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공작님, 부인께서 이혼을 요구하셨습니다!: Chapter 691 - Chapter 700

820 Chapters

691장. 아름다운 것

디리안은 천천히 미간을 찌푸렸다.“대공?” 그가 무거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네가 말하는 대공은…”“내가 굳이 알 필요 없다고 했던 남자요.”셀렌은 디리안이 문장을 끝맺기도 전에 그의 말을 끊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방 안을 다시 침묵에 잠기게 만들 만큼 날카로웠다.디리안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몇 초 동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다 시선을 옆으로 돌렸고, 턱이 팽팽하게 굳어졌다. 불쾌한 기색이 얼굴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마치 무언가를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분노인지, 아니면 더 많은 것을 묻고 싶은 욕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지금 당장은 그 감정을 억누르기로 마음먹은 듯했다.셀렌은 그런 디리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그녀는 디리안이 자신이 누구를 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을 중간에서 끊은 것이었다. 두 사람의 뒤에서는 뵤른과 제이, 마테오가 서로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았다.방 안의 공기가 점점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마침내 디리안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다시 세 사람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의 얼굴은 평소처럼 무표정하게 돌아와 있었지만, 눈에 남아 있는 긴장감까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그렇다면.” 그가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색 방향을 바꾸도록 하지.”세 사람의 시선이 즉시 그에게 향했다.“지금까지 너희들이 감시하고 있던 곳 주변은 더 이상 보지 않는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는 대공과… 라파엘을 동시에 감시해라.”제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디리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 듯했다. 그러나 그때 셀렌이 다시 입을 열었다.“라파엘은 모로 가문의 저택에 있어요.”디리안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놀란 기색을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그렇다면 오히려 일이 쉬워지겠군.”그 말에 셀렌
Read more

692장. 미끼

셀렌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시선은 천천히 방을 빠져나가는 디리안의 등을 따라갔다. 남자의 걸음은 크고 단호했지만, 셀렌의 눈에는 디리안에게서 좀처럼 보기 힘든 것이 보였다. 더 이상 감추려고 하지도 않는 듯한 감정이었다.문이 조용히 닫히면서 방 안은 더욱 고요해졌다.셀렌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마침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희미한 미소였지만, 행복해서 짓는 미소는 아니었다. 오히려 무언가를 확신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미소에 가까웠다.“한 가지는…”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아무래도 디리안은 정말 더 이상 자신을 억누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그 남자는 늘 지나치게 차분했고, 지나치게 신중했으며, 지나치게 절제되어 있었다. 디리안은 마치 체스 게임을 하듯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계산했고, 자신의 감정이 계획을 망치도록 내버려 두는 법이 없었다.그런데 방금 전에는… 그가 화를 냈다.단순히 화가 난 것만도 아니었다.질투하고 있었다.셀렌은 천천히 자리를 벗어났다.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그녀의 생각은 평소보다 훨씬 무거웠다. 만약 그렇다면… 이제 모든 것이 곧 끝날 것이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여 있던 모든 수수께끼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비베니에.라파엘.아버지.그리고 이제는… 라제 코르빈 대공까지.셀렌은 넓은 홀 한가운데에서 걸음을 멈추고, 저택의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는 높은 창밖을 바라보았다.하늘은 어느새 색이 변하기 시작했고, 정원의 불빛들은 땅 위에 내려앉은 작은 별처럼 하나둘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머릿속은 전혀 평온하지 않았다.“대공…”셀렌이 조용히 속삭였다.“그 남자에게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 걸까?”셀렌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녀는 그런 막강한 권력을 가진 남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여자가 아니었다. 대공은 평범한 귀족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의 주변에는 언제나 경호원과 정치적인 이해관계, 그리고 의심이 따라다녔다.셀렌이 아무리 그에게 접근하려고 해도… 두 번이나
Read more

