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공작님, 부인께서 이혼을 요구하셨습니다!: Bab 681 - Bab 690

820 Bab

681장. 알아서는 안 될 사람

여자는 그대로 얼어붙었다.그 말은 차갑고 깊게 가슴을 파고드는 못과도 같았다. 그녀는 침을 삼키며 천천히 자신의 로브 자락을 움켜쥐었다. 마치 그 천만이 지금 당장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자신을 붙잡아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도 되는 듯했다.“정말로 그것을 원하시는 건가요?” 그녀가 마침내 물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를 내려고 했지만, 목소리는 거의 떨릴 듯했다.사실 그 질문에는 대답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확신 때문에 가슴은 더욱 답답해졌고, 숨은 갈비뼈 사이에 걸린 것처럼 제대로 내쉬어지지 않았다.라제는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앉은 자세를 고쳐 잡지도 않은 채, 그저 창밖을 바라보며 서서히 멀어지고 희미해지는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바깥의 세상 따위는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배경에 불과하다는 듯했다.“그런 사람들은.” 라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강제로 손에 넣을 수 없어.”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차는 매끄럽게 앞으로 나아갔고, 엔진 소리만이 그 사이의 침묵을 채우고 있었다.“몸은 가둘 수 있지.” 그가 더욱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선택까지 가둘 수는 없어.”여자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 말들이 자신의 생각 속으로 스며들어, 지금껏 애써 묻어 두었던 두려움을 건드리는 것이 느껴졌다.“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그 지점에 도달해야 해.” 라제가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거의 인내심을 가진 사람처럼 차분한 목소리였다. “자기 발로 내게 걸어오는 순간까지 말이야. 강요해서도 아니고, 협박해서도 아니야. 그저 자신에게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느끼게 되는 거지.”라제가 마침내 그녀 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말이 조금도 빠짐없이 그녀에게 전달되었는지 확인하려는 듯한 정도의 움직임이었다.“그리고 그 순간이 오면.” 그가 거의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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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2장. 10분

사일러는 그녀에게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팔짱을 꼈다가 다시 풀기를 반복하는 그의 몸짓에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불안감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누나.”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조금 전보다 더 낮았다.“그 사람이 누나를 바라보는 걸 봤어. 그건 단순히 대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어.”셀렌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거야.”그녀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자신의 목소리에도 짙은 피로가 묻어 있었다.“모든 시선에 의도가 있는 건 아니야.”“아니.”사일러가 곧바로 반박했다.“물론 모든 시선이 그렇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그 눈빛은 알아. 누군가를 평가하고, 저울질하고, 그리고… 기다리는 사람의 눈빛이야.”셀렌이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는 정말로 자신의 동생을 똑바로 바라보았다.“무엇을 기다린다는 거야?”사일러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그게 나를 걱정하게 만드는 거야. 나도 모르겠으니까.”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모나 곁의 기계는 잔잔하고 일정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정적인 리듬과는 정반대로, 두 사람의 가슴속에서는 불안정한 감정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사실이 씁쓸한 아이러니처럼 느껴졌다.“누나도 알잖아.”사일러가 한층 더 신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지위가 얼마나 높은지는 상관하지 않아. 그저 사업적인 관계라면 내가 상대할 수 있어. 하지만 만약 그 사람이 한 남자로서 누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한다면…”“그만해.”셀렌이 그의 말을 끊었다.하지만 목소리에는 화가 담겨 있지 않았다. 오히려 부탁에 가까웠다.“나는 아무것도 바라고 있지 않아, 사일러. 요즘은 숨을 쉬는 것조차 피곤하게 느껴질 정도야.”사일러는 눈을 한 번 깜빡인 뒤 그녀 맞은편의 의자에 앉았다. 언제나 긴장으로 굳어 있던 그의 어깨가 조금 내려앉았다.“알아.”그가 나직하게 말했다.“그래서 더 무서운 거야. 그런 사람들은 강한 사람에게 다가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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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3장. 내가 너를 쫓았어

