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공작님, 부인께서 이혼을 요구하셨습니다!: Chapter 711 - Chapter 720

820 Chapters

711장. 알지 못했던 잘못

디리안의 집무실은 비베니에가 상상했던 장소에 비하면 훨씬 평온했다.그 혼란스러운 여정이 끝나고 의식이 돌아왔을 때, 비베니에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돌벽으로 이루어진 궁전의 지하 감옥이었다. 축축한 공기 속에 쇠와 피 냄새가 짙게 배어 있고, 천장에는 차가운 쇠사슬이 매달려 있는 곳이었다.하지만 그녀가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그녀가 있는 곳은 디리안의 집무실이었다.방은 넓고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어두운 목재 벽에는 책장과 둘둘 말린 지도들이 빼곡하게 놓여 있었고, 방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책상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그 위에는 서류들이 질서정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책상 뒤편의 높은 창문을 통해 낮의 햇빛이 들어와 희미한 빛을 퍼뜨리고 있었고, 그 덕분에 방은 평온해 보였다. 비베니에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그녀의 두 손은 튼튼한 나무 의자의 등받이에 묶여 있었다. 손목을 감고 있는 밧줄은 꽤 단단하게 조여져 있어서 조금만 움직여도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였다.온몸이 아팠다.타고 있던 마차가 전복되었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뼛속 깊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숨을 깊이 들이쉴 때마다 가슴이 욱신거렸다.어쩌면 갈비뼈 하나쯤 부러졌을지도 몰랐지만, 그녀는 불평하지 않았다. 그래 봐야 아무 소용도 없었으니까.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곳이었다. 모든 일이 이렇게 빨리 끝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더구나 그 끝이 이 방일 거라고는 더욱 생각하지 못했다.방의 문이 열리면서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안으로 들어왔다.지금까지 그녀를 지켜보고 있던 뵤른이 고개를 돌렸다. 거대한 몸집을 가진 그의 몸은 문 근처 공간의 절반을 거의 가득 채우고 있었다.그러나 또 다른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뵤른은 곧바로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고, 별다른 말도 하지 않은 채 방을 나갔다.문이 다시 닫혔다. 이제 방 안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디리안이 차분하고 느긋한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왔다.어두운 외투는 여전히 그의 어깨에 걸쳐져 있었다. 얼굴에는 분노도, 다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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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장. 말하고 싶지 않았다

집무실 밖으로 이어진 긴 복도에는 묘한 정적이 가득했다.완전히 고요한 것은 아니었다. 가끔 복도 끝을 지나가는 경비병의 발소리가 들려오기도 했고, 높은 창문으로 스며든 바람이 희미하게 옷자락과 커튼을 스치는 소리도 들려왔지만, 그럼에도 이곳을 감도는 침묵은 사람들이 일부러 말을 많이 하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억누르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다.제이는 돌기둥 하나 근처에 서서 한쪽 어깨를 가볍게 기대고 있었다. 두 팔을 가슴 앞에 포개고 있었지만, 시선만큼은 복도 끝에 굳게 닫힌 디리안의 집무실 문에서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그 문 앞에는 뵤른이 움직일 수 없는 벽처럼 서 있었다.거대한 몸으로 출입구의 절반을 가로막고 있는 그는 두 팔을 가슴 앞에 포개고 있었으며, 얼굴은 궁전의 돌벽만큼이나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디리안이 방 안으로 들어간 이후로 그는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누구도 감히 그의 앞을 지나가려 하지 않았다.그 근처에는 일라드와 스벤을 데리고 라미나가 서 있었다.그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훨씬 침착해 보였지만, 그들 역시 가끔씩 굳게 닫힌 문 쪽으로 시선을 보내며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신경 쓰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마테오는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벽에 가볍게 몸을 기대고 있었으며, 평소처럼 속내를 좀처럼 읽기 어려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에릭은 명령을 기다리는 병사처럼 두 손을 등 뒤로 모은 채 꼿꼿하게 서 있었다.그중에서도 가장 안절부절못하는 것은 시그였다. 그는 몇 번이나 발의 위치를 바꾸었고, 마치 너무 오랫동안 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 자체가 견디기 힘든 듯했다.하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일행으로부터 몇 걸음 떨어진 곳에는 궁전 경비대장인 라이오넬이 서 있었다. 그는 여러 경비병을 뒤에 거느린 채 마치 조각상처럼 꼿꼿하게 서 있었다.그리고 복도의 반대편에는 그 존재만으로도 이곳의 분위기를 훨씬 무겁게 만드는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었다.제이레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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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3장. 죽음을 선택하다