693장. 이용당하고 있는 말

여자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찻잔을 다시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잠시 후,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하지만 그런 사람은 위험하기도 해요.”라제가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위험하다고?”여자는 마침내 그의 쪽으로 고개를 조금 돌렸다. 얼굴을 가리고 있던 베일이 그 움직임을 따라 부드럽게 흔들렸다.“관심에 굶주린 사람은…”그녀가 조용히 말했다.“…그 관심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니까요.”분위기가 갑자기 더욱 고요해졌다. 계속해서 해변을 두드리는 파도 소리만이 들려왔다. 라제는 몇 초 동안 여자를 바라보다가 이내 작게 웃음을 흘렸다. 낮고 느긋한 웃음이었다.“그렇다면 계속해서 자신이 관심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면 되겠군.”그는 접시에 놓인 생선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자신이 이 게임에서 중요한 존재라고 믿고 있는 동안에는… 자신이 사실 그저 하나의 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절대 깨닫지 못할 테니까.”여자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녀는 다시 바다를 바라보았다. 저녁노을의 빛이 수면 위로 비치기 시작하면서, 파도의 움직임을 따라 고운 금빛가루가 반짝이고 있었다.라제는 흥미로운 눈으로 여자를 바라보았다.“정말 궁금하군.”그가 잠시 후 말했다.“그 여자가 어디까지 갈지.”그는 다시 와인잔을 빙글빙글 돌렸다.“그리고 그것보다 더 궁금한 건…”그의 미소가 천천히 짙어졌다.“…주변 사람들이 자신들이 속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얼마나 걸릴지야.” 여자는 한동안 말없이 있었다. 바람이 다시 불어오면서 얼굴을 가리고 있던 베일이 살짝 들렸다. 그러나 얼굴의 윤곽은 여전히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마침내 그녀가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아주 오래 걸릴 거예요.”라제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여자는 말을 이었다.“서로를 의심하느라 너무 바쁘니까요.”그녀는 손을 들어 모자의 챙을 부드럽게 만졌다.“근처의 배신자를 찾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으면… 누가 멀리서
Read more

694장. 사고가 아니었다

“공작 부인에게 손을 대신다면.” 비베니에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끊임없이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에서도 그녀의 목소리는 분명하게 들렸다.“대공께서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마세요.”라제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몇 초 동안 비베니에를 바라보다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작게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와인 잔을 집어 들고 손안에서 천천히 빙글빙글 돌렸다.“평온하게?” 그가 가볍게 되물었다. “난 평온하게 살아본 적이 없어.”그는 와인을 조금 마신 뒤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넌 나를 너무 많이 오해하고 있어.”비베니에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라제는 의자에 한층 더 느긋하게 몸을 기대고 앉은 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비베니에를 바라보았다.“난 공작 부인에게 손을 댈 생각이 없어.”그 말은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흘러나왔다. 비베니에는 잠시 입을 다문 채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러자 라제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친근함보다는 오히려 함정에 가까워 보였다.“나는 오히려 좀 더 재미있는 걸 보고 싶어.” 그가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내가 공작 부인을 건드리게 만드는 게 아니라, 공작 부인이 먼저 나에게 손을 대게 할 거야.”다시 바닷바람이 한층 거세게 불어왔다. 비베니에의 모자에 달린 베일이 조금 더 위로 들리면서, 이제는 한층 긴장된 기색이 드러난 그녀의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그녀는 라제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너무 자신만만하시군요.”라제는 기분이 상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눈빛은 더욱 생생하게 빛났다. “아니.” 그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저 인간을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을 뿐이야.”그는 어깨를 살짝 으쓱했다. “특히 질투하고 있는 남자라면 더 잘 알지.”이름을 직접 입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 모두 지금 누구를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비베니에는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Read more

