봤다.현다영도 곁에 쪼그려 앉아 함께 일을 도왔다.남자는 이상할 만큼 조용했지만, 현다영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슬픔을 느꼈다. 덩달아 마음이 무거워졌다.한동안 닦던 주단우는 도구가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자 집어 던지고 맨손으로 때를 벗기기 시작했다.비석에 오랫동안 눌어붙은 얼룩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곧 인내심을 잃고 미친 듯 손으로 얼음을 긁어냈다.손에서 흐른 피가 얼음에 묻고 더러운 물에 섞이는 것을 본 현다영은 놀라서 주단우의 손을 붙잡았다.“주단우 씨, 이제 그만 해요.”현다영은 힘을 다해 그의 차가운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자신도 예상하지 못할 만큼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지금은 깨끗하게 닦을 수 없어요. 날씨가 따뜻해져 얼음이 녹으면 그때 다시 와서 닦아요.”주단우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그제야 현다영은 남자의 눈이 이미 새빨갛게 충혈돼 있다는 걸 봤다.귀한 집 도련님답게 길고 하얗던 두 손은 어느새 상처투성이였다. 손끝에는 피뿐만 아니라 더러운 흙까지 묻어 있었다.지금은 몸까지 약한 상태였다. 상처가 감염되거나 곪기라도 하면 크게 앓을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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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0화

“정말 그렇게 생각해?”주단우는 현다영이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다는 듯 놀랐다.“그 누구도 주단우 씨가 잘못했다고 비난할 자격은 없어요. 부모님이라면 더더욱 원망하지 않으실 거예요.”현다영의 목소리는 보기 드물게 다정했다.주단우의 눈은 더욱 붉어졌다. 현다영은 휴지로 그의 손을 감쌌다.그러고는 몸을 일으켜 묘비를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주단우에게 손을 내밀었다.“지금은 자신을 탓할 때가 아니에요. 모처럼 부모님을 찾아왔으니 마음속 이야기를 많이 들려드려요. 기다리고 있을게요.”주단우는 차분하고 따뜻한 현다영의 얼굴을 올려다봤다.몇 초 동안 침묵하던 그는 마침내 다치지 않은 손을 천천히 들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현다영이 손에 힘을 줘 그가 일어나도록 받쳐 줬다.주단우가 일어선 것을 보고 현다영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얼마 뒤 주단우는 묘지를 나왔다.앞에는 현다영의 뒷모습이 보였다. 오후의 햇살이 내려앉아 그녀의 몸을 따스하게 감쌌다.주단우는 순간 그녀를 품에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어때요? 좀 괜찮아졌어요?”하지만 그가 다가가기도 전에 현다영이 먼저 몸을 돌려 걸어왔다.“응.”주단우가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돌아가자.”돌아오는 길에 주단우는 갈 때보다 더욱 말이 없었다.현다영도 몹시 피곤했다. 어젯밤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더는 버티기 힘들었다.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화들짝 몸을 일으킨 그녀는 자신이 주단우의 침대 위에 누워 있다는 걸 발견했다.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방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는지 주단우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잘 잤어?”현다영은 자신의 몸을 살펴봤다. 옷은 그대로 입고 있었다.그래도 꽤 편안하게 푹 잤다.“주단우 씨, 왜... 저를 집에 데려다주지 않았어요?”“어차피 잠들었는데 어디서 자든 똑같잖아. 난 환자인데 널 집까지 데려다줄 의무는 없지.”현다영은 방에서 나왔다. 소파 위에는 담요가 놓여 있었고 테이블에는 약과 물컵이 보였다.자신이 자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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