비베니에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몇 순간 동안 말없이 디리안을 바라보며, 마치 남자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읽어내려는 듯 가만히 시선을 두었다. 그러나 디리안의 표정은 여전히 한결같았다. 침착하고 차가우며, 속내를 좀처럼 짐작하기 어려운 얼굴이었다.마침내 비베니에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그렇게 숨을 내쉴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갈비뼈 옆에서 시작된 통증이 등까지 번져 나가면서 숨이 조금 막혔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그 고통을 묵묵히 견뎠다.입꼬리가 천천히 움직였다. 희미한 미소가 얼굴 위에 떠올랐지만, 너무나 옅어서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아.”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쉰 것은 아마 길을 걸으며 마신 먼지 때문일 수도 있었고, 어쩌면 그보다 더 다른 이유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디리안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비베니에의 얼굴에 나타나는 사소한 변화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고, 마치 그녀가 하는 어떤 움직임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네가 저지른 잘못부터 시작해라.”대답은 짧았다. 그 안에는 화가 묻어나지 않았고, 목소리에도 압박감은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 말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비베니에는 작게 웃었다. 짧고 메마른 웃음이었으며, 피로가 잔뜩 배어 있었다. 그녀는 마치 그 질문이 우습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내 잘못?” 그녀가 천천히 되물었다. 그리고 다시 얼굴을 들어 디리안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그런 거라면 당신이 이미 꽤 긴 목록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디리안은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비꼬는 말로 받아치지도 않았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저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마치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저울질하고 있는 듯했다. 몇 초가 흐른 뒤에야 그가 다시 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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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4장. 나는 결혼하고 싶어

방 안을 짓누르던 침묵이 한순간에 산산이 깨졌다.쾅!커다란 충돌음이 방 밖 복도까지 울려 퍼졌다. 그때까지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깜짝 놀랐고, 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던 제이가 날카롭게 고개를 돌렸다.“무슨 소리야?”누구 하나 대답할 틈도 없이 두 번째 충격음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첫 번째보다 조금 약했지만, 무거운 무언가가 쓰러지며 바닥에 부딪힌 듯한 둔탁한 소리였다.제이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방의 문을 밀어젖혔다.커다란 나무문이 거칠게 열리면서 제이와 함께 에릭, 시그, 마테오, 뵤른, 라미나, 라이오넬이 곧바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이어, 경비병들조차 본능적으로 길을 비켜줄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황태자 루시언과 황자 제이레스였다.그러나 그들이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모두의 발걸음이 동시에 멈췄다.모든 사람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방 안에 펼쳐진 광경은 누구 하나 곧바로 움직일 수 없게 만들 만큼 충격적이었다.비베니에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몸은 의자 등받이에 묶여 있었고, 두 손은 등 뒤에서 단단히 묶여 있었다. 얼굴에는 아직 씻어내지 않은 작은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말라붙어 있었으며, 먼지까지 뒤섞여 여전히 지저분한 상태였다.그런데 그녀의 표정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당황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런 비베니에의 의자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는 디리안이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어깨는 팽팽하게 굳어 있었고, 양손은 몸 옆에서 힘껏 주먹을 쥔 상태였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는 그동안 이 방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던 커다란 업무용 책상이 이제 두 동강 난 채 놓여 있었다.두꺼운 나무는 한가운데에서부터 갈라져 있었고, 거칠게 뻗은 균열은 방금 전 일어난 충격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던 서류들은 이제 바닥에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종이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몇 장은 아직도 허공에서 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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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5장. 내 목숨의 대가