695장. 크림슨 슬립

사일러는 고개를 끄덕였다.의사는 곧 방을 나갔고, 병실에는 다시 두 사람만 남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실 안은 또다시 침묵으로 가득 찼다.모나는 몇 초 전의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는 것만으로도 지친 듯한 몸을 이끌고 다시 눈을 감았다. 사일러는 여전히 그녀의 곁에 앉아 있었다.그의 손은 여전히 모나의 손을 꼭 잡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서서히 달라지고 있었다. 모나가 정신을 잃기 직전 분명하게 남긴 한마디가 아직도 그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고가 아니었다.그리고 만약 지금 모나가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누군가는 그 기억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몰랐다.……다음 날 아침, 병실은 다시 조용해졌다.커다란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와 바닥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았고, 모나가 누워 있는 침대 끝자락을 살며시 비추고 있었다. 공기에는 여전히 병원 특유의 약품 냄새가 가득했다.문이 천천히 열렸다.셀렌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걸음은 차분했지만, 침대에 반쯤 기대어 있던 모나는 셀렌을 보는 순간 창백했던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부인…”모나의 목소리는 여전히 힘이 없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기쁨이 담겨 있었다.셀렌이 희미하게 웃으며 다가갔다.“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셀렌이 웃으며 말했다.“널 보러 왔어.”모나는 한결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셀렌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이는 듯했다.침대 반대편에 서 있던 사일러는 그저 두 사람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가 약을 가져왔다. 모나는 사일러의 도움을 받아 천천히 약을 삼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약효가 돌기 시작하면서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나… 졸려…”모나가 나직하게 속삭였다.“자.”사일러가 부드럽게 말하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몇 분 뒤, 모나의 호흡은 다시 규칙적으로 변했다. 그녀는 다시 잠들었고, 병실 안에는 또다시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셀렌은 의자를 끌어와 창가에 앉아 사일러와
Read more

696장. 슬픔

모로 저택의 분위기는 더없이 숙연했다.저녁 하늘은 웅장한 저택 위로 잿빛으로 드리워져 있었고, 마치 아침부터 끊임없이 찾아오는 사람들과 함께 애도하고 있는 듯했다. 대리석 기둥에는 검은 천이 둘러져 있었으며, 저택 앞 계단에는 조화와 헌화용 꽃다발이 가득 놓여 있었다.장례식은 내일 치러질 예정이었다.하지만 오늘부터 이미 모로 가문의 저택에는 손님들이 가득했다.고급 마차들이 커다란 정문 앞에 하나둘씩 멈춰 섰다. 귀족들은 온통 어두운 색의 옷을 차려입은 채 마차에서 내렸고, 얼굴에는 예의 바른 조의의 표정을 띠고 있었다. 고위 관료들도 있었고, 영향력 있는 귀족 가문들도 있었으며, 심지어 이런 자리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들까지 몇 명이나 모습을 보였다.사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죽은 사람은 그저 평범한 평민 출신의 소녀일 뿐이라는 것을.하녀였던 소녀.그러나 그 소녀는 모나였다.사일러 모로의 약혼녀.모로 가문이 지닌 영향력과 명성이 워낙 컸기에, 누구도 이 일을 외면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오늘 저택을 찾아오는 것은 단순히 조의를 표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토록 영향력 있는 가문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이기도 했다.계속해서 도착하는 마차들 사이로 검은색 마차 한 대가 천천히 저택 앞에 멈춰 섰다.마차 문이 열렸다.디리안이 그 안에서 내렸다.그는 단정하면서도 간소한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얼굴은 평소처럼 침착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좀처럼 짐작하기 어려운 표정이었다.입구 근처에 서 있던 몇몇 귀족들은 그를 발견하자마자 곧바로 예를 갖춰 인사를 건넸다.디리안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지만, 사실 그는 그들에게 제대로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천천히 주변을 훑으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셀렌.그는 손님들로 가득한 넓은 홀을 지나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의 대화 소리는 낮게 들려왔고, 마치 슬픔에 잠긴 집에서 무례하게 들리지 않도록 서로 조심스럽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몇몇 사람
Read more