그는 스벤과 운전기사를 향해 고개를 돌린 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는 듯 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너희 둘은 안 와도 된다.” 그가 짧게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라.”스벤은 순간적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공작…”“내가 운전하겠다.” 디리안이 차분하게 말을 끊었다. 반박할 여지를 전혀 남기지 않는 목소리였다.운전기사와 스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들은 그 말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두 번 명령할 필요조차 없는 말투였다.“알겠습니다, 공작.” 스벤이 마침내 대답하며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디리안은 운전석 쪽 문을 열었다가 잠시 멈춰 셀렌을 돌아보았다.“타.” 그가 조용히 말했다. “네가 원한다면.”셀렌은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마치 차를 탈 것인지 아닌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저 남자의 곁에 앉을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저울질하는 듯했다.마침내 셀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수석 문을 열고 차 안으로 들어갔다.문이 닫히고, 침묵이 내려앉았다. 디리안은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엔진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고, 곧 차는 병원 앞마당을 천천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음악도 없었고 대화도 없었다. 그저 도로를 달리는 소리와, 아직 매듭짓지 못한 감정을 품은 채 서로 지나치게 가까이 앉아 있는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차 안을 채우고 있었다.몇 분이 흐른 뒤에야 셀렌이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이러면 안 되는 거였어.”“안다.” 디리안이 대답했다. “그래도 했지.”“그건 대답이 아니잖아요.”“그것도 알아.”그의 손이 운전대를 더욱 단단히 움켜쥐었다. 시선은 여전히 앞을 향하고 있었다.“네게 말을 하라고 강요하려고 온 게 아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그저… 오늘 밤 네가 혼자 있지 않았으면 했다.”셀렌은 조용히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에는 씁쓸함이 묻어 있었다.“그 말, 몇 년이나 늦었다는 거 알아요?”디리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도시의 불빛이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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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4장. 내가 너를 사랑하게 된 날

디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셀렌이 그렇게 말했을 때에도 그는 침묵을 지켰고, 바로 그 침묵이 그동안 단단히 잠가 두었던 기억의 문을 열어젖혔다.과거의 장면들이 허락도 없이 밀려들었다.그는 자신이 예전의 셀렌을 얼마나 자주 외면했는지 떠올렸다. 정말 너무나 자주였다. 디리안이 단 하나의 이유로 모로 저택까지 찾아왔을 때조차도 그랬다. 비베니에를 찾기 위해서였다. 셀렌은 얼굴을 붉힌 채 그의 앞에 서서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시선이 그의 얼굴에 너무 오래 머물면 그가 알아차릴까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그 눈동자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감히 요구하지도 못하고, 감히 기대하지도 못하는 미세한 떨림이었다.그리고 디리안은 알고 있었다.언제나 알고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사람을 읽는 데 익숙했다. 상대의 반응이나 숨을 고르는 순간의 간격, 감정을 억누르는 방식까지도 누군가에게 배울 필요 없이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언어처럼 느껴졌다. 그는 셀렌에게 자신을 향한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때는 비베니에가 있었다.그렇다면 저 어린 소녀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자신의 삶에 필요하지도 않은 그 감정은 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가?그것이 당시의 생각이었다. 차갑고 현실적이었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잔인하기까지 한 생각이었다.그는 어디든 비베니에를 쫓아갔다.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았고, 위험 속으로 뛰어들었으며, 모든 것을 걸었다. 그리고 그 여정을 이어가는 내내… 셀렌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조용히, 변함없이,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은 채로.그는 셀렌을 조금씩 더 잘 대해 주기 시작했다. 당시의 그는 그것이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셀렌은 언제나 곁에 있었고, 언제나 자신을 이해했으며, 자신을 곤란하게 만드는 일도 없었으니까.대체 언제부터 모든 것이 달라진 것일까?이제 와서 디리안은 그 순간을 분명하게 기억해 냈다.결혼한 뒤가 아니었다.아니, 그보다 훨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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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5장.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