그 말이 비베니에의 입에서 흘러나온 순간, 방 안의 시간이 그대로 얼어붙은 듯했다.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다음 순간, 디리안이 움직였다.그의 걸음은 빠르고 분노로 가득 차 있었으며, 마치 이 방 안에는 자신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듯 비베니에를 향해 곧장 몸을 내밀었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만으로도 주변의 공기가 짓눌리는 듯했다.그러나 디리안이 비베니에가 앉아 있는 의자에 닿기도 전에, 이미 누군가가 그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루시언이었다.황태자는 앞으로 나서 디리안의 진로를 정확히 막아섰고, 한 손을 들어 남자의 가슴을 가로막았다.“디리안.”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그러나 이미 디리안 안에서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한 분노는 그렇게 간단히 멈추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려 했고,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제이가 재빨리 움직여 디리안의 팔을 힘껏 붙잡았다.“그만하십시오, 공작.”반대편에서는 제이레스 역시 앞으로 나서 디리안의 어깨를 붙잡았다. 루시언의 뒤에 있던 에릭과 마테오, 시그, 라이오넬, 뵤른도 거의 동시에 움직였다.그들은 사람으로 이루어진 벽처럼 서로 바짝 붙어 섰다. 비베니에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디리안이 정말로 통제력을 잃어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방 안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했다. 디리안은 움직임을 멈췄지만, 그의 몸은 여전히 한껏 당겨진 활처럼 팽팽하게 굳어 있었다.두 손은 힘껏 주먹을 쥐고 있었고, 목에 돋아난 핏줄에서는 그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짙은 붉은색 눈동자가 비베니에를 향했다. 그 차가운 시선은 마치 피부를 태워버릴 것처럼 날카로웠다.그런데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비베니에는 그저 의자에 앉은 채 태연하게 있었다.두 손은 여전히 묶여 있었고, 모두가 방 안으로 들어온 이후 지금까지 그녀의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루시언은 길게 숨을 들이마신 뒤 마침내 그 여자를 돌아보았다.시선은 날카로웠다.“방금 네가 무슨 말을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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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6장. 두려움은 없다

셀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이제 자신에게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남자에게서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식탁 위 촛불의 빛이 방 안에 은은하게 퍼지며 돌벽 위로 기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그 때문에 방 안의 분위기는 더욱 고요하게 느껴졌다.잠시 동안 그녀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마치 자신의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닌지 확인하려는 것처럼.“그저… 예상을 못 했어요.”마침내 그녀의 입술에서 낮지만 분명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눈앞의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활짝 웃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을 뿐인데, 마치 처음부터 그녀가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듯한 미소였다. 그는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느긋한 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왔다.가죽 구두가 대리석 바닥을 밟을 때마다 작은 발소리가 들렸고, 그는 셀렌에게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그렇게 나를 믿지 못하시는 건가요?” 목소리는 가벼웠고, 거의 농담처럼 들릴 정도였다. 그는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쉽게 읽을 수 없는 눈빛으로 셀렌을 바라보았다.“그래도 결국… 나잖아요.”셀렌은 천천히 침을 삼켰다. 이상한 감정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두려움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훨씬 복잡한 감정으로, 그동안 자신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던 의심이 갑자기 현실이 되어버렸을 때 느끼는 불편함에 가까웠다.“그저… 전혀 예상을 못 했어요.”그녀가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차분한 목소리였다. 시선은 여전히 남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제 추측이 맞다면.”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마침내 그 호칭을 입에 올렸다.“라제 대공.” 남자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셀렌이 마침내 자신의 작위를 분명하게 입에 올린 것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라제 코르빈.제국에서 결코 평범한 이름이 아니었다. 그는 손꼽히는 대귀족 중 한 명이었으며, 그의 권력은 황실조차 신중하게 행동하게 만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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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7장. 나는 결혼하지 않을 거다