697장. 계획이 있는 손님

모로 백작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 대화만으로 충분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였을 뿐이었다.라제 역시 더 이상 대화를 억지로 이어가지는 않았다. 그는 곧 몸을 돌렸고, 시선은 디리안에게로 향했다.“공작.”디리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대공.”이어서 라제의 시선이 셀렌에게로 옮겨갔다. 셀렌은 인사를 대신하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하지만 디리안은 순간 턱을 굳게 만들 만한 무언가를 알아차렸다. 저 남자가 셀렌을 바라보는 방식은 지나치게 오래 머물렀고, 지나치게 태연했다.마치 자신이 즐겨서는 안 될 무언가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라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결국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홀 한쪽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몇몇 귀족들에게 다가가 그들과 합류했다.그를 중심으로 다시 작은 무리가 형성되었다.셀렌이 옆에서 디리안을 바라보았다. “정말 대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네요.”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디리안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남자에게 향해 있었다.“난 저자가 너를 바라보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셀렌이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그런데 왜 미소를 지어 준 거지?” 디리안이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았다.셀렌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우연히 자주 마주치는 사이일 뿐이에요.” 그녀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미소를 지어 주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디리안이 마침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시선은 날카로웠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억눌러져 있었다. “나에게는 문제다.”셀렌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방 건너편에서는 대공이 자신을 둘러싼 귀족들과 함께 조용히 웃고 있었다.“내가 보기에는 너무 과한 것 같네요.”셀렌은 사소한 일을 나무라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디리안은 곧바로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난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특히 네가 저자와 얼마나 자주 만
Read more

698장. 관여하지 않았다

디리안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라제가 라파엘에게 무언가를 말한 듯했고, 그 말에 라파엘이 작게 웃었다. 심지어 라파엘의 바로 옆에 바짝 붙어 서 있던 남자까지도 두 사람의 대화가 무척 즐겁다는 듯 함께 미소를 지었다.그 모습은 너무나도… 편안해 보였다.루시언이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흥미롭군.” 그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제이레스가 팔짱을 꼈다. “이제 나도 궁금해지는 걸요.” 그가 다시 디리안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서로 알고 지낸 사이일까요… 아니면 정말 우연일까요?”디리안이 마침내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하지만 그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런 곳에 우연 같은 건 없다.”그때 홀 건너편에서 라제가 갑자기 잔을 들어 올렸다.……저택 뒤편의 복도는 중앙 홀보다 훨씬 조용했다.손님들의 대화 소리는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올 뿐이었고, 오래된 건물의 두꺼운 벽에 가로막힌 낮은 웅성거림처럼 울려 퍼졌다. 벽에 설치된 조명은 부드러운 노란빛을 내뿜고 있었으며, 그 빛은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로 희미하게 반사되고 있었다.라파엘은 조쉬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두 사람은 방금 홀의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온 참이었다. 사람들이 가득한 중앙 홀을 벗어나자 복도의 공기는 한결 가벼웠다.조쉬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복도 끝에 있는 작은 문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잠깐 기다려.” 그가 조용히 말했다.“휴게실에 좀 다녀와야 해.”라파엘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뒷정원을 향해 난 문 근처에 멈춰 서서 나무 문틀에 어깨를 기댔다. 한 손은 코트 주머니에 넣은 채, 어두운 바깥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잠시 후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소리였지만, 고요함 속에서도 분명하게 들렸다.라파엘이 고개를 들었다.디리안이 차분한 걸음으로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가 몇 걸음 앞까지 다가오자 걸음을 멈췄다. 그의 시선은 곧바로 라파엘에게 향했고, 날카로운 눈빛에는 쓸데없는 인사나 예의 따위가 조
Read more