디리안은 천천히 얼굴을 들어 올렸다. 마치 수년 동안 가슴 깊이 묻어 두었던 결심을 이제야 꺼내어 말하는 사람처럼 셀렌을 바라보았다.“그날.” 그가 조용히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고, 그 안에는 오래된 기억이 가득 담겨 있었다. “네가 황실 가면무도회에서 비베니에를 대신했던 날.”셀렌이 숨을 삼켰다.순간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이내 두 눈이 크게 뜨였다.“당신이… 그게 나였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았다. 그 대답이 정말 사실일까 두려워하는 것처럼 가늘게 떨렸다.디리안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녀의 시선을 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 기억에 경의를 표하듯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다.“비베니에는.” 그가 천천히 말했다.“너처럼 차분하게 춤을 추지 않았다.”단순한 한마디였다.하지만 셀렌에게는 그 말이 자신이 애써 깊숙이 묻어 버리려 했던 과거로 통하는 문을 강제로 열어젖히는 것처럼 느껴졌다.기억이 아무런 자비도 없이 그녀를 덮쳐 왔다.……그날 밤이었다. 빛과 음악, 그리고 가면으로 가득했던 밤. 비베니에가 라파엘의 품에 안긴 채 지나치게 큰 소리로 웃으며 잔뜩 취한 모습으로 돌아왔던 밤. 계모인 모로 백작 부인이 셀렌을 차갑게 바라보며 가문의 명예를 더럽혀서는 안 된다고 말했던 밤. 그리고 셀렌이 비베니에의 드레스와 비베니에의 가면을 억지로 걸치고 자신의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디리안 앞에 서야 했던 밤.그때의 감정을 그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두려웠다. 긴장됐다. 들킬까 봐 두려웠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들키지 않는 것이었다.그녀는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안고 춤을 췄다. 비베니에의 춤동작을 따라 하려고 애쓰며 다른 사람의 그림자가 되려고 했고, 그 춤이 이어지는 내내 디리안은 놀라울 만큼 차분하게 그녀를 이끌었다. 덕분에 셀렌은 자신이 숨 쉬는 것조차 잊을 뻔했다.그녀는 전혀 몰랐다.디리안이 자신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어떻게 그게 나였다는 걸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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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6장. 한 번의 기회

디리안은 셀렌에게 어떤 말로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처음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어떤 말도 지금의 셀렌에게는 충분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결국 그는 다시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천천히 차를 몰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고, 그 침묵은 전보다 훨씬 더 길고 무겁게 이어졌다.가로등 불빛이 자동차 창문에 반사되어 흘러갔다.디리안은 몇 번이나 셀렌 쪽을 힐끗 바라보았지만, 셀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창밖을 바라보며, 서서히 한적한 길로 변해 가는 도시의 어둠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그녀의 표정은 평온했지만, 지나치게 평온했다. 마치 일부러 대화에서 자신을 멀리 떼어놓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디리안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자동차는 그렇게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얼마 후, 그는 차의 속도를 늦추더니 숲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커다란 목조 주택 앞에 차를 세웠다. 집의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따뜻한 불빛이 나무들 사이로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다.디리안은 시동을 껐다.“여기서부터는 차가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없다.” 그가 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걸어가는 건 괜찮지?”셀렌은 잠시 그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렸다.디리안이 차에서 내리자 집 근처에 서 있던 몇몇 사람들이 곧바로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디리안은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마치 그들의 인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들 곁을 지나쳐 걸어갔다.셀렌은 그런 디리안의 모습을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이곳도 당신 소유인가요?” 그녀가 물었다.“아니.” 디리안은 짧게 대답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을 뿐이지.”셀렌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이런 건물은 처음 봐요… 숲 한가운데에 있는 건요.”디리안은 나무 기둥에 매달린 작은 등불이 밝혀 주는 오솔길로 먼저 걸어 들어갔다.“셀렌, 이런 곳은 많다.” 그가 걸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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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7장. 다시 사랑에 빠지다