그 대답에 라제의 입꼬리가 다시 올라갔다.이번에는 미소가 조금 달랐고, 이전보다 더욱 날카로운 느낌이 묻어 있었다.“흥미롭군요.”그가 다시 낮게 중얼거리더니,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부인처럼 마조히스트인 사람은 좀 더 잘 대해 줄 필요가 있겠어요.”셀렌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마조히스트요?”라제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부인은 내가 본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고통을 훨씬 잘 견디는군요.”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시선이 천천히 셀렌의 얼굴을 훑었다.“몸에는 오래된 상처가 가득하죠.”목소리가 조금 더 차분해졌다.“그런데도 부인은 여전히 고개를 꼿꼿이 들고 서 있군요.”바닷바람이 다시 창문으로 들어오자 테이블 위 촛불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라제는 마치 간단한 사실 하나를 인정하듯 와인잔을 살짝 들어 올렸다.“그런 사람은… 지금까지 부인이 받아온 대우보다 훨씬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셀렌의 눈을 더욱 깊이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습니까, 셀렌 공작 부인?”셀렌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맞은편에 앉은 남자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차분했다.“저는 대공이 말씀하신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라제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녀의 대답이 그다지 놀랍지 않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손에 든 와인잔을 느긋하게 돌리다가 다시 셀렌에게 시선을 들었다.“그런가요?”그가 가볍게 말했다.“그렇다면 부인 생각에는 고통에서 얻는 쾌감은 마조히스트의 일부가 아니라는 건가요?”셀렌이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라제는 몇 순간 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 차분한 얼굴 뒤에 숨겨진 무언가를 읽어 내려는 듯한 시선이었다.셀렌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 뒤 말을 이었다.“제 남편이 저를 아프게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맞아요.”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말은 분명했다. 그녀가 잠시 멈추었다가 라제를 더욱 단단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하지만 제 남편은 저를 해치고 있는 게 아니에요.”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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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8장. 바다

마침내 루시언이 침묵을 깨뜨렸다.“디리안과의 일은 오래전에 이미 끝난 것 아니었나?”그가 조용히 물었지만, 그 목소리는 방 안을 가득 채울 만큼 단호했다.“그런데 왜 이제 와서 다시 나타나 이런 혼란을 일으키는 거지?”비베니에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몇 순간 동안 루시언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무슨 뜻인지 쉽게 알아보기 힘든 희미한 미소였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그녀가 마침내 대답했다.루시언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뭘 보고 싶은 거지?”이번에는 비베니에가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오히려 몇 걸음 뒤에 서 있는 디리안에게로 향했다. 디리안은 여전히 제이와 제이레스, 그리고 몇 명의 호위병들에게 붙잡혀 있었다.“디리안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어요.”그녀가 거의 속삭이듯 낮게 말했다.방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비베니에는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저 사람이 내 인생을 망가뜨린 뒤에 말이에요.”그 말은 곧바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지금까지 억누르고 있던 디리안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방금 칼집에서 뽑혀 나온 검날처럼 날카로웠다.“나는 네 인생을 망가뜨린 적이 없다.”그의 눈에는 더 이상 감추기 힘들 정도의 분노가 서려 있었다.“이 모든 걸 선택한 건 너 자신이다, 비베니에. 그러니 네가 저지른 모든 일의 대가를 이제 내가 확실하게 치르게 한다고 해서 나를 원망하지 마라.”그의 손이 세게 움켜쥐어졌고, 손등의 혈관이 팽팽하게 도드라졌다.“이번에는 살아남지 못할 거다.”그러나 비베니에는 그 위협을 듣고도 그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조금의 두려움도 드러나지 않았다.루시언이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의 말다툼을 충분히 들었다는 듯했다. 그리고 이제 완전히 차가워진 얼굴로 다시 비베니에를 바라보았다.“결정은 분명하다.”그가 단호하게 말했다.“공작은 너와 결혼하지 않을 거다.”그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그리고 네가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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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장. 처형