699장. 나를 데려가려 했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제이레스는 곧바로 와인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루시언은 마치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뵤른과 마테오는 이미 한발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두 사람은 디리안이 가리킨 방향을 따라 달려 저택을 빠져나간 뒤, 곧장 뒷정원으로 향했다.밤공기는 차가웠다. 멀리 정원의 나무들이 드리운 그림자 사이로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고, 그들은 뒷문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디리안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이제는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라파엘과 그 남자는 모든 일을 미리 계획해 두었다. 저택 전체의 불이 갑자기 꺼진 것 역시 그 계획의 일부였을 것이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대화로 가득했던 넓은 홀이 순식간에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다.몇몇 손님들이 곧바로 놀라며 술렁이기 시작했다. 의자가 밀리는 소리와 다급한 발걸음 소리, 그리고 당황한 속삭임이 방 곳곳에서 들려왔다.몇몇 여인들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숨을 죽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소란이 더 큰 혼란으로 번지기도 전에 복도 쪽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디리안은 그곳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았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곧바로 알아차렸다.저택의 경비병들은 이미 먼저 움직여, 방금 도망친 두 사람을 쫓기 위해 사방으로 달려가고 있었다.홀 안의 소란은 점점 더 커졌다. 하지만 디리안은 방 한가운데에서 걸음을 멈췄다.그의 목소리가 분명하고 날카롭게 울려 퍼졌고, 소란을 단번에 가라앉힐 만큼 충분히 컸다.“아무도 움직이지 마십시오.”홀 안을 가득 채우던 속삭임이 즉시 잦아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지만, 대부분은 어둠 속에서 그의 실루엣만 볼 수 있었다.“곧 불이 다시 켜질 겁니다.” 디리안이 차갑지만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그는 홀 앞쪽에 놓인 관 주변에서 여전히 불안한 표정으로 서 있는 손님들을 바라보았다.“그리고 지금 이곳에는 아직 관 속에 시신이 있습니다.”
Read more

700장. 납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일러가 앉아 있던 작은 방 안은 이제 코를 찌를 듯 짙은 피 냄새로 가득했다.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가 창백한 빛을 대리석 바닥 위로 드리우고 있었고, 바닥은 흘러내린 피로 서서히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하인들은 방 한쪽 구석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으며, 마치 자신들의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기라도 한 사람들처럼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디리안은 사일러의 곁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그는 남자의 복부에 난 자상 주변을 천으로 세게 누르며,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피를 어떻게든 막아 보려 하고 있었다.“사일러. 정신 놓지 마.”사일러의 숨소리는 무겁고 불규칙하게 끊어져 나왔다. 입술은 창백했고,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디리안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프레디!”그의 목소리가 방 안에 크게 울려 퍼졌다.문가에 서 있던 중년의 남자가 곧장 다급하게 앞으로 나섰다.“예, 공작.”“버나드를 불러. 지금 당장.”프레디는 감히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그는 즉시 몸을 돌려 복도를 따라 달려갔다.디리안은 바닥에 힘없이 누워 있는 사일러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 밖에서 다급하게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프레디는 저택의 집사장인 버나드와 두 명의 젊은 남자 하인을 데리고 돌아왔다.그들은 모두 사일러의 상태를 보는 순간 걸음을 멈췄다.작은 칼은 아직도 그의 복부에 깊숙이 꽂힌 채였다. 피는 검은 옷을 흠뻑 적셨고, 샹들리에의 조명 아래에서는 거의 짙은 흑색처럼 보일 정도였다.“멍하니 서 있지 마!”디리안이 날카롭게 호통쳤다.“어서 들어라.”그의 목소리가 너무 거칠게 울려 퍼지는 바람에 젊은 하인 중 한 명은 자신이 들고 있던 천을 떨어뜨릴 뻔했다.버나드는 곧바로 프레디와 함께 사일러의 곁에 무릎을 꿇었다. 두 사람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그의 몸을 들어 올렸고, 몸이 움직이자 사일러는 낮게 신음했다.“병원으로 데려가야 한다.”디리안이 다급하게 말했다.“상처가 너무 깊다.”버나드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
Read more
PREV
1
...
6869707172
...
82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