셀렌은 그 말이 디리안의 입에서 나온 뒤에도 한참 동안 아무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밤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와 그녀의 얼굴 주변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살짝 흔들었다. 두 사람의 아래로 펼쳐진 도시의 불빛이 셀렌의 눈동자에 은은하게 비쳤고, 그 탓에 그녀의 시선은 평소보다 더욱 깊어 보였다.“정말 내가 당신을 떠날까 봐 무서워요?”셀렌이 마침내 물었다.그녀의 목소리는 높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그를 비난하는 듯한 기색도 없었다. 그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무언가에서 비롯된 질문일 뿐이었다.디리안은 망설이지 않았다.“물론 무섭지.”대답은 곧바로 돌아왔다. 평소라면 언제나 말을 신중하게 고르는 그답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빠르고도 망설임 없는 대답이었다.셀렌은 곧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아래에서 빛나고 있는 도시 쪽으로 천천히 시선을 돌렸을 뿐이었다.그러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녀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그것은 행복한 미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완전히 씁쓸한 미소도 아니었다. 마치 너무 늦어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일에서 어떤 아이러니를 발견한 사람 같은 미소였다.디리안은 그것을 보았다.셀렌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모습을 분명히 보았고, 그 순간 그의 가슴 한구석이 조금 불편하게 조여 왔다.“그게 웃겨?”그가 조용히 물었다.셀렌이 다시 그를 돌아보았다.“웃기냐고?”그녀가 되물었다.디리안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여전히 날카로운 시선으로 셀렌을 바라보았다.“네가 웃었잖아.”셀렌은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그냥 생각이 나서…”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도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예전에는 내가 당신을 잃는 걸 가장 무서워했거든요.”그 말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마치 길을 잃고 있던 기억 하나가 갑자기 다시 돌아올 길을 찾아낸 것처럼, 오래전의 감정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듯했다.“당신이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떠날 때마다… 비베니에를 선택할 때마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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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8장. 미안하지만 잊지는 않아요

아침이 천천히 온 세상을 밝히기 시작했다. 상아색의 긴 커튼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어, 하인들이 매일 새것으로 갈아놓는 싱그러운 꽃과 약 냄새로 가득한 방 안으로 부드럽게 흘러들었다.방 안은 고요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벽시계가 느릿하게 움직이며 내는 똑딱거리는 소리뿐이었다.문이 소리 없이 열리고, 사일러가 평소와 다름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표정은 차분했고, 걸음걸이에는 스스로를 통제하는 습관 속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살아온 사람처럼 절제된 기색이 배어 있었다.그는 매일 아침 자신의 일을 시작하기 전에 늘 모나를 보러 왔다.그러나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방 안에 이미 누군가가 있는 것을 발견한 순간, 그의 시선이 그대로 굳어버렸다.정원을 마주 보고 있는 커다란 창가 근처에는 한 노인이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그의 몸은 사일러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더욱 야위어 보였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위엄만큼은 예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모로 백작이었다.그의 휠체어 뒤에는 한 하인이 공손한 자세로 서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사일러는 문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그대로 서 있었다. 곧바로 움직이지 않은 채, 눈앞의 상황을 잠시 바라보기만 했다.몇 초가 흐른 뒤에야 그가 입을 열었다.“아버지, 언제 도착하셨어요?”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이곳에서 아버지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졌다.모로 백작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들을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눈이 사일러의 얼굴을 세심하게 훑었다. 마치 그 차분한 표정 뒤에 숨겨진 무언가를 읽어내려는 듯했다.그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손을 살짝 들어 뒤에 서 있던 하인에게 신호를 보냈다.“나가도 된다.”하인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알겠습니다, 백작.”하인은 지체하지 않고 문을 향해 걸어가 방을 나갔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오직 침묵만이 남도록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그제야 모로 백작이 대답했다.“네가 오기 바로 전에.”그의 목소리는 무거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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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9장. 불법적인 무언가