디리안은 막 방에서 나오던 순간,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지하 감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제이가 여전히 서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듯 힘겹게 걸음을 옮기는 비베니에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온몸에 난 상처 때문에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무거워 보였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여전히 오만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고개를 꼿꼿이 들고 있었다.뒤에서 들려오는 디리안의 발소리에 비베니에가 고개를 돌렸다.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 마주치자, 여자의 입가에는 곧바로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디리안, 마음이 바뀐 거야?” 그녀가 가볍게 물었다.디리안은 그녀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비베니에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셀렌을 되찾으려면 나와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 아니야?” 그녀는 그것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라는 듯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그러나 디리안은 그저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무 자신만만하군.” 그의 대답은 짧고 냉담했다. 그는 곧 비베니에의 곁에 조용히 서 있는 제이에게 시선을 옮겼다.제이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여전히 한 손으로 비베니에의 팔을 움켜쥐고 있었지만, 감히 디리안의 눈을 마주 보지는 못했다.디리안은 몇 초 동안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다.“아직도 네가 저지른 실수에서 배우지 못한 모양이군.”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한마디만으로도 복도 안의 공기가 더욱 차갑게 식어 버린 듯했다. “이번이 네 마지막 기회다, 제이.”제이는 즉시 몸을 곧게 세웠다.“다시 흔들린다면…” 디리안은 잠시 말을 멈추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내가 널 죽이겠다.”그 위협을 내뱉는 목소리에는 조금의 감정조차 담겨 있지 않았다.제이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그저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비베니에는 그들의 대화를 거의 비웃는 듯한 작은 미소를 띤 채 지켜보고 있었다. “오늘은 꽤 단호하네.” 그녀가 태연하게 말하며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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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장. 보관실에 보관하다

대답은 짧았다.그는 어떤 반응도 기다리지 않은 채 몸을 돌려 복도를 떠났다. 그의 발소리는 점점 멀어졌고, 이내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철창 안에서 비베니에는 여전히 차가운 돌바닥에 앉아 있었다. 이제는 철창 사이로 스며드는 희미한 횃불 빛만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그녀는 제이가 사라져 간 복도 쪽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천천히 입꼬리를 끌어올렸고, 그 의미를 쉽게 알 수 없는 옅은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걸렸다. 마치 혼자 남겨지는 것 따위는 그녀에게 조금도 두려운 일이 아니라는 듯한 표정이었다.……아침이 천천히 찾아왔다. 방의 커다란 창문을 가리고 있던 얇은 커튼 사이로 아침 빛이 스며들었다. 멀리 보이는 바다 표면에는 햇빛이 부드럽게 반사되었고, 잔잔한 파도를 따라 움직이는 은빛 물결이 반짝이고 있었다.셀렌이 눈을 떴다.몇 초 동안 그녀는 그저 침대에 가만히 누운 채 낯선 방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공기에는 여전히 바다의 짭조름한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나무와 깨끗한 천에서 나는 향이 그 냄새와 뒤섞여 있었다. 감금된 장소라고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편안한 방이었다.마침내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발이 차가운 바닥에 닿자, 그녀는 천천히 창가를 향해 걸어갔다.창밖으로 펼쳐진 아침 풍경은 더없이 평온했다. 바다는 잔잔했고, 이제 막 떠오른 햇빛 아래 마치 거대한 거울처럼 보였다. 잔잔하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고, 그 모습은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 만큼 고요하고 평화로웠다.하지만 셀렌에게 그 풍경은 아무런 평온함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녀는 창틀을 움켜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그녀의 생각은 전날 밤 나누었던 긴 대화로 다시 돌아갔다. 이제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훨씬 더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라제 코르빈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었다.셀렌이 그의 진짜 목적은 아니었다. 이 모든 일을 통해 그가 실제로 노리고 있는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도 훨씬 더 위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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