침묵이 다시 한번 방 안을 집어삼켰다.모로 백작은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곳에 아들의 눈을 마주하는 것보다 훨씬 상대하기 쉬운 무언가가 있기라도 한 듯 보였다.침대 위에서 모나는 여전히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마치 지금까지의 모든 말다툼이 자신에게는 들리지 않는 세상에서 벌어진 일인 것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조용히 누워 있었다.어쩌면… 아직 깨어 있는 사람들이 마주해야 하는 현실보다 훨씬 고요한 세상일지도 몰랐다.마침내 방의 문이 열렸다.아까부터 모로 백작의 휠체어 뒤에 서 있던 하인이 천천히 휠체어를 밀어 모나의 치료실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에서 휠체어 바퀴가 낮게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작별 인사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도 없었다.모로 백작은 방금 나눈 대화만으로 충분하다는 듯이, 그저 그렇게 떠나갔다. 아니면 어쩌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정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인지도 몰랐다.그리고 문이 다시 닫혔다.찰칵.작은 소리가 다시 침묵으로 가득 찬 방 안에서 유난히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사일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은 방금 닫힌 문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아버지를 부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그를 붙잡으려 하지도 않았다.잠시 시간이 흘렀다.그러다 사일러는 양손을 들어 답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한 듯 자신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그의 숨소리가 무겁게 흘러나왔다.“젠장…”그 말이 그의 입술 사이에서 낮게 흘러나왔다.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처음으로, 그의 머릿속이 완전히 뒤엉켜 버린 듯했다.너무나 많은 것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그토록 오랫동안 모습을 감췄던 라파엘이 다시 나타났다. 아버지는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를 고용했다. 대공과의 협력은 지나칠 정도로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리고 지금은… 모나가 이곳에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었다.사일러는 잠시 눈을 감았다.계속해서 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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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0장. 향수 냄새

루시언이 작게 웃었다.“그럼 네 생각에는 또 뭐가 있겠어?” 그는 팔짱을 낀 채 탁자에 몸을 기대었다. “공식적인 무역 허가를 받으려면 영토 간의 협력이 필요해. 막대한 세금도 내야 하고, 복잡한 협정도 맺어야 하지.”그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했다.“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는 오랜 시간이 걸려.”루시언은 다시 지도의 무역로를 바라보았다.“그들이 매번 그렇게 높은 세금을 내야 한다면… 이런 규모의 항로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해.”제이레스는 말없이 붉은 선을 바라보았다.루시언이 마침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니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그는 다시 한번 지도를 톡 두드렸다. “불법 항로를 이용하고 있다는 거야.”방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제이레스는 여전히 눈앞의 지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의 시선은 이전보다 훨씬 날카로워져 있었다. 만약 그 추측이 사실이라면, 남부 제국은 단순히 무역만으로 부를 쌓아 올린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어두운 무언가를 통해 부를 축적하고 있는 것이었다.루시언은 여전히 커다란 탁자 위에 펼쳐진 지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손끝이 굽이치는 바닷길을 천천히 따라가다가, 마침내 검은 잉크로 표시된 작은 섬에서 멈췄다.“이 섬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거야.” 그가 낮게 말했다.제이레스가 시선을 들어 올렸다.루시언이 지도를 두 번 두드렸다.“악마의 뿔 섬은 단순히 추방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니야.” 그가 말을 이었다. “이 섬 주변의 바다는 파도가 굉장히 거센 것으로 유명하지. 이곳을 무사히 통과하지 못하는 배도 많아. 심지어 대형 상선조차 해안에 도착하기도 전에 침몰하는 경우가 많을 정도야.”제이레스는 거칠게 선이 그어진 바다를 바라보았다.루시언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그래서 이 지역을 제대로 감시하는 왕국은 거의 없어. 너무 위험한 항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그는 이어서 지도 위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 비밀 항로를 손가락으로 따라갔다.“하지만 남부 제국은 달라. 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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